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이 집권한 해가 2017년 5월중순이였었다. 그로부터 3년 반이 흘렀는데, 문재인이가 대한민국 정부조직에 대해서 손안댄게 없다. 전부 만지작 거려서 늘리고, 때려부시고, 고친것이나 개선된것은 하나도 없다.
대통령으로서 문재인의 업적을 아는데로 나열해 본다.
우선 일반직 공무원들의 숫자를 보자
전체공무원 정·현원 (기준일 : ’19.12.31) (단위 : 명, %)1,113,873, 여기에 내가 알기로는 경찰공무원은 포함 안된것으로 알고있다. 경찰공무원 130,000을 합하면, 대략 1,240,000명쯤 된다. 문재인 집권이후 인구증가는 0%였었다. 그런데도 범죄율을 급상승했다.
40여년전, 당시의 공무원 전체를 망라해서 전체숫자는 90만명이 넘지 않았었다. 당시의 인구는 지금과 같이 5천만명, 범죄율은 훨씬 낮았었다.
대통령 경호실이 경호처로 확대됐다. 실에서 처로 바뀌면 숫자가 늘어나는것을 물론이지만, 경호의 질이 좋아졌다는 자료는 못봤다. 이승만 대통령때는 경무대경찰서장이 대통령의 경호를 맡았었다. 그때에는 대한민국의 인구는 똑 같았고, 경호하면서 경찰서장급인 총경이 경호맡았기에 사고났다는 보고는 없었다. 2017년, 문재인이 대통령으로 청와대에 안주하면서, 경호처로 격상시켰다. 현재 인원은 486. 풍문에 의하면 그래서 태국에서살고있는 딸아이 식구까지 경호원이 밀착경호하고 있다고 하는데.... 태국에서 근무하는 경호원 월급및 주거시설및 관리비는 누가 책임일까? 문재인 개인 주머니에서 주면 극히 정상적으로 보이겠으나.... 경호처 일년예산이 886억 3900만원이다. 청와대집무실에서 광화문 종합청사로 집무실을 옮기겠다고 공약했던것은, 경호때문이라고 했다는데... 그래서 '청'으로 승격시켰는데도 결과는 달라진게 없다.
비서실은 아직 '청'으로 승격시키지 않은것 같다. 현인원은 2019년현재, 443명으로 경호처보다 약 40여명이 적은데,그래서 청으로 승격안시켰나는 잘 모르겠지만, 예산은 936억 6900만원이라고한다. 내생각으로는 금년말 아니면 내년초에는 '청'으로 승격시킬것으로 예측된다. 그래야 문재인답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질병본부를 '청'으로 승격시켰다. 임명장들고 충북 오송까지 찾아가서 임명장을 주는 생색을 내는데 별로 보기 좋지는 않았었다. 이난국에 청으로 승격하면, Coronavirus Pandemic이 무서워서 한국에 상륙안한다는 보장이 있다면 이해하겠으나, 희안하게도 청으로 승격시킨 그다음날부터 2nd Wave가 한국을 강타하고있다. 청으로 조직을 벌려놓으니까 Virus가 화가나서 한판 해보자는 심산인것 같다고 여겨진다.
때려부신 업적들중에서 모든 국민들이 잘 알고있는 사업은 "탈원전하고, 대신에 태양광열판을 전국의 산하를 깨부수고 그곳에 설치한 업적이다.
지구촌에서 원전기술하면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가장 안전한 에너지 생산 기술이었는데, 문재인이 가장 싫어하는 박정희대통령을 포함한 전임대통령들을 보복하는 차원에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다 때려부시고, 최근에는 원전 월성 1호기 보수작업을 마치고 수명연장 승인까지 원자력위원회로 부터받았는데, 경제성이 없다하여 폐쇄시켜 버린 것이다.
한수원 이사들은 대부분 원자력의 "원"자도 모르는 문재인 딱가리들이 비밀회의에 부쳐, 언론들은 참관 시키지도 않은채, 결정해 버린 것이다. 이에 국민들이 떠들고 일어나자 감사원에 감사를 시켰는데, 감사원장은 문재인이 임명한 최재형씨였다. 문재이이가 임명해주었기에 열심히 성실히 임무를 이행하는 차원에서 철저한 감사를 실시하고 그결과를 발표할려고 했는데, 문재인과 그패거리들이 발표 못하게 인의 장막을 치고 최재형씨를 정치적으로 죽일려고 혈안이다.
