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June 22, 2009

새로 잘 만들어진 Marsh Board를 걸으면서-Presquile Provincial Park



















새로 잘 만들어진 Marsh Board Walk을, 어제 하루종일 비가 내린후, 맑게 걔인 오늘오후 아내와 같이 그위를 걸었다. 약 1.5킬로의 새로 잘 건설된 보드위를 걸은 것이다. 시야에는 끝도 없이 펼쳐지는 녹색의 갈대밭이 바람에 물결을 만들어 내는 모습도 좋았다. 이름도 모르는 수많은 종류의 새울음 소리도 같이 어울려 대자연속의 조화를 이룬다. 머리위로는 갈매기들이 높이 떠서 멀리 날아가는 한떼와 낯게 떠서 먹이를 찾기에 분주한 한떼가 바삐 날아 움직이는게 한폭의 그림이다. 개구장이 아이들이 새로 만들어진 보드위를 앞서 뛰어가고 뒤에는 부모되는 젊은 부부가 뒤따라 걸어가면서 우리와 마주칠때, 목례도 하고, 눈인사도 하고.... 그러한 부모와 아이들이 여러군데서 목격된다. 늪지대인 갈대받속으로 Board Walk을 만들어서 그 갈대받위를 걷게 하면서, 어른들에게는 갈대받속을 걸으면서, 자연을 즐기게하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생태계를 공부할수 있는 현장실습장으로도 활용되고 있는 아주 값어치 있는 Board Walk Trail인 것이다. 우리가 걷는 보드웍 옆에 갈대받속의 Pond에서는 백조 한쌍이 갓세상에 태어난 두마리의 새끼들과 열심히 먹이를 찾아 움직이는 모습이 우리가 보기에는 마치 춤을 추는것 같아 보인다. 백조보다 일찍 새끼를 낳아 기르던 기러기와 오리떼들은 오늘은 보이지 않는다. 벌써 자라서 더 넓은, 건너편 온타리오 호수로 옮겨간듯 싶다. 낡은 보드웍이 있을때로 기억되는데, 밤에 한구룹의 어린 학생들이 선생님의 안내를 받으면서, Flash light를 제각기 손에 들고, 보드웍을 걷고, 숲속을 조심스럽게 걸으면서, 밤에 곤충들의 활동상황을 탐구하고 선생은 설명해주고 하는 광경을 본 기억도 있다.

