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ch 18th,2010. Thursday,오전탐방. 맑음.
Sanli Urfa행 터키국내선 비행기를 타기위해 새벽 5시에 기상이다. 아직 밖은 어둡다 Shuttle Bus가 45분후면 우리를 Pick-up하러 오기때문이다. 재일 빠르고 값싼교통수단이 Shuttle Bus를 이용하여 공항에 가는방법이기 때문이다(개인당 8TL). 이곳이 호텔들이 많이있기 때문에 이러한 교통수단이 발달한것 같다. Rev. Kim께서 Advice한 스케쥴 한장 들고 가는 길이기에 밤새도록 알찬 여행을 하기위한 나름데로의 생각을 하느라 잠을 설쳤었다. Lunar도 말은 안하지만, 심정이야 비슷함을 그녀의 움직임에서 느낄수있었다. 보는 각도에 따라 이렇게 하는 여행이 고생이라고 할수도 있고, 이길이 아니면 믿음의 조상의 발자취가 서려 있다는 그곳을, 경제적으로,탐방할 기회가 흔치 않기에, 우리는 즐기면서, 그리고 그분들의 발자취를 찾아가는 것이다.
벨이 울린다. Front Desk의 Receptionist가 손짖으로 뻐스가 왔음을 알려준다. 가볍게 준비한 Back Pack을 Lunar, 그리고 내가 한개씩 어깨에 메고 버스에 오르니 여행객들 여러명이 자리하고 있다. 두군데를 더 돌더니 드디어 큰길로 들어서서 공항을 향해 달리기 시작한다. 뻐스의 손님들은 대부분 세계각국에서 여행온 젊은이 들이다. 그들이 우리부부를 보고 어떻게 생각할까? 젊은이들을 만나 얘기해 보면, 우리 부부를 거의 모두가 다 부러워하는것을 많이 느꼈었다. 그들의 공통적인 말은, 우리부부를 보면서 많은 도전을 받는다고 하면서 좋은 여행 하시라고 Encourage 시켜주곤 했었다.
뻐스안에서 Rev.Mrs Kim이 현지 선교상황에 대해 설명해준말이 머리를 스친다. 아시안쪽 이스탄불 거주지 외곽에 교회가 있는데, 출석인구는 많을때는 150명, 적을때는 30명 정도의 현지티키인들과 Worshiping 한다고 하신 말씀이다. 지방의 많은 사람들이 살기좋고 돈벌이가 쉬운 대도시, 이스탄불을 향해 고향을 떠나오면, 우선 찾는곳이 Rev.Kim 선교사 부부의 교회와 연결이 되여 같이 기거를 하다시피 하면서 믿음생활을 익히게 된다는 것이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차차 주위환경에 적응이 되면 다시 보따리를 싸서 더생활여건이 좋은곳으로 이동하기에, 일종의 쉬어가는 정거장 정도로 여기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도 그분들은 보람을 느끼고, 복음의 씨를 일단은 뿌린것으로 믿기에 반복되는 이러한 선교를 계속 하신다는 것이다. 15년전 처음 아무연고도 없고, 황무지나 마찬가지인 이곳에서 언어를 배우고, 선교의 터전을 잡을때의 심정으로 새로운 믿음의 형제 자매를 받아들이고 보내는것이 아닐까?를 생각해 보게 된다. 복음선교를 위해 우리의 선배들은 순교까지도 서슴치 않았다고 하는데....Rev.Kim선교사 부부의 All-in 모습에 많은 Challenge를 우리 부부는 받았음을 고백안할수 없다.
새벽부터 Traffic Jam에 걸려 시간을 자주보게 했던 뻐스가 드디어 공항입구에 도착했는데, 갈림길한쪽에 뻐스를 세우더니 우리보고 내리란다. 손짖으로 건너편에 보이는 공항청사가 국내선용이라고 하면서 말이다. 세상에 차량왕래가 복잡한 곳에서 내려놓고 걸어가라니.... 우리만 그러는게 아니였다. 상당수의 다른 여행객들도 우리처럼 내려서 걸어간다. 이곳에서는 일반화된 조치인것 같다. 청사안에는 여행객들로 북새통이다.
국토가 넓은 터키이기에 국내선도 이렇게 붐비는것 같다. Check-in을 하기위해 줄을 서있는 사이로 얌전하게 양복입은사람들, 또는 머리에 스카프를 쓴 여인들이 가끔씩 줄을 무시하고 새치기를 하는 모습이 보인다.
