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January 12, 2012
'위안부 할머니' 의 문제는 일천왕으로 부터 그원인을 찾아야 한다.( January 11th, 2011)
'위안부 할머니' 의 문제는 일천왕으로 부터 그원인을 찾아야 한다.( January 11th, 2011)
거의 70년이 흘러갔다. 해방의 감격을 맞이한 그날로 부터 계산해 보면, 정확히 67년이 흘러간 셈이다.
세계 2차대전때, 일본의 인접국 침략으로 고통과 피해를 받았었다가, 후에 독립한 나라들은 잿더미만 남아있는 전쟁의 참혹함 속에서
살아남기위한 호구지책이 우선하여 다른데 신경쓸 겨를없이 몇십년씩을 지내오던사이, 패전국 일본은 발빠르게 움직여, 한국전을 비롯한 인접국의 어려운 상황을 자국의 경제 발전을 이용하는데 잘 사용하여 삶의 풍요로움을 홀로 누려오면서, 선진국인양 행세를 하면서도 침략했던 한국, 중국을 포함한 동남 아시아의 여러나라에서 피해보상및 사과를 끊임없이 요구해 왔었지만, 딴전을 피우면서 무시해 버리고 21세기를 맞이했던게 지나온 과거의 실상이었었다.
같은 시기 같은 2차대전 패전국인 독일은, 침략했던 인접국에 사과를 하고 배상을 하면서 좋은 관계를 유지 해 왔었다. 지금은 동,서독이 통일되여 서로 오손도손 살면서, EU의 핵심국가들중 하나로 성장했고, 유럽과 세계무대에서 지도자 역활을 잘 감당해 내고 있는것으로 알고 있다.
동물들은 배가 채워지면, 모든 근심 걱정과 억울함을 잊어버린채 다시 배가 고파질때까지 태평성대를 누리지만, 인간은 동물과 달라서, 배고픔이 해결되면, 더많은 욕구불만해결과, 적게는 이웃과, 사회 그리고 크게는 국가간에 관계를 맺으면서 벌어졌던 나쁜일들, 즉 피해와 고통 받았던것에 대한 요구를 찾아 생각과 도전을 하게 되는 존재인 것이다.
내기억으로는 1980년대 중반부터, 2차대전때 일본의 침략과 만행으로 목숨을 잃고 피해를 본 인접국가들이 우선 배고픔의 고통을 벗어나는 경제적 발전이 이루어 지기 시작하면서, 들고 일어나 일본을 향해 피해 보상과 사과를 끊임없이 요구해 왔지만, 이를 겸허히 받아들였다는 뉴스를 접했던 기억은 없다. 반대로 경제대국의 힘을 발휘하여 철저히 무시했었고, 매년 2차대전 전범들의 영혼위패가 소장되여있는 신사참배를 공식화하고, 총리가 공개적으로 방문하여, 한국을 포함한 피해국가들을 자극함과 동시에 비난을 받아오곤 했었다.
일본의 인접국 침략은, 독일과 비교해서, 치졸하기 이를데 없음이, 그들이 보여준 행동에서, 비인간적인 만행에서 두드러진다.
일본군은 점령국의 처녀들을 강제 징집하여, 군인들의 사기진작용으로, 병사들의 막사에 처넣어 욕구해소를 하는, 놀이개로 사용하고, 헌신짝 버리듯 내팽개쳐 버리곤 했었다. 당시의 한국은 '남녀7세 부동석'이라는 사회적 가치기준이 준엄하여, 처녀는 결혼하기전까지는
울타리밖의 세상을 마음데로 나다니지도 못하게 하고, 온실속의 화초처럼 고이 자라게 해서 부모님들이 짝지어주는 신랑을 따라 새삶을 살아가게 하는, 그렇게 하는 길만이 다인것 처럼, 선량하게 살아가는 사회였었다. 이러한 삶의 터전이 어느날 갑자기 천지개벽을 당하여, 부모가 보는 앞에서 이제 막 꽃봉우리를 피울려고 하는 딸들이 군화를 신은 사내놈들에게 붙들려 가는것을 두눈으로 똑똑히 보면서 몸부림 쳐야만 했던 처절함을 당했던 부모님들과 당사자인 딸들의 삶과 심정은 더 설명이 필요 없는 지옥 그이상이었었다.
캐나다는, 일본국의 인접국 침략으로 발발한 2차 대전에 응징하는 차원에서, 벵쿠버지역에 많이 모여 살고 있던 일부 Japanese- Canadian들을 수용소에 강제수용했었고, 일부 재산도 몰수하는 조치를 취한것에 대한, 잘못을 인정하고 1980년대 중반에 연방의회에서 토론을 벌인끝에, 그후손들에게 사죄하고 피해 보상을 해준것을 기억하고 있다.