새로건설된 보드웍은 전에것 보다 폭이 훨씬 넓고 단단하게 만들어졌다. 입구쪽의 2층으로된 전망대도 규모가 전보다 훨씬 크고, 짜임새 있게 만들어졌다. 재료도 나무가 아닌 시멘트처럼 단단한 그러면서도 감촉이 포근하게 느껴지는 것을 사용했다. 나도 그위를 걸으면서 사진도 찍고, 물속의 Fish들도 살펴보고, 새끼를 보호하면서 먹이를 찾고 있는 백조부부를 사진에 담기도 했고, 아내가 뭔가를 열심히 보기위해 허리를 굽힐때는 살짝 스냅사진도 찍어보고....이렇게 즐길수 있게 하기위해 춥거나 더운날 갈대밭에 들어가 말둑을 박고, 그위에 Board Walk을 만들어 준 이름없는 봉사자들에 감사 한 마음을 잠시 생각해 보기도 하면서, 지난해 적은액수지만, 새로 만드는데 도움이 됐으면하고, Donation 했던 기억이 떠 오르기도 했다. 약 삼년전에 낡은것을 다 뜯어내고, 새로 만들겠다는 계시판을 본 이후로, 언제나 만들려나 했었는데, 지난해 부터 새로 만들기 시작하여, 약 일년동안, 완전히 자원봉사자들에 의해서 만들어진 보드웍은 이지역의 MPP(온타리오 국회의원)인 Lou Rinaldi가 참석한 가운데 지난주에 개통식(?)을 한것이다. 처음에 계시판을 보고나서, 공원주인인 주정부에서 예산을 세워서 새로 만드는것으로 생각하고, 언제나 시작할려나? 하면서 매년 여름 카테지에서 생활할때마다 들리곤 했었는데 아무런 진전이 없이 그대로 방치된게 2년이나 됐었다. 그런데 지난해 공원입구에 Board Walk건설을 위해 민간인들이 주동이 된 단체에서 총공사비 $300,000 달러를 만들기위해 Donation을 받고 있다는 안내판이 걸렸고, 현재 모금액이 75% 정도 달성됐다고 도표까지 그려서 공원출입자들에게 알려 주고 있음을 보았었다. 아내와 상의하여 나도 이용객중의 하나인데, 물론 공원정문을 통과할때 공원 사용료를 내고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뭔가 도와 주고 싶은 마음이 생겨, 성의를 표시 했던 것이다. 기부는 금전과 노동력제공이 포함되고 있었다. 주립공원이 자리하고 있는 Brighton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주동이 되여, 추운 겨울부터 건설을 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왜 주인격인 주정부가 예산과 인력을 투입하지 않고, 전원 민간인들이 기금을 받아, 민간인들이 만들게 됐는지를 나는 알지는 못한다. 상식적으로는 그런순서로 진행 됐어야 하는데....
계시판에는 또 Donation한 사람들의 이름이 금액의 많고 적음에 관계없이, 알파벳 순서데로 정성스레 타이핑되여 전시되고 있었는데, 그속에 나의 이름도 있어, 사진을 찍었으나, 글씨가 작아 선명하게 보이지는 않았다.
노력봉사자들은 대부분이 은퇴한 senior 들인것을 직접 목격하기도 했었다. 떠들지도 않으면서 조용히 모금하고, 건설하고 그리고 간단한 Podium을 만들어, 개통식을 하면서 그동안의 경과 보고를 하는 담당자의 복장은 허름한 산책객 그모습 그대로 였다.
앞으로 몇십년 동안은 많은 이용객들이 그위를 걸으면서, 자연을 즐기고, 갈대밭이 물을 정화 한다는 새로운(?) 역활도 알게 될것이다.
갈대밭으로 이루어진 이곳의 늪지대는 온타리오 호수의 물을 맑게 정화시키는 일등공신 역활을 하고 있다고 공원안내책자에서 읽어본 기억이 난다. 더울때는 공원숲속에서 서식하고 있는 꽃사슴들도 목을 추기러 늪지대의 물을 찾아 마시는 모습도 가끔씩 보곤 한다. 새끼 사슴은 귀여기 그지없다. 마치 어린 개구장이들이 보드웍위를 뛰기도하고 딩굴기도 하는 모습이 귀엽기도 하고 눈망울이 총총한것 처럼.
이곳은 또 가을철에는 철새들의 쉼터이기도 하다. 황금갈색으로 변해가는 갈대위에 앉아있는 작은 새들과, 먼길을 날다가 쉬기위해 내려앉아 갈대밭속에서 먹이를 찾아 바삐 움직이는 기러기, 청둥오리 그리고 이름모를 많은 새때들이 바로 철새의 주인공인 것이다. 그광경을 우리는 보드웍위를 걸으면서 목격하고, 사진기에 담기도 하고, 사냥철에는 그들을 향해 포수꾼들이 겨냥을 하는 ..... 자연의 순환을 보는것이다.
생명력의 끈질긴면을 보게 되는 또 다른 장면은, 보드웍에 깔린 Plank사이로 갈대순이 자라서 뾰족 튀어나온 순들이 발길에 밟혀서 으깨어지기도하고 부러지기도 한 모습이 계속이어지지만, 그래도 계속 그사이로 자라고 있는 억척스러움을 보면서, 삶의 끈질김을 이해하게 된다.
친지들이 카테지에 놀러 오게 될때는 이곳을 꼭 보여주고 싶다. 건설된 과정을 설명도 해주면서.....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방법도 서로 비교해 보면서, 배워야 할점도 상의 해보면서 그위를 걸어보고 싶은, 그러면서 친교도 나누고싶은, 은퇴한 부부들이 손잡고, 아니면 끼리끼리 걷는 그모습이 보고 싶은 것이다. 감사한 마음을 그들에게 보내면서....

Sunday, June 14, 2009

오랫만의 피크닉 - Humberbay Park West.




















