Monday, June 30, 2008

여름에 함박눈이? 그것도 꼭 2 주간만.







함박눈이 펑펑 내린다. 매년 이맘때면, 즉 6월 중순부터 2주간 밤낯없이 내린다.
파란풀밭위에 하얗게 쌓여 있다가도 바람이 불면 다시 하늘을 이리저리 날아 다니면서, 아무데고 내려 앉는다. 그야말로 무법자처럼 말이다. 무슨 소리를 하느냐고? 의아해 할 충분한 의문을 내포하고 있는 말임에는 틀림없는 것이다.
나의 카테지는 온타리오 호수가에서 두집건너에 접해 있다. 호수옆이라서 큰포플러 나무들이 곳곳에 하늘 높은줄 모르고 가지를 뻗으며 힘차게 자라고 있는데, 이나무들이 매년 이맘때면, 꽃을 피워 바람에 날린다. 휘날리는 모습이 꼭 추운 한겨울에 함박눈이 흩날리는것 처럼 우리 카테지를 포함하여 인근의 모든 주택과 대지를 덮는다. 처음에는 빗자루로 쓸고 또 쓸고 했었는데......
이제는 아예 포기하고 내버려 둔다. 시골이라서 곤충들이 많이 서식하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거미집은 집 처마며 기둥이며 나무가지며 아무데고 둘러 쳐져있어, 먹이를 기다리고 있는데, 요즘은 그들의 먹이인 곤충대신, 포플러에서 흩날린 하얀 Summer Snow 들이 거미집에 잡혀 바람이 흔들리고 있는 모습은,특히 처마의 거미집에 붙잡힌 하얀꽃송이들은, 마치 유령의집(Haunted House)처럼 만들어 버린다. 처음 이곳을 방문하여 이광경을 보는 친지들은 무척 신기해 하며, 시적 낭만적으로 생각하면서 운치 좋다고 하는데.... 그렇치 않다고 설명을 해도, 그들은 이해를 못하는 경우를 많이 겪는다. 후덥지근한 여름날씨는 때때로 소나기를 동반 하기도 한다. 쏘나기가 한바탕 지나가면, Summer Snow는 깨끗히 청소되여 본래의 모습을 보여 준다. 다시 해가 나고 바람이 불면, 언제 그랬냐는듯 다시 훨훨 꽃가루를 날린다.
차문을 열면, 날아 다니는 하얀 꽃가루들이 먼저 알고 안으로 침입하는 것은 다반사다. 분명히 차문을 열기전, 주위를 살피곤 하는데도...... 그들이 차안에 침입하게 되면, 청소하기가 쉽지가 않다.
좌석구석이나 좁은 공간에 파고 들면 청소 하는데 골치를 더 아프게 할뿐, 도움은 전연 없는 귀찮은 존재다. 더워도 차창문을, 집의 창문을 열어서 찬바람을 환기 시키는 일은 그들의 꽃가루 흩날리는 작업이 끝날때인 6월 말경까지는 어렵다. 더운 여름을 시골의 한가한 카테지에서 서늘하게 보내면서, 삶을 즐기는 그여유속에 생각지도 않은 이러한 불청객들이 있어, 짧은 시간이지만, 카테지 생활의 작은 흠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어떻게 할수가 없다. 옛말에 빈대 잡기 위해 초가 삼간을 태운다는 그런 우를 범할수는 없는것 아니잖는가. 그래도 여름의 카테지 생활은 또 다른 삶의
의미를 터득하고 생각케 해준다. 내일쯤이면 다끝날것 같다. 그러면 다시 청소를 해야 한다.

