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March 21, 2014

러시아는 합병선언, 우크라이나는 EU협정으로 맞불-누구를 위한 조치?


http://www.bbc.com/news/world-europe-26713727

http://www.bbc.com/news/world-europe-26680250

http://www.cnn.com/2014/03/21/world/europe/ukraine-crisis/index.html?hpt=hp_c2

무심코 던진 조그만 돌에 맞은 개구리는 생사의 갈림길에서 허덕인다.  혹은 목숨을 잃기도하고, 혹은 부상을 당해 남은 생애동안 불구로 살아갈수도 있다.

지난해 11월 부터 시작된 우크라이나의 내분에서 시작된 동서 양진영의 대결이 마침내 어제부로, 우크라이나의 영토인 Crimea Peninsula에 대한 러시아연방의 발빠른 조치로 "러시아의 연방"으로 가기위한 마지막 단계인 "러시아 상원"의 Ratification이 완료 됨으로써, Ukraine의 자치주였던 Crimea반도는 사실상 러시아의 영토가 되고 말았다.

Crimea반도에 주둔해 있던 우크라이나의 해군을 포함한 군대는 저항한번 못하고 졸지에 맨손으로 기지에서 쫓겨나고 말았다고 한다. 이번의 합병은 러시아와 합병을 원하는 일부 과격파 주민들과 영토확장의 야욕을 원하는 Putin 정부의 발빠른 작품인 셈이라고 생각된다.

EU와 미국은 러시아의 이런행동이 국제법상 불법임을 누차 천명해 오면서 외교적 노력을 기울였을뿐, 빈수레의 소리가 요란한것 처럼, 호화판 사무실에 앉아 허공에 대고 큰소리만 쳐 왔을뿐 내용적으로 아무런 방책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고 있는사이, 러시아는 군대를 신속히 현지에 파견하면서 Crimea반도를 접수하고 있었던 것이다.  서방 세계는 이런 조치를 보면서도 여전히 외교적인 해결책만 고집하고 있었고, 당사국인 유크라이나 역시 자국의 군대를 동원하여 이를 저지 하려는 행동에는 손을 놓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는 마치 도적들이나 사기꾼들에게, 그런짖 하지말고 양심적으로 살아야 한다라고 외쳐대는것과 하등 다를게 없다고 생각한다.

합병을 위한 마지막 단계로 러시아 상원은, Duma 즉 러시아 하원에서 통과된 합병안이 2일만에 Putin의 서명의 받고 바로 상원으로 이관되자 번개처럼 통과시키고, 선언하기에 이르자, EU와 미국은 군사적 대응책은 뒷전으로 두고, 어제 Ukraine과 "정치적 연합"을 하기로 합의를 하는것으로 대응한 것이다.  그리고 Russia에 대한 여러차원의 봉쇄(Sanction)를 선언한다. 금융과 자산동결조치를 포함한 개인적인 봉쇄도, 해당 인사의 이름을 거명하면서 시행한다고 선언했다.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은 모스크바로 날아가 Putin을 만나고 있다. 이미 화살은 날아간 뒤인데, 또 유엔의 기능은 이미 힘을 쓸수없는 종이 호랑이에 불과 하다는것을 세계적으로 격동의 순간이 발생할때마다 입증되곤 해 왔는데, 이번에도 기대할것은 없는것 같다.  그곳에서 회동이 끝나면 EU의 정치적 중심지인 Brussels로 날아가 EU Leader들과 만난다고 한다. 여기서도 기대할것은 없는것 같다. 사상누각을 쌓는 소리는 있겠지만....

문제는 이러한 정치적, 군사적 조치들이 몇사람의 Leader들이 국민들의 이익을 위해 취한 조치라는 허명하에, 힘없고 죄없는 국민들만 곤혹에 빠지고 그대가를 치르게 된다는점에 있다.  당사국을 비롯한 전세계의 순진 무구한 국민들은 오직 그들의 삶이 이들의 말장난에 흔들리지 않고 안정된 생활이 지속되길 원하고 있으면서 혹한에 떨고 있다. 역사속에 이들 이기주의자인 Leader들이 이름을 남기기위한 위선임을 더 확실히  느낄수 있게됐다.

이런 상황속에서도 이들 리더들은 초호화판 회의 장소에서 목에 힘주고 괘변아닌 괘변을 늘어놓고 있다.  이들이 어찌 서민들이 살아가는 현장의 상황을 피부로 느낄수 있을까.
봉쇄정책을 발표 하지만, 위에서 언급했던데로, 그들 Political Leader들간의 조치일뿐 서민들의 일상생활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보여진다.  이들이 정치적 행동을 하는데 들어가는 비용은 누가 부담하는가?  순지무구하게 살아가는 서민들,  그중에 나자신도 끼어있는,의 몫이다. 옛말에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엉뚱한 놈이 챙겨간다라는 명언이 떠오른다.

동서 냉전의 상징이었던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지 4반세기가 훌쩍 지났다.  순진무구한 서민들은 이제 남은것은 태평성대일 뿐이라고 좋아 춤추고 기대를 했었다.  당시의 상황과 지금의 상황을 비교해 보았을때, 과연 태평성대가 있었다고 긍정할 사람이 있을까?  아마도 Political Leader들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경제적 불황은 그때 이후로 한번도 헤여난적이 없다고 단언한다.  그고난은 전적으로 순진한 서민들이 떠맡고 있을뿐이다.

인류가 지구상에 존속하는한 어떠한 영웅 호걸이 나타난다 해도 일반 서민들에게는 큰 변화와 번영은 없을 것으로 추측될 뿐이다.  부탁하고싶은 것은 푸른 초원에서 평화롭게, 누구의 간섭을 받지않고 풀을 뜯고 있는 소와 양들 처럼 살아갈수 있게 최소한의 철조망을 설치해서 그안에 있는 소와 양들은 철조망이 쳐진줄도 모르고 열심히 그리고 평화롭게 풀을 뜯는, 즉 생업에 종사할수 있는 최소한의 간섭만 하기를 소원한다.  그해결책을 동서 양진영의 괘변자들은 귀기울여 들어야 할것이다.  명예와 부를 다 내려놓고 말이다.




