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May 08, 2013

이렇게 아름다운 Trail Walk을 뒤로하고 여행 다닌다고? 한마디 듣기도 하지만....

석양의 호숫가는 물결도 잔잔하다.  그렇게 많이 물위에 떠있던 백조, 기러기, 갈매기들도 거의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Mating Season도 다 끝난모양이다.  요며칠사이 그렇게 이른 새벽부터 시끄럽게 Love song를 불러대더니.....

http://www.youtube.com/watch?v=Y4D55uzk6Eo


요즘은 아침이면 지난해 늦게 개통된 호숫가를 따라 이어진 Trail Walk을 걷고 다시 그곳에서 Lakeshore BLVD를 따라 Royal York Rd까지 걸어서 McDonald's Restaurant에 들려, 커피한잔을 마시면서 동네 분들과 이바구를 약 한시간내지 2시간을 하고 다시 왔던 길을 꺼꾸로 걸어서 우리 둘만의 보금자리인 콘도로 걸음을 재촉하곤 한다.  정확히 왕복 6킬로이고, 걷는 시간은 정확히 한시간이다.
































어제는 송사리같이 조그만 Smelt들이 은빛을 발하면서 호숫가 얕은물속에서 알낳을곳을 찾아 헤매는 모습을 보면서,  Lake Ontario의 물이 깨끗하다는 증거를 보았었다.  이물고기는 해마다 이때가 되면 종족보존을 위해 호숫가 얕은곳을 찾아 Eggs를 놓는다.  때로는 Cormorant 또는 갈매들의 먹이로 희생당하는 광경을 보곤한다.  오늘은 한마리도 보이지 않는다. 벌써 종족 보존을 위한 새끼(Eggs) 낳는Timing이 끝났다는 증거일 것이다.

McDonald's Restaurant으로 가는 Lakeshore길가에 아담한집 뜰에 흐드러지듯 만발한  옅은 분홍색갈의 Magnolia의 자태가 요염하다.  며칠전만 해도 아직 실술굿은 날씨 때문에 꽃을 피우지 못하고 봉우리인채로 웅크리고만 있더니 어느새 활짝피여 지나는 사람들에게 웃어주고 있는 것이다.  얇게 입었던 자켓도 더이상 걸치지 못하고 벗어 손에 들고 걸어야 할 정도로 기온이 여름을 향하여 바삐 달리고 있음을 한걸음 한걸음 땔때마다 느껴진다.  자연의 섭리를 누가 거스린단 말인가.

Mississauga에 살고 있는 친지부부가 늦은 오후에 마실을 와서 같이 호숫가 Trail walk을 걸으면서 동쪽에 호반의 도시의 위용을 보여주는 토론토시의 심장부인 마천루가 그림처럼 펼져있는 광경을 보면서 감탄을 한다.  우린 매일 보는 일상에  불과하여 아름다움을 잊고 있었는데, 이분들이 감탄하는통에 고개를 돌려 같이 응시해 보았다.  도심의 심장부와 가깝게는 호숫가에 달라 붙여져 건설된 고층 콘도들이 어우러져 직각으로 굽어진, 펼쳐진 광경을 새롭게 느껴졌다.

세계 각나라에서 매년 수백만명의 관광객들이 멀리 아스라이 보이는 마천루 속으로 기여 들어오곤 하는 토론토의 심장부 밑으로는 멀리 Bloor까지 두더지 굴처럼 지하도시가 형성되여 외부에서 오는 관광객들에게 더 인기가 있는것이 아닐까 생각도 해본다.  곰곰해 생각해 보면 5Cm가 될까말까한 우리인간들의 손가락 마디마디의 흔적이 마천루를 이루고 있는 건물에 곳곳에 묻어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오늘따라 더 위대해 보인다.


지난 2년간 토론토시에서 약 1.5킬로의 Trail Walk을 새로 건설 했는데,  이러한 Trail Walk은 서쪽으로 계속 이어져 들리는 소식에 의하면 Niagara Falls까지 연결시킬것이라고 한다.  건설되는 속도는 거북이 걸음보다 더 느리게 보여졌지만, 걸으면서 자세히 살펴보면 이들이 자연미를 살리기위해 무척 노력을 했다는 증거를 방패용 Bank를 돌로 쌓은것과,  예산과 걸리는 시간을 생각한다면 그렇게 꼭 필요치도 않을것 같은 Bridge를 3개나 만들어 그위를 걷게 하는 운치를 살렸다는 점이 크게 부각된다.

