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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urday, April 29, 2017

한국기행, 4월21일(금요일) 강화도 고려산 등반, 27기 친지분들과 함께. 특이한 추억.

내일이면, 장시간 비행기를 타기위해, 짐을 꾸려 제1일의 조국을 뒤로하고, 제2의 조국으로 되돌아가야 하는 날인데도,  그런 복잡한 생각은 뒤로 하고, 친지 Mr.Oh를 따라 강화도에 있다는 "고려산"등정을 위해 새벽부터 부산을 떨었다.  Mrs Oh께서는 새벽잠을 설쳐가면서, 옛날 기차통학하면서 학교가기위해 새벽에 집을 나서는 아들에게 밥한술이라도 먹여 보내겠다는 어머님을 떠 올리게 할정도로, 아침상을 차려 주시는 고마움까지 듬뿍 받고, 집을 나섰다.
Lunar는 산행대신, 어쩌면 더 바쁜 시간을 쪼개여 사용하고 있을것으로, 어젯밤 얘기를 해줘서 알고는 있지만.... 그래도 두분 여사님들께 쪼금 미안.
서울 시내의 이름을 기억 못하는 지하철 역에서 일행들을 만났다. 모두가 옛날 학창 시절, 그리고 특이한곳에서 사회생활을 같이하면서 시간을 보냈던 죽마고우같은 친지들인것을 만나게 되면서 알수 있었다.  마치 옛친구를 만나는것 처럼 모두가 나를 대해 주어 분위기에 금새 휩싸였다.
이러한 산행 모임은 한달에 평균 한번정도 실시하고 있다는것도 알았다.  젊었을때 겪었던 특수한 삶의 악조건속에서 Fellowship을 다져온 이산행 모임이 오래 오래 지속되기를, 나는 기원해 보았다.
젊어서는 가파르고 거친 산악지대에서 삶을 살아온 친구분들이라서인지, 그흔한 관광뻐스를 이용하지 않고, 그곳을 향해 달리는 노선뻐스를 Leader되시는분은 시간에 마추어, 용케도 대원들을  잘 리드하는 능란한 솜씨를 보여 주었다.  친지 Mr. Oh의 평상시 패기 넘치는 외모가 어디서 흘러 나오나를 오늘의 산행모임에 동참하면서 자연적으로 느낄수 있었다.


Leader의 설명에 따르면, 오늘은 고려산의 붉은 진달래의 불길이 약 80%정도이고, 최고 절정인 100%는 지난주 였었다고 설명하는데,  멀리 보이는 상춘객들의 움직임도 마치 진달래의 분홍빛 물결속에서 함께 숨쉬는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래도 이렇게 불타는듯한 많은 진달래꽃의 향연을 평생 처음 목격하는, 나로서는 오랫동안 기억될 순간이었기에 수없이 많이 찰칵 찰칵 해댔다.

고려산 입구에서 부터 붐비는 상춘객들로, 등산로는, 캐나다에서 Trail Walk하면서 느끼는 한가로움은 전연 느낄수 없이, 행여나 일행을 잃어 버리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은, 우리 한국만의 특이한 상황을 접했다.

어렸을적, 역사시간에 배운, 고구려의 연개소문장군을 기억하고 있다.  그장군에 대한 비문이 등산로의 한켠에 커다랗게 새겨져 있는것을 보고, 몇번이나 읽고 또 읽었다.  넓은 만주벌판의 어느곳에서 태어났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었던 나의 인식을 송두리째 바꾸어주는 내용이 자세히 적혀 있었다.  구전으로 이곳 강화도에서 태어난것으로 이어져온 전설을 지금은 이렇게 비문에 새겨 후세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있었다.  또한 그분은 장수이자 정치가이기도 했단다.
진홍색 진달래꽃밭의 화려함 뒤로 보이는 희미한 산봉우리는, 한강 하구 건너에 있는 이북지역이라고 설명해준다.  아래 사진역시 지척에 있는 평야지대 건너가 이북땅이라고 한다.

