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November 27, 2012

"오빠는 강남 스타일" 그속에 무엇이 있길래?

눈에 뵈는것은 빈공간에 멀리 아스라이 나이아가라쪽의 건물들이 희미한 언덕처럼 보일뿐이고, 그앞쪽으로는 바다와 같이 넓은 온타리오 호수가 보이고, 더 가까이에는 하얀깃털의 옷을 입고 있는 수십마리의 백조(Swans)들이 떼지어 먹이를 찾아 유영하는 모습들 뿐이다. 

굴뚝 세대를 살아온 나에게는, 서울태생의 PSY라는 예명을 사용하는 한청년이 어설픈 말춤을 추어댄게, 눈에는 보이지도 않고, 귀에는 들리지도 않는 Cyber세계를 통해서, 전세계의 이시대를 살아가는 젊은들에게 최고의 인기를 누려, You Tube의 조회숫자가 7억번을 넘어, 조회수 1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그뉴스에, 실감이 피부에 와 닿지를 않는다.  단서가 붙어 있어 더 머리를 어지럽게 한다.  지금까지 조회수 1위를 유지 했던 Bieber의 기록은 약 4년간 모아진 숫자인데반해, PSY의 기록은 불과 4개월만이라고 하니, 눈에 귀에는 전연 그존재감을 느끼지 못하는 전파의 위력이 이렇게 전세계를 시공을 초월하여, 인간들을 지배하고(?)있음에, 놀랍기도하지만, 눈으로 보고 만져 보아야만 확인이되는 시대를 살아온 나에게는 의문투성이로 남을 뿐이다.

CP 24 채널에서는 며칠동안이나, 아침시사 거리를 전해주는 남녀 Anchor가 PSY가 추어댄 그말춤을 거침없이, 어설프게 추어대는게 웃음이 저절로 터져 나오게한다.  그속에 젊은 세대들이 빠져들게 하는 마력이 깊이 박혀 있음을 어렴푸시 터득할것 같다.
전세계의 뉴스를 실시간으로 내보내는 CNN에서 까지 PSY의 말춤을 뉴스거리로 내보냈으니
그영향력은 과히 설명이 필요없는것 같다.  미국의 대통령도 CNN에 출연하기위해서는 섭외를 해야 할 정도로 스케줄이 꽉 짜여 있는 CNN방송인데.....

컴퓨터라는 괴물이 세상에 나타나 요즘의 젊은이들에게는 없어서는 안될 필수가 되기 시작한것은 불과 1/4반세기 정도라고 생각된다.  지금은 30중반의 청년기를 살아가고 있는 아들이 국민학교 다닐때 처음 컴퓨터를 사주고, 그가 신기해 하면서 매달리는것을 옆에서 본 기억이 있다.  중학교를 다닐때는 Contest에 학교 대표로 나가 Award 도 획득했던 기억도 있다.
지금은 그아이가 컴퓨터 대학을 졸업하고, 그것으로 생업을 유지해 가고 있다.

아들 아이가 기술적으로는 그런 분야에서 일하고 있는 수많은 사람중의 하나지만,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Entertainer나 심지어 종교적 지도자들마져도 컴퓨터라는 전파미디어를 활용하여 그들의 아성을 구축해 간다.   유명한 가수나 Entertainer들이 컴퓨터를 이용한 cyber세계의 Technology를 개발하는 기술자들에게 자기네들의 존재를 세상에 알려 달라고 요구했다는 소리는 들어본 기억이 없다.  컴퓨터라는 Gadget을 이용하면 그안에 모든것이 들어 있어, 자연적으로 이세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게 information이 공유하게되기 때문인것같다.

PSY의 "오빠는 강남스타일" 짧막한 맨트와 말춤은 정교한 춤의 기술도 필요없어 보인다.  그져 사지가 멀쩡한 사람이라면 금방 모방하여 손을 흔들고 발을 조금 구부리고 흔들어 대는 대충 그런 형상의 Performance이다.   그런데도 굴뚝세대들이 그것을 따라 하면 뭔가 앞뒤가 맞지않아 보인다.  마치 구두신고 갓을 쓴것 처럼 말이다. 

