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November 12, 2007

모니카와 함께,페트라 계곡에서,Jordan


마침 레바논에서 관광온 모니카와 현지 친구가 되여, 그녀의 도움을 많이 받았었읍니다. 나의 디카에 갑자기 문제가 생겨, 더이상 사진을 촬영할수 없어 전전긍긍하고 있을때, 그녀의 배려로, 사진을 계속 촬영할수 있었읍니다.귀국하여 그녀가 이메일로 보내온 여러사진중에서, 이사진은 멀리 산언덕에 셀수도없이 많은 동굴을 배경으로 바로 그아래는 야외 원형극장으로 굉장히 넓었는데,그녀와 같이 찍힌것입니다. 옛날에는 이원형극장에서 화려한 연극을 했었고, 뒤의 동굴에는 시신을 보관 했었다고 합니다. 일종의 무덤(Tomb)이지요.
요즘도 이멜로 연락을 하면서, 우정을 나누고 있읍니다. 세상은 참 좁아지고 있음을 실감합니다.

정상의 신전,페트라,Jordan


페트라 입구에서 부터 약 5킬로의 긴거리를 계곡과 가파른 언덕을 넘어 산정상에 도달하면 또 다른 신전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읍니다. 이 Monastery에서 옛날 이곳 신전의 주인이었던 Nabatean들은 회의도 하고, 또 생활도 했었다고 합니다. 옛모습을 거의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위대한 인류 유산의 존재를 재확인 하면서, 건축하느라 힘들어 했을 당시의 모습도 머리속에 그려 보았읍니다.

Sunday, November 11, 2007

Sun Set 을 동무삼아 그속으로....


뭔가 자꾸만 아쉬워지는, 그래서 멍청히 서서, 멀리 보이는 저 너머에 뭔가 있지 않을까?라는 초점없는 기다림과 함께 그상상이 끝이지 않습니다. 잡힐듯, 보일듯... 그런것들을 찾아 헤메다 여기까지 오게된것은 아닐까?
마음은 동심이 되여, 시장가서 설빔을 준비해 오시겠다고 아침일찍 떠나신 어머님이 이제는 오실거라는 막연한 기대를 갖고, 서산에 지는 석양녘에 동네앞 포구에서 기다리곤 했던 어렸을적 생각이 되살아 납니다.
육신은 벌써 그때 당시의 어머니보다 더 긴 세월을 살아왔음도 깨닫습니다. 벌써.....

산행은 심신단련 원천



산행은 항상 마음을 가볍게 해줍니다. 오늘은 늦가을의 계속내리는 가랑비도 그치고 하늘은 쾌청했읍니다. 매달 한번씩 걷는 회원들과 Kelso Conservation Area 에 있는 Trail Route 를 따라 등산했읍니다. 이곳까지 오기위해 지도를 보고, 한시간을 고속도로를 달려 온것입니다. 오늘은 나이어린 후배들과 또 그들이 데리고온 꼬마손님들과 같이 걸었읍니다. 능선을 따라 언덕을 오를때는 숨소리가 거칠어 지기도 하고요. 정상에 올라 전망대에서 멀리 펼쳐지는 파노라마를 보는 재미도 등산을 하게하는 하나의 촉진제가 되는것 같읍니다.
다리가 걸을때는 힘들어 해도, 육신은 튼튼해져 있음을 만져 보고도 느끼고, 또 마음속으로 느끼기도 합니다. 기분이 가볍고요.
그래서 오늘도 짧은 늦가을의 햇볕을 벗삼아, 대자연속에서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인생을 얘기하고....좋은 하루였읍니다.

Friday, November 09, 2007

벌써 30년이 훨씬 넘었읍니다.