일행은 정상에 올라, 오늘의 이잊지못할 추억을 요술상자에 집어 넣기위해 바쁘게 움직였다. 나도 그속에 섞여, 조그만 요술상자에 많이 집어 넣었었다.


정상에 까지 계단과  Guard Rail을 설치해 놓은 당국에 감사한 마음이다.  안전을 중시하고 인명을 중시 한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조국 대한민국이 살기 좋아진 나라임을 증명해주는 바로 미터임을 나는 잘 알고 있다.  앞서 거쳐온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여행지에서 겪었던 관광지에서의 안전사고 방지를 위한 아주 열악한 Security System과 자연적으로 비교를 하지 않을수 없었다.

http://lifemeansgo.blogspot.ca/2017/04/46-mt-bromo-bromo-volcano-bali.html



자리를 펴고 점심을 먹을 준비를 대원들을 하고, 각자 준비해온 음식들이 마치 진수성찬같아 보인다. 푸짐하다.  나도 Mrs Oh께서 준비해준 점심이 나의 Back Pack에 잔뜩 들어 있었었다. 주위 대원들이 권하는 음식 하나씩만 받아 감사한 마음으로 먹었는데, 배가 꽉 차서, 내것은 미쳐 꺼내지도 못하고 말았다.  조직생활을 많이 한 대원들이어서 각자 알아서 서야할곳, 앉아야 할곳을 금새 알아서 처신하는 민속함속에서, 이들의 젊었을때의 노고를 잠시 또 생각해 보지 않을수 없었고, 이들의 노력과 희생으로 나는 오늘 편한 산행을 하면서, 진홍색 진달래꽃의 향연을 즐기고 있는 것이다.  조국은 이들의 노고를 절대 잊어서는 안된다.
조국수호를 하다 전사한 역전의 용사들을 돌보기 보다는 오히려 내팽개치고, 일본으로 비행기타고 날아가, 축구구경한, 지금은  6 Feet under에서 영생하고 있는 그런 Commander in Chief 같은 사람이 국가를 이끌어서는 안된다는 강한 신념이, 오늘 다시 마음속에 일어났고, 예상치 않았던 대통령 보궐선거에서 나타난 여론에 의하면, 그와 비슷한 후보가 여론조사에서 일등을 하고 있다는 보도에 잠시 머리속에서 혼돈이 일어나는 괴로움을 느꼈었다.  조국의 앞날에 구름이 끼고 있는것 같은 안타까움이 더해진다.

고구려 장수왕 4년에  한불교 승려가 인도에서 이곳까지와서, 고려산 인근에 사찰들을 건축하기위한 장소를 찾았었다고 한다.  그는 고려산 정상에서 다섯가지의 색상을 한 연꽃잎을 뜯어 입으로 불어 허공에 날렸다고 한다. 떨어진 연꽃잎의 색갈에 따라, 백색연꽃이 떨어진곳에는 백련사, 흑색연꽃떨어진곳에는 흑련사, 적색은 적석사, 황색은 황련사, 청색은 청련사라 이름을 부쳐 주었다고 한다.  그러나 청련사는 승려가 원하는 곳에 떨어지지 않아, 원통해한 나머지, "원통함"이라는 사찰을 지어 현재 3개의 절과 암자를 지어 그때로 부터 수천년의 역사를 지켜오고 있으며, 그래서 이연못을 "오련지"로 부르고 이산을 "오련산'으로, 그리고 5개의 사찰을 묶어 "오련사"라고 후세의 우리들은 부르고 있단다.  오련산은 고려가 강화로 천도하면서, "고려산"으로 개명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는 설명이다.  조그만 연못옆에는 "고려산오정"이라는 비석이 그의미를 더해주고 있었다.