영웅 호걸은 시대와 장소를 잘 만나야 한다고들 애기한다.  맞는말같다.
PSY가 30년전에 나타나서 말춤을 췄었다면, 그는 정신나간 미친놈쯤으로 사람들로 부터 외면당하고, 전파를 탄다는것은 상상도 할수 없었을 것이다.  그는 지금 전세계를 무대로 바삐 팔려 다니고 있다고 한다.  이곳 토론토에도 벌써 두어번 다녀 갔다고 한다.  그가 토론토에 나타난다고 한 그날은 전 시내가 열광을 했고, 컴퓨터속의 세상은 물론이고, 지상파 미디아, 언론들도 도배를 하다시피 했었다.  신기하게도 군중속에서 굴뚝세대를 찾아 보기는 하늘의 별따기 만큼이다 드물었었다.   지금 세대에서는 그가 영웅이지만, 굴뚝세대에서는 한갓 형편없는 망나니 춤쟁이쯤으로 여겨질 뿐이다.   고개만 갸우뚱 해질 뿐이다.

다시 1/4반세기가 지난후의 세대를 생각해 본다.  그때는 뭐가 나타나서 오늘날의 젊은 세대들이 열광하고, 단 한시간도 몸에서 떼어놓고는 삶의 존재가치를 잃어버리는  컴퓨터 세대들이 굴뚝세대들을 이해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멀뚱하게 처다보는것처럼, 그들 자신들도 대열에서 열외로 취급을 받지 않을까?라는 망상도 해본다.   그렇게 사회적 현상을 만들어 가는 그존재의 힘을 무엇이 될까?  상상만 해도 두렵다.  자식들을 통해 세상에 태어날 먼훗날의 나의 핏줄이나 흔적들이, 지금 그런 상상을 하고 있는 "나"라는 조상(?)에 대해 참멀리도 본 분이다, 아니면 생각이 겨우 그정도뿐인 그분이 나의 조상중의 하나였음을 챙패해 할까? 암튼 6개월이 멀다하고 바뀌는 요즘의 컴퓨터 Technology는 나에게는 이해못할 그리고 설명이 안되는, 어쩌면 PSY만이 알고 있을수 있는 마력이 있음에는 공감이 일부 간다.

세상사람들의 삶의 패턴이, 굴뚝 세대에게는 극히 비정상으로 보이는 존재가치가, Cyber시대를 살아가는 요즘의 세대들에게는 극히 정상이고 또 그것을 갈구하고 있는 세태이다.
교통사고도 전에 비해 무척 많이 나는것 같다.  그속의 주인공들은 대부분 젊은 세대들이다.
이또한 Cyber Generation과 연관이 있지는않을까?라고 Link시켜 본다.  그럴것같이 느껴진다.

동방의 조그만 반도, 대한민국의 한 젊은 청년, PSY가 전세계를 뒤흔들고 있다.  전세계의 미치광이(?) 젊은이들이 열광이고 PSY속에서 헤여나지를 못하고 있다. 당분간은 지속될 그의인기는 돈으로 연결되는것 같다.  조국 대한민국의 존재가치를 그만큼 세상에 알려준 인물이 일찌기 조선반도에는 없었다.  거기까지는 알겠는데, 그뒤의 깊은 내면에 숨겨져 있거나 존재하고 있는 천문학적인 마력은 아리송할 뿐이다.   장하다 어쨋던.

https://www.youtube.com/watch?v=Ixsn81SqU6E

https://www.youtube.com/watch?v=9bZkp7q19f0&feature=player_detailpage




Thursday, November 15, 2012

Canada Arm 31주년 기념로고 Google 웹에 표시-캐나다의 상징

오늘은 2012년 11월 13일,  31년전 오늘 Canada Arm이 미국우주선 Columbia호에 장착되여 우주속에서 작업을 시작하게된 날이다.  오늘의 뜻깊은 날을 기념하기위해 Google.ca 에서는
Google의 Icon에 우주인이 유영하는 모습을 Google표시에서 L과 E의 글자모양으로 새로 디자인해서 웹에 올린것이다.  아이디어도 기발하다.

Google회사의 도안 책임자 Ryan Germick씨의 설명에 의하면, 이러한 구상은 몇달전에 캐나다의 사무실에 근무하는 직원들로 부터 나왔었다고 하며, 이러한 구상은 수를 셀수도 없이 많이 발표되는데, 이중에서 약 300개 정도가 금년말까지 선정될 것이라고 했다.

오늘 구글 웹에 올려진 Canadarm은 많은 시간을 들여 디자인 한끝에 완성된 작품이라고 한다.

