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October 18, 2014

Pop Concert장에서 17명 사망, 또 대통령 비난할것인가?

요즘 고국에서 일어나는 인명사고 뉴스를 보면, 아직도 개발도상국가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것을 확실히 알수 있을것 같다.  국민들의 소비성향에서, 국회의원들을 비롯한 정치꾼들의 행적에서, 시민들의 자살이 밥먹듯 일어나는 사건속에서......

그리고는 사건이 일어날때마다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를 무자비하게 질타하는 시민들과 이에 합세하는 언론들의 몰아부치기식 비난은,  개발도상국가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대변해주는 현장중계와 같은 느낌을 깊이 받는다.  이런 순간만은 정치꾼들, 특히 국회의원들은 꼬리 내리고 잠잠하다. 마치 거북이가 긴 목을 몸속에 숨기듯이.

왜 언론은 사후약방문식의 비난 기사만 경쟁하듯이 내보내고 비난만 하는가.
언론이 그럴자격이 있다고 나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국민들에 앞서 계몽하고, 예견하고, 결론을 내주는 내용은 기사를 보도한적을 나는 한번도 본 기억이 없다.  사건 사고가 나면 재발을 방지하는 기사보다는, 마치 '아니면말고'식의 찌라시 헐뜯는 흥미기사로 도배하기에 바쁘다.

잘 먹여서 겨우 자신의 의지데로 걸을수 있는 어린초등학생의 외형만 보고, 마라톤을 하도록 부추겨서 결국 중간에서 부러지게 만드는 무서운 우를 범하고도 그원인을 찾아서 해결해 볼려는 진지한 노력은 보이지 않고, 그순간만 지나면 그만인것으로 치부되는 사회가 바로 조국 대한민국이자 국민들의 정신인것 같다.

대개 개발도상국가들에서나  일상사 처럼 일어날수있는 참사는 꼬리를 물고 발생하는데,  선진국에서 조차 누리지 못하는 민주주의를 Enjoy할줄은 알아도 동시에 나란히 가야하는 책임(Responsibility)에 대해서는 야만인 수준이다.  이런환경속에서 안전사고가 안난다면 어쩌면 더 이상하면서도 불안하게 느껴질수도 있을 것이다.

통풍구위에는 왜 올라가나?  그곳이  Concert 구경하는 좌석이 있었던 곳인가? 분명아니다.
주최측과 경찰은 안전에 대한 사전 점검을 해야 옳았다.  분명히 그런 절차를 거쳐야만 공연 허가를 얻을수 있었을 것이다.  아니면 형식적으로 안전검사를 했던가 말이다.  경찰은 국가공권력을 집행하고, 안전을 최일선으로 담당처리하는 야전군과 같다고 하겠다.  행사에 관한 사전조치 규정은 분명 있을 것이다.  그렇타면 답은 자연적으로 나오게 돼있을것 같다.

만약에 조국 대한민국의 국민들이 누리고 있는 선진국형 자유와 풍부한 삶의 여유를 누리고 있는것과 병행해서 그에 합당한 책임을 질수 있는 진정한 OECD 회원국가의 국민이라면, 이런 챙피한 사고는 일어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조국은 아직도 개발도상 국가라는 꼬리표를 떼기에는 시기상조인것 확실하다고 하겠다.

세계 10대 무역대국이라고 좋아하고 떠들어 대지만,  이런사고가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현실에 비추어 볼때, 얼마전 까지만 해도 강남의 땅부자들에게 붙여주고 비난했었던 '졸부'의 근성이 국민들의 정서속에 그대로 깊이 박혀 있다고 생각된다.   이런 비난이 억울하다고 생각되면 자유를 누리는것만큼, 경제적 삶의 여유를 만끽하는것 만큼,  책임감과 부여된 의무를 일상생활화 해야 격이 맞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원시적인 안전사고는 확 줄어들 것이다.

누구의 잘못이라고 탓하기전에, 내가 할일을, 책임을, 의무를 무시하거나 소흘히 했기 때문에 일어난 참사라고 생각하고,  국민모두가 일상생활에 임한다면......그때가 바로 선진국 국민이 되는 것이다.
"대통령과 정부는 뭘 했느냐"고 비난하는 짖들은 이제 그만 하자.  내탓으로 돌려서 생각해야 옳은 사고 방식이라고 믿는다.

지금도 입만 열면 '네탓'이라고 서로 헐뜯고 국세를 축내고 있는 정치꾼들, 특히 국회의원들부터 솔선수범 해야, 진정한 선진국의 국민반열에 서게 된다는것 잊지 말자.


http://www.bbc.com/news/world-asia-29660885

http://www.nytimes.com/2014/10/18/world/asia/at-least-14-killed-at-k-pop-concert-in-south-korea.html?action=click&contentCollection=Asia%20Pacific&region=Footer&module=MoreInSection&pgtype=article

BBC의 서울주재 특파원 Stephen Evans씨는 세월호 참사로 증폭되고 있는 한국의 안전준수 기준에 대한 논쟁이, 이번 공연장 참사로, 또 불러 올것이라고 진단한다.

관계당국의 발표에 따르면 서울의 남쪽에 있는 도시 '성남'에서 있었던 연예공연장에서 일어난 사고로 16명이 사망하고 11명이 부상당했다고 한다.

그들의 설명에 따르면, 통풍구의 덮개위에서 관람하고 있었던 관객들이 갑자기 폭삭 내려 앉으면서 10미터 아래의 지하 주차장에 추락했다고 한다.

사고가 났을때 관람객들은 팝여가수들인 포밋과 다른 구룹의 밴드들이 펼치는 야외 공연을 구경하고 있었다.  이번 사고의 희생자들은 야외공연의 쇼를 더 잘 보이는곳에서 볼려고 불법으로 통풍구위로 올라갔었다고 한다.  구조요원들의 설명에 따르면 희생자는 더 발생할수도 있다는 것이다.

' 구멍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12명이 현장에서 즉사했고,  다른 2명은 병원으로 호송도중에 사망했다고 한다. 또 다른 희생자들은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중 사망했다"라고 연합뉴스는 그지역의 소방소 직원들의 말을 인용하여 보도 했었다.
 
그지방 축제행사의 일환으로 판교테크노벨리에서 있었던 이번 공연에는 약 700 여명의 관람객이 Concert를 관람하고 있었다고 한다.  꽉찬 관람석으로 부터 약 20-30명 정도가 통풍구 윗쪽의 덮개로 사용된 철근망위에 올라가서 관람하던중 하중에 못이겨 철근망이 내려 앉으면서 밑으로 내동댕이쳐진 것이라고 한다.

"약간 놀랐었지만, 나는 괜찮아요. 당시 나는 약 20피트 떨어진곳에서 구경 했습니다.  그때는 아무도 그런 사고가 났었는지도 모르고 공연을 보기에 여념이 없었으니까요.  나는 그때 맥주를 팔고 있는 텐트에서 줄서 있었고, 공연은 막 시작되고 있었거든요"라고 서울에서 거주하고 있는 Ross Gibson씨는 BBC에 당시 상황을 설명해 주었습니다.

또 다른 현장목격자는 YTN과의 회견에서 " 갑자기 커다란 아우성 소리가 들렸고, 내가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을때 나는 밑의 구멍속으로 사람들이 빨려 들어가는것 같은 광경을 본것입니다."라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서울에서 만난 BBC의 Steve Evans는 당시 사고현장에서 구조요원들은 부상당한 사람들을 구조하는데 중점을 두었으며, 이번 사고로 또다시 안전기준에 대한 열띤 공방전이 뒤따를것 같다고 전했습니다.

6개월전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 약 300명 이상의 생명을 잃은 고통이 있었는데,  안전보호기준에 대한 규정이나 벌률이,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경제규모와 맞게 입법화 돼 있지 않았다는 현실을 극명하게 나타내고 있는 한증거라고 할수밖에 없을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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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기만 하면 뭘하나, 법을 만들어야할 국회의원들이 염불에는 관심이 없고, 잿밥에만 온갖 정열을 다 쏟고 있는 판인데.....하여튼 정치꾼들 진심으로 책임을 통감 하는것을 보고 싶다. 그러한 염원이 어찌 나만의 소망일수 있겠는가?




기나긴밤,출출한 속을 달래주었던 "야식 행상"이야기 - 인정은 그때가 더 후했었다

"당고나 모찌이이이이...... 당고나 모찌이이이......"

나의 경우는, 이단어가 우리의 순수한 말인지? 아니면 일본식민지하에서 우리 선조들이 사용했던 말인지?  정확히 알지는 못한다.


http://newsplus.chosun.com/site/data/html_dir/2014/09/29/2014092901537.html?inside

6/25 동란직후, 그때 나의 부모님은 고향에서 멀지 않은 도시인 "김제"로 삶의 터전을 옮겨, 피난살이를 하면서, 기차역에서 조금 떨어진곳의 큰대로변(당시)에 있는 주택및 상가 건물인, 일본식 주택에서 대식구가 옹기종기 엉켜 살면서, 생업으로, 당시에 흔히 말하던, 구멍가게를 부모님께서 운영하셨던 기억이 어렴푸시 남아 있다.   지금계산으로 한다면, 자동차로 불과 30분 거리도 안됐을 지척간 이지만, 당시 나의 어린 생각으로는 구만리 이상을 떠나 객지에서 사는것으로 이해 됐었던것이다.

추운 겨울이되면 바람도 모질게 불어대서 가게밖 대로변을 걸을때는 정말로 살을 찢어내는듯이 엄습해 오는 추위와 싸우면서 살아남기위해, 너무나 커서 흘러내리는 바지춤을 다시한번 움켜쥐고 떨어야만 했었다.   더춥게 느꼈던 이유중의 하나는 살고 있던집이 적산가옥이라서 밤에 잠을 잘때는 식구들 모두가 온돌방이 아닌 다다미(침대에 사용되는 매트레스 같은)위에서 구호물자로 받은 담요 아니면 피난 나올때 머리에 이고 간직해 오던 솜이불 조각을 덮었기에 더 한기를 느꼈었던것 같다.  그때 나는 여섯살 정도 였을 것이다.

피난집에서 약 1킬로 떨어진 기차 정거장에서 새벽에 화물열차겸 여객열차가 추위에 떨면서 기적을 울리는 소리에 일찍 눈이 떠지면, 옆에서 같이 자고 있던 형들이, 조그만 유리창문에 하얗게 서려있는  성애를 가르키면서, ' 내일이 크리스마스날' 이라고 말해주던 생각도 난다.
그말의 뜻이 무엇인지, 지금 생각해 보면, 당시 형들도 그말뜻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잘 알고 있었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고, 옆에서 어른들이 하는 얘기를 듣고 그대로 옮겼을것으로, 지금의 나는 기억을 더듬는다.

"당고나 모찌이이이..... 당고나 모찌이이....." 크리스마스 이브의 늦은 밤에도 어김없이 그소리는 우리집앞을 지나치고 있었음을 기억하고 있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후에 모찌는 찹쌀떡속에 팥을 으깨어 넣고 동그랗게 골프공 크기로 만들어 밤에 출출할때 식구들이 모여 앉아 배고픔을 달랬던 일종의 스낵이라고 알고 있었지만, '당고'는 이름뿐이지 어떤 스낵이었는지 기억에서 사라져 버렸다.  안타깝다.

우연히 조선일보의 그옛날 신문기사를 보았을때, 야간 행상에 대한 추억담을 되살아나게 한점 고맙게 생각하면서,  당시에 사용했던 단어들도 서울과 지방간에 서로 달랐었지만,  내용물은 거의 대동소이 했었다는것도 뒤늦게 알았다.

