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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esday, October 19, 2021

윤석열 “전두환, 5·18-쿠데타 빼면 정치 잘했다” 李 “석고대죄하라”, 윤석열이 제대로 평가했다. 응원한다.


먼저 전두환 장군은, 지금의 문재인 김명수 처럼, 정신력이 흐려진 다늙은 노인을 서울에서 광주까지 끌고 다니면서 법정에 세우는 비인간적인, 악마 같은짖은 하지 않은 정직한 군인이자, 대통령이었음을, 나무를 보지않고 숲을 보는 정신으로 바라보면 훤히 느낄수 있는 인물이자 당시로서는 꼭 필요한 리더였음을 알아야 한다.

우리 한국은 어느 인물에 대한 잘못된 점만 부각시키는 더러운, 특히 정치꾼들은, 세계 역사를 봐도 찾아 보기가 힘들 정도로 더럽고 Dirty한 존재들은 없다.  그정치꾼놈들은 지금도 박정희대통령을 씹어 대는데 열을 올리고 있고, 입으로만 민주주의를 주창하면서 뒷구멍으로는 챙길것 다 챙긴 김대중, IMF라는 추태를 만든 김영삼을 추겨 세운다. 

https://lifemeansgo.blogspot.com/2017/11/100.html

당시 국가적 변란이 일어난 상황에서 전두환 장군은 구국의 일념으로, 지금의 한국군대의 똥별들 처럼 시류를 따라 움직일려는, 참모총장의 음흉한 행동을 간파하고 바로 행동에 옮겨, 나라의 기강을 잡고, 통치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과정을 욕하는것은, 당시의 상황을 잘 모르는 얼간이 정치꾼들 때문인것으로 나는 생각한다. 

그는 나라를 통치하면서, 지금의 청와대 Tenant처럼, 혼자 맘 내키는데로 내편 사람들만 등용 시키는 식으로 권력을 독식하지않고, 각분야의 전문가들을 초청하여 일을 맡기고, 그자신은 시스템관리만을 점검하고, 오직 북괴의 불법남침을 염두에 두고 국방을 튼튼히 하는 한편, 사회악을  뿌리뽑는데 역점을 두었었다. 그래서 그유명한 '삼청교육대'를 만들어 사회악들을 그곳에 몰아넣고 인간재생창 역활을 시켰던 것이다. 물론 그정책은 좋았지만, 실무선에서 이를 악용하는 사례는 옥의 티라고 할수 있는 비난을 받긴 했었다. 결론적으로 사회의 무질서는 회복시켰었다.

국가의 경제를 부흥시키기위해 각대학의 유능한 교수분들과 전문분야에서 공헌하고 있던 인물들을 정치색에 상관치 않고 직책을 맡겨, 마침대 수출에서도 흑자를 내기 시작한것도 전두환당시 대통령이었었다.

5.18사건을 말하는데, 정말로 그사건이 민주화 운동이었었다면, 지금 5.18 연금을 타먹는 자들의 신상을 다 밝혀야 하는데 왜 덮어두고 밝히질 못하고 있나?  이해찬같은놈은 광주의 광자로 모르는 서울에만 있었던자인데, Hearsay에 의하면 으젖히 연금명단에 올라있는데, 대부분의 연금 수령자들은 5.18과는 하등의 관계가 없는 자들이, 내편이라는 그점하나 때문에 국민세금을 축내고 있는 Parasites들인것을 고백하지 않는다.

5.18폭동당시, 북괴군 장교로 광주에 남파된자가 후에 탈북하여 당시의 광주사태에서 일어난 민간인 사살에 대해서 자기네 북괴군들이 한 짖이었음을 You Tube를 통해서 상세히 밝혔으나, 주요 언론들이나 방송은 일체 보도하지 않았고, 이를 철저히 밝힌, "지만원"박사를 오히려 감옥에 보낼려고 재판까지 끌어들였으나 결국 무죄로 풀려났었던점도 나는 기억하고 있다. 그분은 'System Club'운영하면서 5.18은 북괴군과 폭도들의 합작이었음을 역설하고 있는 분이다. 

