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May 01, 2012

북한이란곳은?-탈북자들의 두려움을 보면서

이지구상에는 마음만 먹으면, 국가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고, 인간들이 세상을 살아갈수 있는 나라들이 대부분이다. 공산국가인 큐바나, 월남같은 나라들의 국민들도 이북에서 처럼 수용소에 끌려가는 두려움 때문에 할말을 못하고, 서로 감시하는 통제된 사회에서 살아가지는 않는다. 다만 문제는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개인들 스스로 자제할 뿐이다.   그러면 이북의 국민들은 어떤가? 먹을것이 없어 굶어 죽은 숫자가 90년 중반이후 부터 지금까지 UN 통계에 따르면 3백만명이 넘는다고 하는데, 이러한 개념은 그들 통치자들에게는 아무런 영향력을 주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못먹이게 하므로써 그들이 통치하는데 유리한 지렛대 역활을 하고 있기 때문임이 세상에 밝혀진지 오래다.  이것도 모자라, 먹을것을 찾아 북-중 국경을 헤매는 탈북자들을, 북한Regime은 보는데로 마치 사냥꾼이 짐승을 사냥하듯, 겨냥하여 목숨을 끊어 버린다.  우리 서방세계의 생각으로는, 배가 고파 탈북하려고 하면, 오히려 모자란 식량을 줄일수 있어, 좋아라 할듯 한데.....

세상은 그래도 계속해서 바뀌고, 세계곳곳에서 발생하는 뉴스는 국경없이, 두려움 없이 날아다니는 전파의 덕택에 이북에도 깊숙히 파고 들어가, 북한주민들에게도 세상돌아가는 광경을, 소수이나마 TV를 통해 또는  Cell Phone을 통해 알려주고 있다는 소식은, 그런속에서도 언젠가는 북한주민들도 김일성, 김정일 그리고 김정은 체제로 세습되여온,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 유일한 정체였음을 알고, 그들의 속임수에 지난 60여년 이상을 공포와 굶주림에 살아왔다는것을 알게 해주고, 그들이 입만 열면 새빨간 거짖으로  Brain wash 했다는것을 알게하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이 서방세계, 특히 한반도의 남쪽 사람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것 같다.

운이 좋아 무사히 탈북하여, 그때 부터 유랑생활을 하면서 남한땅에 정착한 탈북자들은 그래도 행운이 있는 분들이다.  문제는 이들중 상당수가, 색안경을 끼고 이상한 눈초리로 내려다 보는 덜떨어진 주위 사람들의 비난과 행동때문에 남한생활에 적응을 못하고, 다시 짐을 싸서 한반도를 떠나 다른 나라로 옮겨가고, 요즘은 그영향이 북미 대륙, 내가 살고 있는 캐나다에도 탈북자들의 삶이 현지 언론에 부정적으로 보도되는 참상을 보면서, 과연 한반도 북쪽의 땅을 지배하는 그들은 어떤 심보를 갖은 인간들일까?라고 마치 어렸을때 읽었던 갈리버 여행기를 상상하게 한다.

어제 아침에는 이곳 토론토의 여론 형성에 영향력 많은 '스타'신문에 전면 톱 기사로 이들 탈북민들의 실태를 심층 취재한 내용을 보면서 깜짝 놀랐다.  우선 숫자적으로 400-900명이상이 토론토에 들어와 살고 있는데, 대부분 난민신청을 하고, 북한에 두고온 혈육이 피해를 당할까봐서 결과를 두려움과 외부에 알려지는것을 몹시도 꺼려 하는, 그래서 사진찍히는것도 거부하면서, 애타게 기다리고 있지만, 이곳 캐나다 정부는 또 그들데로의 난민허용 기준이 있기에 때로는 받아들여지지 않고, 다시 여권(Passport)을 받아온 한국으로 되돌려 보내지는 바람직하지 않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음이 보도 된 것이다.

목숨을 건 사투끝에 탈북하여 남한에 둥지를 튼, 가까이에 있는 그들을 안정되고 편안하게 살아가도록 도와주는 여건을 만들어 주지도 못하면서, 이북에 퍼주자는 주장을 펴는 종북좌파들과 이에 동조하는 사람들의 생각은 어떤것일까? 

