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November 18, 2011
Picton, Ontario에 있는 Mr. Tyler Lester씨의 농장 방문-Nov.4/2011.
Picton, Ontario에 있는 Mr. Tyler Lester씨의 농장 방문.
Tyler씨가 운전하는 Combine기의 운전석에 올라가기위해 기계에 부착되여 있는 ladder를 타고 한발짝 한발짝씩 떼어 한참동안을 헤맨후에 그의 운전석 옆자리에 올랐다. Nepal 여행시 코끼리등을 타고 정글 Tour를 할때느꼈던 굉장히 높다라는 느낌을 지금 또 운전석에 앉아 느끼고 있다. 우리 부부가 농장에 들어서는 광경을 보면서, 그는 Combine을 멈춰놓고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4개월만의 재회를 반가히 맞아 주면서 다시 커다란 Combine 기계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는끝도 보이지 않게 넓은 옥수수밭을 휘젖고 다니면서 완전히 다 dry된 옥수수대에 아직도 그대로 매달려 있는 옥수수를 탈곡하고 있는 중이었다. 운전석에서 내려다 보이는 옥수수들 사이로, Combine의 앞에 바닥에 매달린 일곱줄이 넘는 Rake역활을 하는 뾰쪽한 Fork모양의 기구들이 지나가면서 옥수수 알맹이만 별도로 흡입되여 옆에서 속도를 마추어 따라오는 큰 탱크추럭에 저장시키고, 나머지 옥수수대와 옥수수를 털고난 cone들은 분쇄되여 다시 그대로 땅바닥에 버려져 다음해 비료로 사용되고 있었다. 모든 수확과정이 기계안에서 단번에 처리되는, 내가 보기에는 신기하기도 했지만 웬만한 Tractor trailer이상으로 큰 괴물같이 보이는 그자체였다. 얼른 보아도 농장안에 있는 장비값만 따져도 one million Dollar는 넘을것 같았다.
이렇게 수확된 옥수수는 동물의 사료용으로, 또는 Corn Oil로 변해 식탁에 오르기도하고, 메타놀 알코홀로 변해 우리가 발처럼 이용하고 있는 자동차에 들어가는 Gas에 첨가제로 사용되고 있다고 했다. 단순히 입안에 집어넣는 양식의 일부로만 생각했었는데, 이렇게 사용처가 다양함을 오늘 처음 알게됐다. 40톤 추럭에 옮겨실은 옥수수는 곧바로 한시간 이상을 달려 Trenton에 있는 공판장에 납품된다고 했다. 오늘은 하루종일 옥수수 타작을 하게 된다고 설명해 준다.
그의 농장은 약 800 에이커로 옥수수, 콩, 감자, Pea, Wheat, Barley, 가축의 먹이로 쓰이는 건초들을 재배하고 또 한편으로는 내가 여름철이면 Cottage에서 캠핑객들을 상대로 팔고 있는 Fire Wood를 생산하고 있다고 설명해 줬다. 앞으로도 농장은 계속 확보할 생각이라고 했다. '농부'하면 힘들게 육체적 노동이나 하는 Obsession을 했었던 나의 무지함을 오늘에야 깨달았다. 모든걸 다 기계조작으로 하기 때문에 손이 거칠어질 염려도 흔치 않았고, 농사일을 할 노동력확보를 위해 동분서주할 필요도 없었다. Tyler와 그의 Uncle은 계속해서 일을 해야 했기 때문에 그와 아쉬운 인사를 나누고 농장을 나왔다.
Tyler의 아버지 Doug씨를 이번 여름에, 그는 Fire Wood Supplier로 나는 그의 고객으로, 시골 카테지에서 처음 만나 인연을 맺게 됐었다. 처음에는 그가 Wood supplier인줄 알았었는데, 배달을 해 가면서, 차츰 그의 아들 Tyler가 운영하는 농장에서 시간이 날때 마다 도와주고 있고, 그자신은 커다란 빌딩 constructing Firm을 운영하고, 그의 고객은 주로 연방,주정부임을 알게됐었다. 그가 부리고 있는 현장 노동자는 약 150명정도라고 하는데, Fire Wood를 팔기위해 직접 추럭을 몰고 와서, 손수 unloading을 하다니....처음에는 얘기를 안해주니 모르고 지내다가 시즌이 끝날 무렵에야 자신에 대한 얘기와 아들 Tyler에 대한 얘기를 해주어 알게됐고, 이제는 친구가 되다시피한 것이다. 농장을 방문하게된 동기도 우연이 이루어 진 것이다. Supplier와 고객의 관계로 처음 Cottage에 그들이 추럭에 Fire wood을 싣고 왔을때,아버지와 아들인 Tyler그리고 십대소년 셋이서 와서 Unloading할때 그들을 보면서 느낀점은, 지난번 Supplier를 연상하면서, 이들도 나무를 팔아 힘들게 살아가고 있구나라고 생각하였었다. 그러나 그런 나의 생각은 이번 농장방문으로 깨끗히 지워졌고, 이들이 대농장주이며, Fire wood 판매는 일종의 Side job정도로 하고 있음을 알게됐었다.
