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6시쯤 되여, 그의 집에 들어 섰을때, 우선 그들의 겉옷차림이 허술하고 볼품없이 보였던 점과는 너무도 다르게 깨끗하게 정돈되여 있었고, 마루 바닥을 비롯한 모든 살림이 허술한점이 하나도 보이지 않아 보였다.
처음 보는 그의 아내는 옛날 그대로의 의상을 입고, 모자도 쓰고, 우리의 방문을 반가워 하면서도, 한편 경계의 눈이 뚜렷히 보였다. 조금전 St Jacob에서 만났던 그의 남편(Daniel)은 보이지가 않았다. 안으로 들어오기전에 그가 타고 왔던 자전거가 분명이 집입구에 있는것을 보고 안심 했었는데.... 마지못해 안으로 들어서라고 말하는 그녀를 보면서 분명히 남편으로 부터 우리가 방문 할것이라는 소식은 들은게 틀림 없어 보이긴 한데... 농장은 규모가 엄청 커 보였다. 입구의 왼쪽에 있는 축사에는 많은 소들이 먹이를 먹고 있는 한가로운 모습이 보였고, 건너편 파란들판은 감자와 옥수수가 자라고 있고, 그 옆편 쪽으로도 Barn이 여러개 보였다.
옆방에서 우리의 소리를 듣고 Daniel이 웃으면서 우리를 맞이하러 나오면서 먼저 부엌겸 Dinning Room으로 안내 한다. 부엌에서 먼저 눈에 띈것은 작두펌푸였다. 조그만 펌푸는 앙징맞아 보이기까지 했고, 마치 수도물 꼭지 처럼 편하게 사용하고 있다는것을 알수 있었다. 마루 바닥은 enamel을 칠해 반들반들해 보였다.
식탁에는 벌써 그들이 먹을 저녁이 준비되여 있어, 오래 있을수는 없을것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맨끝에 있는 방문을 가르키면서 Daniel은 지금은 Passed away한 자기 아버지가 거처하던 방으로 현재는 아직 결혼하지 않은 그의 아들중 하나가 사용하고 있다고 설명해 준다. 그의 부인은 어느새 발재봉틀에 앉아 뭔가를 만들고 있고, 그옆에서 Lunar가 유심히 보고 있는것이 눈에 들어 온다. 누군가가 물펌프의 Lever를 눌러 본다 물이 금새 수도물이 꼭지에서 나오듯 철철 흘러 나온다. 모두가 신기한듯 바라보고, 잊혀져 가는 기억들을 되살리고도 남는것 같다. 식탁에는 우리가 먹는 음식같은것들은 별로 보이지 않고, Pickled 된것같은 몇가지의 Dish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는것도 아주 단촐하게 보인다. 사진을 같이 찍자고 했더니 손을 절래절래 흔들면서 사양한다. 그들만의 징스가 있는가 보다. 아쉬웠다. 작두펌푸는 꼭 사진에 담아두고 싶었는데....
Daniel에게 물었더니, 자식을 12명 낳아 기르고, 그중 7명은 이미 결혼해서 따로 살림을 차려 인근의 다른 농장에서 살고 있다고 하며, 5명의 아이들은 같이 살고 있는데, 우리가 방문한다는 소리를 듣고, Shy해서 다 방으로 숨은것 같다며 미소를 짖는다. 12명을 낳았다니....우리 상식으로는 선뜻 이해가 안가고, 또 설사 그렇타쳐도, 챙피(?)해서 쉽게 말하기는 어려웠을텐데.... 갑자기 장대같은 젊은 남녀 한쌍이 Daniel의 뒷쪽에 서있는게 보인다. 바로 Daniel의 어린 아들과 딸이라고 소개해 준다. 그들의 옷모습도 옛복장인것 같이 보인다. 그들의 일상은 농장에서 일하고 가사 돕는일이라고 한다. 젊어서인지 아니면 그들이 예뻐서 인지 꾸미지 않은 그들의 모습이 너무나도 순수해 보이면서 수숩어 하는것 같이, 딸의 볼이 약간 빨개지는것 같았다. 활발하게 활동하는 서구사회의 한곳에 이런 1800년대의 삶을 살아가는 문명을 등진 사람들이 있다니..
Daniel에게 내가 은퇴 했다고 했더니, 그는 61세로 은퇴라는 단어를 쓰지 않는다고 설명해 주었다. 정부에 세금은 꼬박꼬박 납부해도, 연금을 비롯한 정부의 혜택은 일체 신청도, 또 받지도 않는다고 말해 주었다.
그들의 저녁식사를 더 이상 방해하고 싶지않아, 밖으로 나와서, Daniel이 우리를 빈축사중의 하나를 택하여 안내해준다. 넓은 안은 텅 비어있었고, 동물의 배설물 냄새가 코를 진동하기 시작했다. 이곳은 Turkey를 키우는 계사란다. 의문의 눈빛을 보내자 설명을 해준다. 앞으로 일주일내에 London, Ontario부근의 한 부화농장에서 부화한지 3일된 약 1850 마리의 Turkey Chick이 이곳에 도착하면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사육이 시작된다고 한다. 도착하면 바로 야간에 촛불밝기보다 조금 더 밝게 조명등을 켜놓고, 새끼들에게 물과 모이를 주어, 습관적으로 때가 되면 먹이를 찾아 먹도록 훈련을 약 3일 시킨후부터는 밝은 주간에 먹이를 준다고 한다. 이과정에서 약 1.5%의 손실이 발생한다고 한다. 축사에는 시간이 되면 자동적으로 위에 매달려 있는 물통이 터키의 키에 맞도록 내려오고, 먹이통도 같은 원리로 작동된다고 했다.
