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June 19, 2010

Pretty River Valley Provincial Park Trail Walk



















미지의 세계를 탐지하는 기분으로, 약 2시간에 걸친 운전을 하여 현장에 도착했을때는, 겨울같으면 벌써 하산을 준비해야할 시간인 정오가 가까워 오고 있었다. 우선 감사하고 고마운것은 금년들어서 TKPC 주관으로 행한 산행에 40 여명이 넘게 참석하여, 9대의 차에 Car Pool을 하여, 구비 구비 고속도로와 Local Road를 용케도 별로 헤매지 않고 잘 찾아 도착했다는, 대원들의 성숙함이였다. 일기예보는 비가 올것이라고 하여 마음을 졸였었고, 장거리 운전에 비가 오는것은 많은 차량의 이동에 어려움을 더할것 같아, 모이는 장소인 McDonald's에서 일차 대원들과 행선지를 바꾸어야 될것 아니겠는가?하고 협의 까지 했었었다. 그러나 Challenge를 해 보자는 각오로 원래 계획을 밀고, 이렇게 목적지에 무사히 모두가 잘 도착한 것이다. 항상 이러한 행사때마다 표나지 않게 수고 해주는 대원들을 포함하여 처음 나온 대원, 마음은 있었어도 생업에 매달려 시간을 내기가 어려워 모처럼만에 나온 대원, 그리고 우리 이민자들의 희망인 어린 아이들.... 모처럼만에 창조주께서 만들어 주신 자연동산속에서 한데 어울려 산행을 한다는것, 어쩌면 큰 축복이 아닐수 없다. 이공원은 주립공원이긴 하나, 아무런 편의 시설이 없고, 자연속에서 산행을 하고, 공원안에 있는 호수에서 낙씨, 겨울에는 Cross Country skiing 그리고 Mountain Biking 등등의 Out Door Sports를 주로 하도록 형성된 곳이다. 주차장도 길가에 임시로 형성된 곳에 겨우 10 대정도 할수 있는, 이름만 주립공원인 것이다. 우리가 도착했을때는 벌써 서너대의 다른 Hiking족의 차량들이 주차돼 있어, 비집고 겨우 모두가 주차를 할수 있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했던가? 일기예보대로 혹시 비가 올지도 모르니 우선 점심식사를 해결하고 산행을 하자고 의견들이 모아졌다. 오늘은 산행이 주목적이기도 하지만, 오랫만의 야유회 성격도 다분하여, 몇몇 대원들이 모든 음식을 준비해와서, 대부분의 대원들은 대접받는 성격이 짙었다. 주차장옆의 빈공간에 금새 자리를 펴고, 불을 펴고 고기를 굽고, 반찬을 진열하고, 배식을 하고...... 손발이 잘 맞는다. 오랜 세월이 지나는 동안에 그렇게 숙달된 것이다. 창조주께 이렇게 좋은 자연속에서 하루를 즐길수있게 허락해 주신 은혜를 감사하는 기도를 연장자 되시는 여자대원께서 모두를 위해서 해주셨다. 푸짐한 상추와 쌈장, 김치, 고등어 조림, 잡곡밥..... 보기만 해도 배가 불러오는 기분이다. 푸짐해서 좋다. 우선 이렇게 준비해온 대원들에게 상추에 구운 고기를 한점 싸서 입에 넣을때마다 고마움을 함께 마음속에 간직 하기에 충분했다. 모든 대원들의 생각이 나와 같았으리라. 식사를 하면서 주위 경관을 둘러 봤다. 아름답다고 더 이상 표현할 말이 떠 오르지 않는다. 야생꽃, 새들 그리고 물흐르는 소리 등등....
지도상에 표시되여 있는, Trail이 지나가는곳에 있는 파킹장으로 다시 차를 옮겨 Shoulder에 주차를 Bumper to Bumper로 하고, 산행을 시작했다. 시작부터 상당히 가파른 언덕 길이다. 수만년전 빙하시대에 흘러내려 형성된 지층이 북쪽의 Tobermery 에서 시작하여 나이아가라 폭포까지 이어지는 산맥이 이곳 공원을 지나는데, 이곳이 또한 제일 높은 곳이기도 하다. 이곳 지층은 Moraine, 일년 내내 얼음이나 눈이 녹은 물이 계곡을 따라 흘러 내리는 Meltwater Channels등 빙하기때 생성된 특수한 지층으로 형성 됐다고 한다. 또한 이곳에는 400 종류가 넘는 Vascula Plants가 서식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 대원들이 이곳을 걸으면서 공원내의 이러한 특수한 조건과 상황들을 느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출발점에서 시작된 Side Trail을 벗어나 다시 Main Trail을 걷는다. Trail이 능선을 타고 정상까지 올라가 그곳에서 다시 다른편으로 이어져 있기에 계속 오르막 길이라 발길들이 조금씩 무거워 지는것 같다. Trail을 덮고 있는 숲은 겨울철 감기예방에 최고라는 향나무들이어서 큰소리로 소리쳐 본다. '심호흡을 하면서 천천히 걸어요'라고. 돌아오는 겨울철에는 우리 대원 모두가 감기와는 거리가 먼 겨울을 보냈으면 하는 소원을 빌면서 말이다. 어린 아이들도 저희끼리 구룹을 지어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면서 말썽없이 잘 걷는다. 식후 바로 걷기 시작해서 인지 아니면 가파른 언덕을 계속 걸어서 인지 대원들의 걷는 자세가 무척 무거워 보인다. 아마도 식후 바로 힘들게 몸을 움직임에서 그런것 같다.
우선 일부는 더이상 진행을 포기하고 왔던 길로 다시 되돌아 가고, 계속 전진했다. 보통때는 그렇게도 집안 정원풀을 가꾸는데 귀찮게 하는 민들레가 이곳에서는 식용으로 사용하기에 충분하고도 남을 만하게 잘 자라서 넓은 잎사귀가 풍성하게 잘자라있다. 사실은 제일 좋은 약초겸 나물인데.... 오늘은 대식구의 대원들이 참석했기에 아쉽지만 그냥 지나칠수밖에 없었다. 지역이 높은데도 Trail의 상당구간이 Muddy 했다. 아마도 일년내내 계곡에 흐르는 물줄기 영향인것 같다. 그래서 인지, 다른 곳을 걸을때 보다 더 많은 조그만 다리들이 많이 설치되여 있어 Hiker들의 발길을 편하게 해주어 고마웠다. 비는 내리지 않았지만, 구름의 영향인지, 후덥지근하여 더이상 전진하는것은 대원 모두에게 무리일것 같아, 예정시간보다 약 15분을 앞당겨 break time을 갖고, 그곳에서 하산을 시작했다. 계곡물이 흐르는 옆을 따라 이어진 Trail이어서, 물흐르는 소리가, 땀에 젖어 가볍지 않는 발걸음을 내딛는 대원들에게 시원한 행진곡 역활을 해주는 곡으로 생각했는데 사모곡(?)으로 변하여, 결국 대원들을 붙들어 쉬게 하면서, 개울물속에 발을 담그고, 아이들은 그속에서 뛰어 다니는 또다른 산행의 정취에 젖어들게 한다. 어려운 시간을 내어 참석한 처음보는 얼굴들도 있지만 같이 몸을 부딪치면서 산행을 하기에 Fellowship은 어느 모임에서 보다는 더 돈독해짐을 같이 걷는 대원들의 얼굴에서 뚜렷히 볼수 있었다. 고마웠다. 어려운 만학의 공부를 하면서 참석한 대원들에게는, 다음 학기를 준비하는 휴식겸 더 뜻있는 산행이었기를.......
아침에 모였던 맥도날드에 되돌아와서, 각자 헤여지기전 시원한 음료수로 더운목을 적시면서 오늘 산행을 하면서 겪은 얘기들을 주고 받는속에 헤여져야할 시간이 되여, 다음 산행을 기약할수 밖에 없었다. 모두가 무사히 집에 도착 했겠지? 감사.

Wednesday, June 16, 2010

북한의 축구스타 '정대제' 그가 흘린 눈물 이해 할것 같다. 분단의 비극




사진은 요하네스버그 공항에서 기자들의 플래쉬 세례를 받으며 공항을 빠져 나가고 있는 장면이다.

