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November 06, 2011

10월 11일, 이십팔일째. Kinmen(금문도) Island 동포자격으로 일행 모두가 방문.











































10월 11일, 이십팔일째. Kinmen(금문도) Island 동포자격으로 일행 모두가 방문.

지금은 완전개방되여 오히려 관광지로 각광받고 있는, 전천후 군사요새였던 금문도를 방문하기위해 비행장으로 향하는 뻐스안에서 Danny가 타이페이에서 제일 높은 빌딩을 가리키면서, 101층으로 맨윗층에는 큰 Steel Ball이 놓여 있어, 건물이 흔들리는 일이 발생할때 자동적으로 Balance를 맞추어주는 역활을 하고 있다고 했다.

국내선이 주로 이용하는 Taipei Songshan Airport는 잘 정돈되여 있어, 공공질서가 엉망인 Mainland China에서 본것과 상대적으로 비교를 해 본다. 깨끗하고 승객들의 Manner도 그곳과는 비교가 안되게 점잖았다. 하늘에서 내려다 본 시내는 무척넓어 보였다. 남북으로 Tamsui River가 흐르고 동서로는 이보다 물줄기가 적은 Keeling River가 흐르고 있고, 그주위를 따라서 시내가 형성되여 있는것으로 보였다. Keeling River강 언덕편으로, 지난 8일날 이곳에 도착하여 뻐스를 타고 호텔로 달리면서 보았던, 붉은색의 중국식고유의 건축물을 보고 스쳤는데, 이곳이 Grand Hotel로 옛날에는 장개석 총통의 부인이 주인이었었다고 들었는데, 하늘에서 내려다본 모습이 무척 아름답게 각선미를 나타내고 있었다. 정확히 한시간을 날아가 Kinmen 공항에, 40인승 프로펠러 비행기는 안착했다. 공항밖에는 우리를 기다리는 안내원이 대기하고 있었고, 뻐스에 오르는데 우리일행뿐만이 아니고 다른 구룹의 교포들이 합류하게 됐다. 그들과 아마도 여기있는 동안에 같이 행동을 하게 되는것 같았다.

뻐스는 바로 Kinmen national Park으로 달렸다. 그곳에는 장개석군대와 모택동 군대가 전쟁을 치를때 사용됐던 각종 퇴역한 전투비행기들과 통신장비, 그리고 탱크들이 진열되여 전시되고 있었다. 바로 Mainland China의 코앞에 있는 이섬을 사수하기위해 수많은 목숨이 희생되였음을 알수 있을것 같았다. 토굴을 파고 그속에서 적의 포를 피하여 싸웠다고 한다.

자유중국의 2대 총통으로 장개석의 큰 아들인 장경국(Chang Kyung Kuo)의 기념관이 공원안에 조촐하게 건립되여 그에 대한 자료들을 전시하고 있었다. 그는 1910년도4월 27일에 태어나 1988년 1월 13일 세상을 떠났다고 설명하고 있었으며, 자유민주주의를 뿌리 내리기위해 헌신했다고 기리고 있었으며, 그의 장례식때는 수많은 국민들이 운집하여 그의 떠나는 길을 애도했다고 한다.

