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June 28, 2009

Albion Hills Trail Walk(Glen Haffy Conservation Area)

어제도 무척 더웠는데, 오늘도 27도 이상된다고 뉴스 미디어에서는 Smog Alert도 발표 하는것을 보면서 걱정을 좀 했었다.
모이는 장소에 도착했을때는 벌써 상당수의 회원들이 모여, 이미 Tim Horton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반가운 얼굴들이다.
같이 Car Pool를 해 오던 Walter와 Tanaka씨 부부도 얼굴이 보인다.
Trail Walk은 나무숲으로 가리워져 생각보다는 무덥지 않았고, 특히 미풍이 계속 불어와 걷기에는 정말로 안성마춤이었다.
회원들 모두가 나처럼 더워서 힘들것을 걱정 했었던것 같았는데, 모두들 미풍이 불어줌을 고마워 하는 모습들이다. 오늘은 행열이 다른주에 비해 길지는 않았다. 왜냐면은 회원들의 약 절반이 지금 록키산맥으로 출정하여 2주째 그곳을 걷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도 지금쯤 열심히 걷고 있을것으로 상상이 되기도 했다. 메인 트레일에서 벗어나, 오늘은 Palgrave Side Trail을 Walk할것이라고 산행 시작전 Leader분이 설명해 주신데로 메인에서 Side Trail을 걷고 있는 것이다. 멀리서 기계소리가 들린다. 걸을수록 가까워 옴을 느끼면서 고개를 들어 앞을 보았을때, 한 백인 초로의 영감님이 평지로 뻗친 Trail양쪽으로 허리가 닿을 정도로 길게 자란 풀들을 땀을 뻘뻘 흘리면서 자르고 있는 모습이 정답게 보였다.
지나치면서 고맙습니다 라고 인사 하면서, 당신이 이렇게 걷기 좋게 풀을 깍아 주니, 당신이야 말로 우리산행꾼들을 즐겁게 해주는 좋은 선행자라고 추겨주자, Bruce Trail 회원인데, 자원 봉사 하기로 마음 먹고 하기에 기분이 아주 좋다고 환히 웃는다. 정말로 멋져 보였다.
아마도 아침 일찍부터 시작했나 보다. 계속전진 하는데, 그가 자른 풀들이 산행길 양쪽에 계속적으로 널려 있음을 보면서 그렇게 느꼈다.
중간에 물이 흐르는 Swamp를 지나는데 불편이 없도록 군데 군데 작은 Bridges 들이 설치되여 있어, 그위로 걸으니 편하기 그지 없다. 자원봉사를 한 회원들에 의해 건설됐음을 고마워 하지 않을수 없다. Donation 을 더 늘여야 겠다고 생각을 안할수 없게 됐다.
오늘 우리가 걷는 Side Trail 은 Oak Ridge Moraine Trail 구간의 일부로 그전체 길이는 약 200 KM라고 하는데, 지층이 옛날 빙하시대에 녹아서 흘러 내리던 물질들이 흘러 가면서 지층을 형성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어, 특히 이지역의 개발을, 정부에서는 고시하여, 막고 있는것으로 나는 알고 있는 구간이기도 한다. 이구간은 전에는 MainTrail 구간이었었는데, 몇년전부터 Route가 바뀌어 지금은 Side Trail로 등산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구간이 되였다. 숲이 우거진 등성이와 이를 지나면 평지가 계속되곤 하는 이지역은 인공식수 했음을 주위숲을 보면서 알게 된다.
그래서인지, 소나무 숲이 유난히 많았다. 거기에 향나무숲도 형성되여있어 여름철 산림욕을 하기에 아주 좋은 구간이다. 이곳에서 Under wear하나만 입고 심호흡을 하면서 약 30분정도 체조를 하게되면, 겨울철에 흔히 맞이 하는 불청객, 감기에 잘 걸리지 않는다는 민간요법을 알고 있기에, 실제로 체험에서 또 느끼고 있기에 더욱 사랑스럽다. 산행이 끝났을때는 오후 1시가 조금 지났다. 그러니까 약 4시간을 걸은 셈이다. 미풍이 우리의 산행을 쉽게 해줘서 였을까? 금방 걸은것 같이 느꼈는데, 그사이 그렇게 긴 시간이 흘러 갔다. 아니 그만큼 많이 걸은 것이다. 금년 겨울의 감기는 무사히 우리 회원들을 피해 갔으면 하는 바램도 실어 본다. 기온이 높았는데도 생각보다 땀이 덜 흘렸고, 모기와의 전쟁도 지난번 보다 덜했다. 미풍이 여러모로 많이 도운 오늘의 산행이었다. 한가지 아쉬웟던점은, 꼭 필수 휴대품인 카메라를 car pool하는통에 차에 놓고 다른차로 옮겨 타느라 휴대하지 못해 사진을 전연 찍을수 없어 그점이 무척 아쉽다. Trail 양옆을 훤하게 풀을 깍으면서 환하게 웃던 그분의 모습도 담을 수 없었고, 회원들의 걷는 모습도 담을수 없었고, 향나무숲을 지나치면서 심호흡을 하는 모습도 담을수 없었고 걸으면서 담소하는 모습도 모두 놓쳤다. 머리속에서만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 그점이 아쉽다. 시간의 흐름에 건망증이 심해지는 이치를 겸허이 받아들이고, 항상 마음속에 다짐 하면서, 기억을 하도록 노력하던가 아니면 노트하는 습관을 길러 오늘같은 실수(?)를 줄여야 한다.
Bruce Trail Map 17 번을 보면 오늘의 구간을 쉽게 알아 볼수 있다. 다음주를 기약 하면서..... 감사.