'정대제' - 1966년 이후 45년만에 월드컵본선에 진출한 북한 축구팀 선수들중에서 유난히 언론의 집중조명을 받는 선수의 이름이다.
그는 공격수(Forward)로 뛰고 있는 선수지만, 실질적으로는 북한에 대해서 그는 완전히 이방인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는 일본에서 태어나 조총련이 운영하는 초등학교에서 교육을 받았으며, 그때부터 일류 축구선수가 되는 꿈을 꾸고 축구를 즐겼다고 한다. 26세의 그는 텔레비 광고에도 나오고 Silver색갈의 Hummer 차를 운전하며, Laptop, IPod, Nintendo DS 게임기와 휴대용 Sony Play station을 꼭 휴대하고 다니는, 전형적인 자본주의 체제에서 볼수 있는 생활인이다.
나는 이신문기사를 보면서, 그의 오늘의 존재와 배경을 대강 알수 있었다. 이기사를 읽기전까지는 그의 북한 축구팀에 어떤 존재인지를 거의 알수가 없었다. 고국의 언론도, 내가 기사를 못보고 지나쳐서 있는지도 몰라도, 자세한 내력을 알수가 없어 궁금했었다. 일본에 거주하고 있는 600,000 교민의 대부분이 일본국적을 취득하지 않고, 남한국적으로 남아 있는것 처럼, 그는 법적으로는 남한 국민이라고 한다. 그의 아버지가 '한국인'으로 일본 당국에 출생신고를 했기 때문이란다. 그는 모든 북한인들로 부터 듣거나 볼수 있는 행동을 전연 느낄수 없다. 그는 북한에 대해 아는것이 전무다. 이번 2010 World Cup Soccer에 출전한 북한 선수들 중에서, 아마도 독재자, 친애하는 김 정일에 버금가는 인물임에 틀림없을 것이라고 한다. 그는 조총련에서 운영하는, 위에서도 언급했던것 처럼, 초등학교를 다녔고, 북한은 그가 도꾜소재 Korea University 2학년때 부터 그에게 공들여 왔었다고 한다. 그는 또한 반항적으로 '나는 남조선 사람이 아니다' 라고 항변한다. 그럼에도 그가 북한팀으로 출전할수 있었던것은, FIFA가 2중국적을 허용하는 제도를 채택했기 때문에 가능했었다고 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그가 북한 국민이 지니고 있는 보편적인 생활정서가 전연 없으며 또한 북한에서 다른 선수들과 손발을 맞추기위한 훈련을 위해 잠시 평양에 머물렀던 며칠을 제외 하고는 한번도 북한에서 살아본 적이 없다고, 그래서 그는 북한 사람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또한 그는 며칠 안되는 합숙훈련중에 많은 어려움을 겪어야만 했다고 자서전에서 밝히고 있다. 그에게 지급된 장비는 직접 본인이 챙겨야 하고, 보관 해야 하며 세탁도 본인이 직접 하고, 장비가 들어 있는 가방도 항상 본인이 운반 해야만 했었다고 한다. 일류 선수들의 입장에서, 이러한 일들을 챙겨햐 하는것은 상상 할수도 없는 일인데, 이 내용을 자세히 분석해 보면, 노력동원에 불려 나가지 않고 이렇게 편한 생활(?)을 할수 있다는것은 'Dear Leader Kim'의 은공으로 생각을 갖도록 쇠뇌교육을 받았다는 것으로 이해 된다.
'정대제'의 자서전을 집필한 일본의 Masafumi Mori는 '정은 3개 나라, 즉 북한, 남한 그리고 일본이 만나는 지국표면의 한 꼭지점에서 우뚝선 존재이다' 라고 평한다. 그가 그의 남한국적에 대해 비난을 퍼붓고, 남한에 험담을 하지만, 남. 북한에서 그의 인기는 대단하다. 축구에 대해서만은, 남북한간에 특히 남한쪽에서 아군,적군의 구별이 없이 서로 격려한다. 작년에는 텔레비 광고, 음료수'박카스'에서 남한측의 월드컵 축구팀주장, 박지성과 같이 나타났으며 또한 그는 남한에서 인기있는 웹싸이트에 기고도 하고 있다. '스포츠 서울'의 기자로 이번에 월드컵 취재를 하고 있는 '도영인'씨는 "우리가 그에 대한 정보가 너무나 부족했기에 그의 고교생활과 대학생활에 대해 거의 알지 못했었는데, 만약에 미리 알았었더라면 이번에 남한팀으로 뛰게 할수도 있었을텐데...." 라고 아쉬워 하기도 했다.
북한은 굶주리고, 전세계로 부터 소외되여 있기에, 북한에서 자란 선수들은 불구자나 마찬가지라고 할수 있다. 비록 선택된 선수들은 잘먹고,운동할수 있다고 볼수 있지만, 외부세계와는 거의 단절되여 있고, 또한 외국의 텔레비 방송같은 미디어가 허용되지 않기 때문에 외국선수들의 경기 내용도 볼 기회가 거의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일본에서 활약하는 선수들을 영입하는게, 투자하지 않고 활용할수 있는 이점을 북한은 잘 활용하고 있다고 볼수 있겠다.
그는 평양에서 살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고 단언한다. 이번 월드컵경기에서 매경기마다 최소한 한골씩 넣고 싶어 한다. 만약에 그게 안된다면 단 한골이라고 넣고 싶은 심정이라고 심경을 피력한다. 이번 월드컵이 끝난후에는 영국의 한 축구팀과 선수계약을 맺을 것이라고 한다.
그가 지난 5월 24일에 그의 블로그에 올린 글에서 '그와 함께한 북한 축구팀 선수들이 스위스에서 오스트리아로 이동중에, 소변을 보기위해 한 공중변소에 들렸는데 변소 사용료를 징수하는데 너무나 기가 막혔었다'라는 내용의 글을 올리기도 했었다. "나는 이 광경에 냉소를 지울수 밖에 없었다. 그들은 나를 향해 '야 이것이 진짜 자본주의 사회라는 것이야' 라고 하는 대답을 들었다고 적었다. 이러한 그의 과거를 보면서, 어려서 부터 쇠뇌교육을 받은 결과가 성인이 된 후에도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본능에 소름을 끼치지 않을수 없으며, 이러한 상황이 현재에도 내조국 한반도에서는 ' Ing'중이라는 우리 한민족의 운명을 안타까워 하지 않을수 없다. 정대제를 포함한 많은 훌륭하고 젊은이들이 김정일 Regime의 선전도구로 악용되여야 하는가. 아 나의 조국 대한민국 그리고 지난 60여년간 잃어버렸던 북한동포들의 참극을, 뭘 잘못했기에 이렇게 감내하기 어려운 고통으로 계속 감수 해야만 하는가? 오래전 지금은 백발이 성성한 형이 군에 입대 했을때 논란 훈련소에 면회가기위해 당시에는 귀한 떡을 포함한 음식을 정성스레 만들어 고향에 있던 기차역으로 바삐 걸어 가시던 어머님을 따라 갔을때, 어머님께서 하셨던 말씀이 새삼 기억에 떠 오른다. "제발 네가 이다음에 청년이 됐을때는 통일이 되여, 더이상 군대를 보내는 이꼴을 그만 봤으면 좋겠다" 라고 하시던 말씀. 언제 실현될것인가? 나 자신도 이제는 그렇게 말씀 하셨던 당시의 어미님 보다 더 많은 세월을 살아왔는데 진전된것은 전연 보이지 않고, 오히려 그반대로 가는것을 가슴아파 할 뿐이다.
다음은 LA Times의 관련 기사를 옮겨 보았다.

North Korea's star at the World Cup
Striker Jong Tae-se of North Korea's 2010 World Cup team was raised in Japan, had a pro-Pyongyang education and has dreamed of soccer greatness since elementary school.


Jong Tae-se flashes a greeting at the Johannesburg airport. Beyond the flamboyance is a serious athlete, say those who know him. (Siphiwe Sibeko, Reuters / June 15, 2010)

By Barbara Demick and Yuriko Nagano, Los Angeles Times
June 14, 2010


Reporting from Beijing and Tokyo — He is the new public face of North Korea:

Jong Tae-se is a 26-year-old publicity hound with his own blog, where he strikes a sultry bare-chested pose. He has appeared in television commercials. He drives a silver Hummer and likes to dress like hip-hop artist Tupac Shakur. When he goes on the road, he travels with a laptop, iPod and sometimes a Nintendo DS and a Sony PlayStation Portable.

Jong is the star striker of North Korea's 2010 World Cup team. That makes him at this particular moment the most recognizable living North Korean, with the possible exception of the Dear Leader himself, Kim Jong Il.

Get dispatches from Times correspondents around the globe delivered to your inbox with our daily World newsletter. Sign up »

This is the first time North Korea has qualified for the World Cup since 1966. Although the country is as much a pariah as ever, having been implicated in the recent torpedo attack on a South Korean warship that killed 46 people, its novelty value keeps it in the headlines coming out of South Africa. At the bottom of the 32 teams in competition, North Korea is pitted against top-ranked Brazil in its first match, on Tuesday, a classic minnow-against-the-whale competition that should be curiosity enough to attract a strong following.

"People don't know about North Korea. We want to change North Korea's image," Jong told reporters last week outside the Makhulong Stadium in Tembisa, on the outskirts of Johannesburg, South Africa.

If Jong sounds like a most improbable North Korean, it might be because he was born and grew up in a community of 600,000 Koreans who live in Japan. Most of them are descendents of laborers who came over during Japan's occupation of the Korean peninsula. He was educated in pro-Pyongyang schools run by the General Assn. of Korean Residents in Japan.

As a child, Jong obsessively watched videos of one of the most famous World Cup upsets of all time: a 1966 match in which North Korea beat Italy to advance to the quarterfinals.

North Korea started wooing him during his sophomore year at Tokyo-based Korea University. But the effort was complicated by the fact that Jong had been registered by his father as a South Korean. (Like most Korean residents of Japan, he didn't have Japanese citizenship.) The South Korean government would not let him give up his citizenship because it doesn't recognize North Korea.

"I am not South Korean!" Jong protested to a South Korean sports magazine in the midst of a protracted battle to renounce his citizenship. He qualified for the North Korean team anyway, since soccer federation rules allow dual nationality, but Jong is dogged by criticism that he is not North Korean enough. He has never lived in the country except for short stretches training with the team.

"It is hard to say what nationality he is," said Masafumi Mori, author of a recently published Japanese-language biography. "Jong is like this figure, standing right on top of where the Earth's crusts of the three countries of North Korea, South Korea, Japan meet."

Despite his attempt to renounce his citizenship, Jong's popularity extends to both sides of the border. South Korea's team is in the World Cup too, but when it comes to soccer, the estranged Koreans usually cheer each other on. Jong appeared last year in a television commercial for the South Korean energy drink Bacchus with Park Ji-sung, captain of South Korea's World Cup team. He also writes a column for a South Korean Web portal.

"I think it is too bad we didn't notice him when he was in high school or college. Maybe we would have picked him instead for the South Korean team," said Do Young-in, a reporter covering the World Cup for Sports Seoul.

For the North Koreans, using players raised in Japan has its advantages. Their team is handicapped by the country's poverty and isolation. Although top athletes have adequate food and training facilities, they have limited opportunity to play outsiders — or even to watch matches, since foreign television broadcasts are banned in North Korea.

"It was a very clever move for them to bring in people who live abroad and have experience playing in more competitive leagues," said Simon Cockerell, a Briton living in Beijing who has organized a North Korean soccer fan club.

Another player raised in Japan is midfielder Ahn Yong-hak. The team's Hong Yong-jo also has an international reputation, playing with the Russian premier league team FC Rostov. But it is Jong, with an impish grin and a full crest of hair that gives him a cone-headed look (his nickname among North Korean fans is "Acornhead"), who has captured the public's attention.

"He's good-looking. He scores lots of goals. He knows how to deal with media," Cockerell said.

Beyond the flamboyance is a serious athlete, say those who have worked with him.

After college, he became a professional player for the J-League's Kawasaki Frontale. "We chose him because he had these powerful moves that were rare with Japanese players," said his coach there, Tsutomu Takahata. "He has grown into a player who moves symbiotically with the others."

"He's the real thing," said Lee Chang-gang, a professional player with Japan's Fagiano Okayama team who played soccer with Jong in elementary school. He remembers him as a hotheaded kid who was sometimes taken out of a game for bad behavior. But Jong was sufficiently serious about the sport that he learned to control his temper, Lee said. "He aimed to be a professional soccer player from his elementary school days."

The transition to playing with the North Korean national team was not easy for Jong. He had to learn how to care for and assemble his own equipment, how to do his own laundry and carry his own bags, according to his biographer.

Jong had spoken and written openly about his irritation at times with the lack of worldliness of his North Korean teammates.

In a blog posting May 24, Jong recalled a stop during a trip from Switzerland to Austria, when his teammates headed to the men's room and then came rushing out in consternation. They had not expected a pay toilet.

"I laughed a little seeing this. Then they turned to me and said, 'This is truly what capitalist society is like,' " Jong wrote.

He used to have a hard time with the way his teammates would handle his personal possessions, especially his cellphone. With time, he learned that he needed to allow them to use his Nintendo and PlayStation to build goodwill within the team. "It has taken a lot to accept their culture," he told reporters in South Africa.

Fortunately for Jong, he probably will not have to do much adjusting to North Korean culture, as he showed no interest in settling down in Pyongyang. His goal during the World Cup, Jong has said repeatedly, is to score once in each game, just once.

And then to sign on to play in England.

barbara.demick@latimes.com

Nagano is a special correspondent in Tokyo.
Copyright © 2010, The Los Angeles Times


I hope they get annihilated in front of the world audience.
imbrooks at 11:09 PM June 14, 2010
This guy better watch his back. As soon as the final whistle blows, it wouldn't surprise me if party officials descend upon him to "escort" him back to Pyongyang. He has renounced his S. Korean citizenship and states he's proud to be North Korean. Be careful what you wish for! Dear Leader is taking notice...
indie32 at 2:30 PM June 14, 2010
This kid is too young (despite his age) to understand what's going on beyond the soccer world.He reps N. Korea but does not want to live there. What a turd polisher!!!

Wednesday, June 09, 2010

골프를 계속 해야 하나 or 접어야 하나? 그래도 계속....