이번에는 바다 깊숙히 내려가 건설한 Tunnel을 탐방했다. 지반이 전부 대리석 암반인데, 조그만 배들이 출입을 할수 있도록 3년에 걸쳐 바위를 깨가면서 1963년에 완성했다는데, Tunnel은 V자 모형으로 되여 있었다. 현재도 바닷물이 Tunnel안에 출렁이고 있었고, 바다고기들이 가끔씩 보이기도 했다. 관광객을 위해 Board Walk을 설치하고 Guard Rail까지 설치해 놓았다. 중공군이 아무때고 포를 쏘아 대는통에 타이완에서 이섬을 지키는 병사들에게 보급품을 제대로 보낼수가 없어, 큰배에 싣고온 보급선은 2-3킬로 뒤의 바다에 정박하면, 조그만 보트들이 그들의 포사격을 피해 전등석화처럼 보금품을 싣고 이 Tunnel속으로 들어와 Unload하고 다시 상황을 봐서 모선으로 달려가곤 했었단다. 마침 이번여행을 같이 하게된 Tony가 이 Tunnel을 군인들이 건설할당시 직접 참여 했음을 오늘 알았다. 암반이 돌로 되여 있어 원자탄 폭격에도 견디어 낼수 있는 구조라고 했다. 중공군은 1970년대 중반까지도 Propaganda성격을 띄고, 아무때고 포를 쏘아 댔었다고 한다. 중공으로서는 이섬을 장개석군대가 점령하고 있는것이 마치 목에 걸린 가시처럼 편치 않했을 것이다. 중국본토를 공산당의 모택동에게 빼앗기고 이곳 작은섬 타이완으로 밀려왔는데, 금문도까지 밀리면 타이완이 위험하게 되니까 온힘을 다해 사수했을 것이란 짐작을 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이번에는 칼을 만드는 대장간을 방문했다. 이지역에 Kwang Hsu 청나라 황제때( 1875년- 1908년) Wu Tsong-shan이라는 농부가 바로 해협을 건너 중국본토지역의 Xiamen으로 건너가 쇠붙이 다루는 교육을 받고, 다시 돌아와 농사에 필요한 농기구들을 제작하기 시작했었다고 한다. 그후 그의 아들이 1937년에 이사업을 전수받아 칼을 제작하기 시작했는데, 당시 1895년부터 1945년 사이에 일본이 이곳을 점령하여 식민지화 하고 세계2차 대전을 일으켜 전쟁을 치르고 있을때 총탄을 만드는데 Steel을 사용하느라 일반인들의 사용이 금지되다 시피 했었다고 한다. 연합군이 일본군을 향해 쏟아부은 대포와 기관총의 탄피가 흔하게 딩굴고 있는점에 착안하여 탄피를 이용하여 칼을 만들기 시작했었다고 한다. 지금의 주인 Wu씨는 3대째 가업으로 전수받아 탄피만을 이용하여 칼을 만들고 있는데, 공장은 수공업수준을 벗어나지 않는 Furance하나와 Anvil 그리고 Grinder한대 등등.... 그옆에는 탄피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그는 Idea를 내여, 칼을 만들어 팔기도 하지만, 손님이 요구하는 칼을 보는 앞에서 직접제작하여 판매하는 즉 Taylor Made식의 칼을 제작판매하여 이제는 이지역뿐이 아니고 전세계적으로 칼을 제작판매하고 있다고 했다. 우리가 방문했을때에도 주문받은 칼을 탄피를 이용하여 제작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민간인들이 방공호로 사용했던 지하턴넬을 탐방했다. 우리가 탐방한 지하 턴넬은 이지역에 12개가 있음을 안내지도가 보여주고 있었다. 중공군이 수시로 군사시설뿐만이 아니고 민간인들에게도 포를 쏘아대기 때문에 살아남기 위해 뚫은 지하통로인데
지하에는 학교도 있고, 지휘소도 있었고, 응급실도 있었다. 한곳을 지날때는 불도 꺼진채 폭격을 당하는 효과음이 귀를 아프게 할정도로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지하터널은 넓이는 두사람이 비켜갈 정도이고, 높이는 보통남자들이 꼿꼿이 서서 걸어갈수 있는 구조였다. 약 1킬로를 걸었는데, 너무나 더웠다. 옛날에 이곳에 대피하여 있는동안에 더위때문에 무척 고생들을 했을것 같았다. 불과 30여년전 까지만 해도 그렇게 위험했던 이곳이 이제는 완전히 관광객들에게 개방되여 돈벌이를 단단히 하고 있었다. 관광객의 대부분은 내국인들이었다. 중국본토에서, 홍콩에서, 타이완에서 온 관광객들이였고, 우리같이 이번 경축행사에 초대되여 온 사람들도 많아 보였다. 이지하턴넬을 걸으면서 몇년전 고국방문시에 북괴가 파놓은 땅굴을 전방에가서 걸어봤던 기억이 났다. 이들은 이제는 그러한 전쟁놀이는 과거속에 묻어두고, 양국의 국민들이 마음만 먹으면 수시로 아무 불편없이 드나들수 있는 길을 만들어 놓고 있는데, 조국 한반도에는 그와는 정반대로 가고 있는 긴장감이, 북의 그친구때문에 계속되고 있음에 마음이 한편 무거워짐을 느끼기도 했었다.

해변가에의 Tongan Pier를 보았다. 동상이 먼저 눈에 띄었다. 한문으로 새겨진 글귀에는 일본군들에게 강제 징집되여 억울하게 죽어간 영령들을 기리기위한 것이었다. 30 여년전 까지만 해도 눈앞에 보이는 해협 건너에 있는 Xiamen에서는 대포가 날아오곤 했었다고 한다. 그러나 해협건너 중국본토에는 흐린 날씨인데도 고층건물들이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서있었고, 계속해서 건설되고 있는 모습이 뚜렷히 보였다. 다 부질없는, Leader들의 말한마디, 행동하나에 따라서 이렇게 현장에서는 포탄이 날아올수도 있고, 이웃집 드나들듯 왕래도 할수 있고 하는것을..... 피곤하다. 구경하는것도, 더구나 날씨마져 무더우니 피곤이 빨리 온것 같다.
어찌 나뿐이겠는가? 우리 일행들은 다 노인들 같은데....그들도 어렵게 견디어 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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