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 기자님의 글은 매우 완곡하게 표현해서, 내가 그부분에 대한 중국정부의 관보를 보고 아래에 그일부를 옮겨 왔다. 읽어 보고, 우리 모두는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미국과 혈맹관계를 계속 맺고 살아갈것인지? 아니면 중국의 속국으로 시주석의 명령에 따라 살아가야 하는지? 문대통령의 시주석과 회담에서, 느낀점은 혈맹 미국과의 관계는 걸리적 거리는 존재로 보여질 정도로 나는 느꼈었다.
http://english.scio.gov.cn/topnews/2019-12/24/content_75544041.htm
그는(문재인 대통령) 중국과 더 심도깊은 코뮤니케이션을 강화하고 한국전쟁중(1950-1953년)에 전사한 중국군의 남아있는 유품들을 계속해서 넘겨 주겠습니다.
지난 오랜 세월 동안에 양국은 역사와 문화의 뿌리를 공유해 왔으며, 앞으로 양국은 서로 공유하는 코뮤니티도 형성하게 됩니다 라고 설명하면서, 수평적인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는데 의심의 여지가 없음을 강조하기도했다.
"한국은 주요 이슈들과 자유무역지지,그리고 지역적 그리고 국제적 사건들에 대한 상호협조와 코뮤니케이션을 강화하면서 계속 추신할것임을 강조하는 중국의 입장을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라고 문은 설명했다.
우리나라에서 ‘친일파’의 반대말은 ‘친중파’인 것 같다. “청산하지 못한 친일세력이 독재세력으로 이어졌다”며 우파=친일파로 낙인찍은 문재인 정부였다. 일본에는 의전 결례도 격하게 유감을 밝히면서 중국 앞에선 한없이 작아지는 모습이 안쓰러울 정도다.
홍콩 민주화시위와 신장 인권탄압에 대해 문 대통령이 ‘중국의 내정’이라고 말했다고 23일 중국 언론은 일제히 전했다. 보도가 맞는다면, 문재인 정부는 친중파를 넘어 종중(從中)이라고 할 판이다.
● 설마 중국의 인권탄압도 내로남불?
당연히 청와대는 부인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발언을 잘 들었다는 취지였다는 거다. 그러나 중국에 유감을 표하지도, 정정을 요구하지도 않았고 CCTV나 영문 공식 포털엔 지금도 문 대통령의 당시 발언을 영문으로 옮긴 문장("Both Hong Kong affairs and issues concerning Xinjiang are China's internal affairs," Moon said.)이 인용부호까지 붙여 걸려 있다.
홍콩과 신장의 인권 탄압은 인류 보편적 가치의 문제여서 일본을 포함한 선진국 지도자들이 시진핑에 대놓고 지적하는 이슈다. 설령 시진핑이 내정 문제라고 해도 문명국가의 지도자라면 “잘 들었다”가 아니라 인권의 중요성을 표명했어야 옳다.
일본의 결례는 우리끼리 일이다. 그러나 홍콩과 신장 문제에서 한국이 중국 편에 섰다면 국제 망신이 된다. 중국의 언론플레이에 당했대도 마찬가지다. 청와대가 여기서 내로남불 하듯 중국서도 ‘우리 편이니까 내로남불’ 아닌지 의심스럽다. 만약 일본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면 벌써 나라가 뒤집어졌다.
● 조선의 근대화, 청나라가 좌절시켰다
요즘 주류계급에서 “친일파” 외치면 욕이다. 물론 일본의 식민 지배로 겪은 수난과 고통의 역사를 잊을 순 없다. 그러나 사람들은 조선의 망국을 일본 때문으로 돌리지, 그 전에 청나라가 중화제국의 부활을 외치며 조선의 국권을 침탈한 역사는 잘 모른다.
1876년 개항 뒤 우리가 우리 힘으로 근대화에 매진할 수 있는 천금같은 시기가 있었다. 그 때 식민지 종주국보다 더한 간섭과 이권 탈취로 마지막 개혁 기회를 빼앗아선 조선을 망국으로 떠민 나라가 중국이었다.
중국몽(中國夢)이라는 구호 아래 중화제국을 부활시키겠다며 한반도 남북 전체를 장악하려 드는 시진핑을 보다 못해 이양자 동의대 명예교수가 역저를 재출간했다. ‘감국대신(監國大臣) 위안스카이’. 부제(副題)가 모든 걸 말해준다. ‘좌절한 조선의 근대와 중국의 간섭’.