우리가 역사를 통해서 미국의 링컨 대통령을 노예 해방을 시킨 훌륭한 대통령으로 추앙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박정희, 전두환, 그리고 링컨 대통령의 업적을 비교한다면,  링컨 대통령의 그업적을 추앙하고 존경하지만, 박정희 전두환이 군사 쿠테타를 하면서 까지 나라를 지켰던 점에 역점을 두고 본다면 이들 두분히 훨씬 더 국가적 영웅이라고 생각한다. 

링컨 대통령은 노예 해방은 시켰지만, 개인적으로는 노예 300명 이상을 자기농장에서 인간이하의 취급을 하면서, 개인적 부와 이득을 취했었던점을 비교 하고져 하는 것이다.  미국인들은 역사적 평가를 할때 잘못된점은 부각시키지 않고, 잘한점만 크게 부각시켜서 국가의 영웅으로 추앙하여 후세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애국심을 고취 시키는데 역점을 두지만, 우리는 그 반대로, 특히 정치꾼놈들의 주장데로, 잘못한 점만 들춰내서 깔아 뭉갰고, 앞으로도 그렇게 할것으로 믿고있다. 그래서 5천년 역사동안에 우리 자체적으로 '영웅'한명 탄생 시키지 못했었다. 

https://lifemeansgo.blogspot.com/2020/01/40-ranking-60.html

정치꾼들이 김대중, 김영삼을 민주주의를 실현시킨 대통령이라고 추앙하면, 같은 선상에서 박정희, 전두환의 경제성장 발전, 국방력 강화, '한강의 기적'등을 들어서 추앙해야 한다. 지금 박정희 전두환의 부정축제를 찾아내기위해 눈에 불을 켜고 지구촌의 이곳 저곳을 찾아 다니면서 뒤졌지만, 단 한푼도 찾지 못했는데, 그것은 그분들은 치사하게 몇푼의 돈을 꿍쳐 주머니에 넣지않은, 참 군인이자 정치지도자 였음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그래서 그분들의 업적을 더 빛나게 하고 있는 것이다.  

레이건 대통령의 유명한 멘트를 옮겨 놓는다. 

"자유는 공짜로 얻어 지는게 아니고, 이를 지킬만한 힘이 있을때에만 가능합니다"라는. 박정희, 전두환때 우리는 너무도 가난했었던점 기억하라. 엿같은 정치꾼들아.

https://lifemeansgo.blogspot.com/2021/10/5.html

한국의 정치꾼들아, 이젠 국민들 그만 이간질 시켜 네편 내편으로 가르지 말라, 지겹다.  우리민족은 우수한 두뇌를 갖고있다.  리더들이 잘 이끌어 주면 그능력은 최고로 발휘되지만, 그렇치 않고 꼼수를 쓰는 리더를 만나면 지금의 나라꼴이 된다.

지금 대선후보로 나선 자천타천 인물들, 나라경제부흥 또는 "제2의 한강의 기적"을 만들기위한 그어떤 공약을 내세운자 한명도 못봤다.  그래도 윤석열은 비난 들을것을 각오하고, 잘한것은 잘했다고 소신을 밝히는 인물로 나는 평가한다.  정신들 차려라. 

국민의힘 대선 주자 윤석열 전 검찰총장(왼),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이재명 경기도지사(오). 사진=뉴시스, 동아일보DB

국민의힘 대선 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전두환 전 대통령을 일부 옹호하는 듯한 발언을 해 논란이 일었다. 윤 전 총장은 “권한의 위임이라는 측면에서 그 후에 대통령도 배울 점이 있다는 뜻”이라고 해명했으나,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인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광주 영령과 호남인을 능멸했다”며 공세를 펼쳤다.

이 지사는 19일 페이스북을 통해 윤 전 총장 발언을 언급하며 “광주의 상처는 아직 아물지 않았고 진상규명조차 완전히 되지 않았다”면서 “집단학살범도 집단학살 빼면 좋은 사람이라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느냐. 광주 영령과 호남인 능멸에 대해 지금 즉시 석고대죄 하라”고 촉구했다.

