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한국사회를 들여다 보면, 국민들의 삶의 수준이 세계 선진국들과 견주어, 모든면에서 동등한 위치에 있거나 앞서고 있다고 나는 자부한다.그렇치만 정치와 외교면을 보면, 한심하기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개판이다. 정말로 사기 선동꾼들의 집합소같다는 생각이다.
들리는 말로는, 여의도 국회의사당을 점령하고있는 국회의원들의 상당수가 범죄기록이 있다는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때도 정치가 후진국인 아프리카의 Ethiopia보다 더 수준이 낯아서, 대통령의 정책에 반대를 해서 고통을 많이 받았었는데, 정치꾼들의 주장은 박정희 대통령이 독재를 해서 국민들을 못살게 한다는 논리였었다.
먼 훗날의 후손들이 배고픔없이 잘사는 나라를 만들기위해서는 일부의 자유도 유보해야 함을 경험으로 잘 알고 있었던 박대통령은, 반대만 일삼은 일부 선동적인 정치꾼들의 외침에 개의치 않고, 경제건설과 국가안보에만 심혈을 기울였었다.
GNP 70달러에 불과했던 불모의 땅이나 다름없었던 빈국이었던 한국에서 처음으로 1억달러 수출의 실적을 올렸을때, 그감격은 국가적 축제무드 였었다. 나는 그감격을 뉴스를 통 해 보면서, "대통령의 말씀데로, 우리도 할수있다"라는 자긍심을 볼수 있었고, 작은 영역을 담당 하는 말단 공무원이었지만, 맡은바 임무를 충실히 이행하는것이 박정희 대통령이 바라는 살기좋은 나라, 안보가 튼튼한 나라를 만드는데 일조한다는 신념속에서 내자리를 지켰었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가슴이 뜨겁게 뛰는것 같은 느낌이다.
박정희 대통령의 용단으로 넓은 여의도 땅에 터를 닦고, 현대식 국회의사당을 건축했다.
http://lifemeansgo.blogspot.com/2019/11/blog-post_75.html
https://lifemeansgo.blogspot.com/search?q=%EB%B0%95%EC%A0%95%ED%9D%AC%EC%98%81%EB%8F%84%EB%A0%A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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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의 국회의원들 역시, 지금의 국회 정치꾼들처럼 모였다하면, 치고 박고하는 난장판의 광대들과 다름없는, 당리 당략에 빠져 국민들을 위한 정치는 뒷전이고, "독재를 청산하고 자유를 달라"라는 구호아래 정권규탄하는 선동적 데모에만 온힘을 쏟았지만, 대부분의 국민들의 반응은 차거웠었다. 배고픔의 아픔을 깨달았었기에, 먹을것 없어 부황이 들어 얼굴이 누렇게 뜬 병자로 있는것 보다는, 먹을것을 생산할수있는 직장과 삶의 터전을 건설하고 창출하는게 먼저인것을 절감했었다. 선동꾼들이 선동했던, "독재정부"때 보통 시민들의 생활은 크게 불편한게 없었다. 선동꾼들이 부르짖었던 "자유"라는게 어떤 것인지는 잘 몰랐어도, 보통 시민으로 살아가면서, 퇴근후 친지들과 어울려 막걸리도 마셨고, 시국돌아가는데 의견도 나눌수 있었고, 배고픔의 아픈 과거를 잊을수 있었고....
그래도 박정희 대통령은 먼훗날을 내다 봤을때 의회민주주의가 한국에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것을 일찍히 간파했기에, 그어려운 와중에서도, 여의도에 국회의사 당을 건축하도록 계획을 세워 밀어부쳐, 진정한 자유대한민국의 국민들이 선출한 국회의원들이 자유롭게 토론하면서, 국가 장래의 안정된 경제정책과 국가안보를 토론하기위한 전당을 넓고 안락하게 만들었었다.
