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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day, January 31, 2016

India tour, 부처님 득도한 성지 Sarnarth, 부처님 박물관, 처음 설파한 Temple 복제관 탐방( Jan.31,2016 오후)

https://youtu.be/ZWq8Ex6j0Jg

몇년전 Nepal에 있는 Lumbini 탐방을 했을때, 인도에서 출생한 석가모니의 출생에 대한 설명을 들으면서, 왜 인도에서 이곳 먼곳인 Lumbini까지 와서 출생하게 됐을까?라는 의문을 떨치지 못했었다.  부처님의 유적지인 Sanarth 유적공원앞에는 처음보는 Hand Crafts들을 파는 상점이 눈에 띄어 한컷해 봤다.
Sanarth 유적공원은 부처님의 모든것에 대한 유적이 그대로 남아 있는 곳이라고 한다.  우선 이곳 유적지는 수난을 많이 겪은, 그래서 많은 상처가 남아있는, 곳이라는 점이다. 옛날 Muslim이 득세 할때, 이곳을 전부 없앨려고 인위적으로 다 땅속에 묻어 버렸었다고 한다.  그런 상태로 6백년동안 지내오다가 1815년에 영국의 탐험가이자 육군 대령이었던 Shea McKenzie에 의해 발굴이 되기시작됐는데, 그는 고고학적인 면에서 전문가가 아니었기에 고고학적인 전문지식이 도입돼지 않은채 발굴을 하면서 부작용도 많이 발생했었다고 한다.
그후 20여년이 지난 1835년경에 유명한 고고학자가 영국에서 건너와 전문적으로 발굴을 고고학적인 측면에서 조심스럽게 하면서, 다른 고고학자들의 도움을 받아 마침내 땅속에 묻혀있던 유적들을 발굴하여 지금 보는것 처럼 조성해 놓았다는 설명이다.
부처님이 처음으로 이곳에서 해탈한 내용을 대중들에게 설파한곳으로, 부처님을 기념하여 사후 약 300년 후에 Mauryan왕국의 왕 Ashokan이 Pillar을 세웠다고 전한다.  그래서   Ashokan Pillar 라는 이름이 부쳐졌다는 것이다. 불교는 Stupa없이는 설명이 안된다.  Guide의 설명에 따르면, 4가지 형태의 Stupa가 있다고 했다.  Commemorative, Relic, Votive(offering), Padrabhaumik 라고 한다.
Ashokan Pillar의 기둥은 높이가 15.25미터로 옛날 석기시대의 선돌을 본딴 기둥이었다고 한다.
Ashoka 왕은 (272-232 BC) Sand Stone을 이용하여 Pillar를 만들었고, 표면을 번질번질 Polish했다고 한다. 기둥의 밑부분은 직경이 71센티미터, 윗부분은 56센티미터로, 기둥의 맨위에는 4마리의 으르렁 거리는 사자상이 새겨져 있는데 자세히 보면 웃는 모습이라고 한다.  이런 모습이 Mauryan왕조시대의 건축물의 특징이며, 이사자상은 현재 인도의 국가적 상징으로 1950년 1월 26일에 지정되였으며, 특히 100 Rupee 지폐에 인용돼고 있다. 현재 원래의 4마리 사자상은 길건너에 있는 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다고 했다.
Pillar는 여섯조각으로 부러져 전시되고 있었다. Ashoka왕이 만든 3개의 경고문구가 새겨져 있다고 한다.  첫째는 Monks와 Nun들은 Sangha(불교에 정진하는 Monks, Nun들이 함께 생활하는 공동구역)에서 분쟁을 하지 말것, 두번째는 Kaushambi의 Kushana왕에 대한내용, 셋째는 초기의 Gupta Brahmi 경전에 대한 경전과 당시 선생들에 대한 언급이 새겨져 있다고 한다.
발굴된 유적은 현재는 대부분 그 Foundation만 남아 있는데, Lumbini에서 본것처럼, 전부 벽돌을 사용했다는 점이다.

