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November 06, 2011
10월 10일, 이십칠일째, 100주년 중화민국건국 기념식 동포자격으로 참석, Wulai resort 구경
10월 10일, 이십칠일째, 100주년 중화민국건국 기념식 동포자격으로 참석, Wulai resort 구경
여덟시에 일행은 Lobby에 집결, 식장으로 향하는데, 다시한번 ID카드와 관련서류들을 점검하고, 준비를 단단히 했다.
식장까지는 멀지 않아 걸어가기로 하고 호텔정문을 나왔는데, 벌써 길은 모두 차단됐고, 경찰들이 경비를 서느라 분주히 움직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식장으로 향하는 큰 길에는 육군부대의 각종 차량들이 무기를 탑재한채 끝도 보이지 않게 길거리에 주둔하고 있어 마치 전쟁을 치르기위한 전열을 가다듬는것 같은 삼엄한 모습이었다.
4단계 이상의 삼엄한 보안 점검을 거쳐 겨우 식장에 안내 되였다. 대통령궁앞의 넓은 거리와 그앞의 광장에서 경축행사는 열리고 있었다. 시내의 한복판에 있는 거리를 막고, 건너편에 있는 광장을 메운것은 거의가 다 교포들이었다. 이들은 우리와같은 삼엄한 Security check를 거쳐 여기까지 오게됐는데, 그럴만한 이유가 충분이 있다고 생각되였다. 정치적으로는 중국본토의 공산당 정부와 대치해 있는상태이고....공식적으로 식이 시작되는 10시 이전에는 각분야의 젊은이들이 묘기를 보여주는 시간이 있었고, 시간이 되여 대만의 현 대통령인 Ma Ying Jeou(마영구)씨의 인사말이 있었는데, 그내용은 나는 전연 이해 하지 못했지만, 감각으로 보았을때는 주먹을 불끈 쥐면서 강한 톤으로 연설을 했지만 무척 외로워 보였다. 서구의 여러 나라들은 공식적으로 대만을 나라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경축사절단이 발표될때에는 아프리카의 이름도 모르는 몇나라만이 소개되는 순간을 목격하면서 현실 세계의 냉정함을 보았다. 이에 앞서 10월 1일에 있었던 중국공산당 정부의 창건일에는 세계의 모든 나라들이 사절들을 보내여 경축한것에 비하면 힘의 냉정함을 여실히 느낄수 있었었다. 일행중 Danny가 오늘의 연설 내용을 잠깐 요약해 주었다. 그는 중국을 향해, 과거에 너무나 집착하지 말고, 현실에 직면해서 중화민국의 100주년기념을 해야 할것이라고 했단다. 같은날 중국의 베이징 정부의 후진타오는 Taiwan-China는 평화적으로 통일을 해서 한나라가 되여야 하며, 신해혁명 100주년이라고 언급하고,중화민국건국 100주년의 명칭을 사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중화민국은 타이완으로 온이후 60년이상을 민주주의 사회속에서 눈부신 성장을 해왔다고 했다. 우리 중화민국의 건국의 아버지 Sun Yatsen의 자유와 민주국가로서 모두가 평등한 성장을 즐길수 있도록하는 건국이념을 잊지 말아야 할것이다 라고 중공을 향해 제스처를 보냈다고 한다. 그는 1951년 10월에 본토가 전쟁에 휩쓸릴당시 한살이었던 그는 부모님을 따라 홍콩에서 타이완으로 이주해와 살면서, 50년후에 그의 아들이 중화민국의 대통령이 될줄을 꿈에라도 생각했었겠는가? 이곳이 바로 타이완 정부, 즉 개인의 자유와 인격이 존중되고 있는 중화민국이다 라고 설파 했다고 한다.
