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owing posts with label 베이징. Show all posts
Showing posts with label 베이징. Show all posts

Saturday, September 05, 2015

북경의 승전 70주년 기념식후 금새 회색으로 변한 하늘모습. 경제가 활발하다는 뜻인가? 비웃는 것인가?

승전 70주년 기념식을 치르기위해, 북경시내에 있는 모든 공장들이 며칠전부터 가동을 중지 하고, 매연 발산을 통제 함으로써 북경하늘을 마치 Blue sky처럼 맑게 보여 주었는데, 성대한 기념식이 끝난후 하루가 채 지나지 않아 하늘은 다시 회색으로 변했다고 한다.

서방세계의 언론이 찍은 사진인데, 과연 이렇게 빨리 매연으로 하룻만에 회색으로 변했다는데 글쎄다.  대기오염이 불과 24시간만에 뒤덮을수 있을까? 

서방세계의 뉴스는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고국의 박대통령의 참석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을 안하고 있는데, 일부러 언급을 피해갈려는 의도가 있는것으로 느껴졌다.  미국방문을 앞두고 있고, 이번 방문에서 박대통령이 주동이 되여 '한 중 일'정상회담을 조속한 시일내에 하기로 합의한점은 동서 모두에게 바라는 일이고, 또 한반도의 휴전선에서 남북대치의 극한 상황을 풀어냈는데, 이또한 박대통령이 중국을 움직여서 풀어낸 정치적 역량을 부각시켜주는 결과만 보여주는 겪이 되는것을 피해가려는 의도였던것 같다.  옛말에 "버리기는 아깝고 남주기에는 뭐하다"라는 말과 일맥상통한다고 하겠다. 

어쨋던 고국의 대통령이 승전 70주년 기념식에서 고국 대한민국의 정치적, 경제적 위상을 한층 높였다는 전문가들의 의견에 의심를 나타낼 이유는 전연 없다고 하겠다. 회색의 하늘색은 경제가 활발히 움직이고 있다는 증거로 보고 싶은데.... 왜 서방언론은 극명하게 비교되는 두사진을 보여준 것일까?  그들이 일상에서 사용하는 생필품의 99%는 그곳으로 부터 수입된 것들인데 말이다. 

승전 70주년 기념식이 있기 전에 찍은 사진은 파란색갈의 하늘이였지만, 기념식이 끝난후 하루가 지난 하늘은 회색으로 보여지고 있다.





Beijing  참말로 순간적이었다고나 할까.

중국의 군사적 퍼레이트가 끝난지 24시간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베이징의 하늘은 다시 스모그 현상이 뒤덮힌 평상시로 되돌아 갔다.
베이징 시민들은 금요일 아침 지난 2주간 보았던 파란 하늘을 보기위해 창문을 열었을때 그모습은 다 가버리고 다시 회색으로 돌아온 하늘을 발견했을 뿐이었다.  시민들이 친숙하게 보아왔던 시야와 그리고 매연으로 인한 냄새가 있었을 뿐이었다.

8월말경에 시작해서, 베이징시민들은 사상최대의 군사퍼레이드를 위해 파란 하늘을 만들기위해 당국이 극적인 명령을 내려 깨끗한 하늘을 계속적으로 유지시켜 시민들은 이를 좋아 했었다. 즉 다름아닌 세계2차 대전에서 일본이 패망한지 70주년을 기념하기위한 쇼케이스를 빛내기위한 제스처를.

수백개의 공장들은 이기간동안에 가동을 중지 했었고, 베이징 시내를 달리던 5백만대의 절반은 거리를 달리지 못하게 명령을 내렸었다.  그조치가 주효했던 것이다.  군사퍼레이드가 있던날 아침의 공기 청정도는 - 공기오염도를 측정하는 국제 표준치 - 500개의 측정치중에서 17을 나타낼 정도로 건강에 좋은 공기로 표현해도 좋을 아주 깨끗했었다.

