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January 30, 2016

Varanasi로 35분간의 비행위해 하루종일 길위에서, '간지스강'의 풍물(가게주인은 Cow)에 얼이 빠졌다,(Jan.30,2016)

우리 인간의 중심이 종족을 퍼뜨려 대를 이어가는 가장 근본을 잘 나타낸 Gama Stra를 상징하는 힌두Temple 둘러보고, 다시 인도인들의 성지 '간지스강'과 그곳의 도시 Varanasi를 보기위해 이번에는 비행기를 타야만 했다. 불과 35분간 비행하기위해 아침부터 부산을 떨어야만 했다.
아침에 Ramada Inn 호텔에서 Check out 할때 Tour Guide가 Luggage의 무게 한도가 15킬로여서 재Packing해야 한다고 해서, 그말이 이해가 안돼 Air ticket를 확인했는데, 정말이었다. 기가 막혔다. 빈가방 무게가 5킬로정도 되고, 그렇타면 10킬로만 큰 가방에 짐을 넣어야 한다는 얘기다. Lunar는 재빠르게 여벌로 넣고 다니던 Back Pack을 꺼내 조정한다.  여행을 많이 해보았지만 Hand Carry가 아닌 Luggage를 15킬로 제한을 둔곳은 이곳이 처음이자 마지막일 것이지만 과연 인도다운 못된 규제를 해서 여행객 괴롭힐려는 것으로 생각될 뿐이었다.

Khajuraho 공항에 운전수와 Tour Guide의 도움으로 도착했는데, 공항 건물에는 보안원들이 얼씬도 못하게해 결국은 우리부부 둘이서 Luggage를 끌고 Check-in을 해야만 했다.  이러한 공항 환송도 인도답다.
Check in 수속을 하는데 Luggage의 무게가 두개 합쳐서 약 4 킬로 over돼서 1,400 R을 징수한다.  No choice. 돈을 주고 수속을 마쳤는데, 받은돈을 담당자가 자기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그곳에 넣고, 남은 잔돈을 꺼내서 건네 주는게 아닌가.  기가 막혔다.  내앞의 승객은 미국에서 온 친군데 그는 나보다 훨씬 더 많이 징수 당하고 있었다.
대합실에서 기다리는데 은근히 화가나서 Security guard에게 사유를 설명하고 다시  Check in counter로가서 '영수증'발행을 부탁했더니, 약 5분간만 대합실로 되돌아가 기다리란다.  정말로 약 10분쯤 있으니 그친구가 직접 영수증을 들고왔다.  "Namste RamRam" 으로 감사표시를하고, 영수증을 봤더니, 컴퓨터를 이용한 아무런 의미가 없는, 확인 서명이나 Seal이 없는 불평무마용 프린트일 뿐이었다.  이찌할 도리가 없이, 대부분의 승객들이 당한다.  그나마 용감(?)하게 영수증 요구한 사람은 우리 부부밖에 없는것 같아 보였다. 인도의 실상중 일부다.

 실제 비행기가 공중에 떠 있던 시간은 약 35분.  낯이라서 햇볕이 따거운데 Tarmac에서 내려 그냥 공항청사로 걸어서 사람들 물결에 따라 발길을 움직인다.  Lunar의 등에는 급조한 빨간 Back Pack이 걸려 있다.
Tour Guide가 우리 부부의 이름이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공항청사 밖에서 기다리고 있어 합류하는데는 어렵지 않았지만, 여기서도 탑승객 외에는 공항대합실에 들어오지 못하게 한다.


Varanasi 공항은 건물이 그럴듯하게 반듯하게 보인다.  운전수가 기다리는 주차장에 도착하더니, Tour Guide는 같이 끌고 왔던 Luggage를 손도 안대고 운전수 혼자 하도록 하고, 전연 도와주지를 않는다.  여기서도 인도사회의 신분을 느낄수 있었다. 같이 도와주면 더 쉽고 빠를텐데...

