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April 08, 2010

재래시장구경(아시아쪽))by Rev.Mrs.Kim's assistance.






























March,17th,2010. Cloudy.

어제밤 통화에서 Rev.Kim은 선교관계 지역회의 때문에 올수가 없고, 대신 Mrs Kim이 우리 부부를 만나러 온다는 연락이 있었다.Group Tour로서는 마지막밤을 잘 보내고, Rev.Mrs.Kim과 만나기로 약속된 아침 10시경에 Hotel Check-out을 마쳤다. 이제부터는 모든것을 우리 부부둘이서 결정해야 된다고 생각하니, 마치 거리한복판에 버려진 기분이다. 호텔 Lobby에 앉아서 그분이 오시기만을 기다리고 있는데, Receptionist가 손짖을 하면서 전화를 받으라고 한다. Mrs.Kim일것으로 즉각 판단되였다. Traffic Jam에 걸려 약속시간보다 약간 늦어질것이라고, 그렇치 않으면 걱정 하실까봐서 알려드리는 것이라고 말씀 하신다. 고마웠다. 로비에 앉아서 Lunar는 책을 읽고, 나는 호텔밖에 나가 기다렸다. 왜냐면은 얼굴도 서로 잘 모르고, 또 호텔앞의 Parking이 복잡했기 때문이다.
일행이었던 Mr.Darwin부부도 Check-out을 마치고 Pick-up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며칠더 이스탄불에 머물게 된다고 한다. 이호텔은 개인적으로 머물기에는 너무나 비싸(300-400 유로달러/night)다른곳으로 옮긴다고 한다. 드디어 아담한 Honda 승용차에서 한여인이 내리는데, 직감으로 그분이라는것을 느끼고 손짖으로 인사 하면서 마침 비어있는 비좁은 호텔앞 길가에 차를 주차 시키고, 간단한 인사를 하고, 바삐 움직여 Lunar와 함께 Luggage를 싣고, 호텔안을 한번 휘둘러 보고, 차에 올라타니,차는 움직이기 시작한다. 호텔앞은 길도 좁고 차량통행이 너무나 많아 복잡하기 이를데 없었다. 두여자분들의 얘기가 시작되는데 금새 서먹 서먹한 분위기는 사라지고, 과거 토론토에서 있었던 얘기들고 꽃을 피우기 시작한다. 오늘 하루는 먼저 아시아쪽 이스탄불로 건너가 재래시장을 둘러보고, 그다음 다시 유럽쪽으로 건너와 숙소를, 한국분이 경영하는 여관에 정할 계획이라고 말씀해 주신다. 그여관의 숙박료금이 너무나 비싸게 느껴졌다. 마치 이집트 여행시 한국분이 운영하는 Home stay때 느낀 기분이 되살아나게 했다. 그값이면 다른곳에서 편하게, 더 공항과 가까운곳에 숙소를 정하는 쪽으로 계획을 바꾸겠다고 확실히 의견을 전해 드렸다. 첫날 Rev.Kim을 만났을때 상의 했던 우리부부만의 여행 스케쥴과 Air tickets 얘기도 설명해 주신다. 고마웠다. 이분들이 아니였으면 Greece로 갈계획이었었는데, 자세한 얘기를 해주신후, 계획을 바꾸어 터키의 동쪽 끝자락에 있는, 기독교인으로서는 가보아야할곳인, 그러나 발길이 쉽지않은, 지역 이름도 기억하기 어려운(?)곳을 추천해주시고, 비행기표까지 예약해 주시기로 했었었다. 그내용데로 모든 준비를 해 갖고 왔다고 말씀해 주시면서, Rev.Kim이 참석못해 미안함과, 인사를 전해 드린다고 말씀해 주신다. Bosphorus의 다리는 항상 붐볐다. 드디어 어느 골목입구에 차를 세우고 발길은 그뒷쪽 골목을 향해 옮겼다. 아직 오전인데도 사람들이 시장입구에서 부터 북적거린다. 이곳이 재래시장이고, 서민들이 필요로 하는 모든 생필품들이 이곳에서 많이 사고 팔고 하는 곳이라고 설명해 주신다. 필요한 물건을 사러 이곳에 가끔씩 오신다고 한다. 채소류, 옷종류, 잡화. 간이음식점과 그리고 보이는 모습들이, 어렸을때 부모님을 따라 가끔씩 가보곤 했던 고국의 5일장날을 연상케 한다.