이렇게 깨끗한 공기에 흥분한 베이징시민들은 이렇게 깨끗한 하늘을 "푸른색의 행진"에 비유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모든 차량은 다시 거리를 달리고 있으며 베이징 시내 하늘은 다시 원래 모습인"베이징 회색"으로 되돌아 갔다.
    지난 금요일의 공기청정도는 160을 넘어 시내의 일부구간은 "건강을 해치는 오염도"의 수치를 나타낸것이다.   미국의 '환경보호 에이전시'의 도표에 따르면, 이정도의 심한 공기오염에서는 "누구나 건강에 악영향을 끼치는 경험을 하게 될것이며, 호흡에 민감한 사람들은 위험한 곤경에 처할수 있을것이다"라는 발표를 한것이다.

    'Parade blue' censored?

    베이징은 중국경제성장과 함께 발생한 심각한 대기오염으로 전세계로 부터 비아냥을 받는 대명사로 알려진지가 오래돼왔다.  시내의 하늘은 완전히 회색의 스모그로 뒤덮힌 더러운 명소가 된것이다.  그결과로 푸른맑은 하늘은 너무도 아름답게 느껴져 그렇게 아름다운날에는 시민들은 카메라를 들고 나와 파란 하늘을 카메라에 담아 SNS상에 올리기도 했었다.

    그러나 중국정부는 그러한 비난에 매우 민감하여, 최근 며칠동안은 "푸른 행진"문구는 중국의 인터넷에서 사라진것으로 보인다 - 실질적으로는 푸른 하늘을 뜻하는.


    CNN이 지난 금요일 중국에서 가장 인기있는 블로그인 '웨이보'에서 이구절을 조사해보았는데, 다만 3개만이 블로그상에 떳을 뿐이었다.

    "푸른 행진은 단 한방에 없어져 버렸다. 정말로 신기할 정도다. 마치 마술을 부린것 같이 말이다.  나는 아름다운 파란 하늘에 익숙해 있었는데, 지금은 이렇게 급히변한 환경에 견디기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 라고 웨이보 사용자는 탄식하고 있었다.

    중국은 세계2차대전에서 일본의 패망을 기념하기위해 베이징에서 성대한 퍼레이드를 했었고, 전례가 없는 큰 규모의 군사력를 보이는 쇼케이스로 이용했었다.

    시진핑 주석은 퍼레이드 시작연설에서 "인민들이 용감하게 잘싸워 일본의 침략을 퇴패시켰다"라고 감사의 말을 전하기도 했었다.

    그는 또 인민해방군대는 300,000명의 병력을 감축할것이며, 이계획은 2017년까지 완수할 계획이라고 천명했다.  중국의 군사력 증강은, 동남아시아지역에서 긴장감이 감도는 가운데, 서방세계의 주시를 받고 있다.

    중국은 남중국해에서 이웃 국가들과 영토분쟁을 하고 있으며, 또한 동중국해에서는 일본과도 분쟁을 일으키고 있는 중이다.  이번 퍼레이드에 앞서, 미국은 발표하기를, 중국함선 5척이 알라스카 바로 옆인 '베링해협'에서 작전중인것을 처음으로 목격했다고 발표했다.

    중국인민해방군(PLA)은 지구상에서 가장 규모가 큰 2.3백만 병력을 유지하고 있으며 군예산면에서도 미국다음으로 큰 규모이다.

    전세계로 부터, 러시아 대통령 푸틴과 유엔사무총장 반기문씨를 포함한 30개국 이상의 정부수뇌들 또는 각료들이 이번 퍼레이드에 참석했었다.  그러나 서방세계의 많은 정부지도자들과 일본수상 Shinzo Abe씨는 참석하지 않았었다.

    이번 군사퍼레이드에는 병력 12,000명이 동원됐고, 비행기 200대, 그리고 탱크와 미사일등이 천안문 광장 퍼레이드에 동원됐었다. 이들 미사일중에는 항공모함을 격파시킬수 있는 Dongfeng-21D도 선보였다.