항상 그랬듯이 호텔에 도착하면 호텔 직원중 한명이 시원한 음료수 한컵과 Flower Wreath를 걸어주고, Tour Guide가 Check in 수속을 대신 해주는 동안, 넓직한 소파에 앉아 있으면 된다.  오늘은 꽃이 아닌 묵주로 된 목걸이를 걸어주어, 그아가씨와 함께 한컷했다.  Wi Fi사용을 부탁했더니, 지금까지 들어온 소리를 똑같이 지껄인다. "호텔 로비에서는 무료지만, 방에서는 사용료를 내야한다"라고.  "나는 절대로 한푼도 줄수없다. 만약에 Wi Fi사용을 막는다면 너의 호텔의 명예에 먹칠이 될것이다. 기왕헤 해줄거면 처음부터 Compliment차원에서 써비스된다"라고 하면 서로간에 기분이 좋을텐데...."Manager에게 확인후 무료사용을 하도록 해보겠다"라고 한다.
바로 인도사회의 어두운 한면을 보여주는 횡포다.  이렇게 해서 자기네들이 힘과 신분을 과시 할려는 못된 사회적 관습이다.  만약에 "Please let me use Wi Fi for free since I'm the customer"라고 간청 했으면 나는 꼼짝없이 공항에서 처럼 당해야 했을 것이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 으로 행동해서 맞받아 쳐야 일이 해결되고, 바가지를 면할수 있다는 지혜를 터득한 것이다.

5층호텔방 창문을 통해 보여진 뒷뜰에서는 호화판 결혼식이 끝나고 철거하는 광경을 보면서, 어젯밤 Khajuraho의 호텔에서 보았던 결혼식 장면이 떠올랐다. 있는자들은 수백만 Rupee를 들여서 힘과 권력을 과시하는 한 증표인 셈이다.  그곳의 Boundary만 벗어나면 거지들로 우글거리는 거리가 소음과 악취로 진동을 하는데.... 어젯밤 우리가 겪었던 것처럼, 여기서도 밤늦게 까지 떠드는 소리에 많은 투숙객들이 밤을 설쳤을것 같았다.
어느지점까지 운전을 해주고 그곳에서 우리는 Guide와 함께 간지스강가로 Stroll을 시작했다.
오후 늦게 Guide의 안내로 Ganges River쪽을 이동하는데, 한가게를 가르킨다. 여성용 옷과 천을 파는 가게인데, 아뿔사 그안에 커다란 황소가 버티고 앉아 있는게 아닌가.  이황소는 매일같이 낯에는 이곳 가게안에서 죽치고 앉아 있다는 것이다. 인도사회의 어지러운 한증표다.

간지스 강까지 이어지는 거리는 정말로 아수라장이다.  좁아터진 길에는 소, 자동차, 사람, Motro Cycles, Rick shaw, 길거리 장사꾼..... 뭔가를 태우는 연기에 목이 못견디고 기침까지 해야만 했다.

이들이 흔히 말하는 거리의 도사들로 무위도식하는 군상들이다. "비카리 사두"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그앞을 지나면 꼭 손을 내민다.  나에게는 이상한 풍조로 보이지만 이들에게는 평범한 일상일 뿐이다.

길거리 노점상에서 주민들이, 그래도 좀 형편이 나아보이는, 먹거리를 사서 먹는 장면들이다.

뿌옇게 간지스강줄기가 보이는것 같아 Lunar가 확인차 Guide에게 설명을 요청한다.
멀리 보이는 강물을 볼때는 여름철이면 휴양객들이 모여드는 Wasaga Beach을 연상케 한다.  가까이서 보면 아니고, 단장을 한 그뒤로 멀리서 아스라히 보이는 강풍경을 본다는것만으로 한정된 상태에서 Wasaga Beach의 인파를 연상하는 것이다.
 
