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October 20, 2011

9월28일 열다섯째날, Pokhara에서 Himalaya 정상봉우리, Tibetan refuge캠프등.

























9월28일 열다섯째날, Pokhara에서 Himalaya 정상봉우리, Tibetan refuge캠프등.

오늘은 아침일찍 Breakfast를 마쳤다. 그리고는 해돋이를 보기위해 호텔3층 건물위로 올라갔었다. 멀리 북쪽 하늘에 히말라야 산맥중에서 '에베레스트'그리고 '마나슬루'봉과 기타 이름을 모르는 산봉우리들이 흰구름에 가렸다 다시 모습을 들어냈다 하는 모습이 장관이다. 마침 떠오른 햇볕이 봉우리에 싸여 있는 백년설에 반사되여 황홀경에 빠지게 했다. 가운데 봉우리는 옆으로 길게 펼쳐져 있는 모습이 마치 병풍을 둘러 쳐놓은것 처럼, 글로서는 표현할 길이 없을 정도로 가슴을 설레게 위용을 드러냈다, 다시 구름을 방패 막이로 삼아 숨었다.... 카메라에 담아 봉우리의 모습을 보았을때, 정신 차려 들여다 보지 않으면 마치 흰구름이 떠 있는것 처럼 보여 지기도해서, 카메라가 성능이 떨어져서 그러는가 싶기도 했지만.... Lunar와 나는 넋을 잃다시피 하면서 카메라의 셧터를 눌러 대기에 정신이 팔릴 정도였다. 며칠전 새벽부터 비포장 도로를 달려 에베레스트산 정상을 보러 가면서 도로때문에 오면서 가면서 하루종일 시간을 허비하고 궁댕이를 부셔버릴것 처럼 털털대고 달려가 겨우 에베레스트산 봉우리를 보았을때와 다를게 하나도 없다. 오히려 더많은 봉우리들을 지금 이시간에 더 많이 보고 있다. 사진을 찍고 또 찍었다. 행여나 더 좋은 장면을 얻을까하고 .....

이번 여행을 주도했던 Mr.Kan 부부도 올라와 합세하면서 산정상의 아름다움에 다같이 감탄을 연발 하기만 했었다. 아마도 Nepal에 도착해서는 최고로 멋있는, 그리고 잘 보이는 산봉우리를 본것으로 기억될것 같다. 티벳에서 부터 고산병에 시달리면서 구경하겠다고 털털 거리는 뻐스에 몸을 의지 하면서 여기까지 고생하면서 끌려(?)왔던 무거운 마음을 확날려 보냈고, 온 보람을 확실히 느끼게 했으며, 여행오길 참 잘했다는 생각에 확신을 서게 했다.


아칩 8시경에 TV 인터뷰한게 나온다고 Kumar가 어제 저녁에 알려줘 Lunar와 둘이서 방에서 꼼짝않고 알려준 채널에 눈을 고정 시켰지만, 그러한 인터뷰 기사는 나오지 않았다. 괜히 시간만 허비한것이 아쉽기만 했다. Pokhara에서는 자체방송만 하는것 같았다. Tibetan 문화센터로 이동중 Kumar가 방송에 나오지 않았었다고 설명해 주어서 확실하게 알았지만, 그도 Tour Guide신분으로 처음 방송 인터뷰를 해서 자못 기대를 했었던것 같았다. 이유야 어쨋던 낯선곳에 와서 그것도 PD가 우리 일행의 모습을 개인적으로 번갈아 가면서 카메라에 담은후, 나에게 Approach 해서 인터뷰 유무를 묻고, 내가 응하겠다고 했더니,관광객으로서는 나만 잠깐 했었던 것인데, 우리 한국사람들 정서같았으면, 인터뷰가 끝난후 아무개 '방송까지 타고 출세했네, 또는 무슨 빽을 썼기에 PD가 너에게 반해서 인터뷰요청까지 하도록 했는냐? 등등의 Joke를 하면서 Cheers해줄만도 한데..... 그런 motion은 전연 없었었다. 모두를 제치고 한국인인 내가 인터뷰한것에 대해 속으로는 심히 모멸감을 느껴서 그런것 아닌겠는가?고 당시의 분위기에 대해 Lunar가 느낀 감정을 얘기 해준다.