    중국의 관영통신에 의하면, 이번 퍼레이드에 선보인 대부분의 전쟁무기들은 중국인민들에게 처음 선보인것들이라고 한다.  인민해방군 총사령관이기도한 시주석은 퍼레이드 동안 시종 무대 중앙에서 관전했다.

    이번 퍼레이드는 G2인 중국이"인해전술"이 아닌 "기술집약의 군대"임을 세계에 알리고, 세계무대에서 그만큼 역활을 하겠다라는메세지를 보내기위한 제스처를 보낸것으로 이해된다.  실제로 Africa Continent를 여행해보면 피부로 느낄수 있었다 - 나의생각이다 -


    http://www.cnn.com/2015/09/04/asia/china-beijing-blue-sky-disappears-after-military-parade/index.html

    http://news.donga.com/Main/3/all/20150905/73445957/1

    http://www.bbc.com/news/world-asia-china-34125418


    Sunday, October 05, 2014

    중국, 베이징의 길고 웅장한 대운하(Grand Canal)를 아시나요?

    나의 경우 중국본토 관광은 여러번 했다.  언뜻 기억에 떠오르는 지역만 해도 항주, 소주, 상하이, 시안, 장가게,베이징, 삼국지의 주인공인 유비,관우,장비의 사당이 모셔져 있는 청도, 군밍, 세계의 지붕인 티벳,  마카오와 접하고 있는 주하이 그리고 일반 여행사들이 관광상품으로 시도하지 않고 있는 오지인 남부지역의 월남, 태국과의 국경지대들이 떠 오른다.  그런데 항주에서 부터 시작된 운하(Canal)가 수도 베이징 외곽까지 연결되여 있다는, 장장 1,794키로미터의 대 운하가 현재 거의 잊혀진 상태에서 주요 지역 주민들의 Leisure 수단으로 운용되고 있을 뿐이라는 새로운 뉴스를 접하면서, 중국에 대한 탐사여행을 수박 겉핱는식으로만 했구나 라는 허탈감에서 한참을 벗어나지 못했었다. ...... 허긴 세계에서 제일 빠른 고속 철도가 달리고 있는 중국의 고속 발전에 운하는 제자리를 넘길수 밖에 없었을것 같다.  
    중국이라는 나라는 파고들면 들수록 더 비밀속으로 빠져 드는 느낌을 품게할 뿐이다.


    http://www.bbc.com/travel/feature/20140930-beijings-extraordinary-grand-canal

    베이징 시민들에게 내가 시내 구경을 할곳을 물었었다.  그들은 한결같이, 자금성은 물론이고, 천안문 그리고 만리장성이 자연스럽게 언급된다.

    그리고 나서 나의 마지막 구경할곳 - 만리장성처럼 중국을 상징하는것은 물론이고, 임금들이 거주했던 자금성, 그리고 역사적 의미가 많은 천안문광장 - 에 대한 질문에 그들은 잠시 생각에 잠긴다.   "아마도 대운하?"가 아닐까 오히려 반문한다.  "정말입니까?"

    만약에 베이징 시민들이 대운하를 알지 못하고 있다면, 관광객은 당연히 모를수 밖에.
    운하는 중국의 남쪽지방에서는 관광코스로 잘 알려진것들중의 하나이다.  이운하에는 바지선, 관광선들이 2,500년이 넘는 루트를 따라 오르 내린다.

    그런데 북쪽의 항조우에서 천안문광장의 서쪽 35킬로 지점에 있는 Tongzhou라는 베이징외곽에 도시까지 1,794킬로나 되는 긴 운하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극히 드물다는 것이다.
    Xitang의 대운하에서 보트쿠르스하는 모습.

    그러나 중국의 역사에서 이곳보다 더 중요한 지점은 거의 없다고 할수 있다.  즉 지구상에서 가장길고, 인간이 만든 가장 오랜역사를 간직한, 스에즈운하보다 9배가 더 긴 운하이다.  이런 중요한 운하가 없었더라면 베이징은 오늘날 중국의 수도로서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운하가 없는 중국은 오늘날의 중국이 될수 없었을 것이다.  왜 그럴까를 알기위해서는 2014년 6월에 UNESCO에서 이대운하를 인류유산목록에 등재시킨것을 보면 이해할수 있다.