정말로 각종 신들, 특히 힌두사람들이 성지로 여기는 이유가 있을것 같다는 느낌이 온다. 지금은 겨울철이라서 강에 흐르는 수량이 많이 줄었다고 한다.  강가에는 수많은 조그만 Boat들이 끝도 없이 정박한배, 필그림 하는 힌두인들이 타고 떠다니는 배, 정말로 어지럽게 보인다.
저녁시간이 되면 힌두종교의식을 행하는 젊은이들이 그들의 Uniform을 입고 의식준비를 하고 있는데, 이들의 사회적 신분은  최고층인  Braman이란다.  Guide역시 힌두인이지만, 그속내를 설명해준다.  이들역시 뒤에서 조정하는 교주에게 고용된 일꾼으로 보면 된다라는 것이다.

사방이 어두워 지면서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하는데, 아뿔사 발을 옮길 공간이 없어질 정도로 미여 터진다.  강가로 접하는 계단에는 또 다른 '비카리 사두'들이 동냥을 구걸하고 있다. 겉만 보아서는 무아지경에 도달한 도인같아 보인다.

이친구는 아마도 Jain사두같아 보인다. 윗옷은 생전에 입어본 적이 없는, 겉으로 보는데는 득도한 도인이다.  그역시 옆에는 모닥불을 피워 연기를 뿜어내고 있고, 간혹 관광객들이 오면 머리에 힌두식으로 빨간, 또는 노란 점을 찍어주고, 수고료를 받는다.  처음에는 이친구가 옷을 입은건지 벗은건지 구별이 어려울 정도였다.
멀리에서 불꽃이 보이는데, 이것이 바로 장작을 태워 시체 화장을 하는 의식을 하고 있는 광경이라고 하는데, 이화장행위는 24시간 계속된다는 설명이다. 목이 더 아파온다. 온갖 연기들이 이곳에 다 모여 있다는 느낌이다.
환하게 불밟혀진 이곳, 성지(?)의 중앙에는 오늘밤 힌두의식을 주관하는 젊은이(7명)이 여러형태로 주문을 외고, 모여든 사람들을 상대로 Performance를 한다.
힌두교 사람들은 이곳이 그들의 가장 신성시 하는 성지로 여기고 인도 전국에서 매일같이 모여든다는 것이다. 그위에 관광객들까지..... 인간들로 미여 터지는 곳, 간지스강.  불결하기는 두번째 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더럽다. Stinks하고... 잠깐 남은 저녁시간을 이용하여 Stroll하면서 보고 느낀 짧은 순간들이었다.
이번에는 그들이 꽃과 밀크와 기름을 태워 밝히는 Lantern들을 들고 강가로 내려가 꽃잎을 뿌리고 밀크를 강물에 흘려 보내고 조그만 Lantern은 강물에 띄워 보내는 의식을 한다.  강물에 밀크를 버리면 그물이 어떻게 될것인가는 다 알고 있다.  종교의식이기에... 신도들은 열심히 이에 마추어 손으로 합장하고 기도하고....
이러한 광경을 많은 관광객과 Local 힌두교 신도들은 강위에 떠있는 Boat에서 구경을 하거나 열심으로 경배하는 광경이다.

분명히 관광객으로 보이는 한 서양친구가 건네준 쟁반위의 불꽃을 들고 의식에 동참하고 있다.  종교적 의식은 서로 다 주관이 다르기 때문에 한마디로 정의를 할수는 없다. 다만 내가 언급하는것은 종교의식을 떠나 눈으로 보는 그모습들을 표현하는것 뿐이다.
바로  몇계단 윗쪽으로는 이들이 의식을 끝내면 기구들을 보관하는, 시멘트로 만들어 놓은 창고가 있다. 더럽기가 이를데 없다. 냄새도 같이 동반하고.... 머리가 아프다.
내일 아침 나와 Lunar는 6시에 호텔을 출발하여 다시 이곳에 와서 Boat를 타고 강에서 이런 모든 행위들과  Cremation하는 의식을 포함한 어지러운 광경을 체험할 계획이다.