벌써 6월의 중순이 된 달력을 보면서, 금년도에도 세월이 또 절반이 흘러 갔음을 실감하면서, 움찔했다.
등하불명 이라고 굳이 옛말을 되새기지않아도, 콘도뒤의 호숫가의 Humberbay Park West에서 아는 친지들끼리 모여 초여름의 녹음속에서, 정성드려 준비해온 음식을 서로 나누면서 삶의 얘기를 하면서, 느긋한 낯시간을 보낸 기억이 있었던가? 아니다 없다. 이민 초창기에는 주말이면, 당시에는 값싼 LA 갈비를 싸들고, 어린 아이들 차에 태우고, 친지들과 어울려 그 얼마나 쏘다니면서, 캐나다의 넓은 초원속의 공원 숲속과 물가를 찾아 자연을 즐겼었던가. 어느때 부터 인지, 삶의 현장에 묶이면서, 그러한 시간을 갖어본 기억이 거의 없이 지내온 세월이 무척이나 길었던 것을 새삼 오늘 실감한다. 삶의 현장에서 풀려나 자유로운 시간을 갖기 시작한지도 벌써 오랜시간이 지났는데.... 그러한 피크닉을 즐길수 있는 기회가 없었다기 보다는 그옛날 분위기를 되찾는것과 친지들과 어울려, 몇집이 둘러 모여, 피크닉 테이블에서 정성드려 준비해온 음식을 펴고, 찌개를 끓이고 그렇게 한가하게 짧은 캐나다의 여름날을 즐길수 있는 기회를 만들기는, 서로의 살아가는 생활방식이 그동안에 많이 바뀌어, 쉽지가 않았음을 실토 하지 않을수 없다. 오늘은 그러한 서로의 다른 사정들을 뒤로 하고 정말로 오랫만에 평소 격의없이 지내오던 친지부부들과 어울려, 험버베이서쪽공원의 맨끝에 자리를 잡고, 파란 하늘과 그아래로 녹색으로 또다른 지붕을 펼치듯하고 있는 나무밑에 있는 picnic Table을 본거지로 잡고 준비해온 음식과 준비물들을 풀었다. 4쌍의 부부가 풀어논 오늘의 먹거리는 푸짐하게 테이블위에 싸이기 시작하고, 손길들이 바삐 움직이면서 Joke들이 터져 나오기 시작하면서, 웃음이, 마치 장난감 하나를 선물로 받은 어린 아이가 온세상을 다 얻은듯 신나하는, 그런 모습을 연상케 하는, 행동들이 끝이지 않고 이어지기 시작한다. ,이렇게 좋아하고 어린애같은 마음으로 돌아가서, 체면과 인격도 다 뒤에 접어두고, 이해타산이 없이 즐기는 이런 만남이 나이가 들수록 더 어려워(?)지는 원인은 무엇일가? 오곡밥에, 뒷뜰에서 뜯어왔다는 연한 채소류, 밤새정성드려 만들었다는 돼지고기를 김치가닥에 휘감아서 김밥처럼 만들어온 손길, 부침갱이를 만들어와 즉석 구이를 해주는 손길, 푸짐한 김치류, 생선유부의 정겨운맛 그리고 또....
버너위에 올려진 프라이팬에서는 부침갱이가 기름을 튀기면서, 빠르게 움직이는 손길을 따라 지글 지글 익어가고, 어느 한친지는 메고온 Backpack속에서 테트라팩 소주를 꺼내, 귀한 보약이라고 하면서, 준비해온 조그만 잔에 따라 각자에게 돌리는 적시 안타를 치기도 한다. 갑자기 소주를 보니, 얼마전 고국여행시, 인천공항면세점에서 구입하여 뱅쿠버까지는 잘 가지고 왔는데, 그곳에서 트랜스퍼 하면서, 팩키지안의 소주 용량이 초과라고 핸드캐리를 허용하지 않던 보안원과, 여기까지 잘 가지고 왔는데 무슨 소리냐?면서 옥신각신 하다가 결국 쓰레기통에 버리고 왔던 기억이 떠 올랐다. 무사히 통과 했더라면 지금처럼 유용하게 잘 사용했을텐데...라고 말이다. 여름날의 맑은 일요일을 우리만 즐기는게 아님을, 주위를 둘러 보면서 많이 본다. 콘도바로 뒤에 있는 Yacht Club으로 부터 요트를 타고 넓은 호수로 나가는 행열이 계속이어지고, 넓은 호수에 도달해서는 닻을 올리고 바람을 이용하여 항해을 하는 여유있는 모습들이 평화로움을 느끼게 하고도 남는다.
