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October 05, 2008
평화 마라톤,걷기 그리고 그의미.
이번이 4회째 평화 마라톤,걷기 운동의 날이라고 한다. 조국 한반도만이 이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같은 민족이 두쪽으로 갈려 각기 다른길을, 그것도 북쪽은, 지금까지 지구상의 어느 정체나 정부도 일찌기 그잔혹함을 국민들에게 행한적이 없는, 살인마 깡패집단이, 한반도의 행방이후로, 집권하여 주민들을 굶어 죽게하고, 노력동원에 혹사 시키는 악당들의 정부요, 그 남쪽은 세계 여느 민주 정부와 같은 수준의 민주정부가 세워져, 국민의 자유를 보장하고 경제적 부를 누리고 있으면서, 서로 수백만명의 군사력을 대치 시키고 오늘에 이르는 지구상의 유일한 곳이다.
이곳 캐나다에 이민와서 살고 있는 많은 교민들이 조국 한반도의 통일을 염원하는 뜻으로, 매년 Peace Run for Reunification of Korean Peninsula 라는 캐치 프레이스를 걸고, 5킬로의 걷기와 10킬로의 마라톤 행사를 금년으로 4회째 해 오고 있는 이번 행사에 우리부부는 아는 친지 몇분과 함께 처음으로 참석했었다. 웬지 한인 사회에서 행해지는 크고 작은 행사에 거의 참석을 자제해 오고 있었는데, 이민 초기부터 가깝게 알고 지내던 친지분이 은퇴후 한인회에 Volunteer로 봉사하면서, 이번 행사를 깊이 관여하고 있는분이 이번 행사에 참석해 보도록 권장하여, 생각을 바꾸어 참석했었다. 며칠전에는 Queen's Park과 Parliament Hill에서는, 캐나다 정부에서,매년10월3일 즉 개천절을 한인의 날로 정해줘, 국기계양대에 태극기가 휘날리게 하는 기념식도 정부관계자와 대사및 총영사 등의 인사들의 참석하에, 있었던 것을 알고 있었다.
오랫만에 한인회관에 약속시간에 맞추어 도착했다. 벌써 많은 참가자들이, 어떤이는 마라톤을 하기위한 아주 간단한 복장으로, 어떤이는 색상에 맞추어 패션쇼하는것 같은 복장으로, 또 어떤이는 머리에 띠를 두르기도 했고..... 특히나 많은 젊은이들이 참석한 모습은 희망이 더 많이 있어 보여 든든한 마음이 깊었다. 조직운영 위원회의 활동도 눈에 띠게 조직적으로, 특히나 젊은 Volunteers들이 앞장서서, 움직이는 모습 또한 우리 한인사회의 이민연륜이 성장하고 있음을 느끼게 하고도 남았다. 그동안 매년 한인회비는 납부했어도, 실제로 한인회에 들른적은, 굳이 기억에 떠 올린다면, 약2년전 한인회 주선으로 컴퓨터를 배우러 며칠간 들렸던 것이 전부 였었던것이다.
9시 정각이 되여, 먼저10킬로를 달릴 마라톤선수들이 출발선에 모였다. 임시로 설치된 전광판에 9시 정각이 되자, 신호와 함께 젊은 건각들이 쏜살같이 앞으로 달려 나가고, 간혹 나이드신 선수들도 그사이에 끼어 뛰는 모습이 자랑스럽게 보였다. 그들이 사라진다음 5킬로 걷기 선수들이 다시 출발선에 모였다. 가슴과 등에는 참가 번호표들을 큼지막하게 달고, 나도 아내와 같이 그대열에 서서, 출발 신호와 함께 힘찬 첫발을 내디뎠다. 우리 걷는이와 뛰는이들의 통일염원이 담긴 한걸음,한걸음을 옮길때마다, 한반도의 정치 지도자들 특히 북한의 Wooden Heart들에게 시원하게 전해 졌으면 하는 간절함을 빌면서 시작햇다. 한인회관을 출발하여 Leslie가를 북으로 달려, 마라톤 선수들은 York Mills까지, 다시 그곳에서 오른쪽으로 꺽어 Don Mills까지, 다시 그곳에서 남쪽으로 달려 Eglinton에 도착하면 다시 오른쪽으로 꺽어 처음 출발했던 Leslie까지 달려 회관에 이르는 코스이고, 걷기는 그절반인 Lawrence 까지만 걷고, 그곳에서 오른쪽으로 걸어 Don Mills에 이르게 되면 마라톤 코스와 같은 길을 걸어 회관에 도착하는, 정사각형 코스인것이었다. 경찰에서는 뛰고 걷는 큰길의 Lane 하나를 우리의 마라톤 행사를 위해 활해하고, 경비까지 서 주어 아주 불편없이 걷기에, 뛰기에 최선을 다할수 있었다. 걸으면서 경찰관들과는 인사를 나누었고, 지나는 행인들에게는 손도 흔들고.... 어떤이의 BackPack에 꽂인 조국의 얼굴인 태극기가 미풍에 휘날리는 광경은 흐믓하기도 했다. 캐나다의 제일큰 도시 토론토의 바쁜 거리를 차지하고 당당히 걷는, 뛰는 우리자신들의 위상이, 비중이 이곳 사회의 한곳을 차지하고 있다는 증표를 뚜렷히 보여주는 그모임속의 내자신을 다시한번 되돌려 보았다. 정확하게 32년전 여름에 이곳에 빈손으로 트랩을 내려 첫발을 땅에 부렸을때의 불안하고, 두렵기만 했던 순간들이 교차 하기도 했다. 그사이 세상은 얼마나 많이 변해왔던가? 그사이 우리 부부는 어덯게 살아 왔던가? 얼른 머리에 떠오르는 것은, 선물로 받은 두 자식들이 떠오른다. 지금은 사회의 한일원으로 제각기 맡은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음에 감사 하기도 한다.
