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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esday, January 19, 2016

India tour, Jaisalmer Fort, Jain Temples,Havelis,Bada Bagh 탐방,일곱째날(Jan.16th,2016)


식사시간은 고역중의 하나가 됐다.  모든 음식은 인도특유의 향이 짙어, Digest하기가 무척 힘들고, 우선 냄새에서 질식시키는것 같다. 그래도 Breakfast는 한결 낳은 편이다. 내가 음식을 Choose 할수 있기 때문이다. 저녁은 미리 그들이 만들어주는 음식을 먹어야 하기 때문에 더 힘들다. 그래도 Energy를 얻기위해서는 먹어 두어야 하기 때문에 맛위주보다는 살아야한다는 본능으로 끼니를 때운다.
 인도에는 이렇게 아름다운 공작새들이 이곳 지방에서는 참 많이 보인다. 전부 Wild Peacock다. 과연 동물들이 서식하기에는 천국이라고 해야 할까?

인도는 법적으로는 남녀 평등이라고 하지만, 여성들이 사회에서 활동하는것을 거의 보기 힘들다. 예를 들면 식당에서 써비하는 사라들은 100%남자들로 빨아입지도 않는 평상복을 입고, 어떤이는 코수염까지 길러보기 흉하기 이를데 없는, 아직 써비스에 대한 개념이 전연 없는 사회적 분위기임을 느낄수 있었으며, 같은 이치로 초창기 미국의 선교사들이 한국에 왔을때 상투를 틀고 우리식 관습데로 그들에게 맛있다고 매운 음식들을 들이 대었을때 거절하지도 못하고 견디어냈을 당시를 상상해 보는것은 이번 인도여행을 하면서 쉽게 비교할수 있었다. 세계각국에서 인도로 여행객들이 모여드는데, 굳이 향이 짙은 그들의 음식을 고집하는 이유가 선뜻 이해돼지 않았다. 

Driver Maenoj가 약속시간에 우리를 데릴러 Camp에 와서, 바로 Jaisalmer시내로 달렸다. 오늘은 시내 관광이 대부분이란다.
목적지 Jaisal Fort에 도착하니, Tour Guide, Graj-U가 우릴 기다리고 있다가 정중히 인사를 건넨다. 이친구역시 키가 크고 Skinny다.

Jaisal Fort는 외부에서 봐도 언덕에 거창하게 성벽처럼 노란돌로 집을 지어 마치 황금으로 집을 지어놓은것 같은 색갈이어서, 일명 Golden City라고 불린다고 한다. Rajasthan지역에서 가장 큰 사막도시지만, 인구는 약 6여명밖에 안되며, 주로 관광산업에 의존하여 주민들이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관광시즌역시 여름에는 섭씨 47도에서 50도까지 올라가는 너무나 뜨거운 곳이라서, 겨울이 시작되는 10월중순경부터 2월말까지 약 4개월이 관광 시즌의 Peak라고 설명한다.



Jaisal도시는 항상 물이 부족하여 어려움을 겪어오곤 했었는데, 1965년에 약 10킬로 떨어진곳에 큰 우물을 파서 그곳으로 부터 물을 공급받아 왔으나, 그전에는 도시안에 있는 Gadi Saga Lake 물을 이용했었다고 한다. 오후에 Lake탐방을 할계획이라고 했다.  그후 1993년에 인도중앙정부와 Rajasthan지방정부가 공동으로 Canal을 만들어 물을 공급받아오고 있어 한결 쉬워졌다는 설명이다.

Jaisal Fort는 1156년도에 당시의 왕 Jaisal이 건축하기 시작하였으며 현재 이성안에는 약 5천명의 주민들이 소유권을 인정받아 각자 갖고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거주할수 있는 소유권은 자손에게 상속하는게 전통이어서 한번 소유한 건축물은 타인에게 넘어가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고 한다. 규모가 엄청 커 보인다.

이성(fort)에는 4개의 Gate가 있는데, 첫번째문은 Akbaybol로 불리며, 둘째문은 Sury 로, 태양을 뜻하고, 셋째문은 Ganesh Pol로 Good Luck God을 의미한다고 했다. 4번째문은 Hawa Pol로 바람을 뜻한다고 설명한다. 어떻게 그런 의미를 부쳤는지는 설명을 하지만 선뜻이해가 안됐다.
여기서 꼭 언급해야할 사항이 있다.  