여름철이면 일상이 되여버린 골프장으로 오늘도 Lunar와 같이 출석한다. 출석이라고 하니 뭔가 이상한 소리 같지만, 골프장에 안나가면 뭔가 허전하고, 그렇타고 골프를 잘 치느냐고 누가 물어 본다면 골프구력에 비해 시원하게 대답해줄수 없는 아쉬움이 항상 머리에서 맴돌고 있다고 보는 그런 실력이다. 마음속에서는 항상 이렇게, 또는 저렇게 샷을 날리면 잘 될것 같은 그림을 머리속에 그리면서 Membership이 들어 있는 골프장의 Tee Box에 올라서 샷을 휘둘러 본다. 이렇게만 휘둘면 잘 날아갈것은 틀림없을 것이라고 다짐하면서, 힘껏 휘둘러 본다. 웬일인가? 생각했던것 보다 더 반듯하게 잘날아가는게 아닌가. 이렇게만 계속 볼을 친다면 오늘은 최소한 Bogey Game은 할수 있을것 같은 좋은 기분이다.
Lunar는 드라이버나 중간샷의 거리나 정확도가 매일 매일 좋아짐을 옆에서 보는 나도 마음이 흡족하다. 다만, 컵에 볼을 떨어 뜨리기위한 조준이 좀 미흡함을 본다. 정성을 쏟고 신중을 기해서 Lane을 잘 보았으면 하는 아쉬움이다.
샷이 흔들리기 시작한더니, 꼭 Fairway중앙에 떨어져 날릴것을 마음속에 다짐하면서, 힘껏 날렸는데 오른쪽 깊은 갈대속으로 날아가 버리는게 아닌가. 빌어먹을..... 이렇게 되면 금년들어서는 아직까지 한번도 Bogey Game을 해보지 못했던것을 달성해 보려는 꿈이 날아가 버리는것 같아 아쉽기만 하다. 이렇게 속상해 하면서 왜 골프를 한다고 매일 매일(?)출근을 하다시피 하는가? 내마음, 내행동 나도 잘 모르겠다.
볼이 떨어진 지점에 있는 갈대속을 헤짚으면서 한발 한발을 조심스럽게 옮기면서 눈을 갈대속에 응시하고 있는데, 갑자기 오리 한마리가 퍼드득하면서 높이 솟아 오르는게 아닌가. 나도 모르게 가슴이 뛰고 움찔 하면서 발걸음을 멈추고, 오리가 날아오른곳을 자세히 보았다. 종족을 보존하기위한 새생명을 탄생시키기위해 둥지를 틀고, 그곳에 9개의 알을 품고 있었던 것인데.... 내가 헤짚고 뒤지는통에 그오리에게 방해꾼이 되여 버린 셈이다. 손으로 알들을 만져 보았다. 따뜻했다. 나말고라도 하루에도 여러번씩 볼이 떨어질 확률이 많은 이곳에 멍청하게 둥지를 틀다니.... 어렸을때의 기억이 순간 떠 올랐다. 높은 나무위에 둥지를 튼 새집(Bird's nest)을 보면 그곳까지 올라가 알을 꺼내여, 친구들과 가지고 놀다가 깨뜨리는, 아무런 뜻도 느끼지 못한채, 망나니짖을 하곤 했었는데, 오늘은 생명의 탄생을 기다리는 알을 보면서, 행여 다른 짐승들이 습격이나 해오지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볼찾는것을 포기하고 다른볼을 골프백에서 꺼내여 Fairway에 놓고 다시 Putting Green을 향해 볼을 날렸다. 이번에는 방향은 좋았는데, 그린을 벗어나서 정지한다. Bogey Game의 꿈은 자꾸만 멀어져 가는 기분이다. 아쉬운 마음만 마음속에 쌓여가고....결국 오늘도 시작할때 바랬었던 목적은 이루지 못하고 몇개를 Over하고 18번째 Hole과 다시 만나기를 굳게(?)무언의 약속을 하고 Club을 정리했다. Lunar도 어제와 거의 같이 100 의 장벽을 못넘었다고 아쉬운 표정이다. 그녀는 퍼팅에서 진지하게 한다면 18홀을 통해서 3개 아니면 4개 정도는 줄일수 있을것 같아 보이는데.... 본인은, 내가 이런 생각을 안해도 내적으로는 더 많이 심혈을 기울렸을 것이라는것을 알면서도 마음속으로 푸념을 해 본다. Lunar의 샷은 비교적 이번시즌에 좋아진것 같다. 퍼팅만 더 노력이 필요한것 빼고는.
금년 시즌이후 아직까지 조그만 나의 염원이 담긴 그벽을 오늘도 못깼는데..... 차라리 따른 취미로 돌리고, 골프를 접어 버릴까?라는, 마치 골프장이 내편을 들어주지 않아 잘 안된것 처럼 골프장을 원망(?)하는 어처구니 없는 발상을 하면서 차에 백을 던져 넣었다. 다음날 습관적으로
'Lunar... 시간 늦겠다. 조금 빨리 서둘러야 겠다.' 라고 아침겸 점심을 마치고 준비하고 있는 Lunar에게 나도 모르게 한마디 던졌다. 어제의 골프 접을 생각은 온데간데 없이 머리에서 지워져 버리고, 다시 또 골프장으로 달려가기위해 Lunar에게 서두르라고 소리를 친것이다. 골프가 마약인가? 아니면 ....... 1번홀의 높은 Tee Box에 오르니 넓게 펼쳐져 있는 파란 잔듸와 주위 경관이 너무 좋다. 이렇게 넓은 Fairway를 놔두고 굳이(?) 옆의 숲속 아니면 2nd 샷이 어려운 나무옆에 떨어 뜨리곤 하는 조화(?)를 어떻게 이해하고 극복해야 하는가?
어쨋던 이러한 대자연속에서 건강을 유지할수 있는 운동을 한다는 축복(?)에 감사하고픈 마음뿐이다. 샷을 날렸다. 아.... 이게 웬일인가? 골프장의 안주인 Linda가 'Nice shot' 하는게 아닌가. 날아간 볼을 향해 눈을 들어 보니 2nd 샷을 하기에 아주 좋은 위치인 Fairway 약간 외쪽으로 잘 날아가고 있는게 보이질 않는가. 더욱이 LPGA 출신인 Linda가 Cheer 해 주었으니.... 그녀가 Check Box안에서 안보는척 하면서 유심히 보았던 것을 알수 있었다. 예감이 오늘은 이상태로 나갈것 같다. Linda는 좀처럼 check in일을 하지 않고 보통은 Marshall들이 하는데. 그녀에게 'Thank You'를 하고 Tee Box를 내려와서 가볍게 Cart를 끌고 Carpet 처럼 푹신 푹신한 Fairway를 걷기시작했다. 약 180 야드쯤 떨어져 있는 'Green'을 향해 2nd shot을 정성스럽게 조준하고 힘껏 날렸다. 거리는 거의 맞았는데 왼쪽 그린옆의 벙커로 들어가 버리는게 아닌가. 나도 모르게 잘 해야 겠다는 일념으로 어께에 힘이 들어갔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또 내의도와는 다르게 고행(?)의 시발점이 되여 버리는것은 아닐까?라는 불안감이 뇌리를 스친다. Bogey로 1번홀을 마쳤다. 목적은 달성한 셈이다. 아니 잘 한것으로 자위하고 싶다. 430 야드인 Par4 에서 이성적이 나왔으니까..... 주로 Lunar와 둘이서만 '라운딩'하기 때문에 점수에 대한 경쟁도 없고, 편안한 마음으로 오직 운동한다는 Concept이기 때문에 어쩌면 더 골프점수에 대한 신경이 둔해지는 방향으로, 가끔씩 친지들과 어울려 라운딩할때에는 다른 세상에서 새로운 골핑을 하는 느낌도 받지만, 편안하게 가고 있음을, 그러나 한번도 매홀마다 점수에 연연하면서 아쉽다는 안타까움은 지니고 있지 않다.
며칠전 나도 놀라고 또 알을 품고 있던 오리도 놀라게 했던 12번 홀의 Green에 도착하기전 , 그냥 지나칠수가 없고, 궁금하여 오리가 새생명 탄생을 위해 알을 품고 있을 둥지를 다시 찾아 발길을 옮겼다. 그며칠사이 갈대풀은 많이 자라 금방 그위치를 찾아내는데 약간 서성거릴수 밖에 없었다. 조심조심 둥지에 눈길을 맞추었을때 오리도 나와 눈이 마주쳤다. 그러나 이제는 죽기살기로 새생명 탄생을 지켜야 겠다는 각오를 느낄수 있는 자세로 눈만 꿈벅꿈벅하면서 지난번 처럼 도망갈 생각을 안하고 그냥 앉아 알을 품고 있다. 생명의 탄생이 가까워 오고 있다는 증거라고 추리하면서, '무사히 잘 있었구나. 그래 무사히 새끼를 탄생시켜 너희들 세계의 역사를 이어가거라...' 발길을 되돌려 그린으로 올라가 볼을 Hole과 조준하여 퍼팅을 했다. 운좋게 Hole Cup속으로 떨어진다. Par를 횡재라도 한듯 해 낸 것이다. 오리에게 축복(?)을 해주어서 였을 것이다. 내 평소의 실력으로 집어 넣은게 아니고. 이런 스릴때문에 내일도 골프장으로나와야 겠다는 생각으로 기분이 바뀐다. 언제 Agony가 있었냐는듯. 그래서 골프는 다시 이어진다. 또다른 이유는 많이 걷는게 Senior 들에게는 최상의 건강을 유지하는 방법이라고 Medical Dr.들에게서 많이 들어왔기에, 푸른숲속에서 자연을 벗하는게 더 좋아져서, 바꾸어 표현한다면, 세월을 살아온 시간이, 앞으로 남은 시간보다 훨씬 오랜 시간임을 알기에, 계속해서 골프장에 나가는 또다른 이유이다.
토론토 도심주위에 있는 골프장 환경과는 많이 다른게 시골에 있는 골프장들이다. 그래서인지 각종 새종류, 동물종류들이 참많이 서식하는것을 골프를 즐기면서 많이 본다. 어떤때는 골프카트를 타고 거북이(Turtles)들이 기어 오르는 경우도 있고, 볼을 찾기위해 Rough속을 헤매다 발에 딱딱하게 밟히는 촉감을 느껴 자세히 들여다 보면 거북이가 발밑에 눌려 있는경우도 있다. 날씨는 덥고, 앞의 팀들이 밀려 Tee Box에서 바로 볼을 때릴수 없을경우 벤치에 앉아 거북이를 동무삼아 소꼽놀이를 하는 경우도 있다. 이순간에는 골프에서 떠나 거북이의 세계속으로 깊이 빠져 드는 기분을 느낀다. 기다리는 따분함도 이거북이가 대신 놀아(?)준다고 Lunar와 담소도 해 본다.
8번홀 그린에 떨어뜨린 볼이 고마워서 최소한 bogey는 할수 있을것으로 기대 하면서 뚜벅뚜벅 그곳을 향에 걸어가는데, 갑자기 처음 들어보는 새소리가 특히하다. 고개를 들어 소리가 들리는 나무숲을 두리번 거리니, 보기드문 광경이 눈에 보인다. 많은 큰 나무들중에 우뚝선 고목나무 윗쪽에 있는 Trunk에 난 구멍속에서 벼슬이 빨간 딱다구리(Wood Pecker) 새끼들이 입을 벌리고 먹이를 물고 돌아올 어미를 찾고 있는데, 어느새 벼슬(Crest)이 빨간 어미새가 먹이를 잔뜩 입에 물고 구멍앞에 붙어 있는게 아닌가. 그래서 새끼들이 먼저 알고 그렇게 짹짹 거렸었나 보다. 이순간을 포착하고 싶어 카트에 항상 휴대하고 다니는 카메라를 집으러 다녀 온 순간, 어미새는 어느새 달아나 버리고 새끼들만 여전히 짹짹 거리고 있어, 아름다운 어미새의 모습을 잡는 행운을 놓치고 말았다. 마냥 어미새의 귀환을 기다릴수만도 없고..... 뒤에서는 우리다음팀들이 계속 따라오고 있기에.
내일은 볼수 있을거라고 믿으면서 내일 다시 골프장에 와야 겠다는 생각이다. 볼이 야속하게도 원치 않는 곳으로 날아가 버릴때는, 접어야지 하는 마음뿐이었는데..... 이렇게 마음이 변하고 또 변하고.... 이것은 무엇을 의미 하는것일까? 어느결정이 옳을까? 나도 모르겠다.
나무를 꽝꽝 쪼는 소리는 Trail walk할때에도 여러번 들은적은 있었으나, 이렇게 눈앞에서 직접 보는것은 난생 처음인것으로 기억될것이다.
흔치않은 딱다구리를 보는 우리 인간들로서는 행운일지 모르겠으나, 이새들이 둥지를 틀기위해, 먹이를 찾기위해 나무를 쪼아대는 공격을 할때는, 그나무는 그시간부터 생명을 잃어 버리는 운명에 처하게 대는 것이다. 나무의 편에서 생각해 보면 큰 불행이고, 그광경을 보는 우리 인간들에게는 특히한 광경을 보는 행운(?)을 얻는것이고..... 헷갈린다. 어느쪽이 옮고 그른가? 시간이 더해질수록 창조주의 깊은 뜻이 그속에서 균형을 이루어, 자기의 형상대로 만들어 만물의 영장이 되라고한 이치를 조금씩 현장실습(?)에서 깨닫게 되는 확고함은 더해진다는 것이다.
한가지 분명한것은,골프의 타수를 줄일려고 매일 출석하다시피 하는게 아니고, 골프를 계속 하는한, 건강은 더 나빠지지는 않을것이라는 확신은 확고하기 때문에, 그래서 내일도 골프를 나가야 한다.