세월은 너무나 빨리 흘러 역사속으로 스며들고 있읍니다. 문뜩 석양놀을 쳐다 보면서, 인생이란 무엇인가?라는 깨닫기 어려운 질문을 끝없이 마음속에서 외쳐보았읍니다. 가진것도 없었지만, 또 있었다해도, 당시의 고국실정에서는 갖고 나올수도 없는 가난하기 그지없는, 그런 환경속에서 조그만 이민 보따리와 이제 갖 1.5세된 큰 아이를 안고 공항을 빠져 나올때, 검색대에서 소지품을 검사하던 세관원의 모습이 지금도 기억에 새롭습니다. 첫마디가 "좋은 나라에 이민가시니 참 좋으시겠읍니다" 라고 하면서, 들릴락 말락하게 "저희만 잘 살려고 고국을 등지고 내빼는 자들...." 손에들고 있는 가방을 카운터에, 지시데로 올려 놓으니 가방을 까뒤집어 카운터에 쏟아 붙는다. 엄청난 보물이나 빼돌리는 가방을 뒤지는 눈빛임을 금방 느낄수 있었다. 그러나 나오는것은 전부 싸구려 슬리퍼,면으로된 속내의 등등의 것들 뿐이었으니.....세관원이, 이민가는자라서 더 색안경을 끼고 검사에 임했을 텐데.... 미안 했던지 이민가정 쳐놓고는 빈껍데기뿐임을 보고, 가셔서 잘 사세요. 그리고는 검색대를 통과 했었는데... 이민자의 삶이란 너나 할것없이 정신적, 물질적으로 고달픔이 생을 마감할때 까지 함께 하는것임을 일찍부터 알고 앞만보고 뛰었다.살아남기 위해서. 문화의 차이, 언어장벽에서 오는 불이익 등등.... 현실속에서는 감상은 통하지 않는 이민자만이 느낄수 있는 한이 항상 응어리져서 깊이서려있다. 그래서 오랫만에 고국을 방문해도 나는 그곳에서도 지금은 이방인 취급을 느낀다. 수도셀수없는 날들을 그래도 고국에 대한 막연한 그리움을 가슴속에 간직하면서 살아왔었는데.... 지금은 그들과도 문화와 언어의 벽을 깊이 느낀다. 이민 1세로서 하루의 앞날이 불투명한 속에서 살아온 삶을 깊이 이해할려고 하기 보다는, 실제로는 체험하기 어려운 감상적인 소설속의 삶같은 면을 고국의 연속극에서 가금씩 만날때는
그게 이민자의 실상은 아닌데....하고 안타까워 할때가 참으로 많았다. 젊은날의 패기 하나로 줄곳 달려왔는데 어느새 해가 서쪽으로지는 석양을 맞이하고 있다.
이제는 장성한 두아이가 엄마, 아빠 고생많이 했으니, 열심히 여행 다니면서 남은 생애 즐기라고 오히려 성화다. 자식들한테 남겨줄려고 할것 못하고 그러지 말란다. 정말 성화다. 이런 애기를 들으니, 무대에 서서 더 연극을 하고 싶어도 못하겠다는 시대와 시간의 흘러갔음을 가슴 절절히 느낄뿐이다.
잘 살아온 삶인가? 그러나 그렇다고 자신있게 말할 용기는 없다. 차라리 팔자려니 그렇게 생각하고싶다.
그래도 아이들이 남의 눈치안보고 소신껏 이사회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위안이 되는면도 있다. 이사회에 적응할만큼 보통시민으로 소박히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먼훗날 이 아이들을 통해서 우리 부부가 낯선땅에 이민와서 몇십년간 살다 갔다는 흔적을 보여줄수 있을것이기 때문이리라.

Sunday, November 04, 2007

보석상의 전시장,두바이


Show window에 그수를 셀수도 없이 진열되여 있는 보석들입니다. 진열장의 유리한장이 파손되면 그것으로 보석들을 도적맞는것을 방지하기위해 감옥같은 철창을 하고도 전전긍긍하는 이곳 북미 도시에서의 보석상들을 순간적으로 생각케 한 장면입니다.
이곳에서는 엄하게 다스리기에 감히 아무도 그런 못된 생각을 못하는것 같았읍니다. 여자분들이 그렇게도 소유하고 싶어하는 다이아몬드,사파이어,루비 등등..... 같이 구경한 마나님에게 미안 하기도 해서, 실컷 눈요기라도 하도록 권면했을뿐입니다. 너무도 많은 금덩이의 홍수에 마치 놋쇳조각들을 모아 놓은 착각을 할 정도 였으니까요.이러한 보석상들이 좁은 시장바닥의 한 Block을 점령하고 있었읍니다.
북미 대륙에 살고 있다는것이 갑자기 초라해 지는감을 느끼기도 했었답니다. 간사한 인간의 마음.....누구의 탓도 아닌데....

빵공장에서 빵굽는 제과공, 암만,요르단.


