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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day, December 14, 2015

토속 종교의식으로 행했던 의식중의 하나, Papua New Guinea, Aseki 지역의 훈제된 미이라로 변한 시체들.

Aseki지역에 살았던 옛사람들의 훈제된(Smoked)시체들.
파푸아 뉴기니의 Aseki지역에 거주하는 Anga사람들은 물안개를 보고서도 그들의 혼이 악마에의해 빠져나간다고 믿는 아주 미개인들이다. 이지역은 고산지대의 끝자락에 붙어있는 아주 조그만 동네다.  그들은 옛날에 시행됐었던 이상한 종교의식을 지금도 고수하고있는 부족의 후손들이다. 그의식은 다름아닌 그들 선조들의 시체를 훈제시키는 종교의식이다.

"전부 14구의 훈제된 시체가 있는데, 대나무 바구니같은곳에 안치하여 살아앉아있는 자세거나 또는 큰 바구니속에 꾸불꾸불한 모양으로 자세를 하고있는 태아들의 모습이다."  

특이한점은,자세히 살펴보면, 외부에서 들어간 사람들의 관점에서 보면, 보관되여 있는 흉칙한 Aseki지역의 훈제된 시체들은, 인류학자들, 글쓰는이들 그리고 영화제작들이 100년이상 형상을 찾을려고 노력해 왔었으나, 아직까지는 아무도, 상상일뿐, 실질적인 사실을 얘기하는 이들은 없다.
The winding road towards the remote Aseki district (Credit: Credit: Ian Lloyd Neubauer)
Aseki지역으로 통하는 꾸불꾸불한 산길이 마치 뱀같이 꿈틀거리는것 같다.
인육을 먹는 지역에서 발견된 미이라들.


이러한 그들의 일상생활이 시작된곳을 발견하면서, 인육을 일상의 음식먹듯 한 곳에서 Anga주민들은 그들부족에서 죽은사람을 왜 미이라로 만들었을까?에 의문을 품으면서, 나는 파푸아뉴기니에서 두번째로 큰 도시 Lae를 방문했었다. 그곳에서 험한 산길을 달리는 모터바이크회사,Niugini Dirt에서 가이드로 일하고 있는,Malcolm Gauthier씨를 만났다. 

그와같이 2일간을 여행을 했는데, 하루는 1930년대에 황금을 찾아나선 사람들로 번성했었던 Bulolo에서 밤을 보낸일이 있었다. 내륙지방으로 들어갈수록 길은 더 험악했으며, 홍수로 황폐해지고, 진흙탕속에 움푹패인길과  그리고 강을 건너면서 때로는 카누를 타고 방향을 찾아야만 했었던 그야말로 어려운 두가지 일들을 감당하면서 였다. 

우리가 Lae에서 남서쪽으로 250키로 떨어져있는 큰 동네인Angapenga도착했는데, 한때의 어린아이들을 만나고 그들은 우리를, 뾰쪽뾰쪽한 계곡들이 내려다 보이는 초원속의 좁은 길로 우리를 안내 했었다. 그곳은  Aseki지역에서 훈제된 시체를 발견할수 있는, 12개 이상의 지역중 한곳으로, 때로는 정확한 위취를 오랜 시간이 흘러 가면서 잃어 버리기도 한다고 했다. Angapenga의 미이라들은 또한 뚫려있는 도로에서 멀지 않은곳에 자리하고 있어서 접근하기 편리한곳에 대부분 자리하고 있었다. 
Motorbike tours are an alternative way of seeing Papua New Guinea (Credit: Credit: Ian Lloyd Neubauer)
모터바이크는 이곳 파푸아뉴기니에서는 가장 많이 애용하는 교통수단으로 여행객들이 많이 애용한다.
우리가 모터바이크를 세웠을때 Dickson이라는 남자가 다가와서 자기를 소개했다. 자기는 이지역을 경비하는 책임자라고했다. 독일어,영어 그리고 현지주민인 Melanesian 방언을 섞어서 소통하는 언어, Tok Pisin어를 사용하면서, 우리에게 고액의 통과료를 요구했다. Gauthier씨는 그와 담판을 지어 양측이 합의할수있는 선에서 통과료를 지불하고 마지막으로 아이들과도 헤여져, 힘들게 반시간 이상을 정글을 통과하고,독풀과 거미줄을 피해서 올라갔다.