겨울동안 Marina의 Parking Lot에 정박해 있었던 Yacht들이 어느새 커다란  Crane에 들려 호수안의 자기자리에 정박해 어느때고 시동만 걸면 뱃놀이를 즐길수 있는 대기 상태로 있는 위용도 무척 평화롭게 눈에 들어온다.   포구입구의 버드나무숲에 샛노랗게 피어 오르고 있는 잎사귀도 눈을 무척이나 시원하게 해준다.

Trail Walk을 한가롭게 걷는 사람들의 모양도 천태만상이다.  많게는 3마리의 개를 친구삼아 마치 친구와 대화하듯이 말을 건네면서 걷는사람,  세상에서 가장 평화롭게 새근새근 깊은 잠에 빠져 있는 Baby Cart를 밀면서 산책을 즐기는 젊은 엄마들도 귀여워 보인다.  그들이 있어서 인류종족 보존에 한몫하고 있음을 감사한 마음으로 초점없이 쳐다보기도 했다.

뱃놀이를 끝내고 석양 햇살을 뒤로 하면서 선착장으로 들어오는 Yacht를 보면은 이세상에 절대로 전쟁이 없을것만 같은 망상이 머리를 꽉 차게한다.  Syria에서는 반군과 정부군 사이에 전쟁이 계속되여 수백명의 젊은 생명이 희생되고, 오타와 의회에서는 시리아 내란을 막기위해 평화군 파견을 놓고 열띤 토의가 벌어지고 있는 뉴스도 보았다.   멀리 한반도에서는 아직도 철없는 김정은 집단이 세계의 여론을 무시한채 여차하면 로켓트 발사를 할려고 하고 있다는 뉴스가 마치 소설속의 한장면처럼 착각을 하게 한다.   Yacht는 항해를 끝내고 돛을 내리고 있다.

친구부부는 이렇게 좋은곳을 두고, 왜 멀리 여행을, 그것도 못사는 나라를 돈들이고 고생하면서 다니느냐고 우리 부부를 한심스런 눈으로 쳐다보면서 한마디 던진다.  옛말에 "울타리밖의 세상은 항상 더 좋아 보인다"라는 그말뜻을 이친구 부부들도 분명히 알고 있을 텐데.....
그분들의 기준에서 볼때는 어쩌면 우리부부의 여행이 생고생을 사서 하는것으로 보였을수도있을법 하게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친구부부가 한마디 던진 말에 걷던 발길을 잠시 멈추고 토론토 심장부로 묘사되는 마천루로부터 시작하여 눈길을 서서히 서쪽 나이아가라 폭포쪽으로 돌려 보았다. 바다같이 넓은 깨끗한 물이 흐르는곳, 그위에는 종류도 알수 없는 Water fowls, 가끔씩은 큰 산같은 4-5만톤급 화물선이 위용을 자랑하면서 여유롭게 Welland Canal쪽을, 또반대로 St.Lawrence River쪽을 향해 Sailing 하는모습, 호숫가를 따라서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뭇인생들의 보금자리인 빌딩들과 잘 가꾸어진 Gardens, 그사이로 끝없이 이어지는 산책로와 그위를 한가롭게 발길을 옮기는 사람들과 애완견들....... 더이상 글로 표현 하기엔 성이 차지 않는 경관이 세상 어디에도 존재치 않을것 같은 아름다운 모습으로 눈에 박힌다.  친구부부의 한마디 언급이 깊은 뜻을 담고 있음을 조금은 깨달을것 같다.

여행이라는것은, 집을 떠나 생활한다는 뜻도된다.  모든게 집에서 시간 보내는것 보다 편할리는 절대 없다.  그러나 인간은 호기심 때문에 뭔가를 찾아 여행을 떠난다. 여행중 고생하는 대가를 새로운 세계를 보고 즐기는데서 보상 받는다고 생각하면, 캐나다의 긴 겨울이 시작되면 쌓이는 눈(Snow)과 추위를 피해 따뜻한 곳으로 여행 떠나면 다른 문화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문화를 접하고 그들과 생각을 서로 나누게 됨으로써 동시에 두개를 얻는 일거양득이 아닐까?  그래서 또 시간이 얼마 지나면 짐을 싸게 될것이다.  몸의 건강이 허락하는한.

http://www.bbc.com/travel/video/on-the-road/20130204-moscow-russia




Sunday, May 05, 2013

George Bush library: US presidents gather for dedication, 조국 대한민국의 생존 대통령들은?