사진에서 보는 야식행상들은 내가 보고 겪었던 당시의 모습과는 많이 달라 보였다.  사진에서 처럼 구룹으로 다닌것은 아니었고,  내가 살던 피난처에서는 야식장수 혼자서 외롭게, 그리고 처량하게 구호를 외치면서 지나쳤던 것으로 기억된다.

아직 젊어서 사회생활 할때는 가난하고 찌들고 궁상맞은 그런 광경을  가끔씩 볼때는 지금처럼 연민의 정을 느끼지는 못했었다.  대신에 왜 선조들은 지금의 젊은 우리들 처럼 열심히 일하지 않고 그런 궁상맞은 삶을 살아갈까?라는, 제법 통큰 인생살이를 할것 처럼 속으로 비웃기도 했었다.

똑 같은 당시의 사회풍경의 한장면을 다시 보는 느낌은 저런 어려운 삶을 선조들은 자식들을 위해서 살으셨구나 라고 질곡하고, 배고픈 삶을 살으신 부모님 세대들에게 미안하고 감사하고 그런 마음이다.  세월이 흘러 온갖 삶의 경험을 몸으로 터득한 어느덧 노인 세대에 나자신이 살고 있기에 보는 방향이 달라서인것만은 아니다.   그런 어려운 고난의 삶을 살았기에,  당시의 사회상의 한장면을 다시보는순간  가슴이 아리고 죄스러워짐을 느끼기 때문이다.

막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있을때, 아버님, 어머님께서 당신네들이 살아온 삶의 경험이 곁들인 Discepline을 하실때는, 직접 대고 말대꾸는 못했어도 속으로는 잔소리하시는것으로 간단히 치부하곤 했었다.  지금은 왜 그때 그랬을까?라고 후회와 이세상에 안계시는 부모님에 대한 죄스러움에 가슴이 메여지곤 한다.  그때문인지 지금 사회생활을 열심히 하고 있는 나의 아이들에게는 할수만 있다면 말을 아끼고, 간섭을 안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대신에 행동으로 아빠 엄마가 살아온 삶의 경험을 보여 줄려고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다.  사람사는 냄새가, 그때와 비교해서, 매말라가는 요즘의 이웃간에 인정미를 배푸는 자세로 살아가기를 항상 Emphasizing 하면서.

'온고지신' 이라는 idiom을 연상해 본다.  이문구표현이 제대로 됐는지도 나는 잘모른다. 한자로 표현 했으면 더 뜻이 확실할텐데,  이상하게도 한자와는 인연이 없었던지, 집에서나 학교다닐때 절차를 밟아 배운 기억이 없기 때문이다.  시골집에서 중학교 다닐때 아버님께서 보시는 신문을 어깨 넘어로 흩어본것중에서 몇자 정도 기억할 뿐이다.

이말의 뜻이 품고 있는 내용들을, 오늘의 풍부한 세대를 살고 있는, 우리의 몸에 비유한다면, 허리부분정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잘 이해하고 평상시 생활에서 교훈으로 삼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90세의 아버지는 70세의 아들을 바라볼때, 어린아이를 물가에 둔것처럼 불안해 하시는것 처럼, 요즘의 젊은 세대들을 바라볼때는 spirit of conservation이 조금은 결여되여 있는것은 아닐까?라는 조바심이 있다.   오늘의 젊은 세대들은 전쟁후 페허로 잿더미만 남았을때 창자가 베베 꼬이는듯한 배고픔을 느껴본 그런 경험이 없기에, 더 냉소적으로 치부하고 지나칠 확률이 더 많을것 같다. 해방둥이로 어려서 전쟁을 겪었던 내자신도 젊어서 그랬던것 처럼........그것이 큰 실수였음을 나처럼 늦게 깨닫는 우를 되밟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Thursday, October 16, 2014

Toronto 시장선거에 즈음하여 Ford와 Tory에게 e-mail로 보낸 교통체증해소 Idea.

요즘 토론토 시내의 어느 거리를 가든지, 교통체증으로 짜증이 안나는 운전자는 없을 것이다.
10월 27일 토론토 시장(Mayor)선거를 앞두고, 선두주자들의 교통체증 해소 방안을 들어보면 공상누각을 짖은 형국의 허구만 남발하고 있는것 같아 더 짜증이 난다.

토론토 시내 서쪽에서 시내를 관통하여 동쪽 Pickering 쪽으로 갈려면, Highway, Don Valley, Kingston Rd, 또는 Local Road를 관통해야 하는데, 교통체증이 걸려있지 않은 길이 없다.
남쪽 끝에서 북쪽인 North York을 갈려도 교통체증은 똑 같다. 정말로 짜증이다.

전차는 덮친데 덮친격으로 길한가운데를 막고 차량의 흐름을 완전히 막아 버린다.  거기다 고장이 났을경우는 정말로 운전자들을 미치게 한다.  왜 이런 19세기경에나 사용했던 전차를 굳이 고집하는지 그이유를 알길이 없다.

일본의 도쿄거리처럼, 시내의 교통 신호들을 모두 연동시켜 한쪽 방향으로 달릴때는 신호가 똑같이 바뀌어 마치 고속도로를 달리는 효과를 낼수 있는, 쉬운 방법이 있는데도 그런 아이디어을 내는 후보는 하나도 없다.  공약으로 내건 공약은 Smart Tracks 건설, LRT 건설, 지하철 건설 정도다.  그나마 지하철건설은 Long term으로 봤을때 현실성이 있으나, 그외의 공약은 일회용 반찬고를 부치는 속임수인것 같아 더욱 안타깝다.

그래서 선두주자 후보 두사람에게 나의 생각을 아래와 같이 적어서 이멜로 보내봤다.


What I am mentioning is not for highway traffic chaos, but city core in the city of Toronto area. Can you study my opinions? Here are:

1. The most of city local roads are constructed like grids that means roads spread from south to north, east to west.  So if you have all the traffic lights interconnected, then traffics would run like highways without hurdles of stopping that happens under current traffic signal light system.  Also if you have a chance to look at the traffic signal systems of Tokyo, Japan would be much helpful to understand.

2. Street car operation system must demolished entirely and put buses instead.  Street cars operation, I believe strongly, doesn't help any congested traffic stream in downtown, but stays as hurdles.
Running intervals between street cars have not been stabled that some times in 2 minutes, sometimes over 40 minutes because street cars run on same track that allows only one street car.
Here are many reasons not only blocking traffic flows but other reasons as follows :
A. To construct railway system, power lines on top of roof of car, separate work shops, separate mechanics that need huge operating budgets.  But input buses instead street car on the route, we can use less budget not only that but blocking traffic flows by street cars that happens when passengers get on or off the street car. And when street car stopped because of broken down, in this case it is nothing but hurdles of traffic flowing on the road in which traffic streams jammed all the time.

B. Trend of operating street car system in big cities like Toronto all over the world has been demolished since long time ago but put buses instead.  Some cities has still operating but you should concentrate that they have separate rail tracks that doesn't bother traffic flows.  If you see the Istanbul, Turkey then you will get the confidence why we need to demolish street cars operation.

Taking this concept, we can save not only huge budget but traffic jam solved for sure.  Thank you.

Paul Lee.

Wednesday, October 15, 2014

6개의 희귀하고, 독창성과 인간이 만든 걸작품인 다리(Bridge)들, 꼭 한번 직접 보고싶은 욕심이 든다.

세상에는 희귀성 때문에 그존재 가치가 높이 평가되는 사례가 종종 있다.  그렇타고 그러한 시설들을 이용할경우 꼭 편리한다고는 말할수 없을것 같다.  여기에 소개되는 6개의 다리들은 편리함에서는 현대판 다리들과는 비교가 안되게 불편할것 같다.  그러나 물리적으로 어려운 역경을 이겨내고, 인간도전의 한계를 넘어 건설됐다는 특히함과 희귀성 때문에 더 사람들의 관심과 시선을 끄는것 같다. 지상에서 감상해 보자.

산상에 세워진 다리, 말레이시아
이다리의 스팬은 125미터라고 한다. 건축가 Mayur Kanaiya씨는 Pulau Langkawi섬위의 산정상에 세워진 다리에 대해 "산정상에 곡선모양으로 세워진 이다리는 관람객들에게 야생동물들과 산림위를 지나는 Canopy를 걸으면서 경관의 아름다움을 맛보는 친근감은 말로 형용할수 없이 아름답다"라고 평한 다리다.

http://www.bbc.com/travel/slideshow/20131003-six-beautiful-and-bizarre-bridges

인도의 Meghalaya주의 Cherrapunji동네에 소재한 이다리는 벽돌과 철재 또는 시멘트 대신에 살아있는 나무들의 뿌리를 이용하여 만든 다리이다.  이지역이 지구상에서 가장 습기가 많은 지역이라고 하는데, 그래서 인지 나무 뿌리가 땅위로 솟아 올라 자라고 있는것 같다. 이다리는 50명의 몸무게를 지탱할수 있다고 한다.


인간이 만든 걸작, 예맨.
현대판 다리는, 전통적으로 위대함을 곁들인 돌로 쌓아 만든 아치형의 이다리와 비교 될수가 없다.  돌로 쌓아만든 다리들은, 현대기술과, 물리적 장애요소를 극복한 인간이 만든 걸작품임을 훌륭히 보여주는 사례가 된다. Yemen에 있는 Shaharah 다리는 이러한 점들을 충분히 보여준 사례로 꼽히는것 같다.

위에 표기한 링크를 보면 나머지 3개의 다리의 독창성과 희귀성에 대해 더 자세하게 알아볼수 있다.  감탄뿐이다.  


캐나다 대법원 '의사도움받은 자살행위' 적법성 심판한다. 오직 신(God)만이 알고계실일.

식물인간으로 살아있다는것은 삶의 의미가 없고, 오히려 환자를 살피는 가족들과 치료당국에 고통만 더해주는 결과일뿐이라고 나는 생각해 왔었다. 세월을 살다보니 그런 신념이 더 강하게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다.  유럽의 여러나라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그러한 환자를 상대로한 '의사도움받은 자살행위'를 합법화하고 있다.  어쨋던 결과는 살인행위이기에 누구의 생각이 옳고 그른지는 오직 신만이 아실일이지만,  나는 회생불능으로 판정되는 환자일경우, 관련된 가족들의 동의하에 안락사는 찬성한다.

판결이 어떤쪽으로 날지? 궁금증은 더해 가지만, 내가 바라는것은 이법의 적용에서 행여라도
Abuse가 있었는지 없었는지에 대한 철저한 연구와 조사가 선행되야 한다고 믿고싶다.

오늘 뉴스에 의하면 캐나다 대법원은 안락사에 대한 위헌여부를 심판하기위한 심판관 9명 전원이 참석한 가운데 심의가 시작될것이라는 보도를 했다.  이재판에 증인으로 참석한 사람은, 오래전에 89세의 어머니가 허리통증으로 식물인간처럼 살아가는 참담함을 보다 못해 어머니의 고통을 덜어주기위해, 캐나다를 떠나 안락사가 허용된 스위스에 가서 의사들의 보조를 받아 어머니의 동의하에 안락사 했었던 당시의 상황을 증언할것이라고 한다.  캐나다에서는 법으로 안락사를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뉴스의 일부를 옮겨 봤다.
Sue Rodreguez여사가 1993년도에 Saanich,B.C의 자기집에서 햇볕을 쬐고있는 장면,


http://www.theglobeandmail.com/news/national/supreme-court-of-canada-to-rule-on-right-to-physician-assisted-death/article21084240/

캐나다의 최고법원은 신체적으로 회생불능한 환자에 대한 '의사도움받은 자살행위'의 적법성 여부를 판가름 하기위한 재판이 열려서 열띤 공방을 벌이기 시작했다.  만약에 이번 대법원 심판에서 안락사쪽으로 대법원이 결정을 내리게 된다면, 현재 연방정부가 안락사 반대를 원하고 있는것과, 20년전에 대법원에서 판결한 내용이 완전히 뒤바뀌게 될것으로 보인다.