최재형감사원장이 현재 외롭게 문재인과 그패거리들과 감사결과 발표여부를 놓고 목숨걸고 싸우고 있는것은 국민 모두가 다알고 있고, 열열한 응원을 보내고 있다. 더욱 웃기는것은 탈원전을 마치 큰 업적처럼 떠들어대고, 건설중에 있는 원자력 발전소건설을 다 중단시키주재에, 뻔뻔하게도 바라카 원자력 발전소 건설현장을 찾아 쌩쑈를 했다고 하는 뉴스를 보면서, 저런게 바로 고등 사기꾼들이 하는짖이라는 증거를 보여준것까지는 좋았는데(?) 해두자.
발전소 완공과 동시에 거의 자동적으로 발전소 운영과 보수를 다시 한국이 맡았어야 했는데, UAE는 문재인의 탈원전정책으로 한국에 대한 신뢰를 믿을수 없다는 핑계를 대고 불란서와 운영및 보수 Project몽땅 다 맡겨, 한국은 닭쫒던개 지붕처다본다는 식으로, 탈원전만 문재인이가 밀어부치지않았었다면, 그냥 굴러들어오는 대한민국을 먹여 살릴수있는 재화를 몽땅 불란서에 건네주고 말았다. 이게 탈원전의 때려부시기작전의 성과다.
이번 여름 태풍과 폭우로 산을 깍아 설치했던 태양열판은 거의가 다 산사태로 떠내려가 국토를 초토화 시켰었다. 전문가들의 평가에 의하면 태양열판설치에 천문학적인, 즉 원자력 발전소 10개소 이상을 건설할수있는 예산을 처발랐는데, 결과는 산사태요, 발전량은 전부 합쳐도, 전라남도 보성에 있는 조그만 수력발전소에서 발전되는 전력양보다 적다고 한다. 그나마 건설업자들의 대부분이 문재인의 패거리들과 연관되여있었다는 뉴스도 있었다.
최근에는 서해 NLL근처에서 어부들에게 어업지도를 하던 공무원이 북괴가 쏜 총탄에 맞아 순직했는데, 문재인은 ' 자진월북한 어업 지도원'이라는 엉뚱한 이유를 부처, 업무중 북괴총탄에 순직한 공무원을 "월북자"로 몰아부치는 대역죄를 저질렀었다.
나열하고 싶은 문재인의 망국적 행위는 너무도 많지만.... 여기서 접어야 겠다. 나열하면 할수록 열불이 나는데, 이게 어찌 나혼자만의 분노이겠는가? 그래도 나는 괜찮은 편이다. 인생 살만큼 살아온 70대 중반을 넘긴 황혼의 인생을 살고 있기때문이다. 젊은이들이 더 큰 걱정이다.
대신에 언론에 보도된 최재형 감사원장의 인간성을 잘 보여주는 내용을 여기에 옮겨놨다.
https://www.youtube.com/watch?v=mGez6QnEGFI
파업 노조를 보도하는 언론이 흔히 쓰고 있는 말 중에 ‘준법투쟁’이라는 말이 있다. 사실은 이 말처럼 내부 모순을 안고 있는 말도 없다. 법을 지키겠다는 ‘준법’이 어떻게 ‘반정부 투쟁’ 혹은 ‘회사를 상대로 한 투쟁’이 될 수 있는가. 가령 과거에 시내버스 기사 분들이 회사와 다툼이 벌어지면 모든 신호등과 교통 법규를 정확하게 지키는 “준법투쟁을 하겠다”고 했다. 곰곰 따져보면 참 말도 안 되는 어이없는 일이다. 그러니까 거꾸로 뒤집어보면, 평소에는 신호등을 무시한 채 빠른 시간 안에 가장 많은 손님을 태워서 회사 이익을 극대화시키는 쪽으로 운행을 해왔으나, 이제 회사와 분규가 생겼으니 신호등을 제대로 지켜서 회사에 손해를 끼치겠다는 뜻인 것이다. 그 내용은 알겠는데, 준법이 투쟁이 된다는 것을 우리 아이들에게 어떻게 가르쳐야 할까 난감할 따름이었다. 🔸 조선닷컴 공식 홈페이지 http://www.chosun.com 🔸 공식 페이스북 : https://www.facebook.com/chosun 🔸 공식 트위터 : https://twitter.com/chosun
감사원장이기에 앞서
훌륭한 신앙인으로 하나님을 믿지않는
불신자들조차 그를 칭찬하고 존경합니다.
우리 모두 그와 같은 삶을 살기를
소원하며 글을 소개합니다.
< 월간 조선 2020년 10월호 >
[심층탐구] ‘인간 최재형 감사원장’,그 삶의 궤적.