Friday, January 29, 2016

India tour, Khajuraho Gamastra temple, Jain temple, Local Carving store, 전통Dance,화려한 야간결혼식의 명암.(Jan.29,2016)

오늘은 좀 늦은 10시에 탐방 시작으로 마음이 좀 느긋하다.  이곳 Khajaraho에 있는 유일한 5성급 호텔이지만, 관리를 잘 하지못해 많이 망가지고, 보기에도 아깝다는 생각이다. 직원들의 근성이 문제점이 터지면 그순간만 피하고 넘어가면 그만인것으로 인식되여, 마치 큐바의 Resort에서 본것과 다를게 없어 보인다.  내가 묵었던 호텔은 창문도 닫히지 않았고, 벽에 붙어 있는 Plug용 Socket 판넬도 덜렁 거리고.....

https://youtu.be/2YKdqT8b56I

Lobby에서 기다리고있던 Tour Guide Ashwani씨를 만났다.  곧바로 Khajuraho main temple로 차를 몰았다.  불과 호텔에서 차로 5분 거리에 있어 시간을 만히 절약할수 있어 좋았다.


다른 지역에 비해 비교적 쓰레기들이 덜 보였다.  역시 들어가는 입구에는 많은 장사꾼들이 호객행위를 하는것은 여기라고 다르지는 않았다.
Temple 정문에 들어서자 오른쪽 큰 Budah Tree가 우리를 반기고 있었다.  당시왕은 부처가 이나무를 무척 좋아 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Budah Tree로 명명하여 오늘까지 사람들은 그렇게 부르고 있다는것이다.  내가 볼때는 포블러 나무같아 보였는데, 심각하게 설명하니 그럴듯하다.
Tour Guide로 부터 설명을 듣기 시작하면서 유교사상이 삶의 밑바탕에 깔려 있는 우리한국사람들의 정서와는 해결돼야할 문제점, 특히 성(Sex)에 대한 본데로 느낀데로 표현하는것은 어쩌면, 표현의 자유라고는 하지만, 마음을 망설이게 해서, 그중에 몇개만 듣고 소화한데로 적어 보기로 했다.

Temple 안쪽으로 더 들어가자 오른쪽에 White Temple보인다. 지붕위에 있는 3개의 Dome은 제각기 모양이 달랐는데, Hindu, Budah, Muslim건축양식으로 표현한다. 그뜻은 다민족이 어울려 살면서 Harmony를 이룬다는 뜻이며, 19세기, 즉 150여년전에 세워졌다고 한다.  Dome은 원래 하얀색인데 검정색으로 변해 더러워 보였는데, 암모니아를 사용하여 청소를 했는데, 그독가스로 표면이 망가져, 지금은 10에서 15년에 한번씩 다른 세척제를 사용하여 검정때를 벗긴다.

Khajuhara의 원래뜻은 인도의 중심지라는 뜻이란다. 이곳은 농장지역으로 Dates, Palm tree등이 잘자라는, 그래서 농사를 짖는 곳이라는 뜻이다.

Main temple, Lasshmana Temple과 그주위의 직사강형 형태의 둘레에 작은 Temple들은  약 1000년전에 Chandella 통치자가 20년에 걸쳐 건설했다고 한다.  그중의 왼쪽앞에 있는 Temple의 일부조각은 원래의 모습이 아니고 Reconstruction했다는데, UNESCO에서 새로 훼손된 부분을 고칠때, 원래의 Temple과 비교시키기위해서 일부러 Simple하게 했다고 한다.  그래서 새로 고쳐진 부분에는 힌페인트로 고유의 번호가 부착되여 있었다.



Khajuraho Temple의 근본 개념은, 인간이 낯동안에 살아가면서, 먹을것, 입을것, 남녀간에 성을 즐기는것, 싸움터에 나가는것 등등의 삶의 일상을 Temple의 외곽벽에 섬세하게 조각한것이 특징이다. 그중에서 특히 남녀간, 또는 동물과 인간과의 성관계 등등, 모든 Intercourse자세를 표현한것에 중점을 준 Unique한 성전이라고 할수 있겠다.  Temple에 들어가는 입구에는 Gangga 아취형으로 조각하여, 사람들이 성전안으로 들어갈때, 그곳에서 두방울씩의 물이 떨어져 일종의 침례를 하는 의식을 행했다고 한다. Gangga river water는 Holy water로  간지스강물을 이용하여 성스러운 의식을 행하는것 처럼, 같은 의미를 지닌다고 한다.

