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September 25, 2016

남한정부, 필요시 김정은 암살계획 세워두고 있다. 원치는 않지만 살아남기위해서는...

세계지도를 펴놓고, 한반도를 찾아 보라고 하면, 전연 정보가 없는 사람들은 한반도의 위치를 찾아내기위해 한참을 찾아 헤매야 할정도로 우리 조국 대한민국과 북한의 땅덩어리는 참으로 작다.  그런 한반도가 6/25 동족 상잔의 전쟁을 치르면서, 다시 둘로 갈라진지가 65주년이 돼간다.   전쟁후 남북이 이데올로기의 희생물이 되여, 모든 기간산업이 모여있었던 북쪽땅은 공산정권의 김일성 Regime에게 넘어갔고, 남쪽은, 굳이 표현한다면 호남평야 정도가 전부였다 해도 과언은 아닐정도로 가난한 빈털털이 빈곤국이었었다.

그후 남한에서는 민주주의라는 허울아래 선거를 치러 대통령을 뽑곤 했으나, 항상 부정부패가 함께 괘를 같이하여, 소위 말하는 '고무신선거, 관건선거' 등등으로 얼룩져 국민들은 더 배고픔에 시달렸어야 했었다.  춘궁기때는 초근목피에 매달려 겨우 목숨을 부지했었다. 이를 더 이상은 두고 볼수가 없어, 군인들이 쿠테타를 일으켜 부강한 나라를 만들어 보겠다는 일념으로 국민들 앞에 나타났었고, 수많은 정치적 난관과 경제적 밑바탕이 전연없는 환경속에서, 맨손으로 경제발전계획을 세워, 박정희 대통령의 강력한 Leadership으로, 천신만고끝에 오늘날의 조국 대한민국민들이 삶을 즐길수 있는, 경제적 정치적 초석을 깔아 놓았었다. 

휴전선넘어 38이북의 북한정권은 세습정치를 할수 있는 왕정을 고수하느라, 인권은 파리목숨으로 전락했었고,  오직 남한적화통일의 야욕을 채우고져 군비증간에만 몰구하여, 국가경제는 65년전과 거의 똑같이 비참한 배고픔을 대물림하는 한편, 남한정부의 좌파 10년동안에 국민들 몰래 이북에 퍼준 엄청난 돈으로, 핵무기개발에 쏟아부어 이제는 핵소유국이 됐다고 세상을 향해, 특히 미국과 남한국민들을 향해 공갈치고 있다.  이제 남한은 철없는 이북의 핵장난에 노심초사하지 않으면 안돼게 됐고, 야당을 비롯한 좌파세력들은 통채로 남한을 김정은 Regime에가 갖다 바칠 그날만을 위해 지금 현재도 남한정부와 국민들을 상대로, 북한찬양과 남한정부가 독재를 하고 있다고 생떼를 쓰고 있다.  

며칠전 김정은 Regime은 5차 핵실험을 성공리에 끝마치고, 곧이어 6차 핵실험이 있을 것이라고 미국을 비롯한 세계 여러나라의 북한 전문가들은 예측하고 있다. 이제 남한 국민들은 무서운 핵을 머리에 이고 하루하루를 살아가야 할판이다.  이러한 기막힌 현실앞에서도 좌파들과 야당찌라시들은 창고에 쌓여있는 쌀을 비롯한 곡물을, 북한피해지역에 인도적 자원에서 원조를 정부가 하지 않는다고 억장을 부리고 있다.  내가살고 있는 보금자리를 박살내겠다고 호시탐탐기회를 노리고 있는 이웃집이, 홍수가와서 지붕이 새고 먹을것이 다 떠내려갔다고, 위협에 떨고 있는 이웃이 달려가 지붕을 고쳐주고 먹거리를 건너주어야 한다고 주장할 사람은 세상에는 절대로 없다.  남한의 좌파와 야당찌라시들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며칠전 국회에서 국방장관이, 공개적으로 김정은을 암살할 계획이 세워져 있음을 천명한것이다.  참다참다 안되면, 김정은을 제거할 마지막 카드로 사용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CNN이 보도 했는데, 아래에 옮겨 놓았다. 

 Seoul (CNN) 한국의 국방장관이 이번주에, 북한의 핵무기 위협이 심각하게 느껴질때, 한국군의 특수정예부대는 명령이 떨어지면 바로 김정은을 암살할수 있는 계획을 세워 실행에 옮길수있는 준비가 완료돼 있다고 발표했다. 


국회 대정부 질의응답에서, 지난 수요일 만약에 북한 통치자 '김정은'을 제거할  툭수부대가 존재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한민구 국장장관은 "예 우리는 그러한 계획을 세워 운용하고 있습니다. 남한정부는 정밀 조준된 미사일을 이용하여, 적 북한의 주요군사시설과 북한정권의 요인들을 제거할수 있는 계획을 항시 갖고 있다"라고.