민주당 광주시당도 성명을 내고 “호남은 엄혹한 전두환 통치 기간을 겪었다. 그를 칭찬하고 찬양할 호남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되겠느냐”며 “윤 전 총장이 호남인들의 정치적 시각을 심각하게 폄훼했다”고 비판했다.

앞서 윤 전 총장은 이날 국민의힘 부산 해운대갑 당협 사무실에 방문해 당원들과 만난 자리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이 잘못한 부분이 있지만, 군사 쿠데타와 5·18만 빼면 정치는 잘했다고 말하는 분들이 많다. 호남에서도 그렇게 말하는 분들이 있다”고 말했다.

“국정운영 전문가에게 맡기고 대통령은 시스템 관리”
윤 측 “ 5·18 민주화운동 등 잘못 전제, 찬양 아니다”
홍준표 캠프 “광주서 비석 닦는 퍼포먼스 왜 했는지”

국민의힘 대선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19일 부산 연제구 부산개인택시조합을 찾아 지지자와 택시기사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연합뉴스

국민의힘 대선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19일 부산 연제구 부산개인택시조합을 찾아 지지자와 택시기사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연합뉴스

윤 전 총장은 이날 부산 해운대구 해운대을 당원협의회를 방문한 자리에서 “(전두환씨가 정치를 잘했다)그거는 호남 분들도 그런 얘기를 한다. 왜 그러냐면 (전문가에게) 맡긴 거다. 군에 있으면서 조직 관리를 해봤기 때문”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윤 전 총장은 “경제는 돌아가신 김재익(전 경제수석)에게 (맡겼다)”며 “그랬기 때문에 그 당시에 3저현상이 있었다고 하지만 잘 돌아간 것”이라고 말했다.

윤 전 총장은 또 “국정은 해보면 어렵다. 경제 전문가라 해도 경제가 여러 분야 있어서 다 모른다. 최고 고수들, 사심 없는 분들을 내세워야 국민에게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윤 전 총장은 “경제 권력, 정치 권력 수사하면서 저도 일반 국민 못지않게 익혔지만 조금 아는 것 갖고 다 할 수는 없다”면서 “최고 전문가 뽑아서 임명하고 시스템 관리하면서 대통령으로 국민과 소통하고 챙길 어젠다만 챙길 것이다. 법과 상식이 짓밟힌 이것만 바로 잡겠다”고 강조했다.

윤 전 총장의 발언은 대통령으로서 국정운영을 잘 하기 위해서는 각 분야 전문가에게 세부 업무를 맡기고 전체적인 시스템 관리를 하면 된다는 주장을 하던 중에 나왔다. 검사로서만 26년을 지내온 만큼 경제·정치 등의 국정운영에는 미숙하지 않겠느냐는 지적을 방어하는 취지로 이해된다.

쿠데타로 집권한 전두환씨는 헌법을 유린한 독재자로 민주적 정당성을 갖추지 못한 데다, 5·18 민주화운동 유혈 진압 외에도 많은 과오를 남긴 인물이다. 삼청교육대를 운영해 인권유린을 했고, 학림사건, 부림사건,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등도 모두 전두환 정권에서 벌어진 일이다. 아직도 추징금을 납부하지 않아 국민 감정도 좋지 않다.

윤 전 총장 측 관계자는 이날 기자와 통화하면서 “(윤 전 총장 발언의) 방점이 12·12 사태와 5·18 민주화운동 관련해서는 잘못은 확실히 있다고 전제하고 말한 것”이라며 “전두환 관련해서 찬양을 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당내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홍준표 의원 캠프의 여명 대변인은 기자와 통화하면서 “광주 가셔서 비석 닦는 퍼포먼스는 왜 한 건지 모르겠다. 그간 5·18 묘지 찾아간 국민의힘 진정성이 함께 의심 받을까 우려된다”며 “국민께서 해당 발언을 상식적으로 판단하시리라 본다”고 말했다.

