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June 06, 2009

Hockley Valley Nature Trail Walk-South Side.












산행하기에 너무나 좋은 날씨였다. 매주 토요일 산행팀과 함께 하기는 거의 2달만에 오늘 처음이다. 오늘은 아내와 정숙이도 함께 했다.
오랫만에 다시 보는 얼굴들이 반갑다. 안면이 있는 얼굴 또는 새로운 얼굴들..... 그러나 같이 산행하는 동료로서 그들이 정겹다.
Hockley Valley Resort를 관통하여 언덕을 넘기까지는 남의 농장을 통과하기에 풀이 가슴까지 덮는 밋밋한 길이었다. 경사면에 아름답게 조성된 골프장에서는 주말 골퍼들이 여념이 없는 모습으로 분주하게 움직인다. 간혹 그들과 손짖으로 인사를 나누면서, 건강을 위한 운동을 하는데 그들은 골프를 우리는 Trail Walk을 하는 서로 다른 각도로 건강을 지킨다는 의미를 생각해 보는게 새삼스럽게 까지 한다. 마치 나는 한번도 골프를 해 보지 않은 자 처럼 말이다. 골퍼가 날린 볼이 아마도 Off fairway로 아니면 옆홀의 Fairway로 날아간 모양이다. "Ball....."이라고 목청을 높여 경고음을 내는 소리가 귓속에 여운을 오래 남긴다. 대원들중 몇명은 소리나는쪽을 향해 시선을 돌리기도 하면서 계속 걷는다. 언덕이 가파르다. 계곡이 나타난다. 계곡의 맨 밑으로 연결되여 있는 트레일이 졸졸 흐르는 계곡물줄기를 가로 지른다. 긴겨울동안 꽁꽁 얼음밑으로 숨어 소리도 잘 안내던 계곡속의 물소리가 계절을 찬미 하는것 처럼 들린다. 어딘가로 계속 흘러내려, 온타리오 호수로 합류할것이다. 토요 산행에 처음 참석한 아내와 정숙이가 잘 걷고 있는지? 수시로 앞서가던 나는 뒤를 돌아 보곤 했다. 대원들속에 끼어 보조를 맞추어 열심히 걷고 있는 모습을 보고, 나는 계속 바삐 걷는다. 밤새 계절병(?)인 알레지 때문에 잠을 설쳤던 아내였기에 더 뒤를 돌아 보게 된것이다. 메뚜기도 한때라는 말처럼, 나무로 우거진 산행길은 모기가 극성이다. 출발할때 모기약을 spray 하긴 했지만, 땀이 흐르면서, 약기운이 다 씻겨 내렸는지 주위를 맹도는 모기의 윙윙소리가 공격적이다. 나보다 더 땀이 많이 흘리는 그녀도 모기의 공격속에서 걸을 것으로 짐작하는것은 어렵지 않았다. 깊은 산속 계곡을 지나 평평한 숲속을 지나는데,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것으로 보이는 물펌프가 보였다. 걸으면서 여러개의 비슷한 물펌프(?)들이 보였다. 전기줄로 보이는 폐전선도 곁에 보인다. 