이번 대법원 심판은, 1988년도에 낙태수술은 살인행위라는 법을 위헌으로 판결한것과, 2003년에 캐나다 온타리오주(Province of Ontario) 항소법원에서 동성애끼리의 결혼은 헌법정신에 위배된다는 판결을 한것과 맥을 같이하는 획기적 판결로 법집행에 획기적인 전환점이 될것으로 볼수 있을것 같다.

전체 9명의 대법원 판사들은, Lee Carter여사의 증언을 먼저 청취하게 된다.  그녀는 2010년도에 당시 89세의 어머니, Kathleen Carter여사가 척추고장으로 식물인간이 된 상황에서 받는 고통을 없애기위해 안락사를결심하고,  스위스까지 모시고 가서 그곳에서 엄마를 하늘나라로 보낸분이다.  당시 엄마는 철판처럼 굳어져 있는 침대에서 삶을 살면서, 신문한장 들어 올리지 못하는 고통을 끊기위해 더이상 살고 싶지 않았었다고 설명 했다.

제판시작을 알리는 솟장에서 딸 Carter여사는 "세상에는 살아서 괴로워 하는것 보다 차라리 죽음을 원하는 사람들이 있어 그들이 원할때 그들의 뜻을 품어 안고, 그들의 뜻을 존중해야 할 경우가 있다"라는 상황을 설명했다.  그녀는 이번 사건 심판을 최고법원에 의뢰한 여러사람들중의 한명으로,  그녀의 어머니 소원데로 생을 마감하는데 협조한 혐의로, 형법으로 금하고 있는 벌을 받기위해 심판대에 서지않게 되기를 바란다 라고 취지를 설명했다.

얼키고 설킨 이번 경우는, 어쨋던간에, 식물인간이 되여 더 살기를 원치않는 위치에 있는 구룹과, 이와는 반대로 정신은 멀쩡하지만 불구의 몸으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도 이러한 안락사의 압력을 받게되지 않을까 염려하는 구룹으로 대별된다.  캐나다 정부는 생명을 보존해야 한다는 차원에서 후자의 경우를 적극적으로 대변하고 있다.

"안락사를 반대하는 이유는 '인간생명은' 귀하나, 불구의 몸이기 때문에 안락사 돼야 한다는 위험으로 부터 용기를 주기위해 절대적으로 보호되야 한다."라고 캐나다 정부는 주장하고 있다.


위의 링크를 열어 보시면 더 자세한 내용을 볼수 있음을 알려 드린다.

Tuesday, October 14, 2014

블로그를 만들어 기록하기전의 여행사진 모음들,2007년도 이전 기록들이다.

꿈만같은 지나간 세월들을 오늘 우연히 다시 보게되면서, 여기에 옮겨 놓았다.
당시에는 한인 코뮤니티에 Ahaidea.com이 가장 Popular해서, 그곳에 미니홈을 설정하여
여행 기록을 사진과 함께 올려놓곤 했었다.

2007-03-27
아부심불 신전
아스완에서 새벽에 투어 버스를 타고 3시간 이상을 사막으로 깊숙히 달려 나세르 호수에 접해 있는 아부실불 신전에 도착하여 구경하면서. 이신전은 원래의 위치에서 약 200 미터 언덕위로 옮겨져 재건축하여 전시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호수의 수위가 높아져, 유네스코에서 8년의 긴세월을 들여 옮겼다고 들었다.
Board Image
http://www.ahaidea.com/WebPage.aspx?bbsid=1631&blog=lakepurity&pageid=25

http://lifemeansgo.blogspot.ca/search?q=lakepurity

그시점으로 부터 오늘 다시 재방문해, 흘러간 시간들을 계산해 보니 거의 10년 흘러갔고,  Google을 이용하여 지금의 블로그를 기록하기 전까지는 유일한 기록 보관소 역활을 한곳이다.  오늘 방문하여 Log in 할려고 시도 했는데, PW가 틀리다는 Notice만 계속 나타난다.

여행지는 유럽의 폴투갈과 스페인, 이집트, 요르단, 두바이, 뉴욕주의 Rochester옆에 있는 Finger Lakes 여행, 고국의 국립 소록도 한센씨병 환자촌 방문, South America 방문 그리고 토론토인근에서 Trail Walk한 내용과 사진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새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우연히 오늘 발견한 그스릴에 다시 이곳에 링크해둔다.
그리고 기회가 있을때마다 다시 들려서 기억을 되살려 볼것이다.

서방세계의 언론,"김정은 40일만에 대중앞에 섰다."라고 앞다퉈 보도....



북한의 김정은이 40일 동안 잠적했다가 오늘 40일만에 대중앞에 나타난것이 전세계의 톱뉴스거리로 언론들을 장식하고 있다.  그가 대중앞에 나타나거나 말거나 그것이 무슨 역학관계가 있다고 앞다투어 보도해 대는지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다.

그가 공식석상에 나타난 순간을 촬영한 사진들은 지팡이를 짚고 서있는 모습인데, 이를 두고 일부에서는 다리에 골절상을 입어 잠적했던 것으로 이해 될수는 있으나, Coup가 발생하여 그가 권좌에서 물어 난것 아닌가하는 의구심은 일단 풀어지게 된 셈이라고 평가 하고 있는것 같다.  여기서도 단서가 붙어있다.  사진찍힌 날자들의 언급이 전연 없다는 점이다.

CNN같은데서는 북한 전문가의 대담 내용을 들어보면, 지팡이짚고 나타난것 그자체 부터가 의문 투성이라고 논평하면서, 그이유로 노동당 창건69주년 기념식과 이어진 금수산 Mousoleum 에 안치되여 있는 그의 할아버지, 아버지 참배객 명단에 그의 이름이 없었던것은 더 깊이 알아보아야할 이유가 존재 한것 같다는 의문을 그이유로 들었다.

많은 사람들은 김정은이가 그의 고모부인 장성택을 죽인 장본인으로 알고 있지만,  그를 둘러싸고 있는 세력들이 죽인 것이라고 논평도했다.  그만큼 김정은이가 실질적으로 파워게임에서 밀리고 있다는 증거가아니겠는가?라는 의심을 품게 한다는 내용이었다.

어쨋든 그가 아직도 권좌에서, 실질적이든 허수아비노릇이던간에, 북한을 통치하고 있다는데는 전문가들 모두가 수긍하는것 같다.

떡줄사람은 생각지도 않고 있는데, 김치국부터 마시는 우를 행여라도 범하고 있는 조국대한민국이 아닐까?라는 조바심은 더해지는 것 같다.

서방세계의 미디아들에게 특종으로 보도할수 있게 기회를 준 김정은의 기사를 보면서
독자들은 어떤 생각일까?


http://www.bbc.com/news/world-asia-29608096

http://www.cnn.com/2014/10/13/world/asia/north-korea-kim-jong-un/index.html?hpt=hp_c2


Sunday, October 12, 2014

노벨 평화상은 17세의 소녀와 어린이의 인권보호를 위한 인권운동가에게 공동 수여

이소녀는 노벨 평화상을 공동 수상했는데, 지구상의 어느 누구로 부터도 비난을 받지 않을것으로 확신이 간다.  어떤 정치가는 평화상을 타기위해 적과의 동침도 마다 않고, 엄청난 자금을 동원하여 노벨상 위원들을 구워 삶았다는 루머가 지금까지도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있고,  동침한 적의 아들이 3년전부터 정권을 이어받아 세계역사상 그유례를 찾아볼수 없는 폭정을 하고 있는 이현실과 뚜렷한 비교가 되는데, 이를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 들여야할까?  그녀는 노벨평화상 수상소식을 그녀의 학교에서 화학강의를 듣다가 선생으로 이소식을 들었다고 한다.  이얼마나 깨끗하고 순수한가.  아직 자라고 있는 십대들 뿐만이 아니고 모든 지구상의 리더들, 아니 한국사회를 정치적 철봉을 휘둘러 국민들을 괴롭히고 있는 꾼들에게는 귀감이 되고도 남을 양심선언같았다.  


http://www.bbc.com/news/world-europe-29564935#"

http://www.nytimes.com/2014/10/11/world/europe/kailash-satyarthi-and-malala-yousafzai-are-awarded-nobel-peace-prize.html?emc=edit_th_20141011&nl=todaysheadlines&nlid=59843044

약 2년전 파키스탄 서북쪽을 달리고 있던 만원버쓰에 올라온 탈리반소속의 무장괴한은 "누가 Malala 야?" 라고 소리를 치면서 그녀가 있는 곳을 향해 총을 난사하여 당시 15세로 아동들의 인권운동활동을 펼치던 Malala Yousafzai의 머리를 관통 시켰었다.

파키스탄의 어린 아동들의 교육홍보 전문가 Malala Yousafzai와 인도의 아동권익 운동가인 Kailash Satyarthi가 노벨 평화상 공동수상자로 선정됐다고 한다.
Malala는 17세의 소녀로서, 지금까지 가장 나이어린 노벨평화상 수상자가 된것이다.
이십대 소녀는 2012년 10월에 소녀들의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캠페인을 벌이던중 탈리반 반군들이 쏜 총알이 머리를 다치게 했었다.  그녀는 지금 영국의 버밍험에서 살고 있다.
Malala는 노벨 평화상 수상이 굉장히 명예스러운 일이며, 평화상 수상으로 더많은 힘과 용기를 느끼게 됐다라고 소감을 피력했다.  그녀는 버밍함소재 학교에서 화학과목 강의를 듣던중 선생으로 부터 수상자로 선정됐다는 소식을 접했음을 고백하기도 했었다.
"나는 이평화상을 인도출신 수상자와 함께 공동수상하게된것을 무척 행복하게 느끼고 있습니다"라고 그녀는 인도출신 수상자 Mr.Satyarthi의 Surname을 발음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다고 조킹을 하기직전에, 기자회견에서 설명했었다.
노벨상 위원회는  아동들과 젊은 사람들이 억압을 받는 어려운 역경속에서    살아가는 환경을 개선해 볼려고 헌신한 두사람의 공로를 높이 추겨 세워 수상자로 선전했다고한다.
Mr Satyarthi씨는 마하트마 간디옹의 무저항식 전통을 유지하고, 아동들의 경제적 어려움을 개선해 볼려는 여러 조직들의 수장으로 헌신 했었다라고 오슬로에 있는 노벨상 위원회는 설명하고 있다.
올해 60세인 그는 Bachpan, Bachao Andolan 등의 어린아이들을 돕기위한 조직을 창설하여 그곳에서 아동의 권리와 인신매매를 막는 캠페인을 벌여왔었다.

