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June 25, 2013

존경하고 좋아 하는분들과 추억 만들었다.

카메라가 아주 고급품이라서, 완전히 늙어버린 노인의 상징이 여과 없이 그대로 찍혀버린 진정한 나의 모습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엉뚱하게 카메라성능이 너무나 좋아도 꼭 득이 되는것만은  아니라는것을, 이번 존경하고 좋아하는 친지분들과 사진을 찍고 Fellowship을 나누면서 느끼고, 세월이 많이 흘러가서 여기까지 왔음을 실감한 시간들을 만들었었다.

평소 아끼고 존경하는 친지두가족이 우리부부가 여름을 보내고 있는 시골집으로 지난 토요일 먼길을 마다않고,  TV도 없고, 인터넷도 연결되지 않은 곳에서 여름을 나고 있는 우리 부부를 위문차(?) 방문해 주셨다.  한친지분은 연로하시고, 거동도 편치 않으신 어머님까지 모시고 왔었고, 다른 친지분은 Motor Boat까지 Trailer에 싣고 왔었다.




토론토에서 가끔씩 만나 Fellowship을 나눌때 느껴보지 못했던 또 다른 Fellowship과 격을 생각하면서 행동에 제약을 하기도 했었던 간격을 없애 버리고, 어울려 맨바닥에서 어깨를 부벼대며 잠도 자고, Boat를 타고 Angling을 Presqu'ile Park의 뒷쪽에 있는 Bay에서 하면서, 또 한식탁에 모두가 엉켜 앉아 친지분들이 정성껏 준비해온 음식을 서로 Share하면서 갖은 그시간들은 오래 오래 기억속에서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모두가 바쁘게 생업전선에서 뛰면서 귀한 시간을 내여 시골집까지 방문해 준것만 생각해도 고맙고 반가운데, 친지분들은 마치 이삿짐을 챙겨오듯 푸짐한 먹거리는 물론이고, 이부자리까지 챙겨 오는 셈세함을 보여 주셨다.  시골집에서 거주하는 환경을 상상하면서 그렇게 풍부하게 준비 해온 그마음씀이 우리 부부를 더많이 감동하게 만들었다.  시간을 논한다면 어쩌면 우리 부부가 제일 한가한 시간이 많은 편인데....

새벽에 낚시질을 해야 운치가 있다는 젊은 친지분의 제안에 우선 남자들만 Boat를 끌고, 집에서 불과 3분 거리에 있는 Presqu'ile provincial Park의 뒷편에 있는 Public Launching ramp으로 달렸다.  우리가 도착한 같은 시간에 젊은 Canadian 2팀이 역시 Angling을 하기위해 도착했다.  젊은 친지분은 능숙한 운전 솜씨로 Boat가 실려있는 Trailer를 호수속에 밀어 넣는다.  우리뒤를 이어 Canadian들도 익숙한 솜씨로 Launching한다.



평상시 차를 타고 Launching Ramp옆을 지날때는 갈대로 뒤덮히고, 조그맣게만 보였던 Bay를 따라 직접 항해하니, 마침 아침 안개가 자욱하여 방향을 분간 하기가 어렵고 넓은 바다처럼 느껴져, 나름데로 되돌아 올때가 걱정이 되여 심경을 토로 했더니, 경험이 많은 젊은 친지분은 웃으면서 '걱정 놓으시고 뱃놀이 즐기시고 낚시질해서 많은 고기를 잡을 생각만 하시지요' 라고 다른 신경을 못쓰게 해준다.  경험에서 터득한 여유를 보여준 것이다.

Boat는 갈대가 우거진 곳으로 향한다.  내생각으로는 갈대밭보다는 훤히 트인 넓은 호수가 적격일것 같은데...... 이해가 안됐다.  경험많은 젊은 친구가 설명해준다.  "아침 이시간엔 물고기들이 갈대숲사이에서 활동을 하기때문에 낚시하기에는 최적지입니다"라고. 어제밤에 낚싯대에 낚시바늘을 매달을때 평소에 보아왔던 그런 낚시가 아닌  좀 특이한 것을 보았었는데.... 이제 이해가 갈것 같다.  바로 갈대밭속에서 낚시 하기에 최적인 낚시바늘 이었기 때문이다.



