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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dnesday, November 18, 2020

좌파 주사파들은왈, 대한민국은 정말 ‘태어나선 안 될 나라’, 골통들이다. 온갖 혜택은 문재인과 이인영이 즐기면서....

 김순덕 주필의 컬럼을 읽으면서, 깜짝 놀랐다. 어렴푸시는 알고 있었던 일이긴 했어도....

이인영이는 대한민국의 통일부장관으로 문재인이가 임명한자다.  통일부를 정부조직에 새로 만들었을때는, 무언의 약속 또는 묵계가 있었다.  개인의 자유가 보장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체제하의 한반도 통일을 구현하기위해서였다라고.

그런데 이인영의 통일정책은 그렇게 바라고 있는 국민들의 염원과는 상관없이, 사회주의 체제하의 통일을 원하고 있다는 신념이 꽉차 있는것으로 표현되는 발언을 한것이다. 즉 5천만 남한국민들이 알고있는, "대한민국의 국부는 이승만 대통령이 아니고, 임시정부의 주석(김구)이 되는게 마땅하다라는 역사의식을 갖고있다"라고, 박진 국민의힘(미래 통합당)의원의 "이승만 정권은 괴뢰정권인가? 이승만 대통령이 대한민국의 건국대통령이라는데 동의 하느냐"라는 질문에 위와 같이 답변했다는 것이다.  만약에, 그럴리는 절대로 없겠지만, 문재인 좌파정부에서 이인영이 통일부장관을 하는 그시간에 통일이 된다면,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 국가 체제하에서의 통일이 아니고, 사회주의 체체로, 대통령이 아닌, 주석이 통치하는 나라가 될것으로 보여, 위험천만이다.

이승만이나, 김구나 일제 식민지하에서 독립운동을 한 그업적은 천만번 강조해도 부족한 편이다. 그러나 국가의 정체성을 따졌을때는, 우리 한민족은 분명 자유민주주의 국가 체제를 선호하고 그체제하에서 살아가야 숨통이 막힘없이 생업에 종사할수 있다고 믿는다. 주석체제는 좋게는 사회주의이지만, 좀 비약한 표현을 쓴다면, 개인의 자유가 존재치 않는 독재로 변할 위험성이 100%이상이라고 믿는다.

지금도 한탄하면서 아쉬워 하는것은 6/25전쟁의 마무리를 잘못했다는 점이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연합군들의 사활을 건 싸움으로 아무런 준비도 없이 전쟁을 치렀던 우리 남한 정부로서는 혈맹 미국과 연합군의 엄청난 희생으로 쟁취한 자유민주주의 체제하의 정부를 계속 유지해 올수 있었다는 점을 단 한시도 잊어서는 안된다. 항상 감사해야 한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아쉬움이 무척 많다.

당시 미국대통령 Truman은 한국전에 참전을 선언하고 전쟁에 임한다.  우리의 열악했던 군은 정일권, 백선엽 장군을 비롯한 용맹한 군선배들의 지휘하에, 낙동강 전투에서 더이상은 밀릴수 없는, 죽기아니면 살기 작전으로 버티면서, 맥아던 장군이 이끄는 유엔군이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적으로 이끌고, 인해전술을 감행한 모택동 군대와 김일성 괴뢰군들의 허리를 잘라, 퇴로를 막고 북진을 할수 있었던 것이다.

밀고 밀리는 전쟁속에서 맥아던 장군은 압록강까지 밀고 올라가, 만주폭격을 결심하고 그곳까지 점령해서 중공군및 김일성 괴뢰집단을 완전 섬멸하고 한반도 통일을 할수있는 기회로 삼고, 미본국의 군총사령관 Truman대통령에게 만주벌판까지의 진격을 승인해 주도록 요청했었으나, 한국과 중국의 국경을 넘어서서는 안된다는 명령을 내려, 한반도 통일의 꿈은 날아가 버린것이다.

https://lifemeansgo.blogspot.com/2020/10/2020.html

당시 Truman대통령이 민주당이 아닌 공화당 출신이었었다면, 분명히 만주벌판 폭격과 진격을 승인하여, 그때부터 한반도는 통일된 한나라, 즉 자유민주주의 공화국 체제로 풍요를 누리면서, 경제거으로나 군사, 외교등 모든 면에서 지금보다 훨씬 더 살기좋은 나라가 되여 있었을 것이다.