George Bush library: US presidents gather for dedication







우선은 그림이 굉장히 멋있어 보였다.  현역에 있을때는 치열하게 비방하고 협조하는 그런 관계는 더욱 아니었었다.

2억 5천만 달러를 들여 미국의 43대 대통령 George W. Bush 전대통령을 기념하기위한  도서관및 박물관의 헌당식을, 생존해 있는 미국의 대통령들이 다 모인 가운데 의미 있게 거행된 순간을 보면서, 내용은 차치하고 우선 그분들이 소속됐던 당(Political Party)과 대통령으로서 업무를 수행할때의 의견 충돌들을 뒤로 하고, 한마디씩 언급할때마다 좌중을 웃기는 농담과 덕담을 건네는 여유있는 모습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 있을것 같다.

아버지 Bush 대통령은 2기 Term을 위해 당시 무명이나 다름없던 Bill Clinton과 치열한 선거전을 하면서, 결국 백악관에 재입성하지 못하고 바통을 그에게 넘겨주는 아쉬움과 아픔을 안고 짐을 싸서 텍사스로 떠났던 분이다.  Sadam Hussein을 넘어 뜨리기 위해 전쟁을 일으킬때만 핸도 아버지 Bush의 인기는 최고 였었다.  전후 처리과정에서 국민들은 전쟁에 식상하여 Bill에게 몰표를 던져 그를 시야에서 사라지게 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인도네시아(?)에 쓰나미가 몰아쳤을때, 당시 대통령이었던 아들 Bush는 쓰나미 재난을 돕기위해 전직 대통령 두분을 쓰나미 현장에 나란히 급파 했었다.  바로 아버지 Bush와 그의 아버지를 백악관에서 몰아내었던 Bill Clinton 이었다.  상상을 초월하는 결정이었다.   훗날 알려진 얘기는 더욱 가슴을 훈훈하게 했었다.   동승하고 있던 비행기에서 Bill Clinton이 졸립다는 핑계를 대고 먼저 잠자리로 들어갔었단다.  사실은 연장자인 아버지 Bush에게 침대를 양보하기위해 졸린척 하고 그는 옆의 소파에서 새우잠을 잤었다는 후일담에서 알려지게된 얘기다.

모든 얽히고 설킨 아픈 기억들을 뒤로 하고 생존해 있는 전직 미국 대통령들이 한데 모여 헌당식에 참석하고, 덕담으로 헌당식의 주인공인 아들 Bush에게 찬사를 보내는 모습을 보면서 조국 대한민국의 생존해 있는 대통령들을 연상해 보았다.

어느 국경일 기념식에 참석했던 전두환, 그리고 김영삼 두대통령이 Shoulder to Shoulder를 하고 나란히 앉아 있으면서, 고개는 서로 반대편으로, 기념식이 거행되는 동안, 돌려 딴전을 쳐다보는 모습이 기억에 남아 있다.   그런 옹졸한 마음으로 조국대한민국을 통치 했으니..... 국가 위상이 잘 지켜질리가 없었던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 였을지도 모른다.  한분은 정권을 탈취했었고, 한분은 IMF라는 국가적 큰 멍에를 국민들에게 씌워놓았던 것이다.

대한민국 건국의 아버지로 여겨지는 초대 대통령과,  5천년의 긴역사속의 턴넬을 통과 하면서 아무도 해결못했던 보릿고개를 해결하고, 오늘의 융성한 대한민국이 있게 초석을 다졌던 대통령을 기리는 기념관 지어서 헌당식 하나 올리지 못하는 조국 대한민국과 그안에 살고 있는 국민들의 의식구조를 연구조사하고픈 간절한 마음이다.  영웅과 호걸이 될수 있는 자격을 충분히 갗춘분들이 국민들의 추앙을 받는 대신에  모함과 헐뜯기로 허송 세월을 보내는, 그래서 역사이래로 영웅, 호걸이 한분도 역사책에 기록됐거나, 기념관 한채라도 지어서 헌당한 적이 없는 나라, 조국 대한민국.  겨우 300년도 채 안되는 짧은 역사를 갖고 있는 미국에 비하면, 5000년 역사는 15배가 훨씬 넘는 긴시간속의 여행인데..... 현재를 살아가는 많은 국민들이 해외여러나라를 다녀왔다고 자랑하지만,  막상 깊이 파고 들면 여행 알맹이의 설명이 빈약하기 그지 없는 빈 껍데기 여행을 한것과 일맥상통하는면이 있는것을 발견하게 된다.

