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November 07, 2011
10월12일 이십구일째, Kinmen Island, Small Kinmen Island, Old Folks village,8/23 격전지 탐방.
10월12일 이십구일째, Kinmen Island, Small Kinmen Island, Old Folks village,8/23 격전지 탐방.
날씨는 덮고 흐리고, 나르 괴롭힌다. T-shirt도 몸에 들어붇늦다.
영어 가이드가 없어 곤욕이다.
호텔에는 흑백 TV가 아주 조그만한게 덜렁하나 있고, 시설이 엉망이다. 이러한 환경속에 경축행사에 온 교포들을 처박아 놓다니....
누가 이런 대접을 받으면서 먼길을 날아오겠는가? 그래서 교포들 인구에 비해 참가숫자가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것을 깨달을것 같다. 식사도 엉겹결에 일행들을 따라서 먹었지만, 대접이 너무나 소흘하다. 그러나 중국사람들의 성질이 우리와 달라서인지, 아무런 불평이나 시정을 요구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그져 주어진 여건에서 괴롭거나 좋으나 앞만 보고 따라가는 식으로 이번 방문을 즐기는것 같았다.
Mashan 관측소는 후방으로 부터 약 1킬로를 땅을파서 만든 턴넬로 그끝은 해변가였다. 그곳에서 중국해협건너에 있는 Xiamen쪽을 향해 관측소와 기관단총들이 겨냥되여 있었다. 바닷물속 밑에 암반을 뚫어 Tunnel을 만들어 중국 공산측 군대의 공격을 방어하도록 되여 있었다. 이곳을 보면서, 전쟁이 얼마나 치열 했었겠나를 짐작할수 있었다. Xiamen과 이곳의 거리는 중국해협을 사이에 두고 불과 2킬로도 채 안되는 근접거리. 장개석은 미국의 도움과 원조로 막대한 무기를 도움받아 이들과 대치하여 싸웠다고 한다. 월남전의 교훈에서 장개석군대가 패퇴한 이유중 하나는 아마도 그러한 부정부패가 군대의 간부들 사이에 만연되여, 싸워서 공산군을 무찌르는게 급선무가 아니고 자기들 살길을 찾아 딴주머니를 차기에 바빴기에 결국에는 대만으로 쫓겨가서 겨우 코딱지만한 섬을 하나 차지하고, 그후 정신을 차려 중국공산당이 코앞에 있는 금문도를 빼앗기면 대만이 그대로 중국공산당군대에 넘어 갈것을 절감한 장개석 군대가, 중국모택동 군대가 쏘아대는 포화를 무릅쓰고, 금문도를 땅굴로 요새화 하여 공산군의 상륙을 저지하여 오늘이있게 한것으로 이해됐다.
Old folks village를 방문했다. 청나라말엽에 이곳출신 Wang Kuo-Jen이 가난을 벗어나고자 고향을 등지고 일본으로 건너가 그곳에서 Candy과자를 만들어 엄청난 돈을 벌어 이곳고향 마을에 전통가옥을 짖기 시작하여, 아버지가 끝내지 못하자 아들 Wang Ching-Hsing이 아버지의 유업을 이어받아 총 25년 동안걸려 완성했다. 1876년에 시작하여 1900년에 완성했다고한다.
먼저 집을 짖고, 학교를 짖고, 조상을 모시는 사원을 짖고, 민가는 16채, 가옥형태는 Sou thern Fukien style로 흔히 보는 민가에서보는 지붕이 좀 달랐다. 국부군과 공산군들의 싸움으로 많이 파괴되여 최근엔 다시 복원을 했다고 한다. 오래된 집들이 새로지은집같아서 의아해 했는데, 이유를 알것 같았다. 이들 부자는 집만 지은게 아니고 중화민국을 건국하려는 혁명군에 자금을 대주기도 했다고한다. 후손들에게 이들의 업적을 기리면서 애국하는 길을 가르치는 본보기로 홍보하고 있다고 했다. 마침 유치원에 다니는 손자 손녀같은 꼬마들이 선생님의 인솔하에 이곳을 방문하는 광경을 목격하면서, 이들이 관람후 무엇을 생각하고 마음속에 간직하게될까?를 생각해 보면서 국가적 차원에서 역사는 꼭 계승되여져야 하는것이라고 생각을 했다.