Sunday, June 29, 2008

Roger's Center 야구경기 관람(former Sky Dome)











그러니까 얼마만에 야구경기관람을 하게 된것인가? 무척이나 오랫만이다. Toronto Blue Jays가 월드챔피언을 획득하기전이나까 1980년대 말쯤으로 기억된다.
지금은 경기장 이름도 바뀌었다. Roger's Centre로 불리고 있었지만, 그이름은 별로 귀에 익지 않은 느낌을 준다. Sky Dome으로, 지금부터 거의 30여년전에, 새로 건설하여 오픈 했을때 명명된 그이름이 귀에 익었는데, 그것도 캐나다 시민들을 상대로 작명 Contest까지 해서 지었던 이름이었었는데..... 막 개관 했을때는 여러가지로 새로운 기록을 보유한 그런 실내 경기장이었었다. 우선 지붕이 개폐식으로(Open and Close), 전천후 경기관람이 가능했었고,전세계적으로도 몇개 안되는 최신식 시설을 갖추었다고 오랫동안 뉴스거리가 되기도 했었던 기억이 새롭다. 경기장안에도 많은 변화가 있는것을 느꼈다. 우선 전광판 광고 Sign 으로 도배를 한 기분이다. Oakville에 거주하는 친지부부가 어렵게 표를 구해서 같이 가자는 제의를 약 3주전부터 해와 오랜만에 그곳에 발걸음 한것이다. 좌석번호를 따라 한참을 찾아 가니, 입장권에 표시된 우리일행의 입장권 번호표시전에 입구가 마지막으로 끝났다. 그곳에서 안내하는 Staff에게 표를 보여 주면서 물었더니, 친절하게 자기를 자기를 따라 오라고 하면서 앞장선다. 그렇게 넓은 경기장안에 몇개 안되는 VIP 좌석으로 안내 했다. 의자와 테이블이 구비된, Catcher뒷쪽위로 아주 좋은 위치에 있었고, 테이블위에는 Reserved라는 예약 표시가 놓여 있는곳이었다. 4명이 않을수 있는 벤치 스타일의 테이블,의자들이었다. 이곳이 우리의 좌석이란다. 경기가 시작되자마자, Waitress가 와서 스낵을 먹지 않겠느냐고 은근히 구매를 충동질 한다. VIP체면(?)에 그냥 보낼수가 없어, 간단한 음료수를 주문했는데, 값이 밖에서 하고는 엄청나게 비싸다. 그래도 웃으면서 고맙다 고 인사하면서, 지불하고....
오래전에 이곳에 왔을때는, 경기장 맨윗쪽 구석에 자리를 잡았었는데.... 그때는 경기장 안에서 뛰는 선수들이 어린아이들처럼 조그맣게 보였었다. 스릴있는 순간 포착은 육안으로 어려워, 다시 전광판에 재현되는 그림을 보곤 했었는데, 오늘은 육안으로 가깝게 잘보이고, 또 전광판으로 보게되는, 오길 잘했다는 느낌이 드는 기억에 남을 관람이다.
관람하는 관객들의 응원 모습도 많이 변했다. 아군이 잘할때는 응원하는 관중들의 모습이 마치 물결치듯 파도를 이루면서 함성을 이루며 원탁형 경기장을 한바퀴 도는, 장관을 이루곤 했었는데, 그런 모습은 온데 간데 없고, 그저 간단한 구호가 몇마디 이어 지다 사라지는 대조적 광경이었다.
그전에 관전 했을때의 기억도 떠 올랐다. 내 앞에 앉았던, 서양 할머니 한분은 머리통만한 Bell을 휴대하고 와서, Blue Jays의 선수 George Bell이 타석에 나와, 안타를 치거나 홈런을 날릴때는 Bell 을 흔들어 그를 응원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때도 느끼기를 "할머닌 참 극성이다" 라고 독백을 하기도 했었다. 오늘은 미안하게도 Blue Jays선수들 이름을 거의 기억 못하고 관람에 임했다.
며칠전, Blue Jays 감독이 Fire 당하고, Cito Gaston이 다시 감독을 맡았다는 뉴스를 본기억이 난다. 그를 기억하는것은 자연스럽다. 그가 1990년도 초에 조감독으로 있다가, 우연찮게 감독을 맡게 되고나서부터 불루제이스는 승승장구해, 1991년, 1992년 연속으로 World Champion을 획득했었기에 그의 이름을 잊을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 그가 감독하는 불루제이스팀의 경기를 다시 보게 된 행운(?)을 얻은 것이다. 우리가 앉은 좌석 전면 건너편 지붕밑에는 불루제이스가World Champion을 연속으로 획득했을때 받았던 펜난트 두개가 나란히 걸려있는 광경이 그때의 흥분들을 보여 주는것 같은 느낌을 주고도 남는것 같았다. 오늘의 경기는 너무나 조용하게 진행됐다. 타선이 전연 폭발이 안된상태로 6회까지 진행된 상태에서, Cito Gaston이 마운드에 올라와 First Base, Second Base에 상대방 선수를 두고,수비중인 Blue Jays 선수들에게 지시를 한참하고 퇴장하는 모습이 돋보였다. 그래서 였는지, 다음 공격에서 한점을 얻어, 결국 Blue Jays의 승리로 이끌었다. 역시 그는 명감독인것이 틀림 없이 돋보였다. 경기장안의 많은 좌석이 빈상태로 경기는 진행됐는데, 요즘의 개스비 폭발과 불경기를 이곳에서도 보는것 같다. 빈좌석이 없이, 함성이 경기장 천정을 뚫고 하늘 높이 솟았어야 했는데..... 거기에 파킹도 만만치 않다. 서민들과 함께하는 야구경기가 앞으로는 서민들과, 불경기가 계속이어진다면, 거리를 두게 될것으로 예측하는것은 어렵지 않을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친지덕에 편하게 좋은 자리에서, 정말로 오랫만에 구경한 야구경기, 그내용은 별로 역동적이지는 못했지만, 기억에 오래 남을 값진 시간을 갖었다.