●“작은 자, 보잘것없는 자를 진심으로 섬기는 사람”
‘대쪽’. 누군가의 별명이었던 이 단어가 요즘 자주 들린다. 개원 72주년을 맞은 감사원을 이끄는 수장 최재형에게서 과거 ‘율곡사업’과 ‘평화의 댐’ 감사를 진행하면서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을 겨눴던 감사원장 선배 ‘이회창’의 향수를 느끼는 사람이 점점 늘고 있어서일 것이다.
실제 《월간조선》에 최재형 원장에 대해 취재해달라는 독자들의 요청이 쇄도하는 것만 봐도 잘 알 수 있다. 이에 본지는 ‘감사원장 최재형’이란 이면에 감춰진 ‘인간 최재형’을 조명해봤다. 정치적 의미 부여를 배제하고, 주변인의 증언과 자료 등을 통해 ‘인간 최재형’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그려본 것이다. 직무 수행과 인품, 두 가지 측면에서 모두 호평(好評)을 받는 최재형 원장의 ‘삶의 궤적’을 따라가 봤다.
2017년 말 휴대전화기가 울렸다. 조국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이었다.
“우리가 (감사원장 후보로) 여러분을 인사 검증했는데 (사법연수) 원장님이 최적임자라는 판단이 서 이렇게 연락을 했습니다.”
최재형 감사원장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시절 그의 비서로 일하며 각별한 신임을 받은 부친에게 대통령직에 오른 박 대통령이 함께 일하자고 했을 때 “각하, 저는 목숨을 걸고 한강을 건넌 사람이 아닙니다”라며 거절했던 일화를 떠올렸다.
문재인 정부 탄생에 전혀 기여하지 않은 자신이 감사원장직을 맡는 게 도의(道義)에 어긋난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란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었다. 완곡히 사양 의사를 밝히니 조국 수석이 말을 이었다.
“원장님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후보로 추천하겠습니다. 많은 분을 검증했는데, 인사청문회를 통과할 사람은 원장님이 유일합니다.”
그렇게 최 원장은 여야 모두의 환영을 받으며 제24대 감사원장직에 올랐다.
● ‘神이 내린 인간’이란 극찬
감사원장 최재형’은 소위 말하는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명문(名門)’ 경기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사법연수원(13기) 수료 후, 줄곧 판사의 길을 걸었다. ‘엘리트 이미지’는 인간미와 거리가 멀다고 느끼는 게 사람들의 고정관념이다. 최재형 원장은 거기에 더해 ‘철저한 원칙주의자’라는 평가를 받는다. 이는 원전(原電) 감사를 놓고 일고 있는, 정치권의 파상 공세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그의 모습에서 어느 정도 확인이 됐다.
감사원이라는 기관이 주는 인상도 한몫한다. 감사원은 각 정부 부처(部處)를 상대로, 외부의 압력 없이 독립적인 감사를 벌일 수 있는 국가 최고 감사기관이다. 감사원장은 대통령이 임명하지만, 그 직무에 관해서는 독립성이 보장된다. 그만큼 감사원(장)이 주는 위압감은 상당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정보만 갖고 있다면 ‘감사원장 최재형’의 인상은 딱딱함과 완고함으로 여겨질 것이다.
‘인간 최재형’은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최재형 원장과 오랫동안 교류한 지인(知人)들은 최재형 원장을 가리켜 ‘신(神)이 내린 인간’이라고 극찬하고 있다. 그가 감사원장에 발탁되자 대다수 언론은 그와 관련한 미담(美談)을 쏟아냈다.
지인들의 증언을 소개하기 앞서 그의 본관과 집안부터 살펴보자. 최재형 원장의 본관은 해주(海州)로, 서운부정공파 최용(崔·생몰년 미상)의 36대손이다. 해주 최씨는 고려 왕조에서 가장 빛을 발한 가문으로 알려져 있다. “고려의 역사는 곧 해주 최씨의 역사”라고 말하는 사가(史家)도 더러 있다.
해주 최씨의 시조(始祖)는 최온(崔溫·생몰년 미상)이다. 최온은 고려 광종(光宗·925~975) 시기에 태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황해도 해주에서 오랫동안 거주했던 호족 출신으로 추정된다. 최온의 초기 벼슬은 호장(戶長)이었다.
최온보다 더 유명한 이가 그의 아들인 ‘해동공자(海東孔子)’로 불리는 최충(崔沖·984~1068)이다. 문장과 글이 뛰어난 최충은 고려 초기 율령과 형법을 정비하는 작업에 주력해 최고 관직이자 재상(宰相) 자리인 문하시중(門下侍中)에까지 올랐다.
