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March 30, 2010

Pamukkale를 떠나 Perge 유적과, Antalya를 향해






























March 10,2010.
하늘에는 약간의 구름만이 끼어 있어 어제 보다는 좋을것 같은 날씨다.
아예 Guide, Mustafa가 지금부터는 계속 달릴테니 잠자실분 자고, 편안한 자세로 차창밖의 경관을 즐기라고 농을 한다. 아침 8:30분경에 출발 하여 12:10분경에 Perge(페르게)에 도착했다. 이번 여행팀에서 정해준 나의 고유 번호는 14번, 즉 터키어로'온더트'인것이다. 며칠전 Guide가 앞에서 부터 터키어로 숫자를 가르쳐 주는 의미에서 그렇게 부쳐준 번호이다. 그가 뻐스안에서의 지루함을 달래주기 위해 터키에 대한 상식적인 얘기를 해주면서, 자기번호를 크게 외쳐 보라고 명령(?)했다. 모두가 잘했다. 나도 물론 잘 했다.
그가 설명한 터키의 학제는 조금 달랐다. 7세가 되면 터키국민은 의무적으로 8년제 Elementary School에 보내야 한다. 그다음에 4년제 중고등학교, 그리고 4년제 대학교에 가게 된다고 한다. 또한 터키는 대학교까지 전부 무상교육이라고 했다. 단 조건이 있단다. 중고등학교에는 입학 정원이 있단다. 시험에 합격해야 그혜택을 본다는 것이다. 다시 이곳에서 대학은 똑 같은 절차를 거쳐 입학하게 되는데, 그경쟁률이 치열하기 그지 없단다. 이틈을 타서 사립학교들이 세워지고 있다고 설명해준다. 터키인구 75백만명인데, 대학생수의 정원은 4십5만명이라니 입학경쟁율을 과히 짐작할수 있었다. 그러면서 자기는 터키의 수도 Ankara 대학을 졸업 했다고 한다. 그에 따른 페단도 없지 않아 있다고 설명해준다. 어느제도이고간에 좋은점이 있으면 꼭 반대급부가 있게 마련인것은 인지상정 아니겠는가. 터키의 국토가 이렇게 넓다는것을 또한번 뻐스를 달리면서 느낀다. 주위 경관도 아름답다. 잠깐 스쳐 지나는 시골동네의 똑 같은 모양의 회색뱇의 2층집들, 가끔씩 또 만나는 양떼들과 목동, 주위의 높고 낯은 산들은 여전히 큰나무가 없다. 산속의 한 호수가를 지날때는 마치 고국의 단양팔경을 달리는 기분이 나게 할정도로 경관이 수려 했다. 휴게소에 들려 점심을 했다. 이곳에서 터키 여인이 터키식의 Fry pan에 빵을 굽는 순간을 보았다. 마치 옛날 시골에서 어머님들이 가마솥 뚜껑을 꺼꾸로 해놓고 전을 부치던 기억이 되살아 나게 해줬다.
지중해의 중앙지점에 있는 해안도시 Antalya 지나 조금더 달리니 오늘의 목적지 Perge에 도착했다. 이곳은 지금은 유적지로서의 명맥을 유지할뿐 도시역활은 인근의 Antalya에게 넘져준지 오래라고 한다.
이곳에서 보는 로마제국의 도시는 웅장 했지만, 도시 형태는, 다른 로마시대에 건설됐던 도시들과 비슷하기에 조금은 Tedious해 질려고 한다. 먼저 3개의 도시출입문이 있었던 페허가 보인다. 도시안에는 12,000명을 수용할수 있었다는 Chariot racing Stadium이 눈에 먼저 띈다. 이도시는 BC 2-3세기전에 건축돼기 시작했다고 한다. 또한 전에는 큰 항구로 역활을 했었다고 한다. AD 1세기,2세기,7세기,11세기에 강한 지진을 만나 도시 전체가 페허가 됐다고 설명해 준다.