Friday, June 26, 2009

조선왕릉 세계문화유산 등재확정-조상들의 자랑스런 유산.











이조시대의 왕릉이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여 유네스코 지정 세계 문화 유산에 등록 확정 됐다고 동아일보가 머리기사로 올린것을
여기에 옮겨 보았다. 세계 여러나라 특히 이집트같은 곳을 방문해서 몇천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는 바로오 왕가의 릉도 산속의 지하에 굴을 파고 모시고 있는 것을 보긴 했으나 우리나라 처럼 큰 봉분을 만들어 특히하게 보존 해온 점이 유산 지정이 돼게 한 요인이 되지 않았겠는가 나름데로 생각해 보았다. 이보다 더 큰 규모의 큰 봉분이 있는 릉은 옛날 중국의 진시황제를 모신 릉일것으로 생각된다. 얼마나 컷던지, 후세 사람들이 잘생긴 야산으로 여기고 봉우리 정상에 정자를 짖고, 즐겨오다가 최근 약 60년 전에야 그것이 진시황제의 릉인것을 우연히 인근에서 농사짖던 한농부에 의해 발견된 예는 있었다. 어쨋던 후세를 살아가는 후손의 입장에서 경사로 받아들여 더 잘 보존 돼였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아래는 동아일보 기사중 일부 이다.

조선왕릉 40기가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의 반열에 올랐다.

유네스코는 27일 스페인 세비야에서 열린 제33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한국의 조선왕릉 40기를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유네스코의 결정은 500년 동안 지속된 왕조의 무덤들이 고스란히 보존된 조선왕릉의 가치를 인정한 것이다.

조선왕릉은 경기 일대와 강원 영월군에 조선시대 27대 왕과 왕비, 사후에 추존된 왕과 왕비의 능 40기가 남아 있으며 북한 개성에 있는 제릉(태조의 비 신의왕후의 능)과 후릉(정종과 정안왕후의 능)은 세계문화유산 등재 신청 대상에서 제외됐다.

조선왕릉은 단지 왕의 주검이 묻힌 무덤이 아니라 조선의 역사, 건축양식, 미의식, 생태관, 철학이 담긴 문화의 결정체다.

▶ 동아일보 ‘숨쉬는 조선왕릉’ 시리즈 보기

산줄기의 풍수 명당에 자리잡은 조선왕릉은 자연 지형을 최대한 활용해 인공적 요소가 거의 보이지 않는 경관 때문에 '신(神)의 정원'이라 불린다. 유교 국가인 조선 왕들의 무덤이지만 왕릉 주변의 원찰(왕의 극락왕생을 비는 사찰), 봉분 주변 조각에 불교와 도교, 토착신앙의 철학과 세계관이 어우러졌다.