Thursday, March 20, 2014

후진국소녀들의 강제조혼 풍조, 누가 막아야 하나.-Time to end child marriage


Time to end child marriage
January 21st, 2014
09:03 AM ET

Time to end child marriage

By Jacqui Hunt, Special to CNN
Editor’s note: Jacqui Hunt is London director of Equality Now, an international human rights organization, which aims to end violence and discrimination against women and girls around the world. The views expressed are her own.

Khadijetou was born in Mauritania in 2002. She was force-fed from the age of 7, and in 2010, she was married to a man 10 years older than her father. At the time of her wedding, she was extremely overweight. Khadijetou became pregnant in 2011 and gave birth by cesarean in order to save the life of her child. But her own health deteriorated and twenty days later, she died aged 11 years-old.

우리나라에서도 2차대전 무렵까지만 해도 조기결혼이 양가 부모님들 협의하에 본인들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치러졌던 오랜 풍습이 있었다. 신랑, 신부 모두 아직 어린 십대들이었었다.

지금도 아프리카의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조기결혼식이 성행하고 있다. 특히한점은 신랑은 대부분 나이가 적령기를 지나 늙은사람도 있지만, 신부들은 모두가 아직 10세가 안된 어린 소녀들인데, 부모들이 결혼지참금을 받고 팔아 넘기는 일종의 인신매매 성격이 강한것 같다.

아프리카의 모리타니아에서는 2002년도에 태어난 7세의 소녀가 부모들의 강압에 의해 2010년도에 신부의 아버지보다 10살이 더 많은 늙은 신랑에게 시집을 보냈었다. 신부는 나이에 걸맞지않게 뚱뚱했었다. 2011년도에 임신하여 출산을 할때 자연분만을 할경우 생명을 잃을 위험에 처해 결국 제왕절개 수술을 받아 아이를 출산 했었다. 그러나 출산 후유증이 도져 출산후 20일만에 11세의 나이로 결국 세상을 뜨고 말았다. 그러나 모리타니아에는 조혼금지에 관한 법이 없어 이어린 소녀의 죽음에 아무도 죄값을 치르지 않고 지나가 버린 사건이 있었다.

탄자니아는 법으로 14세까지는 결혼을 금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국가의 공권력이 미치지 않아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소녀들이 어린나이에 여성의 성감대를(Clitoris) 칼로 도려내는 성적 학대를 받고, 조기 결혼을 시키는 악습이 현재도 만연하고 있다.

몇년전에는 내가 살고 있는 캐나다에서도 이런 비슷한 사고가 발생하여 언론에 그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일기도 했었다.  그들은 아프리카에서 이민와서 살고 있는 가정에서 관습에 따라 어린딸의 성감대를 부모가 집에서 잘라내어 떼어낸곳의 상처가 악화되여 병원신세를 지게 되면서 캐나다 사회에 알려졌던 것이다.

세계도처에서 1천4백만명의 어린 소녀들에게 이런 악행이 계속되고 있다고 한다.
사우디아라비아,예맨, 모로코,케냐, 이집트 등 아프리카의 거의 모든 나라에서 그들의 오랜 전통이라는 미명하에 소녀들을 살인하고 있는 셈이다.

2년전 애티오피아를 약 한달간 여행 했을때도 머시족, 하마족들이 사는 마을을 방문했었다.  직접 그곳에서 내눈으로 확인은 못했었지만, 가이드의 설명에 따르면 여성의 성감대를 엄마들이 어린 딸을 움직이지 못하게 꼭 붙잡고 소독도 안된 칼로 잘라내고, 남자들은 성기의 표피를 손으로 잡아당긴후 무자비하게 무우를 잘라내듯 잘라 버리는,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치게하는, 성학대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여성의 인권유린 방지 차원에서 전세계의 관련 기관들이 홍보와 법적 제재를 가해 더이상은 이런 악행들이 관습이라는 미명하에 자행되지 않도록 조치를 하고  감시하여 인간으로 태어나서 느낄수 있는 모든 권리와 행복을 추구하도록 해야 한다.

서구사회의 선진국에서는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또 문화면에서도 남녀 평등을 부르짖고, 사회적 활동에서 아무런 제약없이 삶을 즐기고 있다.  또 UN같은 국제 기구가 2차 대전 이후로 만들어져 인권평등 강조를 우선 과제로 부르짖고 열심히 세계 도처를 돌아다니면서 미사여구를 다 동원하여 마치 당장에라도 지구상에서는 여성의 인권유린은 존재치도 않으며 또는 남녀평등은 모든 인류가 누리는것 처럼 보여지게 하고 있다.  이 얼마나 위선으로 가득찬 세상인가?

이런 모든 행동들은 그끝을 찾아 들어가 보면, 남성위주의 부계사회에서 남성들의 성적 쾌락을 위해 여성을 하나의 도구로 여긴 오랜 풍조에서 비롯된것 같다. 지금도 아프리카일부 국가나 중동지역에서는 4-5명의 여성을 합법적으로 아내로 맞아 들여, 한방에 거주 하면서도 옆에서 이광경을 보는 다른 부인들은 성적 수치심이나 시기심을 유발하지 않는 이유는 성감대(Clitoris)를 거세 당했기 때문에 성적흥분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결국 이런 악습을 몰아내고, 서구사회에서 처럼 남녀평등을 나누기위해서는, 원인 제공자인 남성들이 앞장서서 행동으로 보여주기 전에는 방법이 없는것 같다.
이런 풍속이 그들의 삶속에서 수천년 내려온 아프리카의 여러나라 버려진 땅같은곳에서 살고 있는 부족들을 직접 방문 목격했기 때문에 변화의 절실함을 마음 아프게
느끼게 했었던것 같다.

