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July 11, 2009

다시 걸어본 Forks of the Credit Hiking.
















일기 예보가 심상치 않았지만, 예정데로 아침새벽의 Fresh Air 을 마시면서, 한가한 고속도로를 달려 집합장소에 닿았다.
몇분의 부지런한 회원분들이 벌써 도착하여 따뜻한 Morning Coffee을 Tim Horton에서 마시고 있는 모습이 여유롭게 보였다.
회원들이 Car Pool을 하여 산행 지점인 Forks of the Credit 구간중에 Provincial Park 반대편에서 걷기위해, 길갓길에 차들을 파킹하고
42명의 회원들이 힘찬 발걸음을 내딛을 준비를 시작했다.
걱정했던데로 하늘은 까맣게 금방이라도 뭔가 퍼부을것 같은 분위기 이다. 한여름의 산행길은 우선 모기와의 전쟁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나도 모기약을 준비 해 갔지만, 옆에 있던 어느 회원이 재빠르게 자신도 뿌리고, 옆의 회원들에게 Spray해 주면서, 나에게도 해 준다. 고맙다.
차에 항상 비치해 두었던 우산을 꺼내 Back Pack 속에 집어 넣었다. 혹시를 대비하기위해서이다. 그속에는 아내가 아침 일찍 일어나 정성스레 만들어준 김밥점심과 물 한병 그리고 또 비상약품과 지도가 들어 있고, 그 한곁에 우산도 같이 집어 넣었다.
숲속은 빽빽히 들어선 나무들과 그 잎으로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컴컴하다. 긴 행열이 보기좋다. 항상 해온것 처럼, 걸으면서, 삼삼오오 구룹을 지어, 지난 일주일 동안의 살아온 삶의 얘기들을 나무면서, 한발씩 열심히 떼고 있는 광경이 보기 좋다. 나는 Mr. Walter와 일본인 부부 Tanaka씨와 같이 걷기 시작했지만, 어느새 일본인 부부는 우리 뒤로 쳐지고, Walter와 나만 다른 선두구룹에 끼여 걷는다.
시원함을 더 느끼기 위해 밀집모자를 쓰고 걷는 그사이로 빗방울이 스며들어 살갖에 부딪치는 촉감이 느껴지지 시작한다. 기어코 비가 내리기 시작하는 것이다. 조금 내리다 그치겠지 하면서, 무시하고 걷는데, 내 예상은 빗나가기 시작했다. 다른 회원들이 항상 준비하고 있었던 폰초(비옷)을 꺼내 입기 시작한다. 그동안 산행에서 얻은 경험임을 금방 느낄수 있었는데, 모두가 백팩에서 꺼내 순간적으로 비옷으로 전체를 덮고, 계속 걷기를 계속한다. 나도 더이상은 버티는것이 무의미 함을 느껴, 백팩속에 들어 있었던 우산을 꺼내 비를 피하기 시작했다. 까맣게 뒤덮힌 하늘과, 그렇치 않아도 빽빽한 나무숲으로 컴컴한 산행길이 더 어두워져, 사진을 찍어도 쌔까맣게만 찍힌다. 이번에는 산행 시작하기전부터 카메라를 챙겼었다. 지난번에 일으켰던 실수를 다시 범하지 않기위해서 였다. 지난번에는 카메라를 차에 두고 내려, 사진없는 산행을 하고 말았던 것이, 못내 후회가 되였었다. 사진의 플래쉬를 터트려 찍어 보지만, 앞만 훤할뿐, 전체 내가 원하는 공간을 훤하게 비춰주지 못한다. 차라리 플래쉬라이트를 Off하고 찍는게 전체적인면에서 균형이 잡히는것 같아 그렇게 계속 필요시마다 셧터를 스냅으로 눌어 두었다.
비는 더 세차게 내린다. 우산을 받쳤다고는 하지만, 온몸이 젖어 들기 시작하면서, 끈적 거리고 바지자락은 물속에 잠긴 헝겊처럼 질척 거린다. 방수가 잘 된다고 여겼던 등산화도 바지자락의 질척거림에 조금찍 젖어 들기 시작하더니, 신발속이 스폰지가 물을 빨아 들여 부풀어 오르는것 처럼 물기를 흡수하여 질척거림을 느낄수 있었다. 오늘 걷는 이 Trail을 지난 겨울, 폭설이 내린후 우리 대원들이 걸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때 무척 고생을 해서 더 기억이 새롭게 떠오르는것 같다. 눈이 무릎까지 빠지는데, 나로서는 그렇게 많은 폭설속을 걸어 보기는 처음이었었는데, 선두구룹에 끼어, 반환점까지는 잘 갔었다. 