다른 Havelis 또는 Fort방문때도 상황은 같았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인류유산관리에 소흘하고 있다는점과, 그들이 신성시하는 소떼를 비롯한 개, 심지어는 멧돼지들까지 거리에 배설물을 쏟아내, 자칫 한눈팔면서 걷다가는 그위를 밟아 신발이 엉망이 되는것을 양반이고 자칫 배설물에 미끄럼을 탈수 있는 낭패를 보기십상이라는 점이다. 



이성의 주인, Jaisal왕의 후손, Brajraj Singh은  지금은 큰도시로 나가 사업을 하기에 이곳에 없다고 하며, 다만 수입만 챙긴다고 했다. 성안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37%가 베지테리안, 63%가 Non Vegetarian이라고 이러한 비율은 인도사람들이 그만큼 힌두의 종교적 의식에 따라 육식을 하지 않기 때문이며, Guide, Graj-U역시 자랑스럽게 베지테리안이라고 우리를 상기시킨다.

4개의 대문을 다통과한후 처음 목격된 곳은 Main Square였다. Gate을 중심으로 오른쪽 성은 옛날 Queen이 거주했던 곳으로, 전통에 따라 창문은 촘촘하게 장식된 조그만 공간만 있을뿐으로 밖에서 안을 들여다 볼수 없는 구조였고, 그왼쪽의 건물은 왕이 거주했던곳이라는데, 창문은 활짝 열릴수 있는 구조로 되여 있었다.  왕이 베란다로 나와 광장에 모인 군중들을 상대로 Conference를 했었다고 설명이다.  건축물에 사용된 돌은 전부 노란색으로 벽과 창문으로 사용된 돌에 새겨진 문양은 감탄을 연발하지 않을수 없을만큼, 상상을 추월한 작품들이었다.  입구에서 녹음기에 설명된 내용을 Earphone을 통해 들으면서 30개의 각방을 돌아 보았다.  옛날 왕과 신하들이 호화판 생활을 했을거라는 상상은 어렵지 않았다.  사용된 돌들은 지금처럼 고착시키기위해 그사이에 시멘트같은것은 전연 사용돼지 않았고, 정교하게 깍아서 이음새에 빈틈이 없도록 했다는 것이다.



Jaisal fort 바로 옆에 있는 7개의 Jain Temple 을 탐방했는데, 그중에서 제일 잘 형성된 Temple 하나만 보았다. 일명 Half Moon을 뜻한다고도 하는데 그래서 Statue의 중앙에 반달모양이 새겨져있다.  Jain 사원은 원래 힌두교에서 파생된 종교로, 이세상의 모든 생명체는 God으로 섬기며, 살생을 하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이 베지테리안 들이란다.  

그들이 섬기는 사람신(Man God)은 3가지로 분류되는데, 첫째는 Generator로 Braman신분이 Creator로서의 능력을 부여 받았던 최고의 신분, 그다음이 Operator로 Sishinu, 셋째가 Destroyer로 Shiva로 분류된다고 설명이다.  인도사람들은 신(God)도 참 잘만들어 내는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14세기에서 16세기사이로 약 200년에 걸쳐 완성된 Temple이라고 했다.

그들은 Sunset전에 저녁을 마치고, 해가 진후에는 먹는것과 활동을 가능하면 자제 했다는데, 사람이 그시간에 활동을 하게되면 힘없는 생명체가 살아가는데 지장을 준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모기가 해가 진후에 나타나는데 이것마져도 그들은 생명체라 여겨 죽인것을 살생으로 여겼단다.




Patwa Havelis의 방문에서 Patwa왕은 5채의 Havelis를 건축했는데, 자그만치 60년에 걸쳐 완성했으며, 5명의 아들에게 한채씩 나눠주기위함이었다고 한다.  Havelis는 일명 Wind House라고도 불리는데, Mandawa탐방시에도 설명이 있었지만, 사막지역에서 집안은 더위에 무척 힘들었었기에 건물의 각도에 맟추어 창문을 대칭으로 만들어서 앞뒤 좌우의 문을 열면 바람이 잘 통풍되여 열을 식히는 효과가 컸었기에 Wind house라고도 불리고, 또 규모가 크기 때문에 Mension이라고도 불린다는 설명이다.



