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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ursday, August 05, 2021

문재인은 듣고 있는가? 北인권단체, 질 바이든에 서한 "탈북어부 북송, 진상규명 도와달라"는 절규를...


한국일보사의, 어렵게 사선을 넘어 남한땅에 발을 내디딘 탈북청년을, 문재인좌파 정부가 바로 판문점으로 데리고 가서, 북괴 김정은 Regime에,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두젊은 탈북청년을 강제적으로 되돌려 보낸, 문재인과 그공산주의 좌파 사상에 쩔어있는 역적들에 대해 지금도 분노를 참지 못하고 있음을 전하는 Petition을 미국의 First Lady에게 보냈다는 뉴스를 접했다. 

아쉬운점은 이애란 탈북 여성이 주동이 되여 미국 대통령 부인에게 보낸 서신의 내용이 전부 실리지 않고 중간에 짤려 보도된점이 무척 아쉽다는 말을 먼저 지적합니다.

편지내용으로 봐서는 대통령 부인, Jill Biden 여사가 잘 이해할수 있었을까?라는 의심이 갈 여지가 많아서 입니다.  물론 대통령 부인에게는 Full Version이 전달 됐겠지만, 이기사를 읽는 우리국민들의 이해를 돕기위해서는 편지 전체를 보도 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https://lifemeansgo.blogspot.com/2021/05/4_10.html

https://lifemeansgo.blogspot.com/2021/01/blog-post_15.html

대한민국 창설 70여년동안에, 대북관계는 항상 긴장상태 였었고,  그때부터 지금 현재 까지도 북한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3대 공산독재 Regime은 끊임없이 간첩들을 남파하고, 남한사회를 교란시켜 궁극적으로는 남한을 접수하여, 한반도를 완전 그들의 수중에 넣을려는 환상에 젖어 있다는것은, 문재인을 빼고 모두가 잘알고있는 사실이다. 

이러한 북괴의 만행을 역대 정권들은, 한손으로는 삽과 괭이를 들고 경제건설에 다른 한손은 이들 간첩색출과 국토방위에 혼신의 힘을 기울여 나라를 지켰으나, 김때충과 노무현 그리고 현재의 문재인 정부들어서는, 외형적으로는 여전히 북괴와 대치상태에 있다고 대국민 사기를 치고 있다.

그뒷면을 보면 과연 이좌파 공산주의 사상으로 쩔어있는 좌파정권들, 특히 문재인 정부는, 우리 모두가 잘 알고있다시피, 국민들의 혈세를 국민들 알게 모르게 북괴에 퍼주면서, 마치 옛날에 우리 한반도에 존재했던 왕조들이 나라를 통치하고 있을때, 중국을 천왕으로 모시고, 있는것 없는것을 다 상납했었던, 과거의 역사를 보는것 같은 짖들을, 북한 김일성왕조에 현대판 조공을 바치고 있는 것이다. 전화선 연결제의에도 "황공무지로소이다"로 화답했으니.

북괴의 잔인한 주민 탄압과, 배고픔에 더이상은 참지 못하고, 많은 북한 주민들이 사활을 걸고 우리 남한으로 수많은 경로를 통해 들어와 우리와 함께 살고있지만, 그분들이 탈북과정이나, 북한내에서의 죽지못해 살아가는 실상을 폭로한 내용을 보면,  현재의 김정은 일당은 인간이기를 거부한 살인마일뿐이다라는 생각에 오금이 저려오는것은 물론이고,  아! 그래서 우리는 60만 대군을 유지해야하는 이유가 확실해 진다.

언제부터인가, 특히 문재인정부 들어서서는 북한의 Little man, 김정은에 코가 꿰서, 김정은의 일거수 일투족에, 마치 Puppet인형극을 보듯하는, 상전으로 모시는, 북괴에 점령당한 식민지 정부 노릇을 하는 반역행위를 보면서도,  아무도 이를 목숨걸고 성토하거나 반대하는 대한민국의 지성들은 하나도  보이지 않고, 나라는 하루가 다르게 빨갛게 물들어 가는 처참한 현상을 보면서, "왜 내가 3년간 국토 방위를 했었지?"라는 자괴감이 들뿐이다.

내년초 대선을 앞두고, 문재인 민주당 찌라시들중에서 대선에 출마한 자들의 면면을 보면, 더 한심한 두려움 뿐이다.  이들은 "문재인을 우리가 지킨다"라는 구호를 공공연히 외쳐 대면서 국민들을 사기 공갈로 위협하고 있다.

이렇게 무너져 가는 우리 대한민국을 버리지 마시고, 관심을 갖고 지켜달라는 탈북단체 애국자들이 미국의 First Lady에게 우리 조국 대한민국과 북한주민들에 관심을 갖어 달라는 Petition을 보낸것이다.  대한민국의 정치꾼들아!  당신들이 해야 할일을 민간인들이 해야 하는 참담한 현실을 어떻게 받아 들일 것인가? 

이낙연같은 어벙이는 "서울공항"을 헐어 없애고 3만개의 집을 짖겠다" 다는, 꼼수로 국민들을 선동하고있다.  서울공항은 문재인이가 747점보기 타고 정수기와 함께 외국유람여행 떠날때 사용하고 있는 공항쯤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뜻이다. 