장차 남북이 통일됐을때를 대비해서 상하의원제도시 불편없이 사용하고, 국정논의의 장이 될수있도록, 구만리 혜안으로 오늘 여의도에서 보는 민의의 전당을 일찌기 70년대 중반에 완성했었다.
지금의 여의도 정치사기꾼들, 특히 여당 촛불집단의 행패가 민의의 전당안에서 매일같이 일어나 고 있는 광경을 지하에서 보신다면, 얼마나 통곡하실까? 그져 미안한 마음뿐이다.
화강 암 기둥으로 장식된 24개의 돌기둥은 우리나라의 뚜렷한 24절기를 뜻한다는 설명에, 그렇게 세밀하게, 길지않은 일년 365일을 다시 24절기로 쪼개어 국민을 하늘처럼 떠받들어 정치하고 국론을 토론하고..... 그염원이 지금 좌파 문재인 정권이 들어서면서 서서히 시들어져가고 있어 더욱 안타깝기만 하다.
촛불 여당 구케의원들은, 겨울이면 따뜻하고 여름이면 시원하게 Air Cond도 틀어주면서, 국사를 돌보라고 좋은 건물을 지어서 사용하게 해줬는데, 여야 통털어서 어느 한놈 국회의원들중에서, 공적자리건 사적자리건간에 그고마움을 나타낸자 한명없는것 까지는 그런데로 이해하겠으나, 박정희 대통령의 사심없었던 국가경제개발과 국방안보의 질을 높인점에 대해서는 고맙다는 한마디 언급없으면서, 독재했다고 폄하를 하는데만 목에 핏대들을 세우고 지랄발광들이다.
그때 박정희 대통령의 용단이 없었다면, 지금도 서울시청 옆건물의 옛시공관을 사용하면서, 보릿고개의 배고픔을 한탄만 하고 있었을 것이다. 모든일에는 시작이 반이라는 옛어른들의 말씀이 떠오른다. 박정희 대통령께서 Foundation을 잘 만들어 주셨기에 그다음에는 큰 어려움없이 오늘의 잘사는 나라를 만들수 있었다.
http://lifemeansgo.blogspot.com/2019/10/blog-post_19.html
다만 한심하고 억울한것은, 배은망덕한 백성들의 한눈팔이에, 정권을 악마같은 좌파 흡혈귀들에게 넘겨주면서, 다시 한국은 격랑속에서 헤어나질 못하고, 좌초위기에 처해있음이 너무도 걱정된다. 문재인을 중심으로한 좌파찌라시들이 집권후 단 한가지만이라도 잘한것 있으면 열거해 보라고 외쳐본다.
정치꾼들, 즉 문재인 정부와 춧불국회가 조금만 국가를 위한 정책을 세워 이끌어 간다면, 장담하건데 한국은 세계일등국가인 스웨덴, 스위스보다 더 잘사는 알뜰한 나라가 됐을 것이다.
세계무대를 휘젖고 있는 K-Pop, Koica대원들의 국제적 봉사활동, 이들의 활동은 전부 NGO다.
조선산업, 철도현대화의 앞선기술, 세계최첨단의 IT기술, 자동차 산업 등등... 여기에 정치만 적어도 3등정도만 해줘도, 세계일류국가진입은 가시권에 들어있다고 자신한다.
들리는말에 의하면, 이러한 여의도 흡혈귀들, 특히 춧불 여당 정치꾼들이 꼼수를 부려, 의원수를 늘리겠다는 작당을 하고 있단다. 의원수가 부족해서 나라일을 못했었나? 예산도 마구잡이로 좌파정부에서 요구하는데로 다 통과시켜줬더니, 남은 예산이 55조원이란다. 이걸 다 쓰겠다고 귀중한 국민들의 혈세를 쓰레기 버리듯이 끼리끼리 지역구에 나누어 주고 먹겠다고 하니...이러고도 이자들이 국민들이 대변자 맞는가?
