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November 08, 2011

10월23일 일요일, 삼십구일째, 홍천명산 팔봉산2봉 정상에 서다.























10월23일 일요일, 삼십구일째, 홍천명산 팔봉산2봉 정상에 서다.

정상은 바위덩어리뿐이었다. 그곳에는 마을의 축복과 안녕을 비는 조그마한 신당이 우리를 반기고 있었다. S형과 Lunar그리고 내가 제일 먼저 정상에 오른것으로 생각했었는데, 우리가 올랐을때는 수십명의 등산객들이 다른 route를 통해,천연색의 옷으로 치장하고, 올라와서 정복의 쾌감을 느끼고 또 올라오고 있는 구룹들도 있었다. 옆에 보이는 제3봉에는 더 많은 등산객들이 주위의 단풍과 어울려 경관을 이룬다. 가슴이 뻥 뚤리는 기분이고, 토론토에서 Trail Walk하면서 정해진 구간을 완주했을때와는 또 다른 기분이다. 말로만 들어왔던 팔봉산 8개의 봉우리중 제일 높은 2봉의 꼭대기에 S형과 같이 Lunar와 내가 발자국을 찍은 것이다. 숨소리는 아직도 가파르고 쉴새없이 이마와 등에서는 땀이 흘러내리고 있었지만.....

아침을 마치고, 동네고삿길을 S형의 안내로 한바퀴 돌면서, 집앞을 유유히 흐르고 있는 홍천강의 조약돌과 모래밭으로 뒤덮혀 있는 물가를 걸면서, 말없이 도도히 흐르는 홍천강을 굽어 보면서 살아온 얘기도 나누고, 남은 인생 우리같이 모여서 이러한 시골의 한적한 곳에서 살아보자는 꿈같은 얘기도 나누고, 그리고는 집으로 돌아오는길에 우연히 팔봉산 정상에 조금만한 집같은게 보여서 지나치는말로 S형 한번 올라가 보았으면.....그랬더니 차의 핸들을, 험악한 산악길을 기어올라 갈수 있는데까지, 돌려가서 더이상은 갈수없게된데서 차를 내려 숲속을 헤메면서 걷기 시작하여 정상까지 얼떨결에 올랐던 것이다. 그런데 S형이 우리보다 더 잘걷는게 아닌가. 노익장을 과시하고도 남는다. 드디어 Trail Walk이 희미하게 나타나서 걷고 정상에 올랐을때는 온몸에 땀으로 범벅이 되였었다. 시원한 바람이 여기까지 올라오는데 힘들어했던 그기분을 상쾌하게 씻어준다.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아랫동네와 홍천시내등, 사방으로 둘러봐도 옹기종기 모여있는 사람사는 마을들이 유럽쪽의 어느산골 마을을 보는것 같은 착각이 들정도로 잘 정돈되여 보인다.

신당에는 이신당에 대한 역사가 새겨진 Bulletin board가 걸려 있었는데 그사연과 역사가 꽤 깊었다. 신당은 자물쇠가 굳건히 잠겨있었다. 필요한때만 무당이 올라와서 일을 본다고 한다.

삼부인당의 유래
3부인(김씨,이씨, 홍씨)신을 모시는 곳으로 지금부터 약 400여년전인 (조선시대 1950년대)때 부터 팔봉산 주변 사람들이 마을의 평온을 빌고 풍년을 기원하며 액운을 예방하는 당굿을 해온곳이다.
팔봉산 당신제는 ...... 유일하게 전승되여오는 부락제사로 음력 3월 보름과 9월 보름에 전통적인 굿과 제사를 지내면서 나라와 백성이 평안하고..... 산과 강에서 무사안녕하기를 축원한다 라고 묘사하고 있다.

팔봉산 굿놀이는 신을 모시는 3마당으로 되여 있는데 팔봉산.... 소원이 성취된다하여 도처에서 사람들이 이신당을 보러온다.

용문에는 많은 Biker 들이 주말이면 모여드는 곳이라는것을 전철을 타고 서울로 오면서 느낄수 있었다. Lunar와 내가 서울로 되돌아오기위해 전철의 맨뒷칸에 탔는데, 그곳에는 bike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그곳은 Biker들이 용문을 중심으로한 시골길과 산악길에서 bike riding을 즐기고 다시 서울로 갈때 보관하는 곳이었다. 사람들 타기에도 복잡한 좁은 공간에, 전철당국의 배려도 고맙지만, 사람들이 우선인지, 바이크가 우선인지 구분이 안될 지경이었다. 한편으로는 그만큼 시민들의 생활이 좋아져 여유를 갖고 삶을 즐길수 있다는 증거인것 같아 좋아 보이기도 했지만....내눈에 보이는 바이크는 전부가 고가품이었고, 입고있는 옷또한 보통옷이 아닌, 남이 하는데 나도 해야지 하는 냄새를 심히 풍기는, Show off가 많이 저변에 깔려 있음을 볼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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