Monday, June 16, 2008

6/25 참전 전몰장병 추모식과 참전 노병들


 Ottawa 6/25 참전용사 추모식에 금년에도 참석 했다.  해마다 6/25가 끼어있는 주간의 일요일에 전쟁기념식을 해 왔으나, 추모식을 주관하는 캐나다측의 사정으로 앞당겨 일요일인 15일에 치러지게 된것이다.   이번 행사에서 가슴을 더 아리게 한것은 참전용사 전우들의 참석숫자가,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타계하고, 또 거동이 불편하여, 마음뿐 참석할수없는 형편에 의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는 안타까움이었다.  58주년 6/25참전 전몰장병 추모식은, 다른 행사와는 달리 참전용사들이 주동이 되여, 한국전 참전 16개국을 대표한 대사및 공관원들과 무관들 그리고 캐나다측에서 국방부 직원과 일부 현역 군이들이 참석하여 행사를 더 빛나게 해주는, 뜻깊은 행사여서, 한때는 멀리 호주에서, 미국에서도 아직 젊었던 한국전 참전 용사들이 많이 참석하곤 했었다.
캐나다 국회의사당 뒤편에 있는 세계 1차, 2차 대전에서 꽃다운 목숨을 조국을 위해 바친 캐나다의 전몰장병 위령비가 세워져 있는 전쟁광장에서 진행되는 기념식에서, 군악대의 팡파르와 군가에 맞추어, 멀리서 도열해 있다가, 구령에 맞추어 행군하여 광장앞의 귀빈석에 앉아있는 인사들의 앞을  열병할때는 옛날 군생활을 다시 생각케 해주는, 그때의 젊은 혈기가 몸안에 돌고있는 힘찬 기분이 행군발길도 가볍게 해주었다.  
우리 한국쪽 재향군인회의 노병들은 본 행사에 참석하기전,  전쟁광장으로 부터 두불럭 떨어져 있는곳에, 고국의 부산 유엔군 묘지에 세워져 있는 6/25 참전 캐나다군 전몰 장병들의 위령비를 그대로 옮겨만든 기념비에서 캐나다군 참전 노병들과 함께 별도의 추모식을 간단히 치르고, 본 기념 행사가 열리는 곳으로 이동하여 전쟁추모식에 합류 하곤 했다.  금년에도 예외없이 진행 됐고, 그곳에는 김수동 주캐나다 한국대사와 공군무관도 특별히 참석해 주셨다.
그위령비에는 이렇게 간단한 문장이 새겨져 있다. "We will never forget you brave sons of Canada" 정말로 조국이 존속되는한, 절대로 이들의, 아니 참전국 용사들의, 목숨바쳐 오늘의 발전된 조국이 있게한 그들의 희생정신을 잊어서는 안될것이다.  후세들에게 두고두고 교훈으로, 역사로 이어져야 할것이다.

