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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esday, August 26, 2014

65남선교회원들의 Brighton나들이 - 기분전환.


65 남선교회원들 Brighton 나들이 및 월례회(Aug.24,2014)
믿음의 교제를 나누는 교회에서 매주 만나는 얼굴들이지만, 토론토에서 멀리 떨어진 이곳Cottage에서 만나는 기분은 완전히 다른 마치 오래 헤여져 있었던 친지나 식구들이 다시 만나는 또다른 반가움과 기쁨을 느끼게 해주고 정감이 더 가게 하는 만남이다.




예측했던데로 반가운 얼굴들이 아침 1045분경에 Cottage 뒷뜰에 무사히 도착하여, 멀리 떠나있던 자식들이 시골에 살고 계시는 부모님을 오랫만에 찾아와서 반가히 맞이하는 그런 기분을 느끼게 했다. 명칭이 남선교회원들의 모임이지, 시골 나들이 이기에 부부동반과 다른 여자분들도 많이 오셨다.

요며칠사이 날씨가 항상 시커먼 하늘을 만들고, 마치 장마처럼 가랑비가 왔다 갔다 하곤해서 많이 걱정했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먼저 일기예보를 들어 보고, 비가 오지는 않을 것이라는 예보에 다소 안심은 했었으나 여전히 하늘은 회색구름으로 뒤덮혀 있어 편치않은 마음으로 
회원들이 도착 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Lunar는 며칠전부터, 텃밭에서 자란 채소와 호박 오이 고추 쑥갓(Crown Daisy)상추들을  정성스럽게 거두어서 준비를 해두고, 어제밤에는 마지막으로 준비한것을 점검하면서 밤 3시경까지 불을켜고 부엌에서 일했는데, 그렇게 창문을 포함한 문들을 꼭 닫고 Flying Bug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했었는데도, 천장에 달려 있는 형광등 주변에는 새카맣게 붙어 있는bug들을 보면서 걱정도 했었다. 행여나 만들어 놓은 음식에 떨어지는 사고가 나지 않을까 라고.






우선 먼길 오는데 피곤하고 갈증도 났을테니, 큰 Dish에, 지난해 가을에 채취했던 머루(Wild Grape)로 만들었던 원액을 이용하여 그녀가 만든  특유의 Sauce를 곁들여 Salad를 만들어 목을 즐겁게 해준다. 시큼하면서도 fresh한 맛이 입맛을 당기게 해주었다. 그런데 순서가 뒤바뀌는 조그만 사고가 났다.  회원 K 가 어느새 잽싸게 2층 Deck으로 올라가 BBQ Grill에 불을 지피고 갈비를 굽기시작하면서 예상치 않은 이른 점심이 시작된것이다.  K회원은 이런 모임에서는 항상 자원봉사자로 나서서 일을 하는 회원이다.  이번에는 그자신이 비싼 갈비를 비롯한 다른 음식까지도 준비해 왔다고 한다.

같은 음식이라 해도 뒷뜰의 넓은 잔듸밭위에서 즉석 갈비와 돼지고기를 비롯한 신선한 채소들로 꽉찬 식탁에서 Buffet형식으로 나누는 음식맛은 또 다르다. 여자분들은 멀리 나들이 했기에 좀편하게 쉬게하고 대신에 남자들이 일을 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질 못하고, 바로 Lunar와 함께 음식 만들어 제공 하는데 눈코 뜰사이가 없이 금새 바쁘게 움직인다.  남자회원들은 집주인인 나자신도 알지 못하고 있던 의자들까지 어느구석에서 잘도 찾아내 빙 둘러앉아 이바구 하기에 바쁘고… 그래서 나이든 한국남자들이 배우자들한테서 환영못받는 이유중의 하나이기도 하지만, 그래서 또 한바탕 웃어 제낀다.


같은 연령대의 회원들이니 허물이 없고, 격이 없어 모두가 마음도 가볍게 토론토에서는 감히 입에 꺼내기도 쉽지않은 대화들이 경쟁 하듯이 터져 나와 좌중을 웃음속에서 헤여나지 못하게 한다.  그중의 명강사가 회원 C 다.  재능이 그렇게 많은줄은 수십년을 같이 Fellowship나누면서도 오늘에야 처음 알았다.  아마도 조금 떨어져 있는 곳에서 음식준비 하시는 여자분들도 그의 명강의를 안듣는척 하면서 들었을 것이다.