시즌이 끝나갈 무렵, Lunar가 메주콩에 대한 얘기를 했더니, 자기 농장에서 많이 생산되고 있다고 했다. 수확이 끝나면 콩 서너백을 사고 싶다고 했더니 농장방문을 한번 해보지 않겠느냐고 오히려 주문했다. 즉석에서 수확이 끝날 즈음인 11월초쯤에 방문하겠다는 약속을 했었고, 그약속을 우리 부부는 이행한것이다. 토론토에서 약 3시간을 달려, Picton 그의아들 농장에 가까운곳에 있는, 만나기로 했던 Mac's Milk에 약속시간에 마추어 도착했더니 그는 벌써 와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반가운 재회의 인사와 Hug를 하고 우리는 그의 차를 뒤따라 한참을 달려 집에 도착했었다. 아담한 시골 전형적인 집이었는데, 농장의 개념은 전연 없었다. 차에서 내린 그는 '여기가 내가 사는 집이다. 여기에 네 차를 주차 시키고 내차로 농장으로 같이 가는게 좋겠는데..' 그렇게 해서 그의 Pickup 추럭을 타고 달려간곳이 그의 아들 Tyler가 일하고 있는 농장이었었다.
그는 자랑스럽게 그리고 친절하게 가족관계를 얘기해 주기도 했다.
그는 두아들이 있는데, Tyler는 큰 아들이고, 둘째 아들은 지금 Ottawa대학에서 환경관련 석사과정을 밟고 있다고 했다. Tyler는 정식으로 학교과정을 거치지 않고, 어려서 부터 그가 자진하여 집에서 학교과정을 그의 엄마로 부터 배워 일찍이 고등학교 과정을 마쳤고, 남은 시간에는 친척들의 농장에서 일하면서 벌은 돈을 모았다가 조금씩 농장을 사들이기 시작하여 현재 그가 소유주가 됐다고 했다. 그이 나이 올해 33세로 이른 봄에 첫아이를, 그에게는 손자를 보게된 것이다. 원래 그의 가족은 토론토시의 서쪽에 있는 Finch와 Weston지역에서 살았었는데, 그가 아직 Teenager일때 그의 부모를 따라 가족 전체가 이곳으로 이주하여 살아왔다고 한다. 이곳에서 오랫동안 농부로 살아온 집안의 딸과 결혼했고, 처가쪽과 아버지 형제들이 그후에 이곳으로 이주하여 부락 전체가 이제는 그의 집안 사람들로 꽉 차있다시피 살고 있는 농촌이라고 했다. 가족관계가 매우 강하여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고 했다.
이번에 들린곳은 그의 장인 장모가 살고 있는집이었다. 곱게 늙은 노부부가 우리를 반겨준다. 집안은 단촐하면서도 깨끗했다. 그분들은 지금은 은퇴하여 여생을 보내고 있었다. Doug이 그의 장인장모에 대한 설명을 하는 대목중에서 'Pumpkin 대상'을 받았다는 얘기에 귀가 번쩍 뜨였다. 해마다 토론토에서 열리는 "Royal Winter Fair"에서, 1990년대 중반에 출품한 그분들의 호박이 특상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말이 떨어지기기 무섭게 장모는 부엌의 옆방으로 가서 커다랗게 만들어 놓은 확대된 신문기사를 들고나와 보여주는게 아닌가. 특상을 받은 호박과 같이 찍은 사진 그리고 당시의 기사 내용이었다.