    이곳 사람들이 이운하에 대해 의아해 하더라도 나는 그것과는 상관없이 보고 말것이다.

    4차선이 양방향으로 건설되여 있는 고속도로 103를 따라 서쪽으로 달리면서 우린 수많은 빌딩들이 들어서고 있는것을 보았다.  사람들은 스쿠터를 타고 가면서 그들의 iphone을 체크한다. 콩크리트 믹서 차량이 그뒤를 따른다.  우리가 다리위를 달리면서, 나는 밑으로 물이 흐르는것을 보았는데 금새 사라지고 마는것을 목격했다.

    이렇게 길고 큰 대운하가 오늘까지도 현지주민들에게는 잊혀진것쯤으로 여겨지고 있는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지만, 여기서 지금도 일하고 있는 사람들은 그들의 조상들이 해오던데로 묵묵히 전통속에서 일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즉 지구상에서 이렇게 큰 규모의 프로젝트에 인간의 모든것을 투자한 것을 본적은 한번도 없었다.  이운하를 건설하기 시작한것은 BC 48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나 오늘날에 보는 웅장한 운하로 모습을 나타내기 시작한것은 7세기경에 있었던 대규모 확장공사가 있을때까지는 미미했었다. 서기 605년에 1,000키로미터의 공사를 Luoyang에서 Qingjiang( 지금은 Huaiyin으로 불린다)했었고, 다시 3년후에는 오늘날의 베이징까지 1,000킬로미터를 더 팠었다. 610년에는 Zhenjiang에서 Hangzhou까지 400킬로를 더 팠다.
                                      운하를 따라 이어진 공원의 잘 다름어진 도로와 산책로.

    이운하를 건설하는데 약 3백만명 이상의 가난한 농부들이 착출됐었다고 한다.  그들중 절반정도는 심한 노동과 굶주림에 지쳐 목숨을 현장에서 잃었다고 한다.  운하를 미관상 더 좋게 보이도록 하기위해,13세기에는 대대적으로 인력을 동원했었다고 한다.   1271년에 Kublai Khan이 제국의 수도를 베이징으로 옮길때,  구수도였던 Kaifeng 또는 Luoyang으로 연결되는 필요성을 알면서도 무시해 버리고, 대신에 그는 항조우로부터 베이징에 이르는 1,794킬로미터의 운하를 직선으로 건설하도록 지시했다고 한다.

    이공사를 마치기위해 10년 동안에 4백만명 이상의 노예들을 동원했다고 한다.  UNESCO자료에 따르면 이운하는 산업혁명이 일어나기 전까지의 건설공사에서 '세계최대의 토목공사'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대부분의 다른 루트와 마찬가지로,  이운하는 여러가지의 목적이 있었는데, 그목적 모두가 오직 왕조를 위한것이었다.  그들중 하나가 식량확보차원에서 였다.  즉 양자강 델타는 중국의 식량을 조달하는 곳이었다.  그러나 양자강은 서쪽에서 동쪽으로 흘러가는 강이었다.  그래서 중국의 통치자로서, 배고픈 지방사람들이 반란을 일으키는것과, 잘먹이지 못하는 군사들은 가난한 농부들과 또 외부로 부터 달려드는 침략자들을 제대로 방어할수없다는,  이러한 절박함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대운하는 (Kublai Khan의 대역사가 있기전) 양자강에서 나는 쌀을 황하강으로 수송할수 있는 바지선이 달릴수 있게 한것이고, 인근에 흐르고 있는 Luoyang과 Kaifeng 물줄기를 이용하여 서쪽에 있는 옛수도인 "시안"까지 수송할수 있도록 하기위한 것이었다.