조선왕릉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는 지난달 세계 문화재 보존을 위한 비정부기구인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가 유네스코에 제출한 평가보고서에 조선왕릉을 최고 등급인 '등재 권고'로 평가하면서 유력시됐다. 지난해 9월 한국을 찾은 ICOMOS 실사단은 성종 능 선릉(서울 강남구 삼성동)과 중종 능 정릉(삼성동)을 둘러본 뒤 "도심 속에서 개발 압력을 견디고 푸른 녹지가 이렇게 잘 남아 있는 것만으로 세계문화유산 가치가 충분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수도권 일대 조선왕릉의 녹지를 모두 합친 면적은 1935만3067㎡에 이른다.

유네스코는 세계문화유산의 복원, 보존 관리 의지를 세계유산 지위의 유지에 중요한 요소로 평가하고 있어 도시화 과정에서 훼손된 조선왕릉의 원형 복원이 새로운 과제로 떠올랐다.

Tuesday, June 23, 2009

<6.25 특집 화보>-와싱턴 문서보관소 발표.























고국의 연합뉴스에서 6/25 59주년을 맞이 하여, 와싱턴의 문서 보관소에서 한국전 당시 촬영됐으나, 그동안 발표 돼지 않았던 사진들을 인터넷에 실은것을, 그중 몇장을 옮겨보면서, 전쟁의 참상을 새삼 뼈 아프게 느낀다. 요즘 북한은 다시 남한과 전세계를 향해 공갈과 협박으로 주변국과 서방 세계를 신경쓰게 하고 있는때여서, 이러한 사진은 의미하는바가 크다고 여겨진다.
오는 일요일(6월28일)새벽에, 토론토에 본부를 두고 있는 재향군인회원들은, 캐나다 수도 오타와에서 매년 열리는 한국전 참전 기념식에 참석하기위해, 버스를 대절하여, 지금은 노인들이 다 된 회원들이 5시간 이상 달려간다. 나도 그 대열에 끼여 참석할 계획인데, 벌써 수년째 그렇게 해 오고 있어, 새삼 조국방어를 위해 군복무를 했다는 자부심이 해가 갈수록 커짐을 깊이 느낀다.

<6.25 특집 화보> 홍릉에서 예배보는 미군들
(워싱턴=연합뉴스) 박상현 특파원 = 경기도 남양주시 홍릉에서 미군 25사단 23여단 소속 병사들이 예배를 올리는 모습. 1951.3.18. 2009. 6.23
<6.25 특집 화보> 전쟁의 상흔, 수원성
[ 2009-06-23 15:47 송고 ]

(워싱턴=연합뉴스) 박상현 특파원 = 미 보병 제25사단 병력이 폭격으로 부서진 수원성을 지나가고 있다. 1951.1.25.

<6.25 특집 화보> 전장의 이별 , 아들과 어머니
[ 2009-06-23 15:46 송고 ]


(워싱턴=연합뉴스) 박상현 특파원 = 국군 신병으로 전선으로 떠나는 아들을 전송하는 어머니의 모습. 한 바가지의 물로 아들의 안위를 기원하는 어머니의 표정과 이를 바라보는 아들의 눈매가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1950. 12. 19. 대구역앞.

2009. 6.23

shpark@yna.co.kr

상여가 지나가는 광경을 유엔군 소속 벨기에 병사들이 신기한 듯이 지켜보고 있다. 1951.2.23. 경북 왜관. 연합

(워싱턴=연합뉴스) 박상현 특파원 = 1950년 10월 28일 서울의 폐허속에 문을 연 구두수선점. 피난에서 돌아온 구두수선공이 이전에 자신의 가게였던 자리에 다시 문을 열고 군화를 수선하러온 국군장병을 첫 손님으로 맞았다. 2009. 6.23
shpark@yna.co.kr

(워싱턴=연합뉴스) 박상현 특파원 = 1951년 1월 8일. 부서진 러시아제 T-34 탱크 옆에서 빨래하고 있는 아낙네들.
2009. 6.23

(워싱턴=연합뉴스) 박상현 특파원 = 중공군의 개입으로 피난을 떠난 서울의 텅 빈 상가를 한국군 1명이 걸어가는 모습. 1950.12.26.
2009. 6.23