      김정은이 2016년 9월13일에  자세한 지역이 공개되지 않은, 농장을 방문하여 찍은 사진이다.

그러한 leadership 제거 계획은 암암리에 세워두고 있다는 의구심은 오래전부터 세간에 돌고 있었으나, 실제로 국방장관의 분명한 계획발표는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있다.
"한국가의 대통령으로서는 그러한 선택을 갖고 있을수 있다" 라고 Troy대학의 Daniel Pinkston교수는 설명이다. "...대통령에게 설명되지 않았거나, 그작전을 위한 훈련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그러한 타격능력을 갖고 있다고 설명하는것은 어쩌면 실수로 끝날수도 있다."라고.




http://www.cnn.com/2016/09/23/asia/south-korea-plan-to-assassinate-kim-jong-un/index.html

Wednesday, September 21, 2016

집으로 돌아갈수 없는 미망인들, 무슨 죄가 많다고, 쥐가 여성보다 더 인격적 대우를 받는 인도의 이상한 전통.

세상에 이런 삶을 살아가는 곳이 지구상에 있다니.... 살다가 남편이 먼저 죽으면 아내의 잘못이 원인이라고 믿고 있는 종교가 국교로 지정된 나라, 인도.  그래서 인도가 그렇게 더럽고, 서로 등쳐먹고, 대도시의 길거리에 있는 건물의 외벽이 남자들 소변보는 곳으로 전락된 것일까?

그래서 일까? 우리 인류가 가장 혐오스럽게 여기는 쥐를 그들의 신(God)으로 모시는 나라, 인도는 기상천외의 흉물을 신으로 여기는, 그러면서도 같은 사람인 여성은 쥐만큼도 인격을 존중해 주지 않는 나라....

http://lifemeansgo.blogspot.ca/search?q=Rat+temple

http://lifemeansgo.blogspot.ca/2016/01/india-tourjunagarth-fort-rat-temple.html

http://lifemeansgo.blogspot.ca/2016/02/india-tour-amritsar-delhi-delhi-feb32016.html

여성의 사회적 지위는 보편적으로 인정이 되지 않는다해도 과언이 아닌, 현대판 남성위주의 사회다.  내가 약 1개월간 둘러본 인도에 대한 소감이다.

여행중에는 들어 보지도, 구경해 본적이 없는, 시집간 딸이, 또는 아내가 남편을 먼저 저세상으로 보내면, 그녀의 남은 삶은 아무런 삶의 의미가 없는, 마치 사형언도를 받아놓고 사형이 집행될 그날만을 기다리면서 살아가는 사형수와 같은 생활을 한다는 기사는 과히 충격적이다.

서구사회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삶은 이런 인도사람들의 생활에 비하면 비교할수 없이 많은 축복받은 인생임을 고백하지 않을수 없다.

 갈곳도 숨을곳도 없는 격리속에 살아간다
.인도의 국교이다시피한 힌두교의 보수주의파들은,남편이 죽으면, 남편의 영혼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원인이 아내에게 있다고 믿어, 그여인은 더이상 세상에 존재할 이유가 없고, 살고 있던 공동체로 부터 버림을 받고, 수도 뉴델리로 부터 남쪽으로 약 100킬로 떨어져 있는 Vrindavan으로 보내진다고 한다. 그곳에는 약 2만명의 미망인들이 공동거주하고 있다고 한다. 그녀들에게는 갈곳도, 숨을곳도 없는, 죄인아닌 죄인의 멍애가 평생 씌워진다는 것이다.

 정부, 개인들이 운영하는, 또는 NGO 들이 운영하는 Vidhwa ashram(힌두교 미망인들이 거주하는 장소)에서 평생동안 흰옷만을 입고 살면서, 절대로 가족에게도 돌아갈수 없음을 알기에 이곳에서 생을 마감해야만 하는 슬픈 삶을 살아야 한다.



  모두가 함께 처한상황

힌두교 전통에 따르면, 남편을 먼저보낸 미망인은 재혼할수없다. 대신에 평생 집안에 숨어 살아야 하고, 보석을 포함한 귀중품을 더이상 몸에 장식할수 없으며 항상 남편잃은 슬픔을 나타내는 표정이어야 한다. 그녀는 가족의 수치로 여겨지며 종교적 의식에도 참여할수 없으며 사회로 부터 격리된 삶을 살아야 한다.      
많은 미망인들은 ㅡ 그동안 함께 살아왔던,시집으로 부터 쫒겨 나거나 도망쳐나와, 대도시로 향하는데, 가끔씩은 그런곳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기도 한다. 어떤 미망인은 힌두교의 성지인 Varanasi로 가기도하고, 어떤 미망인들은, 힌두교의 신으로 모시는, Krishna가 어린시절을 보낸,Vrindavan으로 간다.