걷는 중간에는 젊은 봉사자들이 갈증을 해소시키는 물병을 건네주고, 또 전 코스위를 달리고 걷고 있다는 증표도 팔목에 달아주는 수고를 하고 있는 그들을 보면서, 역사의 흐름이 힘차게 출렁이고 있음을 뚜렷히 보는것 같았다.
처음에 같이 출발했던 친지들과는 중간에 떨어져, 처음 페이스를 그대로 지켜 출발지인 회관에 도착했을때는 정확히 한시간이 흐른뒤였다.
젊은 Volunteers들이 기다리고 있다가, 도착한 모든 선수들에게 스낵백을 하나씩 건넸다. 물한병 바나나 두개, 그리고 미니 chips백이었다.
준비위의 세심한 배려에, 많이 성숙했음을 보며, 고맙게 생각하지 않을수 없었고, 참석의 의미를 더 느끼게 하는 순간이었다. 모두가 물병을 열고 풀밭에 앉아 갈증을 해소, 스낵을 뜯고....
시상식에서 보여준 참가자들의 질서 정연한 모습과, 특히 고운 한복에 고깔까지 머리에 쓰고 사회를 보는 귀여운 아가씨의 모습은 특히 눈에 띄었다. 목소리도 카랑카랑하게, 그것도 영어와 한국어를 거침없이 자유 자재로 상황에 따라 토해해는 아가씨의 모습이 입고 있는 고운 한복과 잘 어울렸다. 이번 행사에는 이지역의 연방 보수당의원과 총영사분들이 참석하여 축사도 해주고, 한인사회의 성숙함과 이사회에 기여하는 감사함을 표시 하기도 했다. 이러한 모임과 행사가 바로 Multiculturalism을 제창하고 있는 캐나다라는 나라의 참모습이구나 실감하게 하는 장면이기도 했다. 격식없이 시작된 시상식의 모든 순서를 보면서, 이사회에서 오래 살아온 나의 생각과 바램이 꽃으로 피어남을 보고 있는것 같았다. 보기가 너무나 좋다. 아내도 그렇게 느끼는것 같았다. 모든 행사가 끝난후, 단상에 올라, 귀여운 사회자 아가씨에게 사진한장 찍고 싶은데 허락 하겠느냐고 물었더니, 아저씨 그럼요 라고 오히려 반가워 하는것 같아, 몇장을 스냅했다. 우리 한인사회의 앞날이 그들손에 앞으론 매달려 있다해도 과언이 아닌데, 이번 행사를 보면서, 앞날을 생각하는 나의 마음은 밝고 가볍기만 했다.
고국왕복 비행기표 여러장을 포함한 많은 상품 수여가 있었지만, 어쩐일인지 우리 부부에게는 그런 행운이 닿지 않아 빈손이었다. 특히 나의 경우는 거의 항상 그래 왔으니까 이상한 일도 아니었지만, 아마도 우리보다 더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많았기에 그렇게 된것 아니였겠나 라고 생각했다. 오늘이 또 나의 62번째 생일날이어서 였을까? 모든게 좋게만 보였다. 아니면 아침에 아내가 준비해준 미역국을 맛있게 잘먹어서 였을까? 우리 한인회의 무궁한 발전을 위한 염원을 가슴에 담고 새기면서, 집으로 돌리는 발길은 가벼웠다. 기대도 더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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