나는 이번 추모식에서는  의장병(?)역활을 하는 행운(?)을 얻어  육군기를 들고, 옆의 해군기, 공군기 그리고 해병대기를 든 기수들과 나란히 행열 앞에서 행군을 하기도 했읍니다. 현역시절에는 상상도 못해본 그런 기수를 내가 해 냈읍니다.  비록 발걸음이나 몸매는 기대에는 못미쳤었다는것을 잘 알고 있지만...... 정신만은 현역병들이 하는 기수단보다 훨씬 잘 무장된 상태였다고 자부 하고 싶다.  옆에서 같이 해냈던 옛전우들도 똑 같은 생각이었을 것이다.  행군을 할때 길가에 도열하여 구경하던 일반인들로 부터 우뢰같은 감사의 박수가 터질때는, 재향군인회원의 긍지가 자랑스럽게만 느껴지기도 했었다.

이번 추모식에서 느낀 또 다른 안타까움은 참전 16개국을 대표하여 참석하는 해당국가의 노병이 아닌 젊은 외교관이나 무관들의 참석수가  눈에 띄게 줄어든 것이었다.  자유를 지키기위해 그들의 부모, 선배들이 하나뿐인 목숨을 바쳐 조국 한국을 지켜,  오늘이 있게한 그값진 행사에 얼굴을 내밀지 않아, 그 추모행사의 뜻이 옅어져 가는것이 아닌가?하는, 염려(?)가 가슴을 답답하게 했다.  참전국가의 대표가 사회자의 호출로 앞에 나와 꽃다발(wreath)을 위령비앞에 놓아야 하는데, 참석을 안했으니 대신 앞에서 안내하는 의장병들이 꽃다발을 바치는 광경은 우리 노병들의 서운함을 더하게 했다.
추모식에 참석하는 노병들의 참석숫자가 매년 줄어드는것은 정한 이치이기에, 막을수 없는 불가 항력이기에 그렇다 치더라도, 해당국 외교관, 무관들의 불참은, 6/25 전쟁의 참된 뜻이 희석되여, 후손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을것 같은 안타까움 바로 그것이다.
몇년전만 해도 캐나다에서는 국방장관도 참석했었지만, 보훈장관 Greg Thompson이 대신 했다.
이러한 현상은 해마다 더 늘어 나는것을 느낀다.
우리 한국군 캐나다 동부지회 재향군인회원들은 토론토에서 새벽 4시 반까지 지정장소에 모여, 5시에 오타와를 향해 전세 버스에 몸을 실었었다.  회장단의 수고로 준비된 김밥과 음료수로 아침을 때웠다.  오랫만에 만난 노병들은 그간의 살아온 얘기와 그옛날 겪었던 전쟁무용담등을 서로 나누면서 왕복 10시간이 넘게 걸리는 장거리 여행을 순간처럼 보내면서 오타와 행사장에 참석했었다.
몬트리얼에서 참석한 회원들도 오랫만에 만나게 되여 더 반가웠다.  그분들도 참석숫자가 적어졌다고 세월의 흐름을 안타까워 함을 볼수 있었다.   현역 군생활을 하면서 고생하고 제대한지가 바로 엊그제 같은데, 나의 경우만 봐도 벌써 41년이 지나갔으니, 하물며 참전 용사들이야, 시간의 흐름에 대해 말할 필요가 있겠는가?   조국에서 이곳 캐나다에 이민오는 남자분들의 대부분이 군대생활을 자의든, 타의든 했던 재향군인회원들이다.  그러나 현재 재향군인회의 모임에 참석하고 있는 회원들의 대부분은 6/25전쟁참전 용사이거나, 월남전 참전 용사들이 태반이다.