먼저 짐을 점검하는 보안검색, 좌석Check-in, 또 다시 검색대를 통한 Luggage점검, 몸수색, 마침내 Gate앞에 도착하니 벌써 탑승을 하고 있었다. 불과 출발 시간으로 부터 5분전이다. 한시간 반을 날아가 Sanli Urfa공항에 내리니 아침 9:10분이었다. 잠깐 비행하는데도, 간단한 식사를 제공하는데, 국제선 Air Canada보다 써비스와 Quality가 더 좋은것을 느꼈다. 비행기안에서 보는 고산지대는 눈으로 하얗게 덮혀 있다.
공항에는 탑승객들의 편의를 위한 Bridge설비가 없어, Tarmac에서 내려 청사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밖에는 택시, 뻐스, 그리고 돌무쉬(Mini Van 같은 차).... 즐비하게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가장큰 뻐스에 다른 탑승객들의 뒤를 따라 올랐다. 옆사람에게 물으니 시내가는 뻐스인데 요금은 10TL이라고 영어로 설명해 준다. 그러면서 자기는 변호사인데 업무차 이곳에 왔다고 인사까지 한다. 고마웠다. 검표원이 앞에서 부터 돈을 걷으면서 내앞까지 왔다. 5TL과 US Money밖에 없어 그에 상당하는 액수를 손에들고 그에게 주었더니, 그냥 지나친다. 검표가 다 끝나면 다시 올것으로 생각하고, 손에 계속들고 있었는데, 다시 오지를 않고 그냥 뻐스에서 내린다.
괜히 마음이 편치 않게 된다. 뻐스는 곧바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약 40여분을 달렸는데 모두가 다 내린다.
우리도 따라 내렸는데, 그것으로 끝이다. 공짜로 타고온 것이다. 세상에 이런 Bonanza가 우리에게 있다니..
같이 내린 두여자와 인사를 하게 됐는데, 자기네도 이곳에서 열리는 Teacher's Convention에 참석차 왔다고 하면서, 숙소를 이미 정했다고 한다. 필요하면 같이 그호텔에 묶지 않겠느냐고 제의해 온다. 인연은 이렇게 우연히 시작되는가 보다. 모든 정황으로 보아 믿을만 하기에 OK신호를 보내고 같이 걸었다.
그들이 들어선곳은 5급호텔 "Hotel Harran"이다. 그녀들 덕택에 호텔을 찾아 헤매지 않고 쉽게 숙소를 정했다. 90TL(US60달러)을 지불하고 하룻밤 묵어가는 나그네가 되는 것이다. 그녀들은 독방이기에 각자 60TL을 지불했다. 방이 배정되자 바로 밖으로 나와 Haran행 뻐스가 있는 Otogar로 가기위해 시내 뻐스에 올랐다. Fare무척 싸다. 1TL이다. Sanli Urfa에서 남쪽으로 약 48킬로 떨어져 있는, 지도상에 아주 조그맣게 표시된 땅, 그곳이 Haran이란다. 그곳에는 1시30분경에 도착했다. 상상한것과는 달리 허허 벌판이고 종착역에서 멀리 조그맣게 보이는 집들이 뜨문 뜨문 보이고, 앞의 언덕위에는 옛성터같은 페허가 우리를 맞이하고 있다. 사전정보가 전연 없기에 페허쪽으로 발길을 옮기는데,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사내가 따라 붙는다. 관광객은 우리부부외는 아무도 없어 보였다. 서투른 영어로 떠들면서 자기가 안내 하겠단다. Lunar가 반대하는 눈짖을 나에게 보냈다. 그만큼 이곳은 성지순례에서도 제외된 외딴곳임을 알수 있었다.
싫타고 하는데도 계속 따라 붙는다. '아브라함이 살았던곳이 저언덕위에 있고.....'혼자 떠들어대는 그와 밀고 땅기고 하는 여러번의 입씨름 끝에 그가 요구했던 안내비에서 대폭 깍아 10TL을 주기로 하고 동행을 허락했다. 그가 하는 영어를 알아듣기가 무척 어려웠다. 동문서답을 하기가 다반사다. 그래도 무척도움이 되는것을 어떻게 하겠는가? 지금은 페허가된 이성터에는 옛날에는 5개의 성문이 있었단다. Alepo Gate, Rocka Gate,Anatolia Gate, Syria gate. 그리고 Mosul Gate. 현재는 오직 Syria Gate만 그나마 형상을 드러내고 있단다. Mosul Gate는 현재의 이락으로 통하고, Syria Gate는 현재의 시리아쪽으로 통하는 문이었다고 설명한다. 이곳 Haran에서 약 8킬로만 남쪽으로 가면 바로 수리아(Syria)라고 한다.