공군의 Air show에는 헬리콥터로부터 프로펠러 비행기 그리고 최신형 젯트 전투기의 퍼레이트에 이어 육군의 Parade는 이를 보는 나의 마음을 즐겁게 했다기 보다는 힘없는 나라의 현실을 그대로 보는것 같아 마음이 무거웠다. 대통령이 아무리 외쳐대본들 대만이라는 나라의힘의 한계가 여실히 나타나는 현실에 대해 누가 부정을 할것인가?. 중화민국 건국 100주년의 의미는 정말로 그의미가 크다고 생각됐다. 청나라가 망하고 바로 이어서 세워진 나라가 중화민국인데..... 이의 전통을 이어받고 있는 나라는 대만의 조그만 섬으로 쫓겨나 국제적으로 주권국가임을 인정받지 못한채, 세계 열강대국의 축복을 받지 못한채 이름도 모르는 아프리카의 몇나라 대표들만이 단상에 자리를 채우고 있는 현실에서, 대통령의 인사말씀에 무슨 힘이 들어 있을까?라는 연민의 정을 떨쳐 버릴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들의 자존심은 대단한것 같아 보였다. 중국공산당 정권이 대만을 함락하기위해 그렇게심한 포격을 가했는데도, 바로 본토로부터 지척에 있는 금문도에서 이들의 포격을 이겨내고, 오늘날에는 이를 전세게 사람들에게 교훈의 표본으로 열람시키고....일면 대단함을 인정하지 않을수 없었다.
아직도 많은 순서가 남아 있었지만, 날씨는 덮고, 피곤하여 우리 일행은 자리를 일찍 뜨고 말았다. 우리가 거리에 나갔을때도 육군의 위용을 자랑하는 미사일탑재 차량이 퍼레이드를 기다리고있었고, 그뒤를 이어 대학생들의 활기에 찬 퍼레이트가 차례를 기다리고 있음을 보면서, 괜히 미안한 마음도 일부 마음속에 일었다. 자유와 인권은 말로써 되는게 아니고 이를 뒷받침 할만한 힘이 있을때만이 가능하다는 극히 평범한 진리를 오늘 이행사에서 나는 깊이느꼈다. 우리 일행이 호텔을 향하여 걷고 있는 사이에 하늘에서는 낙하산 부대원들이 오색찬란한 연기를 품으면서 하강하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그들의 하강 모습은 서구의 강한 군사력을 간직한 나라에 비하여 손색이 없었지만, 이를 지켜보는 사람은 극히 제한돼여 있다점에 그들에게 연민의 정을 금할길 없었다. 앞서 지켜본 육군의 기갑부대 행진에서 장병들의 얼굴이 전부 위장(Camouflage)색칠을 한채 무척 진지한 표정으로 차량행진을 하는것을 보았지만, 이를 눈여겨 볼 집단이나 사람들은 중국 본토의 공산당 정부산하의 일부 사람들일뿐일것이라는점을 생각해보면서 우리 한반도 남북한의 현실을 여기에 대입해보지 않을수 없었다. 북의 김씨왕조와 그산하에서 빌붙어 먹고 살고 있는 자들이 마음을 바꾸어, 중국의 등소핑이 한것처럼 개방을 하면 중국공산당 정권하에서 국민들이 누리고 있는 경제적 풍요보다 훨씬 더 잘누리고 있을텐데....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일행중 아무도 영어로 설명해준이가 없어, 오늘 경축식이 거행된 거리의 이름과 광장의 이름도 모른채 퍼레이들를 즐겼을 뿐이다.
이곳도 쌍십절 100주년 기념을 경축하는 뜻으로 모든 관공서는 문을 닫고, 오직 축제 분위기를 만들기 위한 모든 조치를 취하고 있음에 경탄을 금할수 없었다. 돈이 필요하여 가지고있는 달러를 환전하려 해도 축제가 끝나는 날까지는 어쩔도리가 없었다. 어느거리든간에 식당이 다차지하고있어, 과연 중국인들은 먹는데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는 소리가 헛소리가 아님을 깊이 느꼈다. 음식점마다 인산인해을 이루어, 우리같은 문외한은 먹고싶은 음식을 주문할 엄두를 낼수가 없었다. 다행히도 여행을 같이 하는 일행들이 있었기에 큰 문제는 없었지만.
오후에는 Wulai라는 시내에서 멀리,한시간 달리는 거리에 떨어진 Hot spring이 있다는 곳으로 우리일행이 tour를 떠났다. 가기전에 충분한 설명을 자기네들끼리는 했는지 모르겠으나, 우리 부부에게는 자세한 내용의 설명도 없이 Scenic view를 보러 떠난다는 간단한 설명만 한채 떠났다. Wulai Resort는 산속계곡속에 깊숙히 박혀 있는 일종의 시민들의 휴식처였다. 좁은 협곡을 따라 이어진 2 lane 의 길을 따라 약 한시간을 달려 도착했었다. 중국인들의 특성은 우리와 조금은 다른것 같다. 출발하기전에 오늘 가는곳에 대한 간단한 설명은 의례히 있게 마련인데, 그들이 사전에 전해준 말은 오후 2시에 뻐스를 타고 Scenic view를 보러 간다라는 간단한 설명외에는 아무것도 모른체 그냥 따라가는 식이었다.