낚시에 걸린 팔뚝만한 물고기를 노련한 친지가 먼저 끌어 올리는것을 보면서 역시 경험자는 다르구나 라고 생각하면서, 조금후에는 끌어 올릴때 펄떡펄떡 사력을 다해 뛸물고기를 연상했었다.  아뿔사 물고기를 놓쳤다고 아쉬워하는 친지가 빈낚시줄을 감아 올린다.  낚시를 물었던 큰물고기가 너무 강하게 힘을 주어 요동치는 통에 탄력을 이겨내지 못하고 낙씨줄이 끊어졌단다.  물속에서 온힘을 다해 발악하는 모습을 보게될것을 낙씨의 묘미를 보게될 기대를 많이 했었는데.....

나를 포함한 다른 친지들은 역시 경험 부족에서 겨우 Sun Fish새끼 두어마리를 끌어 올리는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호수위에는 많은 백조들이 마치 거북선 마냥 부부끼리 짝을 지어 유영을 한다.  간혹 갓태어난 새끼 백조들이 엄마 백조를 따라서 먹이를 찾아 바삐 움직이는 장면도 무척 신비롭다.  또 어떤 새끼들은 엄마의 등위에 얹혀서 쉬고 있는 모습도 귀엽다. 그들만의 세계를 이어가는 역사의 현장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으로 이해됐다.

이번에는 Boat의 방향을 갈대밭에서 나와 유리알 처럼 물결이 잔잔한 Bay에 끝없이 넓게 펼쳐져있는 Lake Ontario의 광활한곳을 향해 달린다.  아직도 안개가 완전히 걷힌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시야가 보이기 시작한다.  한참을 달렸왔기에 이제는 Bay를 벗어나 Lake Ontario의 중앙에 나온것 쯤으로 생각했었다.  멀리 등대를 포함한, 눈에 많이 익은 포구가 나타났다.  Brighton Township 동쪽에 위치한 Gasport 선착장이라는것을 알았다.  아직도 Bay를 벗어나지 못하고 우물안에서 개구리 헤엄치듯 헤매고 있었던 것이다.   뱃사람들의 뱃장을 이해할것 같다.

Gas port는 Hwy 401이 건설되기 전까지는 남부 Ontario주의 어시장(Fish Market)으로 크게 번성했었다고 한다.  멀리는 Atlantic Ocean과 Lake Ontario에서 잡힌 물고기들의 집산지로,  이곳에서 경매된 물고기들은 다시 소비처를 향해 각곳으로 운반됐었단다.  지금은 경매장으로 쓰였던 중간크기의 빈건물과 그주위를 둘러싸고 민가들이 형성되여 화려했던 지난날들의 기억들을 우리처럼 방문하는 여행객들에게 보여주고 있는 정도다.

집에서는 Lunar를 포함한 여자분들이 준비해온 음식으로 진수성찬의 Brunch를 만들어 놓고 우리를 기다리면서 잡아온 물고기로는 저녁에 또다른 진수성찬의 음식을 만들 구상을 하고 있었다.  맨손으로 들어오는 일행을 보면서 남자분들의 낚시실력을 알았다는듯이 의미있는 미소들을 띄운다.   "낚시는 물고기를 잡는다는 뜻도 있지만 물고기들과 지혜싸움을 한다는데 그참뜻이 있는것이라오.  모두 방생하고 돌아온 우리의 넓은 마음을 보셨으면 합니다" 라고 허풍이 곁들인 과장을 늘어 놓는 넉살도 부려 본다.  인생을 하루이틀 살아온것도 아니고, 더구나 같이 살아온 세월이 얼마인데, 우리가 떠들어 대는 그넉살을 진정으로 받아들일 여자분들이 아니다.  그리고는 모두가 웃음꽃을 피우고 만다.




모시고온 연로하신 어머님께서도 거동은 불편하셔도 얼굴에 미소가 끝이지않는것을 보면 자식들을 따라온 보람을 느끼시는것 같다.  간밤에는 어머님의 잠자리가 혹시 불편하시지 않을까 신경을 썼었는데, 깊은 수면을 하신것으로 보아 기분이 좋으신것 같다고 따님이 자랑(?)이시다.   어머님께서 분위기를 행동으로 이끌어 주시는것 같아 모두의 마음이 가벼워짐을 느낀다.