이어 “왜 (정치를 잘했다고) 그러느냐? 맡겼기 때문이다. 이분은 군에 있으면서 조직 관리를 해봤기 때문에 맡긴 것이다. 그 당시에 정치했던 사람들이 그러더라. ‘국회는 잘 아는 너희가 해라’며 웬만한 거 다 넘겼다고. 당시 ‘삼저 현상’(저유가·저달러·저금리) 등이 있었다고 했지만 그렇게 맡겼기 때문에 잘 돌아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후 ‘전두환 옹호’ 논란이 일자 윤 전 총장은 “잘한 것은 잘한 것이고 5·18과 군사쿠데타는 잘못했다고 분명 얘기했다. 앞뒤 발언을 떼고 일부분만 부각하고 있다”라고 해명했다.

이어 “전 전 대통령 집권이 7년이고 그 동안 잘못한 게 많다. 그러나 다 잘못한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권한의 위임이라는 측면에서 배울 점이 있다는 것은 전문가도 다 하는 이야기”라고 했다. 그러면서 “호남 출신 정치인도 문자 보내주는 분들이 있다. 그 이야기가 영·호남 차이겠느냐”라고 부연했다.

장연제 동아닷컴 기자 jeje@donga.com

https://www.donga.com/news/Politics/article/all/20211020/109809363/1

https://www.donga.com/news/Politics/article/all/20211019/109784429/2

https://www.khan.co.kr/article/202110191500011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016166

Wednesday, July 29, 2015

“5.18은 北특수군이 개입한 내란” 진실은? 언제쯤이면 이진실공방에 종지부가 찍힐까.

35년이 훌쩍 흘러간 광주사태의 진실은 무엇인가?

한친지로 부터 이멜을 하나 받았다.  그내용을 혼자 보고 지우기에는 너무도 어마어마해서 여기에 옮겨 놓았다.  이러한 진실공방이 조국이 처한 오늘의 현실이란점을 모른척 지나칠수 없었기 때문이다.  소름이 끼치기까지 했다.  지금시대가, 일제의 식민지로 부터 해방돼면서, 온나라가 '찬탁' 아니면 '반탁'으로 나뉘에 데모가 쉴날이 없었던, 그때가 연상될 정도로 국론이 분열되여 있다는것은 참으로 걱정스러운 일이다.

특전사 군인들이 투입되여, 무고한 광주 시민들을 마구잡이로 학살 했다는, 공식적인 기록이 정설로 되여 있는것으로 나와 있고, 이들의 지휘 통솔계통에 있었던 당시 국가권력기관의 사람들이 무참히 언론의 포화를 맞고, 우리사람들의 기억속에서 사라진지 오래됐고, 당시에 희생된 사람들은 국가유공자로 인정받고, 애국자로, 그리고 국가 연금까지 받으면서 살아가고 있고, 당연한 귀결로 여겨지고 있다.

http://lifemeansgo.blogspot.ca/2013/05/518-33.html

광주사태의 잘못알려진 진실을 밝혀내기위해 그동안 많은 고통과 비난을 받아가면서, 자료를 찾아 외로운 싸움을 해왔던 또다른 전문가들의 자료공개가 하나씩 둘씩 세상에 밝혀지고 있음을 본다.  유감스럽게도 이들이 발표한 자료는 언론이나 정부당국의 공감을 얻지못해, 전국민들에게 홍보가 돼지 않고 있는점, 또한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이들이 밝혀낸 자료들은 그내용으로 봐서, 천지가 개벽될 정도로 엄청난 내용들이고, 지금까지 공식적으로 알려진 "광주사태"의 내용을 완전히 뒤엎는 것들이다.  그리고 엄청난 누명(?)을 쓰고 고통속에 살아가고 있는 당사자들이나 유족들에게 채워진 족쇄를 풀수 있는 열쇠가 될수있을것 같다.

밝혀진 내용중 일부는 유감스럽게도 제대로 전달돼지 못해, 끝까지 읽어볼수 없었던점도 안타깝게 느껴졌었다.  언제쯤이되면 밀고 당기는 진실공방이 속시원하게 밝혀질수 있을까?  어느 누구의 안위를 위해서가 아니고 5천만 국민들의 안위를 위해서 말이다.