박해를 일삼는 전통.

인도의 미망인들은 항상 버림을 받거나,아마도 가장 오랜전통이면서 확실한 표본이기도한 Sati(남편의 시체를 화장하는 장작더미위로 몸을 던지는 의식)를 통한 박해를 피할수 없게된다. 1829년에 인도를 점령한 영국에 의해,아내는 자신의 몸을 불타는 장작불위로 던져 생을 마감하거나, 자살을 해서 생을 마감하게 했던, 남편의 장례식인  Sati의식의 전통은 불법으로 금지됐었다. 또한 남편이 죽으면, 미망인은 살아야할 이유가 없어지게 되는 것이다. 

 연대속에 공동협조.

힌두교의식인,Bhajans를 노래하면서 기도를 한후, 미망인들은 하루의 일과를 시작한다. 그녀들은 자신들을 위한, 또는 두세개의 구룹멤버들을 위해 음식을 만들어 그들의 방에서 같이 식사를 하거나, 아니면 거처하는 숙소의 회랑에서 식사를 한다.  그런후에 힌두교리를 읽거나 기도를 한다. 그들의 신앙심은 매우 강해 매일같이 부딪치는 어려운 생활환경을 이겨 내는데 많은 도움을 주고있다.



  운명이 깨져버린 사람들.

공동기숙사에 거쳐하는 여인들은 해질무렵에 Yamuna강 언덕에 모여 그들의 의식인 Aarti(하루의 기도와 축제를 하는 의식)를 하기위해 강뚝위에 서 있다. 그들중 한여인이 편안한 마음으로 강물속으로 뛰어 들고, 다른 여인들은 그녀가 무사히 강뚝으로 올라 오도록 도와주고 있다.



  무정한 운명

68세의 Tulsi는 아쉬람에서 힌두교 찬가인 Bhajans 노래를 부르고 있다. 그녀는 Kolkata출신으로 그녀의 남편이 세상을 떠나자 시집에서 모든것을 다 빼앗아 가버렸다. Tulsi는 그녀의 아이들과 함께 아주 못사른 지역으로 이사하도록 한것이다. 곧바로 그녀의 아들중 하나가 Krishna신을 숭배하는 해야 한다는 구실을 부쳐 Vridavan으로 데려다 놓은 것이다. 아들이 사원을 그곳에 있는 사원들을 방문한후, 아들은, 어머니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Vrindavan에서 생활하는게 더 좋을것 같다는 핑계를 대고, 이곳에서 머물도록 한것이다. 그후 아들은 다시는 이곳을 방문하지 않고 있다. 그로부터 그녀는 벌써 12년을 지내고 있다.



사고방식의 변화

Meera Sahbhanni 기숙사의 미망인들은 색상의 축제인, Holi축제를 이곳에서 즐긴다. 비록 Orthodox(기독교정교회)전통에서는 미망인들이 이런 축제에 참여하는것을 금하고 있지만, 지금은 사고방식이 바뀌어 미망인들은 그러한 금지에 반항을 지속하기시작했다.


http://www.bbc.com/travel/gallery/20160907-the-widows-who-cant-return-home?ocid=ww.social.link.email

Tuesday, September 20, 2016

When I was welcomed as a refugee.(나는 난민으로 환영을 받았다 경우) - 난민으로 미국에 입국해서 환대 받았었는데...

백악관에서 아래와 같이 난민을 받아들이고 대우에 대한 이멜이 왔는데, 친절하게도 한국어로 번역된 내용이 함께 왔었다.  한국어로 번역된 내용을 보니 앞뒤가 맞지않고, 또한 내용이 본래의 뜻에서 많이 빗나가, 내가 읽어보고 이해한 내용을 Blue Letter 를 사용하여 옮겨 놓았다. 백악관의 배려에는 고마우나, 이내용을 한국어로 번역하는데, 한국인 누군가의 도움을 받았을것으로 사료되는데, 이를 읽어보는 고국인들에게 도움이 전연 안될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다. 한국의 외무부와 주미 한국 대사관및 공관은  이러한 점에 신경을 좀 써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우리의 부끄러운 마음이다. 혹시 내가 이해한 내용이 본래의 뜻에 맞지 않을수도 있는데, 그점 읽는분들의 이해를 바란다.
The White House, Washington
I came to the United States as a refugee when I was 11 years old. My father was a diplomat and a strong supporter of democracy in Czechoslovakia, so when the Communists took over, we were forced into exile as refugees. In November 1948, we were welcomed to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내가 11 살 때 나는 난민으로 미국에왔다. 아버지는 외교관과 체코 슬로바키아에서 민주주의의 강력한 지지자, 그래서 공산당이 점령 할 때, 우리는 난민으로 망명해야했습니다. 1948 년 11 월, 우리는 미국에 환영했다.

