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rkey는 무척 큰 나라였음을 이번 여행에서 실감했었다. 짧은 며칠동안의 여행에서 어찌 터키는 이런나라고, 저런 나라고.....그런 잣대를 들이대서 재단을 할수 있겠는가. 어불성설이고, 우선 터키국민들은 우리조국국민들보다 Lucky하다는것 하나는 깊이 깨달았다.
터키 공화국의 창시자,Artarurk에 대한 Respect는 과히 놀랄정도로 국민들 모두가 존경하고, 자랑스러워하고, 또 웬만한 사람사는 곳에는 그에 대한, 동상등을 포함한 기념물들이 전시되여 있거나 건축되여 있어, 국가가 위기에 처할때나, 심신이 어려울때, 그곳을 찾아 마음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생각하는, 느슨해진 조국에 대한 애국심들을 다시한번 고취시키는, 상징으로 추앙받고 있었다는 점이다.
특히 수도 'Ankara' 에 웅장하게 건축된 'Artarturk'의 Mausoleum은, 이방인인 나 자신도 그안에서 저절로 고개를 숙여 경배하게 할 정도로, 국가의 상징으로, 터키인들에게 각인되여 있었다. 영웅과 호걸은 태어난 시대와 동시대의 사람들에 의해 다듬어지고 만들어 진다는것을 이번 여행에서 깊이 깨달았다. 우리조국의 근대사를 보면, 국민들의 추앙을 받을만한 민족적 지도자분도 있을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문제는 국민들이 그인물을 보면서 단점을 헐뜯기 보다는 장점을 더 부각시켜, 위대한 지도자나 영웅으로 다듬어야할 기본적 자세가 결여되여 있다는점 또한 깨달았다. 세계제1차대전때, Artaturk장군은 당시 불란서와 영국의 연합군과 Gallipoli반도에서 맞서 싸우면서, Ottoman제국의 병사(터기병사) 100,000명 이상이 목숨을 잃는 손실을 보면서 근대 터키공화국의 창설을 했었다. 당시 연합군은 약 45,000명의 병사들이 목숨을 잃었으니, 숫자상으로 보면 그는 분명 패장일수도 있다 하겠으나, 그점보다는 터키창설의 공을 더 높이 평가하는 터키국민들의 높은 의식이 나는 부러웠었다.
터키는 국토의 많은 부분이 산악지대로 형성되여 있고, 남동쪽 끝 부분, 즉 이란, 이락, 그리고 시리아와 접경지역의 일부가 비옥한 농토로, 옛날 고대 문명의 발상지 '메소포타미아'의 옥토 일부를 나누어 갖고 있는 나라였다.
이번 여행에서, 터키현지인을 상대로 선교에 All-in하고 계시는 선교사목사 부부를 만나서, 그분들의 현지생활상을 보고 들으면서, 어정쩡하게 한발은 선교지에, 다른 한발은 안전하다고 생각되는 곳에 자식들과 재산과 기타 모든소유를 은닉하고(사도행전 5장 1-4참조), 힘들게 신자들이 헌금한 돈으로, 비행기타고 수시로 양쪽을 넘나들면서, 활개치고 다니는, 귀감이 못되는 선교사들에 대한 불신감을 확실히 지우게 해주는, 초기 한국에 온 많은 미국 및 캐나다 출신 선교사들의 헌신적인 삶을 다시 보는것 같은, 헌신적인 삶을 살아가는 그분들을 만나고 교제한것은 나로서는 축복이라고 하고 싶다. 그분들과 많은 대화와 시간을 나눈것도 아니다. 말과 행동에서 확실히 보았기 때문이다.
물질문명이 발달함에 반비례해서, 숭고한 종교적 기본 자세는 어느 종파고간에 꽃을 피울수 있는 정점을 이미지나, 지금은 그하양곡선을 향해 달음질 치고 있다는 느낌을 깊이 받은점도, 걱정거리중의 하나라고 생각됐다. 내가살고 있는곳은 기독교가 바탕에 깔려 있는곳이고, 터키는 이슬람국가이고, 그밑으로는 유대교가 삶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고 본다. 물질이 풍부한 사회속에서, 간절한 마음으로 소속된 신앙에 매진한다는것은, 낙타가 바늘구멍통과 하는것 만큼이나 어렸다는것을 확인하고 온 셈이다. 그런대도 마지막 때가 가까워 오고 있다고 말로만 아우성칠뿐, 리더들의 행동은 없다. 안락하고 편한 삶을 버리고 어느누가 감히 고행의 그길을 가겠다고 행동으로 옮기겠는가?