젊은 회원들 참석이 계속이어져야 하는데, 그래서 6/25전쟁의 참상과 그역사적 진실이 후세들에게 생생하세 전달되어져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함을 매년 행사때 마다 느낀다.  이러다가 전쟁세대가 세월이 흐른후 다 사라지게 된다면...... 고국에서 좌파정권이 지난 10년간 집권하면서, 6/25 전쟁이 남측의 북침으로 발생했다는 억지 논리와 북의 공산정권도 같은 동포이니 잘사는 우리 남한동포들이 도와 주어야 한다는 사상을 젊은이들의 뇌리에 꽉 심어 놓았다고 하는데....... 그래서 답답함이 이번 행사참석후 더 깊어졌다.   살아서 몸을 움직일수 있는한, 나는 매년 이 전쟁추모 행사에 참석할것을 재삼 마음에 다짐해 본다.  이 다짐이 어찌 나만의 바램이겠는가?  노병들 모두의 생각일것이라고,한점 의심없이 믿어진다.   
오타와의 한국대사관에서 정성스레 준비해준 부페식 점심이 조금은 위안이 됐다.  한국측 재향군인들만이 아니고, 행사에 참석한 16개국 모든 노병들에게 잊지않고 그들의 노고에 감사하는 표시의 점심대접이, 그나마 매년 이어져 다행이다.   접시에 먹을만큼 담아, 삼삼오오 구룹을 이루어, 혹은 의자에, 혹은 정원 잔디밭에 어울려 앉아 먹으면서 서로의 군생활 얘기들을 나누는 귀중한 이시간의 기억을 오래오래 간직할것이다.   특히 캐나다측 참전 노병들은 그들의가족들과 같이 참석하곤 하는데, 같이 음식 나누면서 나누는 얘기들중에는, 아들 딸은 물론이려니와, 손자 손녀들에게도 전쟁의 참상과 한국전 참전 얘기들을 해주곤 한다는 얘기를 나눌때는, 마치 당사국에서 온 너희들은 젊은 회원들 확보도 못하면서, 6/25의 역사적 순간들을 어떻게 후대에 전할것이냐?라는 채찍처럼 들리기도 했다.
그나마 위안이 된 한가지 기억할 일은, 젊은 현역 해군 중령이(Family name이 최) 이 행사에 참석하여 같이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있었는데, 그의 조국관, 군인관이 뚜렷해, 우리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놓이게 해줬다.  그는 조국에서 이곳 캐나다 토론토에 있는 군사 학교에 파견되여 전술을 연구중에 있는데, 이번에 기회가 되여 참석하게 됐었다고 했다.  그의 군인으로서의 정신무장이 빈틈 없는 모습을,대화중에 볼수 있어 마음이 놓여 좋았다.   헤여질때는 '이다음 다시 만나게 될때는 빛나는 별을 달고 조국방위를 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라고 인사를 해 주기도 했다.
연로한 노병회원 한분이 타계 하셨다는 소식을, 모든 일정을 마치고 헤여져 집으로 향하기 직전,
회장이 모두에게 전해 줬다.  그만큼 많은 시간이 흘렀다는 얘기 같이도 들렸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마음이 급해져 옴을 이소식과 더불어 깊이 가슴속에 박힌다. 
훈련이 잘된 후배 군인들의 철통같은 조국방어속에서 발전된 조국과 통일된 조국 그리고 영원히 한민족의 혼이 이어지는 그런 조국이 계속 이어지기를 바래는 염원을 마음속에 담고, 잠자리를 같이 하는 아내가 기다리고 있는 집을 향해 차에 몸을 실었다. 
 