나는 난민신분으로 11세때 미국에 들어왔었다. 나의 아버지는 외교관이었으며, 체코슬로바키아의 민주화를 열열히 지지하였기에, 공산정권이 들어서자, 우리가족은 난민신세로 체코를 떠나야 했었다. 1948년 11월에 마침내 난민들을 받아주는 미국으로 들어올수 있었다.

Becoming a U.S. citizen is the most important thing that ever happened to me. My father said that when we were in Europe during WWII people would say, “We are sorry for your troubles and hope that you have everything you need; by the way, when will you be leaving to go back home?”
But in America, people said: “We are sorry for your troubles and hope that you have everything you need; by the way, when will you become a citizen?”

미국 시민이되는 것은 지금까지 나에게 일어난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아버지는 우리가 차 세계 대전 동안 유럽에있을 때 사람들이 우리는 당신의 문제에 대한 죄송합니다 그리고 당신은 당신이 필요로하는 모든 것을 갖추고 있기를 바랍니다 "라고 말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때 집으로 돌아 가기 위해 떠날 것인가? "
그러나 미국에서, 사람들은 말했다 : "우리는 당신의 문제에 대한 죄송합니다 그리고 당신은 당신이 필요로하는 모든 것을 갖추고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때 시민이 될 것인가? "

지금까지 내가 살아오면서 나에게 일어났던일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은것은 미국시민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나의 아버지는 2차세계대전중 우리가 유럽에 거주하고 있을때 사람들은 " 당신들이 고통을 당해서 미안하게 생각한다. 그리고 원하는 모든것들을 소유할수 있기를 희망한다, 어쨋던 언제쯤이면 고국으로 돌아 올 계획인가?"라고 물었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인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 어려움에 처했던점을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필요한 모든것을 소유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어쨋던 언제쯤 미국시민이 되실겁니까?" 라고.

America resettles more refugees than any other nation because it reflects one of our noblest traditions as a nation: providing support to those who are most vulnerable.

그것은 국가로서 우리의 고귀한 전통 중 하나를 반영하기 때문에 미국은 다른 어떤 나라보다 더 많은 난민을 resettles : 가장 취약한 사람들에게 지원을 제공한다.

미국은 다른 어떤 나라보다더 많은 난민들의 정착을 돕고있습니다. 왜냐면 그것은 미국의 많은 고귀한 전통들중의 하나인, 즉 가장 위험에 노출돼있는 사람들을 도와주는 등등, 난민들 정착을 돕는것이기 때문이다.  

With the world facing the largest mass displacement on record since World War II, it has never been more important for world leaders to follow America’s example and work together to do more to support refugees.


세계 지도자들은 미국의 예를 따라 난민을 지원하기 위해 더 많은 일을하기 위해 함께 작동하는 차 세계 대전 이후 기록에서 가장 큰 질량의 변위가 직면하고있는 세계, 그것은 더 중요 적이있다.

세계2차대전이후 전세계는, 전례없는 많은 사람들이 거주할곳을 잃고 헤매는 위험에 처해 있는데, 이러한 현상은, 각국의 지도자들에게, 미국이 취해온 경우를 참고하여, 다함께 난민들을 돕기위한 더 많은 노력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중요한 과제임을 강조 하고 있습니다. 



오늘, 오바마 대통령은 최대 단계 및 난민 정착과 그들의 삶을 재건 돕는 중요한 작업을 지원하기 위해 새로운 약속을하기 위해 더 많은 세계 지도자를 장려하는 난민 정상 회의를 개최한다. 당신 오후 3:35 동부에서 여기에 대통령의 연설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 오바마 대통령은 세계각국의 지도자들이 난민정착에 더 많은 관심을 갖도록 하기위한, 난민정상회담을 주최하고 있으며, 난민들이 정착하는데 직면하는 어려움을 해결하고,그들이 새로운 삶을 개척하는데 도움을 줄수있도록 새로운 헌신을 해야합니다. 여러분들은 미동부시간으로 오후 3:35분에 대통령의 연설을 시청하실수 있습니다.

Under President Obama, we’ve increased the number of refugees resettling this year to 85,000 – including 10,000 Syrian refugees. Starting next week, the United States will commit to resettling 110,000 refugees from around the world over the coming year.
And with refugees undergoing the most rigorous screening of any kind of traveler, he’s shown that we can welcome refugees while ensuring our own safety.

10,000 시리아 난민을 포함한 - 오바마 대통령에서, 우리는 85,000 올해를 정착 난민의 수를 증가했습니다. 다음 주부터 미국은 올 한 해 동안 전 세계에서 11 만 난민 재 정착에 투입됩니다.
그리고 여행자의 모든 종류의 가장 엄격한 심사를 받고 난민, 그는 우리 자신의 안전을 확보하면서 우리가 난민을 환영 할 수있는 도시입니다.