산행을 마치고, 일행은 야외식당에 모여, 시골식당 주인장의 푸짐한 부침갱이와 푸짐한 반찬을 곁들여, 우리 조국의 자랑인 "곡주"로 갈증을 해소하면서, 또다시 다음 기회를 약속하기도 했다. 이친지들과 함께한 오늘의 산행, 오래 기억속에 보관하게 될것이다.  알콜을 즐겨하지 않은 내가 요며칠 사이 매일같이 곡주를 마셨다.  싫으면 절대로 마시질 않았을텐데.....곡주는 주로 사찰의 스님들이 즐겨 부르는 "막걸리"를 뜻한다고 해서 나도 사용해 본것이다.
뜻깊은 산행에 동참할수 있게 해준 친지 Mr. Oh와 친구분들께 고마움을 이지면을 통해서 한다.  언제 일지는 몰라도 다시 이런 기회가 올수 있다면...... 아쉬운 마음 안고, Goog Bye를 해야만 했다.  만남은 어차피 헤여짐을 전제로 한것이니까..... 모두들 건강 하시기를....

Saturday, September 06, 2014

목장의 젊은 친지들과 소통, Camp Fire 할수있는 축복 - 오래 기억될것이다.

세대와 나이차이를 떠나 비교적 교류를 많이 하고 있는 목장의 친구들이 일부는 오후 해가 있을때 도착 했는데 또 일부는 서산의 해가 사라진뒤 오후 늦게야 Cottage에 도착하여 바로 Camp Fire를 하게 되는 순서가 바뀐 시골 나들이의 첫날밤이 그렇게 시작됐다.  이에 앞서 늦은 점심겸 첫날 저녁식사를 서둘러, 재빠른 여자 회원들의 수고로 고기굽고 풍성한 식탁도 금새 만들어졌다.

 금새 BBQ그릴에 불을 지피고, 두유를 곁들여 먹기에는 최고인 삼겹살을 굽는 냄새가 시선을 그곳으로만 집중하게 하고도 남는다. 회원 P가 두유라고 불러서 처음에는 두유까지 준비해 왔었나?라고 고개를 갸우뚱 했었는데, 금방 그뜻을 알수 있었다.  N 회원이 며칠간을 수고하여 5병을 준비해온 것이었는데, 맛이 온몸에 전율이 일게 한다.  그들 부부의 성의에 두유맛은 갑절로 더 짜릿함을 나게 해준다.
 식탁에는 한가지씩 차곡 차곡 회원들의 입을 즐겁게 할 음식들이 펼쳐지고 있고, 여자회원분들은 바쁘게 손길을 움직인다.


 드디어 잔뜩 차려진 Buffet식 식탁에는 먹음직 스러운 김치병이 시선을 끈다.
 P는 냄새를 맡고 몰려드는 파리떼들을 쫒기에 라켓을 이용하여 후려친다.  사실은 라켓이 아니고 모양만 비슷한 전자식 파리채인것이다.  여기에 파리가 걸리면 금새 통닭구이처럼 태워 버린다.  파리로 부터는 이제 안심해도 될것 같다.





 부모와 아이들간에 세대 차이가 나는것은 여기서도 보인다.  아이들은 자기네들끼리 모여서 그들만의 살아가는 얘기 그리고 세상얘기에 열중하는 모습이 진지해 보인다.



 먹을때는 모두가 좋아 하지만, 그후에 Dish washing하는것은 모두가 환영하는일은 아니다.
행여라도 Lunar가 그릇을 씻을까봐, 여자회원분들이 숫갈 떼기가 무섭게 자리를 잡고, 수많은 그릇들을 비누물에 담그어 씻어내고 있다.  그분도 분명 쉬러 왔는데.....


 앞서 얘기한데로, P가 열심으로 모닥불을 환하게 지피기에 열중이다.  처음 불지필때는 지난주내내 비가내려 젖어있는 나무들이 잘 타게 될까 마음을 조리기도 했지만, 예상과는 달리 불길이 잘타올라 무척 쉬웠다.  지금 태우고 있는 나무가지들은 지난 겨울의 눈사태때 부러져 지붕위에 쓰러져 있던것들을 정리해 두었다가 지금 회원들이 불장난 하고 있는것이다.