● 대원군을 강제로 수레에 태운 위안스카이
“중국이나 일본보다 20년 이상 늦게 개항한 조선은 개방과 개혁 시작부터 위안스카이 등 청국 세력에 정치·군사·경제적으로 속박돼 자주적 개혁의 기회를 상실했다. 위안스카이라는 인물을 통해 당시 중국이 조선에 어떤 부정적 영향을 끼쳤는지 살펴보는 것은 오늘날의 정세와 맞물려 새로운 의미를 시사할 것이다.”
난세의 영웅(또는 간웅)으로 유명한 위안스카이(1859~1916)가 훗날 중화제국의 황제가 된 것도 젊은 날 조선에서 익힌 정치력과 권모술수 덕분이다. 청군(淸軍)이 1882년 임오군란 진압을 구실로 조선 땅을 밟을 때 그는 스물 세 살의 미관말직이었다.
군 책임자가 대원군을 본국으로 끌고 가려고 병영까지 불러놓고도 결단을 못 내리자 위안스카이는 “지체하면 변이 난다”며 덥석 대원군을 수레에 밀어 넣은 간덩어리의 소유자였다. 갑신정변 때는 본국의 승인 없이 병력을 동원해 진압하고는, 고종을 자신의 병영에 옮겨 독립당의 후환을 없앨 만큼 간교하고 치밀했다.
● 평화 외치며 무장해제 하면 다 되나
조선 종주권을 되찾은 위안스카이는 1894년 청일전쟁까지 식민지 총독처럼 군림했다. 조선과 첫 통상조약을 맺은 건 일본이지만, 아편전쟁 이래 동아시아에서 체결된 구미의 불평등조약 중에서도 유례가 없는 무자비한 조약을 강제한 나라가 중국이다. 일본과 1905년 을사늑약을 맺기 전에 우리나라는 빈사(瀕死)의 길로 들어선 형국이었다.
한 나라의 군사력은, 군 복무를 하지 않은 내가 감히 말한다면, 다른 어떤 것보다 어마어마어마하게 중요하다. 대통령이 평화를 외치기만 하면 북한 김정은이, 중국 시진핑이 천사가 될 것 같은가.
역사를 아는 우리는 1885년 위안스카이가 고종에게 “조·청(朝·淸) 양국은 존망을 같이 하는 바 조선이 만약 러시아의 침략을 받으면 청이 전력을 다해 구호할 것”이라고 올린 적간론(摘姦論) 상소를 보면 가소롭다. 청나라도, 러시아도 일본과의 전쟁에서 대패해 물러날 운명인데 누가 누구를 지켜준단 말인가.
● 위안스카이의 후예가 몰려오고 있다
이달 초 방한했던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우리 정관재계 인사들을 대거 급소집한 장면은 위안스카이의 환생 같았다. “대국이라고 소국을 깔보거나, 힘을 얻고 약자를 모욕하는 것에 반대한다”는 일장연설은 완전 내로남불이다.
http://www.donga.com/news/dobal/article/all/20191228/98993073/1
http://lifemeansgo.blogspot.com/2019/12/3.html
http://english.scio.gov.cn/topnews/2019-12/24/content_75544041.htm
그는(문재인 대통령) 중국과 더 심도깊은 코뮤니케이션을 강화하고 한국전쟁중(1950-1953년)에 전사한 중국군의 남아있는 유품들을 계속해서 넘겨 주겠습니다.
아래에 옮겨논 문대통령의 발언이 잘못 전해진것이라는 가짜 논평을 청와대는 긴급히 발표했다.
중국정부의 보도가 거짖이라는 뜻인데...그에대해 아직까지, 아니 영원히 유감의 뜻을 표하지 않을것이다.
중국정부의 보도가 거짖이라는 뜻인데...그에대해 아직까지, 아니 영원히 유감의 뜻을 표하지 않을것이다.