요즘 고국의 일부 언론들이, "건국의 아버지 이승만 전 대통령, 한국현대화의 기초를 만든 박정희 전대통령"에 대한 재조명 운동이 일어나고 있는 좋은 현상을 보면서, 광주사태 역시 조속히 그렇게 진실된 명암을 밝혀내야 할때가 된것으로 보여진다.
그만큼 조국 대한민국이 모든면에서 성장했기 때문이다.  국민들간에 이간질은 그만해도 될때까 됐고, 또한 국제사회에서도 그수준에 맞는 품격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5.18은 北특수군이 개입한 내란” 진실은?




1980년 5.18 광주사태 당시 무기고를 습격하고, 일사분란한 행동으로 정예 계엄군에 대항한 '600명의 연고대생'이 북한에서 보낸 특수군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이를 뒷받침 하는 군 출신 탈북자들의 증언과 함께, 북한에서 공개한 '광주인민봉기 30돌 행사' 사진 속 인물들이 1980년 5월 언론사 사진기자들이 촬영한 일부 시민군의 얼굴과 일치한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대한민국대청소 500만 야전군>;(대표 지만원)2일 오전 한국프레스센터 19층 기자회견장에서, 5.18 광주작전에 참전한 북한특수군의 사진을 공개하겠다며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날 지만원 박사는 5.18에 대해, “북한정권에 의해 남파된 600명 정도의 북한특수군이 국가전복을 목표로 광주시민을 선동해 일으킨 게릴� �폭동”이라며, “5.18은 여적사건이라는 사실이 백일하에 드러났으며 숨길래야 숨길 수 없는 역사적 진실”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5.18 당시 계엄군으로 광주에 있었던 11공수특전여단 출신 최 모씨(65)와 문 모씨(62)의 증언도 이어졌다.
당시 특전여단 중대장이었던 최모씨는 “중대원의 1/3 정도가 전라도 출신이었고 광주가 고향인 사람도 몇 명 있었다”며, “당시 광주에서 떠돌던 ‘경상도 군인이 전라도 씨를 말리려고 한다’는 말은 억지를 넘은 유언비어”라고 증언했다.
통신 부사관이었던 문 씨는 “부대원들이 광주에 도착한 뒤 M-16 소총의 ‘공이’를 빼서 반납한 기억이 있다”며, “진압장비는 헬멧과 진압봉 뿐이고 소총은 등에 매고 있을 뿐이었다. 고층건물 밑으로 지나가다가 시위대가 던지는 축대 쌓는 돌에 맞아 죽은 동료도 있었다”고 밝혔다.




문씨는 1980년 5월 21일 시민군이 도청 으로 행진하던 상황을 설명하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그는 “군용 P-77 무전기에서 지휘관이 ‘여기서 밀리면 다 죽는다’고 절박한 목소리로 말했는데 정말 다 죽었다”며, “당시 도청 앞 분수대 주변은 사망한 진압군의 피로 물들었고 살려달라고 절규한 전우들의 목소리는 지금 이 시간에도 귀에 쟁쟁하다”고 말했다. 이어 문씨는 당시 광주에서는 귀를 의심케할만한 연설과 구호가 등장했다고 설명했다.
아수라장이 된 광주시내에서는 각종 선전문구와 함께 "이제 우리의 혁명은 끝났다. 진압군은 투항하라. 인민전선의 시민군은 해방됐다. 인민전선 지원군이 도착했다. 조선인민군만세"라는 내용의 귀를 의심케 하는 연설 구호가 이어졌다. 