Monday, June 07, 2010

남한은 정녕 인재로 인한 외딴섬사람으로 안주하고 말것인가?

우리는 흔히 일본은 섬나라, 그래서 '쪽바리'라고도 비아냥 거린다. 일본은 정말로 섬나라다. 섬사람들의 기질은 보통 대륙에 사는 사람들과는 여러면에서 편협해 보이는게 특성중 하나라고도 볼수 있을것 같다.
인간의 삶은, 배가 고플때 그 본성을 제일 정확히 꽤뚤어 볼수 있다고 한다. 개훈련사(Dog Trainer)가 개를 훈련 시킬때는 개에게 먹이를 주지않고 굶겨서 오직 개의 눈에는 먹을것만이 보이게 될 지경이 됐을때, 조련사는 먹이(Bait) 한덩이를 손에 움켜쥐고, 이렇게 저렇게 배고픔의 약점을 이용해서 훈련시킨다. 배고플때 훈련은 성과가 최고조에 달한다. 그다음에는 먹이 한덩이를 던져주면 덥석 받아 먹는다. 조련사는 참 잘했다고 머리를 쓰다듬어주면서 겉으로 사랑을 표시해 보인다. 반대로 배가 부를때, 훈련을 시킬려고 하면, 그조련사는 오히려 개에게 봉변을 당할수 있는 처지로 내몰릴수 있다. 조국 한반도의 현실을, 나는 개훈련에 비유해 보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게 가슴속에 박혀 있다. 이북의 김정일과 그Regime은 세계에서 일등가는 인간 조련사들임을 전세계가 이미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이북동포들은 김정일 괴수집단이 안보는곳에서는 욕설과 비난을 퍼붓고, 때로는 목숨을 건 탈북작전을 수행하지만, 때로는 뱃속에서는 꼬르륵 하는 괴로운 배고픔의 신호가 들려와도, 체제 선전을 위해 앵무새처럼 지껄이는 행동을 얼굴에 웃음을 띄우면서 해야 하는 고통속에서, 배급해 주는 한덩어리의 먹을것을 받아 먹기위해,고통을 감내 하면서 훈련에 임하고 있은지도 벌써 60년 이상이 됐다. 그러나 상황은, 훈련의 성과는 역방향으로 나타나는것을 보면서, 김정일 제제는 인민들을 훈련은 잘 시키나, 그후의 관리나 분배가, 훈련된 인민들에게 돌려주지 않고, 몇명이서 독식을 해 버리기 때문에, 결과론으로 봤을때, 김정일과 Regime이 시키는 인민훈련 방법은, 세계제일이 아니라, 꼴찌에도 끼어줄수 없는 살인광들의 광란의 흉물로 세계의 지탄을 받아온지 오래된 사실임을 보통시민으로 살아가는 세상 사람들은, 아니 그들의 혈맹이라고 하는 중국인들 마져도 확실히 알고 있는게 오늘의 현실이다.
1960년대 말까지만 해도, 한반도 북쪽의 김정일 집단보다, 남쪽에 있는 대한민국의 국민들이 더 배고픔의 고통속에서 보릿고개를 지내기는, 당시로서는 더 심한 어려움속에서 희망도 없는 하루하루를 지내왔던 아픈 기억이 지금도 뇌리에서 떠나지 않고 있다. 똑같이 남북한의 국민들이 체제가 다른 정치판속에서 배고픔을 이겨내기위한 훈련을 받으면서 내일의 희망을 키워 왔었다. 그이후로 약 50년이 지난 오늘의 현실은, 설명하기조차도 힘들게, 특히 밤이면 대조적으로 잘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한반도 상공을 밤에 날으면서 촬영된 인공위성의 사진을 보면 휴전선 이북은 암흑으로 그려져 있고, 그반대편 남쪽은 불야성을 이루고 있음을 보여준다. 아직도 김정일 집단은 인민들을 더 혹독한 훈련으로 삶을 혹사키고, 그것도 모자라, 매년 백만명 이상이 굶어 죽어 가고 있다는 유엔 당국의 통계를 보면서, 이와는 대조적으로 남쪽국민들은 어떻게 하면, 너무나 많이 먹어 늘어난 몸무게를 감량할까로 고심하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50 여년 동안 남북의 젊은이들은, 특히 남쪽의 젊은이들은 배고픔을 모르고, 영화나 소설속에서 그런 상황을 상상으로 느꼈을뿐이다. 잘먹어서 몸속에 축적된 에너지를 불태워야 몸의 균형을 찾고, 정상적인 생각을 할수 있는것인데..... 쌓인 에너지를 불태우기에는 조국 남한의 땅덩이는 너무나 좁다. 주말이면 전국의 명산은 등산객들로 줄을 잇고, 거리는 차량의 홍수로 몸살을 앓고, 더큰 문제는 에너지를 불태우기위한 방법으로 그들이 즐겨 택하는 것이, 정부정책을 비방하는데 온힘을 쏟곤 하는 악순환이 계속되여 오고 있는데, 거기에 부채질을 하면서 불꽃을 더 피우게 한 요인이, 지난 10년동안 남쪽을 통치한 좌파정권속에서 자라난 젊은이들은, 먹이질않고 개훈련만 시키는 조련사나 다름없는 북괴 김정일 집단의 사상선전에 심취되여, 그실습을 현정부의 정책에 무조건 반대하는 시위쪽 아니면, 북괴 김정일 집단에 편들기로 에너지를 불태우고 있는게 조국 남한의 현실인것으로 나는 본다. 부모들이 허리끈 졸라매 가면서 오늘의 부를 이루어 놓은 바탕을 기본으로 오늘의 젊은이들이 부를 누리면서 삶을 구가하고있는 감사함을 잊은채 말이다. 그들의 끓은 에너지를 불태우기 위해서, 또 그에너지를 조국발전에 활용할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에너지로 충만된 남쪽의 젊은이들이 마음놓고, 남북을 드나들수 있는 길을 만들어 주는길밖에는 다른 대안이 없다고 본다. 삼면이 바다이고, 육지로 이어진 마지막 한면은 북괴의 김정일 집단이 꽉 틀어막고 있으니.... 큰 꿈을 갖고 더 넓게 세상을 보기위한 큰 도약을 해야할 젊은이들이 현재의 안일한 삶에 변화가 올까봐, 망나니 김정일 집단이 셀수도 없이 수많은 도발과 협박을 해 올때마다, 협박을 몰아내기위한 노력보다는 있는것 없는것, 때로는 좌파 정부는 국민들 눈을 속여 가면서, 김정일 집단에 조공을 바쳐, 현재의 게으르고 안이한 삶을 추구하는데만 노력해 온것이다. 서구의 부자나라들은 현재의 삶에 만족하지 않고, 좀더 낳은 삶의 질을 축하기위해 때로는 Challenge를 수도 없이 해오면서, 새로운 세상을 찾아 에너지를 불태워 왔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서 이해하게된다. 김정일 정권의 경제파탄과,남북대치상황의 절박함을 국민들에게 주지 시키는 대신에 북괴 정권도 같은 민족이라는 이상한 논리를 펴왔던 좌파 정권으로 부터 정권을 물려받은 현정부의 국가 정책에, 그들의 안이한 삶에 변화가 올수 있다는 엉터리 이론으로 젊은이들을 현혹시켜온 좌파 정권의 잔재들이 난리를 치면서 국가 정책을 반대하는데, 좌파잔재들에 편승하여 에너지를 불태우고 있는 고국의 젊은이들이 한편으로는 괴씸하기도 하지만, 측은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현재보다 더 낳은 질 높은 삶을 얻기위한 노력은 때로는 눈앞에 손실을 가져오는 안타까움도 있지만, 열보 전진을 위한 한보 후퇴는 전략상 꼭 필요함을 고국의 좌파 정치꾼들이나, 이에 깊이 물들어 있는 젊은이들도 알고 있을 테지만, 현재의 삶에 변화를 싫어하는 안이함때문에 그뒤에 가려져 기다리고 있는 더좋은 삶의 가치와 질을 못보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있는 조국의 젊은이들이 안타까울뿐이다. 그벽을 무너뜨린다면, 더 좋은 삶의 질을 높이기위한, 젊음을 불태우는 충만된 에너지를 맘껏, 힘껏 활개를 치면서 북으로, 중국과 러시아 대륙을 거쳐 유럽까지 그힘을 발휘할수 있는 길이 훤히 나같은 보통 사람에게도 보이는데.....생각을 한차원 높게 해서, 김정일 집단을 없애 버리는데 잠깐의 손실을 생각안할수 없으나, 한번의 고통이 뒤따르는 그뒤에는 정말로 젊은이들이 그들 몸속에서 맴돌고 있는 에너지를 맘껏 불태울수 있는 넓은 세상이 기다리고 있음을 지금이라도 직시하는 지혜와 용기가 고국의 젊은이들에게서 확산되여 행동으로 옮겨지는 상황을 보고싶은 간절한 생각이다. 몇년전, 산등성이에 서식하고 있는 도룡용을 보호하기위해 그곳을 통과하게되는 경부선 고속철 건설을 한여승이 데모를 해서, 국가정책인 고속철건설이 몇년씩이나 지연되여, 현재도 서울 부산간 고속철이 절름발이 고속철이 된채 운행된 상황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결국 경부고속철은 이제야 건설이 완성되여 시운전에 돌입했다는 뉴스를 접했는데 고속철이 관통된 후의 도룡용의 삶이 파괴됐다거나 멸절 했다는 보고서는 아직 접하지 못했다. 설혹 멸종됐다해보자, 삶의 가치를 놓고 비교해 보았을때, 국가 경제발전에 끼치는 영향을 비교해 보았을때, 그선택은 어떤것이 옳았었었나?는 삼척동자도 금방 알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좌파 정권은 앞뒤가 맞지 않는 인권존중이라는 이상한 논리를 내세워 몇년씩 건설을 중지 시키는 우를 범한 것이다. 이번 천안함 폭침이 이제 만천하에 북괴 김정일 집단에 의해 저질러진 만행임을 온 세계가 다 극명히 알고 있는데, 이럴때 일수록 조국의 젊은이들의 Challenge정신으로, 당장에는 손해를 보는것 같지만, 현재의 안이한 삶의 자리에서 박차고 나와 김정일과 그집단을 압박하고, 응징하는데 축척된 에너지를 활용하는 지혜를 보여 주어, 그뒤에 광활하게 펼쳐져 있는 젊은이들이 에너지를 불태울수 있는 새로운 터전이 있다는것을 터득해서, 스스로 고도의 섬에 갇혀, 밖에 세상을 옮바르게 보지 못하고, 섬사람의 좁아터진 정신으로 현재의 주어진 삶에 안주하는 섬사람의 자세에서 벗어 나기를 빈다.