그는(문재인) 설명하기를 "시진핑 주석이 지대한 관심을 갖고 지켜보는 홍콩의 요즘 문제와 이슈에 대해서는 중국내부적 사건입니다"라고 의견을 피력했다. "Both Hong Kong affairs and issues concerning Xinjiang are China's internal affairs," Moon said.
https://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12/25/2019122502184.html
홍콩문제는 문재인 대통령이 언급한것처럼 중국내의 문제가 아니다. 전세계 특히 서방세계의 뉴스는 하루도 빠짐없이 홍콩주민들의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위한 데모데들의 투쟁을 보도하고있다. 오늘은 비오는속에서 홍콩중심가에 모여, 자유를 지키기위한 절규하고 있는 광경을 보도했었다. 어찌하여 문통은 중국내부의 문제라고, 옛날 왕조시대의 Eunuch이 왕께 아뢰는 식으로, 베이징까지 찾아가, 아첨을 떨었단 말인가.
https://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12/25/2019122502184.html
홍콩문제는 문재인 대통령이 언급한것처럼 중국내의 문제가 아니다. 전세계 특히 서방세계의 뉴스는 하루도 빠짐없이 홍콩주민들의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위한 데모데들의 투쟁을 보도하고있다. 오늘은 비오는속에서 홍콩중심가에 모여, 자유를 지키기위한 절규하고 있는 광경을 보도했었다. 어찌하여 문통은 중국내부의 문제라고, 옛날 왕조시대의 Eunuch이 왕께 아뢰는 식으로, 베이징까지 찾아가, 아첨을 떨었단 말인가.
지난 오랜 세월 동안에 양국은 역사와 문화의 뿌리를 공유해 왔으며, 앞으로 양국은 서로 공유하는 코뮤니티도 형성하게 됩니다 라고 설명하면서, 수평적인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는데 의심의 여지가 없음을 강조하기도했다.
"한국은 주요 이슈들과 자유무역지지,그리고 지역적 그리고 국제적 사건들에 대한 상호협조와 코뮤니케이션을 강화하면서 계속 추신할것임을 강조하는 중국의 입장을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라고 문은 설명했다.
또한 두정상은 한반도의 현상황에 대해 많은 의견을 주고 받았다.
중국과 한국은 한반도의 현상황에 지대한 관심과 처해진 상황의 문제들에 같은뜻을 갖고,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를 유지하고, 협상과 대화를 통해 문제점들을 해결하도록 관계를 유지해가야 한다 라고 시주석은 설명했다.
또 시주석은 설명하기를, 한반도에 평화회담 프로세스를 위한 원동력을 주입 시키기위해 북한과의 관계를 개선해 나갈려는 한국의 의지를 전폭지지한다 라고.
한반도문제를 해결하기위해 중국이 매우 중요한 역활을 하고있는데 대해, 문재인은 감사의 표시를 나타냈으며, 그러한 어려운 문제 해결은 쉽게 얻어지지는 않을 것임을 문은 강조했다. 그리고 한국은 한반도의 평화프로세스의 노력이 더 진전있기를 성취하기위해 중국과 함께 추진할 의지가 있습니다 라고.
문은 중국에서 개최되는 제 8차 중국-일본-한국정상간의 회담을 위해 중국을 방문했고, 이회담은 중국영토 남서쪽에 있는 Chengdu에서 화요일에 열린다.
아래는 김논설위원의 Article이다.
우리나라에서 ‘친일파’의 반대말은 ‘친중파’인 것 같다. “청산하지 못한 친일세력이 독재세력으로 이어졌다”며 우파=친일파로 낙인찍은 문재인 정부였다. 일본에는 의전 결례도 격하게 유감을 밝히면서 중국 앞에선 한없이 작아지는 모습이 안쓰러울 정도다.
홍콩 민주화시위와 신장 인권탄압에 대해 문 대통령이 ‘중국의 내정’이라고 말했다고 23일 중국 언론은 일제히 전했다. 보도가 맞는다면, 문재인 정부는 친중파를 넘어 종중(從中)이라고 할 판이다.
● 설마 중국의 인권탄압도 내로남불?
당연히 청와대는 부인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발언을 잘 들었다는 취지였다는 거다. 그러나 중국에 유감을 표하지도, 정정을 요구하지도 않았고 CCTV나 영문 공식 포털엔 지금도 문 대통령의 당시 발언을 영문으로 옮긴 문장("Both Hong Kong affairs and issues concerning Xinjiang are China's internal affairs," Moon said.)이 인용부호까지 붙여 걸려 있다.
홍콩과 신장의 인권 탄압은 인류 보편적 가치의 문제여서 일본을 포함한 선진국 지도자들이 시진핑에 대놓고 지적하는 이슈다. 설령 시진핑이 내정 문제라고 해도 문명국가의 지도자라면 “잘 들었다”가 아니라 인권의 중요성을 표명했어야 옳다.
