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ch 14th,2010.
Gereme지역에는 볼것들이 너무나 많다. 비둘기 계곡(Pigeon Valley)은 말그대로 많은 비둘기들이 날아와서 그곳에 있는 먹이를 먹고, 때로는 사람들이 먹이를 일부러 계곡에 뿌려주면 실컷먹고, 그곳에 바로 배설을 한다. 주위 농민들은 배설물을 모아 비료로 농작물 가꾸는데 사용했다고 한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비둘기들이었기에 비료를 생산하는 공장처럼 그비둘기들이 이용됐었다는 얘기인가? 우리가 그곳에 갔을때는 관람객들을 위한 몇개의 간이노점상과 계곡아래 보이는, 풍상에 시달리고 깍여 모양이 이상하게 변해버린 봉우리들...
그리고 Pigeon Valley임을 알리는 간판이 댕그러니 서 있었을 뿐이었다.
Ucchisar Village는 지금으로 부터 약 3,000년전부터 사람들이 살아온 마을이라고 한다. 지금은 불과 몇년전부터 현대식으로 지은 집들이 군데군데 건축되여 같이 조화를 이루어 살고 있지만, 대부분의 집들은 전부, 옛날에 화산이 폭발하여 형성된 오밀조밀한 봉분같은 산허리에 굴을 파고 생활을 해왔고, 지금은 몇안되는 주민들만이 그토굴속에서 삶을 살아가도록 정부의 조치가 있단다. 또한 터키정부에서는 이러한 집들의 재산가치를 인정하여, 정식건물로 등기되여 있고, 상거래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했다. 이러한 토굴(Cave)들이 너무나 많이 주위에 흩어져 있다. 잠깐 일행의 대열에서 빠져 한토굴집 정문에 들이 닥쳤다. 한식구가 마침 터키식 Tea를, 리빙룸으로 생각되는 입구의 방에서 즐기고 있었다. 'Good Niden'하고 터키식 인사를 했더니, 반가히 맞이 한다. 무조건 안으로 들어 오란다. 우선 사진을 몇장찍고, 안으로 들어갔다. 티를 한잔 권한다. 부부와 어린딸(초등하고 3-4학년정도)과 2살정도된 아들이 같이 살고 있는것 같았다. 우선 언어가 서로 통하지 않으니 깊은 대화는 이어질수가 없었다. 딸과 남편 되시는분은 나를 앞세우고 집안 구경을 시켜줬다. 침실이있고, 그뒤로는 더 큰 Family Room이 있었는데, 그곳에는 현대식 모든 생활도구들이 질서정연하게 배치되여 있어, 안에서볼때는 보통의 집안구조와 다를게 없어 보였다. TV, Computer 등등.... 더 놀랜것은 현대식 수세식 화장실이 설치되여 있었다. 즉 City Water가 높은 이곳까지 공급되고 있다는 증거였다. 안에는 예상과는 달리 아주 건조하여, Bug같은것들이 전연 보이지 않았고, 바닥또한 깔려있는 카펫이 깨끗했다. 부엌에는 굴뚝도 밖으로 이어져 있었다. 토굴이지만, 먼지가 없다는뜻으로 이해 됐다. 계속 사진을 같이 찍기도 하고, 물론 E-Mail주소를 받았다. 구경을 하고 집을 나설려고 하는데, 문밖에 Lunar가 어느새 뒤쫒아와 서 있다. 모두가 Lunar도 반갑게 맞아준다. 이집앞에서 내려다 본 경관은 경이롭기까지 했다. TV용 Dish가 집문앞에 설치되여있는것이 현대와 과거의 만남장소인것을 증명이라도 해주는것 같이 보인다.
Guide의 설명에 의하면, 1954년도에 발생했던 대지진으로 많은 토굴들이 손상을 입어, 몇채의 집을 제외하고는, 정부의 조치로 거의 다 빈토굴로 남아 있다고 한다. 우리인간의 지혜는 그끝이 없어 보인다. 이지구상에 이러한 토굴부락이 현존하고 있는곳이 또 있을까? 짧은 만남이었지만, 어렸을때 알뜰히도 살펴주곤 했던 누나들과 아쉬운 헤여짐을 나누는 느낌이었다.
이번에는 Guide가 우리일행 전부를 앞세우고, 또 다른 토굴집으로 향했다. 그집은 Guide가 관광단을 이끌때마다 들리곤해서 잘 아는 사이라고 했다. 집앞에는 조금만 마당도 있고, 마당 끝에는 수세식 변소가 설치되여 있는게 먼저 눈에 띄었다. 문을 노크하니 주인아주머님이 반가히 우리를 맞이한다. 안의 구조는 조금전 내가 봤던 집보다는 적어 보이고, 생활이 궁색한것으로 보였다. Living Room의 양쪽에 자연적으로 깍아 만든 긴소파에 모두가 앉았다. 의례히 전통차를 대접하겠다고 한다. 집식구는 7-9살 정도로 보이는 딸과, 또 다른 처녀가 있었다. 그런데 그처녀는 미국의 텍사스에서 여행와서 며칠전부터 이곳에서 지낸다고 했다. 앞으로 3-4일 더 지내다 다시 여행길을 떠난다고 자기를 소개했다. 머무는 동안에 딸아이에게 영어를 가르쳐 주기로 했단다. 이곳 터키의 영어 열기도 대단한것 같다. 이집은 리빙룸 앞쪽에 벽을 헐고 창문을 설치해서,창문을 통해 그밑으로 전개되는 경관이 아름다웠다. 부엌도 구경시켜주고, 조그만 창고도 보여 주었다. 물론 전기도 들어와 있고....터키나라의 남쪽에 있는 '두바이'에서는 지상 800미터까지 쌓아올린 빌딩에서 생활하고 있는데.... 삶의 방법도 지형에 따라 이렇게 달라지고 있구나라고, 창조주의 오묘한 질서를 느낀다.