L.A Times,CNN 기사를 옮겨왔다.

http://www.latimes.com/news/nationworld/world/la-fg-korea-ship-sink-pictures,0,5983865.photogallery

http://www.cnn.com/2010/WORLD/asiapcf/06/08/north.korea.leadership/index.html

Saturday, May 29, 2010

Crawford Forestry Tract Trail Walk 그리고 푸짐한 파티















날씨가 무척 덮다. 오늘은 Trail Walk하는것도 중요했지만, Trail Walk을 끝내고, 푸짐한 Lawn Party를 하는 기대감과 대원들이 배꼽을 잡아 가면서 오후 한때를 오랫만에 같이 즐기면서, 어린 동심으로 돌아갈 마음으로, 모이는 장소에서 부터 대원들의 얼굴이 환하게 돋보이는것 같았다.
다른 때는 모이는 장소에서 조금씩 늦게 출발하곤 했었지만, 오늘은 칼날 처럼 Trail Walk을 하게될 목적지를 향해 시간이 되자마자 차를 몰고 고속도로를 달렸다. 날씨는 맑고, 한낯에는 더울거라는 예보가 있긴 했지만, 그래도 어제 처럼 덮지는 않을것이라는 좋은 소식도 곁들인다. Hwy401을 서쪽으로 달리기 위해 Local길을 빠져나와 올라 섰을때까지는 나와 Lunar가 탄차는 대원들이 운전하는 차량의 중간쯤에 끼어서 달렸으나,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산행을 시작하게 되는 곳에 가까워 졌을때는 내가 선두에서 달리고 있음을 알았다. 목적지까지 가는 꼬불꼬불한 길 Direction이 머리에 입력이 잘 안되는것 같아 쪽지에 써 놓은 메모지를 보아 가면서 말이다.
약속된 파킹장 입구에 도착하니, 아뿔사 이게 웬일인가? 입구에는 크나큰 프래카드가 걸려 있고, 군데 군데에는 빨간 T-셔츠를 입은 봉사자들이 차량과 수많은 사람들을 가이드 하면서, 파킹장 입구 교차로에서 방향등을 켜고 파킹장으로 들어갈려고 하니, 내차를 정지 시키는게 아닌가. 'Are you participating walking contest for fund raising of clean water for Burlington?' 라고 묻는다. 'No'라고 대답하면서 나는 Bruce Trail member 인데 이곳 구간을 걷기위해 주차장에 들어가 파킹을 할려고 한다 라고 대답했더니, 이행사때문에 오늘은 안된다고 웃으면서 설명해 준다. '그러면 건너편에 잠시 차를 세우고, 다른 대원들이 다 도착할때까지만 기다려 달라'라고 하면서 차를 돌려 건너편길의 Shoulder에 주차를 임시하고 다음 차량들을 기다렸다. 곧이어 2명의 대원들이 도착하여 Shoulder에 나란히 주차를 하면서 더 기다렸는데, 이건 또 어떻게 된것인지? 차량들이 소식이 없는게 아닌가? 약 30분 정도를 기다려도 소식이 없어, Cell로 다른 대원이 연락을 취하더니, 다른곳에 이미 도착하여 꺼꾸로 우리쪽 차량들을 기다리고 있으니 그곳에서 만나자고 했단다. 신록의 계절 여름철이 시작되면, 각 지방마다, 오늘 처럼 각종 행사가 거의 주말이면 개최되곤 하기에 이런 예상치 못한 Blocking을 당하는 것이다. 마침 한때의 젊은이들이 가슴앞에 번호표를 달고 걸어가기에 몇마디 궁금한것을 물어 보았더니, 이곳에서 시작하는 걷기대회는 5킬로, 10킬로 두팀으로 나뉘에 걷고, 또 다른 Biker들만의 달리기가 이어진다고 설명해 주었다. 차를 돌려 목적지에 도착하니 벌써 일부 대원들은 걷기를 막 시작하고 있었다. 누구의 잘못도 아닌 행사가 겹쳤기에 일어난 돌발사고(?)이니, 그나마 다행으로 생각하는것은, Cell phone이 있었기에 연락이 되여 헤메지 않고 같이 다시 만나 걷기를 할수 있다는것을 감사하지 않을수 없는 심정이다. 이미 알고 있는데로 오늘은 평상시때의 절반인 약 10킬로만 걷고, 이곳에서 멀지 않은곳에 있는 Lowville Park에서 BBQ로 점심을 하고, 다시 친선 게임들을 하면서 신록의 5월 마지막 주말을 즐길 생각에 발길은 가볍기 그지 없었다. Crawford Forestry를 가로 지르는 Trail을 따라 걷는데 파란 나뭇잎들이 따거운 햇볕을 가려줘, 생각보다 덮다는것을 덜 느끼게 해주어 다행이었다. 불과 한달전만 해도 아직 회색빛의 나무가지와 삐쭉 위로 솓아오른 Trunk 로 볼품이 없었던 그런 모습은 온데 간데 없고, 눈을 시원하게 해주는 녹색의 나무잎뿐이다. Crawford Conservation안에 Lake에는 따뜻한 햇볕을 좋아하는 물고기들이 물 표면위에 서 우리 대원들이 응시하고 있는 광경을 무시라도 하는듯 유영하는 모습이 평화스럽게 보인다. 대원들이 발길을 멈추고 한참을 물고기들의 댄스(?)에 정신을 팔고 있는 모습도 여유로워 보였고, 강태공의 경험이 있는 대원들은 몸고기에 대한 일가견들을 설파(?)하는 소리도 듣기 좋았다. 이곳 호수 밑바닥에는 몇백년이 지난 오늘에도 썩지 않은 옥수수 낱알들이 있다는 내용과 그이유에 대한 자료를 접하면서, 그때 이곳에서 삶을 살았던 원주민 인디언족들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발길을 돌려 다시 길가 주차장에 도착하여 차를 몰고 오늘의 파티가 있게될 Lowville Park에 도착하니 이제 11시가 채 못됐다. 넒은 주차장과 푸른 잔듸 군데 군데 놓여 있는 Picnic Table에는 우리대원들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주말을 즐기러 우리처럼 BBQ준비를 하고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여유로운 모습들이다. 발빠른 일부 대원들은 벌써 Burner에 불을 피우고, 갈비를 올려 놓는다. 지글지글 익어가는 갈비에서 나오는 향기(?)가 침을 꿀꺽 삼키게 한다. 여성대원분들은 Table 위에 각자 한가지씩 준비해온 반찬들을 풀어 놓기에 여념이 없이 움직인다. 질서정연하게 잘 훈련된 표현으로 보인다. 금새 Table에는 풍성한 상이 차려졌다. 갈비와 밥은 leader를 비롯한 몇명의 대원들이 준비하는 수고를 해 주었고, 반잔은 각 가정에서 한가지씩 준비해 온것이다. 매주 같이 걷는 Mr. Colin과 Taylor도 열심히 갈비굽고.....아직 한국말을 잘 이해 못하지만, 그렇타고 우리 대원들이 그들을 위해 특별히 영어로 설명해 주거나 하는 특별한 관심을 보여주지도 못하지만, 항상 웃으면서 어울리는 그들의 모습도 오늘은 더 돋보였다. 어느 대원은, 전에도 그랬었지만, 오늘도 곡주를 만들어 큰 통에 푸짐하게 담아와 대원들의 목을 시원하게 적셔주는 수고를 해주셨다. 맛이 다른때와 달라, 이번에는 어떤 Recipe였느냐고 어느 대원이 물으니, 솔잎새순에서 나온 Pollen을 따다가 첨가 했다고 설명해 준다. 그리고 약 20일을 숙성 시켰다고 한다. 나를 포함한 우리 대원들은 그냥 맛있게 한모금씩 목에 넘기지만, 이런 모습을 보기위해 그가 보이지 않게 공들인 노고를 생각지 않을수 없었다. 배가 금새 꽉 차오르는 느낌이 온다. 대원들 중에는 재치 있는 분들이 많다. 한 대원의 제안으로, 대원들 모두가 합해 두팀으로 나뉘어 미리 Rope를 쳐서 만들어 놓은 배구코트안에 들어가 배구볼을 상대편에 던저 Touch하면 그대원은 cease되는 게임을 시작했다. 마음같아서는 배구볼을 힘껏 던져 금방 상대편 선수를 맞힐수 있을것 같았는데...... 결과는 영 딴판으로 빗나가곤 하고, 또 수비팀에서는 공을 피하려다 넘어지는 그모습이 너무나 우스워, 공원이 떠나갈듯한 웃음소리로 화답하고, 한참을 하다보니 맘껏 먹었던 뱃속의 음식이 다 없어져 버린 기분이다. 게임이 좀 지속되니 요령들을 터득하여 게임은 더 폭소의 도가니로 빠지고..... 게임이 끝난후 일부 대원들은 바로 옆에 흐르는 Creek에 들어가 물놀이를 하면서 물고기를 뒤쫒기도 하고..... 모처럼만에 복잡한 세상사 잠시 잊고, 동심의 세계에서 보낸 시간을 오래 기억할것 같다. 오래 오래 이러한 대원들의 친목속에서 Trail Walk이 계속되여, 인생의 황혼길을 걷고 있는 많은 대원들이 오늘처럼 건강을 유지하는 모습을 오래오래 보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이런 유혹을 뿌리치지 못해 매번 토요일을 기다릴수 밖에 없는 내자신을 보면서, 신발끈을 다시 동여맨다. 감사. 참고, Bruce Trail Map No.11.