아마도 오래전에, 전기를 끌어들여 물펌프를 돌려 숲으로 덮히기 전까지 농토로 사용하면서 지하수를 끌어 올려 가뭄을 극복한것이 아니었겠나 짐작케 한다. 자연을 극복하려는 인간의 힘을 쏟아 부었을, 선배 농부들과 그의 가족들을, 그것도 옛날 의상을 정겹게 차려입었을 , 그때의 사람들을 순간적으로 상상해 봤다. 그위를 우리는 오늘 건강을 유지하기위한 산행을 하고 있는 것이다. 대만에서 초기에 이민와서 살면서 우리 산행팀에 합류한 Walter Leu 와 일본인 후세 Tanaka부부도 합류해서 열심히 걷는다. 어떻게 해서 그들이 합류하게 됐는지는 모르지만, 나는 그들과 산행 친구가 됐다. 그들과 차 Pool도 하면서 경비를 줄이기도 하고..... 나보다 나이가 몇살 많은 Walter는 오른쪽 어깨가 아파서 오늘은 Back Pack을 포기하고, 대신에 허리에 차는 조금만 전대를 준비 했다고 설명해 준다. 오늘은 출발할때 정했던 반환점 까지 걷지 않고, 약 1킬로 전에 아내와 정숙이 같이 Return했다. 돌아올때 무리가 생길까봐 내가 주장한 것이다. 많은 대원들이 우리보다 앞서 회군한것을 설명해주면서 말이다. 되돌아 오는길에 Mrs.Tanaka를 만났는데, 그녀는 혼자서 쉬면서 점심을 먹고 있었다. 그광경을 보면서 지나친 정숙이가 갑자기 '배고파'라고 하소연(?)이다. 계속 걸으면서 계곡윗쪽에 서늘한 그늘에서 짐을 풀고 우리도 점심을 하기 시작했다. 밤새 아내가 준비해준 점심이었다. 부침갱이, 오곡밥 그리고 반찬.... 맛이 좋다. 어느새 모기가 공격을 시작한다. 아마도 땀냄새가 그들을 불러들인것 같다. 그들과 전쟁 하면서 밥을 먹는다. 옛날 군대생활 할때 야외 훈련 나가서 주먹밥먹던 기억이 잠깐 스친다. 그때도 모기가 극성이었겠지만, 소리를 듣지 못하고, 허기진 배를 채우기에 소리를 들을 여유가 없어서 였을 것이다. 환경이 이렇게도 우리의 생활속에 깊이 함께 하고 있음을 느낀다. 지금은 건강을 지키기위한 여유있는 발걸음인것을...
처음 산행시작할때 지나쳤던 약간 경사진, 농장속의 풀밭을 걸을때는 권태감을 느끼기도 했다. 개인농장이기에 타인들의 Trespass를 막기위해, 아니면 농장의 경계 표시로 둘러친 녹슬은 철조망을 넘기위해 만들어 놓은 Stile을 오늘은 여섯개나 넘었다. 농장을 통과 할수 있도록 허가해준 농장주에게 고맙기도 하였지만, 사닥다리(Stile)를 오르고 내릴때는 발걸음이 무거움을 더 많이 느꼈었다. 어찌 나만 그렇게 느꼈겠는가? 반가운것은 이농장을 지나게 됨은 오늘의 산행이 종료될 지점에 왔다는 증표여서 였다. 파킹랏에는 우리보다 벌써 도착한 많은 대원들이 나무그늘 밑에서 마지막 대원들의 도착을 기다리면서 담소 하고 있는 모습이 보기에 좋았다. 무사히 산행 마침을 감사 했다.