지만원 박사는 1995년 7월 18일 서울지방검찰청과 국방부가 공동으로 발간한 ‘5.18관련사건 수사결과’와 1985년 안기부가 작성한 ‘광주사태 상황일지 및 피해현황’, 2006년 5.18 기념재단에서 발간한 ‘5.18의 기억과 역사’ 등의 문건을 검토해 18개의 ‘스모킹 건(Smoking gun)’을 찾아냈다고 강조했다.
‘스모킹 건’은 어떤 범죄나 사건의 진실을 규명하는데 쓰이는 ‘결정적 증거’를 의미하는 단어다.
특히 지만원 박사는 1980년 5월, 광주에서 불과 4시간만에 5,400여정의 총기를 탈취하고 다이너마이트 폭탄 2,100여개를 조립해 전남도청 지하실에 설치하는 등 게릴라 폭동을 주도한 ‘600명의 연고대생’이, 실제로는 북한이 6개월여에 걸쳐 침투시킨 특수군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만원 박사는 “계엄군이 광주시내에 있었을 때는 이들 600명이 활약했지만 군이 시 외곽으로 철수한 22일부터는 증거를 남기지 말아야 한다는 철칙 때문에 복면을 하고 광주시민들과 어울리지 않았다”며, “당시 광주에는 ( 시민군이 탈취한) 4대의 장갑차를 운전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고, 장갑차를 운전해 유공자가 된 사람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지만원 박사는 위에서 언급한 각종 보고서를 인용해 “총상으로 사망한 광주시민의 70%가 무기고에서 꺼낸 총에 의해 숨졌다”며, “이는 남남갈등을 조장하기 위한 북한의 술책이었다”고 설명했다.
지만원 박사는 80년대 서울과 광주에서 발생한 시위 기록을 보면, 북한책에 기술돼 있는 시위 전략·전술과 정확히 일치한다는 점도 지적했다.
1982년 ‘조국통일사’가 발행한 대남공작 역사책 ‘주체의 기치따라 나아가는 남조선인민들의 투쟁’에는 북한의 대남 시위전략이 나온다. 주요 내용을 요약하면 ▲주력시위는 시내 중심부에서 벌여야 한다 ▲성토대회와 성명발표, 교내시위, 농성투쟁 등을 통해 공격을 실시한다 ▲모든 시위대는 집중과 통일된 행동을 통해 정치적 효과를 높여야 한다 등이다.
이 책에는 ‘광주 반파쇼민주화투쟁에 대한 교훈’ 이라는 5.18 관련 글도 실려 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광주인민봉기는 새로운 단계의 반파쇼민주화투쟁을 위해 귀중한 교훈을 남겼다.
그 교훈은 첫째로 남조선인민의 해방투쟁 승리는 반미투쟁과 결합될 때만 확고한 것으로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는 청년학생운동과 로동운동과의 결합을 새로운 높은 단계로 심화 발전시켜야만 한다는 것이다. 
셋째는 보다 광범위한 대중적 지반 위에서 반파쇼민주역량을 형성하고 그것을 조직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지만원 박사는 “1980년 5월에 전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시위들은 그저 산발적으로 발생한 시위가 아니라, 시위전략과 전술에 의한 북한 시위작전사령부의 일사불란한 지휘 하에 이뤄진 작전이라는 믿음을 갖게 한다”고 말했다.

◆ 5.18에 북한 대남전략기구가 개입했다는 탈북자들의 증언
남한으로 망명한 故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와 김덕홍 전 여광무역사 총사장은 1998년 7월 월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밝힌 바 있다.
김덕홍: 북한 통일전선부에서는 분기에 한 번씩 강연을 하는데 광주문제를 자기네들이 한 것으로 이야기 합니다. 
황장엽: 북한 내부에서 대남사업을 내용을 아는 사람들에게는 상식화돼 있다. 민주주의가 발전하고 생활수준이 높아가는 한국에서 왜 데모나 운동이 일어나는가. 그것은 � 醍�북에서 작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남정책의 두 가지가 달라졌습니다. 하나는 남로당때와 같이 조직을 노출시키지 말라는 것. 그래서 지하당을 이중 삼중으로 만들어 누가 지도하는지 모르게 합니다. 둘째, 노동자나 군인보다는 학생들 속으로 들어가라는 겁니다.  
김덕홍: 김일성종합대학 옆에 3호청사가 있다. 광주운동 이후에 3호청사 사람들이 표창을 많이 받았습니다. 
황장엽: 동생, 그런 얘기 했다가 또 혼이 나려고 그래?
김덕홍: 형님, 우리가 이런 얘기 하자고 남한에 온 것 아닙니까. 여기 남한에 와서 꼭 하고 싶은 얘기를 해야겠습니다. 3호청사에 소속돼 있던 사람들이 광주민주화운동이 끝난 후 일제히 훈장을 받았습니다. 