한국 근대 정치사중 경제적 기초를 다진 사람들(조선일보)

5천년 이어져 내려오던, 보릿고개의 어려움을 극복하기위한, 정치 지도자들의 노력을 담은 기획연재를 여기에 옮겨놓고, 지나온 그시간속에서 지내온 기억들을 다시한번 정리해 보면서, 내가 살아온 삶의 길을 다시한번 되돌아 보고져 함이다.



http://issue.chosun.com/svc/list_in/issue_list.html?catid=967

Friday, May 28, 2010

MB, '중국의 중립적 위치' 확약을 받아내...

오늘 청와대에서 열린 한.죽 정상회담에서, MB와 중국총리 '원자바오'가 예정된 시간을 연장해 가면서, 여러현안에 대한 논의를 심도 있게 한것중에서, '중국은 천안함 사태'에 대해 최소한 중립적 위치를 유지 하면서, 사태 추이를 주의 깊게 지켜 보겠다는 약속을 했다는 속보가 고국의 조선일보, 동아일보, 그리고 중앙일보등에 실린 기사를 보면서, 중국이 이사건의 지대한 영향력을 끼치는 위치에 있기에, 최소한 입을 다물거나, 아니면 중립적인 입장을 지킬것이라는 내용의 확답만을 얻어도 한국의 외교는 승리하는 셈이라고, 처음부터 안타깝게 여겨 왔던 나의 생각이, 이제 막 마친 한. 중 정상회담에서 공동 발표 됐다는 낭보는, 천안함 폭침 해결에 대한, 또 당사자인 북괴 김정일 집단에, 공개적인 제재( 군사적, 경제적 또는 다른 기발한 방법이 있다면)를 가해도 중국으로 부터 남한 정부가 크게 비난을 받지는 않을것 같은 조짐으로 이해되여 다행이다.
이는 조국 한국이 경제적으로 그만큼 위상이, 영향력이 있음을 입증하는 결과이기도 한것 같다. 조폭도 아니고, 그렇다고 힘을 자랑할만한 위인도 못되는, 망나니 북괴 정권이, 크고 작은 군사적 행동을, 게릴라 수법을, 동원하여 남한 정부를 괴롭히는, 이번처럼, 좌파 야당 정치꾼들을 제외한 모든 국민들의 눈에서 눈물을 흘리게 한 그엄청난 고통을, 김정일과 그집단이 직접 느껴 보도록, 마지막 현명한 지혜를 동원하여, 그들의 숨통을 한계단씩 조여가는 조치가 뒤따르기를, 조국에서 멀리 떨어져 살아가고 있는 나를 포함한 교포들의 염려를 씻어내주고, 남한 국민들이 다른 걱정없이 편안하게 생업에 종사할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이시점에서 가정을 해보지 않을수 없다.
만약에 MB가 대통령이 못돼서, 계속해서 좌파 정치꾼들이 노통의 바통을 이어 받아 현재에 이르렀다고 상상해 보았다. 고국의 경제는 또다시 판탄이 일어나, 요즘 전세계를 뒤흔들고 있는 그리스 사태가 나지 않아을것이라는 보장이 없었을것 같다. 북괴 김정일과 Regime 은 남측에서 퍼준 엄청난 돈으로, 북한 국민들을 먹여 살리는게 아니고, 계속해서 핵무기 걔발과 군비증강을 하고, 그총구를 남쪽에 조준해 놓고, 손바닥안에 있는 손오공같은 행동을 남측에 해왔을 것이고, 남쪽 사회는 그협박이 무서워, 김대중처럼, 서해 교전이 벌어져서 해군장병들이 목숨을 잃는 국가적 손실이 일어나도, 국민들에게는 쉬쉬해가면서, 김정일 눈치 보기에, 그리고 그뒤에서 무언으로 북괴 김정일을 지지하는 중국의 비위를 마추어 가면서, 허리가 휘도록 노동을 쳐서 일궈낸 경제적 부가 그렇게 시루에서 물새듯 새어 나갔을 것으로 미루어 짐작하는것은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조국 대한민국을 위에 계시는분이 도와 주시고 있음을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 들이고 싶다. 고국의 대통령 BM에게 수고 많이하고 계시다는 인사라도 하고싶은 마음이다. 여기에 고국의 신문 기사와 NY Times기사를 옮긴다.

http://news.joins.com/article/373/4204373.html?ctg=1000&cloc=home|showcase|special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0/05/28/2010052802220.html?Dep1=news&Dep2=top&Dep3=top

http://news.donga.com/Politics/3/00/20100528/28680011/1&top=1

http://www.nytimes.com/2010/05/29/world/asia/29korea.html?ref=asia

http://news.joins.com/article/967/4205967.html?ctg=2002&cloc=home|showcase|special

고국의 좌파 신문인 한겨레의 기사를 보았다. 이소식은 한마디도 없고, 여당에서 조작한 북풍 때문에 야당이 의회 선거에서 위기감에 처해 있다는 내용의 머리 기사를 내 보내고 있었다. 위의 조, 중,동은 머리기사로, 그것도 속보로 내보내고, 좌파성향이 깊은 경향 신문은 지면 중앙에 두정상의 회담 내용을 실었는데...., 차라리 그런 좌파들은 이북으로 몰아 내던가 , 자진 월북해서 김정일과 그 집단들에게 목을 메고 사는게 사상적으로는 맞을텐데..... 남쪽에서 배불리 먹고, 사상적으로는 북쪽으로 부터 지령을 받고..... 그런 앞뒤가 안맞는, 정치꾼들에게는 최소한 남쪽의 젊은 청년들을 선동 못하도록 특단의 조치라도 해 보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그렇게 재재를 하면 '독재'한다고 발광을 하겠지? 세계지도를 펴놓고 보면, 너무나 영토가 적어서 잘 보이지도 않은 그런나라에서, 그것도 남,북으로 허리가 잘려 이념싸움으로, 국력을 소진하고 있는 나라, 조국 대한민국. 보살펴 주소서.

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423010.html

Thursday, May 27, 2010

이와중(천안함 폭침)에도 개성공단만은 성업중이란다. 기가막혀서..


철없는 북괴 망나니들.... 개성공단은 여전히 성업중(와싱턴 포스트)

북한의 김정일 Regime을 정확히 아는 사람이나 국가가 있을까?
요즘에는 그들의 혈맹인 중국도 그들의 속셈이 뭔지를 몰라 헤매고 있는것 같다.
하물며 서방세계가 그들을 안다고 할수 있겠는가? 안다고 하면 새빨것 거짖말이다.
서방세계가 지금까지 백방으로 북괴 김정일 집단을 길들이기(?)위한 수백가지의
처방을 내려 왔었지만, 거의 전부가 Paper Tiger의 모습만 보여주어, 오히려
역효과를 내왔었을 뿐임을, 이번 천안함 사건에서도 명백히 증명된 셈이다.
이번에도 미국무장관이 한국에 날아가고, 중국총리도 한국에 온다고 하는데, 결과는
뻔하게 보일 뿐이다. 말안듣는 짐승에게는 회초리를 들이 대여, 바로 가는 길을 잡
아야 하는데..... 어떻게 된 영문인지, 북괴에 대해서만은 Paper tiger뿐이다.
여기에 오늘자 Washington Post지의 기사를 옮겨 싣는다. 내가 보기에는 미사여구
뿐인, 알맹이 없는 구호로 그치는 미국을 포함한 서방세계의 처신을 보면서, 결국
이문제를 해결해야할 사람은 누구도 아닌, 조국 대한민국민임을 간접적으로 설명해
주고 있다고 느껴질 뿐이어서, 약자의 서러움(?)을, 이 더위에, 차겁게 느낀다. 참고로 오늘의
기온은 32도를 가르켰었다.

http://www.washingtonpost.com/wp-dyn/content/article/2010/05/26/AR2010052600975.html


북괴가 개성공단의 한국측 직원들을, 천안함 사건 진상발표에 대한 보복으로, 추방 시킨다고
큰 소릴 치던날, 개성공단에 남측 공장 주인들은 전새산을 날렸다는등등의 어수선을
피워서 정말로 그러나 하면서 그추이를 기다려 보았더니, 와싱턴 포스트지의 기사는 전연
딴세상으로 쓰고 있다. 즉 천안함으로 발생된 남북 긴장상태와는 아무런 상관 없다는듯이
45,000명의 이북 공장 노동자들은 정상 출근에 공장이 풀 가동되고 있다는 소식이다.
그들이 공장을 쉬게 되면, 김정일 집단이 핵무기와 전쟁무기 만드는데 필요한 소요자금줄이
막히기 때문에, 공갈 협박만 해놓고, 공장을 가동시키도록 문을 열어두는것을 보면
돈앞에는 장사가 없다는것을 깊이 느끼게된다. 이번에 개성공단을 완전폐쇄해서, 그들의
돈줄을 완전히 끊었어야 하는것이 옳았을 것인데.....
개성공단의 공장가동에는 손을 안대는 북괴의 속셈에 오히려 안도의 숨을 내뿜고 있는 조국 대한민국과 서방세계의 모습이, 그래도 공단가동 중단만은 손대지 않은 북괴의 행동에 오히려 속으로는 감사(?)해 하고 있는 추한 모습이 이곳 저곳에서 보인다. 행동이 뒤따르지 않는 언어구사만으로는 절대로, 쌍방간에 신뢰의 보장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진리를, 이번에도 못보여주고 슬며시 구렁이 담넘어가듯 할려고하는 대응을 보면서, 북한의 죄없는 동포들만 또 죽어나게 생겼고, 이지옥같은 그들의 삶이, 김정일 Regime의 건재함을 속에서, 더 깊은 고통속으로 빠져들고 있음이 안타깝다. 남쪽의 좌파들은 이속에서 교묘하게 국민들을 선동하는 선수가 되여, 이번 의회선거에서도 많은 좌석수를 차지하여, 계속 남쪽의 안전을 뒤흔들것이다. 이런때일수록, 좌파들이 독재자라고 떠들어 대는, 박통같은 리더가 절실히 그리워진다. 나의 조국 한반도에서 살고 있는 7천만 동포들의 안전과 편안한 삶과 5천년의 유구한 역사의 도도한 흐름을 위해서.

한손은 외화 때문에 공단 가동을 계속하면서, 전체적인 그림에서는, 남측의 천안함폭침 조사가 날조되고, 북한을 모독한 내용으로 가득찬 발표에 대한 응징으로, 남측과의 모든 관계를 단절(Severing)하겠다고,똥뀐놈이 화를 먼저 낸다는 옛 어른들의 말씀처럼, 먼저 선수(?)를 치고, 이로인해 발생하는 모든 책임은 남측에 있다고 떠들어 대고 있는 광란의 놀음앞에, 서울거리에서는 김정일과 그Regime에 항의 하는 데모가 있었단다. 본국의 뉴스에서 본것이 아니고 CNN과 LA Times에서 보도해서 알게된 것이다. 여기에 기사를 옮겨 놓는다. 조국 남한에서는 서해에서 해군기동훈련을 실전방불케 실시하고 있다는 기사가 인터넷기사 전면에 올라 있다. 미치광이 집단이 이훈련을 보면서 '앞으로는 잘못하면 보복을 당할수 있으니 조심해야 되갔어야' 라고 생각할까? 그랬으면 얼마나 좋으랴. Demonstration 보다는 상응하는 Action을 자유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원하는 것이다. 7천만 민족앞에 영원히 반역자로 남을, 거동도 제대로 못하는 김정일과 Regime들, 수많은 순진한 동포들을 굶어죽게 만들면서까지 악마의 행동을 해대는,그들의 최종목적지와 그내용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그들에 대한 분노보다는 처량함과 측은함이 온몸속에 스며든다.

http://www.cnn.com/2010/WORLD/asiapcf/05/25/n.korea.threats/index.html

http://www.latimes.com/news/nationworld/world/la-fg-korea-mood-20100528,0,7727576.story

http://news.joins.com/article/864/4206864.html?ctg=2002&cloc=home|showcase|special

아까운 젊은 대한의 피끊은 청년들만 목숨을 잃게 된것이 아닌가?라고 걱정이 된다.