그러나 쉽지는 않다고 본다.  수천년동안 내려온 전통에 여성자신들도 그속에 푹 빠져 있는점이 첫번째 Hurdle이고,  이에 동조하여 남성들이 자기네들에게는 일종의 통솔행위이자, 자존심이자 기득권인데..... 오랜 시간을 두고 사회전체의 삶의 분위기를 바꾸는, 경제성장을 포함한 Civilization 이 관건이 아닐까?
Since there is no law in Mauritania forbidding child marriage or force-feeding, no action is being taken against anyone who may have been involved. L’Association des Femmes Chefs de Famille is calling for both laws to be enacted and implemented urgently.
Meanwhile, Lulu was subjected to female genital mutilation in Tanzania at the age of 4. At 14, having completed her primary education, she was forced into a polygamous marriage. Local organization Network Against Female Genital Mutilation met with her parents, who agreed return her dowry of eight cows and allow her to continue her education.
Tanzania’s law allows girls to be married at the age of 14 with a parent’s or guardian’s consent. There is no legal protection for girls like Lulu, who must rely on their own courage and the support of thinly-stretched non-governmental organizations when they face female genital mutilation, which is outlawed but largely unenforced, and child marriage.
It is with these issues in mind, that Equality Now has released ‘Protecting the Girl Child: Using the Law to End Child, Early and Forced Marriage and Related Human Rights Violations,’ a detailed report illustrating that child marriage does not take place within a vacuum – it is part of a continuum of abuse experienced by a girl and is often linked with female genital mutilation, sex trafficking or force-feeding before marriage, rape, domestic violence and the removal of future opportunities as a result.
The reality is that when a child bride gives birth, the vicious cycle of poverty, poor health, curtailed education, violence, instability, disregard for rule of law and legal and other discrimination often continues into the next generation, especially for any daughters she may have.
Sadly, child marriage directly affects approximately 14 million girls a year, and in the process legitimizes human rights violations and the abuse of girls under the guise of culture, honor, tradition, and religion. It is part of a sequence of discrimination that begins at a girl’s birth and continues throughout her entire life.
Of course, countries including Saudi Arabia and Yemen, which have no laws aimed at preventing child marriage, have further controls over girls and women at various stages of their lives. And although there have been indications that both countries might introduce a minimum age of marriage in the near future, this will be a challenge for both countries – particularly Saudi Arabia  –  where a harmful system of male guardianship prevails.
Meanwhile, judicial discretion to allow child marriage in countries such as Morocco still enables girls to be married off after being raped, a decision that effectively exonerates the rapist (although a revision of the law is possible in the near future).
Other countries featured in the report, such as Kenyado have a minimum age of marriage law, but implementation is patchy. This also results in failure to protect girls at risk. As in Tanzania, female genital mutilation in Kenya is linked to child marriage and helps set up child brides for a lifetime of abuse.
Unfortunately, there has also been recent backsliding in several countries, including in Iran, where the number of girls under the age of 15 married off has risen and parents can now marry their adopted children, and in Egypt, where there was some discussion about the possibility of lowering the minimum age of marriage to nine years-old.
So what should be done? Ending child marriage internationally should be a global priority and included within the post-2015 development framework. A set of indicators that reflect the full range of issues surrounding child marriage should also be reviewed by donors when reviewing countries for development funding.
At the national level, a comprehensive, joined-up approach is essential, one that links the justice sector with healthcare, education, community and other leaders. Such initiatives should tackle child marriage not as a single abuse, but rather related to other manifestations of discrimination and violence against women and girls.
Without such frameworks in place recognizing child marriage as part of a harmful cycle of abuse, girls will remain vulnerable not only to being married off at a young age, but ultimately to a lifetime of abu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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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pics: Human Rights • Youth

Monday, March 17, 2014

Ethiopia,Africa 부당한 관람료 징수가 Rock-hewn Chuch in Lalibela.의 Tourism을 망친다.

http://www.bbc.com/travel/feature/20140206-is-tourism-undercutting-ethiopias-rock-hewn-churches

아름다운 인류유산중, 가장 신비스러운 보물은 아마도 Lalibella, Ethiopia에 있는 바위를 깍아 만든 11개의 지하 교회일 것이다.
Abba Libanos, Lalibela Ethiopia

관광객 한사람이 방문 하는데는 약 미화 60달러를 지불해야 한다.  엄청난 큰 돈이다.  그런데 이렇게 수집된 돈이, 교회유비보수를 위한데 사용한다면 무슨 불만이 있겠는가.
현실은 정반대의 방향으로 흘러 가고 있기에 이곳을 방문한 여행객은 물론, 뜻있는 세상사람들을 마음 아프게 하고 있다.

거의 대부분의 징수된 관람료는 교회 Clergy와 그집단에 들어가 버리는것 같다.
내가 2013년도 3월에 그곳을 방문 했을때, 한국에서 방문한 젊은이 3명을 만났었다. 그들은 그냥 이곳을 찾은게 아니고, KOICA에서 애티오피아의 남쪽 지방에 파견된 현지 봉사자들이었다.  모처럼 만에 휴가를 내여 그동안 절약해서 모아둔 돈을 이번 여행에 사용하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그들이 더 기억에 남았고, Fellowship을 하기도 했었다.

같이 Rock-hewn Church를 구경 가기로 했었는데, 그들을 현지에서 못만나고 말았다.  그이유는 입장료가 개인당 미화 50달러가 넘어, 그많은 돈을 들이고 구경하기에는 자기네들 예산에 구멍이 생길수도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말을 듣기 전까지는 나와 Lunar도 그렇게 비싼 입장료를 지불한다는것은 나와는 상관 없는 일로 생각 했었다.  왜냐면 나와 Lunar의 여행경비는 Package로 묶어 애티오피아 현지여행사에 일괄 지불 했기에 말이다.

이곳 Lalibella의 교회 방문자는 하루 평균 약 115명 정도라고 한다. 일년을 계산하면 엄청난 액수인데, 거의 전부 사용되어야할 곳으로 가는게 아니고 교회 관계자들이 거의 독식을 하고 있으니....2008년에 교회건물의 파손을 막기위해 지붕위에 또 다른 지붕을 현대식으로 덮어 씌워 놓았다.  이비용은 EU 연합과 UNESCO의 지원금으로 충당됐다는 것이다.

이집트 피라밋을 관람 했을때도 사정은 비슷했었다.  현지주민들과 관계자 그리고 현지 여행안내자들도 하나같이 당시의 대통령 "무바라크"를 비난 하는것을 들었었다.  이엄청난 관람료징수가 모두 그의 주머니로 들어가 버린다는 것이었다.

영국 런던시에 있는 St.Paul Cathedral 사원은 16파운드, 약 550 Birr, 이태리의 Sistine Chapel and Vatican Museums는 16유로달러,415 Birr, 인도의 Taj Mahal사원은 230 Birr를 징수한다.
그런가하면 세계적으로 유명한 종교적 사원관람에 관람료 징수를 전연 하지 않는곳들도 있다. 파리에 있는 Notre Dame Cathedral 사원, 터기 이스탄불의 Blue Mosque사원등이다.