수상자로 선정된 소감에서 Mr Satyarthi씨는 BBC와의 회견에서 "이번 평화상 수상은 나자신뿐만이 아니고 전인도인과, 기술과 시장그리고경제적으로 많이 발달한 시대지만, 아직도 노예생활로 살아가고 있는 어린 아동들에 대한 희망을 줄수있는, 영예로운 상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나는 이수상은 전세계의 어린 아이들에게 바치겠다"라고 다짐 하기도 했다.
"그녀의 영웅적인 투쟁"
노르웨이의 노벨상 위원회 위원장, Thorbjorn Jagland씨는 Malala가 수상자로 선정된 것에 경의를 표했다.
"아직 어린 소녀인데도 Malala Yousafzai양은 벌써 수년동안 어린소녀들도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음을 위해 싸워왔고, 또 어린아이들과 젊은 사람들도 그들의 어려운 상황을 개선하기위한 헌신을 할수 있음을 보여준 선례를 남겼다"라고 그는 설명했습니다.
"이러한 어려운일을 그녀는 정말로 어려운 역경속에서 해냈습니다. 그녀의 영웅적인 투쟁을 통해 그녀는 소녀들도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음을 항변하는 선구자적 대변인이 된것이다" 라고.
또한 노벨상 위원회는 파키스탄의 회교와 인도의 힌두교가 교육과 극렬분자주의에 반대하는 공통적인 투쟁을 하는데 합세하여 매우 중요한 역활했다고 설명했습니다.
버밍함에서 바라본 견해: Phil Mackie, BBC 기자.
그녀가 지난해 버밍함에 있는 도서관을 개관 했을때, Malala Yousafzai양은 그곳에 모인 관중을 향해 "나의 친구 Brummise"라고 그들을 애칭하는 재치를 나타내기도 했었는데,      그러한 언급은, 많은 사람들이 그녀는 이곳이나 아니면 그녀의 나라 파키스탄에서 정치적 삶을 살기위한 방향을 제시한 것이라고 믿음을 주기에 충분한 십대소녀의 훌륭한 행동이었던 것이다.
암살을 모면한후 어려운 환경속에서 지내다가 이곳에 도착해서 영국군인들의 치료를 중점적으로 시행하는 Queen Elizabeth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었다.
전장에서 부상당한 군인들을 치료해주곤 했던 경험으로 명성을 얻은 전문가들이 일하는 그곳에서 그녀가 치료를 받았다는것은, 치료에 최적의 장소를 의미하기도 한것이다.
그녀는 외래환자로 계속남아 치료를 받고 있다.  이제 병원측은 그녀의 신속한 건강회복과 매우활동적이면서 정신적으로 훌륭한 십대소녀로 살면서 충만에 찬 삶을 향한 매일 매일을 보내고 있다. 
"파키스탄의 긍지 지킨 십대"
Malala는 2009년 그녀가 파키스탄의 서북지방에서 탈리반 반군의 통치속에서 살았던 내용을 일기로 써 BBC의 Urdu에 자기 이름을 밝히지 않고 무명으로 제출한 이후부터 세상의 관심을 받기 시작 했었다.  그녀는 Swat Valley에서 스쿨버쓰를 타고 있을때 총을 든 반군이 뻐쓰에 올라와서 쏜 총에 맞았었다.
자세한 내용은 위에 적은 링크를 연결해서 볼수 있다.

Friday, October 10, 2014

표고버섯 채취는 일종의 스릴까지 느끼게 했다. 적기를 놓치면...

이렇게 많은 표고버섯을 채취해 보기는 난생 처음이다.   그것도 마치 버섯농장에서 정성들여 길러온것 같이 큰 소나무 숲속에서발견한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버섯들의 모양이 ugly해서, 별생각없이  몇송이만 채취해서 Cottage 로 되돌아 왔었다.  저녁 밥상에 따온 버섯을 찌개에 넣고 끓여 먹으면서 그고소한 버섯의 향에,  내일은 골프도 취소하고 다시 채취하기로 Lunar와 약속했었다.  Lunar는 능이버섯이니 보이는데로 다 채취하자고 했었지만, 나는 확실치가 않아서 알아보고 내일 다시 오자고 약속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몇년전 10월달에 공원담당직원의 Guide를 받고 버섯채취에 대한 숲속 Tour한 경험이 있기에 자신있게 능이 버섯이라고 주장 했던 것이다.

집에는 버섯에 관한 책이 2권이나 있다.   자세히 찾아 보았는데, 먹을수 있는 버섯( Edible)으로 사진과 함께 설명은 되여 있었으나 그밑에 단서가 붙어 있었다.  버섯은 같은 종류라 해도 시기와 장소에 따라 다소 색갈이 다를수 있다고 말이다.   그래서 확신을 하기에 더 많은 망서려짐이 뒤따르는것 같다.  채취시기는 날씨가 싸늘해지기 시작하는 10월달이 적기라고 했다.  그말이 나를 더 따온 버섯에 대한 의심을 품게 했었다.  그래도 좋은쪽으로 생각을 다져 먹었다.  표고버섯 아니면 능이 버섯이라고.
하늘도 무심하셔라.   저녁이 되면서 바람이 불기 시작하더니 비까지 내려가면서 기온이 더낮아졌다. Lunar는 자기의견을 무시했기 때문에, 절호의 찬스를 놓친것이 못내 아쉬운듯이 연신 나를 못마땅하게 쳐다보곤 했다.   확실히 하기위해 은수저와 따온 버섯을 비닐봉지에 넣고, 평소 시험해 오던데로 했는데, 은수저는 색갈이 변함없이 그대로 인것을 확인하면서 나도 후회를 속으로만 했었다.  만약에 독버섯이었다면 저녁밥상에 찌개에 넣어먹은 후유증으로 병원신세를 져야 했을 것임을 알면서도....
이튼날 약속데로 골프를 취소하고, 다시 그곳으로 달려갔었다.   간밤의 비에 젖어있긴 했어도 여전히 싱싱하게 그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다.  아마도 어제와 오늘이 최적기였던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주립공원안의 소나무숲속에는 지금은 적막하기만 하다.  모든 소풍객들이나 캠핑객들도 지금은 자취를 감추고, 어느면에서는 음산하기만한 느낌마져 든다.
같이 붙어있는 버섯은 Spore를 서로 뿜어내어 하얗게 갓이 덮여 있는것도 간혹 보인다.  스템을 잡고 꺽을때는 똑 소리마져 들린다.  약 40분 채취했는데  너무나 엄청나게 쇼핑백과 플라스틱백으로 가득하다.  둘이서 양손에 여러백을 들고 두번씩이나 차로 운반했었다.  며칠전에 들렸을때는 아주 조그만  Puff Ball 버섯이 풀밭에 고개를 들고 나오는것을 보았었는데, 그놈들은 우리보다 먼저 온 사람들에게 다 잡혀 가버려서 허탈해 했었는데, 대신에 이렇게 엄청난 좋은 버섯을 만난 것이다.
확실히 하기위해 Naver를 찾아 Search했는데,  능이버섯 아니면 표고버섯인것으로 확신을 하게된것이다.  버섯이름이 대수가 아니기에  따온 버섯을 둘이서 손질하여 스템을 떼어내고 위의 머리부분만 모았다.   방바닥에 천을 깔고 말리기위해 펼쳐 놓았는데도 자리가 모자라, 다시 우리부부의 침실이 있는 방바닥에 남은 버섯을 펼쳐 말렸다.   밤새 Heating을 25도로 고정시켜놓고 약 10시간을 말렸는데, 생각보다 빠르게 많이 건조되였다.
다음날 다시 또 그곳을 찾았는데 아뿔사 새롭게 솟아나온 버섯은 없고, 어제 미쳐 손이 미치지 못했던 버섯들이 가끔씩 눈에 띄었으나 너무나 늙어서 손대고 싶지않은 기분이었다.   버섯채취는 적시에 맞춰야 한다는것을 체험으로 배운것이다.  역으로 계산해보니 약 5일간정도가 절정이었던것 같다.  용케도 우린 그마지막 배를 타고 멋진 항해를 한셈이다.
더이상 시간을 기다리면서 건조시킬 시간적 여유가 없어,  아직 덜 건조된 상태에서 비닐봉지에 나누어 담고, 밀봉한뒤  Freezer 에 전부넣고 얼렸다.  내년도 시즌이 되면 다시와서, 여름철을 보내면서 그때 꺼내 먹을 생각에서 였다.   하룻밤 건조시키는데,  버섯의 냄새가 아주고약해서 나 개인적으로는 별로 호감이 안가는데, Lunar 는 애지중지 손질에 여념이 없었다.
고국의 웹싸이트에 올라온 버섯들에 대한 블로그를 여러개 찾아 보았었다.  우리처럼 이렇게 자연산 버섯을 많이 채취한 블로거들은 없었던것 같다.   어느 블로거는 능이버섯 1킬로에 13만원 하는것을 보았다는 내용도 보았다.  만약에 우리가 채취한 버섯을 저울에 올려 놓는다면 족히 최소한 10킬로 이상은 됐을 것이다.   값에는 전연 관심이 없다.  다만 천연의 소나무숲속에서 이렇게 많은 표고버섯(?) 아니면 능이버섯(?)을 귀중한 버섯인지도 모르면서 무심코 채취할수 있는 자연속에서 그향내를 즐겼다는 그스릴이, 버섯을 요리해먹는다는것보다 더 기억에 남을것 같다.

여름철 Cottage생활을 접고,  오늘 토론토  본가로 내려 오면서,  Freezer에 어제 보관했던 버섯중에서 한봉지도 꺼내 짐에 꾸려 넣었다.   Lunar의 버섯넣고 끓인 찌개와 프라이한 버섯맛을 최소한 두번을 느낄수 있을것 같다.   카나다의 넓은 자연에 감사.

공식석상에 나타나지 않는 김정은, 북에 무슨일이....

김정은에게 무슨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어떤 미디아는 Coup가 일어난것 아닌가?라는 추측 보도를 하는가 하면, Gout가 일어나 그의 행동을 방해하고 있는것 아닐까? 라는 추측도 난무하다.   서방세계의 언론은 항상 북한 정권의 리더에 관심을 모으고 있다.  그것도 평양발 기사가 아니고 주로 서울발 기사를 쓰고 있다.   영국같은 나라는 평양에 상주 공관도 있는것으로 알고 있다.  현지 공관을 통한 뉴스를 전하면 오죽 신빙성이 많을까?  

또 신기하면서도 의아심을 갖게 하는것은 미국을 비롯한 서방세계의 첩보망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빠르고 정확하다는 증거가 바로 오사마빈라덴 같은, 숨어서 알카에다를 지휘했던 인물을  찾아내 박살낸것만 보아도 수긍이 가는데.......
BBC의 서울주재원 Steven Evans 기자는 노동당 창건일에 그의 모습이 보이지 않은점을 매우 관심 있게 보고 있는것 같다.

                                          http://www.bbc.com/news/world-asia-29563837

http://www.cnn.com/2014/10/10/world/asia/kim-jong-un-north-korea/index.html?hpt=hp_t4


북한 노동당 창건일의 중요한 행사에 북한정권의 수장 김정은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 많은 추측을 낳고 있다고 한다.

금요일 열린 노동당 창건일 행사후 김일성이 안치되여 있는 Mousoleum 방문자 명단에 김정은의 이름은 빠져 있었다,   오늘현재 김정은의 공개석상에서 사라진지 꼭 한달이 도여가고 있는데,  이는 2011년 정권을 인수 받은이후 가장 긴시간 공개석상에서 사라진 사건이다.

북한의 공식 TV는 지난달, 건강상태가 안좋아 불편해 하고 있으며, 바로 그후에 공개 석상에 절름 거리는 모습을 보여 주었었다.  금요일, 남한 정부는 김정은이 아직도 건재하며 북한 정권을 장악하고 있는것으로 믿고 있다고 발표한바 있다.

"김정은이 정상적으로 북한을 통치하고 있는것으로 본다. "라고 통일부 대변인, 임병철씨는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설명하면서, "그의 자세한 건강상태에 관해서 우리 정부는 아직 어떤 확실한  정보를 갖고 있지 않다"라고 끝을 맺었다.

건강에 이상이 있다는 신호인가?