그 뒤 1975년 8월 15일에 현재의 여의도 의사당이 준공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의 의사당 건물은 1968년 제7대 국회에서 의사당 부지를 선정한 뒤 1969년 7월 17일 제헌절을 맞아 기공식을 가졌다.
본회의장과 위원회 회의실을 비롯하여 국회기관인 의장실·부의장실·교섭단체실과 소속기관인 국회사무처·국회도서관 및 부속시설인 의장공관·의원회관 등의 건물을 말한다.
들리는 말로는, 여의도 국회의사당을 점령하고있는 국회의원들의 상당수가 범죄기록이 있다는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때도 정치가 후진국인 아프리카의 Ethiopia보다 더 수준이 낯아서, 대통령의 정책에 반대를 해서 고통을 많이 받았었는데, 정치꾼들의 주장은 박정희 대통령이 독재를 해서 국민들을 못살게 한다는 논리였었다.
먼 훗날의 후손들이 배고픔없이 잘사는 나라를 만들기위해서는 일부의 자유도 유보해야 함을 경험으로 잘 알고 있었던 박대통령은, 반대만 일삼은 일부 선동적인 정치꾼들의 외침에 개의치 않고, 경제건설과 국가안보에만 심혈을 기울였었다.
GNP 70달러에 불과했던 불모의 땅이나 다름없었던 빈국이었던 한국에서 처음으로 1억달러 수출의 실적을 올렸을때, 그감격은 국가적 축제무드 였었다. 나는 그감격을 뉴스를 통 해 보면서, "대통령의 말씀데로, 우리도 할수있다"라는 자긍심을 볼수 있었고, 작은 영역을 담당 하는 말단 공무원이었지만, 맡은바 임무를 충실히 이행하는것이 박정희 대통령이 바라는 살기좋은 나라, 안보가 튼튼한 나라를 만드는데 일조한다는 신념속에서 내자리를 지켰었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가슴이 뜨겁게 뛰는것 같은 느낌이다.
박정희 대통령의 용단으로 넓은 여의도 땅에 터를 닦고, 현대식 국회의사당을 건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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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의 국회의원들 역시, 지금의 국회 정치꾼들처럼 모였다하면, 치고 박고하는 난장판의 광대들과 다름없는, 당리 당략에 빠져 국민들을 위한 정치는 뒷전이고, "독재를 청산하고 자유를 달라"라는 구호아래 정권규탄하는 선동적 데모에만 온힘을 쏟았지만, 대부분의 국민들의 반응은 차거웠었다. 배고픔의 아픔을 깨달았었기에, 먹을것 없어 부황이 들어 얼굴이 누렇게 뜬 병자로 있는것 보다는, 먹을것을 생산할수있는 직장과 삶의 터전을 건설하고 창출하는게 먼저인것을 절감했었다. 선동꾼들이 선동했던, "독재정부"때 보통 시민들의 생활은 크게 불편한게 없었다. 선동꾼들이 부르짖었던 "자유"라는게 어떤 것인지는 잘 몰랐어도, 보통 시민으로 살아가면서, 퇴근후 친지들과 어울려 막걸리도 마셨고, 시국돌아가는데 의견도 나눌수 있었고, 배고픔의 아픈 과거를 잊을수 있었고....
그래도 박정희 대통령은 먼훗날을 내다 봤을때 의회민주주의가 한국에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것을 일찍히 간파했기에, 그어려운 와중에서도, 여의도에 국회의사 당을 건축하도록 계획을 세워 밀어부쳐, 진정한 자유대한민국의 국민들이 선출한 국회의원들이 자유롭게 토론하면서, 국가 장래의 안정된 경제정책과 국가안보를 토론하기위한 전당을 넓고 안락하게 만들었었다.
장차 남북이 통일됐을때를 대비해서 상하의원제도시 불편없이 사용하고, 국정논의의 장이 될수있도록, 구만리 혜안으로 오늘 여의도에서 보는 민의의 전당을 일찌기 70년대 중반에 완성했었다.