이렇게 무리한 관람료 징수를 피하기위해 많은 관광객들은 Lalibela보다 훨씬 북쪽에 위치한 Axum 지역에 있는 Tigray지역을 찾는다. 1세기에서 10세기사이에 건축됐던 바위동굴( Rock-hewn Church)들이다.  우아한 자태를 지금도 발하고 있다. 물론 입장료는 무료이지만 Donation은 받는다.  그러나 이교회들을 관람하는데 문제가 되는점은 쉽게 접근할수 없도록 수직이다 시피한 바위 절벽을 통과해서만이 가능 하다는점이다.

Debre Damo에 있는 Axumite사원이 바로 그곳이다.  그곳에 오르기 위해서는 15미터가 넘는, 가죽(Leather)가닥을 꼬아 만든 Rope를 맨손으로 붙잡고, 위험을 무릅쓰고 깍아지른 절벽을 올라야 한다.  나도 그곳을 방문했을때 차례를 기다렸다가 로프를 붙잡고 꼭대기에 오르려고 시도 했었다. 꼭대기에 Rock-hewn교회가 있기 때문이다.  로프를 타고 오르는데 사고를 대비한 아무런 보호 장치도 없는 15미터 이상의 절벽을 두팔의 힘을  이용하여 오르기에는 내몸무게가 너무나 크다는것을 정상정복 약 5미터를 남겨두고 접어야 했다.  무리를 하다가  사고를 당해 객사하고 싶은 객기를 부르기에는 난 너무나 오랜 인생을 살아왔음을 절감 해야만 했었다.

선조들이 만들어준 아주 귀중한 바위를 깍아 만든 교회가 지금은 완전히 상품화 되여 몇사람들의 배를 채워주고 있는데도 감히 이의 부당한 사용을 막기위해 정부나 관련단체들이 앞장서서 나서지 못하고 있는 그이유는 무엇일까?   지하에 있는 믿음의 선조들이 얼마나 통탄 하실까?  애티오피나는 국민 모두가, 남쪽의 일부를 제외하고, 기독교를 신봉한다. 종파는 Orthodox다.  하얀 까운을 입고 예배드리는 예식은 관광상품이 되고도 남는다.  성경 구약에 나오는 영장의 노래를 이렇게 부르지 않았을까?라는 상상을 하기에 충분한 의식이다.

세계 각처로 부터 모여드는 관광객들은 발길을 끓지 않을 것이다.  현지에서 이러한 부조리를 겪고난후의 기분은 착찹할 것이다.  전인류의 문화 유산으로 지정된 이러한 보물들이 몇사람의 부조리 때문에 관람이 막히거나 아니면 그들의 주머니를 채워주기위해 거금을 지불해야 한다는것은 분명코 현대판 봉이 김선달 그이상이다.  Rock-hewn Church를 보기위해 세계 각처로 부터 모여드는 관광객, 특히 젊은이들이 부담없이 구경할수 있는 그런날들이 불원간에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바란다.  내가 현장을 직접 구경하면서 체험 했기에 이런 간절함이 더하는것 같다.


Saturday, March 15, 2014

Snow covered Cline Mountain Area Trail Walk(Map 5), 산행에서 느끼는 그맛.

어제밤 초저녁에 내일 Trail Walk 영향을 미칠 날씨를 점검하기위해 창문밖을 쳐다 보았었다.
구름한점없는 파란 하늘에는 예상치도 않았던 만월에 가까운 큼직한 달이 휘영청 천장에 매달려 있는것 처럼 곱게 떠있어 내일 날씨에 대한 염려를 접었었다. 낯에 일기예보에는 내일 낯동안에 Wet snow가 있을것이라고 했었기 때문이었다.

IKEA 구내식당에서 9시5분경(3월 15일) 대원들을 두대의 차에 Car Pool 한후 약 한시간을 달려 오늘의 등산 목적지인 Cline Mountain Rd.에 도착, 대원들은 항상 해온것 처럼 창조주께 오늘의 산행을 보고 드리고 잘 지켜 주실것을 믿는다는 기원을 드렸었다.  그리고 Crampons, Gaiters등 걷는데 도움이 되는 장비들을 부착 시키고 첫발을 움직였다.



출발지점에서 부터 반가운(?) 친구가 우리일행을 앞서가면서 Guide(?)를 하는 조그만 친구를 만났다.  아마도 출발지점에 있는 주택가에서 나온 주인장 몰래 빠져나와 우리와 같이 등산을 할려는 것 같다.   그자신도 혼자서 산행 하기에는 좀 싱거웠었나 보다.  꼬리까지 흔들면서 무릎까지 빠지는 눈속을 잘도 앞장선다.  대원들 모두가 우리의 오늘 산행을 잘 인도할 길조로 생각하면서 그조그만 친구와 한마디씩 건넨다.

다행스럽게도 Wet snow는 없이 포근한 날씨였다. 그래서인지 무릎까지 쌓인 눈밑바닥에서는 눈이 녹기시작하면서 비탈진 Trail에서 발걸음을 옮길때마다 신발이 미끄러져 평소보다 3배 이상의 Energy를 소모 시킨다.  초장부터 대원들의 몸에서 에너지를 빼낼려고 Snow covered Trail은 우리를 괴롭히는것 같다.  그렇타고 숙달된 대원들이 물러설리 없다.



나무 Trunk에 새겨진 흰색의 Blade표시와 그옆에 상처의 흔적으로 남은 모양새가 음양의 조화를 이루는것 같은 흔치않은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생명체는 음양의 조화로 다음 생명체를 생산하면서 역사를 이어가게 하는 신비함을 깊이 느낀다.  그옆에 서있는 고목에서는 영지버섯(Artist's mushroom)이 모진 추위를 이겨내고 위용을 자랑하고 있고, 대원들의 걷는 발걸음도 힘이 있어 보인다.  여전히 나목의 윗쪽에서는 센바람이 지나치는 소리가 매섭게 들린다.  이들이 위에서 막아주지 않았다면 우린 무릎까지 빠지는 눈과 싸우면서 바람과 또 힘겨운 싸움을 했었을 것이다.




사슴의 발자국이 보인다.  아마도 그저께 저녁까지 쌓였던 눈속에서 먹이를 찾는데 실패한 숲속의 주인인 사슴이 바로 아래에 있는 민가로 먹을것을 찾아 대식구들이 이동한것으로 짐작된다.