이곳은 Mulagandha Kuti로 부처님에 득도후 좌를 틀고 기도에 정진한곳으로 알려져 있다.  부처님의 불상이 거의 다 좌를 틀고 있는 모습의 이유를 오늘 조금 터득하게 된 셈이다.  이곳이 부처님께서 기도에 정진한 기도원으로 더 확실하게 증명하는 기록이 있다.  중국출신의 스님 Hiuen-Tsang의 6년간의 연구와 기도후에 기록한 내용을 보면, 이기도원의 높이는 61미터였다고 한다.  마침 스리랑카 출신 Monk가 기도에 정진하고 있는 광경을 목격할수 있었다.
기도원벽의 두께는 이건축물의 무게를 충분히 지탱할수있는 규모였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기도원의 구조는 정사각형의 형태였으며 각면의 길이는 18.29미터였고 출입문은 동쪽을 향해 직사각형의 Mandaya 였었다. 또한 기도원의 앞에는 길게 만들어진 Court Yard가 있었다고 한다.  기도원 건물의 구조는 역시 벽돌로 쌓았으며, 시대적 배경으로는  Gupta왕조시대에 건축된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Guide 의 설명은 귀를 더 바짝 기울이게 해줬다.  부처님의 어머니가 임신하여 아이를 낳기위해 친정집으로 가던 도중에 Lumbini에서 부처를 해산하게 된다.  지금은 인도와 Nepal로 국경이 나뉘어 있지만, 그때 당시는 각지역의 토후들이 왕권을 잡고 통솔하던때라 그지역이 부처님의 아버지인 왕의 통치하에 있었을 때였다.  부처님이 세상에 태어나자 마자 7발짝의 걸음마를 했다는 것이다. 그때 갑자기 하늘에서 7개의 연꽃이 지상으로 내려와 부처님의 출생을 환영하고 그곳에서 자라게 됐다는 것이다.  부처님은 Hindu 혈통의 Prince로 태어난것이다.  득도하기전의 이름은 Siddharth Gautam 이었다.
 
부처님의 생애에 대해 설명을 해준다.  그는 Kalpilvastu 의 Sokyan혈통으로 당시 그지역을 지배하고 있던 계급인 Worrior의 왕자로 태어나서, 해탈하기전까지는 Siddharth Gautam으로 불렸다.  아버지 Suddhodna는 현재의 Nepal 일부와 인도북부지역을 통치하는 왕으로 군림하고 있었다.  Siddharth는 기원전 563년에 Lumbini Garden(현재 Nepal의 Rummindei)에 있는 Sola Tree 밑에서 태어나 났는데, 그때 어머니 Mayadevi는 Siddharth를 낳기위해 그녀의 친정집이 있는 Devadoha로 가던 중이었었다고 한다.
Lunar와 Guide, Nihal이 서있는 이곳은 Monastery가 있었던 곳으로 당시에 수행중이던 Monks들이 이곳에서 생활하면서 부처님 교리터득에 정진했었다고 한다.
유적지내에서 가장큰 이 Stupa는 Dhamek Stupa로 주로 Memorial을 뜻한다고 했다.   Ashoka왕은 이 Dhamek Stupa를 건축했는데, 이유는 부처님께서 이곳에서 처음 대중 Sermon 한것을 기념하기위해 건축한것인데 세월이 흘러가면서 후세사람들이 더 Expension해서 지금처럼 엄청나게 큰 Stupa가 됐다는 것이다.
마침 일요일인데도 현장 실습을 나온 이곳의 학생들이 우리 부부와 Encounter했는데 사진을 같이 한컷하자는 제안을 해와 그들과 함께 잠시 동심을 즐겼다.  이들이 지금의 상태처럼 잘 자라서 사회적 기둥이 되기를 속으로 염원해 주기도 했었다.  동행한 선생님이 더 좋아하셨다.