그보다 더 멀리로는 큰 유람선이 지나가는것도 보인다. 멀지않은 곳의 테이블에서도 우리와 같은 피크닉족들이 연기를 피우며 음식을 준비하는 모습이 많이 보인다. 찌개가 다 끓고, 식사를 한다. 계속되던 이야기와 웃음이 잠시 멋는가 싶더니, 그사이에 어느 친지가 또 모두를 웃기는 헛튼(?)농담을 해 하마트면 숫가락의 찌개를 코속으로 부어 넣을번 하기도 하는 Fellowship이 계속된다. 모두가 평상시때의 양보다 더 먹는다고 아우성이다. 그래도 더 먹었다. 정말로 조금 나온 배가 더 불륵 해진것을 느낀다.
이번에는 남자들의 차례라고 하면서, 여자분들의 성화가 빗발친다. 밥을 먹었으니 Trail Walk을 하듯 넓은 공원을 걸으란다. 잘 깍인 잔듸위를 푹신푹신 밟으면서 걷기를 하는데, 한팀의 Scubber Diving족들이 차에서 내려 잠수복을 입고, 잠수 준비하는 장면이 목격됐다. 그들 옆으로가서, 얘기를 걸어본다. 친절하게도 설명해 주는데, 등에 매고 물속에 들어가는 공기통의 무게가 약 150 파운드라고 하는말에 깜짝 놀랐다. 약 60킬로그람정도 되는것으로 계산되였다. 그러나 물속에 들어가면 부력에 의해 약 10파운드 정도의 무게만 느껴진다고 했다. 잠수복은 밀폐가 잘돼 물이 몸속에 스며들지 않는다고 자랑도 잊지 않는다. 잠수복에 붙어있는 지퍼를 지목했더니, 특수지퍼라서 물이 스며들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잠수복을 입고 잠시 있는 사이에도 이마에서는 땀이 흘러 떨어지는 광경을 보니, 잠수복으로 감싸인 신체안의 온도가 계속 올라가는것을 금방 눈으로 볼수 있었다. 일행중 한여자 다이버가 오래 얘기 할수 없다고 하면서 서둔다. 더워서 빨리 물속에 잠수 해야 된단다. 이해가 간다. 즐거운 스쿠버 다이빙을 하라고 인사하고 다시 발길을 옮겨본다. 모터보트들도 요란한 굉음을 내면서 쏜살같이 물을 가를고 튀어나가는 모습이 젊음을 연상케 한다. 백조떼와 기러기때들도 질세라 같이 어울려 수중춤을 추는것 처럼 움직이는 모습이 한가로워 보이지만, 그들은 먹을것을 찾아 바삐 긴목들을 물속에 넣었다 뺏다 하는 삶의 현장인 것이 우리 눈에는 그렇게 보인 것이다. 발길을 계속 옮기면서, 고개를 들어 멀리 눈길을 돌리니, 바로 토론토 도심속의 CN Tower와 고층빌딩들이 멋있게 눈에 들어온다. 그래서 토론토를 호반의 도시라고 하던가? 그옆으로는 Centre Islands의 푸른숲이 싱그럽고 넓게 보인다. 좋은 시간이었기에 시간이 흘러 갔음을 미쳐 느끼지 못하면서 서로의 삶의 얘기들을 나누느라 바쁜데, 어서 저녁을 먹잔다. 그리고 이제 짐을 싸서 집으로 갈시간이 됐다고 한다. 남아 있던 음식을 펴고 다시 저녁을 먹고, 포만감을 느끼면서 시간을 보니 벌써 겨울이면 한밤중이라고도 할수 있는 7시가 넘었다. 아쉬운 헤어짐이었다.
이렇게 좋은 시간과 친지들을 만나게 해주신 그분께 감사를 깊이 하면서..... 모두가 건강 하시기를.....