Saturday, June 14, 2008

Devil's Glen Provincial Park area trailwalk
















밤새 번개치고, shower가 쏟아지고....  내일 토요일 트레일 웍을 위해 골프치는 재미를 뒤로 접어 두고 어제 저녁 늦게 카테지에서 짐을 꾸려 내려 왔었는데.....늦은 밤 지금 내리 쏟는 소나기같아서는 내일 트레일 웍은  물건너 가지 않겠나? 하는 편치 않은 기분으로 창밖을 보면서, 창문 유리에 부닺치는 빗방울이 원망스러워지기까지 하는 밤을 지샜다.  
카테지에서 며칠간 세상돌아가는것을 잊은채 지내다 집에와서 뉴스를 보니 온통 세상이 문제 투성이로 보일정도로 마음 아픈 뉴스뿐이더니, 그래서 그렇게 번개치고 샤워를 했나? 싶기도 했다.
일본에서 강진(7.0이상)이 발생, 신간센 총알 열차운행중지되고, 계속해서 피해 소식이 전해지면서,이곳 북미에서는 NBC의 간판 앵커,Tim Russert가 토크쇼 생방송중 심장 마비로 세상을 떠났다는 또다른 뉴스가 있었다. 그는 아직 세상을 등지기에는 어린 겨우 58세의 생을 마감 한것이다.  그래서 하늘도 서러워서 그렇게 밤새 번개천둥에, 소나기를 쏟아 부었나 싶게 느껴지는 밤을 보내고, 떠오른 아침은 언제 그랬냐는듯 파란 하늘에 하얀 뭉개 구름이 떠 있어, 산행을 재촉 하는것 처럼 느껴 발길이 가벼웠다.
한시간 반을 북쪽으로 달려 목적지 Local Rd.124와 Cons 10 South 에 도착했다. 지난주에 아내와 같이 미리 survey를 했기에, 지도를 의지 하면서도 핸들조정이 가벼웠다. 
항상 그랬던것 처럼, 인솔자의 감사기도를 시작으로 계곡 아래서 물소리가 시원 스럽게 흐르는 쪽으로 나있는 트레일을 따라 가파른 계곡을 걷기 시작했다.  가파른 계곡이라 브르스 트레일 회원들이 설치해 놓은 계단을 따라 내려 울창하게 우거진 향나무 숲을 헤져 내려 갔다.  트레일 지도를 살펴보니, 오늘의 구간을 상당히 험한 계곡양쪽을 걷고, 다시 긴 언덕을 내려가는 Loop 를 걷게 되여 있었다.  회원 모두가 마실물과 점심 그리고 모기와 싸워서 이기기위한 조치를 하고 한발씩 한발씩 길을 따라 물소리가 흐르는 아래쪽으로 발길을 내 딛는다.   계곡의 흐름은 Mad River로 지도상에는 명명 되여 있었다.  아마도 흐르는 물길이 화를 잘 내서 그렇게 이름 지여 졌나 보다.
어느 회원이 ' 향나무숲을 지날때 심호흡을 하십시요'라고 소리친다.  겨울철 감기에 특효약이 바로 향나무숲에서 심호흡을 오래 하는것이라고 설명을 부친다.  하나 둘 구령에 맞추어 모두가 걸음을 잠시 멈추고 심호흡이다.  특효약이라니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강을 건너에는 스키 Resort가 있다.  지금은 lift를 포함하여 모든 설비가 겨울을 기다리며 조용히 멈춰 서있다.  빌딩은 텅비어있고, 문은 잠겨 있었다.  겨울철 시즌이 되면 그렇게도 시끄러웠을 그런 리조트였을텐데..... 마치 우리 Trail walker들이 정적을 깨고 그옆으로 지나는 발걸음을 반가워 하는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리프트를 따라 윗쪽을 쳐다보니 슬로프가 길지는 않지만, 겨울철 스키어들에게는 사랑을 충분히 받을만 하겠다 싶게 여러개의 Lane이 그림처럼 아름답게 펼쳐져 있는 모습이다.  머리속에 이곳에도 스키장이 있음을 기억해 놓아야 겠다.
계속 이어지는 트레일을 따라 발길을 옮긴다.  가파른 언덕을 위로 쳐다보면서 걷게 되여 있다.