점심을 그곳에서 하고, 다시 눈속길을 걸어 되돌아 오기 시작하는데, 아뿔사 한걸음 옮길때마다, 그발길이 천근 만근이 되는 느낌이 온몸에 젖어 들기 시작했었다. 다행히 Short Cut(지름길 즉 Side Trail)이 있어, 리더되시는분이 힘들어 하시는 회원은 그 지름길을 이용하는게 좋을것 같다는 권고를 해 주어서 나도 그길을 택해 다른 회원들과 함께 걷기 시작했었고, 또 다른 선두 구룹은 오던 길을 되돌아가는 Full Course를 걸었던 것이다. 나도 어쩔수 없이 혼자 뒤 떨어져 겨우 한걸음 한걸음씩 옮기면서, 언덕을 오르는데, 정말로 열발자국을 계속해서 걷기가 힘들었었던 기억이 새롭게 머리를 스친다. 그때 포기하고, 눈위에 주져 앉았더라면, 어떤 결과가 벌어졌었을까? 같이 걸었던 회원들에게 얼마나 큰 부담을 주었었을까? 헬기가 날아오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을것 같은 상상도 해 본다. 더 이상의 깊은 상상을 하기가 싫어진다. 겨우 발길을 옮겨 주차장에 도착했을때는 내가 제일 늦은 구룹중의 하나가 됨을 느꼈었다.
먼저 왔거나, 중간에서 회군한 대원들이 거의 15분 정도를 기다렸었다고 말할때는 미안하고, 또 산행을 오래 했었다는 나의 이력에 챙피함을 느꼈었던 기억이 또 겹친다. 그후에 들은 애기로는 Mr. Walter가 그날 길을 잃어 혼자서 몇시간 눈속길을 헤매, 리더를 포함한 여러회원들이 같이 고생을 많이 했었다고 했다. 그말에 조금은 위안이 되기도 했던 기억이 있지만, 아무튼 기억에 오래 남을것 같다. 그런데 오늘은 그반대로 Shower가 아닌 장마비처럼 계속 내리는 산행길을 걷는 것이다. 그래도 발걸음은 아무런 부담이 없다. 그대로 그속도를 유지 하면서
반환점에 도착하니, 다행히도 비가 걷힌다. 점심을 먹으라는 하늘의 신호인가? 다행이다. 아내가 준비해준 김밥점심을 꺼내 한조각을 입에 넣는다. 맛이 고소하다. 자세히 보니, 어제 Brighton 카테지에서 떠나올때, 아내가 챙겨온 아보카도를 잘라 넣어준것을 알수 있었다. 고맙다. 그녀도 현재 고생하고 있는 알레지만 아니라면 같이 오늘 산행에 동참했을텐데..... 그녀에게 미안하다.
되돌아 올때는 지난번 겨울에 겪었던, 똑같은 지름길을 원하는 회원들은 이용하라는 리더의 어드바이스가 있었다. 약 절반 정도가 그길을 택한다. 나는 왔던 길을 되돌아 오는 구룹에 끼어 다시 걷기 시작한다. 아무런 불편함이, 몸의 컨디션이 이상이 없기에..... 그속도 그대로 유지하면서, 가끔씩은 앞서 걷던 대원들을 제끼고, Mr Walter와 같이 계속 발길을 옮긴다. 옷은 이미 젖어 있는데, 그위에 땀까지 스며들어 별로 기분이 그렇다. 걷는데는 크게 불편이 없기에 비온후에 상쾌한 숲속의 공기를 더 크게 들이쉬면서 때로는 가파른 언덕길을, 때로는 그반대로 내리막길을..... 뭔가를 극복했다는 그 성취감....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로 그희열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만족한다. 트레일 왼쪽으로 둘러 쳐진 철조망과 철조망을 지탱해주는 기둥은 여전히 그대로 인데, 지난 겨울에는 기둥위에 눈이 약 15쎈티미터정도가 수북히 쌓여 고고함을 보여 주었었는데, 오늘은 그기둥만큼이다 크게 자란 풀들이 대신 다른 모습으로 우리 산행을 지켜주는것 같다. 불과 몇개월 사이에 이렇게 자연은 윤회를 하면서, 우리 인간들에게 적절하게 이용할수 있도록 변화를 주고 있음을 또 본다.
약 16 킬로를, 비속에서 걸은 것이다. 무사히 산행을 마치게 됨을 감사하지 않을수 없다. 좋은 자연을 주신 그분께 감사 하지 않을수 없다.
내가 속해 있는 또 다른 산행팀도 이렇게 왕성한 산행을 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마음한구석에 응집된다. 그분들도 잘 했겠지?
몸에 걸쳤던 젖은 모든것을 다 벗어 버리고, 샤워를 하는 그맛도 일품이다. 모든게 새로워지게 하는 기분을 주고도 남는다. 감사.