구글의 정신에 맞게 그려지는 도안들은 매우 흥미있는 일로 Celebrating의 의미를 함축하고 있으며,  구글 사용자들에게도 굉장히 흥미를 주게될것으로 생각하고있다고 전했다.

Canadarm의 길이는 15미터이며 직결이 33센티미터, 무게는 약 410 킬로그람쯤 되는 거대한 로봇팔의 역활은 무척 많은데, 우주에 떠돌아 다니는 인공위성의 궤도를 이동 시키기도하고  우주인들이 우주선에서 나와 우주공간에서 활동할때 그들을 도와주는 일을 한다.

Canadarm의 마지막 비행은 우주선 Endeavour호에 실려 6월 1일 비행을 마지막으로 은퇴 하게된다고 한다.

우주탐사 연구에 사용되고 있는 우주선에서 핵심부품으로 이용되고 있는 Robot Arm은 캐나다의 미시사가에 있는 한 연구소의 작품이다.  미우주센터에서 필요로한 Robot Arm을 제작하여 납품하여, 우주선에 탑재하여 사용된지가 벌써 31년전이라고 하니..... 캐나다는 과연 우주탐사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기여도가 높다고 하겠다.   캐나다의 긍지이기도 하다.

이회사는 미시사가에 소재 하고 있는것으로 알고 있다.   중소기업으로 고부가 가치의 고도의 기술이  집약된 장비를 제작하는데, 우주선과 같은 집약된 기술을 자랑하고 있다고 한다.

캐나다는 지하자원을 주로 수출하고 있는 나라로 알려져 있으나,  그것은 캐나다를 잘 모르는 사람들의 소리인것 으로 알아야 한다. 우주선에 사용되는 Robot Arm과 원자력 캔두제작에는 세계적으로 명성이 높아,한국에서도 캐나다산 캔두를 구입하여 활용하고 있는것으로 알고 있다.  

사이버 세상에서 Google이 차지하고 있는 비중은 첫번째 이상으로 알려져 있고, 지구촌의 많은 사람들이 그들이 개발한 soft ware를 활용하고 있어, 그들의 일거수 일투족은 세상을 움직이는 힘센 나라의 대통령보다 훨씬 impact가 크다고 할수 있다.  그런 회사가 구글의 상징인 Google 웹싸이트의 아이콘에 Robot Arm을 특유의 모습으로 디자인 하여 올린것은 Robot Arm의 역활이 그만큼 컷었다는 뜻일것이다.   Robot Arm은 자랑스러운 캐나다의 상징이다.


http://www.montrealgazette.com/technology/all/Google+celebrates+Canadarm+space+innovation+with+doodle/7538936/story.html

Saturday, November 10, 2012

Remembrance Day Ceremony 행사를 치르면서

http://youtu.be/hGosy7w8zXQ

장래의 꿈나무들로 구성된 Hickory Wood초등학교 학생들로 구성된 합창단이 기교없이 있는그대로 부르는 애국가와 O Canada가 오늘 따라 귀에 짠하다.   초겨울을 앞당기는 쌀쌀한 날씨는 어렵게 참석한 참전용사분들에게는 달갑지 않은 불청객이자 크게 짐이 되고 있음을 느끼고  피할수없는 현실임을 보면서 괜히 마음이 가라앉는다.

오늘은 캐나다 현충일( Remembrance Day)추념식이 Brampton소재 Meadowvale Cemetery에서 오전 11시에, KVA 캐나다 향군 Unit 23 주관으로 캐나다측 향군, 향군캐나다 동부지회원, 그리고 관련단체들과 우리 한인사회에서도 총영사를 포함한 많은 분들이 참석하여, 조국을 지키다 산화하신 전우들의 희생을 기리는 조촐한 행사가 있었던 날이다.

















캐나다는 6/25전쟁당시, 유엔 참전국의 일원으로 군대를 파견하여 풍전등화앞의 조국 대한민국을 공산침략자들로 부터 방어 하는데 앞장섯던 나라들중의 하나인 동맹국이다.  해마다 뜻있는 사람들이 모여서 그분들의 희생으로 우리가 지금처럼 경제적으로 풍부하고, 자유스럽게 살수 있게됨을  보고 드리고, 감사 드리고 또 오랜만에 만난 옛 전우들과 해후를 하는 날이기도 하다.