그의 농장에서 생산되는 주요품목은 감자, 옥수수, 육용소 그리고 터키와 이름 봄철의 한가한때에 조금씩 만들어 놓은 Maple Syrup을 시장에 내다 파는일.... 사실 오늘 이곳을 방문하게 해준 가교(Bridge)역활을 해준게 바로 Maple Syrup이었었다. St. Jacob의 상업지역에서 장사하고 있는 그를 만나 한병을 내가 구입하면서 얘기가 시작되 이렇게 방문의 기회까지 이루어 지게 된 고마운 Maple Syrup이었었다.
신앙생활은 매격주로 출석하는 교회에 가지만, 그의 자신과 식구들은 매주 교회에 출석한다고 했다. 쉬는주에는 인근의 다른 Sister교회로 출석하기 때문이란다. 교회를 갈때나, 외부출타 할때는 말이 끄는 Buggy를 자동차 대신 현재로 생활의 방편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그나마 다행인것은 요즘은 문명의 이기를 조금씩 사용할수 있도록 Mennonite들의 공동운영체인 Council회의에서 허락해 그중에서 제일 중요한 Hydro를 사용할수 있어서 조금 생활이 나아졌다고 설명해준다. 집안에 전기불, 농장에서는 Combine을 사용해서 한결 쉽게 농사일을 하고 있는셈이라고 한다. 그러나 집안에는 TV가 안보였고, Cell Phone의 사용도 자녀들에게 허용되지 않고 있다고 설명해준다. 자녀들이 집안밖의 세상의 생활에 물들지 않게 하려는 뜻으로 해석했다.
빨래줄 처럼 보이는 줄에 하얗게 칠이 되여 있는 '쭈기니' 같기도하고, 박처럼 생긴 통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한가운데에 정구공이 들어갈만한 구멍이 뚫려 있는것이 신기해 물었더니, 제비집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철새인 기러기들이 이동하지 않고 사철 한곳에 사는것을 온타리오 호수가에서 많이 보아왔기에 제비들도 그러지 않을까?하고 물었더니 의외다. 이른 봄에 왔다가 가을철이 되면 따뜻한 남쪽으로 이동한다고 했다.
그옆에는 우뚝 솟아 있는 조그만 Windmill이 돌지도 않고 녹슬어 있는것이 보였다. 그의설명에 의하면 전에는 이풍차를 이용하여 지하수를 뽑아 농작물에 물을 주곤 했었는데, 지금은 전기를 사용하기 때문에 사용치 않게 되니까 이모양이 됐다고 한다. 전기사용의 고마움을 그가실감하고 있는것 같다.
그들의 자녀교육은 6학년 정도가 되면 그만이라고한다. 그정도의 실력이면 실생활에 불편을 느끼지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언제쯤 이들이 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문명의 이기를 받아 들이고 문화생활을 즐기게 될까?
Daniel의 설명에 의하면, 이들의 신앙생활은 아주 철저한것 같다. Jesus Christ가 살아온 그방식데로 살아갈려고 하는 과정에서 천주교와 Protestant들과의 마찰과 핍박으로 고통을 심하게 받으면서도 무저항 주의로 살아가는 Mennonite들이 좀더 평화롭고 자유롭게 살고 싶어, 1800년대 중반에 미국의 펜실바니아주에서 도망쳐나와 북쪽으로 북쪽으로 올라와 캐나다 마니토바주에서 거주하기 시작하고, 그이후 이곳 온타리오 남부 지역에서 삶의 터전을 마련하기 시작한게 오늘의 Mennonite 촌락이 형성된 계기가 됐다고 한다. Mennonite의 시조격인 사람은 Menno Simons라고 한다. 원래는 독일지역에서 시작되여 다시 북미로 그리고 다시 남부 캐나다로...
집에서는 어떤 Dialect를 사용하는가 물었더니, 그의 부인이 대답해준 생각이 난다. 도이취어를 상용 한다고 했다. 영어는 어떻게 배우는가 했더니, 학교에서 배운다고 했다. 우린 대학까지 16년을 배워도 영어를 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은데, 어쩌면 이렇게 Mother tongue처럼 구사 하는가? 신기했다.
아까는 St Jacob에서는 사지 않더니, 이제는 너도나도 모두 Maple Syrup을 구입하겠다고 Daniel을 바쁘게 한다. 이렇게 라도 하니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진다. 그도 웃으면서 다시 창고로 들어가 Syrup을 꺼내오기도 했다. 더 이상은 그를 붙잡을수 없어 놓아 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이제 헤어져야 겠다고 인사를 했다. 아쉬운점은 사진을 같이 촬영할수가 없었던 점이다. 그들의 생활습관상 사진찍는것을 싫어 하기 때문인것 같다. 그들이 알지 못하게 몇장은 슬쩍 하긴 했지만....
알뜰하게 살아가는 그들의 생활방식은, 소중함을 잘 모르고 함부로 버리기도하는 우리들의 삶의 방식에 생각해볼점을 많이 던져주고 있는것 같다. 좀처럼 접하기 어려운 이들의 생활상을 본것은 큰 수확인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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