암만 시내를 거닐다가 우연히 빵공장앞을 지나게 되였읍니다. 빵을 굽는게 신기해서 열심히 굽는 과정을 창문을 통해서 보았읍니다.
이곳 북미에서는 보통 피타 Bread라고 하는 아랍인들의 빵 같았읍니다. 깊은 Furnace에 반죽을 넣고, 노즐을 통해 분사되는 개스를 연료로 사용하고 있었읍니다. 아랍인들은 어디를 가나 친절하게 대해주는 민족임을 이번 여행에서 느꼈는데, 여기서도 예외는 아니었읍니다. 우리 부부가 관광객인것을 알아차리고 안에서 한사람이 나오더니 안으로 들어와서 구경해도 좋다고 한다. 따라 들어가서 옆에서 보니 더 실감이 났다.
금방 화덕에서 꺼낸, 풍선처럼 부풀려진 빵몇개를 주면서 맛을 보란다. 고소하고 우선 따끈해서 좋았다. 입맛에 꼭 맞는것 같았다.

Chariot Race,Jerash 경기장, 요르단



로마시대의 명장 Pompey장군의 제라시 점령으로, 당시 로마제국의 한 주(Province)였던 시리아주의 일부로 편입된 제라시에는 원형광장및 많은 사원들을 포함한 많은 유적이 현재도 남아 있읍니다. 이곳은 당시의 기마병들의 경기장입니다. Chariot Races는 로마제국의 한 상징 처럼 오늘날 후손들은 기억하고 있다고 보는게 정설입니다. 2005년도 여름부터, 1500년만에, 당시의 기마병들의 경기를 재현시켜, 관람객들에게 보여 주고 있었읍니다. 저희가 도착했을때는 막 경기가 끝나, 재미난 말들의 경주를 보지는 못했읍니다. 경비를 서고있는 현직 군인들과 같이 기사(knight)가 된기분을 잡아 보았읍니다. 당시의 Hadrian 대왕을 기념하는뜻으로 Hadrian Arch를 AD 129년경에 경기장의 남쪽 입구에 건축한것으로 당시의 위용을 자랑하고 있읍니다.
지하에서 그분들은 지금은 뭘하고 계실까요? 모두가 한순간인것을 깊이 느낍니다.

재래시장,카이로


카이로 시내의 El Guria에 있는 Khan El Khalili Bazar의 재래 시장입니다.
옛날 고국의 남대문 시장을 연상케 하고도 남는 곳이었읍니다. 위생관계가 염려안될것 같이 여겨졌는데, 나자신도 모르게 어느새 긴세월동안 선진문화권에 살다보니, 불결한 위생에 대한 저항감이 강하게 생겨, 길거리에서 음식을 사먹게 되지가 않았읍니다.
환경의 변화에 이렇토록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내자신에 놀랐을 뿐입니다. 어렷을적의 열악한 환경을 기억에 그리면서,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을것으로 장담했었는데...... 고국에서 1960년대말이나,1970년대초의 서울역 거리를 연상하면,환경의 열악함을 느낄수 있으리라 믿어집니다.

Saturday, November 03, 2007

Belfountain Conservation 의 자연모습.

자연속의 아름다움은 어디에서나 쉽게 접할수 있는곳이 캐나다의 큰 자랑중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이곳 자연 환경 보호구역안의 공원은 계곡속에 깊숙히 묻혀 그 오묘함을 잘 간직하고, 많은 관람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곳입니다.
숲속 오솔길은 또한 많은 등산객, 산책객들의 건강을 지켜주는 곳이기도 하고요.
계곡속의 폭포위로 연결된 흔들다리는 바로 밑으로 흘러 떨어지는 폭포와도 잘 어울리고요.
이렇게 큰 규모의 자연환경 보호구역을 인근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관리하고 있다는 것이 놀랍기도합니다. 인근 숲속에는 한국인들의 사랑을 받는 식품중의 하나인 산마늘이 많이 있어서 이른 봄철에는 한인들의 발길이 더 바빠지는 곳이기도 하답니다. 다음 세대를 위한 자연보존이 우리생활의 일부가 습관화 된다면 문제는 간단할텐데...... 쉽게 고쳐지지 않는게 습관인것을 깊이 느낍니다.