추념사를 하신 여러분들중에서, 총영사님은 한국정부를 대신하여 또 다시 이행사에 참석하여, 한국전 참전에서 산화하신 516분의 위패가 모셔져 있는 위령의 벽( Wall of Remembrance)앞에서 여러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할수 있는 기회를 주어 고맙게 생각한다. 내년에는 한-카 수교 5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한 해이기도 하다.  양국의 관계는 계속 돈독해 질것이다. 추운날씨에도 참석해준 Hickory 초등학생들과 선생님에게, 오늘 이행사에 참석하신 향군회원님들께 감사 드린다라는 요지의 추념사에 이어, 온타리오주 캐나다향군 회장 Terry씨는 한국전을 비롯하여 세계 1차대전, 2차대전에 참가하신 전우들께 이자리를 빌어 감사하고 산화하신분들께 명복을 빈다라는 추념의 뜻을 기렸고, 특히 고운목소리로 합창을 해준 어린 꿈나무들의 Back Ground는 다 달라도  그들을 낳아준 부모님들은 전쟁에 음으로 양으로 연결되여 희생을 당한 분들도 계시리라 믿으며, 어린 학생들이 추념식에 참석하여 그뜻을 기리고 산교육을 받는것이 대단히 자랑스럽다는 요지의 추념사가 있었다.

브람튼 시장, Susan Funnell여사는, 한국전참전용사분들의 희생을 기리기위해 이곳에 왔습니다. 향군회원님들께 감사 드린다라는 요지의 추념사도 귀를 짠하게 했다.

오랫만에 참석한 모두가 한음성으로 읊어대는 주기도문도 오늘은 가슴에 와 닿는게 다르게 느껴졌다.  희생하신분들이 계셨기에 주기도문을 자랑스러움과 존경하는 마음으로 합창했다.

Our Father which art in heaven,
Hallowed be thy name.  Thy kingdom come.
Thy will be done in earth, as it is in heaven.
Give us this day our daily bread.
And forgive those who trespasses,
as we forgive those who trespass against us.
And lead us not into temptation, but deliver us from evil:
For thine is the kingdom, and the power, and the glory for ever.  Amen.

또 희생하신 전우들에 대한 Act of Remembrance를 사회자가 선창으로 읽었다.

They shall grow not old,
As we that are left grow old,
Age shall not weary them,
At the going down of the sun,
And in the morning,
We will remember them

참석한 전우들과 일반 시민들은 다음과 같이 크게 합장으로 끝을 맺었다.

We will remember them.

Hickory Wood초등학교 학생들이 마지막으로  우리의 고향이자, 향수요, 우리 한국인들만이 느낄수 있고 이해할수있는 한의 뜻이 담긴 "아리랑"합창은 추념식에 참석하고 있다는 생각을 잠시 떠나서, 서럽고 때로는 고달펐던 살아온 인생살이의 Path를 기억속에서 끄집어 내서 다시한번 생각케 하는 순간을 만들어 주고도 남았었다.

내자신이 70 고개를 눈앞에 두고 있는 초로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현실에 깜짝 놀라기도
했다.  마음은 아직도 코흘리개에 한쪽의 바지가랑이는 절반쯤 걷어 올린채 다 떨어진 고무신짝을 겨우 발에 걸치고, 동네 뒷동산에서 죽마고우들과 세상돌아가는것과는 상관없이, 아니 생각해볼 필요도없이, 얽히고 설켜 딩구는것이 최상인것으로 알고 살았던 그때의 기억들이
아직도 생생한데.......그렇게 마음편하게 즐길수 있었던 그뒤에는 어른들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것을 까맣게 모른채 말이다.   오늘 그러한 기억을 다시 더듬으면서, 전우들의 희생이 절대 돈으로 계산될수 없는 무한의 감사와 가치임을 가슴속에 깊이 새긴다.
할수만 있다면 매년 추념식에 참석하여 행여나 해이해지려는 마음을 다시 가다듬고, 희생과 감사와 보은의 뜻을 추스려야 겠다. 감사.

 

Thursday, November 08, 2012

대한민국 영토 울릉도와 독도 관광

대한민국 영토 울릉도와 독도 방문. 11월 11일,2012년.