산에 오르는길은 경사가 심해 우리는 짐승들 처럼 손발을 다이용하여 겨우 힘겹게 올랐다. 갑자기 앞에는 아무것도 안보이고 정글을 건널수있는 카누피만 있을 뿐이고, 좁은 계곡만이 빙둘러싸고 있었다.  그곳에는 진흙으로 쌓아올린 벽만이 허공을 향해 있었다.  그곳에는 깍아지른듯한 조그만 공간에 Aseki의 시체들이 걸려 있었다.
"내가 상상해왔던것 보다 훨씬 더 무시무시했었습니다." 미이라들은 내가 상상했던것 보다 훨씬 끔찍한 모습이었습니다. 붉은 진흙으로 더럽게 뒤덮혀진 상태에서 여러형테로 아직 완전히 탈골돼지 않은 상태와, 근육과 말라 비틀어진 피부들은 해골들과 간신히 매달려 있었고, 간혹 약간의 머리털이 남아있었고, 거의 원형에 가까운 손톱들은 뚜렷하게 뒤말려 있었다. 그시체들의 얼굴형태는 할리우드를 연상케 할정도로 원래형태의 치아와 눈동자들은 머리해골에서 튀어나와 반듯하게 유지하고 있었다. 한여성시체는 그녀의 가슴속에 젖먹이 어린아이를 꼭 껴안은 모습으로 훈제되여 있었다.  
There were 14 Aseki corpses in total (Credit: Credit: Ian Lloyd Neubauer)
There were 14 Aseki corpses in total (Credit: Ian Lloyd Neubauer)
미이라를 가까이서 본다는것이 쉽지않은것임을 증명해주고도 남는다.  곧바로 서있을수 있는 평지가 없었기에 나는 자주 헛발을 내딛곤 했었다.Getting씨가 시체가 있는곳으로 가까이 가게되면서 그는 미끄러져 넘어질뻔 했는데 이때 그는 역어놓은 대나무를 꼭 붙잡았다. 마치 완전한 형태를 갖춘 밀림지역 아래에 온전한 성전을 밀림지역속으로 끌어 들인것 같이 느낀다. 

나는,Aseki 지역에 있는 또다른 마을, Koke에서 촬영된 지오그래픽 기록영화를 보면서, 미이라들은 불규칙적으로 복원작업을 위해서 이마을로 옮겨오곤 했었다는것을 알았다.  

큰 소낙비가 쏟아지거나 산사태가 나면 모든것을 금새 휩쓸려 떠내려가서 흔적도 없어져버린다.

Gauthier씨는, 정확히 10년전에 Lae에서 있었던 Morobe Show 에서 진열되여 있었던 이러한 미이라들을 본적이 있었음을  설명해주었었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귀하고 가격으로 따질수없는 귀중한 물건이 쿠션도 없는 추럭에 실려서 250키로 이상을 울퉁불퉁한 길을 달리게 했다는 사실에 너무도 놀라서 할말을 잊었었다. 

여기에 방치되여 있는것을 보는것 만으로도, 이러한 보물들이 거칠은 관광객들, 무덤도굴범들에 노출되여 있는 위험한 상태에 있어, 한번 폭풍이 몰아치거나 산사태가 나면 이러한 보물들은 금새 휩쓸려 떠내려가고 말것이다.
미이라에 대해서 알고있는것들에 대한 이해와 시간에 묻혀 잃어버린내용을 알아보는것은, 전부터 입으로 전해져오는 구전, 과장됐거나 상상의 세계를 떠돌아 다니는것들에 의존할수밖에 없다.  나와 대화를 나누었던 Dickson, 정신적지도자 Loland씨 그리고 학교선생님 Nimas씨를 포함한 그곳 지방사람들은 종교적의식에 대한 설명에서 서로 다른 얘기들을 해주었었다.

맨처음 이렇게 훈제된 시체에 대해 기록을 만들어 보고한 사람은 영국의 탐험가 Charles Higginson씨로 1907년의 일인데, 세계1차대전이 일어나기 7년전 일이었다.

Dickson씨의 증언에 따르면, Anga족들이 Aseki에 처음 상륙한 선교사팀들을 공격했을때로 세계1차 세계대전중에 미이라를 만들는것을 일상생활화 했었다고 한다.  