김순덕 주필은, Truman대통령이 민주당소속이었기에,  우리가 알고있는 민주당 소속의 미국 역대 대통령들이 한반도 문제해결에서,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현상 수준만을 유지하면서,  6/25전쟁때처럼, 월남전때처럼 깊숙히 빠져 들지 않을려고 하는, 무난한 정책을 고수할것이라는 점도 강조했으면 했다. 결국 만주폭격으로 확전되는게 미국으로서는 득이 될게 없었다는 판단이, 한반도 통일을 염원했던, 맥아더 장군이나, 한국인들의 기대를 꺽은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래서 이번 미국대선에서 승리가 거의 확실시 되는 민주당의 Joe Biden정부에서도 우리 한국으로서는 크게 기대할게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https://www.donga.com/news/dobal/article/all/20201102/103755350/1

맥아던 장군의 계획데로 만주벌판을 토벌하고, 김일성 괴뢰 집단을 완전 물리쳤었으면, 지금 대한민국에는 이인영같은 좌파 주사파 사상으로 꽉찬 좌익들이 발부칠곳은 없었을 것이다.  아직도 철없는 감상에 젖어, 주사파 사상을 갖고 통일부 장관을 하고 있으니, 이승만을 국부가아닌 역적쯤으로 폄하하고, 사회주의 체제를 옹호하는 위험한 자이다. 

문재인과 이인영이가 백범의 사상을 좀더 깊이 알았더라면.... 하는 김순덕주필의 칼럼 한부분을 음미해 볼필요가 절심하다. "김구는 독재중에서도 가장 무서운 독재는 '계급독재'라고 부르짖었다는점을 강조한점과 "공산주의자들과는 아무것도 함께할수 없다"라고 했던 김구 역시 그가 한말을 무시하고 북행을 결심했지만, 실패하고 말았다는 점을 강조한것은, 내가 이해하기로는 공산주의는 물론 사회주의자들 역시 말과 행동이 다르다는점을 문재인과 이인영에 쏘아부친것이다. 



김순덕 대기자 

“이승만 대통령을 우리의 국부(國父)다, 하는 부분에 대해선 다르게 생각한다. 우리의 국부는 김구 (임시정부) 주석이 되는 것이 더 마땅했다고 생각하고 그런 역사의식을 가지고 있다.” 이인영 통일부 장관이 한 달 전 인사청문회에서 한 말이다.

국부가 누구냐고 아무도 안 물었다. “이승만 정권은 괴뢰정권인가. 이승만 대통령이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이자 건국 대통령이라는 데 동의하느냐”고 박진 미래통합당 의원이 물었을 뿐이다.

광복 75주년을 맞은 2020년 8월 15일. 대한민국 19대 대통령에 의해 임명된 통일부 장관이 초대 대통령을 건국 대통령으로도, 국부로도 인정하지 않는 사실은 기록해둘 필요가 있다. 문재인 정부가 586운동권에 포획돼 있고 이인영 통일부 장관이 전대협 1기 의장 출신이다. 그의 역사의식은 곧 이 정부의 집단 역사의식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 누군들 백범 김구를 존경하지 않으랴
백범 김구를 존경하지 않는 한국인은 단언컨대, 없다. 요즘 찐 대세남으로 뜬 영탁 정동원이 TV ‘대한외국인’ 퀴즈 대결에서 백범의 ‘나의 소원’에 나오는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ㅇ ㄹ ㄷ ㅇ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에서 ‘아름다운’을 맞히고는, “민족의 혼을 잊으면 안 된다”고 기염을 토했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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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백범이 국부여야 마땅하다는 건 다른 얘기다. 1919년 임시정부 수립이 대한민국 건국이라는 차원을 넘어, 1948년 수립된 대한민국은 ‘태어나선 안 될 나라’로 친다는 역사관이 배어난다. 이인영이 1987년 전대협 의장 때 읽기만 했다는 ‘동지여 전진! 동지여 투쟁!’ 격문을 보면 알 수 있다. “삼팔선 이남을 점령군으로 진주해온 양키 침략자. 이남의 이승만 괴뢰정권을 내세워 민족해방 투쟁의 깃발을 갈가리 찢고자 책동했다.”

1980년대 NL(민족해방)이나 주사파의 낡은 이념일 뿐이라면, 나도 속 편하겠다. 그러나 이인영은 “(이승만) 괴뢰정권이라고 단정하는 것에 대해선 여러 가지 이견이 그대로 남아 있다”고 말했다. 좌파진영에선 지금도 이승만 정부를 정통성 없는 괴뢰정권으로 본다는 점을 사실상 시인한 것이다.