Friday, June 05, 2009

비무장지대안에서 정신무장겸 등산하기-뉴욕 타임스





비무장지대안에서 정신무장겸 등산하기-뉴욕 타임스.

2009/06/05 21:43

대부분이 여성들로 구성된 관광단이 여러대의 버스에 분승하여, 대광리 비무장지대를 방문하여, 안내 장병의 인솔하에
주위 산등성이에 올라, 철책선 넘어 이북을 구경하고 있다.
비무장 지대를 지키는 장병들은 참호속에서 잠복 근무하고, 높은 철책선을 응시하고 있음이 몹시 음산한 분위여 있다고 한다.
젊은 여성들은 '결혼 했어요?' 라는 질문을 가장 많이 했다고 한다.
방문객의 대부분은 여성들로, 인천국제공항 면세점에서 근무하는 직원들로, 한국에서는 흔이 있는, 정신무장과 동료들간의 화합 훈련을 통한, 일종의 훈육을 겸한 여행이라고 한다.
이북의 대포동 미사일을 무서워 할게 아니라,우리가 서울에서 누리는 호화스런 생활과 자유가 어떻게 해서 마음껏 누릴수 있는지를 현지를 답사하여 눈으로 확인시키고, 이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항상 마음속에 간직 하도록 하기위함에서다 라고 전해 진다.

