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owing posts with label 카투사. Show all posts
Showing posts with label 카투사. Show all posts

Friday, January 29, 2021

법무장관, 판사출신, 秋한18년의 권력악용 증거, 문재인은 보상해라. "당직사병이 아들" 지인에도 숨겼던 엄마의 고통.

秋한18년을 곁에 끼고, 1년을 법무장관으로 근무시키면서, 무고하고 힘없는 일반 서민들을 무자비하게 짖밟았던, 권력남용죄를 물어, 그녀에게 법의 심판을 받게 하던가, 그게 아니라면 문재인은, 당직병으로서의 맡겨진 임무를 충실히 한죄밖에 없는 A씨에게 정신적 고통과 秋한18년이 더러운 권력을 악용하여 일방적으로 "그냥 소설이 아니고 장편소설"을 쓴것이라고 몰아부친 그무서운 꼼수로, 선량한 공익신고자를 범죄자 취급한 모함을 변상해주는 뜻으로 최소한 10억원의 보상을 해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秋한18년의 아들, 즉 탈영병을 변호한다고 여러명의 변호사를 고용하여 A씨가 주장한것은 허위라는것을 밝히기위한 것이 목적이었다면, 그렇게 많은 변호사를 고용할 필요가 있었겠는가?  변호인단은 "당직사병의 모든 말이 허위 사실이다. 근거없는 이야기를 마치 경험한것처럼 만들어 옮기는 전형적인 모함꾼"이라는 입장문을 발표할때도, 당사자인 A씨는 막연히 지켜만 봐야 했었다.  또한 A씨의 어머니는 그들 변호인단은이 A씨가 "일베회원"이라는 거짖루머를 퍼뜨리고곤 했지만 이역시 지켜만 보면서, 엄마는 "일베가 뭔지도 몰랐었다가 나중에야 알았었다"라고 권력의 비정함을 무덤덤하게 사건이 김영수 국방권익연구소장의 도움을 받아 해결되자, 기자에게 얘기했었다.  

 “황희 의원이 ‘공범 세력이 있는지 규명해야 한다’는 글을 쓴뒤, 아들은 정말 힘들어하던 때에 김 소장으로부터 큰 도움을 받았다”며 엄마는 울먹였다.

변호인단을 꾸려서 A씨를 범죄자 취급으로 몰아갔는데, 그비용은 누가 댔을까? 추한 18년이 법무부 예산을 비합법적으로 사용 안했다는 보장도 없다. 그동안의 경험으로 계산해 봤을때....

같은 또래의 젊은이들이 같은 내무반, 그것도 카투사에서 근무 했는데, 권력있고 빽있는 秋한18년의 아들은 탈영을 하는 범죄자 였는데도 어깨를 펴고 거리를 활보하고, 전북소재 축구단의 인턴으로 근무를 하고,  당직병 근무시, 서군의 탈영사실을 상급자에게 보고함으로써 직무를 충실히 이행한 A씨는, 더러운 권력을 휘두른 秋한18년과 변호사들의 칼에맞아 범죄자 취급을 1년간 당한, 충직한, 지금은 시민의 신분으로 살아가는 A씨에게 대한민국의 법은 꼭 위에서 잠깐 언급한데로 보상을 해주어야 한다. 

秋한18년의 아들 탈영병을 법의 심판대에 세워서 법이 살아 있음을 국민들이 봐야 한다.  탈영병 아들을 권력을 악용하여 보호한 더러운 엄마역시 법의 심판을 받게 해야 한다. 아들과 엄마를 같은 재판정에 동시에 세워, 전국민이 보는 속에서, 아들과 엄마가 지지른 범죄행위가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확실하게 보여주어, 다시는 이러한 권력형 부정이 재발하지 않도록 해야한다.  

문제는 후임자로 법무장관질을 하게되는 박범계의 과거 폭력이나 부정에 관련된 범죄 행위를 보면, 얼마가지 않아, 국민들은 "구관이 면관이네"라고 한탄을 하지 않을까?라는 걱정이 너무크다.  이런 중범죄자를 임명한 문재인의 철판 얼굴을 5천만 국민들은 자세히 마음속에 새겨서, 다시는 이러한 파렴치범을 대통령으로 선출하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국민들이여 명심하시라.