실질적으로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중요한 영공 방어를 하기위해 우리 공군이 활용하고 있는 공군비행장 중에서, 우리 인간으로 비교하면, 두뇌역활을 하고 있는 없어서는 안될 심장역활을 하고있는 공항인데..... 이런 어벙이들이 대통령 하겠다고 하는 나라, 대한민국이다.

문재인은 손벽을 치면서 좋아할테지만.... 만약에 문재인 임기 동안에, 북한 김정은의 수중에 남한이 떨어진다고 가정을 하고, 과거의 경험을 되돌아 보면서,유추해석을 해봤을때 가장 먼저 김정은의 고사포 세례를 받을자는, 보통사람들의 생각과는 다르게, 문재인이라는 것이다. 문재인과는 한솥밥을 먹을수 없음을 김정은이는 잘알고 있기 때문이다. 자유경제 체제하에서 살아왔기에 "부르조아 사상"으로 꼭차있는 자를 곁에 둘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용해 먹을때는 그가치가 있었지만은.

First Lady가 여성단체들의 탄원서를, 청와대에 국민들이 청원을 하면 청와대 문재인은 그내용을 가려가면서 취급듯이 하지 마시고, 문재인의 통치하에서 대한민국이 허물어지고, 김정은이의 수족노릇하는 참담함을 겪고있는 5천만 국민들을 버리지 마시기를 원한다.  하늘이시여 우리 한민족을 굽어 살피소서!. 

북한인권단체총연합이 지난달 2일 질 바이든 여사 앞으로 백악관에 보낸 서한. 이애란 북한인권단체총연합 대표 제공.

30여개 탈북민 인권단체로 구성된 북한인권단체총연합이 최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부인 질 바이든 여사 앞으로 문재인 정부의 탈북민 북송 책임을 지적하는 서한을 보냈다고 5일 밝혔다. 특히 2019년 11월 탈북 어부 강제 북송 사건에 대한 미국 측의 관심을 촉구하고 진상 규명에 대한 지원을 요청했다.

연합 측이 바이든 여사에 서한을 보낸 것은 지난달 2일이다. 연합은 영문 서한에서 당시 정부가 탈북 어부 2명을 흉악범이라는 이유로 강제 북송한 사건의 경위를 상세히 밝혔다. 

"절박한 사정 알려 재발 방지"
미 국무부ㆍ유엔에도 추가 서한

 
또 북한 전문매체 NK뉴스를 인용해 해당 탈북민들이 북한에 돌아간 뒤 고문과 처형을 당했을 가능성도 전했다. 
연합 측은 "북송 직전 탈북민들은 북한으로 돌아갈 경우 잔인한 고문을 당하거나, 수용소에 가거나, 처형을 당할 것을 알고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까지 했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그들을 판문점을 통해 북으로 돌려보냈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 사건으로 한국에 사는 3만 5000명의 탈북민이 자신의 미래에 대해 걱정하게 됐다"며 "탈북민 2명에 대한 (북송) 처분이 내려진 데 대한 진상 규명을 해줄 만한 사람을 확인해달라. 탈북민들에게 어떤 일이 있었던 건지 알 수 있을 만한 사람이면 누구에게든 연락을 취하는 중이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런 절박한 사정을 널리 알려서 (탈북민 북송이) 다시 일어나지 않게 하고 싶다"고 밝혔다.
 
연합 측은 서한과 함께 보낸 항의서에는 2019년 11월 당시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었던 정의용 외교부 장관의 책임도 명시했다. 정 장관이 지난 4월 관훈토론회에서 "(탈북민 북송 결정은) 대통령까지 보고된 건 아니고 국가안보실장 책임 하에 결정됐다고 볼 수 있다"고 발언한 것을 문제 삼았다. 이에 지난 6월 정 장관을 고발했다고도 밝혔다.

이애란 북한인권단체총연합 상임대표는 5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지난 2015년 질 바이든 여사가 방한했을 때 만나 대화한 적이 있는데, 북한 인권 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해 도움을 요청했다"며 "미국과 국제사회가 반인도적 범죄행위에 해당하는 탈북자 북송 행위에 대해 철저히 조사해줄 것을 요청한다"고 말했다.
 
다만 이 대표는 서한을 백악관 대표 주소로 보냈기 때문에 실제 전달됐는지는 확실치 않다. 서한에도 "여사님께 이 서한이 전달되지 않을 수 있다는 걸 알지만, 혹시 읽게 되면 꼭 알려 달라"고 적었다. 
 
연합 측은 유엔 인권이사회와 미국 국무부 앞으로도 비슷한 취지의 서한을 추가로 보낼 예정이다.




 https://news.joins.com/article/24121776

Wednesday, April 18, 2018

공화당과,미국민들의 어머니, Barbara Bush 여사 92세로 세상뜨다.

미국민들의 가슴속 깊이 자리하고 있었던, Barbara Bush 전 백악관 안주인이 92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남편과 아들을 생전에 대통령으로 만드는데 일등공신으로, 어머니, 아내로서는 두번째인 셈이다. 그첫번째는 Abigail부인이 첫번째라고 한다.
그녀는 소박한 대통령 부인으로 각인되여 있으며, 젊었을때는 귀여운 따님이 Pneumonia로 일찍 세상을 떠나면서, 많은 심적고통을 겪기도 했었다고 한다.
그녀는 생전에 국민들의 사랑을 많이 받은 국모로서, 돌아가신 육영수 여사와 많은 공통점이 있는것으로 이해된다. 
목에 걸고 있었던 인조진주 목거리는, 후에 알려진 얘기지만, 목에 많이 새겨져 있는 주름살을 덮기위한 방법으로 애용했었다고 한다.