<6.25 특집 화보>피난민 속 우는 아이들
(워싱턴=연합뉴스) 박상현 특파원 = 1951년 1월 4일. 1.4 후퇴 당시 얼어붙은 한강을 앞에두고 피난민 무리에서 떨어진 아이들이 겁에 질려 울고 있다.
2009. 6.23

<6.25 특집 화보> 미군, 소년에 대한 경례
(워싱턴=연합뉴스) 박상현 특파원 = 80일간 적군에 포로로 잡혀 있다 구출된 미군 병사 3명이 자신들을 위해 전령 역할을 해준 한국 소년들에게 감사의 뜻으로 경례를 하고 있다. 1951.3.21.
2009. 6.23

<6.25 특집 화보> 잠자리에 든 전쟁고아들
(워싱턴=연합뉴스) 박상현 특파원 = 1951년 3월 22일. 3∼6세된 전쟁고아들이 부산의 한 고아원에서 보모들의 보살핌 속에 잠자리에 든 모습이다.
2009. 6.23

<6.25 특집 화보>피난 떠나는 북한 주민들
(워싱턴=연합뉴스) 박상현 특파원 = 1950년12월 3일. 중공군의 개입으로 엄동설한에 신발을 벗고 바지를 걷어올려 평양의 대동강을 건너 피난을 떠나는 북한 주민들. 2009. 6.23

<6.25 특집 화보> 전장의 육군 소장, 김백일
(워싱턴=연합뉴스) 박상현 특파원 = 신병들을 모아놓고 연설하는 김백일 소장. 육군 1제군단장인 김 소장은 유엔군의 반격과 함께 가장 먼저 38선을 돌파, 혜산까지 북상했으며 12월 흥남철수작전 때 10만명의 피난민 수송을 지휘했다. 1951년 3월 비행기 추락으로 순직했다. 1950. 12. 19. 묵호진.
2009. 6.23

<6.25 특집 화보> 폐허속 부녀자들
(워싱턴=연합뉴스) 박상현 특파원 = 폐허로 변한 서울 거리에서 부녀자들이 건물잔해속에서 땔감이나 쓸만한 물건을 찾고 있다. 뒤편으로 중앙청 건물이 보인다. 1950. 11.1일 서울모습. 2009. 6.23

<6.25 특집 화보>치료 기다리는 포로들
(워싱턴=연합뉴스) 박상현 특파원 = 1951년 2월 26일. 전장에서 체포된 부상병 포로들이 트럭으로 부산 인근의 병원에 방금 도착해 치료를 기다리는 모습.
2009. 6.23

<6.25 특집 화보>포즈 취한 피난민
(워싱턴=연합뉴스) 박상현 특파원 = 1951년 1월 27일. 지게에 가재도구와 함께 아내까지 태운 중년의 가장이 피난행렬에서 미군의 요청으로 돌아서서 포즈를 취했다. 피난의 와중 웃는 표정에서 낙천성이 느껴진다.
2009. 6.23

<6.25 특집 화보>1.4 후퇴 피난행렬
(워싱턴=연합뉴스) 박상현 특파원 = 1951년 1월 5일. 1.4 후퇴 당시 서울을 떠나 남으로 향하는 피난민의 행렬. 2009. 6.23

<6.25 특집 화보>대동강 철교 피난 행렬
(워싱턴=연합뉴스) 박상현 특파원 = 1950년12월 3일. 부서진 대동강 철교를 아슬아슬하게 붙잡고 있는 피난민의 행렬. 2009. 6.23

<6.25 특집 화보>부산 포로수용소
(워싱턴=연합뉴스) 박상현 특파원 = 1951년 1월 14일. 부산의 포로수용소에서 한 미군 병사가 인민군 소년병 포로와 나란히 서 있다. 송종태라는 이름의 이 소년은 12살로 서울에서 포로로 잡혔다고 한다.
2009. 6.23

특히 참전 미군들이 잠시의 여유를 즐기는 듯 소를 타고 즐거워하는 모습이 이채롭다.