Sunday, May 23, 2010

탈북자도 정치인이 될수 있는곳, 대한민국을 북한주민들이 피부로 느꼈으면...

오늘자 LA Times의 기사를 보면서, 이러한 현실을 북한 주민들이 눈으로 보고, 피부로 느꼈으면 하는 간절함이 하루좋일 뇌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이번 6월초에 실시되는 조국 대한민국의 지방 자치제 선거에서, 탈북자 3명이 지방의회의원후보로 출마,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유선진당에서 2명, 집권당인 한나라당에서 1명이 후보로 공천되여, 막판 시민들의 한표를 얻기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는 기사내용이다.
'최'씨성을 가진 한여성 탈북자는, 2명의 아이를 둔 엄마로서, 그녀의 가족은 북괴중앙당의 간부로 있었기에 그혜택으로 좋은 학교와 엘리트 교육을 받으면서, 불편없이 삶을 살아왔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날, 당에서 중책을 맡고 있던 그녀의 형부가 감쪽같이 사라져, 얼마후에 그가 김정일 정권에 잡혀가, 종국에는 중노동수용소에 끌려가 먹을것도 먹지 못하고, 골병들고, 죽음 직전까지 가는것을 보고, 그때부터 북한 주민들의 일상생활에서 굶주림이 보편화 되여 있다는것을 알게 돼면서, 모두가 허구이고 꼭두각시 놀음에 지나지 않는다는것을 깨닫고 탈북을 결심하고, 2004년도에 어렵게 남쪽으로 귀순하여 지금은 서울에서 살고 있으면서, 이번에 지방의회 선거에 출마했다고 한다. 대한민국 시민의 한사람으로 살아가면서, 내가 생각하고, 주민들의 복지를 위해서 할말을 할수 있다는 자유를 너무나 사랑한다고 한다.
현재 대한민국에는 약 20,000 여명의 탈북자들이 자유롭게 남한에서 살아가고 있으나, 행여나 북에 두고온 남은 가족들에게 피해를 줄까봐서, 대중앞에 나서기를 대단히 꺼려 하면서, 조용히 신분이 노출되지 않도록 하면서 일종의 칩거생활을 하고 있는게 실상이라고 한다. 이번 천안함 폭침사건으로, 남북관계가 초긴장상태에서 살얼음을 걸어가듯하고 있는 이시점에서, 남한으로 귀순하여 자유를 먹으면서 살아가는 과정중의 하나인 정치생활을 한다는 사실이 이북의 중앙당에 알려지면 남은 가족들의 어려움이 있을것이라는것을 뒤로 접어두고, 용기있는 그들의 행동에, 결과야 어찌 되든간에, 찬사를 보내고 싶다. 이러한 그들의 삶의 실상이 이북에서 조국한반도가 해방된이후, 현재까지 공포정치와 굶주림에 시달리는 북한 주민들에게 있는 그대로 알려져, 북한 밖의 세상에서는 인권도 존중되고, 능력만 있으면 국가를 운전하는 정치인도 될수 있는 곳이 널려 있다는것을 피부로 느낄수 있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램이 가슴 깊숙히 밀려든다. 입만 열면 북괴 김정일과 그일당에게 아부하듯 떠벌리는 이합집산 야당패거리들은, 이번 선거에 탈북자출신 후보가 있다는 뉴스가 아직 없다. 허긴 그들이 탈북자들을 영입하여, 후보로 내세우고 싶어도, 꿈에서라도 볼까봐 진절머리를 칠 김정일과 그일당들에게 아부하는 꼬락서니를 절대로 용납할수 없을 것이기에, 사양 했으리라 짐작이 간다. 만약에 그런야당에 입당하여 후보가 됐다면, 그탈북자는 탈북한 진의를 의심하지 않을수 없을 것이다.

또 오늘자 NY Times는 분석기사에서 이번 천안함 폭침은, 병골이 짙은 김정일의 지시로 이루어진 것이 확실하게 모든 정황에서 밝혀지고 있다는, 전문가의 의견을 지지하고 있다. 그이유는 그가 현재 병들어 언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몰라, 그의 아들을 후계자로 지목하고 양육중에 있으나, 내부적으로 상당한 저항에 부딪혀, 이를 완화하기위한 궁여지책으로 이런 엄청난 살인 행위를 했다는 것이다. 또 다른 뉴스에 의하면 중국도 김정일의 망나니같은 행동에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는 하니..... 이해가 갈만도 하다. 이제는 중국이 국제무대에서 군사력만 내세우면서 김정일 일당처럼 굴었던 과거의 행동은 할수가 없게 되여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지도자들이나 국민들이 이제는 돈의 위력을 너무나 잘알고, 또 그맛속에서 하루하루를 즐기고 있기에, 군사적 충돌보다 경제적 안정을 더 원하고 있기에, 서방세계와 의견조율과 협조하는면에서 공조를 취하지 않을수 없는 형편이기 때문이다. 이런 얽히고 설킨 주변국들의 사정을 멍청한 김정일과 그집단은 이해를 못했던것 같다. 그래서 그들이 더 불쌍해 보인다. 그들의 앨리트 집단이 저지른 망나니 행동에, 죄 없고 순진한 북한 국민들만 더 생계가 어려워지고, 그로 인해 아사자가 더 속출할것이라는 예측은 정해진 순서인것 같다. 하루라도 빨리 그들 일당을 지구상에서 없애 버려야 북한 국민들이 배곪아 죽는일이 없어질것이고, 주변국들의 진정어린 도움을 받게 될것이라고 믿어진다. 우리의 부모님들은 그러한 남북이 하나가 되는 통일 조국을 못보시고 세상을 하직하셨지만, 우리세대에서만은 꼭 이루어졌으면 하는 마음이다.

여기에 오늘자 LA Times와 NY Times 기사, 그리고 본국의 조선일보기사를 옮겨 싣는다.




http://www.latimes.com/news/nationworld/world/la-fg-korea-candidates-20100523,0,1108479.story

http://www.nytimes.com/2010/05/23/world/asia/23korea.html?hp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0/05/23/2010052300384.html


이번 천안함 사건에서 남한 정부는 많은 교훈을 얻었으리라 믿는다. 대통령의 강한 의자가 담긴 대국민 담화가 곧있을것이라고 하는데 기대가 크다. 햇볕정책의 허구를 이번에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모든 남한 국민들이 깊이 인식하고, '한손에 농기구를들고, 한손에는 북괴의 침략을 막기위해 총을 들고 열심히 일하여 결국 보리고개를 없앴던, 하면 된다는 그런 신념으로 다시한번 다같이 힘껏 결속하여, 이난국을 대통령을 중심으로,방어와 공격개념을 일상생활에서 일상화 시켰으면 하는 마음이다.

Monday, May 10, 2010

금강산 관광에 목을 메는 고국민들의 환상

금강산을 구경 못하면 사람행세를 못하는곳이 조국 대한민국인가?
처음부터 끝까지 금강산 관광에 대한 시설물은 전부, 대한민국에서 제공했다고 한다. 호텔, 휴계소, 식당, 심지어 출입국 관리사무소까지..... 북괴 김정일 집단에게 상납한 것이다. 그리고 정해진곳에서만 금강산 구경이 가능하고, 고의든 실수든 조금만 그선을 넘으면, 가차 없이 총으로 쏘아 사살시켜 버리는, 그런 살인마 집단에게 햇볕정책이라는 올가미를 자기국민들의 목에 꼼짝 못하게 씌워놓고, 아무도 안보는 뒤에서는, 국민의 혈세를 탕진하면서 비행기를 타고가서, 김정일 Regime에게 국민들 눈을 속여 가면서,조공을 그렇게도 많이 바치고,대한민국의 적(Enemy)은 북한이 아니라고 주적개념에서 지워버리기 까지 하면서,짝사랑을 무던히도 해온 결과가 오늘 우리의 부모님과 형제,자매, 그리고 피붙이가 처해 있는,조국 한반도의 현실이다. 아무힘도 없고 순진하기만 했던 관광객에게 마구잡이로 총을 쏘아 벌집을 만들더니, 이번에는 해양순찰중이던 해군함정을 폭파 시켜, 신성한 국방의무를 수행중이던 아들들을 수장 시키지를 않나... 생각할수록 기가막혀 숨이 막힐 지경일뿐이다. 그런데도, 김정일 Regime의 선박들은 여전히 자기집 안방 드나들듯 대한해협을 마음데로 아무런 제지없이 통과하고 있다. 북한의 어선들은 속초항에 입항하여 잡은 생선을 남쪽 상인들에게 팔고, 떠날때는 위문품까지 받아간다고 한다. 남북간에 맺어진 협정을 준수해야 하기 때문이라는 정부당국의 변명(?)이다. 왜 계속 당하면서, 왜 계속 협약을 짝사랑하듯히 혼자서 지키느라고 엄청남 희생을 감수해야 하는가? 내가 타고 다니는 차에, 내 가문을 이어갈 아들이 쉬고 있는 내집 안방에 무법침입하여 총으로 쏘아 죽이는등의 만행으로, 집안을 풍지박산내놓고 도망간 강도가, 이웃집에 사는 사람임을 알면서도 가만히 있을 바보가 누가 있겠는가? 아직도 김정일 Regime이 변할거라는 짝사상의 망상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국민들과 정부당국자들이 처음에는 밉더니 이제는 거꾸로 그들의 처지가 불쌍하여 측은해 지기까지 한다. 더가관인것은 이러한 시설을 김정일 Regime이 압수해 버렷다는 소식이다. 양측이 협약에 서명하고 다짐한 계약은 그들에게는 아무런 구속력이 없다는 것인가? 세상에 이런 논리가 김정일 집단 말고, 어디에 또 있을까? 악명높은 구쏘련의 스탈린도 이런 망난이짖을 했다는 소릴 들어본적이 없다. 더늦기전에 정신 바짝 차리고, 군사적 복수는 직접적으로 하기가 어려워 행동에 옮기기가 쉽지 않다해도, 최소한 그들의 선박들이 이시간에도 통과하는 대한해협만이라도 봉쇄하고, 속초항에 들어오는 그들의 상선들을 공해상에서 부터 접근 금지를 시켜서라도, 대한민국이 건재함을 보여 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한친지가 금강산 관광의 이모저모를 사진에 실어 보내온 내용을 여기에 옮겨 놓는다.

https://mail.google.com/mail/?hl=en&shva=1#inbox/128812d2b04b327a


더 늦기전에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아무도 팔벗어 부치고 도와줄 사람은 없다. 당사자인 대한민국의 정부와 국민들만이 해결할수 밖에 다른길은 절대로 없다. 혹시라도 이웃집의 동정이나 도움을 받을 생각은 추호도 생각지 말아야 한다. 이지구상에서, 한반도 말고 분단국가는 존재치 않는다.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양쪽에서 백만명의 젊은이들이 서로 대치하고 있는 현실이,그것도 같은 동족끼리,너무나 비참하지 않은가? 이런분위기속에서 금강산 구경을 못해서 안달을 떠는 대한민국 사람들의 마음은 도대체 어떻게 생겼을까? 내가족과 내자신은 무사하기에,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여기고 살아가는 자세가 문제인것을, 생활에서 보여주면서 반성했으면 하는 마음이다.