(CNN)Barbara Bush, the matriarch of a Republican political dynasty and a first lady who elevated the cause of literacy, died Tuesday, according to a statement from her husband's office. She was 92.
Only the second woman in American history to have had a husband and a son elected President (Abigail Adams was the first), Bush was seen as a plainspoken public figure who was instantly recognizable with her signature white hair and pearl necklaces and earrings. She became a major political figure as her husband, George H.W. Bush, rose to become vice president and president. After they left the White House, she was a potent spokeswoman for two of her sons -- George W. and Jeb -- as they campaigned for office.
The mother of six children -- one of whom, a daughter, Robin, died as a child from leukemia -- Barbara Bush raised her fast-growing family in the 1950s and '60s amid the post-war boom of Texas and the whirl of politics that consumed her husband.
She was at his side during his nearly 30-year political career. He was a US representative for Texas, UN ambassador, Republican Party chairman, ambassador to China and CIA director. He then became Ronald Reagan's vice president for two terms and won election to the White House in 1988. He left office in 1993 after losing a re-election bid to Bill Clinton.
    Quick-witted with a sharp tongue, the feisty Barbara Bush was a fierce defender of her husband and an astute adviser.
    As first lady, her principal persona as a devoted wife and mother contrasted in many ways with her peer and predecessor, Nancy Reagan, and her younger successor, Hillary Clinton, both of whom were seen as more intimately involved in their husbands' presidencies.
    Still, Barbara Bush promoted women's rights, and her strong personal views sometimes surfaced publicly and raised eyebrows -- especially when they clashed with Republican Party politics. For instance, she once said as her husband ran for president that abortion should not be politicized.
    She also was not shy about the possibility of a female president, disarming a Wellesley College audience at a 1990 appearance protested by some on campus who questioned her credentials to address female graduates aiming for the workplace.
    "Somewhere out in this audience may even be someone who will one day follow my footsteps and preside over the White House as the president's spouse. 
    "I wish him well," she said.

    Childhood and family life

    Barbara Pierce was born June 8, 1925, in New York and raised in the upscale town of Rye. She attended a prestigious boarding school in South Carolina, where she met her future husband at a school dance when she was only 16 and he was a year older. A year and a half and countless love letters later, the two were engaged just before George Bush enlisted in the Navy and went off to fight in World War II.
    Bush, who was the youngest fighter pilot in the Navy at the time, would return home a war hero, after being shot down by the Japanese. He had flown 58 combat missions and received the Distinguished Flying Cross for bravery. By that time, Barbara had dropped out of Smith College and the pair were married in January 1945.
    They raised their family mainly in Texas, where George H.W. Bush, the son of a US senator, was in the oil business and later entered politics.
    Barbara Bush's dedication to keeping order at home earned her the nickname "the enforcer."
    "We were rambunctious a lot, pretty independent-minded kids, and, you know, she had her hands. Dad, of course, was available, but he was a busy guy. And he was on the road a lot in his businesses and obviously on the road a lot when he was campaigning. And so Mother was there to maintain order and discipline. She was the sergeant," George W. Bush told CNN in 2016.
    With her husband as vice president in the 1980s, Bush adopted literacy as a cause, raising awareness and eventually launching the nonprofit Barbara Bush Foundation for Family Literacy. After George H.W. Bush's presidency, he and Barbara raised more than $1 billion for literacy and cancer charities.
    "I chose literacy because I honestly believe that if more people could read, write, and comprehend, we would be that much closer to solving so many of the problems that plague our nation and our society," she said.
    A writer, her books include an autobiography and one about post-White House life. Her children's book about their dog, Millie, and her puppies written during her White House years was, as were her other books, a bestseller.

    On the campaign trail

    In 2001, when George W. Bush took office, Barbara Bush became the only woman in American history to live to see her husband and son elected president.
    She campaigned for son George W. and fiercely defended him from critics after he became president.
    Asked in a 2013 interview about the prospect that her younger son, former Florida Gov. Jeb Bush, might mount a White House campaign in 2016, Bush quipped in her dry fashion, "We've had enough Bushes." 
    But when Jeb decided to run, she changed her mind and campaigned for him, appearing in a video for Jeb Bush's ultimately unsuccessful campaign, saying, "I think he'll be a great president."
    She also was outspoken about Donald Trump. In one of her last interviews, the former first lady said in early 2016 she was "sick" of Trump, who belittled her son repeatedly during the 2016 GOP primary campaign, adding that she doesn't "understand why people are for him."
    "I'm a woman," she added. "I'm not crazy about what he says about women."
    Most recently, Bush published a note in the spring edition of Smith College's alumnae magazine, where she declared: "I am still old and still in love with the man I married 72 years ago."
    The college awarded Bush an honorary degree in 1989.
    Bush battled health problems for much of her later life. She was diagnosed in 1988 with Graves' disease, an autoimmune disease that commonly affects the thyroid. She had open-heart surgery in 2009 and in 2008 underwent surgery for a perforated ulcer.
    In her final years, she was diagnosed with chronic obstructive pulmonary disease, better known as COPD, as well as congestive heart failure. But, along with her husband, she kept an active public schedule, raising money for charity.
    Bush is survived by her husband, George H.W.; sons George W., Neil, Marvin and Jeb; daughter, Dorothy Bush Koch; and 17 grandchildren.