● 좌파의 역사인식 공유한 문 대통령
대한민국을 태어나선 안 될 나라처럼 보는 시각은 문 대통령의 올해 제주4·3 희생자 추념식 연설에도 배어난다. “제주는 해방을 넘어 진정한 독립을 꿈꿨고, 분단을 넘어 평화와 통일을 열망했다”며 “그러나 누구보다 먼저 꿈을 꾸었다는 이유로 제주는 처참한 죽음과 마주했다”고 했다. 단독선거 저지와 통일정부 수립을 내세운 남로당의 무장폭동(2020 고교 한국사 교과서 집필 기준)을 이토록 아름답게 표현했다는 것이 놀라울 정도다.

백범이 통일정부를 지지했다고 믿는 세력은 1947년 12월까지만 해도 이승만과 함께 단독정부를 지지했다는 사실도 아는지 의문이다. 해방 후 대세는 좌경화였다며 미군만 아니면 한국은 공산주의로 갈 수밖에 없었다는 주장도 심심찮게 등장한다(실은 나도 그런 줄 알았다). 어쩌면 문 대통령도 ‘제주의 꿈’이 남조선 전체의 희망이었다고 믿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강만길이 “1946년 미군정 여론조사에서 사회주의 지향 세력이 70%”라고 한 것도 1994년 ‘고쳐 쓴 한국현대사’ 때 얘기다. 2018년 박명수 서울신학대 교수의 연구를 보면, 미군정은 1946년 7번이나 여론조사를 했고 민심은 북한식 공산주의 아닌 미국식 민주주의를 선호했음이 분명히 드러난다.




● 해방 직후 한국은 민주주의 남한정부를 원했다
신탁통치를 하자는 미소공위가 실패로 돌아간 1946년 5월 미군정은 “현재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묻는 여론조사를 했다. “남한정부를 세우는 것”이라는 응답이 54%나 됐다는 사실은 눈물나게 감동적이다(미군정 계속은 43.8%). 많은 사람들이 소련과의 협상이 현실적으로 어렵고, 따라서 남한만이라도 독자적으로 정부를 세워야 한다고 생각했다는 뜻이다.

북한이 무상몰수 무상분배의 토지개혁을 감행한 3월, 대지주 소유 토지 처리 방법을 묻는 조사에서도 민심은 66.3%가 경작자에게 분배하되 유상분배(72.9%)를 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누가 한국사람 복지를 위해 열심히 일하는가를 묻는 조사 역시 이승만(30%), 김구(20%)와 안재홍, 김규식, 조만식 등 우익이 70%로 압도적이었다.

그럼 ‘사회주의 선호 70%, 자본주의 13%, 공산주의 10%’라는 조사 결과는 뭐냐고? 박명수는 해방 정국에선 좌익과 우익이 사회주의를 다른 의미로 썼다고 설명한다. 좌익은 공산주의에 이르기 전(前) 단계를 사회주의라고 했고, 우익은 사회민주주의와 거의 동일한 의미로 썼다는 거다. 즉 한국 사람들은 정치적으로 우파의 대의민주주의를 지향하면서 경제적으론 중도적 성향이라는 분석이다(그래서 제헌 헌법에도 사민주의적 요소가 있었던 것이다).

● 공산당과 합작은 불가능… 정치인 김구는 실패했다
백범의 핵심 노선이 주한미군 철수와 자주적 통일이라는 점에서 현 집권세력이 백범을 숭앙하는 것도 당연하다. 국제적 인식이 부족했고, 국제노선을 따르더라도 중국을 우선시했다는 점도 비슷하다. 이상주의에 치우쳐 현실감각은 물론 정치능력이 부족한 점 역시 집권세력과 비슷하다는 건 비극이 아닐 수 없다.

백범은 1948년 “김일성과의 남북협상에서 성과가 없으면 차라리 38선에서 배를 갈르리라”라는 비장한 성명을 발표하고 북행을 결행했으나, 공산주의 소련과 김일성을 이길 수 없었다. 미국과 소련 군대가 철군해도 전쟁은 결코 없을 것이라고 장담했지만 6·25전쟁 발발 전에 암살당함으로써 오늘날 통일운동과 민족주의의 표상으로 자리 잡았다는 것이 아이러니다.

박명림은 “김구는 해방 이후 임정봉대, 반탁·반공, 미소공위 반대, 좌우합작, 건국, 남북회합, 양군 철수 주장…을 포함한 현실적 성공과 실패에 대해 전혀 책임을 지지 않았고, 성찰도 표명하지 않았다”고 ‘도덕성을 넘는 책임성’ 문제를 지적했다(대한민국 건국과 한국 민족주의-김구 노선을 중심으로). 독립운동가 아닌 정치인이라면 당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식견과 유연성이 필수라는 점은 민주화운동을 했다는 정치인들에게도 유효하다.