그중에서 첫번째 집은 현재는 Museum으로 바뀌어 일반인들에게 공개돼고 있었다.  커다란 한개의 방에서는 각종 사무기기가 진열되여 있었고, 최초의 선풍기도 보였는데, 이방은 Patwa 왕의 금전출납을 맡았던 Accountant가 사용했었다고 한다.  이들은 돈이 많았기에 당시에 새로운 물건이 만들어지면 거침없이 구입해서 사용했었는데, 그증거가 선풍기, 타자기등등 문명의 이기들이었다.  사무를 보면서 Opium 도 마음껏 피웠었다는 흔적의 파이프가 같이 진열되여 있었다.  여성들의 코를 Pierce해서 장신구를 부착한것은 그여인은 결혼하여 임자가 있다는 뜻으로 부착하기 시작하고, 또 많은 자손을 생산하게하는 계기를 만들었다고한다.  지금은 여성의 필수품처럼 됐다는 설명이다.



당시에 사용했었던 무게를 측정하는 저울추(Weight), 손님이 방문했을때 서로 식사를 나누는 방에는 다리가 매우짧은 적은 상이 있었고, 상위에 올려진 음식은 God에 바치는 뜻으로, 그래서 바닥에 놓치 않았다는 설명이다. 부엌에서는 여러 주방기구가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맷돌은 우리 조상님들이 사용했던 것과 또 같았다. 옛날 신라시대의 혜초스님이 인도를 방문했을때 멧돌문화도 전수해왔거나 아니면 반대로 우리멧돌문화를 전주해 주지 않았을까?라는 엉뚱한 상상도 해 봤다. 모양이 거의 꼭 같았기 때문이다.

Turban이 진열된 방에서는 수많은 종류의 터반이 진열되여 있었고, 색갈도 천연색으로 다양했다. 사용하게된 원인이 흥미로웠다. 더운지방이기에 머리에 두름으로서 직사광선을 피할수 있었고, 어떤 터반은 더 크게 보였는데, 낙타마부들이 주로 사용했는데, 겨울철이 되면 낙타는 mating season을 맞이하는데, 이때는 성질이 난폭해져 때로는 마부의 머리를 통채로 입안에 넣고 Chewing하는 사고도 발생하기에 이런 공격을 당했을때 살아남기위해 터반을 더 두껍게 했다는 설명이다. 또다른 뜻은 상대방을 존경하는 의미에서, 신분과 연령에 따라 터반은 구분됐었다고 한다. 사회적 지위를 나타내는 바로미터였었단다. 또가족중 호주가 사망하면 그다음을 이어주는 장자가 새로운 가족의 수장임을 나타내는 터반, 그들 언어로는 Pagri라고 한다. 사망한 수장과 새로운 대표자를 비롯한 가족의 결속력을 표시하는 뜻도 있다고 했다.



또 한남자가 터반을 두손으로 다른 남자의 발아래에 바치면 항복을 뜻한다고했다. 남자가 터반을 손에 들고 여성에게 건네주면 그여성의 남편이 세상을 떳다는 뜻이 담겨 있는 행위라고 한다.  참으로 터반의 사용처는 다양했었던것 같다.  그풍습은 현재도 진행형이다.

마지막으로 방문한 Havelis는 당시의 왕을 지근에서 보좌했던 Prime Minister가 거주했던 사저로 지금은 7대손이 거주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런데 한채의 Havelis를 짖는데 두형제 Architecture가 똑같이 돌로 건축된 외벽의 문양을 맡아 장식했는데, 거의 비슷하게 보이나, 자세히 보면 조금씩 서로 다르게 특색을 살려 정교함을 잘 나내고 있어 감탄하지 않을수 없었다.



빌딩의 앞에는 코끼리상이 별도로 축성되여 있었는데, 이렇게 코끼리상이 있는것은 왕이나 왕을 보좌하는 특권층이 거주하고 있다는 상징물이라고 했다. 코끼리상이 있는 바로 아래벽에도 코끼리 문양이 조각되여 있는데 왼쪽의 조각은 문양이 앞쪽으로 튀어나와 있고, 바른쪽의 것은 코끼리 문양이 안쪽으로 새겨져 있었다.  두건축가 형제가 선의의 경쟁을 벌여 완성한 유일한 Havelis란다.