 며칠전 N으로 부터 목장 식구들이 Cottage에서 목장 훈련도 하고 Fellowship도 하고 또 다른 목적은 목장식구중 C회원이 생업을 찾아 토론토를 곧 떠나는데 송별회도 겸해서 하고싶은데 혹시 다른 선약은 없는지? 아니면 가능한지?를 묻는 전화가 왔었다.  젊은 친구들이 생업에 종사 하느라 무척 바쁜 시간을 보내면서 모처럼 Long weekend를 맞아 쉬겠다고, 또 그렇게 바쁘게 살아가는 와중에서도, 생업찾아 목장회원들을 뒤로하고 아쉬운 작별을 하게되는 C부부를 환송회로 위로하고 격려 해주겠다는 그마음씀이 오히려 내마음을 찡하게 하는데, 다른 이유를 달고 어쩌고 할 필요가 없이, OK라고 대답했었었다.
 우리 부부가 혹시라도 버거워 할까봐 먹을것들을 거의 완벽하게 준비해서, 우리 부부는 오히려 그들과 어울려 쉽게 식사를 해결하는 보너스(?)를 얻어 더 좋았었다.  P회원에게 Camp Fire를 일부러 책임(?)지게 하고 모닥불을 관리 하라고 했었는데,  이친구 나보다 더 불을 잘 피우고 관리하는 폼이 처음 해보는게 아닌것을 금방 알수 있었다.

 밤새도록 모닥불 피워놓고 Sing along을 할수 있는 장작은 충분했었으나, 이기회다 싶어 다쓰러져 가는, 시골의 원두막 처럼 버티고 서있는 빨래 건조대를 때려부셔 다 모닥불 장작으로 사용해 보면 어떨까?하고 슬며시 Job order(?)를 주었더니,  웬걸 물고기가 물을 만난듯이, 쉽지 않은 나무판자하며 기둥들을 잘도 잘라내어 불을 잘피워서 내마음을 시원하게 해준다.  보기흉했던 모형물이 깨끗히 치워진 셈이다.


 "Honk Twice 4 Help" 이사인은 여름 내내 나를 크게 도와 주었던 고마운 징표다.  오늘 저녁이 지나면 내일은 금년시즌, 장작파는일은 종을 치게 된다. 만약에 이시간 이후에 Camper가 와서 구입해 가면 하루 더 일찍 이Sign은 떼어 낼것이다.  그리고 Skid은 뒷편에 있는 Terrace에 보관 시킬것이다. 내년에 다시 이용할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모처럼 경직된 자세를 취하고 모두가 모여 사진을 찍겠다고 자세를 취했는데, 나를 가운데 굳이 앉혀 좀 어색함을 느끼기도 했지만, 전체 분위기인것을 굳이 고집피우고 피한다는게 깨는것 같아 자세를 취했다.  입은 샤쓰도 유독 빨간색이어서 좀..... 그런생각이 들기도 했었다.