성경이나, 법전이나 오늘날에는 그속의 진정한 뜻을 자기위주의 잣대에 맞추어, 행동이 뒤따르지 않는 말로만 설파하기 때문에, 감히 Final Destination을 걱정하지 않을수 없었다. '기독교 성지순례' 여행을 자주 하는것을 봐왔다. 성지순례에 대한 잘못된 관행도, 리더들이 쉽고 편한 곳만을 선호한 탓에, 순진한 양들이 그에 현혹되여 끌려다니고 있다는 인상을 깊이 받았다. 신앙을 지키기위해서 생명까지 바친, 믿음의 조상들의 발자취를, 내가 그속에 들어가서 보고 느껴 볼수 있도록 인도해준 리더가 과연 몇이나 될까?
터키하면 그들 고유의 목욕문화일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Hammam이라 부른다. 이번 여행에서 꼭 한번 경험해 보고져 했는데, 시간에 쫓겨 기회를 잡지 못하고 여행을 끝낸점이다. 같이 구룹여행했던 다른 분들중 여러명이 Hammam 경험한 얘기를 들려줬는데, 터키인들의 문화와 삶을 느낄수 있는곳이라고 그들은 설명했다.
로만제국이 오래 지배했던 터키의 유적지는 속된말로 '돌덩이 유적'으로 표현될만큼 돌과 연결되여 있음을 보았던 점이다. 유적지의 남아 있는 페허는 돌 뿐이었으니까. 그나마 유적지의 관리소흘로 계속 페허가 돼 가고 있는 유적지도 있어, 보는 마음을 안타깝게 하기도 했던곳이 여러번 있었다. 장님들이 코끼리를 만져보고, 몸둥이를 만진분들은 큰 집같다고 했고, 다리를 만진 분들은 큰 기둥같다고 감히 평했다는 우스개 소리가 귓전을 때린다. 내가 본 터키인들의 삶과 유적지 탐방이 혹시 그와 같은 우를 범한것은 아닌지 심히 조심스럽다. 단지 단편적으로 내가 본것과 느낀것에 한해서만 두서없이 써본 것이다. 이다음 더 시간이 흐른뒤에 읽어 보면, 어리석음이 더 많이 보일것이다. 감사.
터키 공화국의 창시자,Artarurk에 대한 Respect는 과히 놀랄정도로 국민들 모두가 존경하고, 자랑스러워하고, 또 웬만한 사람사는 곳에는 그에 대한, 동상등을 포함한 기념물들이 전시되여 있거나 건축되여 있어, 국가가 위기에 처할때나, 심신이 어려울때, 그곳을 찾아 마음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생각하는, 느슨해진 조국에 대한 애국심들을 다시한번 고취시키는, 상징으로 추앙받고 있었다는 점이다.
특히 수도 'Ankara' 에 웅장하게 건축된 'Artarturk'의 Mausoleum은, 이방인인 나 자신도 그안에서 저절로 고개를 숙여 경배하게 할 정도로, 국가의 상징으로, 터키인들에게 각인되여 있었다. 영웅과 호걸은 태어난 시대와 동시대의 사람들에 의해 다듬어지고 만들어 진다는것을 이번 여행에서 깊이 깨달았다. 우리조국의 근대사를 보면, 국민들의 추앙을 받을만한 민족적 지도자분도 있을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문제는 국민들이 그인물을 보면서 단점을 헐뜯기 보다는 장점을 더 부각시켜, 위대한 지도자나 영웅으로 다듬어야할 기본적 자세가 결여되여 있다는점 또한 깨달았다. 세계제1차대전때, Artaturk장군은 당시 불란서와 영국의 연합군과 Gallipoli반도에서 맞서 싸우면서, Ottoman제국의 병사(터기병사) 100,000명 이상이 목숨을 잃는 손실을 보면서 근대 터키공화국의 창설을 했었다. 당시 연합군은 약 45,000명의 병사들이 목숨을 잃었으니, 숫자상으로 보면 그는 분명 패장일수도 있다 하겠으나, 그점보다는 터키창설의 공을 더 높이 평가하는 터키국민들의 높은 의식이 나는 부러웠었다.