지금은 법으로 금지되여 신분의 과시가 거의 없어졌지만, 옛날에는 상하 구분이 엄격하였다고 하는데, Guide의 설명에 의하면, 상위계급인 Braman직위는 최고의 상위직으로 탄생됐으며, 그아래 계급인 Kshtriya는 Braman 계급의 Arm을 이용하여 탄생한 계급이고, 그아래 계급은 Vaishya 계급으로 Braman사람의 Stomach를 통해서 탄생한 삶이고, 맨마지막 하위 계급은 Sudra로 일명 untouchable로도 불렸으며, 발바닥을 통해 탄생한 삶이라고 해서 천대를 많이 받았었다고 한다.

다음 달려간곳은 Bada Bagh Cenotaphs(round shape of Umbrella type structure)를 탐방했다.  들어서는 왼쪽으로는 계곡사이에 커다란 정원이 있었다고 설명이다. 지금은 나무들만 무성하게 자라고 있는 버려진 곳이다. 이곳은 사막지역이기에 땅이 매말라 물의 보관이 쉽지 않아 왕은 이계곡에 정원을 만들었는데, 비가 오면 이계곡으로 물이 고여 오래 저장할수 있는 수로시설을 잘 갖추어 나무와 풀들이 자랄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16세기경부터 왕들은 이정원에서 picnic을 자주 갖었었다고 한다.  오른쪽으로는 우산모양의 둥근 Monuments가 즐비하게 세워져 있었다. 이역시 노란색갈의 돌들을 이용했다.  이 Monuments는 선대왕이 승하하면 후손왕들이 선대왕들을 기억하기위해 건축하기 시작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는데, 관리가 안돼 많이 파손되여 보는이들을 안타깝게 했다. 아주 정교하게 제각기 다른 형태로 잘 만들어져 있었는데, 이러한 의식은 현재도 진행형이라고 하는데, 왕들의 자손들은 전부 큰 도시로 나가 여유있는 삶을 즐기고 있다고 설명한다. 

Gadi Sagar Lake역시 왕족들이 뱃놀이를 즐기기위해 Half manmade호수로, Gadisar Nokayan(Boating place)로 불린다고 한다. 호수에는 관광객을 위한 뱃놀이 배들이 떠 있었으나 즐기는 사람은 없었다. 주위환경이 너무나 더러워 물이 썩은이유때문인지 악취가 많이 나는곳에서 감히 누가 뱃놀이를 하겠는가.  호수앞에 커다란 Gate가 있다. 이문은 옛날에 창녀들이 고위층들을 상대로 해서 돈을 벌어 세웠는데, 왕이 이문을 통과하여 뱃놀이를 하게되자 더러운 창녀들의 돈으로 세운 Gate를 통해 왕이 들락거린다는 사람들의 비난이 잦아졌다.  이에 왕은 한꾀를 내어, 그문을 Temple로 변경하여 부르게 하고, 그옆에 아주 조그만 Gate를 새로 건축하여 그곳을 이용해서 뱃놀이를 하러 갔었기에 더이상은 커다른 Gate를 이용하지 않았기에 비난을 면하면서 뱃놀이를 즐길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호수위에는 두개의 돔형 정각이 있고, 그뒤로는 커다란 창고같은 집이 물위에 떠 있었는데 그곳에서는 여자들이 뱃놀이할때 이용했었다는 설명이다.




이호수는 사막지역에 있었기에 항상 물이 모자랐다. Canal을 만들어 물을 공급했었으나 지금은 그나마 건기여서 물공급이 거의 없다시피 하여 수위가 많이 줄었다는 설명이다. 일년 강우량이 겨우 12센티미터라고 하니…. 홍수가 난기록이 최근에 두번 있었는데 한번은 2006년도에 하룻동안에 70센티미터의 폭우가 쏫아진적이 있었고, 2015년 즉 작년에 40-50센티미터의 폭우를 맞은적이 있었다고 한다.

Wednesday, January 13, 2016

India Tour, 사막지역의 Silk Road에 있는 Mandawa의 Havelis(Mension)역사적 탐방.

어제보다 더 일찍 일어나 떠날 준비를 서둘렀다.  5시간 이상을 달려서 다음 목적지인 Mandawa로 가기위해서다. Delhi구경은 관광객으로서 볼곳은 보았기에 아쉽지만 떠나야 한다.
혼잡스럽고, 거리는 24시간 차량, 사람, 경적소리 등등 혼잡함이 기억에 오래 남을것 같다.
Check out은 간단했다. Mini Bar에 손을 댄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거리로 봐서는 겨우 250킬로정도인데, 도로사정이 안좋아서 시간이 오래 걸리는것 같다. 휴식센터에 들리는데, 입구에서 통제를 한다. 왜 할까? 뭘조사한다고? 아마도 계급사회의 못된 의식표현의 잔재 아닐까 생각됐다.