절벽에 걸려있는 여러시체중의 하나가 그의 증조할아버지인데, 증조할아버지는 처음 상륙했던 선교팀들이 자기네들을 방어하기위해 쏜 총에 맞아 죽었다는 것이다.   
Dickson said the event sparked a series of payback killings that came to an end when the missionaries gifted the natives salt, with which they began embalming their dead. The practice only lasted for a generation, he added, since a second round of missionaries successfully converted the Anga to Christianity.
Bodies were smoked over months in a “spirit haus" (Credit: Credit: Ian Lloyd Neubauer)
Bodies were smoked over months in a “spirit haus" (Credit: Ian Lloyd Neubauer)
Loland and Nimas씨는 선교사들이  Aseki에서 완전한 발판을 굳혔을때인1949년도에 시체를 훈제하는 의식은 끝났음을 확실히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Dickson씨와는 다르게, Loland씨와 Nimas씨는 원주민들이 Anga에서 수백년동안 미이라를 만들어 왔음은 확실하다고 주장했다.  육체들은 소금을 사용한다고 해서 원상복구되지는 않았었고, "Spirit haus"에서 수개월동안 훈제를 했었다고 했다.  그리고나서 그들은 구조적인 순수함을 유지할수 있는 빨간 진흙으로 덮었었다고한다. 그리고 정글속에 있는 성전에 보관하였었다고 한다.

Nimas씨는 인육을 먹는 행위는 파푸아 뉴기니에서는 존재하지 않았었다고 주장한다. 이주장은 1907년에 Anga족속들이 훈제를 하는기간동안에 그들 사망한 부족들의 내장을 끄집에 내어 피를 이용했었다는 주장에 정면으로 반대되는 내용이다.  그러나 물론 그런 경우가 존재 했었다면 왜 그들은 방어능력도 없는 외로운 이방인,Higginson을 잡아서 먹이감으로 사용하지 않고 같이 지냈을까?라는 의문이 생긴다.
내가 그곳을 떠나기전에 다시한번 Dickson씨에게 질문을 했다.  시체를 마지막 손질할때 몸속에 있는 기름기를 다 빼서 식용유로 사용했다는게 정말로, Higginson씨기 주장한데로 믿을만한 기록인가? 그리고 미이라에 대한 모든 보고서들이 오랫동안 같은 의식으로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사실인가? 라고. 이러한 비밀들은 죽음과 함께 어쩌면 영원속으로 묻혀버릴수 있다고 본다.

파푸아뉴기니는 지구상에서 가장 미개한 나라들중의 첫번째이고, 여행경비도 무척 비싸 엄두도 못내는, 그래서 지금도 식인종들이 살고 있다고 믿는 곳이기도하다.  이좁은 지역에서는 서로 왕래가 거의 없기 때문에 Dialect 수백가지가 넘는다고 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곳들은 그곳에 비하면 천국이라고 해야 할까? 감사함을 잊어서는 안된다.

http://www.bbc.com/travel/story/20151130-one-of-most-bizarre-rituals-of-the-ancient-world

Wednesday, January 28, 2015

하마(Hippo)에 대한 진실: 초식동물?아니면 육식동물이냐. 연구내용이 인식을 확 바꿨다.

과학잡지에 기고된 내용에 의하면, 하마가 죽어있는 다른 하마의 고기를 뜯어먹는 장면이 보기드물게, 확인되고 있는 장면이다.

http://www.bbc.com/earth/story/20150116-the-diet-secrets-of-hippos-herbivore-or-cannibal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하마'는 대형 초식동물인가, 아니면 같은 동족인 하마도 잡아먹는 육식동물인가?  과학자들이 지금까지 '하마'에 대한 잘못 인식되여온 자연계에 초점을 맞추어 깊이 들여다 보고 있어 관심을 끝다.

과학자들은 지난 수년동안 '하마'에 대해 잘못된 이해를 해 왔었다.
옛날 그리스어로 그들의 이름은 "강에 서식하는 말"로 번역되고 있었으나, 현대의 과학자들은 돼지과에 속하는 동물로 간주했다.  그러나 더 최근의 연구에서는 "하마"는 고래과에 더 가깝다는 연구보고서도 있었다.

하마들은 또한, 지금까지 추측해  왔던데로 붉은피로 형성된 땀을 흘리지 않으며, 대신에 박테리아 번식을 막아주는 Sunscreen이 함유된 붉은 액체를 배설하는것으로 이해를 했다.  또한
짧고 뭉퉁한 다리와 둥그럼 모양의 이 생명체는 시속 19마일의 빠른 속도로 달리는 기염을 토해 과학자들을 놀라게 하기도 했었다.