    https://www.cnn.com/2018/04/17/politics/barbara-bush-dies/index.html

    https://www.nytimes.com/2018/04/21/us/barbara-bush-funeral.html?hp&action=click&pgtype=Homepage&clickSource=story-heading&module=second-column-region&region=top-news&WT.nav=top-news

    Friday, November 18, 2016

    안방마님,Melania Trump와 Michelle Obama, 따로만나,정치보다는, 진솔한 삶의 얘기를 나누었다.


    대통령 당선자 부인, Future First Lady, Melania와 현재 백악관의 안주인, Michelle이, 부군들이 백악관의 미팅룸에서, 선거후 처음 대면을 하고, 앞으로 정권 인수인계에 대한 덕담을 나누고 있는 그시간에 별도의 만남의 시간을 갖었다.

    선거유세 기간 동안에 서로 불편했던점이 앙금으로 남아 있었던것을, 다시 화해하는 목적도 있었고, 안방마님으로서, Hillary Clinton처럼 정치에 대한 대담 보다는, 조용한 보좌, 패션에 대한 얘기도 있었다고 한다.

    지구반대편, 고국의 돌아가는 꼴을보면, 마치 Hyena들이 먹이감을 하나놓고 서로 차지할려고 아군, 적군없이 으르렁 거리는 고함소리가 천지를 진동하는데....
    미치광이들의 욕구는, 서구의 잘사는 나라보다 더 심하고, 안보문제는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언제 뇌관이 터질지 모르는 최악의,초고의 위험지역인데, 흡혈귀 정치꾼들과 이에 동조하는 세력들은, 안보는 상관없다는듯이 안보불감증으로, 호시탐탐 통채로 먹어치울려고, 핵무기를 장착해 놓고, 기회만 노리는 Beast Regime에 대해서는, 자기네들을 귀여워 해주는 할아버지같은 아군쯤으로 착각하는 곳, 바로 조국이다.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APEC 정상회담에는 총리가 참석했다는 소식이고.... 말이 정상회담이지, 총성없는 무역전쟁터인데....

    이만남이 있기까지 두안방마님들은 상면한 일도 없다.  그러나 첫만남의 인상은 너무나 자연스럽고 평화스러워 보였다. 최소한  4년간 이런 평화스런모습으로 국민들께 보여질것이다.
    나무위에 올려놓고 흔들지만 말고, 이런 소박한 모습을 정치꾼들은 배웠으면....

    So the reconciliation continues. Kind of.
    Whatever their feelings about Donald J. Trump winning the presidential election, President Obama and the first lady have been careful to demonstrate that it is time “to now come together, work together, to deal with the many challenges that we face,” as Mr. Obama said when he met the president-elect at the White House on Thursday.
    Hillary Clinton began the messaging when she wore a purple-lapel Ralph Lauren pantsuit for her concession speech on Wednesday morning, uniting red and blue in a single shade as she urged the country to unite. And Michelle Obama continued the subliminal signals when she chose a purple Narciso Rodriguez dress with an orange aftershock sunburst curve for her meeting with Melania Trump.
    It was a nice bit of color diplomacy.
    But it also wasn’t without implicit references to Mr. Obama’s administration and legacy. After all, it was the second time she wore Mr. Rodriguez this week, the first time being for her final speech for Mrs. Clinton in Philadelphia, delivered in a navy coat by the designer.
    Mr. Rodriguez is, as it happens, Cuban-American, the son of immigrants and a classic American success story. He is currently the subject of a retrospective at the Frost Art Museum in Miami, chosen in part, the curator told The New York Times, because “It is very important to incorporate the accomplishments of Latin American artists, architects and designers into the canon of history.”
    Mr. Rodriguez was also the designer of the black and red dress that Mrs. Obama wore when her husband gave his victory speech in Chicago in 2008.
    Something of a contrast was, not surprisingly, provided by Mrs. Trump. For the visit to Washington on Thursday, she wore a streamlined sleeveless black sheath dress, a matching coat and Christian Louboutin heels. Thus far, as was the case throughout the campaign, no brand has issued the traditional news release about Mrs. Trump wearing its designs, most likely because she buys her clothes herself, rather than working through a stylist or brand. (The shoes were recognizable because of the brand’s signature red soles).
    Whether that will change when she is in the White House remains to be seen. In the meantime, the fact she wore black instead of her usual white or pastel shades has got some people riled up. (“Melania Trump wore a funereal black dress to the White House,” Yahoo News cried.)
    Personally, I think it’s too early to judge whether Mrs. Trump thinks about her clothes in communications terms, so I’m going to hold off on reading too much into the shade. Rather, I’d say she looked polished and professional, and as if she wasn’t trying to call attention to herself, though that is kind of unavoidable.
    Indeed, as Mrs. Obama showed over the past eight years — and reiterated on Thursday — a wardrobe can be a powerful platform for a first lady, making points without her having to say a word. Given Mrs. Trump’s reported antipathy for public performance, it might serve her very well as she assumes her new role.