 외곽으로 나왔다고 해서 도로가 한가한것은 없었다. 오히려 더 위험을 안은 Driver의 운전은 완전 곡예를 한다고 해도 수긍이 갈것 같은 수준이었다. 도로는 캐나다의 Local Highway, 옛날 한국의 국도 수준으로 양방향 1차선으로, 좀 과장하면 내길, 남의 길이 없이 반대편에서 차가 와도 막무가내고 달려가면, 거꾸로 반대편 차량이 비껴서는 촌극도 비일비재다.  나도 모르게 발을 뻗쳐 Brake Pedal을 밟는 본능이 일어나곤 했었다. 차선(Lane)은 있지만 지켜지는것은 Delhi에서나 여기 외곽에서나 100 % 없다.  밀고 들어가는자가 승자(?)다.
먼지 구덩이속의 길가 노점상들인데, 이러한 전경은 끝없이 이어진다.  인도가 인구가 많아서일까?

점심시간이 되여 들린곳은, 여행객들이 자주찾는 식당이었는데, 붉은벽돌 밖으로는 먼지가 계속 일어나는곳인데, 더 기가 막히는것은 야외에서 식사를 하게 된다는것이다.  도저히 점심을 할 자신이 없어, 아직 식사해야할 정도로 배고프지 않으니 Skip 하겠다고 Driver에게 너는 먹고싶으면 우리가 차에서 기다리겠다고 그순간을 넘겼다.  약 10분정도만 기다려 달라고 한다.
그때 관광뻐스한대가 들어오는데, 아마도 French인들 같았다. 12명정도가 내리더니 안내자를 따라 식당으로 들어가 식사를 하는것 같았다.  그들도 괴로웠을 것이지만, 단체라서 그냥 식사를 하는것이 보였다.  만약에 위생관리가 잘못되면 여행은 괴로움속에서 진행될것이 두려워 먼저 피해야하는 어려움이 항상 수반한다.  차안에서 준비해간 Snack으로 점심은 해결.
우리가 선택한 차인데, 당시에 SuV와 지금 보이는 승용차를 고르는 선택권을 주었는데 적은 차를 선택하기를 잘한것 같았다. 도로에서의 상황이 적은 차가 더 재빨리 미꾸라지처럼 잘 움직일수 있었기 때문이었고, 큰차라고 해서 더 빨리 달릴수도 없는 상황이었을 알았기 때문이다.  식당에는 7명이상의 Waiter가 시중을 든다고 하지만, 여자는 없고, 전부 젊은 사내들인데 입은옷은 더럽기 그지 없다. Service를 한다는 개념자체가 없는 분위기였었다.  Delhi에서도 상황은 똑 같았었다.  변소 들어가는데도 napkin한장 들고 서있다가 건네주고 돈을 달라는 그들이 생활습관이다.
바로 식당뒤에는 벽돌공장이 있었다. 기다리는 시간에 잠깐 그곳을 둘러 볼려고 차에서 나왔는데 어느새 식당종업원중 한명이 나를 동행한다. 갖구어낸 벽돌을 조그만 Cart에 실고와서 보관하느라 쌓는 모습이 기계적이다. 두장씩 들고 던지는데 정확이 제자리로 찾아 떨어진다.
그옆에서는 진흙을 이용하여 벽돌을 찍어내고 있다.  거의 60여년만에 처음 이광경을 다시 본다.  고국에서 학교다닐때 매일지나치는 벽돌공장에서 많이 보았던 그방식인데 다른게 있다면 이들은 쪼그리고 앉아서 찍는데, 그때기억은 작업대위에서 찍어냈던 기억이다.

Saw dust를 벽돌화덕에 불쏘시개로 사용하는것 같았는데, 트랙터의 Shovel을 이용하여 옮기는데 먼지가 작난이 아니다. 이들 먼지가 식당으로 날아가는데... 길가에 있는 식당을 중심으로 앞뒤 좌우로 벽돌공장이다.  왜 그중앙에 식당이 들어서 있었을까?
식당 종업원이 나와 같이 벽돌공장 동행을 하고 돈을 요구했다.  써비스를 받아서가 아니고 그들의 가난함을 그냥 지나칠수 없어 적선하는셈 치고 조금 주었다. 사진도 찍었다.  이복장이 그대로 비교적 깨끗한것으로 여기는것 같은데, 어느 관광객이 이젊은이를 식당 종업원이라 믿겠는가?