계곡을 지나는데 포근해진 날씨에 눈으로 덮혔던 개울속으로 물흐르는 소리가 숲속의 새생명들이 곧 지표를 뚫고 눈(Eyes)을 시원하게할 파란새싹의 모습을 드러낼 날들이 며칠 뒤로 바짝 다가오고 있다는 전령으로 보였다.  개울의 어떤 부분은 덮혔던 눈이 다 녹아 내려 지금까지 깨끗하게만 보였던 정돈되지 않은 본래의 모습도 보여준다.



준비해온 점심을 오늘 산행에서 대원들이 제일 필요로 하는 자연산 의자에 둘러앉아 나누기 시작한다.  첫술에 입에 넣은 밥맛은 꿀맛보다 달고 몸속의 소진됐던 에너지를 금새 보충시켜주는것 같다.  보온병에서 따라 마시는 따뜻한 둥글레 차 한잔의 맛도 궁합이 맞는다.  되돌아오는 발길은 훨씬 가볍고 속도 또한 전진 할때보다 빠르다. 전진 할때는 아직 아무도 걷지 않는 푹쌓인 눈(Snow)속에 발길을 옮기면서 개척해야 했었기 때문이었다.


 
상인들의 상술은 이곳 숲속에서도 선명히 보인다.  오늘은 어렵지만 눈이 없어진 봄철이나 여름철에 다시 한번 이곳을 걷게 된다면 한번 들려 보리라 마음속에 다짐도 해 본다.  빵맛도 보고, 또 어떤 종류의 기념품을 팔고 있을까? 궁금해 진다.


 
높이 솟아 있는 Y 타입의 나목에 다람쥐가 나에게 눈짖을 하는것을 보았다.  이순간을 놓치면 아쉬울것 같아, 한컷 신속히 했다. 운이 좋게 그놈도 나의 카메라를 보았는지 자세까지 잡아 준다. 꼬리가 올라가 있는것을 보니 그친구는 사슴처럼 먹을 것을 없어 고생하지는 않은것 같다.  다른 그놈의 친구들은 경주를 하듯 나목의 줄기를 오르락 내리락 바삐 움직인다.  찰칵할 순간을 내주지 않는 기분나쁜 친구들이다.





산행을 마치고 Tim Horton's에 들려 향이 그윽한 한잔의 커피향은 피곤을 녹이고도 남는다.
오늘은 산행팀의 총무께서 큰 인심을 쓰셨다.  기대 하지도 않은 Doughnut까지 한개씩 먹을수 있도록 신경을 써줘서 고마웠다. 그래서인지 기름냄새도 나지않고 맛이 곁들이는 커피와 잘 어울린다.  대원들 모두가 내가 느낀것 처럼 분위기에 푹 빠져 있다.  다음주를 기약 하면서 커피집을 나선다.

Friday, March 14, 2014

MH 370 mystery와 Co- pilot of Ethiopian Airliner Hijacking (Feb 17th,2014)을 생각한다.

http://lifemeansgo.blogspot.ca/2013/03/ethiopia.html

http://www.cnn.com/2014/03/14/opinion/goyer-malaysia-flight/index.html?hpt=hp_c2

http://www.bbc.com/news/world-europe-26222674

http://ac360.blogs.cnn.com/2014/02/17/what-was-it-like-inside-the-flight-hijacked-by-the-co-pilot/?iref=allsearch

Police stand on an air stair leading the Ethiopian Airlines flight en route to Rome

말레이시아 여객기 MH 370이 실종된지 오늘로써 7일이 지났다.  그러나 탐색작업은 갈수록 오리무중인것 처럼 보도되고 있다.  가족들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이해할수 있을것 같다.

조금전 CNN의 독점보도에서 실종 여객기는 누군가에 의해서 Sabotage됐을 가능성을 심도있게 보도하고 있다.  이기사를 보면서 지난 2월달에 애티오피아 여객기가 Rome, Italy로 항해도중, 하이잭킹 당해 스위스에 불시착 했던 사건이 머리에 떠 오른다.

그때 애티오피아의 여객기를 Hijacking한 범인은 바로 애티오피아 여객기를 운항중이던 Co-pilot였었다. 그의 하이잭킹 동기는 엉뚱했다.  그는 애티오피아 정부로 부터 보이지 않는 여러 위협을 받았기에 스위스에 난민 신청을 할 계획을 세웠었고, 기회를 보다가 Pilot가 소변보러 잠깐 변소에 들어갔을때를 포착하고, 문을 locking 시키고, 조종간을 잡고 계속 운행 하면서 스위스 공항의 관제탑에 로마로 향하던 애티오피아 여객기가 지금 Hijacking 당했다. 나는 이여객기의 부조종사이면서 Hijacker라고 신분을 밝히고 착륙을 허가해 달라는 신호를 보냈다.  하이잭킹 뉴스를 접한 이태리 공군과 프랑스 공군기들이 출동하여 Guide해서 이여객기는 무사히 스위스 제네바 공항에 착륙하여 사건은 일단 마무리 되고, 그는 당국에 체포 됐었다.  다행히도 탑승한 승객과 비행기는 안전 했었다.

정확히 일년전 우리 부부는 단둘이서 약 한달간 애티오피아 관광을 했었다.  그것도 Toronto발 AdisAbaba 행 Ethiopia Airlines를 장장 16시간을 Non Stop으로 날아 갔었다. 그때 애티오피아의 정치적 상황을 정확히 알수 있었다.  정부는 국민들에게 Land ownership을 허용하지 않고 다만 거주할수 있도록 허가만 해주는 독재전제 국가였다.  우리 부부의 관광 가이드도 어떻게 하면 애티오피아를 탈출 할수 있을까?라는 생각으로 시간을 보낸다고 했었고, 그런 생각을 많은 애티오피아인들이 마음속에 갖고 기회만 노리고 있다고 하면서 정부를 맹렬히 비난 했었다.  그러나 외부에 내놓고 불평을 하게되면 바로 당국에 연행되기 때문에 마음속으로만 정부를 비난하고 있다고 설명한 기억이 새롭다.