 P는 그동안은 별로 접촉이 없었고, 겨우 마주치면 인사정도만 하곤 했었는데,  지금까지 곁에서 보고 느꼈던 그에 대한 나의 생각을 완전히 바꾸어 놓는, 듬직함을 모닥불 피우는데서 발견하면서, 더 많은 대화를 하게 됐다.  많은 말도 하지 않으면서 한마디씩 툭 던지는 그의 재치는 Camp Fire에 둘러앉은 회원들과 같이 온 어린 아이들까지 폭소의 장으로 이끈다.  삶의 뒷면에 짙게 서려있는 어려움을 전연 내색하지 않고 좌중을 표나지 않게 이끌면서 즐겁게 해주는 그를 다시보게됐다.
 그러나 Sing along은 미안하게도 할수가 없었다.  일부 회원들이 제의를 했지만 내가 말렸기 때문이다.  옆집들의 수면에 방해가 되면 말썽을 일으킬수도 있는 민감한 사항이기에 아쉽지만 대화를 나누는것으로 족해야 했던점이 조금은 아쉬운점으로 남는다.
 토론토을 떠나는 C 회원도 정겨운 친구다.  어찌보면 그의 부부는 이번 사업이 은퇴전의 마지막 기회일것으로 나는 느끼고 있다.  모쪼록 건강도 챙기면서 잘 이끌어 갔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그의 뒤에서 그림자처럼 동행하는 부인도 믿음직 스럽다.  Lunar는 식사를 하지 않고 회원들이 준비해온 식사를 같이 먹게 되여 편하게 됐다고 웃으면서, 그가 이른 봄부터 애지중지 정성들여 만들었던 그녀 특유의 된장을 이용하여 끓인 된장국을 곁들인다.  회원들 모두가 된장국의 맛에 환성을 지른다.  인생 조금 더 살아온 경험이 묻어나는 순간같다.

 L은 평소의 습관데로 회원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Cell Phone 카메라에 담는데 여념이 없이 바쁘게 움직인다.  그의 부부은 이곳에 도착 했을때는 같이온 어린 두아이들중 하나가 Food Allergy로 고생을 했기에 염려를 많이 하는것을 보았다.  위아래 입술이 퉁퉁 부어 무척 고생을 했는데, 지금은 거의 가라앉아 계속 주시하고 있다고 고충을 토로하기도 했었다.  상태가 좋아져서, 이제는 사진찍는데 정신을 쏟고 있어 다행이다 싶다.





 K회원은 목장 모임에도 시간내기가 무척 어렵다는 친구다.  항상 엄마만 모임에 참석하고, 아빠는 일만 하기에 이를 안타까히 여긴 아들녀석이 아빠에게 간절히 청을 넣었더니 이를 받아들이고, 이번 long weekend를 즐기기위해 사업장 문을 아예 하루 닫는 용기를 내어 참석하기로 아들과 약속하고, 엄마와 아들은 다른 회원차에 동승하여 벌써 왔었고, 늦게까지 하루의 일을 마치고 늦게 도착한 일꾼인것 같다.  아들의 청을 들어주는 아빠, 아이의 Allergy때문에 걱정을 하는 요즘의 부모들과 우리세대때 아이들 키웠던 사고방식은 무척 다르다는것을 오늘 깊이 느꼈다.  자식사랑하지 않을 부모가 없는것은 누구나 똑같이 느끼는 점이겠지만, 표현의 방법이 다르다는것을 오늘 새삼 느낀다.
 아빠가 도착 하기를 무척 기다렸다는듯이 아들녀석이 곁에 딱 붙어서 떨어지지를 않는다. 피를 나눈 혈육의 정이 이런것이구나 하고 다시 생각해봤다.  괜히 지금은 다 장성하여 따로 살고 있는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혼자서 먹는 늦은 저녁을 감칠나고 맛있게 먹고 있는 K의 모습을 아들녀석은 바로 옆에서 하나도 빼놓치 않고 응시하고 있는 모습도 보기 좋았다.
Sing along이 없는, 이곳 캐나다의 전형적인 Camp Fire였지만, 오랫만에 회포를 푸는 모닥불놀이에 시간이 흘러가는줄도 모른다.  남녀회원 구분없이 여기에 옮기지 못할 걸직한 대화속에 웃음소리는 더 커진다.  결혼생활을 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이해하기가 어려운(?) 만담같은 이야기 들이다.  준비해놓은 장작과 다쓰러져 가는 원두막 모양의 빨래대의 널판지와 기둥을 다 불태웠을때는 한밤중의 1시30분경을 지나고 있었다.  하루종일 일했던 피로감이 겹쳐 있을텐데도 그런 기색은 전연 찾아볼수 없이, 잠시 세상사 다 잊고 즐거워하는 이들 젊은 친구들의 모습에서 이들 목장회원들의 평소친교를 미루어 짐작할수 있을것 같다. 이들과 어울려 금방이라도 쏟아져 내릴것 같은 수많은 별들을 올려다 보면서 담소하는 이순간을 오래 기억하고 싶다.
 이른 아침 둘러본, Cottage에 머무는 여름동안 내가 일했던 일터가, 이제는 텅비어있다.  Fire Wood를 Camper들을 상대로 오후에 장작을 팔았었다.  오전중에는 Lunar와 함께 골프를 하는것으로, 그렇게 별장에서의 하루는 지나가고, 또 여름동안의 시골생활은 이어졌었다.  멀리는 유럽에서, 또 퀘백에서 많이들 이곳 공원, Presqu'ile Provincial Park에 휴가를 온다.  이들과 살아가는 얘기를 하다보면 때로는 장사는 뒷전인것을 뒤늦게 느낄때가 한두번이 아니었었다.  그런데 오늘로  Closing for the season한다.  여름의 끝자락에 있는 Labour day가 끝나가는 오후의 공원입구는 적막강산으로 보인다. 너무나 쓸쓸함이 그렇게도 붐볐던 어제와는 너무도 대조적이다.  학교는 내일부터 새학년이 시작되고, 부모들은 일터로 갈것이다.