Sunday, June 28, 2009

Albion Hills Trail Walk(Glen Haffy Conservation Area)

어제도 무척 더웠는데, 오늘도 27도 이상된다고 뉴스 미디어에서는 Smog Alert도 발표 하는것을 보면서 걱정을 좀 했었다.
모이는 장소에 도착했을때는 벌써 상당수의 회원들이 모여, 이미 Tim Horton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반가운 얼굴들이다.
같이 Car Pool를 해 오던 Walter와 Tanaka씨 부부도 얼굴이 보인다.
Trail Walk은 나무숲으로 가리워져 생각보다는 무덥지 않았고, 특히 미풍이 계속 불어와 걷기에는 정말로 안성마춤이었다.
회원들 모두가 나처럼 더워서 힘들것을 걱정 했었던것 같았는데, 모두들 미풍이 불어줌을 고마워 하는 모습들이다. 오늘은 행열이 다른주에 비해 길지는 않았다. 왜냐면은 회원들의 약 절반이 지금 록키산맥으로 출정하여 2주째 그곳을 걷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도 지금쯤 열심히 걷고 있을것으로 상상이 되기도 했다. 메인 트레일에서 벗어나, 오늘은 Palgrave Side Trail을 Walk할것이라고 산행 시작전 Leader분이 설명해 주신데로 메인에서 Side Trail을 걷고 있는 것이다. 멀리서 기계소리가 들린다. 걸을수록 가까워 옴을 느끼면서 고개를 들어 앞을 보았을때, 한 백인 초로의 영감님이 평지로 뻗친 Trail양쪽으로 허리가 닿을 정도로 길게 자란 풀들을 땀을 뻘뻘 흘리면서 자르고 있는 모습이 정답게 보였다.
지나치면서 고맙습니다 라고 인사 하면서, 당신이 이렇게 걷기 좋게 풀을 깍아 주니, 당신이야 말로 우리산행꾼들을 즐겁게 해주는 좋은 선행자라고 추겨주자, Bruce Trail 회원인데, 자원 봉사 하기로 마음 먹고 하기에 기분이 아주 좋다고 환히 웃는다. 정말로 멋져 보였다.
아마도 아침 일찍부터 시작했나 보다. 계속전진 하는데, 그가 자른 풀들이 산행길 양쪽에 계속적으로 널려 있음을 보면서 그렇게 느꼈다.
중간에 물이 흐르는 Swamp를 지나는데 불편이 없도록 군데 군데 작은 Bridges 들이 설치되여 있어, 그위로 걸으니 편하기 그지 없다. 자원봉사를 한 회원들에 의해 건설됐음을 고마워 하지 않을수 없다. Donation 을 더 늘여야 겠다고 생각을 안할수 없게 됐다.
오늘 우리가 걷는 Side Trail 은 Oak Ridge Moraine Trail 구간의 일부로 그전체 길이는 약 200 KM라고 하는데, 지층이 옛날 빙하시대에 녹아서 흘러 내리던 물질들이 흘러 가면서 지층을 형성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어, 특히 이지역의 개발을, 정부에서는 고시하여, 막고 있는것으로 나는 알고 있는 구간이기도 한다. 이구간은 전에는 MainTrail 구간이었었는데, 몇년전부터 Route가 바뀌어 지금은 Side Trail로 등산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구간이 되였다. 숲이 우거진 등성이와 이를 지나면 평지가 계속되곤 하는 이지역은 인공식수 했음을 주위숲을 보면서 알게 된다.
그래서인지, 소나무 숲이 유난히 많았다. 거기에 향나무숲도 형성되여있어 여름철 산림욕을 하기에 아주 좋은 구간이다. 이곳에서 Under wear하나만 입고 심호흡을 하면서 약 30분정도 체조를 하게되면, 겨울철에 흔히 맞이 하는 불청객, 감기에 잘 걸리지 않는다는 민간요법을 알고 있기에, 실제로 체험에서 또 느끼고 있기에 더욱 사랑스럽다. 산행이 끝났을때는 오후 1시가 조금 지났다. 그러니까 약 4시간을 걸은 셈이다. 미풍이 우리의 산행을 쉽게 해줘서 였을까? 금방 걸은것 같이 느꼈는데, 그사이 그렇게 긴 시간이 흘러 갔다. 아니 그만큼 많이 걸은 것이다. 금년 겨울의 감기는 무사히 우리 회원들을 피해 갔으면 하는 바램도 실어 본다. 기온이 높았는데도 생각보다 땀이 덜 흘렸고, 모기와의 전쟁도 지난번 보다 덜했다. 미풍이 여러모로 많이 도운 오늘의 산행이었다. 한가지 아쉬웟던점은, 꼭 필수 휴대품인 카메라를 car pool하는통에 차에 놓고 다른차로 옮겨 타느라 휴대하지 못해 사진을 전연 찍을수 없어 그점이 무척 아쉽다. Trail 양옆을 훤하게 풀을 깍으면서 환하게 웃던 그분의 모습도 담을 수 없었고, 회원들의 걷는 모습도 담을수 없었고, 향나무숲을 지나치면서 심호흡을 하는 모습도 담을수 없었고 걸으면서 담소하는 모습도 모두 놓쳤다. 머리속에서만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 그점이 아쉽다. 시간의 흐름에 건망증이 심해지는 이치를 겸허이 받아들이고, 항상 마음속에 다짐 하면서, 기억을 하도록 노력하던가 아니면 노트하는 습관을 길러 오늘같은 실수(?)를 줄여야 한다.
Bruce Trail Map 17 번을 보면 오늘의 구간을 쉽게 알아 볼수 있다. 다음주를 기약 하면서..... 감사.