뱃속에 채운 초식성 물질들을 소화하기위해 하마의 위장은,  마치 숙성시키는 공장같은 역활을 하는것으로 보아, 초식동물로 알려져 왔었다.  그러나 이러한 인식을 정반대로 되돌릴 어떤 요인이 있었던 점은 무엇이었을까?

3,200킬로그람이 넘게 완전히 성장한 숫놈 하마에 대한 잘못 알고있는점을 그냥 지나칠수없는 자세한 내용이 하나 있는데, 이들이 발정기가되면,  암컷을 서로 차지하기위한 처절한 싸움이 벌어지는데, 이들이 무기로 사용하는 송곳니는 자그만치 그길이가 40센티가 넘는다는것이다.

때로는 여행객들과 Tour guide 그리고 그곳 주민들은 하마를 갑자기 만나는 경우가 발생하는데, 이들의 설명에 의하면, 아프리카에서는, 인간이 사자들로 부터 공격을 받아 목숨을 잃는경우 보다 더 많은 희생이 하마에 의해 발생한다고해서 가장 무서운 동물로 여겨지고 있다.

그러나 하마는 초원에서 먹이를 찾는다.  거대한 몸집을 유지하기위해 하루저녁에 약 40키로그람의 먹이를 해치우고도, 뱃속에 들어있는 먹이를 소화하고 몸을 식히기위해 눈만 뻐끔히 물위로 내놓을뿐 거대한 몸을 거의 움직이지 않는 생활습관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에 과학자들은 이들 하마에 대한 인식을 확 바꾸어놓을수있는 아주 독특한 그들의 생활의 일부를 재발견하게된다. 특히 그들의 다이어트를 주목하지 않을수 없다.

이번달에 Imperial College London에서 박사과정을 연구하고 있는 Leejiah Dorward씨가 그가 겪은 연구결과에 대한 내용을 African Journal of Ecology에 기고한 내용이다.

"나는 남아프리카에 있는 Kruger 국립공원의 남단끝에 있는 지역에서 조그만 강을 건너면서, 우리 일행은 아주 많이 부패한 2마리의 하마 시체가 물위에 떠있고, 그주위를 악어떼들이 맨돌고 있는것을 목격했었다.  그런데 또 다른 하마들이 그시체를 뜯어먹고 있는 광경을 목격한 것이다" 라고 그는 설명했다.

Dorward씨는 초식동물로만 여겨져왔던 하마가 고기를 먹는광경을 보고 놀랐는데, 더 긴장감이 돌게 한것은, 다른 동물의 고기가 아니라 바로 같은 동족인 하마 고기를 먹는 장면을 목격한 것이다.

"하마의 이러한 생활이 왜 지금까지 전연 보고된적이 없이 다만 하마가 다이어트를 하는 초식 동물로만 이해된 내용을, 내가 영국으로 돌아와서, 읽기보기 전까지는 상상도 할수 없는 일이었다"라고 그는 설명한다.

Dorward의 보고서는 이분야의 과학계에서는, 하마가 동족의 고기를 먹는 동물이라고 확인된 두번째의 보고서인 셈이다.  그의 보고서는 미국 알라스카대학의 교수 Joseph Dudley박사가 이러한 수수께끼를 풀기위해, 지난 20여년간 찾아 헤맷던, 최신 비밀의 열쇠역활을 한 것이다.

Dudley박사는, 하마들이 동족의 고기를 먹는 행동에 대해서는 관심밖이었었고, 다만 지난 과거에는 무심히 지켜봤을 뿐이었다라고 믿고 있다.

"우리 인간들은 지난 수세기동안 하마에 대해 연구하고 관찰해왔기에 하마에 대해서 모두다 잘 알고 있는것으로 간주해 왔었다.  그러나 이러한 Cannibalism 현상이 확실히 알려지면서, 그들의 세계에는 우리가 알고 있지 못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는것을 알게됐다.  이렇게 동족의 고기를 먹는 현상은 하마가 세상에 서식하기 시작하면서 부터 있어왔던 것으로, 이러한 내용이 단지 최근에 발견된 것일뿐이다.  이런 발견은 우리 인간들이 더 깊이 연구하지 않고 무심히 지나쳐 버린데서 발생한 과오일뿐, 어떤 새로운 진화에 의해 일어난 최근의 일은 아니다라는 점을 지난 20여년간의 연구결과에서 나온것은 아니다"라고  Dudley 박사는 설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