외곽으로 나오니 낙타을 이용한 짐차가 무척 많이 눈에 띈다.  차창속에서 스치는 농장지역으로 보이는 모든곳들도 풀은 보이지 않고 Barren land처럼 붉은 흙이고 나무들뿐이었는데 지금 지나고 있는 이지역 Rajasthan 지역은 사막지역의 특성이 있는것을 알수 있었다.  그래서 농장도 농작물은 보이지 않았고,  사막에서 서식하는 낙타들이 많다는것을 터득해 본다.
가득 매달려 가는 차량을 보는것은 매우흔하다. 이적은 차에 적어도 20여명 이상이 짐짝이 되여 있을것이라는 Driver의 설명에서, 인도인들의 현주소를 볼수 있었다.  자연스런 사회생활이지만 나의 눈에는 걱정투성이다. 만약에 떨어지면....
예정된 시간보다 약 1시간늦게 호텔에 도착했는데 그때가 오후 2시30분 경이다.  폐허가된 동네 고삿길을 구비구비 돌아 도착한 호텔입구는 나를 실망시켰다. 도저히 외관상으로 믿어지지 않았기때문이다. 차가 정차하자 입구에서 우리를 환영한다는 표시로 한친구가 북을 힘차게 두드려 대고 한친구는 차에 달려와 짐내리는것을 도와준다.

과연 호텔이 존재할 구역으로 누가 생각할 것인가. 그들은 천연덕 스럽고, Driver는 Check in 끝내고 나면 약 15분쯤 걸린텐데 그때 다시 오겠다고 인사를 한다.  멀리로는 인도에서 신으로 모셔지는 소들이 보이고, 차옆에는 시간을 죽이고 있는 젊은 사내들이 우리를 주시하고 있다.


안으로 들어서면서 천장에 선명하게 보이는 Mural이 나를 놀라게 했다. 중세기때 아랍인들의 거상들이 장사를 하는것으로 묘사되는 그림들이었기 때문이다.
'자발라'라고 자기를 소개한 이친구가 Check in을 하는데, 여권부터 비자까지 전부 copy를 뜬다. IT가 발달됐다는 한국이 연상될 정도로 인터넷은 토론토와 다를게 하나도 없었다.  이친구는 비교적 깨끗한 정장이다.  유창한 영어에 무척 Polite해 보였다.  이친구가 내가 묶을 방과 식당, Spa를 비롯한 모든 시설에 대한 설명이 있었는데, 전부가 유료라고 한다.  건물 전체가 벽화로 아주 정교하고 아름다웠다.  이집은 약 130년전쯤에 건축됐었는데, 당시에 거주했던 주인은 거상이었는데, 교통의 발달과 교역의 변화에 빠르게 대처하여 대도시인 캘커타로 옮겨가면서 비어 있었는데, 2012년도에 Delhi의 돈많은 사람이 구입하여 호텔로 개조한후 오늘에 이르러 "당신같은 귀한 손님을 맞이하게 됐다"라고 너스레도 떨어댄다.

나와 Lunar가 묶을 방입구이다. Lunar가 짐을 정리하고 나오는데 예상외로 만족한 표정이다. 겉에서 볼때는 문은 투박하기가 옛날 시골집 대문이상인데, 안에서는 궁전같이 넓고 내장이 전부 Marble로 꾸며져 있었고, 침대 또한 6명이 딩굴어 잠을 잘수 있을 정도의 Maximum King Size였다.  거물을 떠받치고 있는 기둥은 전부 돌기둥이다.

약 9킬로를 달려 오늘 이곳까지 달려온 목적이 있는  Havelis(Mension) 차를 달린다.  가는곳의 길거리에는 사진에서 보는 상인들이 먹거리를 만들어 팔고 있는게 많이 보이지만 ..... 이상인은 쌀을 이용한 튀김을 만들고 있는데 벌들이 주위에 많이 날고 있는것으로 보아 단맛이 많은것 같았다.  그앞쪽으로는 신성시되는 소들이 길거리를 막고, 지나가는 차를 막고  서 있지만 아무도 개의치 않고 비껴 가기를 기다리고 있을뿐이다.