 







 
묵호항에 도착 했을때는 이른 아침이었다. 울릉도행 Jet Boat가 정박해 있는 선착장에는 숫자를 셀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관광버스들이 싣고온 손님들을 토해 내고 있었다 내가 타고간 뻐스도 그대열에 끼었다.  서울의 심장부, 그것도 시청앞에서 묵호행 뻐쓰에 오른시간은 새벽 4시경이었고 묵호항 선착장에 도착한 시간은 8시가 조금 넘었었다.






































통통선 정도 될것으로 머리속에 그렸던 나의 상상을 초월하여 여객선은 밑부분의 중심에 있어야 할 Keel이 배몸통의 양쪽에 있고, 가운데는 마치 멀리서 보았을때는 Tunnel처럼 텅 비어 있는, 매우 큰 여객선이었다.  선채는 Navy Blue색갈을 하고  그위에 "Sunflower2"라고 아주 크게 배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이번 여행의 Leader인 숙자양(?)의 인솔로 각자 소지한 승선권을 제출하고 줄을 서서 Check-in을 마치고 다시 선착장으로 나와 배에 오를 때는 마치 전쟁터로 파병되는 장병들이 된 기분으로 배에 연결된 Ramp위를 걸어 안으로 걸었다.
광장처럼 넓은 선실은 깨끗하게 정리된 의자에 TV도 오락 프로그람을 보여 주고 있었다. 같이 간 4 Couple친구들중에서 우리 부부만 빼고 배멀미 약을 먹는등 수선이다. 

끝도없이 펼쳐져 있는 대양의 파란물을 헤치고 Sun Flower2는 듣던데로 쾌속정이다.  그렇타고 해서 자동차처럼 빨리 달린다고 생각하는것은 오산이다. 시속 약 50-60키로의 속도로 달린다. 바다에서의 속도로는 쾌속정이다. Rolling도 방정맞게 하지 않고 큰배 답게 묵직하게 좌우로 흔들린다. 앞뒤로 Rolling 하지않고 좌우로 흔들렸기에 우리 부부는 무사했지만, 멀미약을 먹은 친지들은 얼굴색이 조금씩은 이그러지는 고통을 보인다.

울릉도 도동항에 도착했을때는 3시간30분 정도를 달려서 였다. 묵호에서 이곳까지의 거리는 약 160키로가 조금 넘는다고 했다. 도동항은 너무나 초라하고 조그맣다. 위치적으로 더 확장 할수도 없어 보인다.  묵호항, 강릉항, 포항등지의 내륙 항구에서 이곳에 모여드는 관광객들로 도동항은 북새통이다.
수백명이 넘는 관광객들이 도동항앞의 promenade에 방금 배에서 토해낸 우리구룹을 포함한 관광객들을 모아놓고, 무척이나 억세게 생긴 아가씨가 휴대용 마이크에 대고 구룹별로 점심을 먹이기위해 식당을 배정해 주느라 악을 쓰고, 우리는 그앞에서 귀를 기울였다.  설명을 들으면서 잠깐 둘러본 도동항의 뒷면은 가파른 산새다. 그뒤로 끝없이 오른다면 울릉도에서 최고로 높은 성인봉일 것이다.

식당에는 벌써 많은 관광객으로 꽉차서 자리가 없었다. 그러나 다른 선택은 없다. 우리구룹은 이식당에 배정됐기 때문이다.  겨우 비집고 자리를 잡았을때는, 피곤해 보이는 청년이 퉁명스럽게 "전부 8명 맞죠?",  "네 맞아요"   서비스를 받는게 아니라 짐짝 취급도 이럴수가 없을 정도로, 이곳이 울릉도라는 인식을 그렇게 심어줬다.  반찬을 미리 담아둔 큰 쟁반을 들고와 테이블위에 던지듯 내려 놓는다.  여기서 써비스가 있네, 없네 기대를 하는것 자체가 무리이다.

갑자기 토론토에서 살고 있는, 우리부부보다 젊은 couple이 생각난다.  여자분이 울릉도 출신인데,  이럴줄 알았더라면 그친지분의 가족들을 만나볼수 있도록 미리 연락처를 받아왔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일어난다.  토론토에서 왔다라고 하면 무척 좋아 할텐데.....소식도 전해주고....