Saturday, June 06, 2009

Hockley Valley Nature Trail Walk-South Side.












산행하기에 너무나 좋은 날씨였다. 매주 토요일 산행팀과 함께 하기는 거의 2달만에 오늘 처음이다. 오늘은 아내와 정숙이도 함께 했다.
오랫만에 다시 보는 얼굴들이 반갑다. 안면이 있는 얼굴 또는 새로운 얼굴들..... 그러나 같이 산행하는 동료로서 그들이 정겹다.
Hockley Valley Resort를 관통하여 언덕을 넘기까지는 남의 농장을 통과하기에 풀이 가슴까지 덮는 밋밋한 길이었다. 경사면에 아름답게 조성된 골프장에서는 주말 골퍼들이 여념이 없는 모습으로 분주하게 움직인다. 간혹 그들과 손짖으로 인사를 나누면서, 건강을 위한 운동을 하는데 그들은 골프를 우리는 Trail Walk을 하는 서로 다른 각도로 건강을 지킨다는 의미를 생각해 보는게 새삼스럽게 까지 한다. 마치 나는 한번도 골프를 해 보지 않은 자 처럼 말이다. 골퍼가 날린 볼이 아마도 Off fairway로 아니면 옆홀의 Fairway로 날아간 모양이다. "Ball....."이라고 목청을 높여 경고음을 내는 소리가 귓속에 여운을 오래 남긴다. 대원들중 몇명은 소리나는쪽을 향해 시선을 돌리기도 하면서 계속 걷는다. 언덕이 가파르다. 계곡이 나타난다. 계곡의 맨 밑으로 연결되여 있는 트레일이 졸졸 흐르는 계곡물줄기를 가로 지른다. 긴겨울동안 꽁꽁 얼음밑으로 숨어 소리도 잘 안내던 계곡속의 물소리가 계절을 찬미 하는것 처럼 들린다. 어딘가로 계속 흘러내려, 온타리오 호수로 합류할것이다. 토요 산행에 처음 참석한 아내와 정숙이가 잘 걷고 있는지? 수시로 앞서가던 나는 뒤를 돌아 보곤 했다. 대원들속에 끼어 보조를 맞추어 열심히 걷고 있는 모습을 보고, 나는 계속 바삐 걷는다. 밤새 계절병(?)인 알레지 때문에 잠을 설쳤던 아내였기에 더 뒤를 돌아 보게 된것이다. 메뚜기도 한때라는 말처럼, 나무로 우거진 산행길은 모기가 극성이다. 출발할때 모기약을 spray 하긴 했지만, 땀이 흐르면서, 약기운이 다 씻겨 내렸는지 주위를 맹도는 모기의 윙윙소리가 공격적이다. 나보다 더 땀이 많이 흘리는 그녀도 모기의 공격속에서 걸을 것으로 짐작하는것은 어렵지 않았다. 깊은 산속 계곡을 지나 평평한 숲속을 지나는데,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것으로 보이는 물펌프가 보였다. 걸으면서 여러개의 비슷한 물펌프(?)들이 보였다. 전기줄로 보이는 폐전선도 곁에 보인다. 아마도 오래전에, 전기를 끌어들여 물펌프를 돌려 숲으로 덮히기 전까지 농토로 사용하면서 지하수를 끌어 올려 가뭄을 극복한것이 아니었겠나 짐작케 한다. 자연을 극복하려는 인간의 힘을 쏟아 부었을, 선배 농부들과 그의 가족들을, 그것도 옛날 의상을 정겹게 차려입었을 , 그때의 사람들을 순간적으로 상상해 봤다. 그위를 우리는 오늘 건강을 유지하기위한 산행을 하고 있는 것이다. 대만에서 초기에 이민와서 살면서 우리 산행팀에 합류한 Walter Leu 와 일본인 후세 Tanaka부부도 합류해서 열심히 걷는다. 어떻게 해서 그들이 합류하게 됐는지는 모르지만, 나는 그들과 산행 친구가 됐다. 그들과 차 Pool도 하면서 경비를 줄이기도 하고..... 나보다 나이가 몇살 많은 Walter는 오른쪽 어깨가 아파서 오늘은 Back Pack을 포기하고, 대신에 허리에 차는 조금만 전대를 준비 했다고 설명해 준다. 오늘은 출발할때 정했던 반환점 까지 걷지 않고, 약 1킬로 전에 아내와 정숙이 같이 Return했다. 돌아올때 무리가 생길까봐 내가 주장한 것이다. 많은 대원들이 우리보다 앞서 회군한것을 설명해주면서 말이다. 되돌아 오는길에 Mrs.Tanaka를 만났는데, 그녀는 혼자서 쉬면서 점심을 먹고 있었다. 그광경을 보면서 지나친 정숙이가 갑자기 '배고파'라고 하소연(?)이다. 계속 걸으면서 계곡윗쪽에 서늘한 그늘에서 짐을 풀고 우리도 점심을 하기 시작했다. 밤새 아내가 준비해준 점심이었다. 부침갱이, 오곡밥 그리고 반찬.... 맛이 좋다. 어느새 모기가 공격을 시작한다. 아마도 땀냄새가 그들을 불러들인것 같다. 그들과 전쟁 하면서 밥을 먹는다. 옛날 군대생활 할때 야외 훈련 나가서 주먹밥먹던 기억이 잠깐 스친다. 그때도 모기가 극성이었겠지만, 소리를 듣지 못하고, 허기진 배를 채우기에 소리를 들을 여유가 없어서 였을 것이다. 환경이 이렇게도 우리의 생활속에 깊이 함께 하고 있음을 느낀다. 지금은 건강을 지키기위한 여유있는 발걸음인것을...
처음 산행시작할때 지나쳤던 약간 경사진, 농장속의 풀밭을 걸을때는 권태감을 느끼기도 했다. 개인농장이기에 타인들의 Trespass를 막기위해, 아니면 농장의 경계 표시로 둘러친 녹슬은 철조망을 넘기위해 만들어 놓은 Stile을 오늘은 여섯개나 넘었다. 농장을 통과 할수 있도록 허가해준 농장주에게 고맙기도 하였지만, 사닥다리(Stile)를 오르고 내릴때는 발걸음이 무거움을 더 많이 느꼈었다. 어찌 나만 그렇게 느꼈겠는가? 반가운것은 이농장을 지나게 됨은 오늘의 산행이 종료될 지점에 왔다는 증표여서 였다. 파킹랏에는 우리보다 벌써 도착한 많은 대원들이 나무그늘 밑에서 마지막 대원들의 도착을 기다리면서 담소 하고 있는 모습이 보기에 좋았다. 무사히 산행 마침을 감사 했다.