Friday, June 26, 2009

조선왕릉 세계문화유산 등재확정-조상들의 자랑스런 유산.











이조시대의 왕릉이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여 유네스코 지정 세계 문화 유산에 등록 확정 됐다고 동아일보가 머리기사로 올린것을
여기에 옮겨 보았다. 세계 여러나라 특히 이집트같은 곳을 방문해서 몇천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는 바로오 왕가의 릉도 산속의 지하에 굴을 파고 모시고 있는 것을 보긴 했으나 우리나라 처럼 큰 봉분을 만들어 특히하게 보존 해온 점이 유산 지정이 돼게 한 요인이 되지 않았겠는가 나름데로 생각해 보았다. 이보다 더 큰 규모의 큰 봉분이 있는 릉은 옛날 중국의 진시황제를 모신 릉일것으로 생각된다. 얼마나 컷던지, 후세 사람들이 잘생긴 야산으로 여기고 봉우리 정상에 정자를 짖고, 즐겨오다가 최근 약 60년 전에야 그것이 진시황제의 릉인것을 우연히 인근에서 농사짖던 한농부에 의해 발견된 예는 있었다. 어쨋던 후세를 살아가는 후손의 입장에서 경사로 받아들여 더 잘 보존 돼였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아래는 동아일보 기사중 일부 이다.

조선왕릉 40기가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의 반열에 올랐다.

유네스코는 27일 스페인 세비야에서 열린 제33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한국의 조선왕릉 40기를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유네스코의 결정은 500년 동안 지속된 왕조의 무덤들이 고스란히 보존된 조선왕릉의 가치를 인정한 것이다.

조선왕릉은 경기 일대와 강원 영월군에 조선시대 27대 왕과 왕비, 사후에 추존된 왕과 왕비의 능 40기가 남아 있으며 북한 개성에 있는 제릉(태조의 비 신의왕후의 능)과 후릉(정종과 정안왕후의 능)은 세계문화유산 등재 신청 대상에서 제외됐다.

조선왕릉은 단지 왕의 주검이 묻힌 무덤이 아니라 조선의 역사, 건축양식, 미의식, 생태관, 철학이 담긴 문화의 결정체다.