도시입구에 있는 두개의 높은 타워사이에 도시에 들어가는 Main Gates가 있었는데, 그중의 하나는 현재 복원중에 있었다. 원래 이문들은 군대작전을 목적으로 세워졌다고 하는데 만약에 여기서 적의 공격을 막지 못하면 도시안에 양길쪽에 쌓아놓은 벽뒤에 숨어 있던 병사들이 뛰쳐나와 2차 방어를 하도록 설게됐었단다.
더 깊이 도시안으로 중앙로를 통해 들어가면 길 양쪽에 오늘날의 Side Walk처럼 또 다른 길이 있었는데 이곳에서 일반인들의 시장이 있었던 곳이라고 한다. 조금더 올라가면 상당히 넓은 광장이 있었는데, 이곳에서는 정기적으로 모든 상인들이 모여 거래를 했던 곳이라고 한다. 이도시의 특징은 맨윗쪽에 있는 도시성벽밖에서 부터 수로를 이용하여 물을 도시 안으로 끌어 들여 이물이 도시 중앙로 옆에 별도로 만들어 놓은 수로(Canal)을 통해 도시 전체에 공급됐었다고 하는데, 이점이 앞서 우리가 보았던 옛날 Ephisus 도시에서 겪었던 물로인한 고통을 해결 했었다고 한다. 현재 이도시의 폐허를 개발한 부부은 겨우 5%에 불과 하다고 설명해 준다. 개발(Excavation)에는 많은 자금이 필요한데, 관건은 거기에 있다고 했다.
페허속의 도시를 정신없이 돌아보고 있는데 갑자기 양한마리가 우리가 걷고 있는 길위에 나타난다. 모두가 그곳에 시선을 집중하고 있는데 뒤따라 여인이 우리앞의 양을 잡으로 온다. 우리는 유적지라고 비행기를 몇시간씩 타고 와서 구경하는데, 이러한 귀중한곳을 주민들은 무관심속에 자기네가 기르는 짐승들과 함께 수시로 드나 들면서 페허속에서 양떼들에게 풀을 뜯겨 살을 찌우는것이 그들에게는 더 큰 이익이 있는 것이다. 누구의 잘못이라고 생각할 겨를도 없이, 다 같이 양와 그여인과 어울려 사진을 촬영했다. 순진한건지? 양에게 풀을 주기위해 유적으로 보호받고 있는 페허속으로 뛰어드는 무지함인지? 당국의 근무태만인지? 내가 걱정할일은 아닌것 같다.

Antalya에 있는 5 star의 Sheraton Hotel에 다른날과는 좀 다르게 오후 5시조금전에 도착했다. 같은 5스타 호텔들인데도 이곳이 지금까지 들렸던 호텔중에서 시설이 제일 좋은것 같이 느껴졌다.
Guide가 설명해준데로, 호텔에서 걸어서 약 10여분 거리에 있는 큰 shopping Mall에 Lunar와 같이 구경나갔다. 다른 팀원들은 우리부부처럼 많이 여유시간을 활용하는것 같지는 않았다. Mall은 무척크고 현대식 건물이었다. 각상점들은 Display는 내가 살고 있는 토론토의 Shopping Mall과 하나도 다른게 없었다.
규모도 엄청나게 컸다. Eye Shopping을 신나게 했다. 수퍼마켙 'Migro'에 들려 스낵을 좀 사기도 했다. 지중해 해변도시라서 기후가 다른지역과 달리 무척 Mild해서 입은 옷을 하나씩, 그리고 또 하나씩 벗어야 했다. 수퍼마켙에서 Guide를 만났다. 여기서 만나니 또 반갑다 불과 몇분전에 호텔에서 헤여졌었는데... 그도 남은 시간을 우리처럼 즐기기위해 이곳에 온것 같았다. 호텔발코니에서 내려다본 지중해변의 경관은 큐바 바라데로 해변가에서, 남미 리오에서 본 해변가에 못지 않게 아름다웠다.