금요일 북한의 고위 관리들이 69주년 노동당 창건일을 기념하기위해, 죽은 김일성과 김정일의 시신이 안치되여 있는 금수산 궁전을 방문 했었다.  지난 3년동안에 처음으로 방문자의 명단에 김정은의 이름이 빠진 것이다.

그의 아버지 김정일로 부터 2011년 정권을 물려받은 젊은 지도자 김정은이 지난 9월3일 이후로 공개석상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그가 공개석상에 얼굴을 내밀지 않음으로 해서 그의 건강악화설과 아니면 정권싸움에서 밀려난게 아닐까?라는 의구심을 증폭 시켜오고 있다고 하겠다.

Steve Evans, 서울주재 BBC특파원의 분석은 다음과 같다.

김정은이 공개석상에서 자취를 감춘것은 그에게 예상치 않았던 일이 벌어지고 있는것은 아닐까라는 의구심이 증폭되고 있다는 점이다.   북한의 동향을 주시하고 있는 전문가들은 혹시 그를 권좌에서 몰아내기위한 쿠데타가 일어났을 것이라는 추측을 일축하고 있다.  그이유로는 군대의 이동이 탐지되고 있지 않기 때문이며,  북한의 방송매체는 여전히 최고 통치자를 추겨 세우고 있는 선전이 계속되고 있다는 점을 들었다.

토요일에 북한의 고위층들은 김정은 지도자의 도움으로 아시안게임에서 선수들이 좋은 성적을 낼수 있었다고 그의 공로를 칭찬 했으며 그의 최측근 멤버들이 서울을 깜짝 방문하게 한 그이면에는 그가 직접 지시했다는 얘기들이 돌고 있다.   그는 아파서 분명히 병상에 누워 있는것으로 추측되지만, 권좌에서 쫒겨났다는 뜻은 아닌것 같다.

남한의 호외뉴스는 확인되지 않은 소식통을 인용하여 31세의 김정은이 과체중으로 관절통 아니면 통풍을 앓고 있는것으로 분석보도 했다.  김정은의 행방에 대한 추측이 난무하면서,  로이터의 통신원 James Pearson은 금요일 북한의 신문에 '김정일'의 이미지를 조명한 내용을 트위트 하면서, 그는 이제 권좌에서 쫒겨난 존재라고 했다.

"오늘 발간된 북한의 주요 신문들의 전면에는 김일성, 김정일에게 충성을 다짐하는 사진들이 실렸으나, 김정은의 사진은 없었다."라고 남한과 북한을 전문적으로 취재하는 Pearson씨가 설명하고 있다.

북한정권에서 일했던 전직 고위 관계자가, 최근에 주장한  내용을 연결시키면서, 북한 정권에서 김정은 정권의 제2인자가 전면에 등장한 것은  김정은이 이미 권좌에서 축출됐을 것이라는 설을 뒷받침하고 있다.   김정은 정권의 제 2인자이며, 군총참모장을 맡고 있는 '황평소'의 전면등장을 잘 분석해 보아야 할것 같다.

아시안게임 폐회식에 북한의 고위층들이 황의 인솔로 서울을 다녀왔으며, 이는 남과 북사이에    거의 없었던 고위층회담을 하기위한 기회를 이끌어 내기도 했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에 대한 뉴스는 확인된 내용은 아니다.

황평서의 서울방문을,  북한 관영 미디아가 김정은의 리더쉽을 전면에 다루는것과 연결시키면서,  남한의 관계자들은 금요일 아직 김정은이 권좌에 있다는 증거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김정은이 공개석상에 나타나지 않은것은 이번이 첫번째는 아니다.  2012년 3월에도 김은 21일 동안이나 대중앞에 나타나지 않았었다.  그리고 같은 6월에는 24일동안 보이지 않았었다.

2013년 1월에는 18일 동안이나 잠적 했었다.



Tuesday, October 07, 2014

시베리아의 북한 벌목공들, 수용소내부 일상생활 탐방은 취재거부로 불발. 공감이 가서.

시베리아의 중앙지대에는 북한당국이 건설해 놓은 감옥과 같은, 북한에서 끌려왔거나 외화벌이를 위해 파송되온 벌목공들이 언제 자유의 몸이 될지도 모르는 무한대의 기다림속에 오늘도 벌목에 나서고 있다고 한다.

캐나다에 Head office를 두고 있는 VICE NEWS의 Shane Smith 기자가 거의 한달에 걸쳐 기차를 타고 그곳까지 들어갔었으나, Labor Camp안을 볼수 있는 허락은 해주지 않아 주위에서 돌면서, 다른 route를 현지 안내원인, former 갱단의 두목이었던 자를 Driver로 채용하여 Camp 안에 진입을 시도 했었다.  문전에서 거절 당하면서도, 그들의 시선을 피해 목숨걸고 촬영한 내용들을 그가 1부에서 7부까지 Documentary로 만들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awQDLoOnkdI&index=1&list=PLBA9D6F13DEBC3D9E

처음에 그는 북한을 방문하여 경외하는 김일성 동상앞에서 그들이 요구하는데로 절도하고....
마스게임도 보고,  또 자동차를 타고 달리면서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를 거의 한대도 구경도 못할 정도로 텅텅빈 도로였었다.

그리고는 바로 비행기를 타고 쏘련의 극동 도시 Kabarovsk로 날아가 그곳에서 28시간이 넘게 기차를 타고 본격적인 시베리아 Labor Camp탐방에 나선 것이다.  그곳에는 북한 정권에서 필요로하는 외화를 벌어들이기위해, 강제로 보낸 북한출신 벌목공들이 외부세계와 차단된채 노동캠프생활을 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기차에서 보내는 지루한 시간을 이겨내기위해 Shame Smith를 비롯한 일행들은 독한 보드카 술을 마시고 술에 취해가면서 여행을 한것이다.

북한에 체제하는 동안에 그들은 호텔밖에 마음데로 돌아다닐수가 없었고, 꼭 비밀경찰이 밀착했으며, 주민들과의 대화도 엄격히 통제 됐었다고 한다.  북한관광은 관광이 아니고 정부가 지시하는데로 정해진데만 구경해야 하며 그것도 혼자는 안되고 감시원의 지시에따라야 했다.

Shane Smith기자의 설명에 따르면, 이북을 방문하는것은 그들이 요구하는데로 들어주어야 가능하며, 외부출입은 절대로 혼자 허용한되며 꼭 감시원,통역원 그리고 비밀경찰이 동행해야 했고, Cell phone,컴퓨터 그리고 래디오를 비롯한 문명의 이기들을 휴대할수 없도록 사전 조치를 했었다고 한다.

초기 화면에서 보여주는 판문점 북한 판문각과 남북협상장소인 건물들의 모습도 보여 주었는데 몇년전 판문점 방문했을때 느꼈던 경색된 분위기를 또 다시 느낄수 있었다.

시베리아에 있는 북한 벌목공들이 생활하는 그들의 숙소를 방문 할려는 일념으로 장시간의 기차여행을 했었는데, 문전에서 막혀 버려 실질적으로 벌목공들의 생활상은 목격할수 없었다고 한다.  그들을 만나서 취재 할려고 했던 꿈은 완전히 깨져 버린것이다.

취재거부를 한것을 보면, 북한내에 있는 노동수용소나, 정치범 수용소에서 벌어지고 있는 참상이 이곳 시베리아 벌목공 수용소에서도 벌어지고 있다는 증거로 이해된다.

인간의 탈을 쓴 악마들의 만행은 언제쯤 끝이 날까? UN이 있으면 뭘하나?  NATO가 있으면 뭘하나?  이웃국가들과 동맹을 한들 무슨 소용이 있는가?  다 허공에 대고 짖어대는 Hyena보다도 못한 말작난에 불과한, 여름에는 냉방으로 시원한 Banquet Hall에서, 겨울에는 난방이 잘된 Grand Ball Room에서 행동이 없는 말잔치 벌이는 것으로 그들의 임무를 다 한것처럼 떠들어 대는  Hipocrites.....

남북한간에는 곧 고위급 회담이 개최될것 처럼 미디아는 광고를 해대고 있다.   이산가족 상봉을 첫번째 의제로 삼을 모양인데..... 상봉하고 나면 마음만 더 아픈 깊은 상처를 주곤 해왔음을 모두가 잘 알고 있는데.....  고위급 회담이 열린다고해서 Labour Camp에서 희망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는, 진짜 제일 먼저 구출해야될,  억울한 그사람들에 대한 언급이나 회담은 언제 햇볕을 볼수 있을까?  Hipocrite들이 이동영상을 좀 보았으면 하는 간절함이 깊어진다.



Monday, October 06, 2014

노벨 생리 의학상,3명의 뇌의 활동 GPS 발견학자에게 수여 확정 발표.

 인류의 건강 지킴이로 평생을 노력해온 과학자 3명의 노벨 의학상 수상은 어쩌면 때늦은 감이 있다.  한과학자는 1971년도의 연구노력한 결과가 인정받아 거의 반세기가 지난, 이번에야 공로를 인정 받은것으로 이해된다.  그분들의 노력 덕택에 전인류가 조금씩이나마 불치의 병으로 부터 치료방법의 실마리를 찾고 있다고 하겠다.

한국출신 과학자들도 추천 명단에 약간명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 졌었는데, 그분들의 연구업적도 시간이 지나면 더 빛을 발휘하여 수상자의 대열에 오를것으로 믿고싶다.

http://www.bbc.com/news/health-29504761#"

Nobel winnersEdvard Moser, May-Britt Moser and John O'Keefe share the Nobel Prize


Novel Prize 상 위원회는 생리의학 부분의 수상자로, 뇌활동의 GPS로 불려지는, 활동체계를 발견한 3명의 과학자들에게 수여하게 됐다고 발표했다.  
두과학자는 부부로 공동연구한 공로를 인정받은 것이고, 영국에서 연구하고 있는 John O'Keefe 과학자는 공적이 뒤늦게 인정되여 이번에 수여받게 됐다고 한다.
그들의 연구내용은 뇌가 어떻게 현재 내가 있는곳을 알아내서 기억하고, 다시 현재 있는곳에서 다른곳으로 이동하는 경로를 GPS 처럼 추적할수 있는가를 알아낸 것으로, 앞으로 Alt Heimer's 질병과 Dementia 환자들을 치료하는데 많은 도움을 줄수 있을것으로 그연구 공로를 인정한 것으로 보인다.
The Nobel Prize for physiology or medicine has been awarded to three scientists who discovered the brain's "GPS system".
UK-based researcher Prof John O'Keefe as well as May-Britt Moser and Edvard Moser share the award.
They discovered how the brain knows where we are and is able to navigate from one place to another.
Their findings may help explain why in Alzheimer's disease patients cannot recognise their surroundings.
"The discoveries have solved a problem that has occupied philosophers and scientists for centuries," the Nobel Assembly said.
Inner GPS
Prof O'Keefe, from University College London, discovered the first part of the brain's internal positioning system in 1971.
He showed that a set of nerve cells became activated whenever a rat was in one location in a room.
A different set of cells were active when the rat was in a different area.
Prof O'Keefe argued these "place cells" - located in the hippocampus - formed a map within the brain.
In 2005, husband and wife team, May-Britt and Edvard, discovered a different part of the brain which acts more like a nautical chart.
These "grid cells" are akin to lines of longitude and latitude, helping the brain to judge distance and navigate.
The work at the Norwegian University of Science and Technology in Trondheim.