●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광복 75주년!
문재인 정부가 정녕 백범을 배우겠다면, 독재 중에서도 가장 무서운 독재는 어떤 주의, 즉 철학을 기초로 하는 ‘계급독재’라고 지적한 백범일지를 다시 봤으면 한다. 임정 시절 “공산주의자들과는 아무것도 더불어 함께할 수 없다”던 백범도 권력의지는 버리지 못해 북행을 결행했고, 정치인으로서 실패했다.

덕분에(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은 1948년 자유민주주의 체제로 건국혁명에 성공할 수 있었다. 오늘은 자랑스러운 광복 75주년이다.

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https://www.donga.com/news/dobal/article/all/20200815/102461917/1

Friday, April 17, 2020

태영호의 당선은, 북한의 실상을 알려준것도있지만, 한국이 북한사회주의체제로 치닫는것 막자는 강남갑구민들의 간절한신호.


선거는 끝났지만, 앞으로 자유 민주주의 대한민국 정치 체제를 그대로 유지해 나갈수 있을지가 큰 의문이자 걱정으로 남는다.  선거가 끝나고, 문재인의 민주당이 180석 이상을 차지하자, 문재인 정부는 단 하루도 지나지 않아, "금강산 관광, 개성공단 재가동"등등 혈맹국 미국이"지금은 때가 아니다"라고 그렇게 반대해 왔던, 대북관계 개선을 북한과 협의 하겠다라고 떠들어댔다.  우리가 그동안 겪어와서 잘알고 있다시피, 그러한 정책은 일종의 짝사랑식 제스처일뿐이다. 물론 미국의 심기는 불편하기 이를데 없다고 하겠다.

'강남갑'에서 태구민(태영호)씨를 그들의 지역대표자로 선출한 이유는 많은 뜻이 담겨 있다고 하겠다.
그는 2016년 그의 가족과 함께 꿈에도 그리던 "자유가 허용되는 민주주의 국가" 대한민국을 찾아 어렵게 망명했었다.  대한민국에 와서 사회돌아가는 현상을 보면서, 사회생활에 적응하면서, 그가 원했던 자유민주주의 국가로서 영국에서 생활하면서보고 느꼈었던, 그러한 사회가 아니고,  자기가 그렇게도 싫어하고 무서워 했던, 북한 김정은사회를 문재인 정부가 앞장서서, 핵으로 미사일로 남한을 위협하고 괴롭히는 북한 김정은  Regime을 마치 우군처럼 옹호하고, 보이지 않게 돈과 물자로 퍼주는 광경을 보면서많이 실망(?)도 했었던것으로 알고있다.

그는 얼마전 탈북한 "이한영"씨가 암살당했던것처럼, 신변의 위험을 많이 느꼈을테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자기가 탈북한 목적이, 당의 명령에 움직이는 북한사회와 다른, 자유민주주의를 생활속에서 즐기고져 왔는데, 정부의 정책이 대북우호적으로 가는것에 실망을 많이 느끼고, 이러한 잘못된 정책을 국민들에게 알려서 사회주의 사회로 좌편향해 가는 정부의 정책이 잘못 가고 있음을 알려야 겠다는 집념을 실천하기위해 여러 단체를 만나서 강연을 하고, 토론도하고 하면서 탈북목적을 쉬지않고 알렸었다. 이한영씨는 임시거처인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서현동 시범현대아파트 418동 1402호에서 대남간첩들에 의해 암살된것이다.

북한의 주체사상을 체계화 시켜 김정일의 최측근으로 근무하다 탈북했던, 몇년전에 돌아가신 황장엽씨가 미국을 방문하고져 했었으나, 햇볕정책을 주창하고 국민들의 세금을 때로는 국민들 몰래 이북에 퍼주던 당시 대통령이었던, 김대중씨가 허락해주지 않아 좌절됐었던 불행한 사건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만약에 미국을 방문했었더라면, 미의회 상하 양원 합동회의에서 Union Address하는식으로, 김대중의 햇볕정책의 허구성과, 김정일 세습제의 공산독재정치로 신음하는 북한주민들의 실상을 만천하에 폭로 했었을 것이고,지금 핵무기와 미사일개발로, 한국을 비롯한 전세계의 평화를 위협하는 골치거리는 아예 차단됐을 것이다. 