    http://www.nytimes.com/2016/11/11/fashion/melania-trump-michelle-obama-narciso-rodriguez.html?action=click&pgtype=Homepage&clickSource=ts-item%204_of_5&module=span-abc-region&region=span-abc-region&WT.nav=span-abc-region

    Friday, November 07, 2014

    Day10, 월남,Hoian관광후 Da Nang에서 Fly to Saigon,시내 유적지 탐방(11월7일,2014 금요일)

    Emerald Resort Hotel에서 Receptionists와 아침 작별 인사를 하면서 한컷 한것이다.  아가씨들은 모두가 전통의상인 아오자이를 단정하게 차려 입고 근무하는 모습이 귀여워 보였다.
     어제 Nugeyen이 얘기한데로 아침에 다른 Guide와 Driver가 왔다. 이들은 현지 가이드 들이고, Nugeyen은 Hue에서 같이 왔기에 아침에 우리부부를 공항까지 데려다 주기위해 하룻밤 호텔비를 지불하는것 보다는 그들을 보내고 현지 가이드를 고용하면 경비를 절감할수 있어서 그렇게 한것 같다.  어쨋던 시간이 되여 새로운 가이드를만나, 8시 정각에 Da Nang 공항으로 달렸다.
    Vietnam Airways 는 Air bus 320 시리즈로 아주 깨끗하게 정돈되여 있었고, 우리 좌석은 맨뒷줄의 끝에 있었다.  여행을 많이 해 보았지만, 끝줄의 좌석에 앉아 보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오히려 더 편하고, 특히 착륙하여 서로 나갈려고 하는 혼동도 우린 피할수 있어 편했다.

     사이공 공항에는 Guide Thong이 나와 있었다.  인사를 나누는데 Communication이 시원찮아 보여 약간 걱정이 됐었다.  속단은 금물이기에 그를 지켜보고 있는데, 호텔에 가는길에 먼저 Ben Thanh 시장에 들려 구경시켜 주겠다고 하면서 대화를 나누었는데, 이제는 확실히 그가 하는 영어가 대화 가능한 영어가 아니고, 또 내가 하는 얘기를 이해하는것 같지가 않음이 파악됐다.
    날씨는 무척 더워 32도라고 하는데, Guide 까지 문제가 있으니 구경을 편하게 하기는 어려울것 같이 느껴 졌다.  사이공은 서울의 교통체증이나 토론토의 교통혼잡과는 비교가 안되게 자동차와 Motor Cycles들 그리고 그사이에 가끔씩 자전거까지 합세하여 자칫하면 위험에 처할수 있을것만 같이 보였다. 거리에는 교통신호들이 있기는 하나, 내가 보기에는 거의 무용지물처럼 지켜지지가 않아 모두가 써커스단의 곡예사 같이 길을 달린다.  그러나 고속질주는 거의 없어 보여 그나마 다행이었다.

     차가 차량들을 비껴나와 길가에 서더니 여기가 Ben Thanh 시장이라고  내려 구경하게 된다고 설명이다.  같이 하는줄 알았는데, 자기는 여기서 약 40분 후에 다시 오겠다고 하고 Driver와 함께 떠나고 우리 부부는 시장 구경을 시작했다. 무척 더워 땀이 줄줄 흐른다.  이렇게 더운곳에서 사는 사람들은  지금의 심정으로는 신기해 보이기까지 했다.

     시장안은 마치 서울의 평화시장(?)같이 복잡하고 시끄러웠다.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풍겼다.
    눈을 두리번 거리면서 상점앞을 지날때는 호객행위를 하는것도 평화시장에서 처럼 비슷했다.



     음식점도 시장의 한 Section을 차지하고, 한그릇 먹고 가라고 손짖과 몸제스처를 써서 우리를 부른다.  한곳에 시선에 멈춰 그곳에서 점심을 먹을 생각으로 자리에 앉았다.  토론토에서 월남 국수를 먹어 보았기에 그맛을 상상하면서 주문을 했다.  막상 받아놓고 보니 국물이 없다.  쌀국수와 튀긴 베지타불 롤과 기름에 튀긴 두부조각 그리고 그들고유의  Hot Sauce 전부다.  국물이 없어 난감해 하고있는데, Lunar가 먼저 맛을 보더니, 괜찮으니 그냥 먹으라고 눈총을 준다.
     노점상같은 식당에서 국수 한그릇 사먹은 사이 정(?)이 들었다고 Lunar가 Cook아줌마에게 캐나다 국기가 그려진 손수건 하나를 건네 주면서 아쉬운 작별을 한다.
    Guide가 기다리고 있는 장소에는 벌써 그가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다시 차를타고 달리면서 다음 구경지인 reunification Palace로 가는 대신에 호텔로 가자고 제안했다.  더워서 그냥은 안될것 같아서 였다.  호텔에서 Check-in을 하고 그와 다시 만나기로 하고 우린 방을 찾아 10층으로 올라가 바로 샤워를 하고 몸을 식혔다.  이제는 좀 살것 같다.  Air cond.돌아가는 방은 시원하다.
     Reunification Palace라고 해서 어떤 궁인가 궁금했었는데, 현지에 도착해서 보니, 월남이 패망하기전까지 당시의 대통령 '티우'가 있었던 대통령궁을 명칭을 바꾸어 그렇게 부르고 있다는것을 알았다.  현재는 당시 대통령이 기거 하면서 사용했던 가구와 살림도구를 그대로 진열하여, 관광객들에게 관람을 시키고 있었다.