 Main Temple입구에 있는 층계에는 반달모양과 조개껍질을 상징하는 조각이 있었다.

Ganesh God에 대한 Lengend는 듣기에 흥미진진했다.
아버지 Shiva, 어머니 Barpati 사이에 아들이 하나 있었단다.  아버지는 부인이 아들을 낳은것도 모른채 Hymalaya 산중에서 득도하기위한 기도를 하고, 마침내 어머니가 있는 집으로 돌와 왔는데 문전에서 어느 사내가 집에 못들어가게 막는다.  "내가 이집의 주인이다"라고 해도 막무가내고 못들어가게 하자, "너의 어머님이 누구냐?" 하자, "Barpati "라고 하자, "그러면 내가 바로 너의 아버지야" 라고 말을 했는데도 이소년은 믿을수가 없어 들여 보내지않자, 화가난 아버지는 즉석에서 아들의 목을 베어 버렸다.  이러한 소란이 일자, 집안에 있던 어머니가 밖으로 나와보니 엄청난 일이 벌어져 있는게 아닌가.


그때에 옆에는 Brahman과 Vishnu가 이광경을 보고 있었는데, 이두개의 신이 중재를 해서 그러면 목이 베인 아들, Ganesh의 머리에 코끼리머리를 부치기로 하고, 즉시 코끼리를 구해서 목을쳐 바로 Ganesh의 목에 부치게 된대서 오늘날 Ganesh God의 목은 코끼리로 묘사되고, 몸통은 인간의 모습으로 돼 있다는 설명이다.

코끼리의 조각은 또 다른 이미지를 보여주고 있다. 3마리의 코끼리가 무거운 발로 죄인들을 짖뭉개고 있는데 맨 오른쪽에 코끼리의 머리가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바로 그옆에서 성교를 하고 있는 남녀를 보면서 바라보면서 흐믓해 하고 있는 표정이 사뭇 옆에 있는 2마리의 코끼리와 완전 다른 모습을 묘사한 것이다.

Main temple의 Lakshmana Temple의 외곽벽에 새겨져 있는 조각상들을 대부분 남녀간의 성을 묘사하는 내용으로 옛날 인두교인들의 일상생활에서 성을 포함을 모든 인생사들 괴로워하고 즐긴후에 Temple 안으로 들어가 그런삶의 뜻으로 그들의 신에게 Donation하는것과 연결시키고 있는 Practical한 삶을 묘사했다고 본다.

Tuntra Yoga는 여성의 성적으로 가장 자극을 받는 7개 포인트가 있는데, 달의 영향을 전적으로 받는것으로 이해되여, 만월달일때는 성적으로 최고조에 달하는 포인트가 여성의 머리꼭지이며, 반달일때는 여성의 뒷쪽 허리부분이어서 남성이 손가락으로 그곳을 누르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Carving에서 그형태를 잘 나타내주고 있어 신기하까지 했다.
이여인은 얼굴을 돌리고 있는 형상인데 설명에 의하면 유방이 너무 커서 그사이로 아래 남자를 보기위해 돌린 상태라고 한다. 이런 상상은 조각을 한 사람이 남성이기 때문에 이런 상상을 하지 않았을까?라는 자기의 생각이라는 주석도 달았다.

조각에서 Hindu여성은 머리와 얼굴을 가리지 않은 민낯으로 표현됐는데, 이점이 이상하여 물었는데, Guide의 대답은, 14세기 전까지는 힌두여성은 아무것도 가린게 없는 민낯이었었다.
그이후 India를 Muslim들이 점령하면서 그들의 풍습을 여성들에게 강압적으로 따르게 하면서 얼굴을 가리기 시작한것이 전통이 되여 오늘날에는 그것이 Hindu여인들이 전통이 되다시피한 슬픈 과거사가 있었다는 설명이었다.