스타신문의 내용을 그대로 옮겨 본다.

3명의 탈북여성들은 이름 밝히기를 거부하고, 사진 찍히는것도 한사코 거부했다.  그러나 그들이 북한에 있을때, 먹을것이없어, 나무껍질을 벗겨 이것을 솥에 넣고 끓여서 나온 묽은 국물을 마시고 연명했던 쓰라린 경험과, 국경을 넘어서는 부로커들에게 팔려가 중국의 가정에 식모로 또는 한량들의 첩으로 팔려갔던 경험담은 해주었다.  그리고 굶주렸던 주민들중에서 먹을것을 훔치다 붙잡히면, 공개처형을 시킴으로서 공포심을 심어주었던 북한당국의 무자비함을 공개하기도 했다."우리들의 목숨을 파리목숨과 다를게 없었다"라고 참상을 설명한다.

북한의 잔혹함을 피하여 탈북한후 이곳 토론토에 난민으로 살고 있지만,  캐나다에서 편하게 살고 있다는 사실이 "민주주의 인민공화국"리라 불리고 있는 북한 당국에 알려지는 날에는 그들의 혈육이 죽음을 면치 못하는것을 잘 알기에, 두려움은 더해가고 있는것 같다.

이번주에 13살먹은 'Sol Han' 소년(?)이 살고있는 피난처에서 뛰쳐나가, GTA 어딘가로 사라져 버린 이유가, 이들의 신분이 세상에 알려지는것을 자체를 두려워하는가를 잘 설명해 주고 있는 부분이라고 해설해 주고 있다.  그소년에 대한 행방은 어쩌면 영원한 수수께끼로 남을수도 있다하겠다.

오타와의 국회 청문회실은 안전한데도, 북한에서 정치범으로 몰려 옥고를 치렀던 한여인은 청문회동안 북한의 가족들이 해를 당하지 않을까? 안절부절 하고 있었다."나의 핏줄들이 지금 그곳의 감옥에서 형을 치르고 있어요. 그때문에 나는 내자신을 대중에게 밝힐수 없읍니다" 라고.

제18수용소에서 지난 28년간을 억울하게 감옥생활을 했던 한여인은 야구모자를 깊이 눌러쓰고, 썬글라스를 끼고, 그것도 모자라 카메라멘들을 전부 방에서 내보내 달라고 애원하기도 했다.

박혁신이라고 밝혔지만, 사진 찍기를 거부한 남자는,2008년도에  목선을 타고 28시간만에 남한으로 넘어와, 지금은 난민신청을 하면서 토론토에서 삶의 둥지를 틀기를 원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꿈은 무산될것 같다.   지난 18개월 동안, 캐나다에서 살기위해 백방으로 노력을 했지만 난민 자격이 주어지지 않아 곧 남한으로 추방당하게 될것 같다.  46세인 그는 남한에서 여권도 받고, 살곳을 마련해 주었기 때문에 난민 자격이 거부되여, 이곳 캐나다에서 태어난 딸과 이북 출신의 아내와 함께 다시 남한으로 추방당하게 되여 있다.  캐나다에서는 한국정부가 받아들인 탈북자들에 대한 난민신청은 효력이 없다.    전직 군인이었던 박씨는 "죽을 맛입니다. 탈북후 북한의 실상을 알리는 집회에 다닌후 그의 신변안전을 위해 숨어 살아야 하는데 진절 머리가 났기 때문에 서울을 떠나기로 결심했던것이다" 라고 통역관을 통해 하소연 했다.
"나는 이곳에 살면서 캐네디언으로 살고 싶고, 다시 북한정권의 비인간적인 행위를 성토하는 일을 계속하고 싶다"라고 향변한다.

토론토시가 복합문화의 중심지라고는 하지만 2006년도 경부터 이곳에 모여들기 시작한 탈북자들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진바가 없었다.  토론토에 몇명이나 거주하고 있는지는 알려진바 없다.  인권위원회의 추측과 교회봉사관계자들에 따르면 약 400-900여명 정도의 탈북자들이 있는것으로 보고 있다.