The Nobel committee said the combination of grid and place cells "constitutes a comprehensive positioning system, an inner GPS, in the brain".
They added: "[This system is] affected in several brain disorders, including dementia and Alzheimer's disease.
"A better understanding of neural mechanisms underlying spatial memory is therefore important and the discoveries of place and grid cells have been a major leap forward to advance this endeavour."
'Cognitive revolution'
Dr Colin Lever, from the University of Durham, worked in Prof O'Keefe's laboratory for ten years and has already dreamt on two occasions that his former mentor had won the award.
He told the BBC: "He absolutely deserves the Nobel Prize, he created a cognitive revolution, his research was really forward thinking in suggesting animals create representations of the external world inside their brains."
"Place cells help us map our way around the world, but in humans at least they form part of the spatiotemporal scaffold in our brains that supports our autobiographical memory.
"The world was not ready for his original report of place cells in 1971, people didn't believe that 'place' was what best characterised these cells, so there was no great fanfare at that time.
"But his work on hippocampal spatial mapping created the background for discovering grid cells and with grid cells, the world was prepared and we all thought wow this is big news.
"Plus John taught the Mosers how to do these recordings!"
Also commenting on the announcement, Prof John Stein form the University of Oxford, said: "This is great news and well deserved.
"I remember how great was the scoffing in the early 1970s when John first described 'place cells'.
"Now, like so many ideas that were at first highly controversial, people say 'Well that's obvious!'"

러시아에서 '영어' 가르치면서 목격한 한심한 치안공백.

The town of Irkutsk in Siberia, Russia.

낯에는 러시아정부가 통치하고 밤에는 마피아 조직이 주인행세를 하는 러시아의 요즘 세태를
주위에서 가끔씩 듣곤 했었다.   오늘 또 이뉴스를 접하면서, 러시아에 대한 여행을 다시한번 생각해 보아야 할것 같다는 생각이든다.  원 세상에 이럴수 가 있단 말인가.  한 영어선생의 경험담을 보면서, 주민들은 이미 그러한 현실에 숙달되여 있다는 느낌이다.

http://www.theglobeandmail.com/life/travel/destinations/an-ak-47-was-at-the-door-and-no-one-in-my-class-blinked/article20824310/

내가 러시아의 긴긴 겨울철에 시베리아지역의 Irkutsk에서 영어를 가르치면서 겪었던 희한한 하루의 경험은, 내가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빌딩이 갑자기 '러시아 마피아'조직에 점령당한 날이었다.

내가 십대들을 상대로 영어를 가르치고 있는데 갑자기 한사내가 교실문을 두드리더니 이내 응답을 듣지도 않고 교실안으로 들어와 수업은 중단되고 말았다.  그사내는 위장복을 입고 그들 조직을 나타내는 마크를 옷에 달고 있었는데, 분명 그는 경찰관은 아니었다.  그는 어께에는 AK-47자동 Machine Gun이 매달려 있었고,   그는 나를 응시 하더니 손짖을 하는게 아닌가.

"모두 밖으로 나가" 라고.

나는 갑자기 당한일이라 덜덜 떨면서 대답을 할수가 없었다.  그러나 학생들중 한명의 여자 아이의 얼굴에 조준된 총구를 의식하면서 그녀가 나대신 대답을 해 주었다.
"10분만 시간여유를 주시지 응"라고 여자 아이의 신경질적인 요구에 그파란색의 위장복을 입은 사내는 아무일이 없었던듯이 교실을 떠났다.

이광경을 본 나는 "이것 어떻게 되는거야?" 라고 학생에게 고개를 돌렸는데, 그녀는 그져 어깨만 들썩 거렸고, 우리는 수업을 무사히 마칠수 있었다.

수업이 끝난후 나는 교실밖으로 나갔는데, 곧바로 약 6명 정도의 제복을 입은 사내들이 어깨에는 Kalashnikov 소총을 걸머지고, 대기하고 있는것을 발견했다.

나를 포함한 학생들 모두가 교실앞문으로 나가자, 그들은 기다렸다는듯이 문을 잠가 버리고 그앞에 지켜서 있는 것이었다.  나는 곧바로 내 Boss에게 전화를 하자, 내보스는 사내들중 한명과 통화를 한후 다음과 같이 나에게 얘기를 했다.
"흠...오늘저녁은 수업을 할수 없게 됐구만,  미안하지만 다음반 학생을 기다리고 있다가, 그들에게 오늘은 수업이 없게됐다고 설명해주시요"라고.

그날 저녁에 나는 학생들을 기다렸다.  성인학생 한명이 학교에 와서 문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사내들과 얘기를 하면서, 어떤일이 일어났었는가에 대한 설명도 있었다.  이건물의 주인이 이들이 건물을 지켜주는 대가를 지불하지 않아, 마피아들이 대가대신에 이건물을 접수한것알았다.

"그래서... 불법이 아니라고?"라는 나의 질문에 성인학생은 이것은 불법이 아니다라고 완전히 의아스러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러면서 그는 입가에 미소를 띄고, "수업이 없으니 맥주한잔 마시고 옆에 흐르는 강가를 산책이나 해야겠다"라고 얼버무렸다.  나는 이광경을 보면서 굉장히 내몸이 아픈것 같고,  격분을 하지 않을수 없었다.  또한 내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아무렇치도 않은것 처럼 하는 표정이 매우 이상하게만 느껴졌었다.

다음날 아침,  내가 담당하고 있는 클라스의 학생들에게 조심하라는 얘기를 해줄려고 기다리고 있었다.  쌍둥이 형제인 Filip과 Nikita가 왔기에 오늘은 수업이 없다라고 했더니 아이들은 히쭉 웃기만 했다.  이들은 소총을 어깨에 짊어지고 밖에서 지키고 있는 사내들을 보더니 기쁨에 찬 큰 웃음을 짖는것 아닌가.

"Kalashnikov"를 외쳐 댔다.   고용된 얼간이들이 사람을 죽이는 무기를 자랑스럽게, 웃고 있는 아이들에게 보여주는것을 보고 있는데 그들의 엄마는 미소를 짖기만 했다.  그들은 바라다 보고만 있을뿐 밀어내지를 않는것을 보면서, 이런 멍청한 행동들에 나는 뒷통수를 맞는 기분이었었다.

이러한 광경은 러시안들의 또 다른 하루의 생활상이라고 하겠다.  이러한 것은 러시아의 추운 날씨, 부패한 경찰 또는 계속 천정부지로 값이 치솟는 그로서리 쇼핑을 하는 것이나 같은, 극히 정상일뿐 하나도 이상한것이 아닌것을 알았다.   며칠후 불량배들에게 대가를 지불한후 다시 평상시 처럼 일자리로 되돌아가는것을 보면서 나는 매우 슬픈감정을 억제할수 없었다.


Sad that Russia does not strive to build, and protect a middle class. Purely from an economic viewpoint it is the best move to make,, ( I'll set aside the humanity of all this for now) 
Instead, elites profit and the middle is hollowed out.
Sad that Russia does not strive to build, and protect a middle class. Purely from an economic viewpoint it is the best move to make,, ( I'll set aside the humanity of all this for now) 
Instead, elites profit and the middle is hollowed out.

Sunday, October 05, 2014

중국, 베이징의 길고 웅장한 대운하(Grand Canal)를 아시나요?

나의 경우 중국본토 관광은 여러번 했다.  언뜻 기억에 떠오르는 지역만 해도 항주, 소주, 상하이, 시안, 장가게,베이징, 삼국지의 주인공인 유비,관우,장비의 사당이 모셔져 있는 청도, 군밍, 세계의 지붕인 티벳,  마카오와 접하고 있는 주하이 그리고 일반 여행사들이 관광상품으로 시도하지 않고 있는 오지인 남부지역의 월남, 태국과의 국경지대들이 떠 오른다.  그런데 항주에서 부터 시작된 운하(Canal)가 수도 베이징 외곽까지 연결되여 있다는, 장장 1,794키로미터의 대 운하가 현재 거의 잊혀진 상태에서 주요 지역 주민들의 Leisure 수단으로 운용되고 있을 뿐이라는 새로운 뉴스를 접하면서, 중국에 대한 탐사여행을 수박 겉핱는식으로만 했구나 라는 허탈감에서 한참을 벗어나지 못했었다. ...... 허긴 세계에서 제일 빠른 고속 철도가 달리고 있는 중국의 고속 발전에 운하는 제자리를 넘길수 밖에 없었을것 같다.  
중국이라는 나라는 파고들면 들수록 더 비밀속으로 빠져 드는 느낌을 품게할 뿐이다.


http://www.bbc.com/travel/feature/20140930-beijings-extraordinary-grand-canal

베이징 시민들에게 내가 시내 구경을 할곳을 물었었다.  그들은 한결같이, 자금성은 물론이고, 천안문 그리고 만리장성이 자연스럽게 언급된다.

그리고 나서 나의 마지막 구경할곳 - 만리장성처럼 중국을 상징하는것은 물론이고, 임금들이 거주했던 자금성, 그리고 역사적 의미가 많은 천안문광장 - 에 대한 질문에 그들은 잠시 생각에 잠긴다.   "아마도 대운하?"가 아닐까 오히려 반문한다.  "정말입니까?"

만약에 베이징 시민들이 대운하를 알지 못하고 있다면, 관광객은 당연히 모를수 밖에.
운하는 중국의 남쪽지방에서는 관광코스로 잘 알려진것들중의 하나이다.  이운하에는 바지선, 관광선들이 2,500년이 넘는 루트를 따라 오르 내린다.

그런데 북쪽의 항조우에서 천안문광장의 서쪽 35킬로 지점에 있는 Tongzhou라는 베이징외곽에 도시까지 1,794킬로나 되는 긴 운하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극히 드물다는 것이다.
Xitang의 대운하에서 보트쿠르스하는 모습.

그러나 중국의 역사에서 이곳보다 더 중요한 지점은 거의 없다고 할수 있다.  즉 지구상에서 가장길고, 인간이 만든 가장 오랜역사를 간직한, 스에즈운하보다 9배가 더 긴 운하이다.  이런 중요한 운하가 없었더라면 베이징은 오늘날 중국의 수도로서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운하가 없는 중국은 오늘날의 중국이 될수 없었을 것이다.  왜 그럴까를 알기위해서는 2014년 6월에 UNESCO에서 이대운하를 인류유산목록에 등재시킨것을 보면 이해할수 있다.

이곳 사람들이 이운하에 대해 의아해 하더라도 나는 그것과는 상관없이 보고 말것이다.

4차선이 양방향으로 건설되여 있는 고속도로 103를 따라 서쪽으로 달리면서 우린 수많은 빌딩들이 들어서고 있는것을 보았다.  사람들은 스쿠터를 타고 가면서 그들의 iphone을 체크한다. 콩크리트 믹서 차량이 그뒤를 따른다.  우리가 다리위를 달리면서, 나는 밑으로 물이 흐르는것을 보았는데 금새 사라지고 마는것을 목격했다.

이렇게 길고 큰 대운하가 오늘까지도 현지주민들에게는 잊혀진것쯤으로 여겨지고 있는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지만, 여기서 지금도 일하고 있는 사람들은 그들의 조상들이 해오던데로 묵묵히 전통속에서 일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즉 지구상에서 이렇게 큰 규모의 프로젝트에 인간의 모든것을 투자한 것을 본적은 한번도 없었다.  이운하를 건설하기 시작한것은 BC 48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나 오늘날에 보는 웅장한 운하로 모습을 나타내기 시작한것은 7세기경에 있었던 대규모 확장공사가 있을때까지는 미미했었다. 서기 605년에 1,000키로미터의 공사를 Luoyang에서 Qingjiang( 지금은 Huaiyin으로 불린다)했었고, 다시 3년후에는 오늘날의 베이징까지 1,000킬로미터를 더 팠었다. 610년에는 Zhenjiang에서 Hangzhou까지 400킬로를 더 팠다.
                                  운하를 따라 이어진 공원의 잘 다름어진 도로와 산책로.