조국 대한민국 제일의 적장을 호칭하는데 예우를 갗추지 않는다는 망발을 해대는 국민들의 대표자가 활개를 치고 있는가하면,  옛날 중국에 조공을 바쳐 나라의 존재를 연명했던 식으로, 호시탐탐 조국 대한민국을 손아귀에 넣을려는 흉계를 일삼는 적국에,  천문학적인 조공을 바쳤고, 연평해전때 전사한 조국의 젊은 아들들의 죽음을 쉬쉬 덮어두고, 축구경기를 관전하러 이웃나라로 날아갔던  대통령에게는 기념도서관을 지어 헌당했고,  저지른 부정에 대한 검찰의 조사가 두려워 산절벽에서 투신 자살한 그분 장례식은 한반도가 떠들썩 하게 전국을 누비며 치렀기에 전세계로 부터 조롱거리를 만들었었다.

언제쯤에나 나의 조국 대한민국도 이들 미국대통령들 처럼 모든것 뒤로 접어두고, 허심탄회하게 만나서 덕담을,  그리고 좌중을 웃기는 농담을 나누는 그런 광경을 볼수 있을까?


Wednesday, May 01, 2013

그녀와 만나 같이 살아온 40주년의 의미(4월 28일)

옛말에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라는 자주 인용된다.  그말이 20대 청년때는 무척이나 긴 세월같이 느꼈었다.   사회생활을 시작할때는 직장을 갖고 있다는것만으로도 출세(?)했었다는 얘기를 들을 정도로  내가 태어난 조국은 가난하고 또 가난 했었다.

이곳 캐나다에서 정신적으로 황량한 이민자의 생활을 시작한지도 정확히 38년이 됐다.
지금 같은 생활조건이었었다면, 감히 이민보따리를 싸서 지구상에서 가장 큰 바다,태평양을 가로건너, 물설고 낯설고, 혀꼬부라지는 소리만이 귓전을 때리는 이곳 까지 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민자 신분을 갖고 첫발을 내디딘 이후로 강산이 거의 4번 변한 긴세월이 지났다.
고려말 충신 길재의 시한수가 머리에 떠오른다.  부질없이..... 왜 이시간에.

오백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데 없네
어즈버 태평년월이 꿈이런가 하노라.

당시의 수명은 지금보다는 훨씬 짧았을 것이다.  그분은 잘은 몰라도 한평생을 같이한 반려자와 40년을 같이 지내지 못하고 세상을 하직 했을 것이다.  이시대를 살아가는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은 생명이 수십년씩 연장되여 옛날 그시대에는 상상도 못했던 골프도 하고, 비행기 타고 세상여행도 하면서 인터넷을 이용하여 세계의 돌아가는 상황을 이웃집 마실가는것 보다 더 가깝게 쉽게 그리고 편리한 삶을 공유하지만, 공허한 마음은 가슴을 뻥 뚫어 놓고도 남을 정도로 커져 있다는것을 통감하면서 살아간다.  나도 그중에 한사람임을 숨기고 싶지는 않다.

40대후반과 50대 초반때에는, 괜히 마음이 공허하여 인생을 헛살아온것같은,  그리고 이런식으로 살아온 인생의 끝장을 맞이 하는게 아닐까?라는 초조함이 나의 마음을 급하게 만들기도 했었다.  남의 인생은 다 화려하고 잘살아온것 처럼 보였고, 나자신만이 선택을 잘못하여 아무런 의미도 남기지 못한채 사라져 버리는것은 아닐까? 하고싶은것 마음데로 즐겨보지도 못하고 이대로 끝나는것은 아닐까?라는 핑계와 아쉬움이 마음속에서 일어날때마다 살아온세월에 후회만 더 두꺼워지고, 나를 둘러싼 주위 여건에 그이유를 연결시키곤 했었는데 그 타킷의 중심에는 같이 살아온 반려자가 있었다.