 혼자 싸워야 했던 아들이 공익신고자로 인정받은 이후에야 A씨는 친한 지인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었다. “뉴스에 나온 당직사병이 내 아들이야.” 행여나 아들이 다칠까 봐, 가족 외엔 누구에게도 하지 않은 말이었다.

‘당직사병의 어머니’ A씨(53)는 1년 여간 가슴에 쌓아둔 말이 많다고 했다. 그의 아들은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 아들 서모(28)씨의 군 휴가 관련 의혹을 제기한 당직사병(27)이다. A씨가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한 27일 경기도 과천 법무부 정부청사에선 추 전 장관의 이임식이 열렸다.

“하고 싶은 말, 많았죠. 그렇다고 제가 국회에 나갈 수 있나요, 기자를 부를 수가 있나요.”

엄마는 아들이 '당직사병'인 줄 몰랐다

“군 복무 중 서씨가 휴가 복귀를 하지 않아 부대에서 소란이 있었다”는 아들의 증언으로 정치권과 사회는 떠들썩했다. 추 전 장관은 2019년 12월 법무부 장관 후보자 신분으로 열린 청문회에서 아들 관련 의혹이 제기되자 “외압을 행사할 이유도 없고, 하지도 않았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엄마가 공인이어서 군대를 자원해서 간 아이”라고도 했다. “가족 신상털기”라고 항변했다.
 
추 전 장관이 자신의 아들을 지키고 있을 때 A씨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아들이 뉴스에 나오는 ‘당직사병’이라는 사실을 지난해 7월 처음 알았기 때문이다. 사실을 먼저 안 남편이 TV에 나오는 아들을 보며 말해줬다고 한다. A씨는“아들이 지난해 1학기가 끝나고 집에 내려왔다가 다시 서울로 올라간 날이었다”며 “뉴스를 찾아보고 바로 전화했는데, 담담하게 ‘서울에 막 도착했다’고만 얘기하더라”고 했다.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 아들 서모씨의 군 휴가 미복귀 의혹을 최초로 제기했던 당직병사 A씨가 지난해 10월 서울 송파구 동부지방검찰청에 고소장을 접수하고 있다. 뉴스1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 아들 서모씨의 군 휴가 미복귀 의혹을 최초로 제기했던 당직병사 A씨가 지난해 10월 서울 송파구 동부지방검찰청에 고소장을 접수하고 있다. 뉴스1

엄마의 아들 걱정은 그때부터 시작됐다. A씨는 “아들이 문제가 되지 않을까 두려웠다”고 했다. “TV에서만 볼 수 있는 그런 높은 사람에 관해 안 좋은 얘기를 했으니….”
A씨는 “혹시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니 서울에 있지 말고 집에 내려와라. 아니면 내가 서울로 가겠다”고도 했지만, 아들은 늘 “걱정말라”고만 했다고 한다.
추미애 당시 법무부 장관이 지난해 9월 17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답변하고 있다. 뉴시스

추미애 당시 법무부 장관이 지난해 9월 17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답변하고 있다. 뉴시스

추 전 장관은 TV에 나와 아들을 지켰다. “제 아이는 군 복무를 하루도 빠짐없이 성실히 했다”, “아이가 굉장히 화나고 슬퍼 눈물을 흘리고 있다. 더 이상 건드리지 말아달라”고 했다. 9월 17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선 A씨의 아들을 언급했다. 추 전 장관은 “아들과 다른 중대 소속으로 이른바 ‘카더라’다”라며 “군인은 다른 중대 사람을 ‘이웃집 아저씨’라고 칭한다고 한다. 이웃집 아저씨의 오인과 추측을 기반으로 한 제보”라고 주장했다.
 

“내 아들이 거짓말쟁이라고? 나도 엄마다”

A씨는 추 전 장관이 아들을 지키는 발언과 보도를 모두 봤다고 했다. 아들이 당직사병이라는 것을 안 순간부터 A씨가 할 수 있는 건  오전 8시부터 잠들기 전까지 뉴스를 보는 것이었다. 휴대전화와 컴퓨터로 포털에서 기사와 댓글을 찾아보는 게 일상이 되면서 시력도 나빠졌다.
 
그는 “추 전 장관도 엄마니까 아들을 보호하고 싶었을 거라 생각한다”면서도 “편을 들 수는 있겠지만, 어떻게 우리 아들을 거짓말쟁이라고 하느냐. 나도 엄마다”라고 말했다.
 