Friday, June 05, 2009

비무장지대안에서 정신무장겸 등산하기-뉴욕 타임스





비무장지대안에서 정신무장겸 등산하기-뉴욕 타임스.

2009/06/05 21:43

대부분이 여성들로 구성된 관광단이 여러대의 버스에 분승하여, 대광리 비무장지대를 방문하여, 안내 장병의 인솔하에
주위 산등성이에 올라, 철책선 넘어 이북을 구경하고 있다.
비무장 지대를 지키는 장병들은 참호속에서 잠복 근무하고, 높은 철책선을 응시하고 있음이 몹시 음산한 분위여 있다고 한다.
젊은 여성들은 '결혼 했어요?' 라는 질문을 가장 많이 했다고 한다.
방문객의 대부분은 여성들로, 인천국제공항 면세점에서 근무하는 직원들로, 한국에서는 흔이 있는, 정신무장과 동료들간의 화합 훈련을 통한, 일종의 훈육을 겸한 여행이라고 한다.
이북의 대포동 미사일을 무서워 할게 아니라,우리가 서울에서 누리는 호화스런 생활과 자유가 어떻게 해서 마음껏 누릴수 있는지를 현지를 답사하여 눈으로 확인시키고, 이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항상 마음속에 간직 하도록 하기위함에서다 라고 전해 진다.

정말로 우리 한국인들, 감상에 젖어 이북을 쳐다 보고, 그들을 같은 민족으로만 좋게 볼게 아니라, 그들을 통솔하고 있는 김정일 정권의 거짖과 위선과
국민들을 굶주림으로 몰아넣은 그잔악함을 이번 여행을 통해 깊이 인식했으면 한다.

TAEKWANG VILLAGE JOURNAL
At Border, S. Koreans Heed a Blustery Neighbor

Photographs by Woohae Cho The New York Times
MOUNTAIN HIKES, AMUSEMENT PARKS ... DEMILITARIZED ZONE? To build employee spirit and unity, South Korean companies sponsor hikes or other trips. But some have come to the demilitarized zone, where South Korean soldiers stay on alert as they look across at a nuclear-armed North.