Wulai resort는 타이페이 시민들의 정신적 휴식처라는것을 현지에 도착하여 느꼈었다. 좁은 땅덩어리에서 휴식을 즐기기위해 찾아갈곳은 한정되여 있음이 마치 고국의 사정과 크게 다르지 않고 있다는 점에 동감하지않을수 없었다. 뻐스가 현지에 도착했을때는 주차할 파킹장이 없었다. 모두가 임시로 정차한 곳에서 내려, 모노레일을 타고 위로 올라가는 정거장까지 걸었다. 오는사람 가는사람으로 좁은 거리는 밀려서 가고 오는것 같았다. 다리를 건너고,다시 계단을 밟고 위로 올라가니 모놀레일카가 그윗쪽으로 관광객들을 실어 나르는 정거장이 있었다. 리더의 일괄표구입으로 우리 일행은 어렵지 않게 모노레일카에 올라탈수있었다. 협퀘의 엉성한 레일카는 이들에게는 'Wulai log cart'로 불렸다. 이를 타고 흔들거리면서 약 5분을 달렸더니 모노레일이 갈수 있는 끝까지 왔다.
좁은 협곡에는 Water falls가 보는눈을 시원하게해주었고, 이곳에서 30분간 자유시간을 준다는 리더의 반가운(?)소리가 나와 Lunar의 마음을 바쁘게 했다. 우리둘은 바로 폭포에 가까운 전망대로 가서 폭포를 구경하고 사진을 찌고.... 그러는 사이에 일행중 다른 팀들이 이곳에 모여 들었다. 우린 다시 장소를 옮겨 다시 계단을 밟고 계곡 윗쪽으로 올랐다. 그곳에는 더 넓은 공원과 같은 공간이 있었고, 나의 눈길을 끈것은 넓직한 건물의 기둥역활을 하고 있는 그표면의 장식이 특히했다는 점이다. 중앙의 기둥은 완전한 나상의 남성상이 각인되여 있었는데, 남성의 심볼이 정확히 각인되여 있었고, 그옆의 다른 기둥에는 똑같이 여성의 몸체와 십볼이 그려져 있었다는 점이었다. 왜 이런 형상이 기둥에 그려져 있었는지는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는점이 아쉽기는 했지만.....
이휴양지 입구부터 끝나는 지점까지 길양쪽에 포진되여 있는 상점은 99 %가 음식점이었다. 과연 중국인들의 eating out습성을 나타내는 증거이기도 했지만, 그만큼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Local people들 뿐이라는 점도 많이 작용한것 같았다. 자유중국 대만은 서구사회 특히 미국의 문화를 많이 닯아가고 있는 Society였지만, 이곳에서 단 한사람의 서구인들 보지 못했다. 앞으로는 모르겠지만 현재의 상황으로는 현지인을 상대로 장사를 해야 하는 분위기를 그대로 나타내고 있는것으로 이해 되였다. 스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거의 손에 먹을것을 사들고 있는것 같았다.
Wulai log Cart타기는 무척 재미 있었다. 덜컹거리면서 시속 약 20-25킬로로 달리는 협궤레일의 카는 개솔린 엔진을 장착하고 10명의 승객을 한의자에 2명씩 태우고 달리는 장난감 같은 극히 시골스런 냄새를 풍기면서 달렸다. 탑승자 모두가 만면에 웃음을 흘리면서 약 5분간의 여행을 즐겼다. 그곳에서 하차하여 각자 자유시간을 정해진 시간까지 즐길때 우리 부부는 앞서 애기한것 처럼 가파른 언덕의 계단을 밟고 다른 세상을 즐긴 것이다. 우린 일행중 우리 부부만이 유일하게 이곳을 올라온 것이었다. 남성과 여성의 심볼이 확실히 보이는 사진을, 버스를 타고 다시 타이페이 시내로 오면서 보여주자, 모두가 놀란 표정이다. 어디서 이런 광경을 보았느냐는 것이다. 우리의 설명을 듣고나서 한다는 소리는 모두가 '그렇게 힘든데는 어떻게 올라갔는가?"라는 질문이었다. 그들의 관광스타일은 우리 부부와는 확연히 달랐다. 그들은 편하게 앉아서 즐기는것을 좋아했고, 우리는 다시는 찾을수 없는 이곳을 볼수 있는데까지는 힘들어도 보고 가야 겠다는 점이 다른것 같았다. 이곳에는 따뜻한 온천이 유명한것으로 안내문에서 보고 알았으나, 그런 기회는 주어지지 않아 아쉬웠지만, 이들은 그런것 보다는 앉아서 구경하고 먹는것에 더 신경을 쓰는 여행타입이기에 우리 부부둘이서 돌출한 행동을 할수 없었다. 휴양지 입구에는 새로 짖고 있는 중국식 전형의 기와집건물이 거의 마무리 단계에 있는것을 보았다. 얼른 보아서는 불교 사찰 같았는데, 아무도 설명이나 이에 대한 얘기를 해주는이 없어 안타까웠다. 기와 지붕의 모양이 눈길을 그곳에서 떼지 못하게 할정도로 아기자기했고, 운치있어 보였다.