역사가 이어지는 현장모습


저의 condo 창문을 통해서 바라다 보이는 온타리오 호수에는 셀수도 없는 많은 Waterfowl들이 더불어 살아가고 있는데, 봄철이면, 다음세대를 이어받을 귀여운 새끼들이 물위에 떠서 세상구경 하는것을 많이 보는중에서, 유난히도 백조가 마음을 끌었읍니다. 우리인간 세상의 역사가 이어지는것, 이것들의 삶과 근본은 같은것을 요즘은 조금씩 가슴을 통해서 느낍니다. 이제 추운 겨울을 맞이하는 시점에서, 여섯마리의 새끼는 오직 한마리만 생존해 있음을 지금도 봅니다. 다 지켜서 키워내지못한 어미백조의 생각과, 이제 다 장성해서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우리세대의 아이들의 삶을 연결 시켜 보면서 부질없는 생각도 해 보게 됩니다. 역사에는 골곡과, 희열과, 아픔도 수없이 같이 굴러가는것을.... 때로는 너무나 심하게 상처가 나서, 낙오했다 다시 궤도를 찾아 서서히 굴러가는것도 보면서....... 아침햇살이 눈이 시리도록 부십니다.

Friday, November 02, 2007

Perce 시내와 건너편 섬.



퀘백주의 Gaspe반도를 하루종일 달려, Gaspe 도착했읍니다. 거기서 조금 더 달리면 Perce라는 조그만 옛날 어촌이,지금은 관광타운으로 변해있는 여름 휴양지입니다. 우리가 묵었던 언덕위의 호텔에서 바라본 타운의 일부 전경입니다. 건너편섬은 주둥이 부리가 큰 Northern Gannet의 서식지입니다.
섬표면의 절반은 완전히 그새들로 덮혀 있었읍니다. 사진에서는 안보이는 뒷쪽이지요. 또 이곳은 시즌이 되면 고등어와 바닷물이 서로 반반일 정도로 엄청나게 모여 드는곳이라고 했읍니다. 우리가 그곳에 갔을때는 Peak Season보다 조금 일러, 그렇게 많이는 못 보았지만, 낚시로 잡아 올린 몇마리의 싱싱한 고등어로 생선회를 만들어 고국적 정서를 만끽하기도 했읍니다. 더 많이 잡을수도 있었지만, 서툴은 낚시기술을 탓할수 밖에요.... 그래도 운치는 그만이었지요.

지금은 Frontenac Hotel






St.Lawrence강 건너편에서 바라다본 Frontenac 호텔의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마치 옛날을 연상케 하는 큰 Castle 같은 기분을 줍니다. 초창기 양키들과 영토전쟁을 할때는 방어진지로 사용했던 기록이 있읍니다. 현재도 가까이 가서 보면 호텔건물 아래로는 넓직한 성곽이 잘 보존되고, 상곽벽에는 강건너서 침략하는 양키들을 격퇴시키는데 사용했던 대포(Cannon)들이 전시되고 있읍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일행이 둘러앉아 준비해간 음식으로 입을 즐겁게 하고 있읍니다. 가끔씩 건너편을 쳐다보고, 또 보면서... 영국군과 양키들의 강을 사이에 두고 싸웠을 모습을 그려 보면서...

태평양을 건너온 친구부부



토론토 서남쪽에 있는 Crawford Conservation안에 있는 인디언 유적지에서, 오랫동안 상면하지 못했던 우리를 만나기 위해,멀리 태평양을 건너서 왔던 친구부부와 같이 좋은 해후의 시간을 갖었읍니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흘러갔나 쉽게 모두가 너무나 변해 있었읍니다. 옛날에는 이곳에서 인디언들이 보초를 서고 방어를 하던곳이라고 하는데, 흔적을 통해 재현시킨 것이라고 합니다. 옆의 막사에서는 40명 정도의 인디언들이 추장의 지시하에 공동생활을 했었다고 합니다. 그때는 주로 사냥을 해서 삶을 이었다고 하는데....
먼훗날 누군가가 이글과 사진을 본다면, 지금 이사진의 주인공도 옛조상으로서의 평가를 받게 되겠지요? 어떻게 평가가 될까? 궁금하군요. 참 잘 생겼다고? 아니면 좋은 일을 많이,후손을 위해, 했었다고? 그런것 보다는 내면 세계의 진실된 평가를 받게 되는게 더 간절한 바램일텐데......

Yard Sale on Weekend


흔히 볼수있는 시골의 Yard Sale 광경입니다.
주말이면, 시골로 차를 타고 다니다 보면, 많이 접하게 되는 광경이지요.
자기가 사용하다 필요가 없게 되면, 버리지 않고, 누군가가 필요할것으로 인식이되여, 이렇게 차려놓고, 지나가는 이웃사람들에게 보여주고, 나누는것 같읍니다. 어려운 초기의 개척때 어려움에서 자원을 아끼고, 서로 나누어쓰는, 정신이 몸에 배어,한가지도 그냥 쓰레기통에 버리지 못하고 나누어 쓴것 같읍니다. 아주싸게 값을 치르지요.
어떤이들은 Donation 기관에 기증하기도 하고요.