    원래 이Palace는 1868년에 당시 월남을 점령하고 있던 프랑스가 월남의 총독 거주용으로 건설된 것으로 지하가 요새화 시켰었다고 한다.  그후 1967년도에 당시 월남 대통령이었던 티우가 대대적인 Renovation을 한 그모습으로 관광객들에게 전시되고 있다는 것이다. 티우 대통령은 집권했을때 부터 그의 나라가 결국 패망할것을 알기라도 했었나 보다싶게 Fortified된 궁을 더 강화 시켰었나 보다.  도망갈 궁리를 다 해 놓았기 때문이다.

    Guide의 설명을 힘들게 종합해보면,  이대통령궁은 요새화된, 그것도 모든것이 적의 공습에 대비하여 처음부터 건물은 불란서 총독의 관저및 집무실로, 지하는 요새화한것임을 알수 있었다.
     1954년도에 프랑스가 물러나면서 남북으로 갈린 남쪽의 월남은 1963년도까지 '고딘디엠'대통령이 통치하고 있었으나, 1963년도에 그가 암살당하자, 군대가 계엄령을 선포하여 3년간 통치 하다가 1967년도에 '티우' 대통령이 되고, Palace를 대통령 관저로 사용하기위해 대대적인 보수공사를 했다고 설명하는데, Guide의 영어 때문에 신경이 곤두서, 때때로 옆에서 영어로 설명해주는 다른 관광팀에 끼어 들어 듣곤 하는 촌극도 있었다.
     자꾸 되묻고, 또 옆의 관광팀에 끼어 설명을 듣는 나를 알아 차리고 미안해 하긴 했었는데, 그렇타고 의사 소통이 잘되는것도 아니고..... 오래전에 죽은 DJ가 미국의 ABC대담방송에 나와 돼지도 않는 소리로 동문서답할때, 이를 알아차리고 당시 Anchor였던 Ted Kopple이 중간에서 포기하고 대담을 끝낸 방송을 시청하고 있던 내자신이 더 부끄러워 했었던 기억이 떠올라, 약도 오르고  정말로 힘들었었는데, 오늘 그꼴이 나고만 곤욕을 치른 것이다.
     세계각국에서 온것으로 보이는 관광객들이 매우 많다.  그틈에 끼어 우리 부부는 그래도 Guide, Thong을 따라 궁 내부를 구경해야만 했다.  위의 Green 색갈의 Carpet이 깔려 있는 방은 당시 대통령이 국무회의를 주제하던 방이라고 한다.  옛모습 그대로 전시되여 있다한다.
     복도를 건너 맞은편에 있는 이곳 회의실은 Military leader들이 모여서 회의를 했었던 곳이라고 한다.  월남전을 할때 군실세들이 득시글 거렸을 장면이 연상되고도 남는다.
    이방은 외교 사절들을 맞이 하여 대통령이 함께 축배도하고 외교활동을 하던 Banquette Hall이었다고 한다.  현재 앞쪽벽에는 공산당기와 통일된 월남 Flag가 붙어 있었다. 안내표시판에 있는 사진역시 당시 티우대통령이 주최했던 사진이 아니고, 통일후 호치민이 중심이된 세력들이 주관하는 외교사절맞이 행사를 촬영한 사진이었다.

     대통령의 집무실과 그아래 사진은 대통령이 외국정상들과 만나 국사를 처리할때 사용했던 집기들과 장식이 그대로 재현되여 있다.


     이방은 대통령이 외교사절을 맞이 했던 방건너편에 있는 이공간은 대통령의 집무실보다 오히려 더 커보였는데, First Lady가 사용했던 집무실겸 외국의 정상부인들과 만났던 곳이라고 한다.

     외교행사중 큰 신임장 제정하는 곳으로 쓰였던 방이라고 설명서에 기록되여 있어 알수 있었다.  1975년 월남 패망전까지 월남에는 세계 여러곳에서 파견된 외교관들이 많았었다고 한다.  신임장 제정을 할때의 모습도 상상된다.
    Guide의 설명에 의하면, 월남인들이 원치 않았는데, 미군들이 임의로 남부 월남에 고문관을 파견하기 시작하여 결국 전쟁이 커지고, 결과적으로 국민들만 희생양이 된셈이라고 돼지도 않은 영어와 High tone으로 쏟아낸다.  배은망덕을 이런때 쓰는게 아닐까?
    분명히 Hanoi에서 만났던, Hue에서 만났던 Guide들은, 프랑스가 물러난후 남북으로 갈라진후 남부 월남에서 민주정권을 세워 국민들의 생활은 자유가 보장된 체제속에서, 의무보다는 국가에 요구만 하는, 자유를 만킥하면서 지내는 동안, 북부 월남은 공산게릴라들이 남부를 무너뜨리기위해 인접국 라오스 캠보디아의 국경지역을 이용하여 남부를 괴롭히고 공략했다고 한다.
    노름에 미치면 무릎썩는줄도 모른다는 식으로, 천하태평세월을 누리고 있는사이 남부 월남은 서서히 병들어 가고, 결국 미군에게 협조를 요청하기 시작한 것이 월남전의 전초가 됐었다고 들었던 얘기들과 전연 상반된 설명을 한다.  사상적으로 무너지면 백약이 무효가 된다는것을 나는 월남전을 통해서 이해하고 있었다.  오늘 조국 한국의 경우를 잠시 비교해 보기도 했다.