집에서 부터 출발하여 대부분의 남녀 회원분들이 바로 옆에 있는 Presqu’ile Park안에 있는 Marsh Board Walk까지 산책을 나서고, 몸이 조금 불편한회원들을 위해 불고기 굽던 K 회원이 또 운전수를 자청하여 그들을 태우고 먼저 도착해서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다. 

최고 연장자 되시는 분의 무사한 Board Walking행사를 윗분에게 상고하고 기원하는 의식을 마치고 걷기 시작했다.  나는 수도 셀수 없을 만큼 왔었기에 별다른 느낌은 덜했지만, 대다수의 회원분들은 키가 무척큰 갈대밭속의 Swamp속에 만들어진 Board Walk을 걸으면서 토론토에서는 접해보지 못했던 새로운 자연속에서 느끼는  탄성의 소리들도 나왔다.  다시 또 오겠다는 말로 다짐을 하면서 신선하고 아름다움을 표현한다.  삶이 그렇게 쉽게 기회를 주지 못한다는것을 나는 알고 있기에, 꼭 다시 오셔서 즐길수 있기를 바랜다고 응수 했다.


 

Board Walk시작점과 끝지점에는 Watch Tower가 넓게 준비되여 있다.  가을 수확철이 되면 갈대가 황금색으로 변해 마치 고국의 김제 평야를 기차를 타고 가면서 보았던 다 익은 벼이삭이 미풍에 출렁이던 광경을 연상케하고, 또 그때쯤이면 철새들이 남쪽으로 이동하면서 쉬어가는곳이 바로 여기 갈대밭이라고 나는 설명을 해주기도 했다. 그설명에 그때 꼭 다시 오겠다는 다짐을  또 한다.  꼭 그렇게 되기를 어쩌면 그들보다 내가 더 바라는지도 모른다.  될수만 있으면 많이보고 오랫동안 기억속에 담아 두기를 바라는 뜻이 있기 때문이다.



 회원 S, 또다른 K는 몸이 좁 불편한 편이다.  그분들이 우리보다 훨씬 키가 큰 갈대들이 미풍에 흔들거리는 사이로 이어진 Board Walk을 완주한것이다.  K는 너무나 좋아한다. 평소 토론토에서는 이렇게 먼(?)거리를 걸어본 기억이 거의 없었다고 하면서… 그분의 건강이 다소나마 회복되였으면 하는 마음이 교차된다.  아름답게 끝없이 펼쳐져 있는 새로운 자연속 분위기가  친지들과 한데 어울려 그를 끝까지 걷게 만들어 주었다고 생각된다.





집에 도착하니, 진수성찬(?)이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Lunar는 혼자남아 그동안 준비해 놓고 있었는데, 여자분들이 합세하여 금새 산해진미로 상을 꽉채워 맛도 맛이지만 보는눈이 즐겁게 해준다.  이래서 남자 여자가 같이 짝을 지어 한평생을 살게 되는가 보다라는 엉뚱한 생각까지 해본다.  모두가 된장국이 일품이라고 극찬이다.  Luanr가 지난봄에 Maple Tree에서 채취한 Sap을 물대신에 써서 만들었던 된장이다.  맛이 내가 먹어 보아도 특이한 다른 맛이 입맛을 감칠나게 했었는데, 오늘 모두가 시원하게 좋아 하신다.





뒷집의 Barbara가 대식구가 모인것을 보고, 스낵용 빵을 구워서, 또 며느리가 사온 Turkey에서 만든 그들의 고유의 Candy한박스까지 들고와서 건네주고 간다. 고마운 이웃이다. 이런일이 있을때는 꼭 음식을 만들어 주곤해오는 고마운 친구이자 이웃이다.  이런식으로 서로 음식을 나누다 보니, 그들도 이제는 한국음식에 많이 익숙해져 있는, 많지 않은 서양사람들중의 하나가 돼여 있다. 김치같은것은 이제는 자연스럽게 잘도 즐기는 식도락가로 변한 셈이다.  그의 남편 Eugene 은 Luanr만들어주는 전부침을 그렇게도 좋아 하곤한다.