Mrs.Kim이 안계셨다면, 한마디의 의사 소통도 안됐을 그렇게 영어는 무용지물로 이곳에서는 안통했다.
물론 값의 흥정도 안됐을것 같았다. Mrs.Kim의 유창한 터키말로 물건흥정도 하고, 모르는 물건에 대한 설명도 듣고..... 사람사는 냄새가 나는곳임을 느끼게 한다. Lunar는 몇장의 Scarf와 조그만 Towels를 구입한다. 아마도 다음 여행시 사용하거나, 주위 친지들에게 선물할 계산인것 같다. 장사를 하는 분들이지만 매우 순수해 보였다. 어떤 상인은 파는 과일을 집어주면서 먹어보라고 권하기도 하고, 자기에게도 사진을 찍어 달라고 포즈를 취하기도 하고....같이 찍자고 나늘 붙들기도 한다. Mrs Kim은 교회식구들과 같이 먹을수 잇는 식품류를 조금 샀다. 바람이 불면 쳐놓은 천막이 소리를 내면서 출렁거리기도 하고.... 걸어도 걸어도 끝이 보이지 않는것 같이 길다. 한가게앞에 진열된 머리핀들이 눈에 띄었다. 고국에서 수입해온것이 틀림없는것 들이다. 뚜렷히 Made in Korea의 상표가 있다. 검정 두건과 옷으로 완전히 얼굴을 감싼 전형적인 이슬람 교도의 여인들도 시장나들이를 하는게 보인다. 슬쩍 카메라 셧터를 눌러 그녀들의 모습을 담아보기도 했다. 그들의 풍습을 모르는 내가 볼때는 그저 답답할뿐이다. 벌써 오후 3시를 가르킨다. 다시 발길을 돌려 유럽쪽 이스탄불로 달린다. Traffic Jam은 아까올때 보다 더 심해져있다. 현재 공사중에 있다는 지하턴넬을 뚫은 급한 이유를 알것같다. St.Sophia뒷쪽의 여관에 숙소를, 한국분이 요구했던 금액에서 절반정도에,찾아 정하고나니, 내일부터 우리부부가 찾아나설 여행스케쥴과 비행기표를 건네 주신다. 설명도 또 해주신다. 아마도 그분마음으로는 마치 어린아이들만을 떠나 보내는 그런 조바심에서 일것이라는것을 느낄수 있었다. 여행스케쥴에는 국경을 넘어 Syria의 Damascus까지 다녀오는것으로 되여 있다. 그러나 순간적으로 나의 생각은 달랐다. 첫째 뻐스로 그곳까지 간다는것은 거의 하루의 시간을 소비해야 하며, 둘째는 우리는 Canada시민이기에 국경을 넘을 때 시비가 생길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현재 캐나다와 시리아사이의 외교관계가 꼭 편한것 같지만 않은것을 알고 있기에 말이다. 일단 현지에 가서 최종 결정하기로 마음을 다지고, Rev.Mrs Kim에게 다시한번 감사의 말을 해드렸다. 가벼운 마음으로 나오니 저녁 5시가 조금 넘었다. Rev.Mrs Kim이 작별 인사를 고한다. 급한 계획이라도 이시간 이후 있는거냐고 물었더니 그건 아니라고 하신다. 꽉 붙잡았다. 그냥 보내 드리기에는 마음이 허락치 않았기 때문이다.