정말로 우리 한국인들, 감상에 젖어 이북을 쳐다 보고, 그들을 같은 민족으로만 좋게 볼게 아니라, 그들을 통솔하고 있는 김정일 정권의 거짖과 위선과
국민들을 굶주림으로 몰아넣은 그잔악함을 이번 여행을 통해 깊이 인식했으면 한다.

TAEKWANG VILLAGE JOURNAL
At Border, S. Koreans Heed a Blustery Neighbor

Photographs by Woohae Cho The New York Times
MOUNTAIN HIKES, AMUSEMENT PARKS ... DEMILITARIZED ZONE? To build employee spirit and unity, South Korean companies sponsor hikes or other trips. But some have come to the demilitarized zone, where South Korean soldiers stay on alert as they look across at a nuclear-armed North.

Published: June 3, 2009
TAEKWANG VILLAGE, South Korea — The soldiers stationed at the bunkers and outposts along this stretch of the demilitarized zone that divides the two Koreas are on hair-trigger alert as they look across at a nuclear-armed North. But on a recent morning, they were visited by 120 civilians, mostly young women, who arrived in bright red and white buses.
As a South Korean private pointed to a North Korean guard tower visible just two miles away the women giggled at the military precision of his movements. Their first question was whether he was single. But many grew hushed as they began a guided 45-minute hike along the tall barbed-wire fences of the world’s most heavily fortified border.
“It is eye-opening,” said Huh In-young, 40, who wore a wide-brimmed olive drab hat with her sundress. “We tend to forget about the DMZ in our daily lives.”
The group was on a so-called discipline tour, a common practice by paternalistic South Korean companies to build employee spirit and unity, usually with mountain hikes or trips to amusement parks. But a week after North Korea conducted its second nuclear test, the company — the government-run operator of duty-free shops at Inchon International Airport, near Seoul — opted for something more sobering for its employees, who are more used to thinking about TAG Heuer watches than Taepodong missiles.
“This is about mental discipline, so they can see this and appreciate all we have now in South Korea,” said Kang Joong-seok, an executive director at the operator, the Korea Tourism Organization. “We take our wealth for granted.”
Indeed, while the North continues to threaten war and apparently prepare for still more missile tests, South Korea’s increasingly wealthy population seems largely uninterested in the belligerent attitude of its northern neighbor. In South Korea’s traffic-choked, neon-drenched capital, Seoul, life has not missed a beat since the North’s nuclear test last week, with residents still chilling at Starbucks or filling their cubicles in the city’s modern office towers.
In the local news media, the North’s nuclear test and the world’s response has often taken second billing to the national mourning and protests following the suicide almost two weeks ago of a former president, Roh Moo-hyun. South Koreans seem to have grown accustomed to the North’s sword-rattling, which some dismiss as a desperate gambit to wring concessions from Washington.
But near the DMZ, a 150-mile ribbon of tank traps and minefields, the tension remains palpable. In the South, a few points have been opened to tourists, including this stretch near Taekwang, a quiet farming village about 45 miles north of Seoul — and 100 miles southeast of the North’s capital, Pyongyang.
Visitors can look down on the DMZ from a camouflaged, concrete observation platform that looks like one of the many large bunkers that dot the South Korean side of the border. On the other side of a largely treeless belt of no-man’s land lies a similar line of fences and pillboxes, controlled by North Korea.
Until recently, the observatory drew about 3,000 visitors a month, soldiers said. One of the highlights here is T-Bone Hill, a stretch of rolling land that was the site of fierce combat between American and Chinese forces during the Korean War, more than a half century ago.
But cancellations have risen along with the tensions since last week’s nuclear test, though the military here says the border remains safe enough for visitors. Jang Seung-jae, president of a company that brings groups to this spot, said he had had more than 100 people cancel in the last week. “The TV keeps talking about how dangerous the DMZ is,” he said.
The only group to visit since the test was the staff of the Inchon duty-free shop. Mr. Kang, the executive director, said that some employees expressed concerns, but in the end no one backed out.
“It’s like swine flu,” he said. “Some are afraid of this, and some aren’t. It depends on what you have the stomach for.”
For some, the tensions were part of the appeal. “The thrill is why I came,” said Chong Ha-kyun, 51, who said he served as a soldier on the DMZ 18 years ago during his compulsory military service.
“Though I have to say, it’s less tense than I remember it.”
“South Korea has changed so much, but the North remains frozen in time,” he said, expressing the widely shared feeling here that South Korea now enjoys a comfortable superiority in wealth and technology, if not nuclear capacity. “I think all families should bring their children here, to see that our current prosperity is protected by a line of barbed wire.”
At the start of the walk, the group wrote wishes for Korean reunification on brightly colored ribbons, which they then tied onto the fence. None of the hikers said they felt hostility toward the North, though they were fed up with the North’s constant bluster and its weapons tests.
“I don’t have negative views about them, even if they are provoking us,” said Kim Hyun-jin, 30. “But I admit I’m nervous to come here. I was half hoping the tour might be canceled.”
Later that day, after the group had withdrawn from the DMZ for a leisurely lunch of pork and Korean soju alcohol at a comfortable restaurant, participants said they were glad they had come.
“This discipline tour will stick in my memory for a long time,” said Koo Sun-hee, 36, who said it was her first visit to the border. “North Korea is the closest country to us, but it feels like the farthest country.”