일본의 결례는 우리끼리 일이다. 그러나 홍콩과 신장 문제에서 한국이 중국 편에 섰다면 국제 망신이 된다. 중국의 언론플레이에 당했대도 마찬가지다. 청와대가 여기서 내로남불 하듯 중국서도 ‘우리 편이니까 내로남불’ 아닌지 의심스럽다. 만약 일본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면 벌써 나라가 뒤집어졌다.
● 조선의 근대화, 청나라가 좌절시켰다
요즘 주류계급에서 “친일파” 외치면 욕이다. 물론 일본의 식민 지배로 겪은 수난과 고통의 역사를 잊을 순 없다. 그러나 사람들은 조선의 망국을 일본 때문으로 돌리지, 그 전에 청나라가 중화제국의 부활을 외치며 조선의 국권을 침탈한 역사는 잘 모른다.
1876년 개항 뒤 우리가 우리 힘으로 근대화에 매진할 수 있는 천금같은 시기가 있었다. 그 때 식민지 종주국보다 더한 간섭과 이권 탈취로 마지막 개혁 기회를 빼앗아선 조선을 망국으로 떠민 나라가 중국이었다.
중국몽(中國夢)이라는 구호 아래 중화제국을 부활시키겠다며 한반도 남북 전체를 장악하려 드는 시진핑을 보다 못해 이양자 동의대 명예교수가 역저를 재출간했다. ‘감국대신(監國大臣) 위안스카이’. 부제(副題)가 모든 걸 말해준다. ‘좌절한 조선의 근대와 중국의 간섭’.
● 대원군을 강제로 수레에 태운 위안스카이
“중국이나 일본보다 20년 이상 늦게 개항한 조선은 개방과 개혁 시작부터 위안스카이 등 청국 세력에 정치·군사·경제적으로 속박돼 자주적 개혁의 기회를 상실했다. 위안스카이라는 인물을 통해 당시 중국이 조선에 어떤 부정적 영향을 끼쳤는지 살펴보는 것은 오늘날의 정세와 맞물려 새로운 의미를 시사할 것이다.”
난세의 영웅(또는 간웅)으로 유명한 위안스카이(1859~1916)가 훗날 중화제국의 황제가 된 것도 젊은 날 조선에서 익힌 정치력과 권모술수 덕분이다. 청군(淸軍)이 1882년 임오군란 진압을 구실로 조선 땅을 밟을 때 그는 스물 세 살의 미관말직이었다.
군 책임자가 대원군을 본국으로 끌고 가려고 병영까지 불러놓고도 결단을 못 내리자 위안스카이는 “지체하면 변이 난다”며 덥석 대원군을 수레에 밀어 넣은 간덩어리의 소유자였다. 갑신정변 때는 본국의 승인 없이 병력을 동원해 진압하고는, 고종을 자신의 병영에 옮겨 독립당의 후환을 없앨 만큼 간교하고 치밀했다.
● 평화 외치며 무장해제 하면 다 되나
조선 종주권을 되찾은 위안스카이는 1894년 청일전쟁까지 식민지 총독처럼 군림했다. 조선과 첫 통상조약을 맺은 건 일본이지만, 아편전쟁 이래 동아시아에서 체결된 구미의 불평등조약 중에서도 유례가 없는 무자비한 조약을 강제한 나라가 중국이다. 일본과 1905년 을사늑약을 맺기 전에 우리나라는 빈사(瀕死)의 길로 들어선 형국이었다.
한 나라의 군사력은, 군 복무를 하지 않은 내가 감히 말한다면, 다른 어떤 것보다 어마어마어마하게 중요하다. 대통령이 평화를 외치기만 하면 북한 김정은이, 중국 시진핑이 천사가 될 것 같은가.
역사를 아는 우리는 1885년 위안스카이가 고종에게 “조·청(朝·淸) 양국은 존망을 같이 하는 바 조선이 만약 러시아의 침략을 받으면 청이 전력을 다해 구호할 것”이라고 올린 적간론(摘姦論) 상소를 보면 가소롭다. 청나라도, 러시아도 일본과의 전쟁에서 대패해 물러날 운명인데 누가 누구를 지켜준단 말인가.
● 위안스카이의 후예가 몰려오고 있다
이달 초 방한했던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우리 정관재계 인사들을 대거 급소집한 장면은 위안스카이의 환생 같았다. “대국이라고 소국을 깔보거나, 힘을 얻고 약자를 모욕하는 것에 반대한다”는 일장연설은 완전 내로남불이다.
http://www.donga.com/news/dobal/article/all/20191228/98993073/1
http://lifemeansgo.blogspot.com/2019/12/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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