▶ 동아일보 ‘숨쉬는 조선왕릉’ 시리즈 보기

산줄기의 풍수 명당에 자리잡은 조선왕릉은 자연 지형을 최대한 활용해 인공적 요소가 거의 보이지 않는 경관 때문에 '신(神)의 정원'이라 불린다. 유교 국가인 조선 왕들의 무덤이지만 왕릉 주변의 원찰(왕의 극락왕생을 비는 사찰), 봉분 주변 조각에 불교와 도교, 토착신앙의 철학과 세계관이 어우러졌다.

조선왕릉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는 지난달 세계 문화재 보존을 위한 비정부기구인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가 유네스코에 제출한 평가보고서에 조선왕릉을 최고 등급인 '등재 권고'로 평가하면서 유력시됐다. 지난해 9월 한국을 찾은 ICOMOS 실사단은 성종 능 선릉(서울 강남구 삼성동)과 중종 능 정릉(삼성동)을 둘러본 뒤 "도심 속에서 개발 압력을 견디고 푸른 녹지가 이렇게 잘 남아 있는 것만으로 세계문화유산 가치가 충분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수도권 일대 조선왕릉의 녹지를 모두 합친 면적은 1935만3067㎡에 이른다.

유네스코는 세계문화유산의 복원, 보존 관리 의지를 세계유산 지위의 유지에 중요한 요소로 평가하고 있어 도시화 과정에서 훼손된 조선왕릉의 원형 복원이 새로운 과제로 떠올랐다.

Tuesday, June 23, 2009

<6.25 특집 화보>-와싱턴 문서보관소 발표.























고국의 연합뉴스에서 6/25 59주년을 맞이 하여, 와싱턴의 문서 보관소에서 한국전 당시 촬영됐으나, 그동안 발표 돼지 않았던 사진들을 인터넷에 실은것을, 그중 몇장을 옮겨보면서, 전쟁의 참상을 새삼 뼈 아프게 느낀다. 요즘 북한은 다시 남한과 전세계를 향해 공갈과 협박으로 주변국과 서방 세계를 신경쓰게 하고 있는때여서, 이러한 사진은 의미하는바가 크다고 여겨진다.
오는 일요일(6월28일)새벽에, 토론토에 본부를 두고 있는 재향군인회원들은, 캐나다 수도 오타와에서 매년 열리는 한국전 참전 기념식에 참석하기위해, 버스를 대절하여, 지금은 노인들이 다 된 회원들이 5시간 이상 달려간다. 나도 그 대열에 끼여 참석할 계획인데, 벌써 수년째 그렇게 해 오고 있어, 새삼 조국방어를 위해 군복무를 했다는 자부심이 해가 갈수록 커짐을 깊이 느낀다.

<6.25 특집 화보> 홍릉에서 예배보는 미군들
(워싱턴=연합뉴스) 박상현 특파원 = 경기도 남양주시 홍릉에서 미군 25사단 23여단 소속 병사들이 예배를 올리는 모습. 1951.3.18. 2009. 6.23
<6.25 특집 화보> 전쟁의 상흔, 수원성
[ 2009-06-23 15:47 송고 ]

(워싱턴=연합뉴스) 박상현 특파원 = 미 보병 제25사단 병력이 폭격으로 부서진 수원성을 지나가고 있다. 1951.1.25.

<6.25 특집 화보> 전장의 이별 , 아들과 어머니
[ 2009-06-23 15:46 송고 ]


(워싱턴=연합뉴스) 박상현 특파원 = 국군 신병으로 전선으로 떠나는 아들을 전송하는 어머니의 모습. 한 바가지의 물로 아들의 안위를 기원하는 어머니의 표정과 이를 바라보는 아들의 눈매가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1950. 12. 19. 대구역앞.

2009. 6.23

shpark@yna.co.kr

상여가 지나가는 광경을 유엔군 소속 벨기에 병사들이 신기한 듯이 지켜보고 있다. 1951.2.23. 경북 왜관. 연합

(워싱턴=연합뉴스) 박상현 특파원 = 1950년 10월 28일 서울의 폐허속에 문을 연 구두수선점. 피난에서 돌아온 구두수선공이 이전에 자신의 가게였던 자리에 다시 문을 열고 군화를 수선하러온 국군장병을 첫 손님으로 맞았다. 2009. 6.23
shpark@yna.co.kr

(워싱턴=연합뉴스) 박상현 특파원 = 1951년 1월 8일. 부서진 러시아제 T-34 탱크 옆에서 빨래하고 있는 아낙네들.
2009. 6.23

(워싱턴=연합뉴스) 박상현 특파원 = 중공군의 개입으로 피난을 떠난 서울의 텅 빈 상가를 한국군 1명이 걸어가는 모습. 1950.12.26.
2009. 6.23