많은 Stupa들의 Base는 모두 벽돌로 구성되여 있고,  기능은 부처님에 대한 Votive(헌신, Offering)를 의미한다고 했다. 그런데 벽돌사이에 시멘트를 사용한것을 보면서 의문이 생겼다. 당시에 시멘트를 이용할수는 없었을텐데 하면서.  Guide의 설명은 땅속에 묻혀있는 것들이 지상으로 나오면서, 구경온 사람들이 너나 할것없이 하나씩 기념으로 들고 가는것을 더이상은 방치할수 없게 하기위해 새로 Remodeling하면서 시멘트를 사용하게 됐다는 것이다.


부처님, 또는 석가모니의 얼굴에는 32개의  Noble feature가 들어있어 힌두사람들은 부처님을 일컬어 그들이 믿는 9번째의 Vishnu신의 Incarnation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래서 힌두사람들은 부처를 불교의 창시자로 공경하지 않고, 다만 그들이 믿는 Vishnu 환생의 하나일뿐이라는 것이다.  당시 부처님의 설법을 믿고 따르던 사람들은 인도에서 다른 아시안 나라들로 도망을 가서 그곳에서 불교를 전파하게 되는 반사포교를 하게된 계기가 됐다는 설명이다.
그리고 인도는 계속해서 Hindu 국가로 계속남아 현재에 이르고 있다는 Theary다.
사진에서 보는 거다랗고 둥근 모양의 Base는 당시 Dharmara Jika 가 있었던 곳으로 Relic Stupa에 속한다고 했다.  나는 설명은 들었지만 왜 이 Stupa는 Relic으로 구분되는지는 지식이 모자라 깊이 이해하지는 못했다.
 부처님께서 이와같은 종류의 나무밑에서 득도 하셨다는 Nim Tree가 Sarnarth 유적공원 입구에 크게 잘 자라고 있었다.  입구에는 돌판에 새겨진 Sarnarth 에 대한 설명이 잘 기록되여 있다.  이곳의 Nim Tree는 1931년에 이곳에 Planting 되여 지금의 모습으로 자랐다는 것이다.

입구의 왼쪽에 있는 전시관에서는 유적발굴자들에 대한 사진과 설명 그리고 유적당시의 상황을 한눈에 볼수 있는 조감도가 잘 표현되여 있었다. 처음 발굴당시의 Pillar의 맨 위에 있었던 4마리의 사자상의 모습도 보인다.
Monk들의 Memorial Stupa앞에서 기도정진하는 모습도 보여주고 있어 이해 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고, 사자상과 그위에 32개의 Spoke가 새겨진 Wheel은 부처님의 몸에 나타나 있던 32개의 Noble feature를 상징한다고 한다.  Museum에 전시된 부분은 사자상을 중심으로한 윗부분만이고 Pillar는 여섯부분으로 부러져, 그여섯조각을 Sarnarth유적지에 잘 보관하고 있었다.
Ashoka Pilla위에 있었던 사자상을 비롯한 각종 동물들과 연꽃의 의미를 좀 알아야 부처님의 득도의 뜻이 무엇인지를 아는데 도움이 된다는 설명이다.
4마리의사자상 아래에 있는 사자와 말을 표시한 동물들 사이에 있는 또다른  Wheel에는 24개의 Spoke가 있다. 부처님 가르침의 중심사상 즉 24개의 Doctrine을 뜻하는 것이고, 사자상 바로 아래의 Abacus에는 4마리의 사자와 Horse를 비롯한 유용한 동물 4마리씩이 있다. 사이사이에 Wheel이 조각되여 있다. 그위의 4마리 사자상은 부처님께서 터득한 고귀한 진실을 의미한다고했다.  첫째 고통(Suffering), 둘째 고통의 원인( Cause of suffering, 셋째 버릴줄 아는 지혜 즉 Cession, 넷째 고상하게 헤쳐나갈수있는 길.
Dharmara Jika Stupa의 Base가 잘 나타나 있고 그주위에 흩어져 있는 수많은 유적들과 Stupa들의 위치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자리를 옮겨 Mulgandha Kuti 기도원을 원래 모습 그대로 복원시킨 분의 동상과 기도원을 탐방했다.  Ceylon출신의 Simon이 선물로 보내준 것이라는 내용이다.