밤에 꿈속에서 돌아가신 박대통령을 뵈었다. 평소 존경하고 있어서 였을까? 은퇴하고 시골어느 동네의 조그만 집에 내려와서 동네 주민들과 인사하는 그대열에 끼어서 나도 그분과 악수를 하면서 '이제는 여생을 편히 쉬십시요'라고 인사말을 건넸는데, 그분은 아무 대꾸도 안하고 항상 그랬던것 처럼 입가와 눈가에 미소를 짖는 것으로 대신하셨다. 왜 여행지에서 그분을 만나게 됐을까? 기분은 좋았다. 사진을 통해서는 그분을 많이 뵈었지만 직접 곁에서 그분을 뵌것은 오래전 고국에서 공무원 할때, CPX 작전때문에 밤 야근을 지하 벙커에서 할때 약간명의 참모만을 대동하고 그곳에 불시 들렸을때 잠깐 뵌 기억이 있다. 눈을 떠 보니 한밤중인 오전 1시20분 경이었다.

Monday, March 29, 2010

휴양지 Kusadasi와 석회암 고드름이 덮힌 Pamukkale를 향해..























March 9th,2010.

아침을 즐기고 다시 뻐스에 오른다. 날씨가 어제보다는 좋은것 같다. Guide의 설명이 시작된다.
그의 설명에 의하면 이곳 Kusadasi는 여름철 휴양지로 터키를 찾는 많은 여행객들에게 알려지고 있는데 특히 러시아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져 요즘은 매년 여름이면 돈많은 러시아인들이 가족들과 함께 날아와 약 3주내지 한달간 머물다 가는 곳으로 정평이 나있어, 밀려드는 여행객들을 맞이하기위해 많은 호텔들이 현재 건축중에 있어, 그증거로 뻐스 차창 밖으로도 큰 건물이 건설되고 있어 이를 증명이라도 하는듯 한다. 결국 이다음에 다시 이곳에 여행을 오게 된다면, 여행경비부담이 더 늘어날 조짐이 높게 일고 있다는면을 나는 볼수 있었다. 이도시에서 하룻밤 자고, 지금은 이도시를 통과 하면서 경관을 즐기는 나는, 인기가 높아가고 있다는 이도시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뻐스는 시내를 빠져나와 고속도로를 달린다. Guide가 가죽옷을 전문으로 생산하는 공장에 들러 아름다운 미녀 모델들이 Fashion Show를 하는것을 구경하러 간다고 설명해준다. 고속도로에서 벗어나 잠깐 이름모를 동네에 들어가서 어느 빌딩앞의 넓은 공간에 뻐스가 섰다. 직원의 안내를 받아 안으로 들어가니 먼저 터키식 Tea를 포함한 음료수를 제공한다. 넓은 Hall안에 stage가 있고, 빙둘러 의자들이 배치되여 있는곳에 우리 일행은 자리를 잡고, 제공된 음료수를 마셨다. 조명 라이트가 켜지더니 정말로 늘씬한 터키의 미녀들이 가죽옷 제품들을 입고 요염한 자태로 폼을 잡고 이리조리 빙빙 돌면서 Show는 계속 이어진다. 남자모델도 등장하지만 별로 인기가 없어 보인다. 갑자기 모델이 나에게 다가오더니 다짜고짜 내손을 끌고 무대뒤의 옷갈아 입는곳으로 간다. 뒤에서 보조하고 있던 사내가 잠바하나를 고르더니 나에게 입히고, 다시 여자모델이 내손을 잡고 밖으로 Show를 하러 가자고 손짖을 한다. 이것도 하나의 Fun이니까 뭐가 어렵겠는가? 같이 웃으면서 손잡고 걸어 나가자 이를본 우리 일행들이 아우성을 치면서 손벽을 쳐댄다. 내가 입고 있던옷위에 그냥 걸쳤으니 그폼이 오죽 웃기는 모습이었겠는가? 나도 그들의 성원에 손짖으로 응답하면서 마치 내가 진짜모델이라도 된양 발걸음을 옮기면서 모델 시늉을 했다. 두번을 돌리더니 세번째에는 두명의 미녀(같은 여행동료들) 모델이 내양쪽에 붙어서 손을 잡고 돌기시작한다. 관객(?)들에게 인사도 하고..... 여행의 맛이 났다. 세상에 여기가 아니였으면 내가 어떻게 이런 Podium에 서서 멋진 나의 모습을 보여줄수 있단 말인가? Lunar도 신나게 셧터를 눌러댄다. Show가 끝난후, 나는 기분이 좋아 Lunar에게 어린 Sheep Skin으로 만든 고급자켓을 하나 선물했다. 나도 기분좋고, 그녀도 기분이 좋아하는것 같아 가슴이 뿌듯했다. 이런기회가 언제 또 오겠는가를 생각해 보면서.... 앞으로는 기회가 있을때마다 주저없이 Lunar가 좋아한다면 계속할것을 다짐했다.