“아들에 피해 갈까 봐 댓글도 못 써” 

추 전 장관이 “그냥 소설이 아니고 장편소설”이라고 말하고, 서씨의 변호인단이 “당직사병의 모든 말이 허위 사실이다. 근거 없는 이야기를 마치 경험한 것처럼 만들어 옮기는 전형”이라는 입장문을 배포할 때도 A씨는 지켜만 봐야 했다. A씨가 ‘일베 회원’이라는 허위사실도 돌았다. A씨는 “처음엔 일베가 뭔지도 몰랐다. 나중엔 ‘사실이 아니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왜 댓글을 다냐’고 반박하는 댓글을 썼다 지웠다 했다”고 말했다. “혹시나 그 댓글이 아들한테 피해가 될까 봐 아무 말도 못 했다”고 했다.
 
서울동부지검은 추 전 장관의 아들을 무혐의 처분했지만, 아들이 말한 내용은 모두 사실로 인정했다. 휴가 행정처리가 사후에 이뤄져 일반적이지 않았고, 추 전 장관의 보좌관이 군 간부에게 휴가와 관련해 연락한 사실도 드러났다.
 

아들 부패신고자 지위 인정받아  

당직병사 A씨와 김영수 국방권익연구소장(전 국민권익위원회 국방담당 조사관)이 지난해 10월 12일 서울 송파구 동부지방검찰청에 고소장을 접수하기 위해 들어서고 있다. 뉴스1

당직병사 A씨와 김영수 국방권익연구소장(전 국민권익위원회 국방담당 조사관)이 지난해 10월 12일 서울 송파구 동부지방검찰청에 고소장을 접수하기 위해 들어서고 있다. 뉴스1

아들은 김영수 국방권익연구소장의 도움을 받아 국민권익위원회에 부패신고자로 인정해달라는 신고를 했고, 지난해 11월 그 지위를 인정받았다. 권익위는 A씨의 아들이 공익신고자에 준한다고 판단했다. A씨는 “황희 의원이 ‘공범 세력이 있는지 규명해야 한다’는 글을 쓴 뒤 아들이 정말 힘들어하던 때에 김 소장으로부터 큰 도움을 받았다”며 울먹였다.

 
혼자 싸워야 했던 아들이 공익신고자로 인정받은 이후에야 A씨는 친한 지인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었다. “뉴스에 나온 당직사병이 내 아들이야.” 행여나 아들이 다칠까 봐, 가족 외엔 누구에게도 하지 않은 말이었다.

Thursday, May 28, 2015

한국 성공 신화를 생활현장에서 보여주고있는 5명의 삶과 이야기들

한국은 지구촌의 표본이 되고 있다.  반세기전만 해도 지구상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중의 하나였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지구상에서 가장 번창하고 있는 나라중의 하나이다. 수도 서울은 비즈니스로 활력이 넘친다.  고층빌딩들은 뉴욕 맨하탄과 경쟁할 정도다.


Time and tide was on time for Korea to be developed toward for a prosperous country having charismatic unique leadership that was so lucky for Koreans.  At that time no options available but procedure to get out of starvation that visited Koreans early Spring every year.
한국은 매우 특이한 방법으로 개발해 왔다.  식민지로 전락하기도 했었지만 그것으로 머물지 않았다.  1960년대에 한국의 지도자는 기업가들을 독려하여 산업을 육성시키는 카리스마적인 지도자였었다.어떻게 해서 그런 방식의 개발이 가능했을까? 무엇을 교훈으로 얻었던가?
BBC의 서울 특파원  Steve Evans는 한국의 성공신화를 현장에서 뛰면서 보여주고 있는,성공한 신화의 주인공 5명을 접촉하여 그들이 하는 얘기를 들어 보았다.

http://www.bbc.com/news/world-asia-32811864

사업가로 변신한 주부.
Romi Haan, 그녀는 꼭 필요한 발명의 어머니 였다.
그녀는 딱딱한 마루바닥을 무룹꿇고 손으로 청소하는게 그렇게도 싫었다. 그래서 그런 괴로움을 해결하면서 청소하는 걸레를 만들었다.
이기상 천외한 구원의 신기술은 조그만 물탱크와 마루바닥에 스팀을 뿌려주기위한 열장치를 취합하여 보통의 걸레에 연결한 작품이다.  이걸레는 너무도 성능이 좋아 대량으로 만들어서 시장에 팔기로 결정했다.