지금의 여의도 정치사기꾼들, 특히 여당 촛불집단의 행패가 민의의 전당안에서 매일같이 일어나 고 있는 광경을 지하에서 보신다면, 얼마나 통곡하실까? 그져 미안한 마음뿐이다.
화강 암 기둥으로 장식된 24개의 돌기둥은 우리나라의 뚜렷한 24절기를 뜻한다는 설명에, 그렇게 세밀하게, 길지않은 일년 365일을 다시 24절기로 쪼개어 국민을 하늘처럼 떠받들어 정치하고 국론을 토론하고..... 그염원이 지금 좌파 문재인 정권이 들어서면서 서서히 시들어져가고 있어 더욱 안타깝기만 하다.
촛불 여당 구케의원들은, 겨울이면 따뜻하고 여름이면 시원하게 Air Cond도 틀어주면서, 국사를 돌보라고 좋은 건물을 지어서 사용하게 해줬는데, 여야 통털어서 어느 한놈 국회의원들중에서, 공적자리건 사적자리건간에 그고마움을 나타낸자 한명없는것 까지는 그런데로 이해하겠으나, 박정희 대통령의 사심없었던 국가경제개발과 국방안보의 질을 높인점에 대해서는 고맙다는 한마디 언급없으면서, 독재했다고 폄하를 하는데만 목에 핏대들을 세우고 지랄발광들이다.
그때 박정희 대통령의 용단이 없었다면, 지금도 서울시청 옆건물의 옛시공관을 사용하면서, 보릿고개의 배고픔을 한탄만 하고 있었을 것이다. 모든일에는 시작이 반이라는 옛어른들의 말씀이 떠오른다. 박정희 대통령께서 Foundation을 잘 만들어 주셨기에 그다음에는 큰 어려움없이 오늘의 잘사는 나라를 만들수 있었다.
http://lifemeansgo.blogspot.com/2019/10/blog-post_19.html
다만 한심하고 억울한것은, 배은망덕한 백성들의 한눈팔이에, 정권을 악마같은 좌파 흡혈귀들에게 넘겨주면서, 다시 한국은 격랑속에서 헤어나질 못하고, 좌초위기에 처해있음이 너무도 걱정된다. 문재인을 중심으로한 좌파찌라시들이 집권후 단 한가지만이라도 잘한것 있으면 열거해 보라고 외쳐본다.
정치꾼들, 즉 문재인 정부와 춧불국회가 조금만 국가를 위한 정책을 세워 이끌어 간다면, 장담하건데 한국은 세계일등국가인 스웨덴, 스위스보다 더 잘사는 알뜰한 나라가 됐을 것이다.
세계무대를 휘젖고 있는 K-Pop, Koica대원들의 국제적 봉사활동, 이들의 활동은 전부 NGO다.
조선산업, 철도현대화의 앞선기술, 세계최첨단의 IT기술, 자동차 산업 등등... 여기에 정치만 적어도 3등정도만 해줘도, 세계일류국가진입은 가시권에 들어있다고 자신한다.
들리는말에 의하면, 이러한 여의도 흡혈귀들, 특히 춧불 여당 정치꾼들이 꼼수를 부려, 의원수를 늘리겠다는 작당을 하고 있단다. 의원수가 부족해서 나라일을 못했었나? 예산도 마구잡이로 좌파정부에서 요구하는데로 다 통과시켜줬더니, 남은 예산이 55조원이란다. 이걸 다 쓰겠다고 귀중한 국민들의 혈세를 쓰레기 버리듯이 끼리끼리 지역구에 나누어 주고 먹겠다고 하니...이러고도 이자들이 국민들이 대변자 맞는가?
그 뒤 1975년 8월 15일에 현재의 여의도 의사당이 준공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의 의사당 건물은 1968년 제7대 국회에서 의사당 부지를 선정한 뒤 1969년 7월 17일 제헌절을 맞아 기공식을 가졌다.