드디어 Mension에 도착했다. 다른 관광객으로 보이는 노부부가 사진을 찍고 있다.  Barren Land인 이곳에 이러한 웅장한 건물들이, 그것도 85채가 이동네에 있다는 것이다. 현재 이건물의 70%는 페허인채로 비어있고, 15%는 이곳에 이건물을 관리하는 Care-taker들이 살고있고, 나머지 15%는 건물의 소유주들이 살고 있다는 것이다.
건물의 규모는 정말로 Mension으로 견고하게 잘 지어져 있는데,  관리가 전연 되여 있지 않아 Mural들이 다 망가져 있고, 구조물들도 많이 폐허가 돼고, 쓰레기들은 이곳 저곳에, 그리고 길가에는 소들이 선물한 신성한 똥들이 장식되여있는 선뜻이해가 안되는 전경이 이어진다.

모든 Mension의 크기는 궁전처럼 거대했고, 집구조는 대부분 돌로 이루어져 있어, 당시 거상들의 물질적 풍부함을 쉽게 짐작할수 있었다. 그런 거상들이 큰 도시로 옮겨가 다시 상권을 잡고 있다는 설명인데..... 장사꾼은 보는 눈이 다른가 보다십게 느껴졌다.

왜 사막같은 이곳에 거대한 Mension이 이루어졌을까?  이지역이 옛날 중세기때부터 성행했던 아시아 중국 그리고 중동지역을 연결하는 Silk Road가 지나는 곳으로  거상들이 이곳에서 거주하고 무역거래를 하기위해 자리를 잡았다는 것이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시간이 흘러가면서, 교통과 무역의 Pattern이 바뀌면서 거상들은 재빨리 이곳을 떠나 큰 도시로 떠나, 캘커타를 비롯한 무역을 하기쉬운곳으로 떠나버리면서, 이곳은 Ghost town이 됐고,  지금은 관광객들이 방문하여, 그자리를 채우고 있다고 생각됐다.

한 Mension의 옥상에 올랐는데 또 젊은 두친구가 달라 붙는다.  몇마디 설명을 하더니 돈을 요구한다.  정중히 거절했다. 이들의 말을 들어주면 끝이 없을것 같아서였다. 또 Driver도 해준 얘기가 있고 해서다.  대부분의 비어있는 Mension들은 이곳 거주하는 사람들, 특히 꼬마들의 훌륭한 놀이터로 이용돼고 있어, 시간이 흐를수록 파괴되는 속도는 가중될것 같은 아쉬움이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이지역은 Mandawa라는 Town인데, Sehkawati District에 있는 3개의 구간중 하나에 속하는 곳이라고 한다.  Havelis(Mension)를 중심으로 Local Market이 형성되여 있어, 앞으로 Mension의 관리가 잘 된다면 더 많은 관광객들을 이끌어 들일수 있는 충분한 조건은 형성되여 있는것으로 이해됐다. Sehkawati 지역은 Sehka 왕국의 Sehka왕이 통치하던 지역이었었다고 한다.