GTA에 약 55,000명이 살고 있는 한인사회는  북한 탈북자들에게는, 문화가 비슷하고 같은 언어를 쓰고 또 해외에서 같이 편하게 지낼수 있어, 매우 매력적인 곳으로 꼽혀지고 있다.

이민과난민관계 부처의 말에 의하면 캐나다정부는 지난해에만 385명의 탈북난민을 받아 들였고, 이는 2006년도에 26명만이 받아들였던것에 비하면 엄청난 증가라고 설명한다.  또 2011년에는 117명에게 난민신청이 허락되였고, 12명이 기각되고, 41명은 신청자체를 포기했거나 자진 취소 했었다.  이들중 몇건은 몇년씩 끌어온 경우도 있었다 한다.

요즘에는 난민신청자들중에는 인권유린과 출생지에 대한 설명에서 신빙성이 떨어져 혼선을 주기도 한다.  어떤이는 한국출신이면서 마치 탈북자인양 설명하면서 너무나 많은 박해를 받았었다고라고 우기는 경우로 밝혀지기도 했다고 한다.   앞서말한 박씨의 경우 자유를 찾아 뗏목을 저어 남한으로 탈출했다는 - 다른 탈북자들이 같은 해에 이와 비슷한 경우를 이용하여 탈북했것이 국제적으로 보도 됐었던 - 비슷한 설명을 '스타'신문은 객관적으로 그의 주장을 확인할수가 없었다.   박씨는 이북을 탈출하기위해 참게잡이 어부로 취업하여, 2달동안 바닷물살과 상태를 체험하기도 했었다고 설명했다고 한다.  그는 북한에 있는 그의 첫번째 아내와 두명의 아이들에게 탈북한다고 알리지 않은채 탈북했는데, 만약에 그러한 사실이 알려지면 가족들이 목숨을 부지할수 없기 때문이었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중간에 부로커들을 통해 북한의 가족들과 접촉하여 했으나, 너무도 어렵고 힘들었었다고 하소연 하기도 했다.  결국 새로운 삶을 남한에서 시작하기로 하고 생각을 바꾸어 새장가를 들었다라고 설명했다.

한인사회에서 Chris Kim이라는분은 박씨외 다른 2가정과 지금은 친구관계를 맺고 있다.  그래서 박씨가 10여년을 북한에서 군생활한것에 대해 잘알고 있다.
"그들과 접촉할때는 마치 북한 태생인것 처럼 접근해야 한다"라고 1975년도에 이곳에 이민와서, 현재 Thornhill에서 '대박'식당을 경영하고 있는 52세의 그는 박씨의 통역관으로 봉사하기도 한다.

한반도는 1953년에 두쪽으로 갈라졌다. 양측의 세력들이 38선을 다라 비무장 지대를 만들어 양쪽으로 양분한후 정전(armistice)에 서명했기 때문이다.  그이후 양측은 서로 적대관계에 있어 북쪽은 악랄한독재전재 국가로, 남쪽은 민주사회를 이루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정치적 긴장감은 머리를 섬뜩하게 할 정도로 첨예하며, 이는 북쪽의 군사행동으로 남쪽을 공격하겠다는 공갈에서 시작되곤 한다.

지금은 작고한  작가 '크리스토퍼 히친스'씨는 북한의 노동감옥 - 그곳에는 약 200,000명 이상의 죄수(?)들이 삶을 연명하는곳 - 은 지구상에서는 볼수 없는 비인간적인 그리고 굶주림에 시달니는 유일한 곳이다 라고 적고 있다.

목숨은 창조주로 받은 오직 하나인데, 운좋게 탈출하여 이곳 토론토 캐나다까지 밀려와서 좀더 낳은 생활을, 인간답게 해보겠다는 그들을, 우리 인간들이 무슨 권리로, 잣대(Ruler)를 들이대어 자격이 있다 없다를 가름한다는 말인가?  물론 옥석은 가려야 하겠지만, Ruler에서는 보이지 않는, 느낄수 없는 인간적인 뒷면을 염두에 두고 탈북자들이 새로운 삶의 둥지를 무사히 틀수 있도록 지혜를 짜야할 시기라고 본다.

http://www.thestar.com/news/article/1169769--north-korean-refugees-in-toronto-carry-burden-of-fear?bn=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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