<6.25 특집 화보>피난민 속 우는 아이들
(워싱턴=연합뉴스) 박상현 특파원 = 1951년 1월 4일. 1.4 후퇴 당시 얼어붙은 한강을 앞에두고 피난민 무리에서 떨어진 아이들이 겁에 질려 울고 있다.
2009. 6.23

<6.25 특집 화보> 미군, 소년에 대한 경례
(워싱턴=연합뉴스) 박상현 특파원 = 80일간 적군에 포로로 잡혀 있다 구출된 미군 병사 3명이 자신들을 위해 전령 역할을 해준 한국 소년들에게 감사의 뜻으로 경례를 하고 있다. 1951.3.21.
2009. 6.23

<6.25 특집 화보> 잠자리에 든 전쟁고아들
(워싱턴=연합뉴스) 박상현 특파원 = 1951년 3월 22일. 3∼6세된 전쟁고아들이 부산의 한 고아원에서 보모들의 보살핌 속에 잠자리에 든 모습이다.
2009. 6.23

<6.25 특집 화보>피난 떠나는 북한 주민들
(워싱턴=연합뉴스) 박상현 특파원 = 1950년12월 3일. 중공군의 개입으로 엄동설한에 신발을 벗고 바지를 걷어올려 평양의 대동강을 건너 피난을 떠나는 북한 주민들. 2009. 6.23

<6.25 특집 화보> 전장의 육군 소장, 김백일
(워싱턴=연합뉴스) 박상현 특파원 = 신병들을 모아놓고 연설하는 김백일 소장. 육군 1제군단장인 김 소장은 유엔군의 반격과 함께 가장 먼저 38선을 돌파, 혜산까지 북상했으며 12월 흥남철수작전 때 10만명의 피난민 수송을 지휘했다. 1951년 3월 비행기 추락으로 순직했다. 1950. 12. 19. 묵호진.
2009. 6.23

<6.25 특집 화보> 폐허속 부녀자들
(워싱턴=연합뉴스) 박상현 특파원 = 폐허로 변한 서울 거리에서 부녀자들이 건물잔해속에서 땔감이나 쓸만한 물건을 찾고 있다. 뒤편으로 중앙청 건물이 보인다. 1950. 11.1일 서울모습. 2009. 6.23

<6.25 특집 화보>치료 기다리는 포로들
(워싱턴=연합뉴스) 박상현 특파원 = 1951년 2월 26일. 전장에서 체포된 부상병 포로들이 트럭으로 부산 인근의 병원에 방금 도착해 치료를 기다리는 모습.
2009. 6.23

<6.25 특집 화보>포즈 취한 피난민
(워싱턴=연합뉴스) 박상현 특파원 = 1951년 1월 27일. 지게에 가재도구와 함께 아내까지 태운 중년의 가장이 피난행렬에서 미군의 요청으로 돌아서서 포즈를 취했다. 피난의 와중 웃는 표정에서 낙천성이 느껴진다.
2009. 6.23

<6.25 특집 화보>1.4 후퇴 피난행렬
(워싱턴=연합뉴스) 박상현 특파원 = 1951년 1월 5일. 1.4 후퇴 당시 서울을 떠나 남으로 향하는 피난민의 행렬. 2009. 6.23

<6.25 특집 화보>대동강 철교 피난 행렬
(워싱턴=연합뉴스) 박상현 특파원 = 1950년12월 3일. 부서진 대동강 철교를 아슬아슬하게 붙잡고 있는 피난민의 행렬. 2009. 6.23

<6.25 특집 화보>부산 포로수용소
(워싱턴=연합뉴스) 박상현 특파원 = 1951년 1월 14일. 부산의 포로수용소에서 한 미군 병사가 인민군 소년병 포로와 나란히 서 있다. 송종태라는 이름의 이 소년은 12살로 서울에서 포로로 잡혔다고 한다.
2009. 6.23

특히 참전 미군들이 잠시의 여유를 즐기는 듯 소를 타고 즐거워하는 모습이 이채롭다.