Hindu사람들은 낯시간동안에는 남년간에 섹스를 하는것을 포함하여 모든것을, 즉 먹는것, 사람을 나누는것, 돈버는것, 그리고 싸우는것등등의 일들을 하고,  그후에 Hindu Temple로 들어가 낯시간 동안에 행한 감사의 뜻으로 Donation을 한다는 것이다.  그중에서 남녀간에 사랑을 나눈것을 가장 큰 즐거움을 Donation으로 나타냈다는 것이다.  어찌보면 내가 믿는 기독교와는 정반대의 뜻으로 이해할수가 있다고 느껴졌는데, 섯부른 나의 판단인지는 잘 모르겠다. 주일을 준비하기위해 몸을 경건히 해야 한다고 믿고 있는데...... 그런면에서 Practical한 면이 많이 있는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Temple안의 Altar에는 Vishnu상이 세워져 있었다. 그의 아내는 Laximi라는 여인으로 Main Temple 앞쪽에 있는 조그만 Temple이 그녀를 모시는 곳이다.  당시의 왕 Laxibamana는 Vishnu God 을 숭상하기위해 낯동안에는 그의 상(Statue) 모셔져 있는 동안에 항상 햇볕이 들어 경배하는 사람들이 쉽게 볼수 있게 하기위해 해가뜨는 동쪽을 향해 성전의 정문을 내고, 성전안 중앙바닥에 반질 반질한 돌을 깔아 반사된 햇볕이 Vishnu상의 발끝부터 차차 몸전체까지 비추게 하는 특수 기법을 사용했다는 설명이다.  Vishnu상이 세워져 있는 옆쪽에도 창문을 만들어 빛이 그곳을 향해 들어오면 벽면에 햇볕이 반사되여 Vishnu상을 비추도록 했다고한다.


 이모습은 돌판을 비스듬히 세우기위해 Base에 놓여있는 돌에 Groove를 파서 그곳에 돌판을 끼워 넣어 필요한 각도만큼씩 눕히고 세우고 했었는데, 아주견고하게 잘 역학적으로 판단하여 그당시에도 응용했었다는 설명이다.

Temple을 받치고 있는 Base의 벽에 새겨진 조각상은 남녀간의 성교 position을 적나라하게 표현하고 있었다.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도 잘 알지 못하는 69형, 73형,11형,12형등등으로로 세밀하게 조각되여 있음에 놀람을 금치 못하고, 당시 Hindu 사람들의 보편적인 삶의 중심이었었다고 설명한다.

그옆에는 당시 전쟁터에 나가는 병사(Soldiers)들이 동물과 관계를 하고 있었는데,  여성이 전쟁에 임하는 상황에서는 같이 있는게 현실적으로 어려웠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그옆에 있던 병사는 마치 아무것도 안보고 있는것 처럼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는 형국은 실상을 정말로 적나라 하게 보여주는, 진정한 삶이 한장면이라는 설명이었다.



Maint Temple뒤에 별도로 건축된 Temple은 Kadariya Temple인데, 전체적인 조각은 Main temple과 비슷한데, 입구가 Hymalaya산맥에서 Vishnu가 기도하기위해 기거했던 Cave의 입구와 비슷하게 만들어져 있다는 설명이다.  이 Temple은 11세기경에 Chandella 왕조의 Bidradhar왕이 건축했다는 설명이다.  Outside Wall에 조각된 각종 모형은 Main Temple에 조각된 내용들과 대동소이 했다.