비문에는 이기도원을 건축한 사람으로, 인도에 불교에 대한 포교에 개척자인 Anagarika Dharmapala를 기념하는 동상이 서있었으며, 그는 1864년 Ceylon, Colombo에서 태어나 1933년 이곳 Sarnath에서 생을 마감했었다는 설명문도 이채롭다.


당시의 부처님께서 좌를 틀고 대중들에게 첫 교리를 설파 했었다는 기도원의 원래 모습을 복제해서 현재 전시중에 있었다. 기도원 안에는 부처님의 좌상이 금빛으로 도금되여 앞쪽 Altar에 모셔져 있었다.

기도원안의 벽에는 부처님이 태어나서 생을 마감하기 까지의 전과정을 벽화로 그려놓은 그림이 원래 색갈 그대로 잘 보존되여 있었다.  부처님의 어머니가 꿈에 현몽하기를 힌코끼리가 나나났었다고 한다.
이벽화는 부처님께서 생을 마감했을 당시의 모습을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죽음이지만 무척 평화로워 보인다.  해탈의 의미, 득도의 의미..... 나는 어쩌면 영원히 깨닫지 못할것이다.
기도원 밖에는 부처님이 다섯 제자들을 상대로 해탈과득도한 내용을 설파하고 있는 장면을 Statue로 만들어 쉽게 인식할수 있도록 했다.
동시에 부처님께서 설파하신 내용이 영어로 설명되여 있었는데, 한가지 놀란것은 이내용을 한글로 돌판에 새겨 그 오른쪽에 전시해 놓은것을 본 것이다.  한국분들이 이곳을 많이 찾는 것으로 이해됐다.


대한민국 비구 합장께서 아마도 이런 돌판을 새겨 인도에 선물함과 동시에 이곳을 방문하는 한국의 불교신도들뿐만 아니고 한국분들의 방문에 도움을 주기위해 세운것으로 이해됐다.


한 monk가 정성드려 제단에 올리는 촛불을 점등하고 있었다.  그옆에는 개가 호위(?)를 하고 있었다.  부처님은, 왕위직을 계승하면서 호위호식할수 있는 모든 기득권을 버리고 중생들의 삶과 다음세상을 위해 할일이 뭔가를 설파하시다가 만 80세에 열반 하셨다고 설명한다. 여기서 부처님의 삶에서 5가지의 특징을 볼수가 있었다. 첫째 좌를 틀고 앉은 자세로 Preachng, 둘째 Meditation정진, 셋째 마침내 깨달음 즉 Enlightment, 넷째 항상 방어하는 자세 즉 Protection, 다섯째 손을 절반쯤 들어 축복, 즉 Blessing을 하셨다고 한다.
인도에서, 이사원을 건설한 분의 염원이 의미하는것 처럼, 불교가 많이 포교되여, 구태에 젖어 꼼짝도 안하고 있는 인도사회를 정화하고, 나눔을 실천하는 사회로 변했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을 가슴속에 새기면서 기도원(Meditating Temple)앞에서 한컷했다.  인도는 변해야 한다.

Thursday, December 03, 2015

아시아 6개국 여행중 만든 동영상 일부.(Vietnam, Burma, Laos, Cambodia, Korea, Okinawa)

Okinawa 여행중, 고래쇼 관람중 일부 동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kHD9N5KGPfw

https://www.youtube.com/watch?v=fS1BvP6cjiA

월남, 사이공 시내의 한복잡한 교차로에서 모든 교통수단이 어우러져 묘기를 부리면서
제각기 제갈길을 용케도 달려가는 서민들의 삶의 일부이다. 신기한것은 사람들이 거의
Honking을 안한다는 것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qqfecTAHecw


루앙푸라방, 라오스의 새벽은 Monks에게 공양하는것으로 하루의 문을 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주민들은 Monks 공양하기위해 새벽에 일어나 흰밥을 지어, 먼저 Monks에게 공양하고 그다음에 식구들이 모여앉아 아침 식사를 하는 아름다운 전통이 수천년 이어지고 있었다.
https://youtu.be/QZ7mPngKEdY