Tibetan Refuge Camp에 들렸다. Monastery도 있고, 학교도 있고, 선물센터도 있었는데, 우리가 들린곳은 선물센터였다.
나이든 할머니분들이 약대털을 가공하여 털실을 만들고 있었고, 옆건물에서는 그들이 만들어놓은 수공예품, 특히 히말라야 산봉우리를 수놓은 조그만 카펫조각들을 많이 팔고 있었다. 일행중 몇분은 한장씩 구입해서, 돌돌 말아서 Packing해준것을 개나리 봇짐마냥 어깨에 메고, 좋아들 한다. 값도 굉장히 쌌다. 약 $20 CDN정도 였다. 카펫의 품질은 터키나 이집트 여행시 보았던 것들과는 비교도 안되게 거칠고 형편없어 보여 마음이 내키지 않았었지만, Lunar와 나는 여행중 쇼핑하는것은 불문율 처럼 하지 않기에 구경하는것으로 족했다. Casher가 영어를 하기에 같이 사진촬영 어때?라고 물었더니 Ok다. 그들이 일하고 있는 카운터안으로 들어가 포즈를 취하자 Lunar가 재빠르게 촬칵촬칵 해댄다. 다른 중국인 일행들은 물건 구경하기에 여념이 없는 상황이었고....

그녀가 자신의 애기를 해주었다. 1959년도 중국이 티벳을 강제로 점령할 당시, Lhasa, Tibet에서 시위에 그녀의 부모가 가담했다가 바로 이곳으로 피난 나왔단다. 그때 그녀의 나이 6살. 그뒤 한번도 고향을 방문한적도 없고, 앞으로도 티벳이 독립되기전에는 고향방문자체도 안하겠다고 결의가 대단했다. 그녀의 친인척들은 현재도 Lhasa에 살고 있지만 연락은 그때 이후로 두절이라고 고향을 등지고 살아가는 난민들만이 느끼는 향수같은게 순간 그녀의 얼굴에 나타나는것 같았다. 어렸을적 교육은 당시 인도정부의 지원으로 할수 있었고, 현재는 모든 난민들과 그후손들은 자체적으로 삶을 꾸려가고 있다고 설명해준다. 그래서 중국공산당 정부를 증오 하지만 여기온분들은 관광객이기에 물건만 팔면 되는것 아니냐고 하면서 웃음을 흘린다. 선물센터 뒤쪽으로는 Monastery와 학교가 있고, 마침 어린 Monks들이 Green field에서 Soccer를 즐기고 있었다.

이번에는 Devis' Falls에 들렸다. 폭포가 있을만한 깊은 계곡은 안보이는데?....Guide의 뒤를 따라 발길을 옮기는데 폭포특유의 힘찬 물부서지는 소리가 요란하게들려온다. 떨어진 폭포물은 천연적으로 형성된 바위 턴넬을 타고 지하속으로 사라져 버리는, 그런폭포는 처음 봤다. 물소리가 요란한 것은 그만큼 떨어지는 물의 양이 많다는 뜻이기도 하리라. 그런데 폭포의 이름이 왜 Nepal자체의 언어가 아닌 영어로 명명되였을까?라고 궁금했는데, Bulletin board에 영어로 설명이 돼 있는것을 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1961년 7월 31일에 당시 스위스에서 이곳으로 관광온 Davis 부부가 이곳 폭포윗쪽에서 망중한을 즐기고 있었는데, 갑자기 물줄기 윗쪽 어딘가에 있는 Phewa Lake가 홍수로 범람하여 폭포를 덮쳤는데, 그때 Mrs. Davis가 미쳐 피하지 못하고 그대로 휩쓸려 폭포속으로 자취를 감추는 사고가 발생하여, 결국 그녀가 죽었는데, 시체는 그후 오랫동안 지하 턴넬을 탐색끝에 겨우 찾아 내긴 했었다고 한다. 그후 그들 부부의 이름을 따서 Davis' Falls 로 명명됐다는 소설같은 설명이었다. 폭포의 길이는 약 500피트, 깊이는 약 100피트라고 적어 놓았다. 떨어진 물이 다시 턴넬속으로 사라지는 그순간에는 Mist가 발생하여 옅은 무지개가 형성되고 있어 카메라의 Shutter를 들이댔으나, 사진에서 다시 볼수는 없었다.