Published: June 3, 2009
TAEKWANG VILLAGE, South Korea — The soldiers stationed at the bunkers and outposts along this stretch of the demilitarized zone that divides the two Koreas are on hair-trigger alert as they look across at a nuclear-armed North. But on a recent morning, they were visited by 120 civilians, mostly young women, who arrived in bright red and white buses.
As a South Korean private pointed to a North Korean guard tower visible just two miles away the women giggled at the military precision of his movements. Their first question was whether he was single. But many grew hushed as they began a guided 45-minute hike along the tall barbed-wire fences of the world’s most heavily fortified border.
“It is eye-opening,” said Huh In-young, 40, who wore a wide-brimmed olive drab hat with her sundress. “We tend to forget about the DMZ in our daily lives.”
The group was on a so-called discipline tour, a common practice by paternalistic South Korean companies to build employee spirit and unity, usually with mountain hikes or trips to amusement parks. But a week after North Korea conducted its second nuclear test, the company — the government-run operator of duty-free shops at Inchon International Airport, near Seoul — opted for something more sobering for its employees, who are more used to thinking about TAG Heuer watches than Taepodong missiles.
“This is about mental discipline, so they can see this and appreciate all we have now in South Korea,” said Kang Joong-seok, an executive director at the operator, the Korea Tourism Organization. “We take our wealth for granted.”
Indeed, while the North continues to threaten war and apparently prepare for still more missile tests, South Korea’s increasingly wealthy population seems largely uninterested in the belligerent attitude of its northern neighbor. In South Korea’s traffic-choked, neon-drenched capital, Seoul, life has not missed a beat since the North’s nuclear test last week, with residents still chilling at Starbucks or filling their cubicles in the city’s modern office towers.
In the local news media, the North’s nuclear test and the world’s response has often taken second billing to the national mourning and protests following the suicide almost two weeks ago of a former president, Roh Moo-hyun. South Koreans seem to have grown accustomed to the North’s sword-rattling, which some dismiss as a desperate gambit to wring concessions from Washington.
But near the DMZ, a 150-mile ribbon of tank traps and minefields, the tension remains palpable. In the South, a few points have been opened to tourists, including this stretch near Taekwang, a quiet farming village about 45 miles north of Seoul — and 100 miles southeast of the North’s capital, Pyongyang.
Visitors can look down on the DMZ from a camouflaged, concrete observation platform that looks like one of the many large bunkers that dot the South Korean side of the border. On the other side of a largely treeless belt of no-man’s land lies a similar line of fences and pillboxes, controlled by North Korea.
Until recently, the observatory drew about 3,000 visitors a month, soldiers said. One of the highlights here is T-Bone Hill, a stretch of rolling land that was the site of fierce combat between American and Chinese forces during the Korean War, more than a half century ago.
But cancellations have risen along with the tensions since last week’s nuclear test, though the military here says the border remains safe enough for visitors. Jang Seung-jae, president of a company that brings groups to this spot, said he had had more than 100 people cancel in the last week. “The TV keeps talking about how dangerous the DMZ is,” he said.
The only group to visit since the test was the staff of the Inchon duty-free shop. Mr. Kang, the executive director, said that some employees expressed concerns, but in the end no one backed out.
“It’s like swine flu,” he said. “Some are afraid of this, and some aren’t. It depends on what you have the stomach for.”
For some, the tensions were part of the appeal. “The thrill is why I came,” said Chong Ha-kyun, 51, who said he served as a soldier on the DMZ 18 years ago during his compulsory military service.
“Though I have to say, it’s less tense than I remember it.”
“South Korea has changed so much, but the North remains frozen in time,” he said, expressing the widely shared feeling here that South Korea now enjoys a comfortable superiority in wealth and technology, if not nuclear capacity. “I think all families should bring their children here, to see that our current prosperity is protected by a line of barbed wire.”
At the start of the walk, the group wrote wishes for Korean reunification on brightly colored ribbons, which they then tied onto the fence. None of the hikers said they felt hostility toward the North, though they were fed up with the North’s constant bluster and its weapons tests.
“I don’t have negative views about them, even if they are provoking us,” said Kim Hyun-jin, 30. “But I admit I’m nervous to come here. I was half hoping the tour might be canceled.”
Later that day, after the group had withdrawn from the DMZ for a leisurely lunch of pork and Korean soju alcohol at a comfortable restaurant, participants said they were glad they had come.
“This discipline tour will stick in my memory for a long time,” said Koo Sun-hee, 36, who said it was her first visit to the border. “North Korea is the closest country to us, but it feels like the farthest country.”

Thursday, June 04, 2009

역사의 계속됨을 계절의 변화속의 생명체의 본능에서 본다.