경제발전은 2차대전이후 거의 정지상태로 나의 눈에는 보였었다.  도시계획도 안된 자연발생적으로 팽창한 수도 "아디스아바바"는 현대도시의 모습을 볼수가 없었다.  길거리에는 소떼가 차량과 함께 점령하고,  도시의 Roads에는 하수구(sewer)라는것이 아예 없었다.  비가 오면 길거리마다 물난리가 나는 혼돈속에서 살아가는 도시가 바로 애티오피아의 수도 "아디스 아바바"였다.

고등 교육을 받고 외부세상을 접해본 사람들은 개인의 자유와 재산권이 허용되지 않는 사회적 구조속에서 생활하는것은 지옥에서 마지못해 살아가는 삶의 연장으로 생각하고 있다는것을 알았었다.

애티오피아 여객기를 피랍한 부조종사도 그런 사람들중의 하나였을것으로 나는 이해를 하고 싶었다.  200여명이 넘는 승객들을 공포속에서 떨게한 행동은 절대로 용납이 안되는 행위로 용서할수 없지만, 이방법이 아니고는 다른 선택이 없었을 그안타까움도 이해됐었다.

이번 말레이시아 여객기의 실종사건에 대한 전문가들의 견해가 애티오피아 항공기의 피납사건때와 얼핏 많은 점이 유사한것으로 이해가 되기에, 항공기에 대한 지식이 풍부한 전문가 또는 이와 유사한 사람이 Pilot와 Co-pilot를 위협하여 Transponder를 Cut off하고 진로를 바꾸고 Flying 하도록 위협하는 과정에서 더 먼곳으로 날아가 실종된것은 아닐까?라는 추리를 해본다.  아니면 Cockpit에서 Sabotage위협에 맞서 싸우다 바다에 추락해 버린것은 아닐지?라는 생각도 해본다.  암튼 조속히 진상이 밝혀져 초조히 기다리고 있는 가족들과 관련 당사자들의 시름이 풀어졌으면 하는 마음이다.

김정은 체제 유지용 허수아비 선거, 왜 언론에 보도 하는걸까?

http://www.bbc.com/news/world-asia-26502900

http://www.cnn.com/video/data/2.0/video/world/2014/03/17/pkg-hancocks-north-korea-guard-story.cnn.html

"선거" 하면 사람들의 보편적인 생각은 여러명의 Candidates가 있고 그중에서 마음에 드는 한후보를 선택하여 투표하고, 가장 득표가 많은 후보가 최종 승자가 되여, 일국의 대통령도 되고, 도지사도 되고, 군수도 되고, 면장도 되고, 노벨상 수상자도 된다고 믿는다.

오늘 BBC의 뉴스를 보면서, 내눈을 의심할 내용을 읽었다. 지구상에서 가장 엉터리 정치집단인 북한에서 선거를 한다는 것이다. 갑자기 하룻밤 사이에 북한세상이 바뀌어진것은 아닐까?라는 희망적인 상상을 해본다.  한줄 한줄 읽어 내려 가면서, 나의 상상이 완전히 미친 방향으로 흐르고 있었다는것을 파악하면서, 나중에는 분노마져 일어났다.

그렇치 않아도 그동안 듣고 읽어온 뉴스에 의하면 북한땅에는 먹을것이 없어 굶어죽는 사람들이 일년에 수십만명이고, 그것은 바로 한푼의 돈이라도 모아서 국민들 굶어죽는것을 막는데 사용해야할 심각한  결론으로 귀결되는데, 그순간에 한사람의 관객도 웃기지 못한 쑈를 선거라는 이름을 부쳐 무대에 올렸다는 것이다.  기가 막혀서....

중앙 무대의 쑈에 선 후보는 딱 한사람 "김 정은",  그리고 각도, 군, 시, 등등의 쑈  무대에 올라온 후보도 김정은이 지명한 딱 한사람의 후보들이다.  투표용지에는 "예" 그리고 "아니오" 라고 했다.  굳이 이런 쑈를 벌이는 김정은 Regime의 속내는 어떤것일까?  이런 그들의 쑈를 보면서 전세계의 관객들이 배꼽을 잡고 웃어 주었으면 하는 희망을 가슴에 안고, 외부세계에 알렸을 것이다.  무엇을 얻을려고....Rubber Stamp라는 말을 잘은 쓰지 않지만, 쓰여질때는 속해 있는 어떤 조직이나, 나라(State)나 정상적이지 못하다는 뜻이다.

투표율 100%에, 찬성표 100%.  과연 토픽감은 맞는데, 사람들이 신기해 하지도 않고, 또 웃지도 않았다는 점이다.  대신에 세계의 언론은 조롱섞인 기사로, 일종의 까십기사로 취급하여 "지구상에 유일하게 존재하는 Beast집단이 또 광기를 부리는구나" 라고.

그집단에게는 신임도, 투표율도, 찬성여부도 심각하게 판단 분석할 필요가 없는 선거다. 충성경쟁을 하는 하수인들의 공갈과 협박에 죄없는 주민들만 꼬투리(Noose)에 매달린 소처럼 끌려가서 조종하는데로 찍고, 만세부르고 ..... 그리고 다시 할당된 책임량을 완수하기위해 바삐  공동작업장으로 되돌아가야하는  꼬투리에 꽉잡힌,잘 길들여진 소의 신세가 된채 내일이 보이지 않는 악마의 소굴로 습관적으로 되돌아갈뿐이다.

보통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Community)에서 한번 선거를 치를때마다 소요될 비용이 선거관리위원회에 의해 계산되여 발표한다.  그금액이 어마어마 하다.  김정은 집단도 소요되는 비용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선거비용을 차라리 굶주린 주민들에게 강냉이 죽이라도 한그릇 더먹게 해주는 김정은 동지의, 구호가 아닌 행동으로 보여주는 아량을 베풀었다면, 권좌에 앉아서 호령할 그들의 날자가 더 길어질수도 있었을텐데.....바보들.

앞으로 다 죽어가는 그들 악마집단의 생명을 어떻게든 연장해 볼려고 최후의 발악을 늦추지 않을것이다.  이과정에서 또 얼마나 많은 무고한 생명이 제단에 바쳐질까? 그것도 모자라면 다시 남쪽으로 고개를 돌려, "개성공단 운영개선", "이산가족상봉", "금강산 관광재개", "경제개발 특구설정으로 공동투자" 등등의 구실을 얽어매여, 자기네 요구에 응하지 않으면 서울 불바다를 만들겠다고 공갈 협박을 이어갈것이다.  서울의 좌파구룹은 이들의 인도적(?)제안에 응하지 않는다고 광화문 네거리에 모여들어 국민들을 선동할 것이고.....