점심도 먹는둥 마는둥 했었는데.... 저녁은 같이 먹고 싶다고 간청 했더니,먼저 집에 전화를 하신다. 집에는 어린 두아이들과 손님이 한분 계신다고 들었는데 확인하시는것 같았다. 고맙게도 응해 주신다. 근처에 한국분이 하시는 식당이 있다고 그곳으로 가면 어떠냐다. 물론 Ok다. 좁은 골목길을 돌고 돌아 태극싸인이 보이는 식당앞에 주차했다. 어느 현지 선교사부부가 개업하여 몇년하면서 한국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진, 음식도 잘하고 값도 싸고...,그런식당이라고 설명해 주신다. 오랫만에 김치도 먹어볼 기대감이 컸다. 식당안에는 손님이 아무도 없었다. 조용하기만 했다. 터키Waiter 나타나 한국말로 인사한다. 차림표를 보더니 Mrs Kim이 의아해 하는 기색이다. 그사이 주인장이 바뀌었다고 Waiter가 알려준다. 짬뽕2개, 짜장면 1개 그리고 공기밥 추가 1개. 그것도 내가 먹는 짜장면이 너무 Salty해서 추가로 시킨 밥인것이다. 50리라(33US달러)의 계산서를 보면서, 완전 바가지를 썼다는 기분이다. Mrs Kim도 의외였던것 같다. 저녁 시간인데도 손님이 없는 이유를 금새 알것 같았다. 터키음식을 시켰다면 더풍부하고 맛있는것으로 7-8명이 먹을수 있는 금액이었다.
동족으로 낯선곳에서 만나면 서로 돕고, 믿음이 갈수 있는 분위기를 현지민들이 만들어 주었으면 하는 바램이 강하게 인다. 이와 비슷하게 한인 관광객들을 상대로 바기지를 씌우고 있었던 이집트에서의 한인민박집 생각이 또 기억에서 떠오른다. 한인 관광객들에게도 문제는 있는것 같다. 왜냐면은 그들은 서울의 물가만을 생각하기에 별로 비싸게 느끼지를 못하는것 때문인것 같다. 현지에서 관광을 하게되면 현지의 식당에서 사먹는 음식값과 비교도 하면서 싸고 비싼것을 파악하고, 의미없는 바가지를, 그것도 동족으로 부터, 당하는 일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점으로 생각됐다. Mrs Kim께서 우리의 luggage큰것을 자기가 보관하고 있다가 마지막날 공항에서 전해 주겠다고 제의 하신다. 우리로서는 반가운 일이었지만, 바쁘신 그분들을 또다시 공항에까지 나오게 하는것은 마음의 큰 부담이 되여 사양을 했는데, 여행자의 심정을 그분들은 너무나 잘 알고 계시는터라, 강력히 제안해 오셔, 또 신세를 지기로 하고, 일주일후을 기약하고 그분은 차를 몰고 집으로 가고, 우리는 어제밤에 묵었던 숙소에 비하면 너무형편없는 침실에서 Back-packer로서의 첫밤을 맞이했다.
Rev.Kim부부가 현지인들을 상대로 선교하고있는 교회에서 한번이라도 예배를 드렸어야 했으나, 시간이 맞지 않아 그기회가 없음이 안타깝다. 두아이들도 그분은 이곳에서 낳아 기르면서, 선교를 위해 현지인화 된 선교사 부부. 그두분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토론토에서 많은 선교사분들이 선교를 위해 타지로 떠나면서, 아이들과 모든 소유는 후방에 두고,부부만 가서, 혹은 혼자가서, 활동하고 계시는것이 전형적인 선교 모습과는 대조를 이룬다. 우리 부부자신도 그렇게 생각하고 Rev.Kim선교목사 부부를 만났던 것이다. 그러나 확실히 구분되는 점은, Rev.Kim선교사 부부는 신혼부부시절부터 젊음을 밑천으로 복음을 이곳 회교의 나라에서 전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생활터전이 전부 이곳 현지에 있다는점이다. 아이들 교육이나, 경제적 Foundation이 이곳외는 아무데도 없는, 마치 초기 고국에 왔던 미국의 선교사부부들을 연상케 하는 분들인것을 이번 만남에서 알았다. 초기미국의 많은 선교사 부부들은 아이도 현지에서 낳아 키우고 또 현지에서 생을 마감했었던 분들이라는것을 선교공부 하면서 배웠었고, 그것이 진정한 선교라는것도 어렴푸시 알고는 있었지만, Rev.Kim부부를 통해서 확실히 증명을 할수 있게한다. 앞으로 더 많은 교류와 이분들의 진정한 선교의 뜻이 고국이나, 토론토 현지에도 알려져, 지원동역자들의 역활이 더 커졌으면 하는 바램이다.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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