약 2년만에 다시 찾은 Lake on the mountain의 모습은 그대로다.  호수의 수위는 그대로 이고, 변한것이 있다면 더 많은 방문객들이 이곳을 찾고 있다는것 정도다.  친지분들은 이곳 방문이 처음이라고 했다.  Bulletin Board에 새겨져 있는 안내문을 보면서 호수의 생성과정과 또 옛날 이곳에서 거주했던 Aboriginal Indian 부족의 젊은 남녀가 부모의 반대에 부딪치면서 애절한 사랑을 나누다 결국 산상호수 아래로 펼쳐져 있는 온타리오 호수로 몸을 던져 수장되고, 둘의 영혼은 그곳에서 다시 재회하여 사랑의 꽃을 피웠다는 Legend는, 사랑의 힘은 모든것을 초월할수 있다는 교훈을 주는것 같다.  준비해온 시원한 수박을 호숫가에 우거진 큰 나무밑의 Picnic Bench에 둘러 앉아 한조각씩 넘기는 그맛은 갈증났던 목을 추기고도 남는다.

산상호수(Lake on the mountain)는 Hwy 33을 따라 Picton을 향해 달리면 쉽게 찾을수 있다.  재미있는것은 산상호수 바로 밑에있는 Glenora선착장에는 Ferry Service가 일년내내 온타리오주 정부에 의해 운행된다.   이섬과 Kingston으로 이어지는 Hwy 33을 Ferry가 다리역활을 해주기 때문이다.  따라서 운행료는 없다.  아직까지 온타리오주내에 있는 고속도로주행료는 징수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Hwy 407은 사설 고속도로이기 때문에 예외다.  Ferry Service를 기다리는 긴 자동차행렬 뒤에 우리 일행도 동참했다.  자동차를 타고 Ferry속으로 달려가는 경우는 흔치않기에 모두가 새로운 경험을 한다.  해협중간에서 바라본 산상호수는 높이 산위에 자리 하고 있음을 실감나게 느낄수 있었다.  자연의 섭리는 어떻게 해석을 해야 할까?  신기하기만 하다. 창조주의 그 깊은 뜻을 어렴푸시나마 두려움 속에서 생각해 볼수 있게 한다.  여자분들은 갑판에 나와서 추억을 만들기위해 사진도 찍고.......

Suspension Bridge는 이제 Campbellford지역의 명물이 되여있다.  Campbellford의 또하나의 명물은 시내를 관통하여  Trent Serven이 사철 흐르고 있다는 점이다.  조용한 Township의 중앙을 천리 뱃길이 똑 같은 수위를 유지하면서 흘러,  뱃사람들의 고속도로 역활을 하고 있단다.   Trenton에서 시작하여 멀리 북서쪽에 위치해 있는 Perry Sound까지 연결된단다.   요즘에는 육로가 발달되여 겨우 Leisure을 즐기는 유람선 정도가 간혹 여름휴가철에 이용하고 있을 뿐이란다.  이수로는 연방정부에서 관리하고 있다고 한다.  북쪽으로 향할수록 낙차가 심해 군데군데 Dock가 설치되여 있다.  Campbellford에도 3단계의 갑문(Dock)이 있어 윗쪽으로 뱃길을 연결해주고있다.   웅장하다.  아스라히 보이는 Dock의 맨 아랫쪽에 있는 배들이 윗쪽으로 옮겨진다는 그설명이 쉽게 믿어지지 않은 표정들이다. 실질적으로 조그만 유람선이 윗쪽으로 통과하는 광경을 보면서  갑문(Dock)이 양쪽에서 합쳐지는 물의 수위를 조절하여 올려지는것을 보면서, 특히 여자분들이 감탄을 한다.