북한 김정은 Regime의 경제적 젖줄 역활을 하고 있는 중국 마져도 김정은 체제가 실시한 엉터리 선거방식은 없어진지 오래다.  중국의 정권도 이런 회개망칙한 선거를 비난한다.  간혹 후진국에서 실시하는 선거의 공정성 여부를 확인하고 계도하기위해 유엔 산하기구의 하나인 선거감시단이 해당국에 파견되는 뉴스를 보곤 했었다.  언젠가는 전임 미국대통령, Jimmy Carter도 감시단의 일원이 되여 선거를 관전했다는 것이다.

이상한것은 이러한 엉터리 김정은식 선거에 유엔에서 아무런 논평이 없다는 점이다.  김정은 체제의 정권도 분명히 유엔 회원국인데.....나의 짧은 머리로는 판단기준이 설정되지 않는다.  그져 불쌍한 북한 주민들이 겪을 고통의 시간이 짧아지기만을 바랄뿐이다.  그날이 바로 그들 체제의 종말을 고하는 날일 것이다. 날자가 하루하루 짧아지고 있는것은 분명한것같다.  나같은 소시민도 북한 내부에서 일어나고 있는 여러 정황을 보고 또 느끼고 어느정도 앞날을 그려 볼수있으니까.  통일의 대박은 아니더라도.....


Wednesday, March 12, 2014

FTA 드디어 한국과 캐나다간 협정체결 했단다. 한국으로서는 잘한일같다.

http://www.cbc.ca/news/politics/stephen-harper-takes-on-ford-over-south-korea-trade-deal-1.2566799

http://www.thestar.com/news/canada/2014/03/11/south_korean_trade_pact_signals_ottawas_new_disinterest_in_auto_industry_walkom.html

http://www.torontosun.com/2014/03/11/canadian-agriculture-beef-and-seafood-groups-celebrate-trade-deal-with-south-korea

며칠전 뉴스에서 하퍼(Steven Harper) 수상이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를 방문한다고 발표 됐었다.  한국에서 국제 회의가 개최되는것도 아닌데....라고 의아해 했었다.  뒤이어 발표된 뉴스는 한국과 캐나다간의 자유무역협정이 마침내 체결 됐다는 것이다.  그동안 양국의 실무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자국의 이익을 위해 밀고 당기는 긴 협상이 있었다는것을 기억하는 시민들은 거의 없었던것 같다.

10년 넘게 협상 테이블에 올려져 있었던 한국과 캐나다간의 자유무역 협정(FTA)이 양국의 정상인 박근혜 대통령과 Stephen Harper 캐나다 총리가 서명 함으로써 효력이 발생하게 된다고 한다.  다만 양국의 국회에서 비준을 통과해야 관세등 특혜조치가 발효한다고 한다.

캐나다로서는 한국과 FTA협정을 맺음으로서 Asia 대륙에 자유무역을 할수 있는 발판을 굳힌 셈이된다. 한국과 캐나다와의 협정이 잘 이행되면, 한국은 캐나다의 아시아진출 교두보 역활을 하게되는 시발점이 될것이다.

우선 눈에 띄는것은 자동차 관세 철폐를 시작하게 된다고 한다.  지금까지 캐나다는 한국에서 수입되는 자동차에 6.1 %의 관세를 부과 했는데 효력이 발생하는날로 부터 3년에 걸쳐 완전히 관세가 철폐된다.  반대로 한국은 캐나다에서 수입되는 자동차에 8%의 관세를 부과 했었는데 효력이 발효되는 그시점부터 완전 철폐시킨다고 한다. 또한 수입되는 자동차 부품에 대한 관세도 3-8%의 관세도 철폐된다고 한다.

온타리오의 자동차 제조업계는 하퍼총리를 비난하는것 같다. 현재도 한국산 자동차가 인기리에 캐나다 시장을 석권해 가고 있는데, 앞으로 면세가 되면 한국산 자동차들이 물밀듯이 밀려 들어올텐데... 그렇게 되면 자동차 산업이 위기를 맞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는것 같다.
반대로 한국에서는 캐나다의 소고기와 돼지고기들이 더 싼값에 들어와 식탁을 점령해 버리면 축산농가들의 앞날이 어두워 진다고 불평이 있는것 같다.

협상에서 어느 한 분야만 중점적으로 다루게 되면 다른 한 분야에서는 득보다 손해를 볼수 있는 상황도 벌어진다.  그러나 나무를 보지 말고 전체 숲을 보라는 말이 있듯이 평균적으로 따져서 득이 되는면이 많다면 이를 거절할 이유는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한국에 수입되는 87%의 캐나다의 농축산물은 앞으로 5 - 15년 사이에 완전 관세를 철폐하게 된다고 한다.  그첫번째로 소고기와 돼지고기가 관세철폐의 혜택을 입게 된다.  한국의 축산농가와 구룹들은 축산농가를 망하게 하는 협정이라고 반대를 할것이다.

캐나다에 수출되는 51%의 한국산 농산품은 5년안에 완전 면세품이 된다고 한다. 어떤 품목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해당 캐나다 농민들 역시 반발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보면, 정부는 국민들이 좀더 싸고 편하게 양질의 상품들을 사용할수 있도록 한다는 차원에서 노력하는것으로 이해 한다. 한국은 지난 몇년 사이에 미국을 비롯하여 남미국가들과 그리고 EU연합과도 FTA협정을 맺은 것으로 알고 있다.  한국은 그만큼 물건을 팔아서 그이익으로 먹고 사는 공업국가형태로 변한것 같다.

캐나다와 FTA협정을 맺은 첫번째 나라로 한국이 된것은, 그만큼 캐나다의 내부 사정, 즉 지역별로 이해관계가 얽혀 서로간의 의견 조율이 어려웠음을 반증 하는것 같다. 북미 대륙의 절반 이상을 영토로 하고 있는 세계에서 두번째로 큰 캐나다로서는 어찌보면 이번에 엄청난 국가정책을 수립한 셈이다.