<※ 편집자주 : 연합뉴스는 한국전쟁(6.25) 발발 59주년을 이틀 앞둔 23일 미국국립문서보관소(National Archieves)에서 6.25 관련 희귀사진인 흑백사진 47점을 발굴했다. 이번 공개된 사진은 폐허속의 구두수선점, 태극기와 유엔기를 파는 당시 벤처 기업(?) , 전장으로 떠나는 신병, 한국전 당시의 이후락 전 중앙정보부장, 전장을 순시하는 맥아더장군, 기록영화 촬영중인 홍성기 감독, 피난민과 전쟁고아들, 전쟁터의 상여행렬, 여군포로, 사찰에서 예배보는 미군 등으로 한국전쟁의 생활상과 참상을 엿볼 수 있다.>

Monday, June 22, 2009

새로 잘 만들어진 Marsh Board를 걸으면서-Presquile Provincial Park



















새로 잘 만들어진 Marsh Board Walk을, 어제 하루종일 비가 내린후, 맑게 걔인 오늘오후 아내와 같이 그위를 걸었다. 약 1.5킬로의 새로 잘 건설된 보드위를 걸은 것이다. 시야에는 끝도 없이 펼쳐지는 녹색의 갈대밭이 바람에 물결을 만들어 내는 모습도 좋았다. 이름도 모르는 수많은 종류의 새울음 소리도 같이 어울려 대자연속의 조화를 이룬다. 머리위로는 갈매기들이 높이 떠서 멀리 날아가는 한떼와 낯게 떠서 먹이를 찾기에 분주한 한떼가 바삐 날아 움직이는게 한폭의 그림이다. 개구장이 아이들이 새로 만들어진 보드위를 앞서 뛰어가고 뒤에는 부모되는 젊은 부부가 뒤따라 걸어가면서 우리와 마주칠때, 목례도 하고, 눈인사도 하고.... 그러한 부모와 아이들이 여러군데서 목격된다. 늪지대인 갈대받속으로 Board Walk을 만들어서 그 갈대받위를 걷게 하면서, 어른들에게는 갈대받속을 걸으면서, 자연을 즐기게하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생태계를 공부할수 있는 현장실습장으로도 활용되고 있는 아주 값어치 있는 Board Walk Trail인 것이다. 우리가 걷는 보드웍 옆에 갈대받속의 Pond에서는 백조 한쌍이 갓세상에 태어난 두마리의 새끼들과 열심히 먹이를 찾아 움직이는 모습이 우리가 보기에는 마치 춤을 추는것 같아 보인다. 백조보다 일찍 새끼를 낳아 기르던 기러기와 오리떼들은 오늘은 보이지 않는다. 벌써 자라서 더 넓은, 건너편 온타리오 호수로 옮겨간듯 싶다. 낡은 보드웍이 있을때로 기억되는데, 밤에 한구룹의 어린 학생들이 선생님의 안내를 받으면서, Flash light를 제각기 손에 들고, 보드웍을 걷고, 숲속을 조심스럽게 걸으면서, 밤에 곤충들의 활동상황을 탐구하고 선생은 설명해주고 하는 광경을 본 기억도 있다.