    대통령의 침실과 영부인의 침실이 따로 구분되여 있었는데....그점은 이해하기가 좀 힘들었다.
    부부생활은 언제하고, 왜 또 따로 침실을 사용해야 했는지에 대한 답은 없었기 때문이다.
    한쪽벽에는 Bronze로 새겨진 월남인들의 모습을 조각해 놓았다.  벼농사 짖는 농민, 손으로 탈곡하는 모습, 주요 가축물인 소와 그위에서 평화롭게 노래부르는 모습 등등으로 월남민들의 민족성을 볼수 있었다.
    티우가 집권시 외국 정상들로 부터 선물받은 물건들을 진열해 놓았는데, 어찌 이것 뿐이겠는가?  진열해 놓은 대부분의 선물들이 주민들에게 티우대통령과 당시의 남부월남의 정권이 국민들은 내팽게치고, 자기들만의 호화생활을 했었다는, 그래서 북부월맹이 남쪽과 전쟁하여 통일된 월남을 세웠다 라는 뜻을 강하게 내포하고 있음을 파악할수 있었다.
    First Lady의 집무실도 대통령의 집뭄실과 같은 규모로 꾸며져 있었고, 많은 권력을 대통령 못지 않게 향유 했었던 것 같다.  한참 연합군이 월남군들과 합세하여 게릴라들을 격퇴하는 싸움을 하고 있을때, 대통령궁 앞에서는 데모와 승려들이 분신 자살했었던 당시의 기사를 신문과 방송에서 듣고 보았던 기억이 떠오른다.  국가 지도자와 국민들이 서로 다른 생각을 할때는 나라의 존속이 어렵다는 뜻이다.

    대통령을 비롯한 고위관리들의 전용 극장도 있었다.   그뒷방에는 당시에 사용됐었던, 지금은 고물이나 괴물처럼 보이는 영사기 시설도 그대로 진열되여 있었다.


    대통령궁의 뒷쪽 이층 지붕에는 Heliport가 있고, 당시 티우대통령이 전용으로 사용했던 Huey헬기가 그대로 진열되여 있었다.
    어느 공군조종사가 이들의 부패상에 항의하여 헬리포트에 폭격을 가해서 두군데에 구멍이 났었다고 하는데 그흔적이 빨갛게, 하얗게 표시되여 있기도 했다.
    http://lifemeansgo.blogspot.com/2014/07/huey.html


    4년전에 새로 건축된 고층빌딩이 지금은 월남에서 제일 높다고 한다. 68층이라고 하는데 주로 외국인들 전용 아파트로 사용하고 맨꼭대기 층에는  Coffee Shop이라고 하는데....
    지하 벙커로 안내 됐다.   당시 월남전에 참여 했던 연합군의 파병된 숫자가 월남어로 적혀 있었다.  여러나라가 있었지만, 내가 지금 기억하는것은 미국과 한국군의 숫자이다.  미군은 전부 541933명이었었고,한국군은 50355 명으로 기록되여 있었다.  전연합군의 합계는 604,481로 기록해 놓았다.  이것은 분명히 현공산정부에서 내놓은 기록같았다.
      
    대통령이 항시 군수뇌부들과 대화를 하거나 지시할수 있는 통신실의 장비들이다.


    지하 벙커에 비치되여 있는 대통령의 개인 침실이다.  과연 티우가 이곳에서 전쟁지휘를 해보긴 했었을까?  그리고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기는 했었을까?  수많은 젊은 청춘들이 자기네 나라도 아닌 이곳에서 목숨을 잃어 가면서 싸우고 있을때 말이다.





    통일이 돼서, 공산주의 정권이 들어선지가 벌써 40 여년이 흘렀다.  달라진게 뭐가 있는가?
    Saigon은, Guide의 설명에 따르면, 당시에는 대통령궁이 제일 높은 건물이었었으나 지금은 고층건물들이 즐비하다고 자랑(?)스럽게 얘기 했지만,  서민들의 생활은 오히려 소비성향의 생활 Pattern으로 발달됐다는것을 느낄뿐이다.  그리고 공산주의의 근본 이념인 모두가 평등하게 잘 살아 보자는 구호는 허구임을 스스로 보여주는 증인이 되고 있는 현장을 만들고 있었다.
    있는자와 없는자의 빈부의 격차는 하루가 다르게 벌어지고 있다고 했다.  있는자들은 캐나다, 미국에서도 타보기 힘든 고급차량들을 즐기고, 서민들은 아직도 두부장수가 메고 다니는 어께에 매는 운반기구를 이용하여 삶의 전쟁터에서 뛰고 있다.  내가 타고 다니는 기아 Sodrento와 같은 모델이 이곳에서는 거의 두배 더 비싸다.  있는자들에게 부담이 돼지 않는단다.  처음 여행시작하면서 Guide해 주었던 Tao의 5가지 꿈이 생각난다.
    불란서 파리에 있는 Notre Dame 천주교 건물을 모델삼아 지었다는 오래된 천주교건물이 지금은 외국인들의 관광코스가 됐다.  금요일 오후라서  약 10여명정도의 신자들이 모여 본당안의 한쪽에서 예배를 보고 있는 모습도 목격했다.