휴식처이며, 신체단련의 통로인 Humber Bay Park West의 산책로를 아내와 같이, 항상 그랫던것 처럼, 오늘도 걸었읍니다.
이곳의 봄소식은, 고국과는 한달 이상이 늦어, 고국에서는 초여름의 녹음과 더위가 행인들의 옷차림을 가볍게 한다고 하는데, 이제야 나뭇잎은 녹색을 옅게 띄고, 각종 Waterfowl들은 또다시 보금자리를 만들고, 후손들을 생산하기에 바쁜 모습을 어렵지 않게 산책중에 보게 된다.
내가 살고 있는 콘도 창문을 통해 보이는 여러 구룹의 Yacht 클럽에서는 벌써 겨울내 Yard에 정박 시켰던 배들을 다시 Dock에 정박시켜놓고, 여름의 뱃놀이를 대기하고 있는 모습들로 한가롭게 보이기도 하지만, 자세히 보면 바삐 움직이는 내면을 보게된다. 철새인 많은 기러기들이 북쪽으로 이동해서 살아야 하나, 날아가지를 않고, 대신에 어느새 새끼를 쳐서 앞뒤에서 노란색의 솜털을 몸에 덮고 있는 새끼들을 돌보면서, 물위를 유유자적하고 있는 모습이 질긴 생명력을 보게 한다. 며칠전 시골 카테지에서 골프를 했을때도, 골프장 페어웨이를, 한때의 새끼들을 앞뒤에서 보호하면서 풀을 뜯는 오리와 기러기들을 본 기억이 떠올린다. 거의 한달 정도 알을 품고 있다가 부화 한다고 계산해 볼때, 이놈들은 아직 기후가 쌀쌀할때 벌써 부화를 시작했던 것으로 보인다. 후손을 남김으로서 세상에 태어난 임무를 완성한다고 생각해서 일까? 아니면 본능?
매년 기러기나 오리때 보다 늦게 새끼들과 호수에 나타나곤 했던 백조 한쌍이 갓태어난 새끼를 데리고 물위에 떠서 먹이를 찾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작년에는 6마리의 새끼를 이때쯤 보았었고, 가을이 될 무렵에는 두마리만 성장한것을 기억하고 있는데, 오늘은 오직 한마리의 새끼만 보인다. 그놈들은 뭍에 가깝게 서식하기에 아마도 다른 밤짐승들의 습격에 취약해서 피해를 더 많이 당해 살아남는 후손이 적은게 아닐까?라고 생각해 봤다. 오늘본 한마리의 새끼가 잘 자라기를 바랄뿐이다. 아직 후손들을 만들지 않은 다른 Waterfowls는 호수가에서, 이제는 산책객들과 친구(?)가 되여 그들이 던져주는 빵조각등의 먹이를 받아 먹는데 아주 친숙해져 있다. 백조와 기러기 그리고 청둥오리와 갈매기들......
그러나 갈매기는, 다른 조류들을 겨냥하여 먹이를 던져주면, 날렵하게 날아들어 채가곤하는, 그러면서도 사람들을 가장 믿지않고 경계를 하는 의심많은 새인것 같다. 목소리도 아름답지 못하기는 오리 못지 않다. 몇년전부터는 가마우찌라는 바닷새, 영어로는(Cormorant ) 라고 하는 새떼들이 온타리오 호수를 장악하여 한무리의 그들이 호수를 덮치면 고기가 씨가 말린다는 속설이 있는데, 과연 그들의 횡포(?)는 헛소리가 아님을 오늘도 보았다. 지금 이곳은 작은 물고기 Smelt(멸치보다 조금큰)들이 산란하러 얕은 물줄기를 찾기 위해 북상하기위해 호수가의 얕은 물가를 찾아 헤메는데, 그들을 여지없이 이새떼들이 모여들어 싹쓸이( Scavenge)하는 모습이 목격됐다. 속설에 의하면 중국어부들이 이새의 목에 줄을 걸어, 이새들을 물고기 사냥하는데 사용하고 있다는 말도 들은적이 있다. 물속을 잠수하다가 물위에 떠오를때는 은빛이 번쩍 번쩍하는 송사리들을 입에 물고 있는 광경은 장관이다라고 감상하기엔 그들의 행동이 해적같아 보여 친하게 보여지지 않는다. 마치 태풍이 지나간후의 페허가된 현장을 상상케 하는 것이다.
준비해간 빵조각을 아내가 물가에서 백조와 기러기들에게 던져 주기고 하고, 또 뺏기기도(?)한다. 등치큰 백조들이 큰 입을 벌리고 손에든 빵조각을 차갈때는 손마디에 느끼는 촉감이 매우 껄끄럽다. 아마도 우리 인간에 비하면, 이빨로 생각되는 고리(?)와 부딪쳐서 그런것 같다.
이들을 보면서, 또 한해가 가고, 또 후손을 퍼뜨리는 산란의 계절이 정확하게 도래 했음을 보면서, 우리는 살아온 한해를 역사속으로 묻고, 다른 한해를 이들을 통해서 새로 맞이 하면서, 나는 역사를 이어주는 역활을 충실히 하고 있는가? 반문해 보면서..... 산책을 재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