새로건설된 보드웍은 전에것 보다 폭이 훨씬 넓고 단단하게 만들어졌다. 입구쪽의 2층으로된 전망대도 규모가 전보다 훨씬 크고, 짜임새 있게 만들어졌다. 재료도 나무가 아닌 시멘트처럼 단단한 그러면서도 감촉이 포근하게 느껴지는 것을 사용했다. 나도 그위를 걸으면서 사진도 찍고, 물속의 Fish들도 살펴보고, 새끼를 보호하면서 먹이를 찾고 있는 백조부부를 사진에 담기도 했고, 아내가 뭔가를 열심히 보기위해 허리를 굽힐때는 살짝 스냅사진도 찍어보고....이렇게 즐길수 있게 하기위해 춥거나 더운날 갈대밭에 들어가 말둑을 박고, 그위에 Board Walk을 만들어 준 이름없는 봉사자들에 감사 한 마음을 잠시 생각해 보기도 하면서, 지난해 적은액수지만, 새로 만드는데 도움이 됐으면하고, Donation 했던 기억이 떠 오르기도 했다. 약 삼년전에 낡은것을 다 뜯어내고, 새로 만들겠다는 계시판을 본 이후로, 언제나 만들려나 했었는데, 지난해 부터 새로 만들기 시작하여, 약 일년동안, 완전히 자원봉사자들에 의해서 만들어진 보드웍은 이지역의 MPP(온타리오 국회의원)인 Lou Rinaldi가 참석한 가운데 지난주에 개통식(?)을 한것이다. 처음에 계시판을 보고나서, 공원주인인 주정부에서 예산을 세워서 새로 만드는것으로 생각하고, 언제나 시작할려나? 하면서 매년 여름 카테지에서 생활할때마다 들리곤 했었는데 아무런 진전이 없이 그대로 방치된게 2년이나 됐었다. 그런데 지난해 공원입구에 Board Walk건설을 위해 민간인들이 주동이 된 단체에서 총공사비 $300,000 달러를 만들기위해 Donation을 받고 있다는 안내판이 걸렸고, 현재 모금액이 75% 정도 달성됐다고 도표까지 그려서 공원출입자들에게 알려 주고 있음을 보았었다. 아내와 상의하여 나도 이용객중의 하나인데, 물론 공원정문을 통과할때 공원 사용료를 내고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뭔가 도와 주고 싶은 마음이 생겨, 성의를 표시 했던 것이다. 기부는 금전과 노동력제공이 포함되고 있었다. 주립공원이 자리하고 있는 Brighton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주동이 되여, 추운 겨울부터 건설을 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왜 주인격인 주정부가 예산과 인력을 투입하지 않고, 전원 민간인들이 기금을 받아, 민간인들이 만들게 됐는지를 나는 알지는 못한다. 상식적으로는 그런순서로 진행 됐어야 하는데....
계시판에는 또 Donation한 사람들의 이름이 금액의 많고 적음에 관계없이, 알파벳 순서데로 정성스레 타이핑되여 전시되고 있었는데, 그속에 나의 이름도 있어, 사진을 찍었으나, 글씨가 작아 선명하게 보이지는 않았다.
노력봉사자들은 대부분이 은퇴한 senior 들인것을 직접 목격하기도 했었다. 떠들지도 않으면서 조용히 모금하고, 건설하고 그리고 간단한 Podium을 만들어, 개통식을 하면서 그동안의 경과 보고를 하는 담당자의 복장은 허름한 산책객 그모습 그대로 였다.
앞으로 몇십년 동안은 많은 이용객들이 그위를 걸으면서, 자연을 즐기고, 갈대밭이 물을 정화 한다는 새로운(?) 역활도 알게 될것이다.
갈대밭으로 이루어진 이곳의 늪지대는 온타리오 호수의 물을 맑게 정화시키는 일등공신 역활을 하고 있다고 공원안내책자에서 읽어본 기억이 난다. 더울때는 공원숲속에서 서식하고 있는 꽃사슴들도 목을 추기러 늪지대의 물을 찾아 마시는 모습도 가끔씩 보곤 한다. 새끼 사슴은 귀여기 그지없다. 마치 어린 개구장이들이 보드웍위를 뛰기도하고 딩굴기도 하는 모습이 귀엽기도 하고 눈망울이 총총한것 처럼.
이곳은 또 가을철에는 철새들의 쉼터이기도 하다. 황금갈색으로 변해가는 갈대위에 앉아있는 작은 새들과, 먼길을 날다가 쉬기위해 내려앉아 갈대밭속에서 먹이를 찾아 바삐 움직이는 기러기, 청둥오리 그리고 이름모를 많은 새때들이 바로 철새의 주인공인 것이다. 그광경을 우리는 보드웍위를 걸으면서 목격하고, 사진기에 담기도 하고, 사냥철에는 그들을 향해 포수꾼들이 겨냥을 하는 ..... 자연의 순환을 보는것이다.
생명력의 끈질긴면을 보게 되는 또 다른 장면은, 보드웍에 깔린 Plank사이로 갈대순이 자라서 뾰족 튀어나온 순들이 발길에 밟혀서 으깨어지기도하고 부러지기도 한 모습이 계속이어지지만, 그래도 계속 그사이로 자라고 있는 억척스러움을 보면서, 삶의 끈질김을 이해하게 된다.
친지들이 카테지에 놀러 오게 될때는 이곳을 꼭 보여주고 싶다. 건설된 과정을 설명도 해주면서.....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방법도 서로 비교해 보면서, 배워야 할점도 상의 해보면서 그위를 걸어보고 싶은, 그러면서 친교도 나누고싶은, 은퇴한 부부들이 손잡고, 아니면 끼리끼리 걷는 그모습이 보고 싶은 것이다. 감사한 마음을 그들에게 보내면서....