루앙 푸라방에서 목선을 타고 물결을 헤치고 역으로 약 30분 달리면 그곳에 커다란 동굴이 있고, 그안에는 수천개의 불상들이 모셔져 있다.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이어진다.
https://youtu.be/vXO7OmjfwRk

Tour Guide, Jaw는 보기드물게 친절하기도 했지만, 직업의식을 떠나서 인간적으로 서로 정을 나누면서 여행을 즐겼다. 양곤시내에 있는 가장큰 Shwedagon Temple을 관광하는데, 가장 괴로웠던 것은 Temple안은 성역 Area여서 맨발로만 입장이 허용됐는데, 바닥은 햇볕에 달구어져 발바닥이 뜨거워 마치 고문을 당하는 기분이었고, 더 괴롭힌것은 조금만 돌조각이 많이 굴러다녀 잘못 그위를 밟으면 더 괴롭게 한 기억이 새롭다.
https://youtu.be/a14GS6OBv8Q

Bagan, Burmar( Myanmar) 의 평야지대에는 지금도 약 3,000개 이상의 Stupa가 옛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한창 번성할때는 약 10,000 개 이상이 있었다고 했다.  이들의 개념을 이해하면서, 고국에서 어렸을때 각 시골 동네마다 성황당 또는 동네 입구에 수많은 장승들이 세워져 동네의 수호신 역활을 했었던 기억과 교차돼기도 했었다.  이곳 Bagan 에서는 훌륭한 관광자원으로 버마의 외화 벌이에 한몫 단단히 하고 있었다.
https://youtu.be/og5O5n9hNcM


Inle Lake안의 섬에 있는 조그만 동네를 방문했는데, 그곳에서 여인들이 베짜기를 하고 있었는데, 보통의 배틀에서 베짜는 모습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씨줄을 넣어주는 실꾸리그릇이 무척 많았는데, 아마도 무늬를 만들기위해 그렇게 많은 씨줄을 사용했는데, 여인들의 손놀림과 그분들의 계산이 참으로 신기하게 보여지기도 했었다.
https://youtu.be/1J58wFRt5TM

Tuesday, November 10, 2015

아웅산수키:미얀마 "선거 분위기는 자유롭지는 않았지만 이정도면 됐다"로 평가. - 적절한 표현.


이번 선거는 과거처럼 군부에 의해 무시당할 그런 국내적, 국제적 분위기는 아닌것 같다.
지난해 겨울에 미얀마를 관광하면서 느낀 분위기를 직접국민들로 들어 볼수는 없었지만, 우리 부부를 안내했던 Tour Guide들의 설명은 한결 같았다. 

군부정부가 썩었다.  국민들은 이미 등을 돌렸다.  그예로 당시에 내년도 선거(이번 치른선거)를 앞두고 인구 조사를 실시했는데, 전에는 약 9천만명이라고 발표 했었는데, 이번 인구조사에서는 약 7천만명이라고 정부가 발표 했다는 것이었다.  선거에서 개표결과에 그들이 영향을 미칠수 있는 최대 공약수를 만들기위한 포석일것이라는 설명이었었다.

미얀마는 그동안 꼭 닫아놓았던 빗장을 풀고, 세계인들을 받아 들이고 있다.  특히 관광객들이 하루에도 수만명씩 수도 양곤공항을 통해 입국하고 있다.  그만큼 민주주의를 향한 긍정적인 발걸음을 내딛고 있다는 증거로 보고싶다.

미얀마의 주요 명승지를 여행했는데, 여행에 아무런 제약도 받지 않았었고, 무척 자유로웠었다.
내용을 잘 모르는 관광객의 신분에서 볼때, 눈에 보이는 국가권력의 제한은 느끼지 못했었다.
국민들이 전체적으로 순진하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었고, 모든 국민들은 "아웅산수키" 여사를 잘 기억하고 있었던 기억이 지금도 있다.