지금에 와서 돌이켜 보면 정신적 공허함과 허탈감속에서 방황을 할때, 이를 이해하고 견제해 주는이가 없이 내마음데로 헛된 이상을 찾아 헤메였었다면....... 라고 상상을 해 보는것 자체만으로도 몸서리가 쳐지도록 그결과가 머리속에 그려진다.  아무래도 모든면에서 남자인 나자신보다는 제약이 더 많았던 그녀의 생각이라고 해서 살아온 세월에 대한 공허함이 나와 다를께 있었겠는가?  겉으로 표현만 안했을 뿐인것을 지금은 잘 알고 감사하고 고마울 뿐이지만, 그것 자체도 직접 대놓고 표현은 해본일 없고, 그져 마음속에서만이다.

지난 40년 동안, 그날을 기념하기위해, 기억을 만들기위해 흔히들 쉽게 들먹이는 여행이라던가, Eating out한다던가, Surprise event를 만들었다든가 하는 일은 거의 없었던것으로 회한만 머리를 어지럽게 한다.  이번 40주년을 맞이 하면서도 며칠전부터 구상을 해 보곤 했었다.  그러나 막상 당일에는 행동으로 옮기는데 뭔가 쑥스럽게 간지러운것 같은 느낌이 나를 꽉 붙들어 메는, 다른 표현으로 말한다면 해본 경험이 없기에 당일날 저녁에 겨우 그녀에게 한다는 소리가   "여보 우리 오늘 저녁에 Eating-out 하자" 대답은 엉뚱했다 "아이들 두놈다 아직 결혼도 못했는데..... 다음에 합시다. 난 괜찮아" 였다.  난 괜찮아 하는 그말의 뜻을 음미해 보았다.  말은 안했지만, 가슴속에 이날을 깊이 새기고 살아왔음을 간접적으로 표현한 그마음에 뒷통수가 뜨거워옴을 전율했다.   다른 부부들은 잘 한다고 들었고, 또 보았었는데.....

우리는 하루 세끼를 챙긴다.  특별한 날이나 명절날에는 세끼 먹는 밥상차리는것 외에 또다른 별미를 준비한다.  다 그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같이 살을 맞대고 살아온 40년을 맞이하는 그날에도 세끼는 어김없이 소화했다.  다른때는 여행도 다녀보고.....  그러나 짧지않은 세월을 같이 살아오면서 그날에 의미를 두고 이벤트를 했어야 했지만,  그런데 자연스럽지 못하게 살아온 지난 삶들이었기에...... 점수를 딸수 있는 좋은 기회를 평상시의 그 습관데로 보내고 말았다.

주위에서 상당수의 친지들이나, 인생후배들은, 은퇴후 우리 부부의 살아가는 모습을 자기네들 은퇴후의 삶의 Role Model 표본으로 생각하고 희망하면서 우리부부를 눈여겨 보고 있다는 부러움과 존경의 표시로 인사받기를 쑥스러울 정도로 상당히 받았었고, 그런 얘기는 지금도 가끔씩 듣고 있다.  그분들의 눈에는 우리 부부가 같이 시간을 보내고, 또 계절에 따라 정기적으로 여행 다니고, 여름이면 시골 Cottage에서 골핑하면서 한가롭게 시간 보내는 그모습이 좋게 보였던 것 같다.   정말로 그분들에게 보여진것 처럼 삶의 Model로서의 내면도 알찬 삶이라고 말할수 있을까?

며칠전 마친 Ethiopia 여행하는것도, 이번처럼 40주년을 기념 하기위해서 특별히 계획을 짜서 그시간데에 맞추어 했었다면...... 그런 생각도 해 보지만, 만약에 그랬었다면, 아마 실행에 옮기지못했을지도 모른다.  인위적인것 보다는 자연스럽게 기회가 되면 잡는것, 그자체가 우리 부부에게는 더 어울린다는것을 어렴푸시 느껴본다.  앞으로도 이렇게 살아가는 우리부부의 삶에 큰 변화는 없을것이다라는 확신(?)이 더 굳어진다.  그것도 자연스럽게....
Lunar 도 형식에 얽매이는, 보이기위한 삶 자체를 무척이나 싫어하는면에서 우리부부는 참으로 서로의 뜻이잘 맞는다.  이런 삶의 자세도 바꾸고싶은 생각은 전연없다.