<※ 편집자주 : 연합뉴스는 한국전쟁(6.25) 발발 59주년을 이틀 앞둔 23일 미국국립문서보관소(National Archieves)에서 6.25 관련 희귀사진인 흑백사진 47점을 발굴했다. 이번 공개된 사진은 폐허속의 구두수선점, 태극기와 유엔기를 파는 당시 벤처 기업(?) , 전장으로 떠나는 신병, 한국전 당시의 이후락 전 중앙정보부장, 전장을 순시하는 맥아더장군, 기록영화 촬영중인 홍성기 감독, 피난민과 전쟁고아들, 전쟁터의 상여행렬, 여군포로, 사찰에서 예배보는 미군 등으로 한국전쟁의 생활상과 참상을 엿볼 수 있다.>

Monday, June 22, 2009

새로 잘 만들어진 Marsh Board를 걸으면서-Presquile Provincial Park



















새로 잘 만들어진 Marsh Board Walk을, 어제 하루종일 비가 내린후, 맑게 걔인 오늘오후 아내와 같이 그위를 걸었다. 약 1.5킬로의 새로 잘 건설된 보드위를 걸은 것이다. 시야에는 끝도 없이 펼쳐지는 녹색의 갈대밭이 바람에 물결을 만들어 내는 모습도 좋았다. 이름도 모르는 수많은 종류의 새울음 소리도 같이 어울려 대자연속의 조화를 이룬다. 머리위로는 갈매기들이 높이 떠서 멀리 날아가는 한떼와 낯게 떠서 먹이를 찾기에 분주한 한떼가 바삐 날아 움직이는게 한폭의 그림이다. 개구장이 아이들이 새로 만들어진 보드위를 앞서 뛰어가고 뒤에는 부모되는 젊은 부부가 뒤따라 걸어가면서 우리와 마주칠때, 목례도 하고, 눈인사도 하고.... 그러한 부모와 아이들이 여러군데서 목격된다. 늪지대인 갈대받속으로 Board Walk을 만들어서 그 갈대받위를 걷게 하면서, 어른들에게는 갈대받속을 걸으면서, 자연을 즐기게하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생태계를 공부할수 있는 현장실습장으로도 활용되고 있는 아주 값어치 있는 Board Walk Trail인 것이다. 우리가 걷는 보드웍 옆에 갈대받속의 Pond에서는 백조 한쌍이 갓세상에 태어난 두마리의 새끼들과 열심히 먹이를 찾아 움직이는 모습이 우리가 보기에는 마치 춤을 추는것 같아 보인다. 백조보다 일찍 새끼를 낳아 기르던 기러기와 오리떼들은 오늘은 보이지 않는다. 벌써 자라서 더 넓은, 건너편 온타리오 호수로 옮겨간듯 싶다. 낡은 보드웍이 있을때로 기억되는데, 밤에 한구룹의 어린 학생들이 선생님의 안내를 받으면서, Flash light를 제각기 손에 들고, 보드웍을 걷고, 숲속을 조심스럽게 걸으면서, 밤에 곤충들의 활동상황을 탐구하고 선생은 설명해주고 하는 광경을 본 기억도 있다.