터키의 철도망에 대해 Guide가 고충을 설명해 주었다. 처음 철도는 1880년대의 Ottoman Empire시대에 불란서 파리에서 이곳 터키의 당시 수도였던 Istanbul까지 건설됐었단다. 그후 1915년에서 1925년 사이, 터키공화국의 대통령 Artaturk이 전국에 약 5,000 마일의 철로를 신설했고, 지금은 전체 7,000마일의 철도망을 보유하고 있는데, 문제는 거의 모두가 단선이기 때문에 열차가 속도를 낼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말이 나는 금방 이해가 됐다. 바로 직업의 근성은 어쩔수 없나보다. 그래서 이를 보충하기위한 방법으로 뻐스로선이 전국적으로 많이 발달돼 있다는 걸로 이야기를 마친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했던가, 뻐스는 Aydin을 지나 Pamukkale에 가까이 있는 Denizle로 빠져 한 Shopping Mall에서 우리를 식당으로 안내한다.
한참을 달리던 뻐쓰가 좁은길로 들어서 꾸불꾸불한 길을 돌고 돌아 가는데, 왼쪽 창문을 통해 힌 석회석으로 덮힌 계곡이 눈에 들어온다. 무척 넓어 보인다. 뻐스는 정지하지 않고 계속 언덕길을 돌고 돌아 올라가더니 윗쪽에 있는 넓은 정류장에서 우리를 내려 놓았다. 아까 밑에서 본것은 여기와 비교하면 너무나 초라한 것으로 여겨졌다. 벌써 많은 관광객들이 Main Entrance를 통해 Pamukkale( Cotton Castle)로 들어가 구경에 여념이 없다. 우리도 안으로 들어갔다. 오기전에 자료를 통해 본 이미지와는 또다르게 굉장한 규모다. 원래는 지하에서 솟아나온 미네랄수가 흘러내려 오늘 우리가 보는 흰색갈의 Cascade를 형성했다고 한다. 그옆으로는 거대한 흰색의 Gleaming ledge(Travertines)들이 끝도 없이 이어져,오랫동안 터키의 마스코트 또는 이미지로 묘사 됐었다고 설명해 준다. 주위 환경의 변화에 따라, 얼마전까지만 해도 따듯한 미네랄수에서 온천욕을 하곤했었던 화려한 과거는 역사속으로 묻히고, 지금은 거의 지하수가 나오지 않고, 오직 물줄기 하나만이 인공으로 만들어 놓은것으로 보이는 수로를 통해 조금씩 흐르고 있었다. 표면의 파괴를 방지하기위해 신발을 벗고 들어가도록 통제하고 있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모습을 사진한장에 담는다는것은 무리일수 밖에 없다고 생각됐다. 옛날 어렸을적 시골에서 보았던 계단식 논을 연상케 하는 모습으로 형성된 하얀색갈의 넓은 온천장의 마른 바닥은 장관이다. 많은 관광객속에 묻혀 우리 부부를 비롯한 우리 일행도 신발과 양말을 벗고, 졸졸 흐르는 수로속에 발을 담궜다. 미지근한 느낌이다. 온천수가 펑펑 쏟아져 나올때는 지금은 말라있는 계단식 노상온천에서 몸을 담궜을 모습을 상상하면서.... 오랜 시간이 흐른후에는 그나마 오늘 우리가 발담그고 있는 이수로 마져도 말라 버릴지 누가 장담 하겠는가? 석회석 바닥(Mineral forests)이 미끄러워 절대로 벼랑근처에는 접근못하도록 통제하고 있었다. 또한 당시에는 여기의 온천수를 이용하여 양털로 만든 옷을 염색했다고 Guide는 설명해 준다.