Thursday, June 04, 2009

역사의 계속됨을 계절의 변화속의 생명체의 본능에서 본다.













휴식처이며, 신체단련의 통로인 Humber Bay Park West의 산책로를 아내와 같이, 항상 그랫던것 처럼, 오늘도 걸었읍니다.
이곳의 봄소식은, 고국과는 한달 이상이 늦어, 고국에서는 초여름의 녹음과 더위가 행인들의 옷차림을 가볍게 한다고 하는데, 이제야 나뭇잎은 녹색을 옅게 띄고, 각종 Waterfowl들은 또다시 보금자리를 만들고, 후손들을 생산하기에 바쁜 모습을 어렵지 않게 산책중에 보게 된다.
내가 살고 있는 콘도 창문을 통해 보이는 여러 구룹의 Yacht 클럽에서는 벌써 겨울내 Yard에 정박 시켰던 배들을 다시 Dock에 정박시켜놓고, 여름의 뱃놀이를 대기하고 있는 모습들로 한가롭게 보이기도 하지만, 자세히 보면 바삐 움직이는 내면을 보게된다. 철새인 많은 기러기들이 북쪽으로 이동해서 살아야 하나, 날아가지를 않고, 대신에 어느새 새끼를 쳐서 앞뒤에서 노란색의 솜털을 몸에 덮고 있는 새끼들을 돌보면서, 물위를 유유자적하고 있는 모습이 질긴 생명력을 보게 한다. 며칠전 시골 카테지에서 골프를 했을때도, 골프장 페어웨이를, 한때의 새끼들을 앞뒤에서 보호하면서 풀을 뜯는 오리와 기러기들을 본 기억이 떠올린다. 거의 한달 정도 알을 품고 있다가 부화 한다고 계산해 볼때, 이놈들은 아직 기후가 쌀쌀할때 벌써 부화를 시작했던 것으로 보인다. 후손을 남김으로서 세상에 태어난 임무를 완성한다고 생각해서 일까? 아니면 본능?
매년 기러기나 오리때 보다 늦게 새끼들과 호수에 나타나곤 했던 백조 한쌍이 갓태어난 새끼를 데리고 물위에 떠서 먹이를 찾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작년에는 6마리의 새끼를 이때쯤 보았었고, 가을이 될 무렵에는 두마리만 성장한것을 기억하고 있는데, 오늘은 오직 한마리의 새끼만 보인다. 그놈들은 뭍에 가깝게 서식하기에 아마도 다른 밤짐승들의 습격에 취약해서 피해를 더 많이 당해 살아남는 후손이 적은게 아닐까?라고 생각해 봤다. 오늘본 한마리의 새끼가 잘 자라기를 바랄뿐이다. 아직 후손들을 만들지 않은 다른 Waterfowls는 호수가에서, 이제는 산책객들과 친구(?)가 되여 그들이 던져주는 빵조각등의 먹이를 받아 먹는데 아주 친숙해져 있다. 백조와 기러기 그리고 청둥오리와 갈매기들......
그러나 갈매기는, 다른 조류들을 겨냥하여 먹이를 던져주면, 날렵하게 날아들어 채가곤하는, 그러면서도 사람들을 가장 믿지않고 경계를 하는 의심많은 새인것 같다. 목소리도 아름답지 못하기는 오리 못지 않다. 몇년전부터는 가마우찌라는 바닷새, 영어로는(Cormorant ) 라고 하는 새떼들이 온타리오 호수를 장악하여 한무리의 그들이 호수를 덮치면 고기가 씨가 말린다는 속설이 있는데, 과연 그들의 횡포(?)는 헛소리가 아님을 오늘도 보았다. 지금 이곳은 작은 물고기 Smelt(멸치보다 조금큰)들이 산란하러 얕은 물줄기를 찾기 위해 북상하기위해 호수가의 얕은 물가를 찾아 헤메는데, 그들을 여지없이 이새떼들이 모여들어 싹쓸이( Scavenge)하는 모습이 목격됐다. 속설에 의하면 중국어부들이 이새의 목에 줄을 걸어, 이새들을 물고기 사냥하는데 사용하고 있다는 말도 들은적이 있다. 물속을 잠수하다가 물위에 떠오를때는 은빛이 번쩍 번쩍하는 송사리들을 입에 물고 있는 광경은 장관이다라고 감상하기엔 그들의 행동이 해적같아 보여 친하게 보여지지 않는다. 마치 태풍이 지나간후의 페허가된 현장을 상상케 하는 것이다.
준비해간 빵조각을 아내가 물가에서 백조와 기러기들에게 던져 주기고 하고, 또 뺏기기도(?)한다. 등치큰 백조들이 큰 입을 벌리고 손에든 빵조각을 차갈때는 손마디에 느끼는 촉감이 매우 껄끄럽다. 아마도 우리 인간에 비하면, 이빨로 생각되는 고리(?)와 부딪쳐서 그런것 같다.
이들을 보면서, 또 한해가 가고, 또 후손을 퍼뜨리는 산란의 계절이 정확하게 도래 했음을 보면서, 우리는 살아온 한해를 역사속으로 묻고, 다른 한해를 이들을 통해서 새로 맞이 하면서, 나는 역사를 이어주는 역활을 충실히 하고 있는가? 반문해 보면서..... 산책을 재촉한다.