Saturday, May 08, 2010

Terra Cotta Conservation Trail Walk












거의 매주 산행을 하지만 오늘은 좀 다른때와 다르다. 한달에 한번씩 걷는 오늘의 식구는 같이 신앙생활을 하는 동료들이기 때문이다.
아직은 생업에 종사해야 하는 처지이기에 시간내기가 우리부부처럼 쉽지는 않은 그런 동료이자 인생후배들이 대부분이다. 밤사이 갑자기 기온이 뚝 떨어져서 영상 10 이하로 될것이고, 하루종일 비바람이 칠것이라고 TV는 계속 되풀이해서 알려주는데, 아마도 주말에 자연을 즐기러 밖에 나가는 상춘객(?)들의 안전을 생각해서 인것 같다고 생각하고 싶다. 밤사이 걱정스러움때문에 전화들이 오고가고 한것과는 달리, 모이는 장소인 McDonald's에는 우리 부부가 제일 늦게 도착할 정도로 한달에 한번씩 산행에서 보는 식구들이 먼저 도착하여 커피를 마시면서 밝은 표정으로 담소하는 모습이 정겨웠다. 바람은 차겁고, 빗방울도 걱정스러울정도로 내리고 있다. Silver Creek east를 걷기위해 Car Pool을 완료하고 달리는데, 비가 계속 내린다. 아차 그러고 보니 내일이 Mother's day인것이 생각났다. 거의 매년 이때가 되면 좋았던 날씨가 돌변하여, 순조롭게 시냇물 흘러가듯 하던 일상생활에 풍랑(?)을 일으키곤 하던 생각이 떠 오른다. 금년에도 예외는 아니구나 생각하면서, 차를 계속 몰았다. 자식들의 잘못이 어머니들의 가슴에 그렇게도 깊이 새겨져, 그한을, 이렇게 자연의 힘을 이용하여 삶을 살아가는 자식들에게 경종으로 보여 주는 것일까? 좀더 잘 해 드렸었으면..... 하는 회한이 뇌리를 스친다.
주차장에 도착했을때는 비가 더 세차게 오고, 찬바람이 앞을 가로막는것 같이 느껴진다. 강행을 하면서, 산행때는 항상 좋은 날씨만 계속되지는 않는다는것을 체험해 보는것도 괜찮을것으로 생각되였으나, 모처럼 나들이 겸 소풍나온 식구들에게는 무리일것으로 걱정이 앞선다. 감기라도 걸리면 당장에 이어지는 일상생활에 영향이 지대하기 때문이다. 항상 수고 하시는 몇분과 상의해서 산행을 접고, Bruce Trail이 통과하는Terra Cotta Conservation Area로 방향을 돌려 그곳에 있는 Shelter에서 점심을 먹고 다음 순서를 생각해 보기로 하고 다시 차를 달렸다. 아쉬운 마음이야 어찌 나만 있었겠는가? 모처럼만의 나들이에서 봄철의 상징인 산나물종류들도 Pick하고, 새순( Shoot)들이 돋아나는 숲속길을 걸어보고픈 기대를 접어야 했으니 말이다. Conservation Area의 입장료는 Adult가 $4.75, Child가 $2.75를 징수하고 있었으나, 우리는 무사 통과할수 있는 특권(?)이 있어, Green Card의 위력을 느낄수 있었다. Shelter는 비를 막아주기는 했지만, 찬바람은 막아주지 못해 한기(Chilly feeling)를 느끼는 속에서 이른 점심을 먹기에는 조심스러웠는데, 한대원이 먼저 조금이라도 걷고, 굳어진 몸을 풀은 다음에 점심을 먹는게 좋을것 같다고 제안한다. Main Trail을 걷기 보다는 Conservation안에 있는 Trail을 걷는게 더 편하고 간단할것 같아, Service Centre에 들려 안내서를 받기위해 들렸더니, 벽난로에는 불길이 활활 타오르고, 그앞에는 Table과 의자들이 잘 정돈되여 손님들을 기다고 있는 있는 모습이,그냥 주저않아 이야기나 하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게 한다. 친절하게, 일하는 아가씨가 팜플렛을 보여 주면서 설명해 준다. 숲속이라서 바람도, 빗방울도 우산처럼 위에서 버티고 서 있는 나무숲에 부딪혀 위력(?)을 잃고 Trail을 걷는 우리를 덜 괴롭히는것 같이 느껴진다. 우선 Terra cotta Circle Route를 선택했다. 아담한 호수를 중심으로 한바퀴 도는 코스였다. 호수의 물결도 많이 흔들거린다. 판초를 입은 대원, 우산을 쓴 대원, 그냥 등산복 차림으로 걷는 대원.... 각양 각색이다. 걷기에 편하도록, 하루를 즐기러 이곳에 들린 사람들에게 편하도록 Route는 잘 가꾸어져 있고, 곳곳에 Picnic Table도 눈에 띈다. 봄철이면 한번쯤은 관심을 갖게되는 '산마늘'도 눈에 띈다. 그러나 모두가 즐기는 Conservation Area안에서는 양심이 허락치 않아 그냥 지나쳤는데, 뒤따라 오던 몇명의 대원들이 몇뿌리를 채취했다고 했다. 비바람이 걷는데 방해를 한다는 느낌을 느끼지 못하고 계속 걷는다. 한곳에 몰입하면 그렇게 되는가 보다. 걷지 않고 서서 똑 같은 비바람을 맞아야 한다면 아마도 상당히 어려움을 느꼈을 것이다. 넓은 이곳 자연보호구역에는 다른 산책객들이 전연 보이지 않았다. 우리처럼 나와서 비바람속에서 자연의 묘미를 음미해볼만 할것 같지만, 요즘의 세대는 자연속에서 보다는 게임기에 더 삶의 시간을 활애 하는것을 본다. 특히 자라나는 아이들의 일상에서 자연이 멀어지는것 같다는 부질없는 삶의 환경을 탓(?)해 보기도 한다. 걸으면서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일상에서 일어나는 삶의 얘기들....이런 시간이 아니면 또 어디서 이런 내용들을 주고 받을수 있을까? 주일날 교회에서? 아니다. 가끔씩 Eating-out에서? 아니다. 자연속에 묻히면 나 자신도 모르게, 자연처럼 꾸밈없이 생긴데로 느낀데로 대화를 주고 받는, 사이에 벽을 두지 않고, 마음의 문이 스스럼없이 열리기 때문이다. 가끔씩은 웃음소리도 숲속을 울린다. 이곳에서 불과 50킬로쯤 북쪽에 있는 Barrie에는 때아닌 흰눈(Snow)내리고 있다고 한다. 같은 시간에 우리는 이렇게 산행에 동참한 동료들만이 느낄수 있는 가족의 따뜻함을 느끼면서 숲속을 걷고 있는데.....
여기서 위에 계시는 창조주의 위대함과 보호하심을 어렴푸시나마 감사한 마음으로 느낄수 있어 좋다. 모두가 같은 느낌이리라 믿어진다.
출발할때의 스산했던 느낌은 완전히 없어지고, 몸속에서는 열기가 품어 나온다. Shelter안에 있는 picnic Table에 모여 앉아 준비해온 점심을 맛보기 시작한다. 먹기전에 해오던 방법을 지양하고 오늘은 대원 누군가가 먼저 '날마다 우리에게.....'멜로디를 선창한다. 금방 합창이 되여 힘차게 울려 퍼진다. 위에서 내려다 보고 계실것으로 생각되는 창조주께서, '오늘은 색다른 방법으로 감사를 표하는구나...'라고 웃으실것 같이 느껴졌다. 그래서 일까? 맛이 더 있었다. 어느대원은 고구마를 준비해 오기도 했고, 어느대원은 산마늘 김치를 준비해 왔고, 또 어느 대원은 참나물 반찬, 그리고 햄버거를 정성스럽게 준비해와 서로 나눴다. 더 침이 넘어가게 한것은 '곡주'를 어느대원이 지극 정성으로 담가와 한잔씩 나눈게 해준 그맛이었다. '곡주'는 원래 큰 대접에 담아 새끼 손가락으로 휘휘 저어 벌컥 벌컥 마셔야 제멋이 나는데..... 그것은 현실을 망각한 배부른(?)상상이고, 버리지 않고 있었던 종이 커피컵을 이용하여 한잔씩 돌린다. 형식이 필요없고, 체면이 필요없고, 오직 있는 그대로의 가족적 분위기만 깊이,목을 통해 넘어가는 곡주의 맛과 어울려 몸속으로 스며든다. 그대원에게 빈말이라도 '고맙다'라는 인사를, 그 정취에 취해,하는것도 잊어 버리고 마시는데만 열중하였었다. 모두가 마음속에서, 준비해온 손길들에, 감사함을, 또 나누는 기쁨을, 또 끈끈한 정을 깊이 느꼈고 있었음을 표정과 눈빛에서 똑똑히 읽을수는 있었다. 이렇게 좋은 산책로를 Maintenance하고 휴식공간을 제공해 주는 Bruce Trail에 감사의 표시로 Donation을 하자고 제안 했더니 모두가 찬성이다. 즉석에서 그이상의 모금이 이루어졌다. 남은 기금은 계속 더 모아 가을철에 기회가 되면 온 대원들이 나들이 나가는데 비용으로 쓰겠다고, 항상 수고해 주시는 대원의 설명이 명퀘하다. 점심이 끝나니 따뜻한 커피의 향이 그리워 진다. 아까 들렸떤 휴계소에 들려 커피를 마실수 있는가? 물었더니 More than welcome 이라고 좋아한다.
커피pot에 있는것을 버리고 새로 만들어 주겠다고까지 한다. 맥도날드에 들려 마실려고 했던 계획을 바꾸어 모두가 이곳에 둥지를 틀었다. 벽난로는 여전히 불길을 훨훨 휘날리고 있고, 따뜻한 실내 온도가 포근함을 느끼게 해준다. 다시 얘기의 꽃들이 이곳 저곳에서 피어난다.
낯설은 얼굴이 끼어들지 않은 우리 동료들만이 Hall 전체를 전세낸듯이 Occupation 했으니....실컷 이바구들을 하십시요. 그것도 평소에는 잘 느낄수 없는 벽난로 앞에서.......흔히 각나라의 정상들이 회담을 할때 자주 사용하는 낱말이 생각 난다. '로변 정담' 이런 경우를 그렇게 표현하는것이 아닐까? 의미를 부여해 보고 싶다. 감사.( May 8th,2010) Bruce Trail Map 14번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