지금도 매년 때가 되면 일본은 수상이 신사참배를 했다는 뉴스가 타전된다. 그행동은 한마디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귀한집 딸들을 도적질 해다가 위안부로 몰아버렸던 일본국의 만행에 대한 부정을 뜻한다고 하겠다. 이를 자세히 들여다 보면, 일본국민들과 정부의 마음속 깊은 곳에는 영화로웠던 일본제국주의의 부활을 꿈꾸는 야망이 아직도 살아 존재하고 있음으로 보여지는 증거라고 생각된다. 이문제 때문에 한국의 역대 대통령과 일본의 수상들이 열손가락으로 꼽고도 남을 회담을 해온것으로 알고 있지만, 화해와 용서의 길을 찾았다기 보다는 마음속에 더 깊은 골만 만들어 오늘에 이르렀다고 본다.
일본이 2차대전의 패배를 인정하고 최종적으로 항복(Capitulation)선언문을 낭독했던 대표자는 일본의 천왕이었다. 그때의 천왕제도와 왕궁은 지금도 도쿄의 중심부에 자리잡고 있으며, 일본인들의 여왕벌 역활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정부의 수뇌인 총리는 임기가 지나면 시야에서 사라져 버린다. 정치적으로는 상징적이라고 하지만, 천왕의 말한마디는 총리의 수백마디보다 위력이, 효과가 크다고 생각될때, 2차대전시 침략의 최종승인을 한사람이 천왕이였고, 연합군의 반격에 항복을 선언한 사람도 천왕이었고, 여전히 왕궁에서 천왕의 자리를 현재도 지키고 있는 그가 직접 나서서, 피해를 준 인접국에 사과와 피해 보상을 선언하고, 특히나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는 천번 만번이라도 고개숙여 마음속으로 부터 깉은 사죄의 발언을 해서, 인접국과 더 나아가서는 세계의 평화를 유지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주한 일본국 대사관 길건너에는 구리로 만든 실제여인의 크기와 같은, 강제로 끌려가 한많은 삶을 위안부로 살았던 상징을 나타내는 동상이 세워져 있고, 요즘처럼 추운 겨울에는 일본의 만행을 규탄하는 의미로, 참배하고 따듯한 옷을 입히고, 장갑(Mitten)까지도 끼워준다고 한다. 이에 신경이 쓰이는 대사관측은 이의 철거를 요구하고 있지만, 이러한 행동은 민간인들이 자발적으로 하기 때문에 정부도 어쩔수 없다는 입장이라고 한다.
일본국 천왕과 그가족들은, 이제 막 꽃봉우리처럼 곱고 예쁘게 피어나는 그들의 딸들이 강간범에게 치욕을 당했을때의 심정을 상상해 보기를 권해보고 싶다. 자위대의 최신형 폭격기를 이용하여 강간범을 찾아 그일대를 폭격을 하고도 남을 행동을 했을 것이다. 궁안의 권좌에서만 삶을 살기에 딸자식을 억울하게 공출해야만 했던 힘없는 서민들의 생활상을 어쩌면 영원히 느낄수 없이 세상을 살다 사라질 존재들이수도 있겠다 싶게 느껴지지만, 높게 둘러쳐진 울타리 밖으로 나와서 세상을 보는 용기를 보여 주시기를…강력히 권한다.
이러한 용기와 결단을 내려 진심어린 사죄와 보상을 선포하지 않는한, 일본이라는 나라는 섬나라로서의 쪼잘한 나라로 쇠락하는 길만이 그들앞에 있다는것을 머지 않아 느끼게 될것이라고 믿는다. 경제적으로는 지난해 까지만 해도 세계 제2의 강한 나라였었다. UN 분담금도 미국 다음으로 많이 내고 있지만, 그들의 위치는 어떤가? 제2의 경제대국이면서도 상임이사국 자리는 고사하고 15개국 비상임이사국에 낄수 있는 자리를 때로는 획득하지 못하는 왕따(Ostracism)를 면치 못하고 있다. 이러한 좁디좁은 섬나라 일본으로 계속 남아 살지 않기를 바랜다. 꽃같은 나이에 위안부로 징집되여 삶을 포기하다시피 살아왔던 그분들은 긴세월이 흘러, 이제는 한을 품은채 세상을 하직 했거나, 생존해 계시는분들은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삶을 살아가고 있는 할머니들로 변했다. 시간이 급하다. 천왕은 이 참담함을 더이상 외면 하지 말기를 부탁하고싶다.
LA Times의 기사는 시사하는바가 크다.
http://latimesblogs.latimes.com/world_now/2012/01/japanese-occupation-of-korea-comfort-women-protests-.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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