Friday, May 29, 2009

지금은 은퇴한 막내와 조카의 교통편제공으로 고향의 이곳 저곳 구경




























지나간 세월을 되돌려 보는것은 항상 후회가 앞선다. 그렇게 하지 않았었더라면......그시간들을 되돌릴수 없기에 더욱 애틋한 것인지도 모른다.
이번 고국 방문에서 작고하신 작은 형님의 큰 아들이 우리의 발이 되여 교통편을 제공해 주었기에 정겨웠던, 추억속으로 되돌아가게 하는 고향의 이곳저곳을 편하게 다닐수 있게 해 주었다. 그는 조카이지만, 나와는 불과 2살 적은, 지금은 공무원에서 은퇴하여 말년을 그의 손자손녀들과 살을 부비면서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초로의 노인이기도 하다. 조카 부부는 내장산과 백양사의 중간에 있는 전라북도 산림박물관을 구경시켜 주었다. 학생들의 현장체험장으로도 활용되고 있는 이곳에서 잘진열된 옛날 우리 조상들의 생활상을 볼수 있었고, 생태계의 상호 관계를 관찰할수 있었다. 우리가, 특히 커가는 어린 학생들이 즐겨먹는 햄버거가 산림을 해치는, 그래서 산림을 죽이는 무덤이라고 설명한 내용을 보고 놀랐다. 전연 생각지도 않은 내용인데, 그렇게 무심코 먹기만 했었는데......또한 그전에는 내장산에서 백양사를 가기위해서는 산속의 오솔길을 하루종일 걸어서 가곤 했었는데, 이번에는 잘 뚫린 도로를 이용했기에 불과 몇분만에 백양사에 도착했었다. 문명의 이기를 활용하는것이 좋긴한데, 반대 급부로 환경오염은 어떻게 되는걸까? 대웅전 뒤로 높게 보이는 황갈색의 바위봉우리는 변함이 없이 그대로 내눈에 들어왔다. 황토현에 있는 전봉준 장군의 전적비와 기념관을 관람하면서, 돌아가신 박통께서 전적비 제막식에 참석했던 당시의 순간들을 기억속에서 들춰내 볼수 있는 기회를 가졌었고, 지금은 관광명소가 되여 많은 구경꾼들을 전국에서 끌어 들이고 있는, 바다를 막아 대한민국의 지도를 바꾸었다는 새만금 간척지에서 그규모의 웅대함과 갑문들을 보았고, 간척지안의 갯뻘이 여러개의 지역으로 구분되여, 어떤곳은 농지로, 어떤곳은 공원지역으로, 어떤곳은 공업단지로 그리고 또다른 용도로 이용하게될 현장을 내눈으로 확인하기도 했었다. 변산에서 시작된 새만금 뚝( Levee)은 마치 조그만 산처럼 높아 보였으며, 그위로는 4차선 도로가 건설되여 군산까지 이어진다고 들었다. 고인이 된 정주영 현대건설회장의 얼굴이 이뚝을 보면서 생각난다. 뚝을 막는데 흐르는 물결이 너무세어 추럭에 가득한 흙을 부어도 다 떠내려 가버리자, 폐선으로 있는 큰 화물선을 끌어다 물결을 막고 뚝을 막게한 그의 아이디어와 용기 그리고 뚝심, 그것이 오늘의 한국 토목공사 기술걔발에 한획을 긋게한 그의 창작품이라고 나는 생각하고 싶다. 당시 토목기술자들은 그의 아이디어를 무모한 짖이라고 동조 하지 않았지만, 그는 그의 배짱으로 밀었다고 들었었다.
내가 태어난 고향은 많이 변했다. 우선 사람들이 변했고, 동네의 모양도 그사이 너무나 변해 있었다. 머리속에서는 어제의 일처럼 여기는 우물이 있었고, 그옆에는 미나리깡이 있었고, 그옆으로 언덕길이 있었고,...... 그러나 그러한 모습은 흔적이 없었다. 수도물이 우물을 대신했고, 미나리깡은 메워져 마을 회관이 그자리에 앉아 있었고 그옛날 코흘리개 어린 시절을 보냈던, 내가 태어난 집 뒷뜰에 있었던 대나무밭은 흔적도 없었다. 코흘리개였던 내가 지금은 환갑을 지나고도 몇년을 더 살아오면서, 그많던 새까만 머리털이 다 빠져 버리고 그나마 몇개 있는 머리털은 하얗게 변해 있는데, 어찌 다른것들은 변치 않기를 바랬다면, 그것은 나의,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 착각일뿐인것이라고 마음속에 다짐했다.
지난번 방문했을때는 동네 노인회장을 맡아 열심히 봉사 하시던 큰매형께서, 얼마전에 고인이 되여 고향 선산에 모셔져 있는 산소에도 들렸다. 봉분의 흙이 흘러 내리지 않도록 검은 천으로 덮어 놓은점이 어렸을때 보았던 산소와 다른점이었다. 꿈만 같다. 오랫만에 방문한 처남을 대접하기위해 같이 노래방에 까지 가서 같이 밤새 노래를 불렀던 기억이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다른 세상에 사시는 매형이 됨을 보면서, 다시한번 시간의 흐름을 가슴속에서 느낀다. 막내동생은 전주에서 부터 정읍까지 우리 부부에게 교통편을 제공하느라 직장을 빠지기도 했었다. 조카부부는 교통편은 물론이고, 토종닭을 잡아 삶아 대접한다고 고생을 많이 했다. 신세만 지고, 그들을 뒤로하고 여행을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