호텔로비에 있는 몇개의 선물상점들중 한곳에서 Lunar가 친지들에게 줄 조그만 여성용, 그것도 Nepal을 상징하는 문양이 깊이 있게 새겨진것으로 몇개를 구입한다. 쇼핑의 요령을 터득해야 바가지 쓰지 않는다는 것을 Lunar는 알고 있는것 같다. 전날 같은 또래의 일행중 두여자들이 같은 종류의 백을 구입할려고 하는것을 보았다가, 오늘 그옆의 다른 상점에서 거의 그녀들이 지불한 가격의 반에 흥정하여 구입한것이다. 상점주인들은 한번 지나가면 다시 오지 않는 관광객들의 특성을 알기에 3배 이상의 가격을 제시하는것 같다. 나는 그래서 쇼핑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들과 씨름하는게 나를 피곤하게 만들기 때문이리라.

카투만두로 오는 Domestic airline을 타기위해 5분 거리에 있는 공항으로 이동했다. 오후 2시45분 출발이란다. 공항다운 분위기는 전연 느끼지 못하겠다. 공항직원인지? 아니면 이곳 주민들인지? 그들은 공항안쪽의 통제구역을 슬리퍼 질질 끌고 다니면서 자유자재로 들락 거린다. 정복을 입은 직원은 그들을 지켜만 보고 있고.... 그들 또한 따분한지 승객용 의자에 촛점없이 앉아 있다. Lunar가 몇개의 Candy를 꺼내 그들에게 주면서 얘기를 시작하니, 나중에는 같이 사진도 찍자고 먼저 제안까지 해온다.

보안 검색대는 움직이고 있지만 앉아서 꼼꼼히 지켜보는 직원은 없다. 불과 25분 날아가는 비행을 위해 호텔에서 오후 1시에 나와, 한시간 연착하는통에 거의 4시가 되여서야, 단발 프로펠러 여객기에 올랐다. 이곳도 분지라서 기온이 높아 후덮지근하고, 에어콘은 없고....며칠전 카투만두에서 Lumbini로 날아갈때 이용했던 30인승 여객기와 동종이다. 지연에 대한 일언반구의 안내방송도 아예없다. 이곳 Nepal이기에 이런 Antique 같은 비행기를 탈수 있다는 행운(?)을 얻은 것으로 기억하고 싶다. 구름속을 뚫고 날아갈때는 Air Gap가 심해 비행기가 요동을 칠때는 약간 겁이 나기도 했었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Nepal의 주거지역은 도시나 외곽지역이나 똑같이 도시계획으로 건설된 맞춤형 주거지가 아니기 때문에 표현을 할수없을 정도로, 하수구부터 시작해서 모든게 Tangle되여 있어, 영원히 풀지못하는 미제의 숙제로 남아 있을것 같이 보인다. 공항의 주차장은 Pothole로 도배되여 있고, 지금은 우기라서 빗물이 그곳에 고여 흙탕물 튀기는것을 다반사고, 그래도 이곳 사람들 눈에는 그런게 보이지 않나 보다. 아무렇지도 않다. 토론토 같으면 시비가 붙을수도 있고, 미안하다고 사죄하고 그럴텐데.... 며칠전 묶었던 Raddison호텔에 다시 되돌아오니 내집에 되돌아온것 처럼 조금은 마음이 편해진다.

http://www.youtube.com/watch?v=W_5nl6Rt85U

http://www.youtube.com/watch?v=smSzBDtcRbY

http://www.youtube.com/watch?v=-oGqh8YpBn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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