Tour Guide가 우리 부부가 모델이 되여 보라고 권한다. 그까짓것 못할게 뭔가.  조각된 모형중의 하나를 선택하여 Form을 잡아 보았는데 마음뿐이다. 서있는것도 제대로 되지 않는다.힌두언어로 Gamastra라고 하는데..... 힌두교의 근본은 먼저 하고 싶은것 다하고 그다음에 성전으로 들어가 Worship 하면서 감사의 뜻을 표하는것으로 이해를 해봤다.

또 다른 조각은 3명의 여인과 1명의 남자가 동시에 성을 즐기는 조각상이었는데, 당시의 성이 문란했다는 설명은 없었다.  한남자가 머리를 바닥에 대고, 궁둥이를 들어올려 여인의 그곳에 심볼을 집어 넣고, 양옆에서 이를 지켜보고있는 여인의 그곳을 손으로 만져 흥분시키고 있는 조각상이었다.  


Jain Monks의 Statue와 불교의 불상과는 외형이 비슷하여 자세히 들여다 보지 않으면 똑 같은 것으로 보일수 있으나, 다른점은 불상은 앞이마에 다이아몬드가 있으나, Jain Monks는 앞 가슴에 마름모꼴의 다이아몬드 모양이 새겨져 있다.  또 불상은 양손이 여러형태로 표현되고 있으나 Jain Monks는 양손을 항상 겹쳐서 나란히 손바닥(Palm)이 하늘쪽을 바라보고 있다.

UNESCO에서 복원한 조각물은 서로 구별하기위해 힌페인트로 Numbering을 해놓았다.  기록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옆에는 한남자가 두여인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자세를 취하고 있는데, 얼굴은 그의 오른쪽에 있는 여인에게, 그의 다른 한발은 반대편 여인을 향해 벌려져 있는 형태로 둘다 취하고 싶은 남자의 심정을 묘사한 내용이라는 설명이다.  

이곳  Khajuraho Temple은 14세기경까지 밀림으로 싸여 있어, 사람들에게서 잊혀져 가고 있었는데, 1838년 영국의 탐험가에 의해 세상에 다시 알려지게 됐다는 설명이다.  이설명을 들으면서 Cambodia Siem Reap에 있는 Ankor Wat를 탐험했을때 들었던 내용과 비슷함을 느꼈다.

길건너있는  Eastern Temple은 Jain Temple로,  3개의 Jain Temple중 Parshvanath Temple을 탐방했다.  그들역시 Hindu종교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이다.  Jain Temple은 24개의  24명의 Prophets 숭배한다는 것이다.
성벽의 벽공간에 살아 움직이는 Owl이 마치 화석처럼 앉아 있었다.  보통 Tourists들이 소리치면 전연 반응이 없다가 나의 Guide가 음성으로 신호(?)를 보내자 눈을 껌뻑이고 고개까지 움직인다.  Guide가 처음에 물었었다. 장식물인가 아니면 살아있는 올빼미인가?  모두가 장식물이라고 했었던 대답에 정면으로 반증해준 순간이다.
Jain Temple 탐방을 마치고 나오는 길목앞에 똑같은 모양의 돌을 조각하여 판매하는 Craft shop에 들렸다. 참으로 많이 조각하여 진열해 놓았다.  큰 조각을 하고 있는중이었는데, 약 1년정도 시간이 소요된다고 했다.  무척 정교하다.  이물건이 잘 팔려서 그들이 생업에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램이다.


가는곳마다 Baggar들이 들끓고 있는것은 한두번 본것이 아니지만, 오늘도 Schedule다 끝내고 차를 탈려고 하는데 두명의 걸인이 구걸을 하고 있었는데, 웬지 그냥 지나치지 못해 적선을 하고 말았다.  인도에 이런 부류의 사람들이 없어져야 서로가 인생의 행복을 추구하는게 근본 이념인 민주주의 국가가 될텐데.....

Jain Monks에는 두종류의 Priest가 있단다.
White Cloth를 입은 Priest는 Switambara이고, 옷을 입지 않는 Priest는 Digambara로, Nude로 살아가는데 생활이 굉장히 엄격하다고 한다.  현재 인디아에는 이런 어려운 수행때문에 약 2,000여명의 Jain Monks만 존재할 뿐이며 그중에서 Nude Monks는 확실한 집계가 없으며 약간명이 있을것으로 추산정도라고 한다.