이운하를 건설하는데 약 3백만명 이상의 가난한 농부들이 착출됐었다고 한다.  그들중 절반정도는 심한 노동과 굶주림에 지쳐 목숨을 현장에서 잃었다고 한다.  운하를 미관상 더 좋게 보이도록 하기위해,13세기에는 대대적으로 인력을 동원했었다고 한다.   1271년에 Kublai Khan이 제국의 수도를 베이징으로 옮길때,  구수도였던 Kaifeng 또는 Luoyang으로 연결되는 필요성을 알면서도 무시해 버리고, 대신에 그는 항조우로부터 베이징에 이르는 1,794킬로미터의 운하를 직선으로 건설하도록 지시했다고 한다.

이공사를 마치기위해 10년 동안에 4백만명 이상의 노예들을 동원했다고 한다.  UNESCO자료에 따르면 이운하는 산업혁명이 일어나기 전까지의 건설공사에서 '세계최대의 토목공사'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대부분의 다른 루트와 마찬가지로,  이운하는 여러가지의 목적이 있었는데, 그목적 모두가 오직 왕조를 위한것이었다.  그들중 하나가 식량확보차원에서 였다.  즉 양자강 델타는 중국의 식량을 조달하는 곳이었다.  그러나 양자강은 서쪽에서 동쪽으로 흘러가는 강이었다.  그래서 중국의 통치자로서, 배고픈 지방사람들이 반란을 일으키는것과, 잘먹이지 못하는 군사들은 가난한 농부들과 또 외부로 부터 달려드는 침략자들을 제대로 방어할수없다는,  이러한 절박함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대운하는 (Kublai Khan의 대역사가 있기전) 양자강에서 나는 쌀을 황하강으로 수송할수 있는 바지선이 달릴수 있게 한것이고, 인근에 흐르고 있는 Luoyang과 Kaifeng 물줄기를 이용하여 서쪽에 있는 옛수도인 "시안"까지 수송할수 있도록 하기위한 것이었다.

한편 북쪽에서 재배되고 있던 밀(Wheat)은 남쪽으로 보낼수 있었다. 서기 735년까지 매년 1억 4천9백만 킬로그람의 밀을 운하를 따라 수송할수 있었다고 한다.  무명이나 도자기등을 포함한 다른 필수품들도 운하를 통해 교류가 되면서 중국의 경제적 활성화를 돕는데 일조를 했었다고 한다.  또한 운하는 정부의 모든 지시사항을 포함한 의사전달을 할수 있는 생명줄 처럼 요긴한 존재가 됐다고 한다.
오늘날에는 베이징에서 끝나는 대운하에는 생필품 운송하는 바지선이 아니고 유람선이 그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아래의 기사를 보면 더 재미있게 운하를 느낄수 있다.

A feat of modernity in itself, the canal led to equally extraordinary innovations. In 587, the world’s first lock gates were invented by the Sui Dynasty engineer Liang Rui for one of the canal’s original sections along the Yellow River; in 984, a transport commissioner named Qiao Weiyo invented the Grand Canal’s first pound lock – the lock that we see in modern canals even today, creating a pool with two barriers and allowing a boat to wait safely until the water level changes. (It wouldn’t be picked up in Europe until 1373, in Vreeswijk, Netherlands). 
Yet after railroads took over China in the late 19th Century, the canal was largely forgotten. Vast sections fell into disrepair. In 1958, the canal was restored. Today, some sections – particularly in the south – are plied by barges, mostly transporting construction material, while others remain unused. Here in Tongzhou, the section hadn’t been used for trade in years.
But the city seems to be rediscovering the canal’s merit. For the 2008 Games, an Olympic park was built along its shores; I could see the park’s white canopy rising from the fog like a Japanese crane.
And last year, the city built a new park: the Grand Canal Forest Park, which runs 8.6km on the north side of the canal in Tongzhou. On a Sunday morning, families pushed strollers and carried picnics beneath the park’s tree-lined walkways. Immaculate clusters of flowers and foliage grew, many with descriptive signs in both Mandarin and English. From a small amusement park, a carousel tinkled a tune. 
Grand Canal Forest Park, Beijing, China, Grand Canal
On a recent Sunday at the Grand Canal Forest Park, the carousel tinkled a tune. (Amanda Ruggeri)
Smelling the brine on the air, I wandered past the families, past the rides. And there it was.
The Grand Canal was wider than I’d expected, and stiller too.  Lotus flowers blossomed at the edges of the grey-green water. I couldn’t see a single skyscraper on the horizon. The only movement was a tiny boat, no more than a creaky platform with a sputtering outboard engine; its crew of three old men looked like they were trawling for fish. Floating in and out of the mist that hung thick in the air, they seemed like apparitions.
Grand Canal, Beijing, China
A tiny boat of fishermen sputtered along the canal. (Amanda Ruggeri)
At the dock, wooden boats lined up to take curious customers across. As mine puttered down the canal, another boat passed, this one without so much as an engine, just an operator rowing wooden oars. A handful of locals were on board for a Sunday outing. We waved at each other, and they smiled curiously: what was a tourist doing all the way out here?
Once, the canal had been proof that China was on the fast track. And I’d been drawn by its monumentality, its grandeur, its importance. Yet today, as Beijing builds bullet trains and underground metros, expands its airports and thrusts skyscrapers into the sky, the Grand Canal is anything but. It seems, instead, a symbol of a slower-moving past. And, if I could have, that’s what I would have explained to the perplexed passersby on the canal: in the end, my choice to come here was worth it not because the canal was as monumental as I’d expected – but because, on the scale of modern-day Beijing, it was less so. And that made it a refreshing stop.
The Beijingers I’d spoken to may have been right; today’s vast, almost empty waterway makes it hard to get a sense of just how extraordinary the Grand Canal once was, and how integral it was to China’s flourishing trade. But as Beijing races ahead, building modern monuments to commerce, industry and traffic, experiencing the canal – stepping outside of the rush, experiencing a place of lotus flowers and fishermen, faded pride and stillness – seems all the more poignant.

Saturday, October 04, 2014

김정은이 사라진 가운데, 북고위층의 깜짝 남한 방문, 그속내는?

남한을 포함한 서방 세계는 또다시 그들의 어릿광대 놀음에 놀아나는 바보짖을 하고 있다.  북측의 약속에 한두번 속은것도 아닌데, 또 몇주안에 고위급 회담을 열자는 제안에 손벽을 치면서 환영하고 말았다.  뭐가 있긴 한것 같은데....

이번 만남이, 남측에서 다시 북측에 퍼주는 구실을 만들어 준것이 아닐까?라는 생각뿐이다.
오랫만에 만나면 서로간의 안부를 묻는게 인지상정인데, 이번회담에서는 김정은의 안부를 묻고 대답하는 식의 언급은 전연 없었다고 한다.  과연 그만남에 진정성이 있다고 볼수 있을까?

나라간에 외교관례를 보면, 제2인자인 고위급 인사가 다른 나라를 방문하는데, 하루만에 모든 절차를 무시하고, 허락하고 영접한 기록은 없는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남측은 이를 받아 들이고 그들이 요구하는 항로를 이용하여 인천에 들어온 것이다. 이번 조치는 아무리 좋게 볼려고 해도 One sided game인것으로밖에 보여지지 않는다.

http://www.cnn.com/2014/10/04/world/asia/north-korea-officials-surprise-visit/index.html?hpt=hp_t2

http://www.bbc.com/new/world-asia-29489134

http://www.thestar.com/news/world/2014/10/04/north_koreas_no_2_official_visits_south_for_highest_level_facetoface_talks_in_5_years.html#

http://news.donga.com/Main/3/all/20141006/66981253/1

공식적으로 지난 2월이후 중단됐던 고위급 회담을 다시 재개 하기로 남측과 북측간에 전격적으로 합의 했다고 남측 관계자들이 발표 했습니다.

이번 합의는 인천에서 열리고 있는  아시안 게임의 페회식에 전격적으로 나타난 북측의 고위급 관계자들과 이루어진 만남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이번 북측고위관계자의 인천방문은 김정은의 심복으로 알려진 고위층이 중심이 되여 이루어진 것이  특이하다.  양측은 몇주안에 다시 만나기로 합의 했다고 알려지고 있다.

북한권력서열 2위인 황병서일행이 남측의 통일부장관 유길재와 토요일, 인천아시안게임 폐막식에 참석키위한 방문한후 회담을 하고 있다. 양측은 남북관계개선을 위한 고위급 회담을 조만간 열기로 합의 했다고 한다.

황병서는 총참모총장이다. 다른 두명은 조명래와 김양곤으로 이들은 조선노동당의 핵심 인물들이다.   이번 회담에서 어떤 얘기들이 오고 갔는지는, 양측에서 함께 함구하고 있기에, 자세하게 알려진것은 없다.

남북간에 관계개선 신호?

BBC의 서울 특파원 Stephen Evans의 분석에 따르면,  최근 몇년동안 일방적으로 남한을 비난해 오던 북측의 공격적인 태도를 변화 시킬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라는 추측을 하게 한다고 논평하고 있다.

남,북한간에 실질적으로는 4년넘게  아무런 공식적인 접촉은 없었던 상태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북측의 경제적 상황이 악화일로에 있는것으로 보이는 현상황이 이번 회담을 하게된 단초가 된것이 아닐까라는 통신원의 분석이다.

남,북한은 1950-1953 사이에 일어난 전쟁이 휴전으로 끝난 상태이기 때문에 군사적인 면에서는 아직도 전쟁상태에 있다고 할수 있다.   예상에도 없던 고위층의 갑작스런 회담은 북측의 김정은의 건강상태에 대한 의문이 꼬리를 물고 있는 상황에서 이루어진점을 주시해야 한다.

김정은 지난 9월 3일 이후 공식석상에 나타나지 않고 있다.   최근에 밝혀진 기록에 의하면 그의 모습은 불편하게 보이면서 절름발이 걸음을 하고 있는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UN주재 북한 대사, So Se Pyong은 지난 금요일 북한은 핵무기 개발계획에 대한 회담을 재개할 준비가 되여 있다는 설명한바 있다.  로이터 통신과의 기자회견에서 Mr. So는 북한은 미사일 발사시험이나 핵무기 실험을 할 계획이 전연 없다고 강조 했었다.

그는 북한은 2005년도에도 핵무기 개발계획을 완전히 포기 했다고 발표 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북한은 그약속을 지키지 않고 미사일 발사 시험과 핵무기 시험을, 2008년 회담이 결렬된 이후 계속 해 오고 있다.



Friday, October 03, 2014

이북의 참상 - 우린 풀뿌리와 진흙을 먹을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죽어야만 했다.

UN본부가 있는 뉴욕에서는 지금 총회가 열려 각국의 정상들이 다 모여 들고 있고, 조국 대한민국의 박근혜 대통령께서도 참석하여 한반도 향후 정책에 대해 연설을 하고, 각국정상들로 부터 우뢰같은 박수를 받았고,  이북의 외부장관은 Kerry 미국무장관이 주최하는 각국 외무장관 파티에 초청받지 못하고 퇴자맞는 촌극도 벌어지고 있다는 뉴스도 들었었다.

매년 유엔 총회는 열리고, 그외에 지역별로 각국의 리더들이 모여 좀더 평화스럽고, 자유스러운 분위기속에서 좀더 잘살아 볼려는 방법을 찾기위한 모임을 손가락으로 셀수 없을 정도로 많은 모임이 계속되고 있다.   북한 인권문제를 다루는 입법을 서방 각나라들은 입법화 시키면서 북한에 압박을 가하고 있지만, 정작 그 주인공이라 할수 있는 대한민국은 국회에서 입법은 고사하고 토론의제로 조차 선정되지 못하고 있는 안타까운 실정이다.  