최충은 교육기관인 ‘9재(齋) 학당’을 설립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거란의 침입으로 유명무실해진 고려 최고의 교육기관인 ‘국자감(國子監)’을 대체하기 위해 자신의 집에 사숙(私塾)을 만들었는데, 이것이 9재 학당의 모태(母胎)다. 최충은 아들들에게 “선비가 세력에 빌붙어 벼슬을 하면 끝을 잘 맺기 어렵지만, 글로써 출세하면 반드시 경사가 있게 된다. 나는 다행히 글로써 현달(顯達)하였거니와 깨끗한 지조로써 세상을 끝마치려 한다”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대한해협 전투’ 승리로 이끈
父親 최영섭 (예비역)대령
최재형 원장의 부친은 해군사관학교 부교장을 지낸 최영섭(崔英燮·93·해사 3기) 예비역 해군 대령(현 한국해양소년단연맹 고문)이다. 최 원장은 최영섭 대령의 4남 중 차남이다.
최영섭 대령은 우리 해군에서 ‘신화적인’ 존재다. 6·25전쟁 발발 직후, 우리 해군이 북한군을 상대로 벌인 전투에서 승리한 ‘대한해협 해전’의 실질적인 주역(主役)이어서다. 이 해전은 6·25전쟁 최초의 해전이자 첫 승전(勝戰)이었다.
당시 최영섭 대령은 백두산함의 갑판사관 겸 항해사·포술사였다. 제2함대 소속이었던 ‘백두산함’은 대한민국 해군이 보유한 유일한 전투함이었다. 이 해전에서 ‘백두산함’은 부산 동북쪽 해상에서 무장 병력 600여 명을 태우고 남쪽으로 내려오는 1000t급 북한군 무장 수송선을 5시간에 걸친 추격과 교전 끝에 격침시켰다. 이 전투의 승리로 6·25전쟁 초기 북한군의 후방 공격을 차단할 수 있었다. 이후 179만명의 유엔군과 막대한 양의 전쟁 물자가 부산항을 통해 무사히 들어올 수 있었고, 이는 6·25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원동력이 됐다.
당초 최영섭 대령은 “공직자의 직무(職務)를 수행하는 아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지 않다”는 이유로 만남을 완곡히 사양했었다. 최영섭 대령에게 취지를 설명하고, 설득한 끝에서야 경기도 일산의 자택에서 마주할 수 있었다.
어느 아버지라도 아들에 대해 속속들이 이야기한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더구나 ‘칼날 위에 서 있는’ 최재형 감사원장의 부친(父親) 아니던가. 최영섭 대령은 “정치적인 이야기는 일절 하지 말자”며 최재형 원장의 유년 시절 일화에 한해서만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동교동에서 마장동까지 왕복 4시간 통학
“재형이 출생지가 경남 진해로 돼 있지만, 사실 거긴 두어 달밖에 안 살았어요. 재형이가 태어나던 해인 1956년 10월인가 11월, 제가 서울에 있는 해군본부로 발령이 났어요. 그전에는 경남 진해에서 관사(館舍) 생활을 했는데, 서울에는 집이 없었어요. 그래서 살 집을 구하러 다녔죠. 그때 찾아간 게 창덕궁 부근 종로구 와룡동에 있던 어느 기와집이었어요. 집에 들어가니까 문 왼쪽에 머슴방이 월세로 나와 있었어요. 한 세 평쯤 되는 그 방을 얻었어요. 재형이가 9월 2일 태어났으니까 태어난 지 두어 달밖에 안 된 거죠. 그 핏덩어리만 서울로 데리고 올라와, 그 머슴방에서 한동안 둘이 같이 살았죠. 큰아들하고 아내는 어머니랑 진해에 있었고요.”
와룡동 단칸방에서 살던 최영섭-최재형 부자(父子)는 회현동을 거쳐 동교동으로 이사했다. 그 사이 최영섭 대령은 전역을 했고, 진해에 있던 가족들도 서울로 올라와 함께 살게 됐다. 일가(一家)가 동교동에 정착했을 무렵, 최재형 원장은 한영중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한영중학교는 현재 서울 강동구 고덕동에 있지만, 당시는 성동구 마장동에 있었다. 동교동에서 마장동은 서울 서쪽에서 동쪽으로 가로질러 가야 한다. 최영섭 대령은 “당시는 교통도 좋지 않아 재형이가 통학하는 데에만 왕복 4시간 정도 걸렸다”고 말했다.
글 : 최우석 월간조선 기자
글 : 조성호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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