오바마 대통령의 행정부는 시리아난민 10,000명을 포함하여, 금년에만 85,000의 난민들을 받아들여, 정착하도록 돕고있습니다. 다음주부터는 내년에 세계각처로 부터 모여드는 110,000명의 난민들이 정착할수 있도록 우리 미국은 온힘을 기울일것입니다. 난민인지의 여부를 가려내기위해 엄격한 조사를 해서 선별하고있으며,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사회의 안전을 확실하게 하는 한편, 난민들의 정착을 환영할수 있게 됩니다.

As a former Secretary of State, I can tell you that President Obama’s leadership in this global crisis is critical to our national security.

국가의 전 비서로,이 글로벌 위기에서 오바마 대통령의 리더십은 우리의 국가 안보에 매우 중요 함을 알 수 있습니다.

전임 국무장관중 한사람으로써, 요즘처럼 전세계가 테러위협으로 부터 몸살을 앓고 있는때에, 오바마 대통령의 통치리더쉽은 미국의 안전을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것임을 감히 말씀 드릴수 있습니다.

When countries with insufficient resources take in refugees, it creates more instability, not just at the frontlines of this crisis, but around the world. If we were to slam the door in the faces of refugees with certain religious backgrounds, we would defy our history and our principles of pluralism and diversity. As we talk to other nations about what more needs to be done to tackle this crisis, it’s important that President Obama is setting this example.

부족한 자원을 가진 국가들이 난민에 걸릴 때뿐 아니라이 위기의 최전선에서 더 많은 불안을 생성하지만 세계. 우리가 어떤 종교적 배경을 가진 난민의 얼굴에 문을 세게한다면, 우리는 우리의 역사와 다원주의와 다양성의 우리의 원칙을 무시합니다. 우리는 더 많은 요구 사항이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수행해야 할 작업에 대해 다른 나라 이야기, 그것은 오바마 대통령이 예제를 설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원이 부족한한 나라에서 난민들을 받아 들이게 되면 이러한 위기의 최일선에서뿐만 아니고 전체적으로 불안정한 상태가 발생하게 될뿐만 아니라, 전세계에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만약에 우리가 난민들의 종교관을 이유로 들어 유입을 막아버린다면, 그자체가 우리의 복합주의와 다양성의 기초로한 역사에 반하는 것입니다. 우리모두가 다른 나라들과 이러한 위기를 해결하기위해 필요한 더 많은 조치를 의논하는데, 오바마 대통령이 이러한 선례를 만드는 아주 중요한 역활을 한것입니다.

When I came here as a child, I will never forget sailing into New York Harbuor for the first time and beholding the Statute of Liberty. I did not have to face refugee camps or the kind of danger that many refugees endure. 
But like all refugees, I shared a hope to live a safe life with dignity and a chance to give back to my new country.

내가 자식으로 여기 왔을 때, 나는 처음으로 뉴욕 항구로 항해와 자유의 법령을 바라 잊지 못할 것입니다. 나는 난민 캠프 나 많은 난민들이 견딜 수 있다는 위험의 종류를 직면하지 않았다. 그러나 모든 난민처럼, 나는 존엄과 나의 새로운 국가에 돌려 줄 수있는 기회와 함께 안전한 생활을 할 수있는 희망을 공유했습니다.

제가 어린 나이에 미국에 올때, 오랜 항해끝에 처음으로 뉴욕항구를 통해 들어오면서 자유의 여신상이 우뚝 서 있었던것을 본 기억이 지금도 새롭습니다. 저는 많은 난민들이 고통과 위험이나 또는 난민수용소에 수용되지 않았었습니다. 그러나 다른 모든 난민들처럼, 나는 내가 선택한 새나라에 뭔가를 되돌려 줄수있는 기회와 정당한 대우를 받으면서 안전한 삶을 꾸릴수 있는 희망을 공유했다는 점입니다.




함께, 우리는 난민들이 그들의 삶을 재건하고 다시 한 번 존엄 사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다 함께 난민들이 다시한번 품위있는 삶과 그들의 새로운 터전을 만드는데 도움을 줄수 있음을 확신합니다.

