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식의 뉴스 저격]
이용객의 23%가 지역주민들인데… 개장 54년만에 연말 영업 중단될듯
정부는 지난 4일 '8·4 부동산 대책'에 따라 태릉골프장에 아파트를 짓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가장 오래된 군 골프장 중 하나이자 서울시 내 유일의 군 골프장이었던 태릉골프장은 1966년 최초 개장한 지
54년 만에 문을 닫게 됐다. 국방부는 대체 부지가 마련돼야 하기 때문에 아직 정확한 폐업 시기는 알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부동산 문제로 발등에 불이 떨어진 현 정부가 당장 올해 말부터 골프장 영업을 중단시킬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사관생도 국제 감각 익혀야"… 박정희 전 대통령 지시로 탄생
태릉골프장은
1966년 육군사관학교 생도의 훈련용 부지를 박정희 전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육사 전용 골프장으로 바꾸어 개장했다. "사관학교
생도들이 국제적인 감각을 익혀야 하고, 이를 위해서 골프도 반드시 알아야 한다"는 취지였다. 코스 시작점 부근엔 박 전 대통령의
친필 휘호로 새겨진 '나라와 함께 겨레와 함께'라는 표석이 있다. 박 전 대통령은 골프장 개장식 때 직접 시타를 하기도 했다.
처음 조성 땐 예산 절감을 위해 전국 군부대의 공병들이 공사를 맡았다. 이 때문에 홀마다 육군 부대 마크가 새겨진 이미지가 있다.
작년 한 해 골프장 이용객은 9만3210명이었다. 태릉골프장은 서울 유일의 군 골프장이기 때문에 고위급 장성용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지난 5년간(2016~ 2020) 골프장 이용객 중 장성의 비율은 7%에 그쳤다. 영관·위관급(33%)이 주요 이용자였고 이용객의 23%는 지역주민들이었다.
◇태릉 애용했던 박정희·노무현 전 대통령
태릉골프장 건설을 지시한 박 전 대통령이 골프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건 1960년대 중반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수립 이후 자주 해외 순방을 하면서부터다. 해외 정상들과 골프를 하면서 골프의 필요성을 깨달았다고 한다. 1971년 베트남 파병 부대의 철수를 두고 박 전 대통령과 스피로 애그뉴 미국 부통령이 태릉골프장에서 회동하기도 했다. 골프 코스 중에는 '대통령 홀'로 불리는 곳이 있는데 박 전 대통령과 관련된 것으로 알려졌다. 박 전 대통령이 친 공이 오른쪽으로 심하게 휘는 경우가 많아 페어웨이를 기형적으로 오른쪽으로 넓게 만들었다는 후문이다.
◇반발하던 軍, 대통령 지시에 침묵… 내부는 '부글'
국방부는 지난달 16일 여권에서 태릉골프장 개발 얘기가 나오자 "논의된 바
없다"고 일축했다. 하지만 정부·여당이 이번처럼 속전속결식으로 태릉골프장 개발을 추진할지는 예상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태릉골프장은 지난 2018~ 2019년 클럽하우스 리모델링 공사를 했다. 올해 5~6월엔 페어웨이 정비 작업도 했다.
국방부는
지난달 20일 문재인 대통령이 태릉골프장을 특정해 언급하자 "국가 정책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공공주택 공급 물량 확대 필요성 및
시급성과 군인 복지에 미치는 영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논의해 나갈 예정"이라고 물러섰다. 그리고 곧바로 대체부지를 마련하겠다고
했다. 과거 미군이 사용했던 경기 성남골프장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성남골프장은 미군이 수도권에서 사용했던 골프장으로 미군기지가
이전되면서 폐쇄 상태다. 서울과 가깝고 유사시 군 작전 기지로 활용하기에도 적합하다는 평가다. 군 골프장은 전시 집결지나 기지
등으로 사용된다.