그녀가 회사를 차려 운영중에 있는 Steam-mop(스팀 걸레)는 Haan회사의 효자 품목이 됐다. 지금은 80명이 근무하고 있으며, 년 총매상은 1억 2천만 달러에 달한다.
이사업은 집안일을 전담하고 있는 여성들의 고민을 풀어주는 정확한 해답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주부들이 가장 하기 싫어하는 일이 마루 바닥을 무뤂꿇고 닥는 일이다"라고 그녀는 설명한다.

"대부분의 가정주부들은 내자신을 포함해서,바닥을 매일 무뤂꿇고 손으로 청소해야만 했다. 이에 진절머리가 나서 뭔가 해결책을 찾아야만 했었다.  이런 집안일에서 한국의 주부들을 해방 시켜야 겠다는 생각에서 였다."

한국의 가옥 구조는 온돌 기능을 갖추고 사람들은 그위에 밥상을 차려놓고 음식을 먹는 습관이 있다. 그리고 잠잘때는 같은 바닥에 요를 깔고 그위에서 잠을잔다.

따라서 바닥을 청소하는일은 집안청소하는 큰일중의 하나이며, 허리가 부러질 정도로 힘든 일인데, 이런일은 대부분 가정주부들이 도맡아서 한다.  Romi Haan은 말하기를 그녀의 남편은 많은 집안일을 도와주곤 하지만, 바닥 청소만은 예외라고 설명한다.

"남자들은 손과 무릅을 이용해서 하는일은 잘할수없는 구조로 되여있다."라고 우겨댄다고 그녀는 웃는다.

그녀는 생각하기를 대부분이 남자일 기술자들은 여자들의 고충을 잘 모르는것 같다.

"특히나 한국에는 여자 기술자들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 대부분 남자들이 기술자들이기도 하지만, 그들은 여자들만큼 가정일에 필요함을 알지 못한다. 가정주부로 오랜시간을 이런일들과 부딫치면서, 나는 필요한 기술을 어떻게 응용할수있는가를 터득하게 됐고, 그래서 내가 필요한곳에 적용해서 기술적으로 해결을하는데 결론을 얻은 것이다."

여자가 문제점을 발견하고 그자신이 이문제를 해결하여 결국 사업으로 연결시킨 신화가 된것이다.  지금  그런신화를 또다른 여성이 쓰고 있다. 그녀는 선생님이지만 일년에 5억원 이상의 수입을 올리는 사업가이다.

선생님 사업가


Gwen Lee씨는 일년에 5억원 이상을 벌어들이는 선생님이다. 어떻게 하면 수입을 늘릴수 있는가를 배우기위해 목말라 하던차에 그녀는 사업에 투신하여 수입을 올린것이다.  그녀는 교실에서 한달에 약 1,000명에게 영어를 가르친다.   그녀는 중국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학습을 접목시킨것이다.

한국인들은 - 중국사람들 마찬가지 - 영어를 구사할수 있는것은 좋은 직장을 구할수 있다는점에 착안하여 그요구를 채워주게 된것이다.

그녀의 직원들은 검은색의 차로 그녀를 학생들 교실로부터 강남의 비즈니스 구역까지 그녀를 운전해주는 운전사도 포함되여있다.

인터넷을 통해서 그녀가 필요한곳을 선정한다.  그녀가 근무하는 사무실의 한곳은 그녀와 TV 카메라맨이 매주 온라인에서 가르치게되는 내용을 녹화하는 공간으로 이용된다.

확실히 그녀의 브랜드뿐만이 아니고 이미지 또한 매우 중요하다.  외모에서 떨어지는 선생님은 비즈니스를 확보할수 없다. 그래서 그녀는 매일아침 7:30분경부터 머리를 매만지고 화장을 한다.  하루동안에  그녀는 최소한 10번 이상의 얼굴 화장을 한다.

그녀는 하루좋일 쉴새없이 대중상대의 퍼포먼스를 한다.  그녀 자신도 가끔씩은 진짜 나를 나타내는 모습은 어떤것인가를 놓고 황당해 할때가 있다 - 대중앞에서 당당히 자신있게 서 있기 위해서 화장을 해야하거나 또는 다른 변장을 하기도 하고, 가능하면 베일에 싸이도록 계속적인 노력을 하기 때문이다.