발길이 무거워지기 시작하고, 회원들의 입에서 절로 나오는 신음(?)이 연속으로 터진다.  더구나 어젯밤 이곳에도 비가 많이 내린탓에 길이 어떤곳은 진흙탕이고 또 미끄러워 한발 한발 옮기는게 곱절이상 신경쓰게 한다.  바지 자락은 어느새 신발에서 튕긴 흙탕으로 젖어간다.  바지 가랑이 진흙으로 먹칠 되는것에는 아랑곳 하지않고, 모두들 발길이 미끄러지지 않으려는 안간힘을 쏟으며 가파른 언덕길을 오른다.  이마에서는 땀이 계속 불어나고.... 숨소리는 더 커지고....
조금만 더 전진해서 오르면 계곡 정상에 이르겠지....하는 희망을 머리속에 그리면서 발길은 계속된다.   언덕을 향한 발길이 무거우니, 평상시에는 느끼지도 못하던, 조그만 물병과 점심이 든 룩섹이 짐이 됨을 느낀다.  발목이 좀 불편한 회원, 엉치가 편치않은 회원, 그래도 용케 잘 어울려 걷는다.  이런 어려움(?)이 인내로 연결됨을 본다.  그들의 걷는 용기를 높이 사고 싶다. 
우거진 숲을 통해 보이는 파란 하늘위에는 양날개를 한껏피고 한가롭게 원을 그리며 유희를 하는 여러마리의 솔개(Vultures)들이 시원스럽게 보인다.  나는 구슬땀이 흘러 눈을 따겁게 할정도인데 순간적으로 그들의 신세(?)가 부러워진다.  Muddy Trail을 지나 정상에 이르니 비교적 걷기가 편하고 산들 바람이 금방 시원함을 느끼게 해준다.  솔개의 신세가 이젠 부럽지 않게 금방 생각이 바뀐다.   앉아 쉬기에 안성마춤인곳에 이르러 점심을 폈다.   산행시 항상 느끼지만 오늘의 점심맛은 색다르게 맛을 돋운다.  더 힘들게 걸어서 였을까?  
오늘은 처음 동행한 얼굴들이 있었다.  한국에서 방문한 동생 부부가 회원인 형부부와 같이 산행을 한것이다.   한국에서는 보기 쉽지않는 고속도로를 달리면서 펼쳐지는 광경들과, 평지로만 보여졌던 숲속깊은속에서 숨을 고르며 가파른 산행을 하면서 점심을 먹는 그맛을 그분들도 무척 인상깊에 받아 들이는것 같았다.   오래 기억속에 간직 하시기를....
발길이 드문 이곳은 자란풀의 키가 가슴에 달하는곳도 있었다.  물결을 치듯 그런기분으로 그속을 헤쳐 걷는다.  멀이 뒤에 걸어오는 회원들의 모습이 윗부분만 보이기도 한다.  이런곳에서 만약에 길을 잘못들어 헤매게 된다면?  그런생각도 해본다.  지도상에 있는 이정표를 잘못읽어 길을 벗어 나게되면, 그때는 헤맬수 밖에 없을 것이다.   지도의 고마움을 깊이 오늘따라 느낀다.
main trail 을 가로질러 side trail을 선택했다.  숲속을 지나, 눈에 들어온것은 작지만, 너무나 아름다운 호수였다.  물결도 없이 잔잔함이 마치 거울같다.  물속에 비쳐진 또 하나의 숲은 거꾸로 서있다.  평화롭다.  양쪽 언덕위의 꽉 짜인 숲속의 아래에 이런 호수는 옛날 이태백이 술잔을 기울이며 낚싯대를 드리웠을 호수도 이런 풍광이 아니었겠나?  머리속에 그런 상상을 그려 보며 지나친다.
조그만 촌락이 눈에 들어 온다.   그가운데를 도로가 지나간다.  그옆에 이곳 동네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것으로 보이는 물레방아틀이 쉼없이 아래로 물을 흘리며 돌아가고 있는 모습이 무척 한가로워 보인다.  그옆의 그늘에서 땀을 식히면서 잠시 휴식을 했다.  물레방아에서 흘러내리는 물을 손으로 받아 얼굴의 땀을 씻어 내는 여유도 가져 본다.  우리 다음의 산행객들도 우리처럼 얼굴을 씻어 내도록 계속해서 물레방아는 돌아갔으면 하는 마음이다.
마지막 구간인 가파른 언덕을 숨을 턱까지 느끼면서 올라, 전망대에 올라섰다.  
눈에 들어오는 건너편 스키장 슬로프,  그숲뒤로 우리가 그렇게 힘들었지만, 기분좋게 운동하며 걸었던 정상,  그리고 물흐르는 소리는 변함이 없이 노래되여 귀에 전달된다.
지금까지 걸었던 어떤 구간보다 오늘의 트레일은 기억에 남게 험한 곳으로 기억될것 같다.
그래도 가을이 되면 다음에 다시 또 오자는 약속 아닌 약속들을 토해 낸다.  좋아서 였겠지....
감사한 마음뿐이다.  무사히 산행 마치고 귀가하게 해주신 창조주께 마음으로 부터 감사.