페허가된 성터는 무척 커 보였다. 그안에는 Caravansary도 있었고, 지하저장창고, 적을 감시하기위한 전망대, Immam들의 방, 중앙에 넓은 Hall등등...150개가 넘는 방들이 있었다고한다. 이곳역시 모두가 돌로쌓아놓은,Roman Empire의 건축술처럼 큰 돌덩리로 쌓아올린 성벽들의 흔적뿐이다. 관리가 안돼 군데군데에서 Local들이 배설한 냄새가 진동한다. 이 Castle은 BC2000년경에 Hittitte족들이 건설했다고 하는데, Umayan Muslim들이 공격하여 점령한후 살면서, AD744년경에 Caravansary로 변경사용했다고 설명한다. Guide의 이름은 Mustafa라고 밝힌다. 성터를 지나 더 나아가니 그곳에는 철조망으로 사람출입금지 푯말이 있었다. 현재 고고학자들이 발굴중이라고 한다. 울타리의 한곳에 집터가 보였다. 믿음의 조상 'Abraham이 그의 부인 Sara와 함께 15년 동안 살았던 곳이라고 설명해 준다. 이곳이 성경 창세기 11장 31절에 나오는 '하란땅'이라고 믿어진다. 이제야 조금은 그 위치 추적이 머리속에서 이해가 된다. 그리고 Abraham이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서 재산을 모으고 살다가, 하나밖에 없는 아들 이삭(Issac)의 배필을 찾기위해 자기의 종을 다시 하란땅으로 보냈었던 곳이기도 함을 머리속에 그려본다(창세기 24:10).
역사적으로 Harran은 1260년 Mongol Empire에 점령되기전까지는,이슬람제국인 Fatimis,Zengis,Eyyubis,그리고 Seljuk들의 지배를 받으면서 지나왔다고 한다.
그왼쪽 멀리에도 옛 Mosque의 Minerat이 절반은 부러져 없어진채 덩그러니 서 있다. 하란땅에서 부터 시작하여 메소포타미아의 비옥한 농토가 유프라테스, 티그리스 강줄기를 따라 전개된다고 한다. 지도를 펴고 보니 그럴듯하게 이해가 된다. 지금은 시골 벽지로 변해 인구 겨우 5,000명정도가 이곳에서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 옛성터 바로 옆에는 원추형의 옛날집들이 집단으로 모여 있었다. 시대는 잘 모르지만, 약 200 여년 훨신전의 옛날에 벽돌과 흙으로 만든 원추형의 이집단집의 주인은 9명의 부인을 두고, 47명의 자손을 퍼뜨리면서, 인생을 즐겼다고 한다. 현재는 몇개의 집들이 남아있는데, 현재의 주인은(터키정부) 이곳을 개조하여 관람객들을 상대로 특산품 상점을 운영하고 있었다. .
주민들의 옷차림에서 가난하게 살고 있음을 알수 있었다.입구쪽 벽에 하얀 스텐레스판에 이곳의 역사에 대한 내용이 신기하게도 한글로 새겨져 있어 놀랐다. 몇년전에 미주교포선교단들이 방문한 기념으로 벽에 걸어놓은 것이었다. 그앞쪽 빈터에서는 장닭들이 싸움을 벌이는 광경이 보인다. 얼마만에 보는 닭싸움인가. 어렸을때 시골동네에서 많이 해본 경험이 이닭싸움을 보면서 되살아나, 한참 구경을 했다.
시간이 어느새 Sanli Urfa로 돌아가야할 시간이 됐다. 배가고프다. 마침 버스정류장앞에 간이 터키식 Doner를 파는곳에서 하나를 2.5TL에 샀다. 맛이 괜찮다. 또하나를 샀다. 돌무쉬운전수가 손짖을 한다. 그러나 Lunar는 이미 돌무쉬에 올라 있었기에 느긋했다. 'Abraham'의 생을 생각해 보면서, 믿음의 선조가 되기위한 연단의 어려움을 견디어 내도록 현실삶의 연단을 시킨 창조주의 뜻이 오늘을 사는 우리가 이해할때, 쉽지 않은점들이 많이 있었을것이라는 생각을 많이 해 봤다. Sanli Urfa에 되돌아 올때는 곧바로 직진해와서 갈때 보다 훨씬 짧은 시간안에 도착했다. 몇시간 사이지만 한가한 Haran땅에서 인적이 드문곳에 있다가, 이곳거리를 보니 너무나 사람들이 북적 거리는것같다.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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