"오징어가 풍년이면 시집가요"라는 오래전 유행가 구절이 문득 생각난다.  노래 가사와 같은 울릉도 광경은 이제는 역사속으로 거의 사라진, 그러나 경제 철학 즉 돈의 위력을 울릉도민들은 즐기고 있는것을 본다.  지금은 약초뿌리인 '더덕'을 대량으로 재배하여 관광객들을 상대로 값도 비싸게 팔아, 부업으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었다.  더덕은 약 50여년전에 전방에서 군생활할때 산속에서 운좋게 만나서 캐먹곤 했던, 그런향은 없고, 씹어도 푸석푸석하다.  어떤이는 육지의 농장에서 재배하여 꺼꾸로 이곳으로 보내서, 마치 울릉도산인것 처럼 관광객을 상대로 팔고 있다고 푸념을 하는것을 들었지만, 그말에는 신빙성이 없어 보였다.

울릉도섬해안가를 360도 연결하는 도로가 뚫리지않았음을 알았다.  약 4/5정도는 그런데로 자동차들이 달릴수있었으나, 나머지구간은 지형적으로 길을 만들수 없어서 였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Trail Walk이 해변가를 따라서 형성되여 있다.  우리일행도 관광객들 틈에 끼어 앞서거니 뒷서거니 그위를 걸어서 주위경관을 살피지만, 가슴이 확 트인다는 느낌보다는 꽉 막힌 산새가 정을 주고 싶은 마음이 엷어지게 한다.

주위의 경관이 아름다워 좀 Relax하고 싶은 곳에는 유락시설이 자리잡고 있어, 피곤하게 한다.
좁은길에는 차량과 사람들이 엉크러져 딩군다.  문명의 이기라고하는 자동차가 있어 편리함은 알지만, 꼭 자가용이 이곳에서 왜 필요해서 길위를 기어다니고 있을까?라는 생각을 해보면, 이곳역시, 네가 타고다니는데 나라고 못할소냐?라는 이웃과의 경쟁심리가  본토에서 처럼 작용하고 있음을 느꼈다.  자동차는 시간을 절약하기위해 빨리달려야 제맛인데,  이곳에서 굴러다니는 차량들은 팔자가 되게 드센 신세를 한탄할것만 같은 상상이 끝이지 않는다.

이튿날 새벽에 독도관광을 떠나게된다고 기대들이 대단하다.   약속시간이 지나도 연락이 없다.  우리가 묶은 팬션의 창문을 통해 도동항의 모습은 평온해 보인다.   왜 연락이 없을까?  친구리더가 나타나 독도관광은 무산댔다고 전한다.  대신에 아침을 먹으러 정해진 식당으로 가자는 전갈이다.   도동항은 물결도 잔잔하고 경관도 좋아 사진도 몇장 찰칵하기까지 하면서  당연히 독도행 고속정을 탈것으로 기대가 컷었는데........  독도근처에는 바람이 세고 풍랑이 새게 불어 cancel됐다는 것이다.   가는날이 장날이라고....
'독도'는 바위섬이라고 한다.  울릉도 동편에 위치해있는 조그만 섬으로만 알고, 별관심이 없이 학교다닐때 배웠던 기억뿐이었었다.   세상이 발달하고, 해양자원에대한 각국의 관심이 깊어지면서,  hot spot으로 떠오른, 사람이 거주할수도 없는 돌덩이섬이,  한일간의 역사적 미묘한 감정때문에 고국사람들의 관심을 끌어 들인것으로 본다.  서울시내의 뻐스들, 특히 관광뻐스들의 앞쪽에는 "독도는 우리땅"이라는 구호가 마지 군인들이 Uniform을 입고 행진하는것 처럼 다 새겨져 있다.  만약에 독도때문에 한일간에 군사적 충돌이 벌어진다면, 구호를 외쳐 대는것 처럼 국민들이 앞장서서 방어에 참여할까? 라는 생각을 잠시 해봤다. 관광객이 운좋게 독도에 왔을때의 체류시간은 고작 30분이라고 했다.  배에서 늦게 내린분은 불과 10여분 정도 여유밖에 없다고 한다.  그이유는 잘 모르겠다.  구경꾼이 많아서인지? 아니면 또다른 이유가 있는지?