호수에서 보물 찾기?


북미 대륙에는 수를 셀수도 없이 많은 호수들(Lakes)들이 있읍니다. 그들중에는 흔히 다 알고 있는 5대호수도 포함되겠지요.
따라서 호수주변에는 주립, 국립 공원들이 많이 있읍니다. 주위경관이 아름답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자연보호를 위해 국가에서 지정하여 관리하고 있는것이겠지요. 호수가에 있는 이공원은 Presquile Provincial Park 입니다.
지층이 전부 암벽으로 구성되여 있읍니다.
뭔가 열심히 찾고 있어 보입니다. 조그만 물고기와 가제가 흔합니다. 심취하다보면, 어느새 시간은 훌쩍흘러와 있읍니다.

활력을 불어넣는 겨울 등반


겨울 등산은 일종의 도전이라고 봅니다.
끝도 없이 이어지는 등산로를 따라 밤새 쌓인 눈위에 첫번째 흔적을 남기면서,가끔씩은 우리보다 먼저 지나간 동물들의 흔적이 있을때도 있지만, 전진합니다. 그들의 움직임은 분명 먹이를 찾기위한 등산(?)이었을것이고, 우린 먹이의 차원을 넘어, 건강한 신체와 마음의 수련을 위한 걸음걸이입니다. 마치고 나서, 커피숍에 들려, 향이 가득한 커피한잔씩 하는맛은 표현으로는 부족할 뿐입니다.
이러한 겨울 운동은 계속되고 있읍니다.

베푸는자와 애걸하는자? 우리는 어디에 있는가?


저희가 살고 있는 온타리오 호수가에는 각종 Waterfowl들이 서식하고 있는데, 이들중 대부분은 철새들인데도 별로 이동하지도 않고, 상주하고 있는것으로 전문가들이 말하고 있읍니다.
눈쌓인 추운날 빵 한봉지를 준비해서, 그들에게 접근하면, 금새 친구가 됩니다. 청둥오리,기러기, 그리고 백조 등등....애걸하는 새들의 모습에서, 진정한 베품의 삶은 어떤것일까? 곰곰히 생각하는 순간입니다.
여름에는 이곳은 보트 launching 하는 ramp로 쓰이는 곳입니다.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곳입니다.
삶.......

페트라 성전으로 가는 통로



산속 계곡 깊숙히 숨겨져(?)있는 Petra성전으로가는데는
암벽으로 둘러싸인 협곡속의 좁은 통로를 통과 해야 합니다.
기암 절벽으로 구성된 암벽의 색갈이 시간에 따라 하루에도 몇번씩 변한다고 합니다. 계곡정상에서 페트라 성전 입구까지는,Wadi Musa(모세의 계곡)라고 불려 지는데, 약 5킬로 정도 계속됩니다.
기원전 3세기경에 Nabataean 족에 점령된 이지역은 Damascus에서 Arabia로 통하는 통로역활을 하면서, 이들은 이곳을 지나는 상인들로 부터 세금을 징수하고, 대신에 대상들의 안전을 지켜 주었다고 합니다. Petra 동네의 입구에는 각종 현대판 여행객을 위한 시설들이 즐비하게 있었읍니다.

Tuesday, October 30, 2007

나보다 더 높은 곳에서 내려다 보는 다람쥐


Lake Ontario옆에 있는 Brighton 의 조금만 카테지촌에 있는 저의 카테지 living room 에서 뒤로 보이는 온타리오 호수의 푸른물을 감상하다가, 우리와 항상 눈치 싸움을 끝이지 않는 다람쥐가 다음작전(?)을 세우기위해 그의 높은 전망대에 올라가 주위를 조심스럽게 살피고 있는 순간을 카메라에 잡았읍니다.. 카테지에서는 항상 문을 닫거나, 더울때는 Screen Door를 사용해서, 그들의 집안 침입을 막아야 합니다. 만약에 집안으로 들어오는 날에는 벽이고, 침구류, 옷종류 기타 아무것도 편치 못하고 상처를 입게 됩니다.
재빠르게 스크린 도어가 잘 닫혀 있는지 다시한번 문단속을 안할수 없었읍니다.
글쌔 구경하기는 참 좋은데.... 이렇게 그이면은 싸움이(?)계속 되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