    내가 보았던 파리의 교회건물 지붕의 뒷쪽이 돔형식으로 둥글게 기억하고 있었는데 이곳의 뒷쪽꼬리 부분의 지붕이 앞쪽과 똑같아 다시 Guide에게 물었더니, 이번에는 성당안의 내부구조가 같다는식으로 대답을 해준다.

    성당에서 바로 길건너 왼편에는 국제 우체국 건물이 있었다.  이곳역시 관광코스중의 하나다.
    프랑스 점령시 지어진 건물로 지금도 건물안에서는 우체국 직원들이 업무를 보고 있었다.



    우체국 내부의 일부이다.  가운데 Hall을 중심으로 양쪽에는 업무 창구가 있었고 맨뒷쪽에는 Parcel들을 받아 운송하는 부서가 있었다.  맨끝쪽의 중앙 벽에는 Ho Chimin초상화가 천안문광장의 대문앞에 걸려 있는 모택통처럼 걸려 있었다.  자유사상에 흠뻑 젖어 있었던 사이공 시민들이 정신개조를 하기위한 여러 조치들 중의 하나임을 느낄수 있었다.







    성당과 우체국앞의 바쁜 거리에서 한신혼 부부가 결혼기념사진 촬영에 정신이 없었다.  차량의 물결이 지나고 순간적으로 빈틈이 생기면 번개처럼 길로 뛰어들어 촬영을 했다.  내가 보기에는 꼭 저렇게 까지 해야 하나? 였으나, 본인들에게는 평생에 한번있을 기회이기에 모든 지혜를 동원하여 사진속에 담는것 같다.  그들이 잘 살았으면 했다.  가이드의 설명에 따르면 이곳에도 이혼 풍조가 만연하여 결혼 4년을 못넘기고 이혼하는 비율이 34%라고 한다.  현대 젊은이들의 흐름인가?  아니면 결혼과 가족의 개념이, 향락과 발달된 통신 장비의 후유증의 산물일까?

    저녁시간에 시내 거리를 산책하기위해 호텔을 나섰다.  밤과 낯의 차이가 없이 거리는 차량과 Motor Cycle로, Side Walk은 상점들의 물건이 점령하고, Motor Cycle까지 주차되여 있어 Walker들은 꺼꾸로 복잡한 도로의 한끝을 찾아 헤맨다.

     사이공의 인구가 천만명이 넘는다고 Guide는 설명하면서, 6백만대 이상의 Motor Cycle들이 거리를 밤낯없이 누리고, 더해서 헤아릴수 없는 숫자의 자동차까지 합치면 Saigon땅바닥이 주저앉지 않고 있는게 신통해 보일 정도였다.   Motor Cycle들의 간격이 불과 10쎈티미터 거리도 안되는것 같은데도 부딪치지 않고 잘도 달린다.  모두가 써커스단의 곡예사들 처럼 보인다.
    거리의 신호등은 있으나 마나한 존재로 전락된지 오래인것 같다.  거의 무시되고, 순간순간의 형편에 따라 차량과 Motor Cycle들의 함대가 밀치고 네거리를 달린다.   다행인것은 폭주족이 없다는점이다.
     더이상은 걸을수가 없는 괴로움이 뒤따랐다. 매연이 나의 손을 코를 감싸게 한다.  많은 Motor Cycler들이 마스크를 착용하는 이유를 알것 같았다.  발길을 돌려, 원래 계획했었던 Local 식당에서, 토론토에서 많이 먹어 보았던 월남국수의 따뜻한 국물맛을 볼려고 했던 계획은 취소하고, 대신에 Chain  Store로 보이는 Convenience 상점에 들려, 따뜻하고 수증기를 발산하고 있는 큰찐빵 두개를 구입해서 들고 호텔로 들어와 저녁으로 대신했다.  설명서에 의하면 매추리알과 고기를 들어 있다고 해서 구입했는데 맛이 딱 입맛에 좋다.
     자동차는 이곳에서는 부의 상징으로 통한다.  처음 만났던 Guide Tao가 했던 다섯가지의 소원이 생각난다.  내가 타고 다니는 것과 똑같은 기아 Sorento의 차값이 내가 지불했던것 보다 거의 두배 정도 비싼것 같다.  공동소유한다는 공산주의의 허구성은 여기서도 여지없이 나타난다. 있는자와 없는자의 Gap은 하루가 다르게 더 벌어지고 있다고 Guide는 투덜 댔었다.  있는자에게 비싼 자동차 한대는 소비에서 관심의 대상이 아닌것으로 이해됐다.
    이많은 숫자의 차량들과  Motor Cycle들과, 사람들은 지금 그들이 향하고 있는 Final Destination은 어디일까? 자못 궁금해 진다. 우린 호텔속의 방한칸으로 들어 가는데....

    내가 살고 있는 토론토의 주거환경이 최적이라는것을 이곳에서 다시한번 비교감사한다.
    메일을 열어보니, 아들에게 연락이 왔다. 엄마,아빠 안부를 묻는 내용이다.  이런것이 피로 맺어진 혈육만이 느끼는  삶의 의미인것을 또한번 깊이 느낀다.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