이번 협상체결로 양국에서는 많은 새로운 직장이 창출될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자유당과 NDP를 지지하는 Toronto Star지는 이번 협상을 온타리오에 있는 자동차 제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생계를 무시한 협정이라고 강하게 비난하고 있는것 같다.  그내용인즉, 이번 협상으로 약 1150명의 자동차제조업에 종사하는 노무자들의 직장을 잃게 될것이라고 엄살이다.  한국의 5천만 인구와 캐나다의 3천만 인구를 합치면 8천만 이상의 많은 인구가 이협정에 관련이 되는데 그중에서 1150여명이 직장유지가 어려워 질것이라는 계산인것 같다.  이것은 억지논리로 정부정책을 반대해온 야당과 Star지의 공격이지만, 국민들에게 설득력은 얻지 못할것으로 나는 생각한다.

Toronto Sun지는 FTA협정 체결은 캐나다의 농업과 축산업계를 비롯한 전체 산업면에서 더 많은 득이 될것이라고 환영하는 기사로 캐나다 보수당 정부를 치켜 세웠다.  같은 언론이지만, Star지와 Sun지의 보는 각도는 완전 180도 다르다.

한카 FTA협정이 현실화 되여 양국 모두의 국민들에게 Win-win정책이 됐으면 하는 바램이다.  캐네디언들의 의견은 이번 협정으로 양국간의 국민들에게 더 많은 혜택이 있게 될것으로 판단하는것으로 여론조사는 밝히고 있다.

하루가 빠르게 이번 협정이 효력을 발생하기 위해서는 양국의 국회에서 비준(Ratification)을 해주어야 한다.  캐나다는 하퍼 수상이 이끄는 보수당이 의회에서 비준을 어렵지 않게 통과 시킬것으로 전망된다.  문제는 한국쪽이다.  정부정책에 무조건 발목잡기로 유명한 야당의원들과 물에 물탄듯 술에 술탄듯 어물쩡 거리는 여당의원들간에 당략에 따른, 국가의 장래 익을 생각하기 보다는, 득실을 먼저 앞세워 치고 받을 정치꾼들의 행보가 몹시도 염려된다.


그러나 조국 대한민국의 언론에서는 이시간 현재 아직까지 이번 협상 체결에 대한 기사를 읽어보지 못했다.  어째서 일까?  아마도 잘못된 협정이라는 기사를 내보내기위해 주판알을 튀기느라 바빠서 인것 같다. 있는 그대로 득실을 따져 전체를 하나의 그릇에 넣고 보았을때 단 1 %라도 득이 되는 내용이라면 왜곡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국민들에게 보도하고, 좀더 넓게 보고 멀리보는, 앞서 생각하는 그런 언론들이 되였으면 하는 마음이다. 한국은 무역을 해서 이득을 내야 먹고 살수 있는 스위스 같은 나라이기 때문이다.






Tuesday, March 11, 2014

Analog 시대에 빛났던 방송기구들, 박물관에서 다시....

토론토, 캐나다의 Downtown core에는 캐나다의 국영방송인 CBC 방송국 빌딩이 크게 자리하고 있다.  그곳에서 전세계를 상대로 쏘아대는 전파가 발생하는 일종의 산실같은 곳이다.
그곳에는 잘 아는 후배부부가  바로 빌딩안 Main Hall 앞의 뒷켠으로 있는 공간에서Sushi Shop을 성공리에 경영하고 있어 가끔씩은 CBC의 간판 Anchor들도 Encounter 한다.  점심시간이면 후배의 샾에서 점심을 사먹기위해 청바지 차림으로 긴줄에 서서 차례를 기다리면서 담소를 나누는 꾸밈없는 모습들도 보곤 했었다.  이들도 언젠가는 아날로그시대의 모든 방송장비들이 디지털방송시대의 성능이 우수한 장비들에 밀려 박물관에 진열되여, 당시의 상황을 그자체로 설명해주듯 이분들도 시간이 흘러간 후에는 무대에서 Being faded away 할것이다.  

 그렇게 할일을 다한 아날로그 장비들이 쓰레기통에 버려지지 않고, 그모습 그대로 빌딩안의 박물관에 다시 진열시켜  방송국을 찾은 사람들에게 관람시키고 있다.  불과 몇년전만 뒤로 돌려봐도, Dial을 돌리던 전화통을 보면 우리는 친근하게 느껴지지만, Smart phone을 손에서 떼지 못하고 살아가는 Young Generation에게는 어쩌면 괴물로 보일지도 모른다. 불편해서 어떻게 사용했을까?라고 의아해 할것이다.  그러나 괴물로 보이는 전화통이 있었기에 오늘날에는 Smart Phone이 존재 한다는 것을 Analog시대의 우리는 알고 있지만, Digital시대의 젊은 세대들은...?


 많은 기기들이 눈에 많이 익는다.  그들이 한창 인기있게 사용될때는 나도 저런 녹음 장비 하나 소유하고 있었으면 .... 하고 바랬던 것들도 눈에 띈다.  그런데 지금은 그냥 준다해도 짐이 될것만 같은 존재로 바뀌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박물관에 모셔져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고 있는 모습이 오래 기억에 남아 있을것 같다.

 녹음 테이프가 잔뜩 감겨 있는 Reel이 걸려 있는 녹음기를 보면서 당시에 이기계를 자유자재로 다루었을 녹음기사의 뒷모습이 연상되기도 했다.

 나로서는 이름도 모르는 유명한 당시 연예인의 사내들 가슴 설레게 했던 모습의 사진이 색이 바래 조금은 초라해 보이는 느낌도 있었다.  그리고 그모습이 오늘의 디지털 시대의 연예인에 비하면 많이 촌스러워 보인다.  시대의 유행과 기술에서 느끼는 Perspectives가 달라지는 모양이다.  엉뚱한 생각도 나자신을 돌아보면서 하게된다.  나도 저렇게 색바랜 삶의 석양을 살고 있겠지라고 .....  그리고 다시 얼마후에는 .....








아날로그 시대의 방송장비가 진열된 박물관을 관람하면서, 괜히 마음이 찡해진다.  나자신의 결코 평탄치만은 않았던, 살아온 인생과정이 그곳에 같이 자리를 하고 있는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순응해야 한다.  거역한다고 바뀌어질수도 없는, 쌓여가는 시간의 흐름속에서 인류의 역사가 기록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종대왕도, 나치 히틀러도 마치 어제일처럼 후손들이 기억할수 있는 원천이 되고 있음을 본다.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