회원들이 모인김에 오랫만에 월례회를 하면 어떨까하고 물었더니 모두가 동의 한다.
걸직했던 대화들이 금새 진지한 모습으로 언어부터가 좀 딱딱하다싶게 느낄정도로 정숙해진다.  나는 어젯밤에 준비를 좀 해두었었지만, 다른임원분들은 준비해올것으로 생각도 못했었는데, 회의 자료들을 준비해 온것을 보면서, 주책없이 노는것 같아도 책임을 위한 준비들은 철저히 하는 그분들의 세밀함에 감사와 고마운 마음을 보내고 싶은 기분이었다.





선교헌금 잔고중에서 일부는 해외에 파견된 선교사분들에게 보내고 나머지 일부는 연말 총회때를 기준으로 행사에 필요한 경비로 사용키로 하는 것이 주요 회의 내용이었다.  그리고 9월말경에 있게될 선교회별 음악경연대회를 위해 Conductor역활로  수고해 주는 Elder K가 준비해온 자료를 들고 노래 연습도, 회의가 종료되자마자, 시작하여 한마디씩 덧붙이는 우스개 소리로 좌중은 노래연습도 좋지만 웃음소리가 더 크게 들리는 폭소의 연습장으로 변하기도 했다. 





다떠난 뒤의 Cottage는 찾아오는 어둠과 함께 금방 적막강산으로 변했다.  여자분들이 다 뒷마무리를 해주고 떠났지만, 그래도 Lunar는 여전히 발을 동동 구르면서 뒷정리를 하느라 바삐움직인다.  나는 그녀가 도와 달라는것을 조금 도와주는 일종의 쓸모없는(?)존재가 되여 있는 상태이고… 정리를 끝내고 한잔의 구수한 잠자리전의 커피를 한모금 넘길때는 벌써 시계는 밤 10시 30분경을 가리키고 있었다.  서로 나누고 즐긴다는것은, 그것도 서로 이해하고 즐길수 있는 친지들과 한다는것은 일종의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부부는 그래서 축복받은 사람들중의 하나가 아닐까?라는 말을 Luanr에게 건네면서 그녀에게 미안한 마음을 대신해본다.

Monday, August 18, 2014

한국에서 여생을?- 아서라, 나도 전에는 그렇게 생각했었다.

나자신도 이민자로서 미지의 땅에 뿌리를 박고, 자식들을 부양하기위해 새벽부터 자정까지 바삐 움직일때는, 내자신을 많이 한탄도 했었다.
" 잘 나가는 직장을 내던지고, 더 좋은 삶을 살아보겠다고 이민 보따리를 싸서 이곳까지 왔는데, 잘 살기는 커녕, 3D 업종중의 하나라고 볼수 있는 Convenience Store를 하면서, 이민자로서의 억울한 차별도 많이 당하면서, 별보고 잠자리 뛰쳐 나와서 별보고 집에 들어 가야 하는 삶이 과연 옮은 선택이었던가?  이다음 은퇴 해서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 편하게 살아야 겠다"라는 말을 수도 없이 되뇌었었다.


지금은 다 자라서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아이들이, 가끔씩 만나서 Eating out할때면, 되묻곤 하는 질문이 있다. 그것도 서툴은 우리 한국말로.  그래도 우리끼리니까 의사 소통은 된다.

"아빠, 그때 우리들 앞에서 했던말 지금도 생각나?"
"아니, 뭔데 그렇게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나?"
" '나 이다음에 은퇴하면 짐싸들고 다시 한국에 돌아가 여생을 보낼거야'라고 한말.."
" 미안해, 그때는 아빠가 너무나 힘들고, 아침에 눈떠서 저녁에 침대에 드러 누울때까지 아무것도 못하고 오직 가게일만 해야 했기 때문에 심신이 지친 그런 삶이 싫어서 그랬던거야. 지금은 전연 아니야. "
" 아빠 지금 얘기지만, 그때 Elementary school 다니면서 어린 우리남매, 아빠가 그런 얘기 할때마다 마음이 얼마나 조마조마 했었는지 알아.  우리도 같이 걱정 많이 했었어.  아빠, 엄마 따라서 한국에 가야되나? 아니면 여기서 살아야 하나? 우린 돈 하나도 없는데...."
"엄마, 아빠는 여생을 여기 제2의 조국 캐나다에서 보낼거야. 이봐, 카테지도 있고 .... 지금 잘 지내고 있잖니. 매년 엄마 아빠 둘이서 해외 여행 다니고....너희들 앞날일들이나 걱정해, 엄마 아빤 이제는 편하게 잘지내고 있는것 알지?"