울릉도에는 미니관광뻐스들이 구룹별로 관광객들을 싣고 육로관광을 시킨다. 물론 운전사분들이 관광 설명도 곁들이는, 육지에서는 없는 그들만의 방법을 이용한다.   뻐스운전사들중에서 여자운전사는 꼭 한분이라고 한다.  운좋게(?)그분이 우리구룹을 맡아 운전을 하면서 관광시켜줬다.  본인은 아직 '처녀'라고 하는데..... 재채있게 관광 설명을 잘해주어 친해지게 되니까 말투가 거칠어져 거침없이 밀도짙은 농담도 잘해주었다.  분명히 처녀라고 했었는데....경험을 하지 않고는 알수없는 농담을 구성지게 하는 그녀를 보면서 꼭 울릉도에 맞는 관광뻐스 운전사로구나 라고 그녀를 마음속으로 부터 격려해 주었다.

서동항에서 "예림원"을 방문했다. 어느 독지가가 사재 50억을 들려 조성한 자연공원이라고 하는데, 아주 잘 가꾸어 놓아 구경꾼들에게 사랑을 많이 받고 있었다.  옛정취를 약간 느낄수도 있었다.  정자도 있어 그곳에서 구경하느라 지친 심신을 쉬면서, 내려다 보는 풍광도 일품이다.
 

섬주위를 도는 관광선을 탔다.  많은 관광객들이 우리와 같은 신세가되여 승선한다.
배에서 올려다본 울릉도는 척박한 땅임을 알수있다.  요즘처럼 교통이 활발하지 않았을때는 무척 어렵게 삶을 살았으리라는 상상을 하는것은 어렵지 않다.  바닷갈매기들이 배의속도만큼  배 갑판위를 달린다.  새우깡을, 건빵을 기타 과자류들을 갈매기에게 던져주면 물위에 채 떨어지기도 전에 쏜살깥이 달려와 나꿔채기도 하는 그모습이 신기롭기만 하다.  나도 저갈매기처럼 날을수 있다면...... 울릉도의 지붕 '성인봉'을 발아래 두고 내려다 볼수 있었을텐데.

'죽도'는 지금은 40대 후반의 남자 혼자서 살면서 더덕재배로 경제적으로는 풍부한 삶을 누리고 있다고 한다.   유람선에서 바라본 죽도는 몸통이 3/4쯤 물위에 떠있는 사각형의 상자처럼 보인다. 사람들의 접근이 그만큼 어렵다는 얘기도 된다.  인공으로 만들어 놓은 사다리를 이용하여 섬위로 오른다고 한다.  멀리 아스라히 사다리가 보인다.
원래는 한부부가 아들하나 낳아서 이섬에 살았다고 한다.  이들 부부중 아내가 눈이 잘 안보이는 어려움속에서 밭을 가꾸어 삶을 살아가는데, 하루는 밭일을 하면서 섬끝까지 자신도 모르게 호미질 하다가 바다물이 넘실거리는 낭떠러지로 떨어져 생을 마감했다고한다.  아버지도 그후 생을 마감하고, 이제는 성장한 아들이 버섯재배에 눈을 돌려 오늘에 이르렀다고 한다.

유람선의 방송에서 멀리 코끼리가 바다에 떠 있다라고 Announcement를 한다.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꼭 코끼리같은 돌섬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두툼한 다리와 Trunk가 영락없는 코끼리다.  수만년 비바람에 시달리고 깍여서 저모습을 드러냈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우리 인생의 삶은 순간적으로 흘러 지나치는 점,획에도 못미치는 존재처럼 느껴진다.

독도가 울릉도 주민들에게 효자노릇을 톡톡히 하고있다.  돌섬 독도에 대한 관심을 갖게 해준 한국과 일본의 역활에 울릉도민들은 감사(?)해야할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전세계가 불황에 허덕이고,  못살겠다고 아우성인데, 이곳 울릉도만은 불황을 모르는 경제특구가 되여 있음이 확실하다.  한국의 현정부의 경제정책을 눈만 뜨면 비난해 대는 국민들이 정말로 살기 어려워서 정부를 비난하는것일까라는 상상은 여기서는 통하지 않는것 같다.

발달된 조국의 덕택에 몇십년전만 해도 엄두도 못냈던, 울릉도 호박엿을 불과 3시간 조금넘게배를 타고 달려와 먹을수 있다는, 그것도 지구의 반대편에 살고 있는 나같은 사람도 이대열에 끼여 즐기고 있다는것에, 시대를 잘 타고 났다는 생각을 해야 할까?말까 고민까지 하게 해준 울릉도 여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