감사한 마음으로 발을 담그고 Lunar와 눈이 마주치자 삶의 고달펐던 지난날들이 기억에서 사라져 버린다. 대신 미소만이 흘러 나온다. 여행 잘왔다는 생각이 확고해진다.
이 온천장뒤로 화려하게 형성되였던 도시의 페허가 우리를 부르고 있어 그곳으로 발길을 옮겼다.
이 Spa of Hierapols(도시)는 BC200년경에 Bergamo의 한 통치자가(Attalids왕조) 건설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후 AD100년경에 당시 Roman Empire가 이곳을 점령하여 크게 발전시켜,Antolians,Greeks,Macedonians,Romans 그리고 유대인들이 같이 어울려 살아 거대한 코스모폴리탄 도시로 번성 했었다고 한다. 일설에 의하면 당시 로마제국의 왕이 자기의 아내를 위해 온천수가 철철 흐르는 현재의 이곳에 Spa Resort를 건설했다고 전해 진다. 왕족이 주로 이용했던 온천장, 일반인들이 이용했던 온천장, 시장(Agora) 그리고 그뒤의 언덕에 있었던 화려했던 야외 극장과 넓은 거리가 있었던 흔적이 세월의 무상함을 실감케 해준다. 그외에 이곳에는 사원들(Temples)과 그리스형 건축물도 많았었다고 전해진다. 왜 Pamukkale라고 명명 되여졌는지도 어렴푸시 이해를 할것 같다. 그옛날에는 온천수가 철철 흐르는 흰색의 석회석 바닥이 솜처럼 부드러웠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크리스천들의 전해지는 말에 의하면, 12제자중 한명인 Philip 사도가 기독교를 전파 하다가 이곳에서 주후 87년에 Domitian에 의해 십자가에 못박혀 처형 당했다고 한다. 페허된 흔적에서 기독교의 성당(Cathedral),세례하던곳, 교회터 그리고 빌립이 순교당했던 곳이 있었다고 하나, 설명만으로 만족해야했다.
호텔의 야외 Thermal온천장에서 우리는 Bath를 했다. 물냄새가 유황성분이 강하게 느껴진다. 그밑으로는 실내 온천장이 또 있다. 황갈색의 Cascade가 마치 고드름 처럼 주렁주렁 매달려 있어 손으로 만져 보았더니 돌덩이이다. 지하동굴에 들어가 보면 종류석이라는 돌고드름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것과 같은 맥락인것 같다. 다만 이곳은 그위로 온천수가 철철 넘쳐 흐른다는점이 다를 뿐이다. 우리가 몸담고 있는 온천장 바닥은 진흙을 밟는 기분이다. 발을 들어올려 확인해 보았더니 발에는 아무것도 묻어있지 않고 깨끗하다.
맨위에 있는 탕의 물온도는 무척 뜨겁고, 다시 그아래 물은 조금 덜 뜨겁고, 맨밑의 물은 그져 수영하기에 적당한 온도을 유지하고 있었다. 뻐스에 시달리고, Pamukkale와 그뒤의 페허된 도시를 보느라 바삐 움직였던 내 몸둥이에 쌓인 피로가 말끔히 가시는것 같다. 내일의 일정은 더 쉽게 움직이게 될것 같은 기분이다.




http://www.youtube.com/watch?v=SL04mB5yNv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