Thank you,
Madeleine Albright
Former U.S. Secretary of State

고맙습니다,
매들린 올브라이트
주 전 미국 국무 장관,
전 미국무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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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day, September 18, 2016

TKPC 대원들, 빗속에서 옛정취가 물씬 풍기는 Ball's Falls 구간 Trail Walk (2016.09.17)

이구간을 걷기로 대원들에게 미리 연락은 했었지만,  일기예보에는 하루종일 비가 내릴것이라는, 별로 달갑지 않은 보도에, Second option을 찾아 보았었다. 반대로 북쪽편에 있는 Hockley Valley였다. Hwy 7 북쪽은 보통 토론토와 날씨 변화가 있다는것을 경험을 통해 알고 있기 때문이었는데, 이번에는 좀 달랐다. 오늘걷는 지역은 오후 2시까지 약 1-2 mm, 북쪽 구간은 약 5mm이상내릴것이란다. 원래대로 진행하기로 한 내적 고심도 있었다.
항상 Trail Walk 시작전에 제일먼저 위에 계신분께 대원들 전체가 한마음으로, 오늘의 산행이 지혜롭게, 그리고 그분과 수시로 느낌의 대화를 하고, 우리를 위해 미리 만들어 놓으신 자연숲속을 걸으면서, 감사함과 Fellowship이 함께 해서, 생활의 활력소의 원천을 깨닫게 인도해 주십시요라고 대원 L 이 상고를 했다.  그리고 .... 

기후의 변화로 인한 늦더위가 채 가시지 않았지만, 달력의 날자는 가을의 상징인 추분이 코앞인데... 일기예보대로 2PM 까지는....? 하면서 발길은 자연동산속으로 깊이 옮겨진다.  오늘은 처음 참가하는 대원들도 눈에 띈다. 오히려 새대원들의 등산 준비자세가 더 돋보이게 하는, 특이함과 준비성에 고맙고, 험하고 거칠은 Trail Path위의 대원들의 발자국소리는 가끔씩 돌뿌리와 부딪히는 소리외에는 일정하다.

이구간은 몇년전에 대원들과 걸었기에, 지도상에서 Route만 기억했었는데, 시작부터 계곡속의 Trail Path는 부식해서 쌓인 escarpement로 지표면이 거칠고 Slope가 심하고, 또 밤새 내렸던 비의 영향으로 Slippery 하여 대원들에게 더 신체적 훈련(?) 강요하는것 같이 느껴졌다.

삼삼오오 구룹을 지어 걷는 대원들의 모습에서 산행의 노련미를 볼수 있었다.  오늘은 다른때와는 좀 다른게 더많은 대원들이 동참하여 행렬의 앞뒤 거리가 전례없이 길었다는것이 기억에 남을 것이다.  대원들이 자랑스러웠던것은,  Car Pool하는데, 남성대원들이 앞장서서 대식구들의 이동을, IKEA에서 부터 약 50분동안을 달려와서, 산행을 무사히 시작할수 있도록 봉사해준 것이다.


이구간은 Slope가 급경사여서, 어느 이름모를 Bruce Trail Member들의 자원봉사로,  잘조성된 계단과 Guard 역활을 하는 안전벨트가 설치되 있어, 대원들의 안전을 책임(?)지고 있었지만, 그래도 대원들의 발걸음은 무거워 보이고, 숨소리도 거칠어짐을 느꼈다.  자원봉사자들의 숨은 노고가 없었다면, 이구간의 등산이 가능했을까? 대원들은 이점을 깊이 느끼고 감사해 함을, 나는 오래전부터 느끼고 있다.


불과 몇분간의 가파른 계곡의 계단을 밟고 정상(?)에 올랐는데, 기분으로는 하루종일 어렵게 걸어서 겨우 평지에 도달했다는 기분이 든다. 이럴때 약 5분정도 Break Time을 갖는것은 마치 허기져 갈증으로 힘이 빠져있는 신체에 금새 기운을 북돋아 줄수있는 시원한 청량제 음료수 한모금으로 목을 추기고 갈증을 해소해 주는 기분이다.  이러한 고통(?)이 없이 산행의 의미는 또한 없다. 대원들 모두의 얼굴에서 이루었다는 성취감을 금새 느낄수 있었다.

 대원 Oh가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는 한구룹의 대원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재빠른 그의 동작에 이들 대원들은 앞으로 유명 인사들이 돼지 않을까?라는 도취감에 빠져 있는것 같다.


 인생을 살아 오면서, 철 늦게 깨달은점이지만, 여성분들의 끈기는 대단함을 본다는 점이다.  대원들 대부분이 오랜 가정생활을 해왔기에, 남성대원들의 느낌도 크게 다른지 않을것이다. 쉴새없이 집안일에 파묻혀 생활하다가, 모처럼 험한 산행을 하는데도 단연 그위력을 남성 대원들 뒤지지 않게 발휘하는것을 본다.  고마움을 느끼면서도 이들 여성대원들 때문에 역사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매번 느낀다.