Suspension Bridge는 Campbellford Township과 Trent Serven강을 가로질러  Ferry's Provincial Park을 연결해주고 있다.  이 Bridge가 없었을때는 Township 북쪽에 있는 다리까지 올라가 다시 차로 달려 가서 정문을 통해 Park에 들어갈수 있는 불편을 겪었었다.  이러한 애로사항을 간파한 어느 독지가가 다리를 건설하기위한 모금을 주도하여 약 1/2 Million달러를 모았다.  그금액이면 다리건설에 필요한 재료를 구입할수 있었다.  이제는 다리를 건설할 건설회사를 물색하기위해 또 다시 어려운 모금을 해야할 처지에 놓여 있는 딱한 사정을 접한,  Trenton에 있는 8th Wing 공군기지의 공병부대가 무료로 기술제공을 하겠다는 제안을 해와 오늘과 같은 다리를 건설 했다는 것이다.   공병부대가 비행단 창설과 함께 상주하고 있었으나 오랜세월동안 한번도 실제로 공병부대로서의 자체 Project를 맡아서 건설을 해본 경험이 없었는데, 이다리 건설로  그들의 기술을 처음 사용하는 기록도 세웠다는 희안한 인연을 갖게 됐다는 것이다.

시내를 관통하는 Trent Serven강 양쪽뚝에는 한가롭게 강태공들이 낙씨를 즐기는 모습도 여유롭게 보였고,  Dock바로 옆 강변에는 2개의 Power Plant가 흘러내리는 물을 이용하여 전기를 생산하고 있다.  여기서 발전된 전기는 인근지역의 공업시설이나 주민들에게 밤을 밝혀주고 생산설비를 돌리는데 사용돼고 있을 것이다.  친지들은 Campbellford도시의 아름다움에,  낙시를 좋아하는 젊은 친구는 마음데로 쉽게 낙시를 할수 있다는 주위 환경에 환호성을 연발한다.

다시 Brighton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오랫동안 추억을 만들어줄 사고가 발생했다.  친지의 어머님이 승차하고 계시는 차가 중간에 멈춰서버린 것이다.  연료탱크의 Gas가 바닥이 났던것이다.
앞서가던 내차의 Back Mirror통해 보였던 친지의 차가 갑자기 안보여 차를 되돌려 갔더니 낙시광이던 젊은 친구가 차문을 열고나와 손목으로 목이 잘린 시늉을 하면서  웃는다.  큰일 났구나라는 걱정보다는 나도 웃음이 나왔다.   CAA의 도움을 받을까라고 생각을 해 보았지만,  기다리는 시간이 오래 걸릴것 같아,  내가 직접 Gas를 구해오는편이 빠를것같아 친지들에게 기다리라 해놓고, 바로 Brighton에 있는 Nofrill 주유소로 달렸다.  주요소에서 기름을 담을  Container를 구입하여 약 9리터의 Gas를 구입한후 쏜살같이 되돌아 갈려고 하는데, 갑자기 Lunar가 차를 세운다.  "우린 여기서 쇼핑을 할테니 다녀오시지요"라고 돌발사고와는 무관한듯한 태평한 마음으로 여자분들을 가게안으로 안내한다.

"우리 오늘 평생 기억속에 간직할 추억을 만들었습니다.  만약에 시골집에 놀러 오지 않았었다면 이런 추억만들기를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  어머님을 기다리게 한 부분에 대해서는 굉장히 미안하지만 말이다.   그래서 또한번 박장대소가 터진다.  자동차의 주유구를 열고 배고파 기절한 자동차에게 밥을 먹이고 시동을 걸었더니 금새 에너지를 되찾아 엔진소리도 요란하게 잘 돌아간다.  배고픔에는 자동차고 사람이고 장사가 없는것을 또한번 실감했다.



여러가지로 친지들이 만들어준 추억은 오랫동안 나와 Lunar의 마음속에 간직될 것이다.
마음같아서는 이런분위기속에서 여러날을 같이 지내는 바램이었지만, 생업에 종사하는 삶의 현장을 외면 할수없어, 아쉬운 작별의 악수를 해야만 했다.   다시 또 좋은 시간만들것을 어렴푸시 기대하면서.....  밤늦게 토론토로 출발한 친지로 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시계를 보니 도착했을 시간이었다.   무사히 집에 도착했다는 안부의 전화후 마음이 놓였다.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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