Goreme Open Air Museum을 방문했다. 이곳 Cappdocia(갑바도기아)의 Goreme의 첫번째 토굴교회가, 성경 신약 베드로전서 1장 1절에 나오는 지역중의 하나임을 상기해 볼때, 이토굴교회중의 하나가 아니였을까를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당시의 어려웠던 믿음생활의 여건을 고려해 볼때 선배들의 강인함에 고개를 숙일수 밖에 없었다. 그후 바위산속에 토굴을 파서 만든 주거용집들이 계속늘어났었고, 우리가 찾은 이 박물관은 훨씬 뒤늦은 6th-10th 세기에 형성됐었던 피난교회로 현재 11곳의 작은 교회들이 박물관으로 바뀌어 관람객들에게 전시되고 있는 곳이란다. 금지된 믿음생활을 하기위해, 목숨을 담보로 하면서, 이런 외따른곳에 토굴을 파고 생활을 했었다니... 당시의 믿음의 선배들이 느꼈던 신체적 고통과 어려움은, Meditation속에서 주님과 만나 즐겼던 그희열에 감춰져, 고통과 어려움으로 느껴지지 않은 생활이었을 것으로 이해하고 싶어진다.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나의 믿음의 자세로는..... 견뎌낼 자신이 있을지 의문이 생길 뿐이다. 각교회의 입구에는 영어,아랍어, 터키어로 설명문이 붙여져 있어 이해를 돕고 있어 편했다.
어떤 교회는 거처할 방과 부엌, 그리고 창고도 있었고, 또 어떤 교회는 예수님과, 성모마리아, 천사 Gabriel, 그리고 세례 요한의 모습을 담은 벽화들이 천장에 또는 벽에 그려져 있었으나, 지금은 많이 훼손되고 또 희미하게 남아있어 오랜세월의 흐름속에 많은 인간들이 다녀간 흔적이 그렇게 만들어 놓은것 같았다.
가장 큰 교회가 약 40여명을 수용할수 있었을 것이라고 한다. 부엌의 천장은 음식만들때 발생한 연기로 시꺼멓게 그을려 있기도 했다. 벽화들은 그외에도 우리가 미쳐 기억 못하고 있는 많은 믿음의 선배들의 초상화들이 즐비했다. 특히 벽화의 훼손이 심한곳은, Guide의 설명에 따르면, Ottoman Empire의 말기에 많이 발생했었고, 신생터키 공화국이 탄생하면서, 이곳에서 살고 있는 많은 그리스인들이, 터키정부와 그리스 정부사이에 합의된, 주민들의 교환 계획으로 그리스에 살고 있던 터키족들이 터키 땅으로, 이곳에 살고 있던 그리스인들이 그리스로 건너가면서, 벽화의 일부분을 몸에 지니고 있으면 복이 온다는 미신(?)을 쫒아, 벽화에 손을 대여 이렇게 보기 흉하게 망가졌다고 한다. 이러한 토굴 교회가 형성된것도 일종의 피난교회로 유례가 다른 피난교회들과 비슷했다. 즉 주후 1-2세기경에 예루살렘에서 픽박을 받던 기독교인들이 헤롯왕의 피해 이집트와 터키의 에베소로 피신했었다고 한다. 그들중 상당수는 다시 더안전한곳을 찾아 이곳 Gomere까지 옮겨와 믿음생활을 하게된다. 이곳에서 그들은 산속에 굴을 파서 교회를 세우기 시작하면서 자유스러운 믿음 생활을 하게 된다. 주후 5세기경에 콘스탄틴노플 황제의 어머니가 우연히 기독교를 믿게됐는데, 황제는 어머니의 뜻을 받들어, 기독교를 자유화시켜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에 귀의하는 계기를 만들었다고 한다. 이때 Goreme에 있던 산속토굴교회들이 번성을 더 했고, 더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모여 더 많은 토굴을 만들어 집단 생활을 해 왔다고 한다. 현재 이곳 지하 교회는 11곳이 보존되여 있고, Goreme지역에만 이와 구조가 비슷한 토굴(Cave)가 약 300개 정도 있고, Cappadocia 전지역에는 약 4,000개의 토굴이 현존하고 있다고 설명해준다.
이곳의 토굴을 보러 앞으로도 더 많은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질 것이다. 토굴을 만들어야만 몸을 숨기고 삶을 영위할수 있었기에 그흔적이 4,000개라는 엄청난 규모로 발전했지만, 그광경을 우리는 오늘 감상에 젖어 잠시 걸음을 멈추고, 선조들의 고통을 뒤로한채 감탄만 연발하고 떠나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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