40주년 맞이하는 그날에는 저녁밥상이 더 단조로웠을 뿐이다.  두아이들도 자기네 삶 살기에 바쁘게 보냈을 것이다.   이다음 며칠후에 기회가 되면, 그날이 엄마 아빠 40년 전에 결혼하여 가정이라는 울타리속에서 같이 살면서 선물로 두아이를 얻게 됐고,  또한 너희들이 있었기에 때로는 이민자로서 어려운 시간을 보낼때도 견디어 낼수 있었다 라고 설명해줄 생각이다.

지금 여기까지 살아오면서, 우리부부둘이서 기념사진 한장 찍어서 보관해 놓은게 없다.
Senior의 삶을 살기에 하루 앞을 자신있게 내다 보는것 조차 확실하지않은 그런 시기라는것을 새삼 절감한다.  40주년 핑계대고 Costco 에 가서 둘만의 사진한장을 마련해두어, 앞날을 준비하는 것으로 40주년기념을 확실하게 해두고 싶다.


Sunday, April 28, 2013

Cambodia 여행기(2005년 1월)

Killing Field in Cambodia


During the Pol Pot regimes in power, they killed more than 3 million his people and scattered it everywhere that
has been called 'killing field' by the world since.
Later survivors of genocide in Cambodia has collected remains of bones and displayed to commemorate their death.
Shown in the picture is one of those collections.

기내식


월남 하노이에서 캠보디아 Siem Reap 으로 가는데 프로펠러 비행기로 약 2시간 이상을 날았읍니다. 기내식이라고 제공받은 것은
군대생활할때 먹었던 건빵 비슷한 Biscuit 몇쪽이었답니다.
비교적 잘먹는 내자신도 다 먹지를 못하고 말았던 기억이 지금도 새롭습니다.


집 기둥 세우기,Siemrip,Cambodia
 

캄보디아 앙코르의 톤레삽 강가에 수상가옥을 짖기위해, 집 기둥을 박고 있는 광경입니다. 기둥위에 기어 올라가, 온몸으로 흔들어 대면은 깊숙히 기둥이 박히게 된다고 합니다.


석양에 바라본 타워의 붉은빛



해가지는 석양녘에 바라본 앙코르 사원의 타워부분은
신기하게도 붉은빛을 발하고 있었읍니다.


앙코르 사원 타워의 모습
 

대낯에 보이는 사원의 탑 모습은 돌본래의 검은 모습입니다.
승려들과 멀리 사원을 배경으로 했읍니다. 승려들이 입고있는
승복은 명주(Silk)천 이라고 합니다.


앙코르 톰 사원안의 코리끼 테라스
 

앙코르 톰 사원안에 Elephant Terrace입니다.
옛날 전쟁에서는 코끼리가 중요한 병기였다고 합니다.
돌벽에는 전부 코끼리 모습이 조각되여 있어, 코끼리 테라스
라고 후에 불란서 탐험가들이 부쳐준 이름이라고 합니다.
Jayavarman IIV세의 얼굴


앙코를왕국 전성기의 마지막 왕 Jayavarman IIV세의 인자한 얼굴이라고 합니다. 사원의 석탑이나 성벽에는 군데 군데 그이 얼굴이 새겨져 있었읍니다. 그이 재임시에, 그는 불교를 도입해서 국교로 삼았다고 합니다. 자세히 보면은 그의 재임시에 건축된 앙코르 왓트 사원은 건축 모양이 다르다고 합니다.
그전에는 힌두교가 앙코르왕국의 국교였었답니다.

 http://www.youtube.com/watch?v=eoSxWL5nYqY&feature=youtube 


관광객들과 어울려 노는 꼬마들,Siem Reap,Cambodia


톤레삽 호수를 관광중, 관광객들을 따라 다니면서 물건사기를 강요(?)하는 꼬마들이 잠시 자기들끼리 놀고 있는 순간입니다. 꼬마들은 한국말로 "이거 천원 이예요" 소리친다.


캠보디아 공항 입국장을 향해

2005-01-13 

Siem Reap 공항의 청사 앞쪽의 Tarmac에 타고간 프로펠러 비행기가 정차 했읍니다. 그곳에서 부터 청사로 입국 수속을 위해 걸어 가고 있는 장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