본회의장과 위원회 회의실을 비롯하여 국회기관인 의장실·부의장실·교섭단체실과 소속기관인 국회사무처·국회도서관 및 부속시설인 의장공관·의원회관 등의 건물을 말한다.
현재의 위치는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여의도동 1번지에 있다. 여의도를 횡단하는 너비 200m의 5·16광장에서 서북쪽으로 뚫린 도로를 통해 마주 바라보아 정면에 의사당 본관이 있고 그 오른쪽에는 국회도서관, 왼쪽에는 의원회관이 자리잡고 있어서 조형과 규모에서 조화를 이루도록 배치되어 있다.
의사당 본관은 정면에서 볼 때 화강석으로 된 너비 50m의 대계단과 기단 위에 높이 32.5m의 대열주(大列柱) 24개를 세워 건축되었다. 열주는 경회루의 석주를 본뜬 것으로, 24절기를 상징하는 동시에 국민들의 대립된 다양한 의견을 상징한 것이라 한다. 열주에 받쳐져 처마가 있고, 그 위에는 밑지름 64m의 돔이 있어 지붕을 이룬다.
돔은 원만한 결론으로 귀결된다는 의회정치의 본질을 상징한 것으로 건물에 안정감과 웅장미를 더하여준다. 총 대지면적은 33만㎡(10만평)이고, 지하 2층, 지상 6층의 건물로(한층의 높이는 5.2∼6.5m) 지반에서 기단면까지는 5.44m, 기단면에서 돔 상단까지는 63.75m, 연건평은 8만 1444㎡ (2만 4680평)이다.
의사당은 국회양원제의 실시에 대비하여 두 개의 대형 회의장이 있는데, 현재의 본회의장은 민의원 본회의장으로 쓰일 수 있는 것으로 950㎡(288평)이며, 의석은 이동식으로 4백석까지 확장이 가능하고 방청석은 350석, 기자석은 80석이다.
한편, 현재의 예산결산특별위원회의 회의실은 참의원 본회의장으로 쓰일 수 있는 것으로 의석 1백석, 방청석 250석, 기자석 40석이다.
양원 본회의장은 사방 40m인 ‘로턴다 홀’의 좌우 양측에 위치하고 홀의 천장 돔까지 장쾌한 공간으로 구성되어 의사당 전체의 구심적 대공간을 형성한다.
홀의 네 귀에는 좌대가 놓여서 장차 국가의 중흥에 기여한 지도자의 동상을 건립할 수 있도록 했다. 홀의 대리석바닥, 각층 발코니의 난간, 그릴 등은 신라에서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의 문양 중에서 전아(典雅)주 01)한 고유의 문양을 현대화한 도안으로 되어 있다.
바닥은 신라의 와당문양 중에서 길하다는 무늬를 사용하여 전국행정구역을 나타낸 도안으로서 단합을 상징하며, 석굴암 천장궁륭(활이나 무지개같이 높고 길게 굽은 형상으로 만들어진 천장)의 모양을 응용하여 주위를 깔고 외부선에는 조선시대의 내부장식에 많이 쓰인 띠문을 현대식으로 장식하였고, 난간은 근정전 꽃살무늬 창구를 현대식으로 표현하였다.
홀은 필요에 따라 옥내행사나 기념축연 등에 사용할 수 있는 크기로 하였으며, 의원식당과 로비로 통한다. 본회의장의 의석배치는 의장단을 중심으로 반원형으로 하고 의장단 오른쪽에는 의석과 나란히 국무위원석이 있다.
한편, 부속건물과 시설로서 의장공관은 의사당 본관 정면의 오른쪽에 위치하며 지하 1층, 지상 2층 구조로서 건물 높이 7.8m, 연건평 1,264㎡(383평)이다.