우리의 상식으로 볼때는 죄없는 많은 북한 주민들이 수용소에 감금되여, 그곳에서 당하는 참상을 견디지 못하고,  인간말종들만이 할수 있는 만행으로 결국 목숨을 잃는, 생각하기도 끔직한 일들이 연일 이어지고 있다.   그런 참혹함속에서 운좋게 탈출하여 미국의 CNN에 실상을 고발한 내용이,  내머리속을 혼돈속으로 빠뜨린다.  

너무나 먹을것이 많아 불륵 배가 나온다고, 이를 줄이기위해 Fitness Club에서 땀흘리면서 운동하고, 거리를 정해놓고 걷기운동하고.... 북한주민들이나 수용소에 억지로 갇혀있는 사람들이 이런 광경이나 소식을 듣게 된다면 이해를 할수 있을까?  똑같은 생명들인데....

ISIS테러범들을 소탕하기위해 서방 세계는 연합 전선을 꾸려 그들의 기지를 폭격하고 현재는 지상군 까지 투입 할려는 작전을 세우고 있는것을 보면서, 왜 북한에 대한 조치는  Verbal Threatening뿐일까?  왜 행동에 옮기지 못하는 것일까?  계산된 서방세계의 보복과 응징이 뜻하고 있는 속뜻이 훤히 보이는것 같다. 




http://www.cnn.com/2014/02/16/world/asia/north-korea-un-report/

조사에 조사를 하고, 정말로 사람 괴롭히고, 계속되는 지옥이 따로없는고문이었다.

북한의 죄수들 수용소에서 살아나온 한 목격자의 진술에 따르면, 한 임신부가 거의 배고픔으로 아사직전에 있으면서 아이를 분만했는데, 그아이는 세상의 모든 신생아들이 누려할 모든 조건에서 반대되는 수용소에서 태어난 것이다.  감시원은 어린아이가 울음을 그치지 않고 산모는 아이를 낳았다는 죄명으로 두들겨 패대는 광경을 목격했었다고 고백했다.

산모는 계속해서 괴롬을 당하면서도 아이만은 계속 같이 있게 해달라고 애원했지만 아랑곳 하지않고 계속 매질은 이어졌었다고 했다.   엄마는 떨리는 손으로 신생아의 얼굴을 아래쪽으로 돌려서 물속에 집어 넣도록 강요했고, 얼마후 아이의 울음소리가 그치고 신생아의 입으로 부터 물거품이 약간 흘러 나왔던 참혹함을 털어놓았다.

11개월 동안 북한 인권의 참혹상을 조사하면서 있었던 참혹상의 한 '예'일뿐으로,  지난 월요일 UN 인권위원회가 발표한 보고서에 들어있는 내용이다.

유엔인권위원회는 북한은 인권을 말살하는 범죄행위를 계속해서 저지르고 있다는 결론이다.
인권위원회는 식량, 수용소의 참상, 고문과 비인간취급,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감금시키는일,
신분에 따른 차별, 표현의 자유, 생명의 존엄성, 인권의 개선,  주민들을 쥐도새도 모르게 납치하는 행위를 포함한 비밀감금 등에 대한 이슈들에 조사를 한후 보고서를 만든것이다.

위원회는 고문내용, 다른 나라의 국민들사이에서는 있을수도 없는 무자비한 북한 주민들의 괴로운 실상을 폭로하는 참상이 널리 퍼져가는 내용들이다.  이보고서는 유엔상임이사국의 하나이면서 이북과 최고로 가까운 동맹국인 중국이 인권을 누릴수 있는 행동들을 어떻게 방해하고 있는지를 보여줄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작년에 위원회가 만들어진 이후, 북한에 대하여 100명이 넘는 증인, 고문의 희생자 그리고 북한 전문가들로 부터 모은 조사와 증거, 위성을 통해 수집한 내용들을 조사해왔다.  일부 증언내용들은 비밀에 부쳐 외부에 발표를 안하고 있기도 한데, 이는 현재도 북한에 남아 있는 관련자들의 가족의 안전을 위해서라고 그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북한에 대한 전세계의 관심은 전에는 핵무기 개발에 초점을 맞추었었는데, 그러나 지금은 북한 주민에 대한 인권유린과 학대에 대한 자세한 보고서가, 3월에 'UN 인권위원회가  설립된이후, 계속 발표되자 그곳방향으로 관심을 모으는것 같다.

북한의 실상을 폭로한 많은 북한주민들에 의하면, 북한 정권의 학정에 시달리고 괴로워하면서 도망쳐서 살아온 그들의 어려웠던 삶을 알게된 것이라고 할수 있겠다.  북한당국은 해당가족들을과 후손들에게 가족중 한명이라도 잘못한게 그들에 의해 밝혀지면 무조건 엮어서 처벌을 하는, 소위 말해서 "연좌제 죄목"을 올가미 씌워 주민들의 인권을 유린하고 있다고 보고있다.

북한 평양 당국은 인권위원회의 존재자체를 부정하고 있으며, 조사에 협조, 또는 응하지도 않고, 계속해서 거부만 해오고 있는 것이다.  위원회는 북한 당국에 말하기를 북한에서 조사 할수 있도록 해줄것과  또한 관계자들을 초청해서 알고 있는 북한의 실상을 확인할려고 해도 계속 노력하고 있지만 .... 두고 볼일이다.

2013년 5월에 북한은 위원회에 "전체적이든 부분적이든 우린 위원회의 요구에 응할수 없다"라는 편지를 보내왔을뿐, 구체적인 답변도 없었다라고 유엔인권위원회 의장 Michael Kirby씨는 밝히고 있다.

Kirby가 위원장으로 있는 위원회는, 전 오스트랄리아의 고등법원판사 한명과, Serbia출신 Sonja Biserko씨 그리고 인도네시아 출신 Marzuki Darusman씨등 3명을 조사관으로 하겠다고 협조를 요청 했었다.

북한은 지난 8월에 그들의 선전매체인 KCNA를 통해, 위원회가 요청한 청문회가 "일종의 수박 겉핥기식 연극이요, 인간 쓰레기들의 증언청취일 뿐이다"라고 비난을 했을 뿐이다.

서울, 도쿄, 런던 그리고 와싱턴 DC에서 열린 청문회에서 탈북자들은, 남한의 연속극을 봤다는 죄목으로 감옥에 처넣는 처벌과 식구들의 배고픔을 달래보기위해 식량을 찾아 다녔다는 죄목으로 고문 그리고 감옥살이를 했었다고 실토했다고 한다.  많은 주민들은 결국 중국으로 도망치다가 붙잡혀 노동수용소에 끌려가거나,  북한 당국의 의심을 받고 있는 식구들을 구하기위해 수용소에 끌려가는것으로 그들의 꿈은 산산히 깨지고 만다고 증언했다.

"내가 할수있는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죽어가는 그녀에게 약한알 먹일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녀가 죽었을때 나는 그녀의 눈을 감겨줄수 조차도 없었다.  그녀는 눈을 멀건히 뜬채 생을 마감한 것이다.  이광경을 보면서 내가 할수 있는것은 오직 가슴이 찥어지는 통곡뿐이었다" - 지흥아씨의 증언에서,

북한의 노동수용소는 스탈린 시대에 있었던 Gulags에서 있었던 인권학대보다 두배 이상 지속되고 있으며, 나치 수용소때 보다 훨씬 더 길게 지속되고 있다.

수용소에서 같이 생활했던 한 증언자의 증언에 따르면, 북한 노동수용소에서 남자죄수가 너무도 배가 고파 그들은 야외 출장시 지렁이와 뱀을 잡아서 그들의 배을 채웠었다고 한다.

"우리는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는것을 보았기 때문에 그런 상황을 보통 일어나는 일쯤으로 여길수 밖에 없었다."라고 수용소에서 탈출하여 살아남은 탈북자가 위원회에 증언했다.  때로는 거의 죽어가는 사람이 먹을것을 찾아 보지만, 그런 상황을 너무도 많이 봤기 때문에 미안한 얘기지만 우리들에게는 아무렇치도 않게 느껴졌을 뿐이다.  옆의 죄수가 허기에, 그리고 아파서 죽으면 우린 그가 입고 있던 다 떨어진 옷조각을 벗겨서 우리가 입기도 했었다.  그러한 삶이 계속되고, 미안하지만 그렇게 많이 죽어 갔던 참상을 겪은 우리들이다.

탈북자 '지현아'씨는 위원헤서 증언 하기를, 그녀는 중국으로 탈출 했다가 붙들려 수용소에 끌려 갔었다고 했다.  그곳에서 한 어린 여성 죄수를 만나서 서로 친하게 지내면서 친자매처럼 지냈었다고 한다.  농장으로 출장나가 일하고 있으면서, 수용소에서 주는 식량으로는 허기를 채우기에는 너무도 적어, 풀뿔리를 찾아 캐어 먹었다고 진술하고 있다.

"일이 끝난다음 우린 주위의 풀뿌리나 먹을수 있는 나무줄기들을 수집할려고 할때 감시원이 우리를 봤습니다. 그는 쏜살같이 우리에게 달려와 우리들의 양손을 묶고 끌고가서 무릎을 꿇렸습니다."라고 증언했다.

그들은 우리에게 풀뿌리와 흙을, 죄지은 대가로, 먹으라고 욱박 질렀지요. 그것들을 억지로 먹은 Kim은 건강이 악화되여 설사를 하고 말았습니다.

"내가 할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약한톨 먹일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결국 눈을 멀건히 뜬채 죽었는데, 가슴이 찢어지는 통곡만이 내가 할수 있었던 일이었습니다."

그녀는 Kim의 시체를 플라스틱백에 넣었고, 다른 죄수들이 그백을 매장하고, 그녀와 함께 또 다른 20여명의 죄수들도 언덕에 함께 매장 했었습니다.



"우린 옆에 있는 흩어진 나무조각들과 얼어붙은 흙으로 그들이 묻힌 구멍을 메웠습니다.  그러나 약 일주일후에 그곳 무덤을 찾았더니 흔적도 없이 없어져 버렸고 시체 또한 보이지 않았습니다.  언덕을 향해 보면서 고개만 갸우뚱 할 뿐이었습니다.  우린 곧바로 수용소의 감시원인 한 늙은 노인이 감시용 개에게 그시체를 먹이고 있는것을 본 것입니다.  그는 5마리의 감시용 개를 기르고 있었는데 시체들의 모든 부분을 다 먹어 치운것입니다."  이러한 것들이 북한의 실상입니다 라고 Jee씨는 말합니다.

그녀는 다음과 같은 증언을 마지막으로 끝을 맺었습니다. " 나는 내가 살아 있다는게 챙피합니다.  여기에 서있다는것 자체가 부끄럽습니다.  지금도 그곳에는 많은 동료들이 같은 이유로 잡혀들어오고, 또 병들어, 배고파 죽고 있습니다.  그러나 살아남아야 겠다는 절박함 때문에 나만이 도망쳐 나와 있는 내자신에 죄책감을 많이 느끼고 있습니다."라고.

"나는 지금 죄수처럼 살아가고 있습니다.  내가 살고있는 이유, 그리고 남한으로 탈출해야 했던 이유, 거기에 더해서 내 자유를 위해 찾기위해 살아 남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나처럼 탈출에 성공하지 못한 동료들몫까지 살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다 죽은 사유가 있습니다.   죽어간 동료들의 넋이라도 편하게 하기위해서 나는 그들의 생명에 대한 책임을 피할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