하지만 군에서는 태릉골프장 폐쇄에 대한 반발이 거세다. 예비역 장성 단체인 성우회는 입장문을 내고
"태릉 일대와 화랑대(육사)는 분리될 수 없는 한 몸과 같다"며 "화랑대는 국군이 태동된 성지이며 군의 정신적 요람 그 자체"라고
했다. 또 "태릉 일대와 화랑대는 역사적 가치와 국가 전략적 가치가 매우 높은 중요한 지역으로 아파트 몇 채와 바꿔서도 안 되고
훼손돼서도 안 된다"며 "태릉골프장은 전시에는 군의 후방전력과 전쟁지속물자의 전방 전개를 위한 지역이며 지상군의 동맥과도 같은
곳"이라고 했다. 일부 군 관계자는 "태릉골프장에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면 육사 시설 등에 보안 유출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했다.
성우회는 태릉골프장 개발과 관련해 국무총리 면담을 요구했지만 "국회 업무와 공무로 직접 면담은 어렵다"는
공문만 받았다고 밝혔다. 군 내부에선 최근 코로나 추가경정예산 편성 때문에 3조원 가까운 예산을 삭감당하는 등 일방적인 희생만
강요당하고 있다며 부글부글하는 분위기다.
태릉골프장 개발이 바로 옆에 있는 육사 이전을 위한 사전 작업이라는 관측도
나왔다. 미래통합당 외교안보특별위원회 소속 한기호 의원은 "태릉골프장 아파트 건립은 결국 육사를 이전시키려는 정치적 의도가 짙어
보인다"며 "또다시 만만한 군만 건드려 일을 해결하려는 시도를 당장 중단하길 촉구한다"고 했다. 반발이 거세지자 정부는 개발
지역을 태릉골프장으로만 한정하며 육사 이전엔 선을 그었다.
[태릉골프장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
노원구청장 "베드타운 우려" 저밀도개발 요구
주민들도 "1만가구 들어서면 교통지옥 될 것"
정부가 1만가구 규모 아파트를 짓겠다고 발표한 태릉골프장은 '8·4 부동산
대책'에 포함된 13만2000가구 규모 주택 공급 계획 중 가장 실현 가능성이 높아 빠르게 추진될 것으로 전망된다. 국가 소유이기
때문에 그린벨트(개발제한구역)를 해제하고 땅 용도만 주거지역으로 바꾸면 기본 준비는 끝난다. 교통영향평가 등 행정절차도
일사천리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국토교통부는 내년 말 입주자 사전(事前) 청약을 받는다는 방침이다. 군 골프장이 50여년 만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로 바뀌는 것이다.
사업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나 서울주택도시공사(SH)가 맡을 전망이다. 일각에서 '공공임대주택만 짓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지만, 65%는 분양하고 35%는 임대주택으로 활용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태릉골프장 개발을 두고 지역 주민들과 정치인들은 반발하고 있다. 오승록 노원구청장은 대책 발표 당일 문재인 대통령에게 보낸
서한을 통해 "1만가구를 지을 경우 노원구의 베드타운화가 심화될 것이 우려된다"며 저밀도 개발을 요구했다. 태릉 주민 A씨는
"태릉은 각종 간선도로가 만나는 곳이어서 지금도 교통 혼잡이 심한데 아파트를 더 지으면 그야말로 교통 지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주민은 "태릉골프장도 그린벨트인데 강남 그린벨트는 지키면서 노원구에 그나마 하나 있는 대 규모 녹지를 개발하는 걸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반면
태릉과 맞닿은 구리시 갈매지구 주민들은 대체로 환영하고 있다. 한 주민은 "신도시급 아파트 단지가 생기면 상권도 활발해지면서
지역 가치가 올라갈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 관계자는 "4000억원을 들여 광역교통망을 만들고 전체 단지의 30% 이상을
공원·녹지로 조성, 생활 만족도를 높일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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