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May 10, 2009
외할머니,이젠 마음이 편합니다
자손이 없으신 외할머니는 그동안 외롭게 망우리 산소에 계셨었다. 일찍히 고아들이 된 외손자 외손녀들은 막 이북에서 피난나와 어렵게 살아가는 외할머니손에서 자랐고, 성장하여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된것이다.
같이 이북에서 피난나와 외할머니 손에서 자라,사회생활을 시작하려던 때에, 외할머니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따라 이세상 삶을 접고, 그렇게도 애지중지 하시던, 개구쟁이 외손자,손녀들과의 인연을 놓고 만것이다. 그래서 마지막 쉬시게 될 장지가 망우리가 된것도 어쩌면 당시로서는 당연한 수순이었는지도 모른다. 지금의 나의 아내는 그외할머니손에서, 그녀의 말에 의하면, 가장 많은 사랑과 질책을 받으면서 유아시절과 고등학교시절을 보냈었다고 말하면서, 항상 그런 외할머니를 존경하고, 어린 8남매를 키워주신데 감사함을 가슴에 품과 살아온 것이다.
시간이 흐르고, 서울시가 발전하여 할머니가 쉬고 계시는 곳마져 오래전부터 재개발 지역에 포함돼, 언제 강제 이장 되어야 할지 모를 다급한 사항에 처해 있어 왔지만, 멀리 떨어져 삶을 살아가는 현실앞에서, 말처럼 쉽게 이장이나 기타 다른 방법을 동원하여 편한 자리로 옮겨 모실 기회는 쉽지가 않았었다. 지난번 고국방문때에도 아내는 할머니를 편한곳으로 모셔볼 계획을 세웠었으나, 예상치 않은 걸림돌에 걸려, 계획을 실현 시키지 못하고 말았었는데, 그이후로 거의 하루도 아내는 할머니 걱정을 안한 날이 없을 정도로 할머니에 대한 불효로 전전긍긍하고, 비슷한 처지에 있다가 이장을 완료한 친지들이나, 관련 자료들을 뒤적이면서 이장과 화장 절차계획을 세우면서 그날을 준비하던차, 이번에 고국방문에서 그첫번째 할일로 할머니 산소를 이장하고, 남은것은 화장( cremation)을 하여, 이제는 할일을 해낸것 같아 마음이 후련 하다고 편하게 얘기 한다.
이일을 위해 옆에서 도와준 친지와 조카들..... 그분들에게 감사한 마음 보낼 뿐이다. 막연하기만 하고, 생전 해보지 않았던, 그러나 조상님들에 대한 우리민족의 전통때문에 가볍게 할수도 없는 일이었기에 더 어렵게 느껴졌던 그일을, 할머니의 도움(?)이 작용하였기에 무사히 감당해 낼수 있었던 것으로 믿는다. 할머니 이제는 걱정 안하셔도 됩니다. 앞으로는 당신의 외손녀와 그식구들을 지켜봐 주시고, 보호해 주세요. 생전에 해주셨던 것처럼요.
할머니는 딸하나만을 낳으시고, 그딸을 의지 하면서 생전 살으셨는데, 6/25와 이남으로의 피난살이통에, 그딸 즉 나의 어머니께서 일찍 돌아 가심으로, 위에서 말했듯 어린 개구장이 8남매를 떠 맡으셔, 고생의 삶을, 그러나 굳건한 신앙으로 세상의 어려움을 이겨 내셨던 분이다.
위에 오빠와 언니들의 말에 의하면, 이북에서의 생활은 윤택하고, 여유있어, 아무런 부러움이 없이 살림을 하셨다고 한다.
천상에서의 할머니 삶은 분명히 피난 나오기 이전의 좋았던 생활보다 훨씬 더 편하고, 값지고, 그러면서 주님의 사랑속에서 활짝 꽃을 피우는 그런 생활일것으로 우리는 확신한다. 생전의 할머니의 삶의 중심에는 항상 주님이 계셨고, 또 그분을 의지하면서 사셨기에.....
이제 모든 일정을 마치고 삶의 터전 토론토에 돌아와서, 할머니 영전에 이렇게 인사 드립니다. 할머니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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