터키는 국토의 많은 부분이 산악지대로 형성되여 있고, 남동쪽 끝 부분, 즉 이란, 이락, 그리고 시리아와 접경지역의 일부가 비옥한 농토로, 옛날 고대 문명의 발상지 '메소포타미아'의 옥토 일부를 나누어 갖고 있는 나라였다.
이번 여행에서, 터키현지인을 상대로 선교에 All-in하고 계시는 선교사목사 부부를 만나서, 그분들의 현지생활상을 보고 들으면서, 어정쩡하게 한발은 선교지에, 다른 한발은 안전하다고 생각되는 곳에 자식들과 재산과 기타 모든소유를 은닉하고(사도행전 5장 1-4참조), 힘들게 신자들이 헌금한 돈으로, 비행기타고 수시로 양쪽을 넘나들면서, 활개치고 다니는, 귀감이 못되는 선교사들에 대한 불신감을 확실히 지우게 해주는, 초기 한국에 온 많은 미국 및 캐나다 출신 선교사들의 헌신적인 삶을 다시 보는것 같은, 헌신적인 삶을 살아가는 그분들을 만나고 교제한것은 나로서는 축복이라고 하고 싶다. 그분들과 많은 대화와 시간을 나눈것도 아니다. 말과 행동에서 확실히 보았기 때문이다.
물질문명이 발달함에 반비례해서, 숭고한 종교적 기본 자세는 어느 종파고간에 꽃을 피울수 있는 정점을 이미지나, 지금은 그하양곡선을 향해 달음질 치고 있다는 느낌을 깊이 받은점도, 걱정거리중의 하나라고 생각됐다. 내가살고 있는곳은 기독교가 바탕에 깔려 있는곳이고, 터키는 이슬람국가이고, 그밑으로는 유대교가 삶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고 본다. 물질이 풍부한 사회속에서, 간절한 마음으로 소속된 신앙에 매진한다는것은, 낙타가 바늘구멍통과 하는것 만큼이나 어렸다는것을 확인하고 온 셈이다. 그런대도 마지막 때가 가까워 오고 있다고 말로만 아우성칠뿐, 리더들의 행동은 없다. 안락하고 편한 삶을 버리고 어느누가 감히 고행의 그길을 가겠다고 행동으로 옮기겠는가?
성경이나, 법전이나 오늘날에는 그속의 진정한 뜻을 자기위주의 잣대에 맞추어, 행동이 뒤따르지 않는 말로만 설파하기 때문에, 감히 Final Destination을 걱정하지 않을수 없었다. '기독교 성지순례' 여행을 자주 하는것을 봐왔다. 성지순례에 대한 잘못된 관행도, 리더들이 쉽고 편한 곳만을 선호한 탓에, 순진한 양들이 그에 현혹되여 끌려다니고 있다는 인상을 깊이 받았다. 신앙을 지키기위해서 생명까지 바친, 믿음의 조상들의 발자취를, 내가 그속에 들어가서 보고 느껴 볼수 있도록 인도해준 리더가 과연 몇이나 될까?
터키하면 그들 고유의 목욕문화일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Hammam이라 부른다. 이번 여행에서 꼭 한번 경험해 보고져 했는데, 시간에 쫓겨 기회를 잡지 못하고 여행을 끝낸점이다. 같이 구룹여행했던 다른 분들중 여러명이 Hammam 경험한 얘기를 들려줬는데, 터키인들의 문화와 삶을 느낄수 있는곳이라고 그들은 설명했다.
로만제국이 오래 지배했던 터키의 유적지는 속된말로 '돌덩이 유적'으로 표현될만큼 돌과 연결되여 있음을 보았던 점이다. 유적지의 남아 있는 페허는 돌 뿐이었으니까. 그나마 유적지의 관리소흘로 계속 페허가 돼 가고 있는 유적지도 있어, 보는 마음을 안타깝게 하기도 했던곳이 여러번 있었다. 장님들이 코끼리를 만져보고, 몸둥이를 만진분들은 큰 집같다고 했고, 다리를 만진 분들은 큰 기둥같다고 감히 평했다는 우스개 소리가 귓전을 때린다. 내가 본 터키인들의 삶과 유적지 탐방이 혹시 그와 같은 우를 범한것은 아닌지 심히 조심스럽다. 단지 단편적으로 내가 본것과 느낀것에 한해서만 두서없이 써본 것이다. 이다음 더 시간이 흐른뒤에 읽어 보면, 어리석음이 더 많이 보일것이다.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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