새로건설된 보드웍은 전에것 보다 폭이 훨씬 넓고 단단하게 만들어졌다. 입구쪽의 2층으로된 전망대도 규모가 전보다 훨씬 크고, 짜임새 있게 만들어졌다. 재료도 나무가 아닌 시멘트처럼 단단한 그러면서도 감촉이 포근하게 느껴지는 것을 사용했다. 나도 그위를 걸으면서 사진도 찍고, 물속의 Fish들도 살펴보고, 새끼를 보호하면서 먹이를 찾고 있는 백조부부를 사진에 담기도 했고, 아내가 뭔가를 열심히 보기위해 허리를 굽힐때는 살짝 스냅사진도 찍어보고....이렇게 즐길수 있게 하기위해 춥거나 더운날 갈대밭에 들어가 말둑을 박고, 그위에 Board Walk을 만들어 준 이름없는 봉사자들에 감사 한 마음을 잠시 생각해 보기도 하면서, 지난해 적은액수지만, 새로 만드는데 도움이 됐으면하고, Donation 했던 기억이 떠 오르기도 했다. 약 삼년전에 낡은것을 다 뜯어내고, 새로 만들겠다는 계시판을 본 이후로, 언제나 만들려나 했었는데, 지난해 부터 새로 만들기 시작하여, 약 일년동안, 완전히 자원봉사자들에 의해서 만들어진 보드웍은 이지역의 MPP(온타리오 국회의원)인 Lou Rinaldi가 참석한 가운데 지난주에 개통식(?)을 한것이다. 처음에 계시판을 보고나서, 공원주인인 주정부에서 예산을 세워서 새로 만드는것으로 생각하고, 언제나 시작할려나? 하면서 매년 여름 카테지에서 생활할때마다 들리곤 했었는데 아무런 진전이 없이 그대로 방치된게 2년이나 됐었다. 그런데 지난해 공원입구에 Board Walk건설을 위해 민간인들이 주동이 된 단체에서 총공사비 $300,000 달러를 만들기위해 Donation을 받고 있다는 안내판이 걸렸고, 현재 모금액이 75% 정도 달성됐다고 도표까지 그려서 공원출입자들에게 알려 주고 있음을 보았었다. 아내와 상의하여 나도 이용객중의 하나인데, 물론 공원정문을 통과할때 공원 사용료를 내고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뭔가 도와 주고 싶은 마음이 생겨, 성의를 표시 했던 것이다. 기부는 금전과 노동력제공이 포함되고 있었다. 주립공원이 자리하고 있는 Brighton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주동이 되여, 추운 겨울부터 건설을 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왜 주인격인 주정부가 예산과 인력을 투입하지 않고, 전원 민간인들이 기금을 받아, 민간인들이 만들게 됐는지를 나는 알지는 못한다. 상식적으로는 그런순서로 진행 됐어야 하는데....
계시판에는 또 Donation한 사람들의 이름이 금액의 많고 적음에 관계없이, 알파벳 순서데로 정성스레 타이핑되여 전시되고 있었는데, 그속에 나의 이름도 있어, 사진을 찍었으나, 글씨가 작아 선명하게 보이지는 않았다.
노력봉사자들은 대부분이 은퇴한 senior 들인것을 직접 목격하기도 했었다. 떠들지도 않으면서 조용히 모금하고, 건설하고 그리고 간단한 Podium을 만들어, 개통식을 하면서 그동안의 경과 보고를 하는 담당자의 복장은 허름한 산책객 그모습 그대로 였다.
앞으로 몇십년 동안은 많은 이용객들이 그위를 걸으면서, 자연을 즐기고, 갈대밭이 물을 정화 한다는 새로운(?) 역활도 알게 될것이다.
갈대밭으로 이루어진 이곳의 늪지대는 온타리오 호수의 물을 맑게 정화시키는 일등공신 역활을 하고 있다고 공원안내책자에서 읽어본 기억이 난다. 더울때는 공원숲속에서 서식하고 있는 꽃사슴들도 목을 추기러 늪지대의 물을 찾아 마시는 모습도 가끔씩 보곤 한다. 새끼 사슴은 귀여기 그지없다. 마치 어린 개구장이들이 보드웍위를 뛰기도하고 딩굴기도 하는 모습이 귀엽기도 하고 눈망울이 총총한것 처럼.
이곳은 또 가을철에는 철새들의 쉼터이기도 하다. 황금갈색으로 변해가는 갈대위에 앉아있는 작은 새들과, 먼길을 날다가 쉬기위해 내려앉아 갈대밭속에서 먹이를 찾아 바삐 움직이는 기러기, 청둥오리 그리고 이름모를 많은 새때들이 바로 철새의 주인공인 것이다. 그광경을 우리는 보드웍위를 걸으면서 목격하고, 사진기에 담기도 하고, 사냥철에는 그들을 향해 포수꾼들이 겨냥을 하는 ..... 자연의 순환을 보는것이다.
생명력의 끈질긴면을 보게 되는 또 다른 장면은, 보드웍에 깔린 Plank사이로 갈대순이 자라서 뾰족 튀어나온 순들이 발길에 밟혀서 으깨어지기도하고 부러지기도 한 모습이 계속이어지지만, 그래도 계속 그사이로 자라고 있는 억척스러움을 보면서, 삶의 끈질김을 이해하게 된다.
친지들이 카테지에 놀러 오게 될때는 이곳을 꼭 보여주고 싶다. 건설된 과정을 설명도 해주면서.....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방법도 서로 비교해 보면서, 배워야 할점도 상의 해보면서 그위를 걸어보고 싶은, 그러면서 친교도 나누고싶은, 은퇴한 부부들이 손잡고, 아니면 끼리끼리 걷는 그모습이 보고 싶은 것이다. 감사한 마음을 그들에게 보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