정말이지 그때는 삶이 뭔가를 되씹어 보고 또 보고, 그러면서 이민자의 삶이 이렇게 고달퍼야 하는가?라는 생각과 다른 친지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별생각을 다하면서 나만 이런 고생을 하는걸까?라는 자책을 많이 했었다.  내눈에는 남들은 여름철 휴가때면 짐싸들고 여행을 다닐때, 연말 연시 Holiday 즐길때, 우린 똑같은 휴가나 Holiday라는 말을 잊은채 소처럼 일만 했었다 정말로 아이들한테 미안할 정도로.  지금도 아이들 학교 다닐때 온식구가 같이 캠핑한번 하지 못했던 지난날을 생각하면 그져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가슴을 여민다.  허지만 그때는 지겨운 젊은 날의 삶이었다고 표현하고 싶다.

10년 하고도 몇년이 훌쩍 넘었다.  생업에서 손떼고 은퇴생활을 하기시작한지가....
그러나 젊어서 소처럼 일만 했었던 지난날을 절대로 지금은 후회하지 않는다.
그런 희생의 댓가를 치렀기에, 남에게 의지하지 않고, 무난한 은퇴생활을 하고 있다는 감사함을 가슴속에 깊이 새기면서 은퇴자로서의 하루하루를 뜻있게 보내면서 캐나다에 감사해 하고 있다.

그사이 고국을 방문하면서 이곳 저곳을  구경도 하고,  좋은 기억을 만들려고 좋은 쪽으로 많은 생각을 했었다.  사회가 잘못되여가는것을 봤을때도, 사람들의 행동이 때로는 상대방을 전혀 배려하지 않는 나만을 위한쪽으로 보여도, 아직은 시기적으로 그럴수도 있겠다라고 좋게 이해 할려고 했었다.  그러면서도 마음속에서는 거부 반응이 너무나 많이 일어나, 나같은 사람이 다시 이곳 고국에서 살게 된다면, 일년도 못가서 갖인것 다 거덜나고, 얼키고 설킨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마음의 상처를 많이 받아 어려움을 겪게 될것이라는 생각이 자꾸 커지게됐다.

내가 태어나고 조상님들의 모든것이 묻혀 있는 조국이기에 절대로 잊을수는 없다.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조국이 부강한 나라가 되고, 평안하게, 여유롭게 그리고 믿음이 공존하는 사회로 성장하기를 바라는 희망을, 시집간 딸의 심정으로 빌면서 살아 가지만, 역이민을 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다만 기회가 주어지면 방문하는것으로 족할 것이다.  역이민을 하기에는 나는 너무나 고국의 현실을 모르고, 두렵기 때문이다.

고국을 이끌어가는 정치꾼들, 먹물많이 먹은 지성인들이라고 하는 사람들의 철딱서니없는, 그리고 정부에서 일하는 고위급 지도자들, 그래서 그영향이 젊은이들과 국민들에게 어떻게 반향을 미칠지 심사숙고한 다음에 써야할 글들을 SNS에 마음데로 써 갈겨대는, 반짝 빛나는 인기위주의 까십같은 칼럼들, 언론사들의 어린아이들 작문쓰는식의 무책임한 기사들, 한치의 양보도 할줄 모르는(?) 사회구조와, 외모를 중시하는 구태를 벗어 버리지 못하는 악습이, 여생을 조국에서 보내고 싶어하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뒤집어 놓고 있다는것을 이제는 인식했으면 싶다.