    한편 북쪽에서 재배되고 있던 밀(Wheat)은 남쪽으로 보낼수 있었다. 서기 735년까지 매년 1억 4천9백만 킬로그람의 밀을 운하를 따라 수송할수 있었다고 한다.  무명이나 도자기등을 포함한 다른 필수품들도 운하를 통해 교류가 되면서 중국의 경제적 활성화를 돕는데 일조를 했었다고 한다.  또한 운하는 정부의 모든 지시사항을 포함한 의사전달을 할수 있는 생명줄 처럼 요긴한 존재가 됐다고 한다.
    오늘날에는 베이징에서 끝나는 대운하에는 생필품 운송하는 바지선이 아니고 유람선이 그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아래의 기사를 보면 더 재미있게 운하를 느낄수 있다.

    A feat of modernity in itself, the canal led to equally extraordinary innovations. In 587, the world’s first lock gates were invented by the Sui Dynasty engineer Liang Rui for one of the canal’s original sections along the Yellow River; in 984, a transport commissioner named Qiao Weiyo invented the Grand Canal’s first pound lock – the lock that we see in modern canals even today, creating a pool with two barriers and allowing a boat to wait safely until the water level changes. (It wouldn’t be picked up in Europe until 1373, in Vreeswijk, Netherlands). 
    Yet after railroads took over China in the late 19th Century, the canal was largely forgotten. Vast sections fell into disrepair. In 1958, the canal was restored. Today, some sections – particularly in the south – are plied by barges, mostly transporting construction material, while others remain unused. Here in Tongzhou, the section hadn’t been used for trade in years.
    But the city seems to be rediscovering the canal’s merit. For the 2008 Games, an Olympic park was built along its shores; I could see the park’s white canopy rising from the fog like a Japanese crane.
    And last year, the city built a new park: the Grand Canal Forest Park, which runs 8.6km on the north side of the canal in Tongzhou. On a Sunday morning, families pushed strollers and carried picnics beneath the park’s tree-lined walkways. Immaculate clusters of flowers and foliage grew, many with descriptive signs in both Mandarin and English. From a small amusement park, a carousel tinkled a tune. 
    Grand Canal Forest Park, Beijing, China, Grand Canal
    On a recent Sunday at the Grand Canal Forest Park, the carousel tinkled a tune. (Amanda Ruggeri)
    Smelling the brine on the air, I wandered past the families, past the rides. And there it was.
    The Grand Canal was wider than I’d expected, and stiller too.  Lotus flowers blossomed at the edges of the grey-green water. I couldn’t see a single skyscraper on the horizon. The only movement was a tiny boat, no more than a creaky platform with a sputtering outboard engine; its crew of three old men looked like they were trawling for fish. Floating in and out of the mist that hung thick in the air, they seemed like apparitions.
    Grand Canal, Beijing, China
    A tiny boat of fishermen sputtered along the canal. (Amanda Ruggeri)
    At the dock, wooden boats lined up to take curious customers across. As mine puttered down the canal, another boat passed, this one without so much as an engine, just an operator rowing wooden oars. A handful of locals were on board for a Sunday outing. We waved at each other, and they smiled curiously: what was a tourist doing all the way out here?
    Once, the canal had been proof that China was on the fast track. And I’d been drawn by its monumentality, its grandeur, its importance. Yet today, as Beijing builds bullet trains and underground metros, expands its airports and thrusts skyscrapers into the sky, the Grand Canal is anything but. It seems, instead, a symbol of a slower-moving past. And, if I could have, that’s what I would have explained to the perplexed passersby on the canal: in the end, my choice to come here was worth it not because the canal was as monumental as I’d expected – but because, on the scale of modern-day Beijing, it was less so. And that made it a refreshing stop.
    The Beijingers I’d spoken to may have been right; today’s vast, almost empty waterway makes it hard to get a sense of just how extraordinary the Grand Canal once was, and how integral it was to China’s flourishing trade. But as Beijing races ahead, building modern monuments to commerce, industry and traffic, experiencing the canal – stepping outside of the rush, experiencing a place of lotus flowers and fishermen, faded pride and stillness – seems all the more poigna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