내가 알기로는 그녀의 부친은 영국시민이었던것으로 기억하고 있어, 이점이 미얀마 헌법에 저촉되여 대통령이 될 자격이 부여되지 않는것으로 알고있다.

http://lifemeansgo.blogspot.ca/2014/12/day-25myanmarshwedagon-pagoda-chauk.html





꼭Image copyright

Myanmar's Aung San Suu Kyi: NLD has won most seats in legisla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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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anmar opposition leader Aung San Suu Kyi waves to a small crowd and the media after delivering a speech from the balcony of the National League of Democracy (NLD) headquarters in Yangon on 9 November 2015.Image copyrightAFP
Image captionMs Suu Kyi's National League for Democracy (NLD) has won most of the seats declared so far

역사적 선거가 치러지면서 그녀가 기자들과 만난 첫번째 인터뷰에서 미얀마의 야당당수 아웅산수키 여사는 이번선거에서 그녀의 당이 대승을 거두었다고 설명했다.
각 투표장의 개표결과는 그녀가 이끄는 NLD(National League for Democracy)당이 압도적으로 승리하고 있지만, 정확한 선거결과는 앞으로 수일동안 발표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BBC의 Fergal Keane기자와의 독점 인터뷰에서 Suu Kyi 여사는 미얀마 국민들의 승리라고 축하의 말을 전했다.
이번 선거는 지난 25년만에 치러진 선거치고는 매우 민주적으로 진행됐었다고 한다. 
그녀는 이번 선거를 평하면서, 공정한 선거는 아니였지만 대부분 자유의사데로 투표한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미얀마 헌법에 따라 그녀는 대통령이 될수없다.  그러나 그녀는 말하기를 정당의 당수로서 대통령에 합당한 인물을 찾을것이라고 설명했다.
군부의 응원을 받고있는 USDP( Union Solidarity Development Party)당은 지난 2011년, 미얀마가 수십년간 군부의 통치로 부터 민간정부로 정권을 이양할때 당시 군부의 지원을 받아 정권을 잡고 통치해 오늘에 이르렀다.
이번 선거결과로 대통령 선출은 오는 2월까지는 선출될것 같지 않으며, 어쩌면 상황이 바뀌게 된다면 내년중 언제 선출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http://www.bbc.com/news/world-asia-34773858

Friday, December 26, 2014

Day 23,Myanmar,Old Bagan, Shwezigon Zedi Pagoda,Shwesandow teomple 에서 일몰(11월20일 목요일 오후)

Bagan지역의 Temple들은 매우 정교한 구조물인것 같았다.  Guide의 설명에 따르면 Myanmar에 있는 대부분의 사찰은 이곳의 건축술을 많이 Copy했다고 한다.  구조가 매우 단단해 보인다.
또한 일반 상가나 건축물도 거의가 단층으로 제한되여 있는것 같았는데, 이는 당국의 건축제한이 있어서 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유적탐방하는데 도움을 많이 주는것 같아보였다ㅏ.







다시 자동차를 달려 이번에는 Shezigone  Zedi Pagoda 향했다.  이곳에서만 볼수있는 그들이 제작한 조그만 추럭을 볼수 있었다. 조그만 경운기에 사용되는 엔진을 올려놓은, 옛날 장항제련소의 높은 굴뚝에서 뿜어져 나왔던 검은 연기를 연상케하는, Wrecking에 버려도 아무도 쳐다보지 않을 그런 낡은 차였지만, 이곳에서는 아주 값지고 소중한 운송수단인것 같았다.


Shwezigon Zedi Pagoda는 사암(Sand stone)으로 건축된 Myanmar최초의 건축물로, Myanmar에 소재하는 많은 Pagoda들은 이 Pagoda 를 Copy해서 만든 것들이라고 한다.  이Pagoda에는 Buddha 생전의 이빨과(Tooth)과 앞쪽뼈(Front Bone)이 안치되여 있다고 설명한다.  그대로 다시 믿을수 밖에.....한번도 현물을 보지 못하면서.
여러 형태의 Pagoda와 Stupar들의 정교한 건축술은 볼수록 경탄을 금할길 없었다.  규모 또한 엄청나서,  북방불교국인 한국의 사찰들과 내머리속에서는 자주 비교돼곤 했다.
Temple 윗부분을 제외한 기본 건축물만 보았을때는, 엉뚱한 생각일수도 있는, 모스크바의 크레물린 궁전을 연상케 하고도 남았다.  역사적 유물이지만, 현재도 그 불심과 풍습은 아주 성대히 이곳 주민들에 의해 이어지고 있다는점이다.
Dadu Zedi Pagoda에는 부처님의 성스러운 Relic들이 모셔져 있는 곳이고,
Dehamma Zedi 에는 부처님의 가르침의 기록들이 보관되여 있고,
Paribawga Zedi에는 부처님께서 사용하셨던 Cane과 허리춤에 찼던 Belt, 그리고 우산이 보관되여 있다고 했다.
Udidha Zedi에는 부처님의 형상을 닮은 Statue가 모셔져 있다는 설명이다.