Jain Monks는 철저히 채식주의자이며, 그런데도 감자와 오니언은 안먹는다고 한다. 왜냐면 감자와 양파는 땅속에 뿌리를 박고 사는 생명체여서, 살생을 해야 감자와 양파를 먹을수 있다는 논리라고한다.  다른 채식은 잎만 먹기 때문에 다시 살아나온다는 믿음때문이란다.

벽에 새겨진 조각상에는 한남성이 오른손에 Sugar Cane을 들고있는 윗쪽에는 Cane끝에 5명의 사람머리 형상이 새겨져 있었고, 이는 Smell, Watching, Hearing, Eating, Feeling을 뜻한다고 한다.   옆의 조각상은 Budah상을 많이 닮고 있는데 전연 다르다는 설명이다. 부처님의 이마에 다이아 몬드가 있는데, Jain 상(Statue)에는 가슴에 새겨져 있었고, 두손은 부처님 모습에서 보는것과는 다르게 손바닥을 펴서 포개서 놓고 앉아있는 자세가 다르다는 것이었다.
 저녁 8시부터 인도 전통의 Folk Dance 관람했다.  그진정한 내용이 뭔지는 잘 이해할수 없었지만 우선 의상의 화려함과, 여러민족이 모여 살기에 화합을 묘사하는 내용이 많았다.  인도전통의 무용은 생전 처음 본다.  무희들중에 여성은 발목과 발가락에 까지 링을 끼운것을 봤는데
 링을끼우고 안끼우고를 보고 유부녀, 처녀를 구별하게 된다고 한다.  끼운여성은 기혼 여성이라고 했다.  의상의 색상이 자연에서 채취한 물감으로 염색을 했기에 고울수 밖에 없다고 본다.

Punjab 지역의 수염 덥수룩한 모양을 한 배우들의 모습은 좀 거칠다는 표현을 나타낼려고 하는것 같았다.  참 좋은 경험을 한 오늘 저녁이었다. 


관람을 끝나고 호텔에 도착했는데, 이번에는 호텔뒷뜰의 넓은 공간에서 야간 결혼식을 하고 있었다.  낯에부터 뒷뜰에서 무대설치를 하느라 약 30 여명 정도가 바삐 움직이는것을 보았는데, 호텔바로 앞의 큰길에서 부터 거창한 장식을 한것이다.  단장된 꽃은 전부 생화였는데
여기서도 결혼식 축하를 해주는것은 인정하되, 있는자의 과시인것을 또한번 보는것 같아 씁쓸했다.  한국에서 겉치례에 치중한 결혼식을 하지 못하도록 돌아가신 박통계실때에 계몽을 했었던, 그래서 내가 결혼할때는 공무원 신분으로 청첩도 공식적으로 하지 못했었던 기억이 되살아난다.  인도의 사회 구조로 봤을때 있는자와 없는자의 Gap은 더 커질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깊어진다.  며칠전 한 Tour Guide는 인도의경제적 눈부신 성장으로 새로운 중산층이 생겨 다행스러운 현상이라 좋아 하는것을 서로 토론해본적이 있는데,  이런 과장된 경제적 힘을 결혼식에서 All in 한다는것은 좀 사회적 Leader들이 솔선수범해야할 사항이라고 본다


더 문제점으로 지적하고 싶은것은, 이들의 축하연이 새벽 까지 이어져 투숙객들이 잠을 청할수 없도록 음악과 Fire Works까지 곁들였다.  나만 하고 싶은것 하면 되고, 남의 인권침해는 눈꼽만큼도 안중에 두지 않는 졸부의 본성을 보고, 또 이런 야간 결혼식이 투숙객들에게 미칠 영향을 다 알면서도 받아들인 호텔측의 장사속에 냉소와 비난을 퍼붓지 않을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