오늘은 정말로 황당한 기사를 보았다.  장관급에 속하는 검사장이라는 사람이, 그것도 박대통령이 주창하는 부패척결, 개혁을 앞에서 이끌어가야 할 사람중의 하나가, 이유야 어쨋던 여학생 앞에서 짐승도 하지 않을 개수작을 했다는 뉴스는, 개혁의 주체가, 바로 개혁의 첫번째 대상자임을 여실히 나타내는 한국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꼴이 됐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4/08/16/2014081600234.html?news_top

"내가 누군데.... 나는 개혁대상에서 예외야.... "라는 고정관념이 머리속에 꽉박혀 있는 그런사람들이 개혁을 하겠다고?  박대통령이 괜히 안쓰러워 보이게 하는  Cancer Cell같은 존재들이 지도층으로 있는한, 개혁, 부패척결은 물건너간것이나 다름없다는 생각이다.  오죽 했으면 '관피아'라는 신조어까지 탄생했을까.  '검사장'하면 울던 아이도 울음을 그치는 무서운 존재로 인식되여 있는 관직인데, 부패, 부정척결을 위해 앞장서서 분골쇄신해야할 현직 검사장이 자기 딸같은 여고생 앞에서 물건을 꺼내놓고 농락을 했다는 뉴스는 충격을 넘어, 부정부패 척결은 고사하고 호시탐탐 적화통일을 꿈꾸고 있는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존재 여부가 심히 걱정되는 현실이 너무나 불쌍하기만 하다.

국가의 공권력을 최일선에서 맡아 수고하고 있는 경찰관들을 마치 개패듯이 해대는 무지한 국민들, 법은 이들 무법자에게 너무나 관대(?)하다. 오히려 경찰관들이 욕먹는 대상이 되는 나라,  파출소가 술주정꾼들의 행패 부리는 장소로 전락한 나라.... 취중에 한 행동이라는 명분을 주어 그냥 풀어주는 나라.... 이곳 캐나다의 경찰관들이 폭력을 당한다거나, 경찰관들의 업무를 방해하는 행동은, 하나님이라도 용서를 하지 않는다. 일단 철창행이다.  이렇게 해야 국가의 기본인 질서가 유지 되기 때문이다.  고국은 선진 외국의 모방은 잘하면서도 이런 공공질서범에 대해서는 너무나(?)관대하기만 할까?  그래서 행여라도 역이민은 두렵다.

이곳 북미, 특히 캐나다에서는 많은 유럽쪽 이민자들이 은퇴후 조국으로 돌아간다.  심지어 연방정부 장관까지 했던 사람들도 은퇴후 모든것 버리고 자기 조국으로 역이민 간다.  그것이 정석(?)으로 받아들여지는 풍조다.  여기서 일생동안 일해서 모은 재산을 처분하여 자기 조국으로 가면, 편하게 살수 있는 그들 나라의 구조가 우선 나는 부럽게 느껴진다.  스페인, 포투갈, 터키, 이태리, 파키스탄, 인도 그리고 옛 동구권 유럽여러나라 사람들이 이들 범주에 속한다.

우리 조국에서 살려면, 우선 경제적으로 따져 보았을때, 있는재산 다 처분하여 되돌아 간다해도 그돈으로 반듯한 아파트 한채 사기가 힘들 정도로 생활비가 무척 비싸다고 한다.  그리고 항상 잔머리를 굴려야 하는 어려움이 함께 하는것을 많이 보아왔다.  그런점들이 여기서 오랜 이민의 삶을 살아온 사람들의 마음을 두렵게 한다.   가끔씩 역이민이 있는것을 보는데, 이분들은 이민의 역사도 짧으면서 또 여기서 이민의 삶속에 적응못하고 할수없이 되돌아가는 분들이 있긴 하다.  나는 그래서 조국의 품으로 돌아가 여생을 보낼 꿈을 깨끗히 접고, 이곳 제2의 조국 캐나다에서 이씨 가문의 시조로 남아 자손들의 번영을 도우면서, 심신이 허락하는한 조상님들과 친지들 방문으로 족할 것이다.

여기에 친지한분이 보내온 어느 외국인의 칼럼을 옮겨 놓았다.  절절히 옳은 말이다.  한편 챙피 하기도 하다. 내분수는 내가 알아야 하는데.... 남이 장에 가니 나도 구럭 짊어지고 가야 한다는 일종의 Show off하는 그런 삶의 자세는 선진국이 될려면 과감히 버려야 할때가 됐다고 본다.