이곳의 역사를 들어보면, 200여년전까지만 해도, 원래 힌두교도들에 의해 건설돼기 시작했었고,  그건축양식도 처음에는 Mogul, British Arch, Artical Arch 양식으로 시대가 흘러가면서 바뀌어 졌다고 한다.
우리가 다 배웠듯이 인도에는 철저한 계급사회가 지금도 현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곳에서 우리를 안내할 Tour Guide를 만났는데, 그의 이름은 Marita라고 소개했다. Braman, Worriors, Business, 그리고 Untouchable(천민)로 나뉘는데, 그자신은 천민의 후손이라고 했다.
바람이 많은 사막지역이라서 Wind Mill같은 동력시설이 많이 발달되였고, 이곳을 일명 House of Wind 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집안의 습기와 온도조절을 위해 각방는 조그만 창문이 유난히도 많았는데 수시로 열고 닫고 했었기에 부쳐진 이름임을 설명한다.
구역도 Business, Residence, Animals and Servants들이 구별되여 살아갔었다고 한다.
이곳은 한빌딩의 옥상에 있는 우물인데, 원래는 4개의 기둥이 설치되여 그곳에 두레박을 설치하여 큰 통에 물을 길어 올렸는데, 이또한 Wind Mill과 연결되여 물을퍼올렸다는 것인데.... 그런가 보다하고 수긍해야 했다.  우물의 깊이는 163피트라고 했는데 지금은 철망으로 덮혀져 있고, 우물은 매말라 있었다.  Lunar가 확인하려는듯이 고개를 빼고 들여다 보고 있다.
코끼리 Mural이다. 코끼리의 코가 윗쪽으로 솟아있는것은 돈을 갖고 오라는 뜻이고, 아래로 내려져 있는형상은 환영의 뜻이고 중앙의 사람형상은 Business를 표시하는 뜻이란다. 노란색으로 덮힌 천의 색갈은 사람의 오줌에서 채취한 물감으로 칠한 것이라고 했다.  색상이 아직도 선명하다.
우리가 지나치는데 천을 깔고 길가에 앉아있던 두 남자가 손짖으로 부른다. Guide의 설명에 의하면 그들은 Magician들인데 묘기를 부리고 나면 손을 벌린다는 것이다.  과감히 뿌리치고 돌아섰다.  어떤 묘기를 보일수 있었을까?라는 아쉬움도 일면 있었지만....
이건물들이 건설돼기 시작한때는 1840년 경으로 약 20여년에 걸쳐 완성했었고,  약 4채의 건물만이 1947년도에 건축됐다고 하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이곳이 무역상의 중간 쉬어가는곳으로 활동이 있었다는 것으로 이해됐다.
한 Mension의 옥상에 설치된 쉼터라고 한다. 3개의 쉼터에는 지금도 쉴수있는 소파, 카우치들이 중앙에 테이블을 중심으로 안치되여 있었다.  이곳은 주로 상인들에 의해 이용됐었는데, 당시의 거상 Goinka씨가 자기의 부인을 사랑하는 징표로 이런 시설을 했었다고 한다.  아직 구경은 하지 않았지만, Agra에 있는 Tagimahal을 건축하게된 동기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때마침 많은 연(Kites)들이 높이 떠서 흔들거리고 있었다.  내일이 연날리기 하는 대회가 열리는데 미리 연습차원에서 주민들이 즐기고 있는것이란다.  매년 열리는 큰 행사중의 하나라고 한다.

내일 열리는 연날리기 대회에 모여드는 관광객들을 비롯한 인파들을 상대로 팔기위한 쌀튀김 과자들을 기름에 튀겨 내고 있는 장면이다.  다른 상점에서도 상황은 비슷했다.  우리는 내일 새벽에 다음 목적지인 Bikaner로 떠나기 때문에 기회를 접하지는 못할것 같다. 아쉽다.


Mension탐방을 마치고 호텔로 되돌아 오는 길에는 역시 신성한 소가 길을 점령하고 유유자적이다.  우스개 소리로, 북미대륙에서는 소고기가 제일 비싼 식품주의 하나라고 Guide에게 던졌더니 얼굴을 찡그린다.  아마도 혐오스럽게 소고기를 먹는다는 야만인이라는 뜻이었을것이다. 살아가는 지역과 풍습에 따라 이렇게 극과 극을 이루는데..... 음식의 맛도 거의 나의 입맛에 맞는게 없다.  그들은 정성들여 만들어 주는데도도 말이다.

짧은 몇시간의 독특한 건축양식과 옛날 거상들의 발자취를 둘러보는 매우 독특한 탐방이었지만, 몇년전 터키 관광때 목격했던 Silk Road를 지나치는 거상들의 숙소였던 Carabansarry를 보았을때의 기억이 되살아나게 한 값진 구경이었었다.  중동지역의 거상들의 생활Pattern은 거의 비슷했었던것 같다.
수고한 감사의 표시로 약간의 정성을 표시하고 헤여지기전 Marita와 한컷의 추억을 만들었다.
이지역이 사막지대임을 알려주는 표시가 길 양쪽에 펼쳐져 있는 Barren Land에 확실히 알수 있다. 자라고 있는 나무들도 몇그루의 나무들과 말라 비틀어진 잡풀들뿐으로 바람이 불면 먼지가 하늘을 뒤덮는다.
호텔 입구에 도착하자마자 종업원이 우리를 안내 해준다기에 뒷뜰로 따라 갔더니 보여준것은 꼭두각시 인형으로 우리에게 구매해달라는 장사를 할려는 속셈이었었다.  그친구는 대상을 잘못 짚은것 같았다.  왜 우리같은 Senior에게 권하는 이유도 모르겠거니와 이제 여행을 시작한 우리로서는 짐만될수 있는 Puppet Doll을 구매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