Sunday, June 14, 2009

오랫만의 피크닉 - Humberbay Park West.




















벌써 6월의 중순이 된 달력을 보면서, 금년도에도 세월이 또 절반이 흘러 갔음을 실감하면서, 움찔했다.
등하불명 이라고 굳이 옛말을 되새기지않아도, 콘도뒤의 호숫가의 Humberbay Park West에서 아는 친지들끼리 모여 초여름의 녹음속에서, 정성드려 준비해온 음식을 서로 나누면서 삶의 얘기를 하면서, 느긋한 낯시간을 보낸 기억이 있었던가? 아니다 없다. 이민 초창기에는 주말이면, 당시에는 값싼 LA 갈비를 싸들고, 어린 아이들 차에 태우고, 친지들과 어울려 그 얼마나 쏘다니면서, 캐나다의 넓은 초원속의 공원 숲속과 물가를 찾아 자연을 즐겼었던가. 어느때 부터 인지, 삶의 현장에 묶이면서, 그러한 시간을 갖어본 기억이 거의 없이 지내온 세월이 무척이나 길었던 것을 새삼 오늘 실감한다. 삶의 현장에서 풀려나 자유로운 시간을 갖기 시작한지도 벌써 오랜시간이 지났는데.... 그러한 피크닉을 즐길수 있는 기회가 없었다기 보다는 그옛날 분위기를 되찾는것과 친지들과 어울려, 몇집이 둘러 모여, 피크닉 테이블에서 정성드려 준비해온 음식을 펴고, 찌개를 끓이고 그렇게 한가하게 짧은 캐나다의 여름날을 즐길수 있는 기회를 만들기는, 서로의 살아가는 생활방식이 그동안에 많이 바뀌어, 쉽지가 않았음을 실토 하지 않을수 없다. 오늘은 그러한 서로의 다른 사정들을 뒤로 하고 정말로 오랫만에 평소 격의없이 지내오던 친지부부들과 어울려, 험버베이서쪽공원의 맨끝에 자리를 잡고, 파란 하늘과 그아래로 녹색으로 또다른 지붕을 펼치듯하고 있는 나무밑에 있는 picnic Table을 본거지로 잡고 준비해온 음식과 준비물들을 풀었다. 4쌍의 부부가 풀어논 오늘의 먹거리는 푸짐하게 테이블위에 싸이기 시작하고, 손길들이 바삐 움직이면서 Joke들이 터져 나오기 시작하면서, 웃음이, 마치 장난감 하나를 선물로 받은 어린 아이가 온세상을 다 얻은듯 신나하는, 그런 모습을 연상케 하는, 행동들이 끝이지 않고 이어지기 시작한다. ,이렇게 좋아하고 어린애같은 마음으로 돌아가서, 체면과 인격도 다 뒤에 접어두고, 이해타산이 없이 즐기는 이런 만남이 나이가 들수록 더 어려워(?)지는 원인은 무엇일가? 오곡밥에, 뒷뜰에서 뜯어왔다는 연한 채소류, 밤새정성드려 만들었다는 돼지고기를 김치가닥에 휘감아서 김밥처럼 만들어온 손길, 부침갱이를 만들어와 즉석 구이를 해주는 손길, 푸짐한 김치류, 생선유부의 정겨운맛 그리고 또....
버너위에 올려진 프라이팬에서는 부침갱이가 기름을 튀기면서, 빠르게 움직이는 손길을 따라 지글 지글 익어가고, 어느 한친지는 메고온 Backpack속에서 테트라팩 소주를 꺼내, 귀한 보약이라고 하면서, 준비해온 조그만 잔에 따라 각자에게 돌리는 적시 안타를 치기도 한다. 갑자기 소주를 보니, 얼마전 고국여행시, 인천공항면세점에서 구입하여 뱅쿠버까지는 잘 가지고 왔는데, 그곳에서 트랜스퍼 하면서, 팩키지안의 소주 용량이 초과라고 핸드캐리를 허용하지 않던 보안원과, 여기까지 잘 가지고 왔는데 무슨 소리냐?면서 옥신각신 하다가 결국 쓰레기통에 버리고 왔던 기억이 떠 올랐다. 무사히 통과 했더라면 지금처럼 유용하게 잘 사용했을텐데...라고 말이다. 여름날의 맑은 일요일을 우리만 즐기는게 아님을, 주위를 둘러 보면서 많이 본다. 콘도바로 뒤에 있는 Yacht Club으로 부터 요트를 타고 넓은 호수로 나가는 행열이 계속이어지고, 넓은 호수에 도달해서는 닻을 올리고 바람을 이용하여 항해을 하는 여유있는 모습들이 평화로움을 느끼게 하고도 남는다.
