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녀는 노벨 평화상을 공동 수상했는데, 지구상의 어느 누구로 부터도 비난을 받지 않을것으로 확신이 간다. 어떤 정치가는 평화상을 타기위해 적과의 동침도 마다 않고, 엄청난 자금을 동원하여 노벨상 위원들을 구워 삶았다는 루머가 지금까지도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있고, 동침한 적의 아들이 3년전부터 정권을 이어받아 세계역사상 그유례를 찾아볼수 없는 폭정을 하고 있는 이현실과 뚜렷한 비교가 되는데, 이를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 들여야할까? 그녀는 노벨평화상 수상소식을 그녀의 학교에서 화학강의를 듣다가 선생으로 이소식을 들었다고 한다. 이얼마나 깨끗하고 순수한가. 아직 자라고 있는 십대들 뿐만이 아니고 모든 지구상의 리더들, 아니 한국사회를 정치적 철봉을 휘둘러 국민들을 괴롭히고 있는 꾼들에게는 귀감이 되고도 남을 양심선언같았다.
http://www.bbc.com/news/world-europe-29564935#"
http://www.nytimes.com/2014/10/11/world/europe/kailash-satyarthi-and-malala-yousafzai-are-awarded-nobel-peace-prize.html?emc=edit_th_20141011&nl=todaysheadlines&nlid=59843044
약 2년전 파키스탄 서북쪽을 달리고 있던 만원버쓰에 올라온 탈리반소속의 무장괴한은 "누가 Malala 야?" 라고 소리를 치면서 그녀가 있는 곳을 향해 총을 난사하여 당시 15세로 아동들의 인권운동활동을 펼치던 Malala Yousafzai의 머리를 관통 시켰었다.
파키스탄의 어린 아동들의 교육홍보 전문가 Malala Yousafzai와 인도의 아동권익 운동가인 Kailash Satyarthi가 노벨 평화상 공동수상자로 선정됐다고 한다.
Malala는 노벨 평화상 수상이 굉장히 명예스러운 일이며, 평화상 수상으로 더많은 힘과 용기를 느끼게 됐다라고 소감을 피력했다. 그녀는 버밍함소재 학교에서 화학과목 강의를 듣던중 선생으로 부터 수상자로 선정됐다는 소식을 접했음을 고백하기도 했었다.
"나는 이평화상을 인도출신 수상자와 함께 공동수상하게된것을 무척 행복하게 느끼고 있습니다"라고 그녀는 인도출신 수상자 Mr.Satyarthi의 Surname을 발음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다고 조킹을 하기직전에, 기자회견에서 설명했었다.
노벨상 위원회는 아동들과 젊은 사람들이 억압을 받는 어려운 역경속에서 살아가는 환경을 개선해 볼려고 헌신한 두사람의 공로를 높이 추겨 세워 수상자로 선전했다고한다.
Mr Satyarthi씨는 마하트마 간디옹의 무저항식 전통을 유지하고, 아동들의 경제적 어려움을 개선해 볼려는 여러 조직들의 수장으로 헌신 했었다라고 오슬로에 있는 노벨상 위원회는 설명하고 있다.
올해 60세인 그는 Bachpan, Bachao Andolan 등의 어린아이들을 돕기위한 조직을 창설하여 그곳에서 아동의 권리와 인신매매를 막는 캠페인을 벌여왔었다.
수상자로 선정된 소감에서 Mr Satyarthi씨는 BBC와의 회견에서 "이번 평화상 수상은 나자신뿐만이 아니고 전인도인과, 기술과 시장그리고경제적으로 많이 발달한 시대지만, 아직도 노예생활로 살아가고 있는 어린 아동들에 대한 희망을 줄수있는, 영예로운 상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나는 이수상은 전세계의 어린 아이들에게 바치겠다"라고 다짐 하기도 했다.
"그녀의 영웅적인 투쟁"
노르웨이의 노벨상 위원회 위원장, Thorbjorn Jagland씨는 Malala가 수상자로 선정된 것에 경의를 표했다.
"아직 어린 소녀인데도 Malala Yousafzai양은 벌써 수년동안 어린소녀들도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음을 위해 싸워왔고, 또 어린아이들과 젊은 사람들도 그들의 어려운 상황을 개선하기위한 헌신을 할수 있음을 보여준 선례를 남겼다"라고 그는 설명했습니다.
"이러한 어려운일을 그녀는 정말로 어려운 역경속에서 해냈습니다. 그녀의 영웅적인 투쟁을 통해 그녀는 소녀들도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음을 항변하는 선구자적 대변인이 된것이다" 라고.
또한 노벨상 위원회는 파키스탄의 회교와 인도의 힌두교가 교육과 극렬분자주의에 반대하는 공통적인 투쟁을 하는데 합세하여 매우 중요한 역활했다고 설명했습니다.
버밍함에서 바라본 견해: Phil Mackie, BBC 기자.
그녀가 지난해 버밍함에 있는 도서관을 개관 했을때, Malala Yousafzai양은 그곳에 모인 관중을 향해 "나의 친구 Brummise"라고 그들을 애칭하는 재치를 나타내기도 했었는데, 그러한 언급은, 많은 사람들이 그녀는 이곳이나 아니면 그녀의 나라 파키스탄에서 정치적 삶을 살기위한 방향을 제시한 것이라고 믿음을 주기에 충분한 십대소녀의 훌륭한 행동이었던 것이다.
암살을 모면한후 어려운 환경속에서 지내다가 이곳에 도착해서 영국군인들의 치료를 중점적으로 시행하는 Queen Elizabeth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었다.
전장에서 부상당한 군인들을 치료해주곤 했던 경험으로 명성을 얻은 전문가들이 일하는 그곳에서 그녀가 치료를 받았다는것은, 치료에 최적의 장소를 의미하기도 한것이다.
그녀는 외래환자로 계속남아 치료를 받고 있다. 이제 병원측은 그녀의 신속한 건강회복과 매우활동적이면서 정신적으로 훌륭한 십대소녀로 살면서 충만에 찬 삶을 향한 매일 매일을 보내고 있다.
"파키스탄의 긍지 지킨 십대"
Malala는 2009년 그녀가 파키스탄의 서북지방에서 탈리반 반군의 통치속에서 살았던 내용을 일기로 써 BBC의 Urdu에 자기 이름을 밝히지 않고 무명으로 제출한 이후부터 세상의 관심을 받기 시작 했었다. 그녀는 Swat Valley에서 스쿨버쓰를 타고 있을때 총을 든 반군이 뻐쓰에 올라와서 쏜 총에 맞았었다.
자세한 내용은 위에 적은 링크를 연결해서 볼수 있다.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