 이구간은 또한 역사적 의미가 매우 깊은 곳이다. 1800년대 초에는 이지역의 산업 중심지로 한때 발전하기도 했었다. Dug Out Pond 안내판 뒤로 조그만 웅덩이가 거의 바닥을 드러낸채 그민모습을 나태내고 있다. 옛날에 Soil이 필요해서 파내다 보니 그자리에 사방에서 흘러 들어온 물이 고이기 시작하여 만들어진 Pond이다.  고인물이 결국 잡초와 나무들을 무성하게 자라게 물의 공급원이 되여 주위의 땅을 단단히 묶어두고, 초목이 자라게 하여 동물들의 서식처를 만들어 주는 역활을 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위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초기 이곳의 산업화 진행과정을 간략히 Bulletin Board에 사진과 함께 설명해 놓았다.  이곳 캐나다에서 살면서, 초기 개척자분들의 노고를 머리에서 지워 버릴수가 없다. 터전을 만들기위해 열악한 조건속에서 땅을 파야했고, 개간을 해야했고, 물레방아를 돌려야 했고.... 그속에서 그분들의 신실한 Worshiping은 항상 함께 했었다.


 대원 L이 열심히 순간 순간 대원들의 움직임을 손바닥보다 훨씬적은 현대판 장난감(?)에 주워 담느라 여념이 없는 모습이다.  몇년후에 이순간에 만들어진 추억을 꺼내 보면서 바빴던 지나온 삶의 흔적과 회상속에서 아무도 모를 혼자만의 미소를 지을것 같다는 생각이다.
 이번 여름은 유난히도 불볕더위와 함께 가물어서, 그흔적과 증거를 우리가 걷고 있는 Trail을 따라 이어지고 있는 계곡의 물줄기가 완전히 말라버려 바닥을 드러내고 있는 앙상한 모습이다.  물줄기 흐르는 소리에 익숙해 있는 대원들이 이구동성으로 그안타까움을 토해낸다.




지금은 휴식을 취한후 이어지는 Trail Path가 반대로 가파른 내리막 길이다. 여기서도 등산객들의 안전을 위해 잘 축조된 계단을 이용하면서, 다시한번 무명의 Bruce Trail Member들의 봉사에 감사한다.  그래서 일까? 대원들의 여유있는 발걸음과 옆의 초록색의 숲이 잘 어우러져, 할일을 다 무사히 마치고, 금의환양하는 환희의 모습을 보는것 같다. 일상에서도 이러한 삶의 풍만함을 우리 대원들이 다 누릴것으로 믿고 싶다.


초기 정착민들의 유물중 몇개가 전시관에 진열되여 있다. 베틀, 달구지바퀴, 커다란멧돌 등등....당시로서는 일상생활에서 없어서는 안될 커다란 생활용품이었을 것이다.


바짝 말라버린, 그래서 맨바닥을 드러낸  Ball's Falls를 바라보는 마음은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에 분명히 좋치 않은 변화들이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음을 감진하게 한다.  전에는 떨어지는 폭포물소리가 귓전을 요란하게 했었는데.... 지금은 정적속에 대원들의 숨소리 발자국소리뿐이다.

Niagara Peninsula 한구간의 이지역은 포도 생산지이다.  불볕더위의 가뭄속에 농부들은 물주고 벌레와 싸운끝에 지금은 그결실의 맛을 느끼게 할수 있는 포도송이들이 너무도 탐스럽게 매달려 있다.  대원 P 가 마지막으로 Quality를 점검하는것 같아 보인다.  기왕이면 다 합격 도장을 찍어줬으면 하는 마음이다.  입에 넣으면 사르르 녹아버릴것 같다.

 같은 포도지만 청포도는 그희귀함 때문인지(?) 무척 귀하게 여겨진다. Ice Wine이 개발되기 전에는 오히려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했었는데.... 별로 쓸모가 없어 가지에 매달려 있었던 청포도 송이를 우연히 아주 추운 겨울에 큰 기대감없이 압축기에 집어넣어 즙을 만들어 선을 보인게, 우리가 제일 비싸게 값을 지불하고 한모금씩 마시는 Ice Wine이 된것이라고 한다.  시음장에 들려서 온갖 포도주를 무료로 맛을 볼수 있지만, Ice Wine만은 돈을 지불하고 샘플을 구입해서 맛을 보아야 한다.

지난 6월 중순에 Point Pelee Island에 대원 일부가 그곳으로  Trail Walk을 하기위해 갔었을때, 시음장들렸었는데, 그곳에서만은 Ice Wine을 무료로 시음하게 해줘, 별천지에온 느낌이었었다.

http://lifemeansgo.blogspot.ca/2016/06/pelee-island-june-202016.html



아직 반환점에 도달하기에는 상당 거리가 있었는데, 드디어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재빠르게 대원들 모두가 여러 형형색색의 Poncho를 꺼내 비를 피한다.  오랜 산행을 해온 대원들의 경험에서 필요한 것을 알고 준비하는 지혜라고 생각된다.
대원 한분이 "아까 계곡속의 물줄기가 말라버린것을 안타까워 하는 멘트를 했는데, 그효과가 금새 나타나고 있네..."라고 해서 빗소리와 웃음 소리가 잘 어우러지게 해주어서 또 웃었다.