 교통이 조용해진 틈을 타서 귀여운  Robin한마리가 길가에 세워진 Guide Pole위에 앉아 여유롭게 주위를 살피는 모습과 목장회원들이 어젯밤 늦게까지 Camp Fire하면서 세상사 잠시 잊고 즐거워했던 광경이 겹쳐서 나의 뇌리를 스친다.  회원들에게 신선한 청량제가 됐으면 한다.
N과 P가 지금 막 No Frill에서 사온 생일 Cake에 생일용 양초를 꽂고 있다.  어젯밤 늦게 도착한 K회원의 생일이 오늘임을 잊지않고 준비한 것이다. 이들이 아침에 차를 타고 Up Town에 가는것을 보았는데 약 10분쯤후에 전화가 왔었다. 찾아간 Super Market은 아직 Open안해서, 다른 곳에 있는  Super Market, No Frill의 위치를 알려 달라는 내용이어서 그곳에서 얼마 안떨어진 곳에 있는 그곳을 알려 주었었다.

 여자회원들과 아이들을 인솔하여 공원안의 Marsh Board Walk을 다녀온뒤 늦은 아침을 모여서 먹는 시끄러운 순간이다.  Lunar는 이들과 함께 걸었고, 나는 게으름(?)피우는 남자회원들과 다시 이른 아침부터 Camp Fire를 하고 있다가 늦은 식사를 하는 것이다.
 부엌에서 편하게 여성회원분들이 식탁에 모여 앉아 그동안 못다한 삶의 얘기들을 나누기에 무척 바빠 보인다.   별로 환영받지 못할 엉뚱한 행동과, 고집을 부리곤하는 남편들을 묵묵히 뒤에서 어린아이 돌보듯하면서 같이 살아온 그녀들의 마음속에 왜 할말이 없었겠는가.  충분히 이해를 하고도 남는다.  마음껏 떠들고 속에 있었떤 찌꺼기들을 모두 입으로 토해내고 새로운 에너지를 충전하고 그들만의 삶의 터전으로 돌아가기를 우리 부부는 바랬다.