의원회관은 의사당 본관 정면의 도로 건너편 왼쪽에 건립된 아파트 5동을 매입하여 사용하고 있는데, 각 동 모두 5층으로 연건평 6,725㎡(2,038평)이다. 기타 부속건물로 경비대 건물과 차량정비고·온실이 있다.
경비대 건물은 지하 1층, 지상 2층으로 연건평 1,495㎡(453평)이고, 차량정비고는 지하 1층, 지상 2층으로 연건평 1,043㎡ (316평)이며, 온실은 241㎡(73평)이다.
그 동안 우리나라의 국회의사당은 처음 제헌국회가 개원된 1948년 5월 31일부터 1950년 6월 27일까지는 서울 세종로 중앙청 중앙홀이 의사당으로 사용되다가, 6·25전쟁으로 남하한 국회는 임시수도였던 대구에서 문화극장을 임시의사당으로 사용하여 이곳에서 1950년 7월 27일부터 8월 17일까지 임시회를 개최하였다.
전세가 악화되어 정부와 함께 부산으로 이동한 국회는 그 해 10월 6일까지 부산시 문화극장을 의사당으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서울이 수복되고 정부가 서울로 귀환하자 국회도 다시 중앙청 중앙홀을 그 해 11월 26일까지 사용하다가, 12월 8일부터 1951년 1월 3일까지 서울 태평로 시민회관 별관을 의사당으로 사용하였다.
1·4후퇴로 정부가 다시 부산으로 남하하자 국회는 1951년 1월 4일부터 부산극장을 의사당으로 사용하였고, 6월 27일부터는 경상남도청 무덕전을 1953년 8월의 서울 환도 때까지 의사당으로 사용하였다.
서울로 환도한 국회는 1953년 9월 27일부터 1954년 5월 제2대 국회의원 임기가 끝날 때까지 중앙청 중앙홀을 의사당으로 사용하였으며, 제3대 국회가 개원한 1954년 6월 9일부터 1975년 9월까지 다시 태평로 시민회관 별관을 의사당으로 사용하였고, 양원제가 실시된 제5대국회 때 참의원은 서울 시청 뒤 대한공론사를 의사당으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그 뒤 1975년 8월 15일에 현재의 여의도 의사당이 준공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의 의사당 건물은 1968년 제7대 국회에서 의사당 부지를 선정한 뒤 1969년 7월 17일 제헌절을 맞아 기공식을 가졌다.
공사기간 6년 동안의 총공사비는 135억 원으로 시멘트 64만 부대, 벽돌 850만 장이 들었으며, 연인원 1백만 명이 투입된 대역사로 이루어졌다.
현재 국회의원 이외에 의원보좌관·비서·사무처직원 등 2,200여 명이 이용하고 있다. 한편, 국회의사당은 잘 정리된 주위의 조경과 회색의 화강석 건물이 조화를 이루어 매년 20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고 있다.
여의도의 총 면적 80만평 중에서 국회의사당 부지는 10만평을 차지하고 있다. 건물면적은 2만 4636평으로, 지하 2층, 지상 6층 규모로 길이 122미터, 폭 81미터이다. 철근콘크리트조 건물로서, 단일 의사당 건물로는 동양에서 제일 크다.
화강암 팔각기둥 24개가 건물을 받치고 있는데, 이것은 우리나라의 24절기를 뜻하며 , 가운데에는 밑지름 64미터의 돔 형태의 지붕으로 덮여 있는데, 이것은 국민의 다양한 의견들이 찬반토론을 거쳐 하나의 결론을 내린다는 의회민주정치의 본질을 상징한다고 한다. 돔 아래는 3층의 로텐더 홀이 있으며 그 위로 지붕까지 빈 공간이다.[4]
장차 통일이 되어 국회의원 정원이 늘어날 경우에 대비해, 국회 본회의장은 좌석이 이동식으로 되어 있어 최대 400석까지 확장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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