내 친구들이 그 부서에서 근무하고 있었는데 그 친구들도 광주민주화 운동 후에 � 팀揚�탔다고 축하술을 함께 마시면서 그들에게 직접 들은 겁니다. 

2006년 여동생, 딸 등과 함께 탈북한 전 북한특수군 출신 김명국(가명)씨의 증언도 5.18 북한 개입설을 뒷받침 하고 있다. 다음은 그의 증언을 요약한 것이다.
“1980년 5월 19일 전남 광주시로 남파돼 작전을 수행하다가 5월 27일 북한으로 철수하던 도중 북한군 포 사격훈련장을 통과하다가 부상을 당했다. 1국기훈장 1급을 받고 5.18영웅대접을 받으면서 2003년까지 북한군 특전사 교관(중좌)으로 복무했다.

…(중략)…광주봉기에의 북한군 침투총화(결산)가 6월 15일 김일성과 김정일의 직접적인 참석 하에 평양에서 열렸다. 남한에 침투됐다가 살아서 귀환한 군인, 전사한 군인 모두에게 공화국 영웅 칭호가 수여됐고 분견대 대장 2명은 조선인민군 교도지도국(특수전사령부) 작전부에 승급 배치됐다. 김일성은 소좌급민 분견대장들에게 대좌의 군사칭호를 수여했다.”

◆ 북한서 열린 광� 聆菅觀윤�30돌 행사,
여기에 등장한 8명의 ‘광수(광주 침투 북한특수군)’



지만원 박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2010년 5월 17일 광주인민봉기 30돌 행사가 평양 중앙노동자회관에서 열렸는데, 이날 행사장 로얄석에 앉은 3명과 1980년 5월 광주에서 사진기자들에게 찍힌 3인조가 동인 인물인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지만원 박사는 이어 “김정은이 지난해 4월 15일 태양절 때, 군 간부들과 함께 김일성과 김정일의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태양궁전을 방문해 참배한 사진에서도 5명의 ‘광수’가 추가로 발견됐다”며, 5.18의 실체적 진실 발견을 위한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고 입장을 밝혔다.
이날 기자회견을 주도한 지만원 박사는 5.18에 북한 특수군 수백 명이 조직적으로 개입했다는 주장을 거듭해왔다.
지만원 박사는 이런 주장을 입증하기 위한 증거자료를 모으는데 상당한 공을 들였다. � 殮牟〈�광주사태 당시 침투한 북한 특수군을 뜻하는 이른바 ‘광수’를 찾기 위해, 1980년 당시 광주 시민군들을 촬영한 사진과 북한이 공개한 각종 자료 등을 비교 분석하기도 했다.
그 결과 지만원 박사는, 모두 8명에 이르는 ‘광수’를 찾았다고 밝혔다. 지만원 박사가 밝힌 ‘광수’의 정체에 관한 사진 자료는, 시스템클럽(http://www.systemclub.co.kr/)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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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게재일자 2012년 10월 6일, 양원석 기자

지난달 27일 북한인권운동가인 김주호 박사가 공개한 함경북도 청진시 낙양동에 있는 '인민군영웅들의 렬사 묘' 사진.ⓒ

▲ 2012년 9월 27일 북한인권운동가인 김주호 박사가 공개한 함경북도 청진시 낙양동에 있는 '인민군영웅들의 렬사 묘' 사진.ⓒ

5.18 광주사태 당시 1개 대대 병력의 북한군 특수부대가 김일성 전 주석의 지령을 받고 개입했다는 증거가 공개됐다.
그 동안 5.18 사태 당시 남한 내 혼란과 적전분열을 목적으로 북한군이 개입했다는 설은 꾸준히 제기돼 왔다.
1990년대 들어서는 한국에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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