그보다 더 멀리로는 큰 유람선이 지나가는것도 보인다. 멀지않은 곳의 테이블에서도 우리와 같은 피크닉족들이 연기를 피우며 음식을 준비하는 모습이 많이 보인다. 찌개가 다 끓고, 식사를 한다. 계속되던 이야기와 웃음이 잠시 멋는가 싶더니, 그사이에 어느 친지가 또 모두를 웃기는 헛튼(?)농담을 해 하마트면 숫가락의 찌개를 코속으로 부어 넣을번 하기도 하는 Fellowship이 계속된다. 모두가 평상시때의 양보다 더 먹는다고 아우성이다. 그래도 더 먹었다. 정말로 조금 나온 배가 더 불륵 해진것을 느낀다.
이번에는 남자들의 차례라고 하면서, 여자분들의 성화가 빗발친다. 밥을 먹었으니 Trail Walk을 하듯 넓은 공원을 걸으란다. 잘 깍인 잔듸위를 푹신푹신 밟으면서 걷기를 하는데, 한팀의 Scubber Diving족들이 차에서 내려 잠수복을 입고, 잠수 준비하는 장면이 목격됐다. 그들 옆으로가서, 얘기를 걸어본다. 친절하게도 설명해 주는데, 등에 매고 물속에 들어가는 공기통의 무게가 약 150 파운드라고 하는말에 깜짝 놀랐다. 약 60킬로그람정도 되는것으로 계산되였다. 그러나 물속에 들어가면 부력에 의해 약 10파운드 정도의 무게만 느껴진다고 했다. 잠수복은 밀폐가 잘돼 물이 몸속에 스며들지 않는다고 자랑도 잊지 않는다. 잠수복에 붙어있는 지퍼를 지목했더니, 특수지퍼라서 물이 스며들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잠수복을 입고 잠시 있는 사이에도 이마에서는 땀이 흘러 떨어지는 광경을 보니, 잠수복으로 감싸인 신체안의 온도가 계속 올라가는것을 금방 눈으로 볼수 있었다. 일행중 한여자 다이버가 오래 얘기 할수 없다고 하면서 서둔다. 더워서 빨리 물속에 잠수 해야 된단다. 이해가 간다. 즐거운 스쿠버 다이빙을 하라고 인사하고 다시 발길을 옮겨본다. 모터보트들도 요란한 굉음을 내면서 쏜살같이 물을 가를고 튀어나가는 모습이 젊음을 연상케 한다. 백조떼와 기러기때들도 질세라 같이 어울려 수중춤을 추는것 처럼 움직이는 모습이 한가로워 보이지만, 그들은 먹을것을 찾아 바삐 긴목들을 물속에 넣었다 뺏다 하는 삶의 현장인 것이 우리 눈에는 그렇게 보인 것이다. 발길을 계속 옮기면서, 고개를 들어 멀리 눈길을 돌리니, 바로 토론토 도심속의 CN Tower와 고층빌딩들이 멋있게 눈에 들어온다. 그래서 토론토를 호반의 도시라고 하던가? 그옆으로는 Centre Islands의 푸른숲이 싱그럽고 넓게 보인다. 좋은 시간이었기에 시간이 흘러 갔음을 미쳐 느끼지 못하면서 서로의 삶의 얘기들을 나누느라 바쁜데, 어서 저녁을 먹잔다. 그리고 이제 짐을 싸서 집으로 갈시간이 됐다고 한다. 남아 있던 음식을 펴고 다시 저녁을 먹고, 포만감을 느끼면서 시간을 보니 벌써 겨울이면 한밤중이라고도 할수 있는 7시가 넘었다. 아쉬운 헤어짐이었다.
이렇게 좋은 시간과 친지들을 만나게 해주신 그분께 감사를 깊이 하면서..... 모두가 건강 하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