Saturday, June 07, 2008

힐라리의 지명전 고별연설을 듣고 보면서....


오늘 토요일, 무척 덥습니다.  골프도 피하고 집에서 쉬면서, 미 민주당 대통령 후보 지명전 획득을 위해 마지막까지 완주하고, 지난 화요일 치러진  S. Dakota주와 Montana주의 예비선거에서,마지막표차로 아깝게 바락크 오바마에게 패배한후, 며칠간을 심사숙고 하다가 오늘 12시 30분경, 지지자들 앞에서 그녀가 고별 연설하면서, 모든것을 뒤로 접고, 후보 지명전을 쟁취한 바락크 오바마를 전폭적으로 지지하며, 모든 할수있는 역량을 발휘하여 차기 미국의 대통령으로 그를 꼭 당선 시키겠다는 인상적인 연설을 CNN 생방송으로 보았읍니다.   
특히 그녀가 연설 중간에 언급한 내용은 미국의 민주주의의 실상을 보여 주는것 같아 귀에 여운이 남아 있읍니다. " 예비선거전이 처음 막을 올렸을때,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기를, 정말로 여자가 군통수권자가 될수 있을까?,  정말로 흑인(African-American)이 미국의 대통령 후보가 될수 있을까? 라고 냉소적인 시선을 보냈던 그순간을 기억하고 있읍니다.  오늘 우리는 이자리에서, 여자도 대통령이 될수 있음을 보여 주었고, 흑인도 군통수권자가 될수 있다는 우리의 역량을 우리 모두가 보여 주고 있는 증인입니다"라고 미국의 민주주의 역량을 한껏 자랑하는것 같아 부럽기도 했읍니다.
끝까지 가장 치열하게, 때로는 상대방을 서로 비방까지 하면서 사투를 벌여온것은 모두가 알고 있는 미민주당의 예비선거 였읍니다.  그러나 그녀의 연설에서 그녀는 말하기를 사투를 하다시피한 선거운동을 벌여왔던 목적이 이제 승리로 완성됐음으로 우리는 바랔크 오바마를 우리의 후보로 지지하며, 우리 모두는 그의 당선을 위하여 하나가 되어야 한다 라고 말하는 그녀의 결연함은 그곳에 모인 관중들의 열열한 박수를 받고도 남았읍니다.  천팔백만표를 얻어 당원 투표에서는 뒤진게거의  없었으나, Superdelegates의 지지표에서 뒤져, 결국 무릎을 꿇고 말았던 그녀의 용기에, 인내력에, 누구를 지지하고 안하고를 떠나서 많은 경의를 표하고 싶읍니다.  지난 18개월동안의 지명전 후보선거운동에서 그녀를 지지하고, 봉사해준 많은 지지자들에게 일일히 보낸 초청장을 받은 그들이 이른 새벽부터 미 전역에서 모여들어, 그녀가 First Lady로 봉직했던 백악관에서 멀지않은 곳에 위취한 National Building Museum문에서 긴줄을 서서 입장을 기다렸다고 합니다.  당의 화합을 뜻하는 의미에서 후보 지명 당선자 바락크 오바마의 지지자들도 합류했다는 기사는, 많은 생각을 하게 했읍니다.  후보로 나서 직접 싸웠던 본인들도 아닌, 지지자들까지도 이렇게 당과 국가의 장래를 위해 그간에 쌓였던 앙금의 벽을 헐고, 하나로 화합하기위해 긴줄속에 같이 섞여, 지지자요 반대자였던 후보의 고별 연설을 듣기 위해 앞장 서고 있는데.....
고국의 정치 현실을 보면서, 더욱 안타까운 마음이 더해짐은 무엇을 염려해서 일까요?
이순간 부터 미국 대통령 선거전이 공화당과 민주당의 후보들간에 11월 둘째 화요일 까지 계속될 것입니다.  고국의 정치인들이 말로만, 미국의 민주주의, 서구의 민주주의를 외치지말고, 국가의 장래와 국민들의 안녕 질서,  외부로 부터의 침략, 그리고 부강을 위해서, 당리 당략을 버리고 큰것을 보면서 정치하는, Practical Politicians가 됐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