 남자회원들을 붙잡아다(?) 농사일을 해보라는 뜻에서 잡풀이 수북히 자라고 있는 텃밭을 갈아 엎으라고 삽들을 하나씩 나누어 주고 운동하라고 했는데, 그모습들이 천태만상이다.  어떤 친구는 삽질을 해본 경험이 없었음을 금방 알수 있을 정도로 서툴렀고.....  그래도 이마에 땀을 흘리면서 나름데로 열심인것을 보면서 이들도 삶을 살만큼 살았구나 라는 느낌을 받았다.
 이텃밭은 지난 가을에 마늘( Garlic)을 파종하여 예상치도 않게 풍부한 수확을 했었던 밭이다.
재미삼아 처음 파종했던 지난 가을, 토론토에 철수 하기전에 큰기대도 하지않고 모양이 좋은 통마늘 몇개를 물에 불려서 한쪽씩 쪼개 땅에 묻고 갔었다.  이번 5월말경에 다시 와보니 연한 연두색의 마늘 Shoot들이 고개를 쳐들고 세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곳은 모래 땅이라서 별로 기대를 안했었는데, 이번 여름에 이상기온으로 많은 비가 내려, 토론토의 여러 친구들이 마늘농사 다 망쳤다고 하소연을 들은일이 있었는데, 우린 박토인 모래 땅이라서 배수가 잘되 예상치도 않은 수확을 한것인데, 실제로 마지막 수확은 별로였었다.  풋마늘 상태로 있을때 나도 뽑아먹고, 너도뽑아먹고....
 이번에 다시 또 이곳에 마늘을 파종할 계획인데, 이번에는 이들 남자회원들이 함께 땀을 흘렸으니 내년에 수확시에는 그들에게도 지분(?)을 나누어야 되지 않을까?  두고보자.
 N에게 일부러 호박넝쿨속에 숨어서 매달려 있는 호박을 직접 수확해보라는 기회를 줬더니, 잘 하긴 했는데 웬걸 자세히 들여다 봤더니, 아직 엄마의 젖냄새도 사라지지 않은 어린 호박도 따버린 사고(?)저지른 것이다.  도시에서만 살아온, 그래서 시골에 대한 무지함을 그대로 보여준 꼴이 된것이다.  미쳐 자라지도 못하고 세상을 하직한 어린 호박의 삶이 안타까웠지만, 그동안  N과 삶에 대한 여러얘기와 고민을 나누었던 긴시간에 비하면, 그까짖 '새끼호박 왜 땃어'라고 한마디 던질 이유가 하나도 없었다.  N은 그져 머리만 긁적 거린다.
 Lunar가 P, K에게 이른 저녁에 먹게될 저녁식사때 된장에 찍어먹을 고추를 직접 따보라고 권했더니, 좋아하면서 고추밭으로 들어간다.  고추를 만져봐서 단단한 것으로만 골라서 따라는 부탁을 한다.  P가 그렇게 하겠다고 하면서 한마디 덧붙힌다.
"내것보다 작은것으로만 골라서 딸께요"라고.
P의 것이 어떤 모양이며 또 크거나 작은지를 나는 모른다. 그들이 따온 고추를 보면 무척 컷었는데, 그의 순발력에 그래서 또 웃지 않을수 없었다.

 다시 내일은 일터로 되돌아가야 하기에 이른 저녁을 먹기위해 다시 아이들을 포함한 회원친구들이 식탁앞에 모였다. 여자회원님들의 수고로 음식은 산해진미로 쌓인것을 본다.  그중에서도Mrs N과 C의 재빠른 손놀림에 식탁은 더 풍성해진것을 본다.  C 가 감사와 식탁에 둘러 서있는 모두에게 윗분의 한없는 축복이 내려지기를 기원한후 식사를 한다.  이들이 다 떠난 뒤에는 다시 이곳  Cottage는 나와 Lunar 둘만의 생활공간속의 일상으로 돌아갈것이다.  내일 아침에는 다시 아침 일찍부터 골프장으로 달려가 클럽을 휘두를것이다.   젊은 친구들과 아이들 모두가 제자리에서 확고한 삶의 터전을 쌓았으면 하는 바램을, 되돌아가는 차량들의 행렬이 보이지 않을때까지 바라보면서 간절히 염원해 주었다.  또 우리 부부는 젊은 친구들과 어울릴수 있는 남다른 축복을 많이 누리고 있음을 깊이 느끼면서, 뒤에서 항상 부족함이 없도록 준비해주고 어울려 준 Lunar에게도 감사해 하지 않을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