장인양반의 설명이 시작됐다. 이렇게 큰 호박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호박넝쿨이 자라면서 꽃을 피우면, 암컷,수컷의 꽃봉우리를 나비나 꿀벌들이 드나들지 못하도록 봉해놓고, 활짝핀다음 인공수정을 해야 한다고 했다. 나비와 꿀벌들은 이곳 저곳을 헤매고 다녔기 때문에 여러잡종의 꽃가루들이 묻어있어 순수혈통의 결실을 보기가 어렵기 때문이라고 했다. 교배가 된다음 부터는 다른 꽃봉우리들이 자라서 또다른 호박이 매달리지 못하도록 전지하고, 하루에도 열번이상씩 물을 계속주고, 호박이 자라고 있는 주변에서 반경 약250야드에는 아무런 다른 식물이나 잡풀이 자라지 못하도록 관리해야 한다고 했다. 그렇게 공을 들여 키운 호박이 탄생하여 일등상을 받게 된것이라고 했다. 신기하게도 이렇게 큰 호박속에는 씨(Seed)가 겨우 10개정도밖에 없었다고 한다. 일등상을 받은후 멀리 유럽에서 이씨를 구하겠다고 해서 한알에 약 $100.00씩을 받고 팔았었다고 한다.
Tyler의 집에도 들렸다. 그곳에는 Doug의 부인이자 Tyler의 엄마가 집을 지키면서 아이를 보살리고 있었다. 젊은 부부가 열심히 일하고 있기에, 여기서도 엄마는 손자 돌보기에 시간을 보내고 있는 모습이, 토론토에서 상당수의 친지들이 손자손녀들 돌보는데 하루 일과를 다 보내는 모습을 연상히게 해주었다. 여느 아이들과 다르게 일찍부터 Tyler는 농장쪽에 눈을 떠서 지금은 젊은 나이에 대 농장주가 된 아들을 엄마는 대견해 하는 모습이었다.
이번에는 약 40여마리의 젖소들이 자라고 있는 농장을 보여 주었다. 주로 가족들이 마시는 우유를 이곳에서 공급받고 있다고 했다. 그옆의 단풍나무숲에서는 Maple Syrup 수액을 채취하는 가느다란 Pipe들이 각나무마다 연결되여 있었다. 가느다란 파이프들은 진공상태에 있는 중앙의 큰 Pipe에 연결되여 수액이 그곳을 통해 큰 저장통에 모여지고, 고온의 가마솥같은곳에서 오랫동안 끓여지면, 식탁에 오르는 Maple Syrup이 된다고 했다. 이러한 제조공정은 주로 3월 초순에서 중순사이에 이루어지는데, 그때 다시 방문하면 전과정을 잘 보여 주겠다고 약속까지 한다. 같이 Trail Walk을 하는 친지들과 협의하여 기회를 만들어 볼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옆의 농장에는 아직 타작이 미쳐 안되고 있는 콩밭이었다. 그옆에는 40톤규모의 추럭이 주차되여 있었고, Doug가 그위로 올라가서 container안을 들여다 보더니 empty라고 하면서 허전해한다. 그안에 콩이 있었으면 꺼내서 우리에게 더 줄려고 했었다고 했다. 아까 처음 그의 집에 도착했을때 3개의 조그만 Bag에 들어있는 콩을 주어, 좀더 필요하다고 했었던 말을 기억했었기 때문이었다. 몇시간만 기다리면 Extra콩이 가능하다고 설명해준다. 토론토에 가면 알고 지내는 친지들과 조금씩이나마 나누고 싶어서 였었는데, 적으면 적은데로 나누어 맛을 보는 그의미가 중요한것 아니겠는가.
Fire wood를 만드는곳에 들렸다. 단풍나무숲에서 수액을 빼고, 또 잘 자라지 못하는 나무들을 베어서 Fire wood를 만들어, 이웃농가들집에 겨울철 난로에 땔감으로, 추럭단위로 공급하고 있다고 했다. 벌목된 나무는 야적장에 일년이상을 방치해서 말린다음 공급하기 때문에 화력도 좋고 연기가 없이 잘 탄다고 했다. 우리가 공급 받았던 나무들은 wrapping Machine을 이용하여 포장해서 우리에게만 공급해준 것이라는것을 알았다. 그래서 사용해본 Camper들이 좋은 Fire wood였다고 애기를 해준 이유를 알것 같았다. 전에는 인근에 있는 Sand Bank Provincial Park에도 공급 했었는데, 온주에 있는 전체 Provincial Park이 한 공급업자로 부터만 받기에, 거래가 끊어졌단다.
바쁜 시간을 내주어,3시간 동안 농장을 구경시켜준 Doug에게 감사했다. 내년의 Camping Season에 그는 공급업자로 나는 그의 고객으로 다시 만날때까지 안녕을 고하고 아쉬운 작별을 했다.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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