이곳의 불상은 11세기경에 안치된것으로, 당시의 시대상을 대변하고 있는 증거로, 많은 불상들이 부처님의 앉아 계시는 모습을 나타내고 있으나, 부처님의 무릎아래까지 보여주는 Statue 가 특징이라고 한다.


Gubyaukgyi Temple에서는 사진촬영이 금지돼여 있어 그점이 아쉬웠었다. 천장과 벽에는 규모가 큰 Mural들이 아름답게 새겨져 있었고, 이 Temple은 13세기경에 건축됐었다고 한다.
1975년도의 지진때 많이 파괴되여 다시 일부가 재건축됐고, Paint도 새로 했다고 한다.

이곳은 Saralgi Gate 불리는, Old Bagan City Gate로, 외곽에서 City로 들어오는 12개의 통로중 하나로 사용됐었다고 한다. 길양쪽에 모셔진 상징물은 외부에서 들어오는 적들을 신통하게도 물리치는 역활을 했었다고 한다.  New Bagan으로 주민들이 옮겨가기전까지는 이곳에 약 1,200가구, 약 7,000 여명의 주민들이 거주 했었다고 한다.




도서관으로 사용됐던, Pitakat Taik는 당시의 왕이 직접 건립했던 건물이라고 하며, 건물의 구조는 정사각형으로 한면의 길이가 51 Feet라고한다.  구조는 Temple의 형상으로 중앙에 건물이 있고 3개의 Corridor(Path)가 동쪽에 위치해 있고, 각기 다른 벽에는 3개의 구멍같은 창문도 설치되여 있었다고 적혀 있었다.

Thatbyinnyu Phaya Temple은 1994년도까지 관람객들에게 개방되여 사찰의 꼭대기까지 올라갈수 있었으나 지금은 봉쇄되여 접근이 안됐다.  Bagan지역의 Temple중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이라는 설명이다.

이부처님상은 Teak Tree로 조각하여 금으로 도금 했는데, 19세기 이전에 만들어져 다리가 없는 좌상의 모습이라고 설명해준다.
아름다운 Mural로 보였는데, 관리소흘로 많이 훼손되여 보기에도 안타까웠다.







이름도 모르는 수많은 Temple들이 시선을 멈추게 하고 있어, 멍청히 쳐다보기가 다반사였다.



Shwe San Daw Pagoda에서 바라보는 Sunset은 일품이라고 한다.  그래서 인지 많은 관람객들이, 아직도 Sunset까지는 시간이 많이 남아 있었는데 나와 Lunar가 도착했을땐 벌써 모여들기 시작하고 있었다. 동,서,남,북 사방에서 꼭대기로 올라갈수 있는 계단이 있었는데, 해가 지는쪽의 앞계단에는 인산인해를 이루어 우린 그반대편 계단을 이용하여 오르기로 하고 발길을 옮겼다.