"집에 있을때는 많은 구상을 하게 된다.  그리고 생각하기를 ' 왜 내가 대중들 앞에 서지 않으면  않되는가 그리고 성공을 해야만 하는가?  그러기위해서 무엇을 추구해야 추구해야 하는가? 대중들에게 보여주기위해서 나는 어떻게 노력을 해야 하는가?'

"어떤때는 갑자기 나는 텅빈 껍데기같다는 느낌을 받으면서 생각하기를 ' 내가 하는일이 과연 옳은 선택을 한것인가?'

"그러나 내가 화장을 잘하고 곧바로 내강의실에서 학생들을 상대로 서있으면서, 나는 자신감을 트끼고, 평온해짐을 때때로 느낀다.  그두가지 모두가 나자신을 나타내는것이라고 생각한다"라고.

한국에서는 영어가 생활에 많은 연관성을 갖고 있다. 미국인들은 1945년경부터 한국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으며 또한 많은 한국인들의 가족들이 미국에 거주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인들이 영어를 배울려고 하는 진짜 이유는 더 좋은 직장을 구할려는 목적과 자신감을 얻기 위해서다.
개인적 성취도를 이루는것 못지않게 전한국이 이런 분위기속에 있다.  

선박제조의 산증인

오늘날, 한국은 세계에서 조선업이 가장 앞선 나라로 가장 넓은 선착장과 수많은 선박주문이 쌓여 있다.   이러한 산업의 성공은 무에서 시작됐던 것이다.

이상복 기술자는 16세때 부터 한반도 남쪽끝에 있는 울산 현대 조선소에서 일해온 기술자이다.  그는 1974년 현대 조선소가 막 사업을 시작했을때 이회사에 입사 했었다.

그의 하는일은 배를 제작하는데 용접부분이 표준에 맞게 잘 용접이 됐는지의 여부를 검사하는 검수관이다.
대형 액화 LNG천연개스 운반선을 제조하는데 티끌만큼이라도 누수가 있어서는 안되는 특수선박이기 때문이다.

만약에 길이 300미터가 넘는 대형선박에서 누수가 발생한다고 가정해보자.  결과는 재난을 만난것 처럼 치명적이이다. 액체에서 개스로 변환 시키기 때문에 액화천연개스는 폭발성이 매우 강하다.

이상복씨는 이회사에서 근무하는게 매우 자랑스럽다. 수입이 좋아 그는 가족들과 안정된 생활을 누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곳에 있는 시설들은 '현대'로 묘사된다.  내가 운전하고 다니는 고속도로는 현대 창업주의 이름으로 명명되여 있다.  병원과 대학도 현대가 재정적으로 도와주어 설립된것이다.  그래서 우스개 소리가 있다. 이곳은 '현대왕조'라고.

"지난 40년을 회고해보면, 내인생의 중심에는 선박제조를 빼놓을수 없다.  내 젊음을 바쳐 이회사에 근무했다. 현대는 나를 나타내는 분신과도 같다.  그때는 아무것도 없는 조그만 어촌에 불과 했었다.  지금은 지구상에서 가장 큰 선박제조 회사로 변해 있다."

오늘날 한국의 경제성장에 빼놓을수 없는것중 하나는 가난했던 기억이다. 겨우 한세대를 조금 넘긴 기간동안에 한국은 소달구지 문화에서 리무진을 몰고 다니는 나라로 변했다.  그러나 지독하게도 가난했던 기억은 쉽사리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고 있다.

튀김치킨 상인

그러한 아픈 기억들이 지금은 온라인으로 주문을 받아 튀김치킨을 만드는 비즈니스까지 하게하는 원동력이 된것이다.

장현숙씨는 돈세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  그녀와 남편은 그돈들을 침대머리맡 안전한곳에 보관하고 있으면서 소파에 앉아 돈을 세는 것이다.

그녀는 이튀김 닭 장사를 17년전에 시작했었다.  그녀는 새로 태어난 자식에게 먹일 우유조차 조달할수 없는 어려웠던 시절을 기억에서 지울수가 없다.  그래서 현찰을 손에 만지는것은 그녀에게는 매우 소중한 가치를 안겨준다.

속초 중앙시장에 있는 튀김닭 가게에서 아침 9시부터 밤자정까지, 주 7일동안 일하고 있다.  그녀는 가게를 비우는 일이 거의 없다. 일년에 겨우 4-5일 정도 쉴뿐이다.