한국에서 여생을?
[너무도 잘못된 한국사회]
지난 주 서울에서 발행되는 일간에
어느 유명한 외국인 초빙교수가 한국에 살면서 목격한
한국인들의 이중인격에 대한 소감이 실렸다.
이 교수는 정신의학계의 세계적인 권위자인데,
한국을 떠나면서 후임으로 부임한 교수(외국인)에게
자신의 눈에 비친 한국인의 이미지에 관해
다음과 같이 평했다고 한다.
한국인은 너무 친절하다.
그러나 그것이 그 사람의 인격이라고 판단하면 오해다.
권력 있거나 유명한 사람에게는
지나칠 정도로 친절하지만,
자기보다 약하거나 힘없는 서민에게는
거만하기 짝이 없어 놀랄 때가 많다.
특히 식당 종업원에게는 마구잡이로 무례하게 대해
같이 간 사람이 불쾌할 정도다.
잘 나가는 엘리트일수록
이 같은 이중인격을 지니고 있어
인간적으로 사귀고 싶지가 않았다.”
공감이 가는 소리다.
서울에서 온 점잖은 사람이
미국의 코리아타운 식당에서 종업원에게
이봐” 하면서 큰 소리치는 광경을
한인들도 많이 봤을 것이다.
그 사람이 친구나 친척이면
미국서는 그러면 안돼하고 충고를 해주겠지만,
잘 알지 못하는 사이거나 VIP인 경우는 난감하다.
한국에서 엘리트 계층에 속한다면 배운 사람이다.
배운 사람일수록 겸손해야 하는데 오히려 거만을 떤다.
지식은 많은데 지혜롭지가 못하다.
말은 유식한데 행동은 무식하기 짝이 없다.
게다가 준법정신이 엉망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지를 어찌 알겠는가!
서울에서 내가 겪은 일이다.
어느 회사 중역과 저녁을 먹고
그의 차로 호텔에 돌아오게 되었는데,
한가한 길에서 빨간 신호등이 켜져
운전기사가 차를 멈추자
중역이 아무 차도 없잖아그냥 건너가
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그 후부터 그 사람을 다시 보게 되었다.
힘 있는 사람부터 법을 안 지키니
부정부패가 만연할 수밖에 없다.
대법관으로 임명된 인사가
청문회에서 위장전입을 인정할 정도니
정부 요직에 있는 다른 인사들이야 말해서 무엇 하랴.
한국 엘리트들의 또 다른 모순은
자기 잘못을 절대 인정하지 않는 점이다.
회사에서도 뭐가 잘못되면
전부 윗사람 아랫사람 탓이고
자기반성은 조금도 없다모두가 남의 탓이다.
그러다보니 사람들이 너무 네거티브하다.
모여 앉으면 정치 이야기인데,
완전히 흑백논리로 평한다.
호남친구들과 만나면
박정희박근혜 혹평하는 것 듣다가 시간 다가고,
경상도 친구들과 만나면 김대중을 얼마나 미워하는지
저녁자리가 피곤하게 느껴질 때가 많다.
한국에는 존경받는 대통령이 없다.
모두가 이래서 죽일 놈이고 저래서 죽일 놈이다.
벼락부자의 단점이 무엇인가?
국민소득은 23,000달러 수준인데,
국민의식은 500달러 수준(1970년대)이다.
경제가 눈부시게 발전했다고 자랑하지만
그것은 곧 벼락부자가 되었다는 뜻이다.
그저 남에게 내가 이만큼 가졌다고 자랑하는 것이다.
재산이 사람평가의 기준이다.
역이민을 절대 말리고 싶다
요즘 미주 한인들 중에
한국에 가서 여생을 보내면 어떨까하고
역이민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돈 없이 한국에서 살면
사람취급 제대로 못 받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돈 없는 사람은 동창들 사이에서도
냉대 받는 곳이 한국이다.
미국에서 재산 몽땅 정리해도
한국에서는 아파트 하나 사기 힘들다.
성공의 의미가 너무 좁다.
몇 평짜리 아파트 사느냐,
강남에 사느냐 강북에 사느냐가 사람평가의 기준이다.
돈 있고 잘사는 데도
자기보다 더 잘사는 사람을 부러워하며
항상 뭔가 불만족이다.
역이민절대 말리고 싶다.
불만족의 뿌리는 정치꾼들에게 있는 것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대통령을 무시하고,
북을 찬양하는 종북자가 국민의 혈세를
빨아먹으면서 활개를 치고,
어린이들을 학대하는 걸 보고도 수수방관하고,
경찰관들을 우습게 보는 국회의원들!
국민들 위에 군림하지 말고, 임시국회를 열어서라도

법의 미비한 점을 지체하지 말고 따져보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