가파른 계단을 Guard Rail에 의지하면서 조심스럽게 한계단 한계단 올라간다.  관람객들중에서 우리 부부가 제일 연장자 같아 보였다.  세월이 이렇게도 빨리 흘러갔다는것을 이들 관람객들을 보면서 실감한다.
힘들게 올라 Corridor를 따라 앞쪽으로 이동하여 모서리 한곳에 자리를 하고 Sunset을 기다리면서 주위경관을 둘러본다.  이렇게 아름다운 푸른 숲속에 뽀쪽뽀쪽 솟아 있는 Pagoda와 Stupar 를 보는 경이로움을 이곳 말고 또 어디서 볼수 있단 말인가. 세계의 정치무대에서 정직한척, 국민들을 위한척 양면의 얼굴을 소유한 자들이 한달간만  이곳에서 살아본다면 세계는 태평성대의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로 꽉찰텐데..... 갑자기 엉뚱한 생각이 여기에 미친다.  특히 Kim's Regime과 Castro Regime에게 강하게 권하고 싶은 생각이다.


이렇게 아름다운 한폭의 그림같은 유적들을 보면서, 이곳에 거주하고 있던 주민들에게 퇴거 명령을 내렸던 그이유를 충분히 알것 같다.  다만 주민들의 고통을 덜어주려는 당국의 배려가
미흡했었다는 Guide의 설명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은점이 안타깝지만.  이제 이곳을 떠나면 내생전에는 올 기회는 없을 것이다.  눈과 머리속에 많이 기억 해주어야 한다.
우리 부부가 자리잡은 앞쪽면의 모서리에서 내려다 보이는 Parking장에는 많은 차량들이 보인다. 그너머로는 뽀쪽뽀쪽한 탑들이 나타나고 그뒤쪽으로는 병풍처럼 둘러쳐진 얕은 산들이 Panorama를 이루고 있다.  이들 Stupa들은 옛날 부귀영화를 누릴때의 버마인들의 선조들이 그얼마나 신앙심이 깊었었나를 현실감있게 보여 주고 있는것 같았다.
맥을 같이하는 고국의 무속신앙의 상징이었던 '서낭당'은 지금은 흔적이 거의 없다. 오직 역사책에서나 간신히 구경할수 있을 정도인데, 이곳은 그대로 보존하고 후세에 전해주는 지혜를 갖고 있는 버마사람들이 우러러 보인다.  이러한 역사적 유물을 보존하기위해 오히려 인근 주민들을 다른곳으로 이전까지 시켰다는, Guide의 설명은 시사하는바가 많았다.
발아래를 내려다 보면 현기증이 일어날 정도로 높은 곳에서 젊은 친구들은 돌벽위에 걸터앉아 있는 모습에서 내가 많은 시간을 살아왔구나라는 세월의 빠른 흐름을 깊이 느낀다.
앞서 설명한 3개의 창문같은 형상이 유독히도 눈길을 끈다.


Jaw와 함께 모델이 되여 남겨진 이흔적을 이친구는 얼마나 기억하게될까?  우리가 지나가면 이친구는 또다른, 나와 같은 여행객들 맞이 할것이가 때문이다.  건강하게 잘 살기를 그에게 기원해주었다.


이들은 관람객들을 모시고온 운전수들이 대부분이다.  우리가 타고온 차량은 오른쪽에서 두번째에 자리하고있다.  나의 운전수도 그들과 어울려 삶의 얘기를 나누고 있을 것이다.






24시간마다 벌어지는 Sunset이지만, 느끼는 감정은 사뭇 다르다.  구경하고 있는 나를 포함한 관광객들에게 준엄한 계시를 주는것 같다.  세상을 어지럽히지 말고,  이곳에서 살았던 인간 선배들처럼 정직하고, 자연에 순응하면서 소속된 사회에 많은 봉사를 하라고 말이다.

마치 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린 열매처럼, 많은 관광객들이 제멋데로 자리를 하고 Sunset을 감상하고 있다.  언젠가는 여기 있는 모두가 Sunset처럼 역사속으로 흘러 들어갈 것이다.
Sunset감상을 마치고 내려오는 사람들의 모습을 Lunar가 카메라에 담기에 여념이 없다.  우린 올라올때처럼 가장 한가한 뒷쪽 계단을 이용하여 내려왔기에 이렇게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

모두가 제갈길을 향해 모두가 떠나간 Pagoda의 애처로운 모습에서 오랜세월동안 버티고 오늘까지 지켜온 모습이 늙었다는 것을 깊이 느끼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