분명히 일기예보에서는 오후 2시경까지는, 우리대원들의 산행(?)을 돕기위해 비가 내리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는데.... 염원을 바라는 정성이 부족해서 였을까? 아니면 상황의 급박함을 인지하신 그분께서 정리를 해서, 이런 조치를 취해주신 것일까? 후자의 선택이 옳았다고 믿고싶다.  지금까지 어려움에 쳐했을때마다 그해법을 찾아 주셨으니까.


초기 정착민들의 기록이 보존되여 있는 Compound안의 한쪽켠에 자리하고있는 Shelter가 우리대원들의 점심식탁을 펼수 있게 해주었다.  우리보다 한발 앞서 자리를 잡고 있는, 이곳 캐네디언 한가족이 두개의 Picnic Table을 점령하고 있다가 우리가 오는것을 보고 하나를 정리해서 사용할수 있게 해주는 배려를 보여주어 고마웠다.  좋은 본보기를 대원들에게 보여주어 Thank you.


그고마움을 표현하기위해 그들의 Table로 가서 "우리 식구가 많아서 시끄러울텐데 이해해 다오, 테이블 하나 사용케 해주어 고맙다"라고 인사를 했더니 나이 지긋한 친구 한명이 "우리도 시끄럽게 떠들어... 걱정하지 말고 점심 즐겨라"라고 해서 마음이 푸근해졌다.  대원들의 맛있는 점심은 이렇게 삼삼오오 구룹으로 나뉘어 '금강산도 식후경'의 참맛을 느끼게 하는데 충분했었다.  일부 대원들은  벌써 Dessert를 즐기고 있었다. 아니면 아름다움을 유지하기위해 여기까지 와서도 Diet하시나? 물어 볼수는 없었고.... 암튼 보기가 분위기와 어울린다.




손바닥을 이용하여 Sunglasses의 효과를 나타내는 P 대원이 그래서 Sunglasses을 안끼고 다닌다는것으로 이해 했는데, 과연  그상상이 적중했을까? 아니면 그대원의 다른 뜻이 있었을까?


잠시 동안이지만, 그사이 얕은 햇볕이 대원들을 그냥 있게 하지를 않는다.  Gate Ball Field에 세워진 표지판을 이용하여, 비를 피했던 Poncho를 건조시키는 광경이다. 여유로워 보여서 좋다.

점심이 끝난후, 운전수들만 다시 차가 주차된 곳으로 가서 차를 운전하여 이곳으로 오기로 하고, 나머지 대원들은 Shelter 주위에서 여유를 즐기게 조치를 했다. 비온뒤 계곡의 가파른 Trail Path를 걷지 않게 하는게 안전상 좋을것 같아, 되돌아와서 모두가 안전하게 Trail Walk을 원래 계획 보다는 일찍 끝날수 있었다. 질서 정연하게 잘 행동해준 대원들에게 Thank you all 이다. 오늘 처음 참석한 대원 H의 잘 단련된 모습이 TKPC Trail Team에 너무 늦게 Join했음을 금새 느끼게 한다.

되돌아 오는길에 Street Market에 들려 풍성하게 진열되여 있는 과일들을 맛보면서 고르고 있는 순간이다.  막상 시음을 해본결과 과일을 생산한 Farmer가 아니고 중간 상인이 운영하는 것을 알게 되면서, 체면상 한 Pint만 좀 비싸게 구입하고, 다시 차를 돌려 아까 지나쳐온 포도만을 파는 곳으로 달렸다.  
Farmer가 직접 수확한 포도송이 들이 Bushell에 가득 차 있고, $20.00 라는 표지판이 그옆에 세워져 있었다.  그러나 주인은 보이지 않아 이상하게 생각하면서 두리번 거리는중에, 조그만 깡통위에 쓰인 구절을 보았다 "가격표데로 양심껏 지불하고 가져 가십시요"라고.  대원들중에 한분이 그돈이 주인아닌 다른 사람에게 가버린다면.... 라고 걱정을 하자, 대원 한분이 "우리는 양심껏 가격표데로 구입하고 돈을 깡통에 넣은것으로 할일은 다하는 것이다. 그다음은 우리가 책임질일 아니다"라는 소리에 모두가 공감하고 3 Bushell의 포도를 구입했다. 포도에 관해서는마치 세상에서 제일 큰 부자가 된 느낌이었다.

대원들의 차가 주차되여 있는 IKEA로 와서 헤여지기전에 커피 한잔씩을 나누면서, Trail Walk을 치른 소감들을 곁들여 가면서 아쉬움속에 다음을 약속하면서 각자의 보금자리로 발길을 돌리고, 각자 대원들의 손에는 한봉지씩의 포도가 풍성하게 들려있는것을 보았다. Fellowship과 Sharing... 대원들이 말로만 아닌 행동으로 보여준 값진 경험을 만들어 준것이다. See you s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