그녀의 매상은 가게에서 판매된것 보다는 메일 주문이 태반이다.  주중에는 하루에 약 300 박스를 처리하고 주말에는 약 800 박스를 만들어 박스당 약 $15달러에 팔고 있다.

야구시즌이 되면 사람들은 튀김닭 박스를 구입해서 경기장으로 들고 가기 때문에 주문은 천정부지로 늘어난다. 사업에서 나오는 이익은 일년에 약 3억원이 넘는다.

그러나 그녀의 사업은 날로 번창해도, 비참하게 가난했었던 그날들이 두렵게 느껴진다. 그녀는 돈을 세면서 축복도 함께 센다.

국방은 거대한 군대조직의 병사들이.


한국은 경제 발전을 위한 외부의 원조를 많이 받은 나라는 아니다.  그러나 미군이 주둔하면서 그들이 뿌린 돈이 엄청 났었다.  지금도 한국에는 약 30,000명의 미군이 주둔해 있으며, 이와 더불어 630,000명의 한국군 병사들이 국방을 지키고 있다.

한국은 징병제로 거대한 군대조직을 갖고 있는 나라이다.

'이동혁'일병은 강철같은 두다리와 철통같은 의지의 사나이로 날씬하고 타프한 군인으로  그는 카투사( 한국주둔 미군병력의 증강을 돕기위해 미군부대에 파견된 한국군 병사)에서 근무하고 있다.

다른말로 표현하면 그는 한국시민이지만 한국에 주둔해 있는 미군부대에 배속되여 병역의무를 하고있는 젊은이다.  그래서 그는 매월 140,000 원을 지급받는다.  그러면서도 모든 식사와 편의시설을 제공받는다.

담력을 기르는 훈련에 참가한다.  그는 잠을 못자고 행해지는 훈련과 산골짜기를 헤매는 장거리 행군을 하기도 하는데, 가끔씩은 사람무게에 버금가는 군장을 꾸려 메고 행군하기도 한다.

이훈련으로 튼튼한 다리와 강한의지의 사나이로 변신된 그는 오늘도 근무에 충실하고 있다.

1993년 서울태생으로, 일병 이동혁은 14세때 그의 부모를 따라 미국으로 이민가서 영어를 배우게 됐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그는 징병제인 군대생활을 하기위해 한국으로 되돌아 군복무중인 것이다.

그러나 그의 뜻하는바는 여기가 아니다. 군복무를 하지만 한국에서 보다는 미군부대에서 하는것이 그의 영어사용을 부드럽게 할수 있고, 군복무후 미국으로 되돌아가 미국시민으로서의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카투사에서 군생활하는 가장 좋은점은 세계 제일의 미군들과 함께 군복무를 하는것이다. 그외에도 그들은 지도자가 갖추어야할 자질을 가르쳐주며, 그것을 이용하여 획득할수 있는 많은 기회가 있다"라고 그는 설명한다.

그는 대학에서 전기엔지니어링을 전공 했었으나, 지금은 변호사가 되기를 꿈꾸고 있다.  그는 어떻게 해서 조국 대한민국이 오늘날 이렇게 잘살게된 나라가 됐는지를 나름데로 보고 있다.

"1950년대로 되돌려 보자, 그때 한국은 전쟁페허뿐이었는데, 지금은 지구상에서 가장 번성한 나라들주의 하나가 되여 있다.  이렇게 잘살게 된것은 우리 할아버지 세대들이 당신들은 고생을 해도 후손들은 잘살게 하기위해서 해외에 나가 열심히 일해 돈을 벌었들였기 때문이다.  많은 우리 조부모 세대들은 독일로 건너가 어려운 광부일을 했었다."

"우리의 할머니들은 한국의 식구들에게 경제적 보조를 하기위해 간호사로 힘들게 일했으며,  벌어들인 돈을 쓰지 않고 고국의 가족들에게 보내, 그돈으로 우리 한국은 조국건설에 필요한 기계장비를 구입하여 제품을 생산하기 시작했었다."

그는 현재 한국주재 미군부대의 총지휘소(HQ)가 될 Camp Humphrey 기지에서 근무하고 있다.  그곳에서는 현재 새로운 군병원이 건설되고 있고,  그규모는 한도시를 충분히 도우고도 남을 큰 규모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