8/23 격전지, 타이완 장개석 정부는 본토 수복과 공산당 정권에 대한 증오가 대단했던것 같다. 공산당 정부역시 Kinmen섬을 장악해야 장개석 군대를 완전 섬멸할수 있는 숙명적으로 중요한 요충지여서 중국공산군은 수시로 포격을 가해오곤했는데, 1958년 8월23일 오후 6시30분에 공산군을 앞세워 기습적으로 공격을 했지만, 이를 사수하여 결국 그들을 격퇴시킨 그날을 오직 823격전지라 부르고 기념관까지 만들어 박물관으로 이용, 후세들에게 관람시키고 있었다. 섬전체가 마치 요새화되여 어디를 가나 군진지 또는 턴넬 그리고 격전지 등 유적지로 남아 보존 시키고 있으나, 타이페이나 중국본토나 이제는 모두 물질의 풍요함속에서 젊은이들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데, 과연 이러한 역사적 관점을 홍보하는 정책이 어필될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문득 일어난다. 이곳이나, 중국의 대도시에서 본 젊은이들의 생각은 대동소이, 즉 부모들의 생각과 조국관과는 상관없이 어떻게 하면 인생을 즐길수 있는까 그자체인것 같은 느낌을 받았는데......
이곳 금문도의 치열한 전투속에서도 군대 위안부는 군부대주변에 차집을 열고, 성접대를 했었다고 한다. 이는 전쟁터에는 의례히 바늘과 실처럼 공생하게 되여 있었고, 여자들은 자진해서 이곳에 안주하여 차를 팔고 성을 팔고, 그러다 적의 기습을 당하여 목숨을 잃게되면, 군인은 전사로 처리되지만, 여자들은 흔적도 없이 처리해 버린다고 했다. 차접대소라해서 기념관을 만들어 Mural에 나타난 군인들이 모습이, 전시에 언제 목숨을 잃을지도 모르는 긴박한 상황속에서도 욕구를 풀기위해 차집앞에서 자기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모습의 그림에서 본능을 억누른다는것은 그렇게도 어려운것임을 보았다. 내가 메모하는 노트에 이곳을 방문했다는 뜻으로 관리소에서 제공한 Stamp를 찍기도 했다.
Kinmen섬에서 Small Kinmen Island에 배를 타고 약 10여분간 달려 갔다. 이곳에서 본 Jiou Gong(구궁)군사터널은 어제본 보급물자를 받기위한 큰 터넬과 규모가 같았고, 이를 뚫는데 무척 힘들었을 것을 보여주기위해 군인들이 굴착기를 사용하여 암반을 부수는 작업을 하는 장면을 보여주기위해 Mock이 터넬안에 전시되여 있어 잘 보았다. 사상자도 많았을것 같다. 주로 턴넬의 입구는 섬의 반대편에서 시작하여 적군이 바라보이는 최전선을 향해 뚫려 있음이 특징이었다.
어젯밤 Air Cond.때문에 결국 냉장병에 걸려 코물이 하루좋일 나를 괴롭혔다. 저녁에도 괴롭혔다.
청나라 말기,즉 1800년대말경에 민간인들에 대한 재판및 억울함을 들어주는 관가를 방문, 군인 재판관이 앉아써 일보았던 책상과 그리고 지하실에 마련된 감옥과 그곳에 갇힌사람의 모습, 마치 옛날 연속극에서 자주 보았던 감옥의 형태와 비슷했다.
금문도는 옛날 명나라 때부터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하게 여겨왔던 곳이라고 한다.
원래 금문도는 본토의 맨앞에 있어 Xiamen과 더불어 그주위를 적으로 부터 막아 주는 역활을 주로 했왔었는데, 장개석 군대가 대만으로 후퇴하면서, 이번에는 꺼꾸로 중국공산당군대의 공격을 이섬에서 장개석 군대가 저지하여 대만을 지켜주는 전략적 요충지가 되였다. 어려서 부터 들어왔던 금문도, 오늘 이곳을 둘러 보면서 양쪽의 정부가 죽기 살기를 결단하고 사수하고 방어를 했던 이유를 조금이나마 느낄것 같다.
Subscribe to:
Post Comments (Atom)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