1997년 주체사상에 관한 강연을 위해 일본을 방문한 직후에, 베이징에서 김덕홍과 함께 대한민국 대사관에 망명을 신청하였다. 그의 수기에는 망명 이유를 조국(북조선)의 체제에 의분(義憤)을 느껴 그 변혁을 도모하기 때문이라고 말하였다.
하지만 소련의 붕괴와 맞물려 자신의 담당하던 당 국제사업의 실패가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3] 망명 후에는, 각종 강연을 통해 김정일 정권의 타도를 주장하였으나 이후 김대중국민의 정부 집권 시절에 진행된 햇볕정책의 영향으로 그의 주장은 정부에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후 10년간 정부에 의해 활동제한조치를 당해 사실상 가택연금 상태에 놓였다가,[4]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직후 해제되었다.[5] 이후 사망할 때 까지 미국의 보수인사들과 함께 김정일 정권 타도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인권상황을 폭로하는 활동을 전개했다.

 태영호씨는, 돌아가신 황장엽선생과 함께, 쌍두마차 역활을 하면서, 북한공산체제의 허구를 남한국민들에게 교육(?)시키면서, 자유대한민국의 민주주의 체제의 귀중함과 Freedom의 가치를 목이 터져라 외쳤는데, 태영호씨의 그러한 활동이 북한과 평화협정을 맺고 낮은 연방제까지 계획하고있는 문재인대통령이 보기에는, 얼마전 남한으로 탈출한 북한 어부들을 북한으로 되돌려 보낸, 반역질을 국민몰래 했던것을 상기하면서, 땅을 치고 후회했을 것이다. "왜 억지 이유를 부쳐서라도, 태영호를 북한으로 추방하지 못했을까?"라고.

이번 선거에서 그렇게 사회주의 노선을 향해 달리는 문재인당에 180이상을 다시 안겨준, 국민들의 졸부사상을, 이번에 강남갑구 주민들이 태영호를 지켜냄으로써,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의 "Feedom"이 위험하지만, 지켜내야 한다라는 메세지를 전국민들에게 보여준 실증이라고 나는 믿는다.

내가 걱정하는것은, 그가 여의도 의회에서 의정활동하면서, 좌파사상으로 물들어있고 낮은 연방제 실시하고, 토지 공개념을 공공연히 부르짖는 이인영같은 공산주의자와 의견총돌시, 지혜롭게 그를 설득하여 이인영이를 "Freedom Fighter"로 되돌리는 영웅적 의정활동 하시기를 진정으로 기원한다.





Thae Yong-ho has become the first ever North Korean defector to win a constituency seat in South Korea.
Mr Thae was once North Korea's deputy ambassador to the UK, but defected in 2016 with his family, becoming the highest-ranking North Korean official to ever do so.
He was running as the opposition United Future Party's main candidate in the affluent district of Gangnam of Seoul.
He won by 58.4% and was seen crying after his victory was announced.
He said ahead of his victory that he hoped his running would send a message to the elite in North Korea about what could happen if they turned their back on the regime.
"I want to tell them that there is a new way for their future," he said.
South Korea held its parliamentary elections on Wednesday which saw a record turnout of 66.2%, despite voting taking place in the middle of a virus outbreak.
The party of President Moon Jae-in - the Democratic Party - won a resounding victory , taking 163 seats in the 300-seat National Assembly.


Thae Yong-ho could have lived a quiet life in South Korea. Instead he has used his platform to openly denounce Kim Jong-un's regime and highlight the various challenges faced by the 33,000 defectors who have made it to the South.

He has even changed his name to Ku-min, which means "saving people".
He has cast a colourful figure during the campaign and rapped in his own campaign song wearing a pink baseball cap. When not pounding the pavements of Gangnam, he was holding chats over social media.
It was a safe seat. However, Thae's victory in the heart of South Korea's richest district is still remarkable.
Whatever the politics of this win, it is such a positive signal for other defectors who've risked their lives to come to the South.
You've also got to wonder what they're thinking in Pyongyang right now as someone who was once part of their regime steps into the South's National Assembly.





Mr Thae defected to the South in August 2016, saying he had become increasingly aware of the "gruesome realities" of life in North Korea.

Speaking to a South Korean parliamentary committee, he said North Koreans were living in conditions amounting to slavery.
After his defection North Korea called him "human scum".
The North's state media said the envoy had been accused of leaking secrets, embezzlement and child rape.
About 1,000 people defect from North Korea each year, fleeing a repressive state that has faced numerous accusations of human rights abuses.



https://news.joins.com/article/23756198

https://www.bbc.co.uk/news/world-asia-523054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