타이페이 시내로 접어 들면서, 많은 차량의 흐름이 쉽게 흘러가게 하는 원인이 신호등(Traffic signal lights)d에 있음을 나스스로 느낄수 있었다.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시내의 길이 바둑판 처럼 서로 대칭되여 있어. 이들 간선도로의 신호들이 Interlocking되여 신호들의 신호가 일제히 바뀌어 Traffic의 흐름을 계속해서 흐르게 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한번 신호가 터지면 계속해서 최소한 2분 정도는 계속해서 달릴수 있어 차량이 많은데도 많이 막히지않고 소통되고 있다는 점이었다. 토론토의 거리를 연관시켜 보았다. 토론토는 신호등이 제각기 작동되여 rush hour때는 차량들이 달리지를 못하고 한블럭달리다가 다시 서고... 그리고 또 달리고... 토론토처럼 바둑판 처럼 형성된 길들은 Interlocking만 되면, Rush hour 때 Traffic Jam은 많이 줄일수 있을것은 어려운 일이 아닐것이라고 생각해 보기도 했다.
저녁은 보기드물게 서양식 스타일로 영업하고 있는 곳에서 즐겼다. 식당의 주인과 leader인 Mr. Kan과 잘 아는 사이 같았다.
Appetizer로 부터 시작해서 Main course까지, 이렇게 즐기기는 이번 여행중에서 처음이었다. 기분이 좋아 Maid가 부어주는 Wine을 훌쩍 훌쩍 많이 마셔댔다. 오랫만에 기분이 너무나 좋다. 그동안 여행하면서 싸였던 스트레스가 다 날아가 버린 기분으로 저녁을 즐겼다. 여러면에서 leader인 Mr. Kan 부부의 배려가 직,간접으로 작용한것 같았다. 여행시작할때는 서로 오해한점이 있어 불편한 기간도 있었으나, Jiuhai여행때 부터 서로를 이해하게 되면서 그들이 각별히 우리 부부를 위해 신경쓰고 있음을 알고 있었지만, 오늘 저녁에도 그러한 배려를 확실히 느낄수 있었다. 고마웠다. Lunar가 평소 모나지 않게 일행들과 어울려 지내면서 Fellowship을 쌓아둔 결과가 열매를 맺었다는점이 크게 작용 했음을 확실히 느낄수 있었다.
어쨋던 우리 부부는 중국인도 아니면서 중국인 교포로서의 대접을 받으면서 100주년 기념행사인, 전야제에 참석하여 성찬의 대접을 받았고, 오늘은 경축식장에 참석하는 특권을 부여 받았었다. 우리 일행중 홍콩에서온 3 Couple은 오늘 행사에 참석하기위한 자격요건을 충족치 못해 식장에 들어오지 못하고 도중에 헤여져야만 하는 아픈 헤여짐을 보면서, 괜히 미안한 마음도 들고, 한편으로는
뿌듯한 생각도 들었다. Security Check을 하는데도 우리부부는 일행들과 함께 떳떳하게 교포로서의 자격을 인정 받았다는 점이 우선 무엇보다더 기분을 좋게 했었다는점이 기억에 오래 남을것 같다. 자유중국이여. 참고 인내 하거라. 머지 않아 진정한 자유중국의 건국이념이 전세계에 알려지는 그날이 머지 않아 올것이다 라고 그들을 격려해주고 싶은 마음을 품고, 또 잠자리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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