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October 05, 2014

중국, 베이징의 길고 웅장한 대운하(Grand Canal)를 아시나요?

나의 경우 중국본토 관광은 여러번 했다.  언뜻 기억에 떠오르는 지역만 해도 항주, 소주, 상하이, 시안, 장가게,베이징, 삼국지의 주인공인 유비,관우,장비의 사당이 모셔져 있는 청도, 군밍, 세계의 지붕인 티벳,  마카오와 접하고 있는 주하이 그리고 일반 여행사들이 관광상품으로 시도하지 않고 있는 오지인 남부지역의 월남, 태국과의 국경지대들이 떠 오른다.  그런데 항주에서 부터 시작된 운하(Canal)가 수도 베이징 외곽까지 연결되여 있다는, 장장 1,794키로미터의 대 운하가 현재 거의 잊혀진 상태에서 주요 지역 주민들의 Leisure 수단으로 운용되고 있을 뿐이라는 새로운 뉴스를 접하면서, 중국에 대한 탐사여행을 수박 겉핱는식으로만 했구나 라는 허탈감에서 한참을 벗어나지 못했었다. ...... 허긴 세계에서 제일 빠른 고속 철도가 달리고 있는 중국의 고속 발전에 운하는 제자리를 넘길수 밖에 없었을것 같다.  
중국이라는 나라는 파고들면 들수록 더 비밀속으로 빠져 드는 느낌을 품게할 뿐이다.


http://www.bbc.com/travel/feature/20140930-beijings-extraordinary-grand-canal

베이징 시민들에게 내가 시내 구경을 할곳을 물었었다.  그들은 한결같이, 자금성은 물론이고, 천안문 그리고 만리장성이 자연스럽게 언급된다.

그리고 나서 나의 마지막 구경할곳 - 만리장성처럼 중국을 상징하는것은 물론이고, 임금들이 거주했던 자금성, 그리고 역사적 의미가 많은 천안문광장 - 에 대한 질문에 그들은 잠시 생각에 잠긴다.   "아마도 대운하?"가 아닐까 오히려 반문한다.  "정말입니까?"

만약에 베이징 시민들이 대운하를 알지 못하고 있다면, 관광객은 당연히 모를수 밖에.
운하는 중국의 남쪽지방에서는 관광코스로 잘 알려진것들중의 하나이다.  이운하에는 바지선, 관광선들이 2,500년이 넘는 루트를 따라 오르 내린다.

그런데 북쪽의 항조우에서 천안문광장의 서쪽 35킬로 지점에 있는 Tongzhou라는 베이징외곽에 도시까지 1,794킬로나 되는 긴 운하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극히 드물다는 것이다.
Xitang의 대운하에서 보트쿠르스하는 모습.

그러나 중국의 역사에서 이곳보다 더 중요한 지점은 거의 없다고 할수 있다.  즉 지구상에서 가장길고, 인간이 만든 가장 오랜역사를 간직한, 스에즈운하보다 9배가 더 긴 운하이다.  이런 중요한 운하가 없었더라면 베이징은 오늘날 중국의 수도로서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운하가 없는 중국은 오늘날의 중국이 될수 없었을 것이다.  왜 그럴까를 알기위해서는 2014년 6월에 UNESCO에서 이대운하를 인류유산목록에 등재시킨것을 보면 이해할수 있다.

이곳 사람들이 이운하에 대해 의아해 하더라도 나는 그것과는 상관없이 보고 말것이다.

4차선이 양방향으로 건설되여 있는 고속도로 103를 따라 서쪽으로 달리면서 우린 수많은 빌딩들이 들어서고 있는것을 보았다.  사람들은 스쿠터를 타고 가면서 그들의 iphone을 체크한다. 콩크리트 믹서 차량이 그뒤를 따른다.  우리가 다리위를 달리면서, 나는 밑으로 물이 흐르는것을 보았는데 금새 사라지고 마는것을 목격했다.

이렇게 길고 큰 대운하가 오늘까지도 현지주민들에게는 잊혀진것쯤으로 여겨지고 있는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지만, 여기서 지금도 일하고 있는 사람들은 그들의 조상들이 해오던데로 묵묵히 전통속에서 일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즉 지구상에서 이렇게 큰 규모의 프로젝트에 인간의 모든것을 투자한 것을 본적은 한번도 없었다.  이운하를 건설하기 시작한것은 BC 48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나 오늘날에 보는 웅장한 운하로 모습을 나타내기 시작한것은 7세기경에 있었던 대규모 확장공사가 있을때까지는 미미했었다. 서기 605년에 1,000키로미터의 공사를 Luoyang에서 Qingjiang( 지금은 Huaiyin으로 불린다)했었고, 다시 3년후에는 오늘날의 베이징까지 1,000킬로미터를 더 팠었다. 610년에는 Zhenjiang에서 Hangzhou까지 400킬로를 더 팠다.
                                  운하를 따라 이어진 공원의 잘 다름어진 도로와 산책로.

이운하를 건설하는데 약 3백만명 이상의 가난한 농부들이 착출됐었다고 한다.  그들중 절반정도는 심한 노동과 굶주림에 지쳐 목숨을 현장에서 잃었다고 한다.  운하를 미관상 더 좋게 보이도록 하기위해,13세기에는 대대적으로 인력을 동원했었다고 한다.   1271년에 Kublai Khan이 제국의 수도를 베이징으로 옮길때,  구수도였던 Kaifeng 또는 Luoyang으로 연결되는 필요성을 알면서도 무시해 버리고, 대신에 그는 항조우로부터 베이징에 이르는 1,794킬로미터의 운하를 직선으로 건설하도록 지시했다고 한다.

이공사를 마치기위해 10년 동안에 4백만명 이상의 노예들을 동원했다고 한다.  UNESCO자료에 따르면 이운하는 산업혁명이 일어나기 전까지의 건설공사에서 '세계최대의 토목공사'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대부분의 다른 루트와 마찬가지로,  이운하는 여러가지의 목적이 있었는데, 그목적 모두가 오직 왕조를 위한것이었다.  그들중 하나가 식량확보차원에서 였다.  즉 양자강 델타는 중국의 식량을 조달하는 곳이었다.  그러나 양자강은 서쪽에서 동쪽으로 흘러가는 강이었다.  그래서 중국의 통치자로서, 배고픈 지방사람들이 반란을 일으키는것과, 잘먹이지 못하는 군사들은 가난한 농부들과 또 외부로 부터 달려드는 침략자들을 제대로 방어할수없다는,  이러한 절박함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대운하는 (Kublai Khan의 대역사가 있기전) 양자강에서 나는 쌀을 황하강으로 수송할수 있는 바지선이 달릴수 있게 한것이고, 인근에 흐르고 있는 Luoyang과 Kaifeng 물줄기를 이용하여 서쪽에 있는 옛수도인 "시안"까지 수송할수 있도록 하기위한 것이었다.

한편 북쪽에서 재배되고 있던 밀(Wheat)은 남쪽으로 보낼수 있었다. 서기 735년까지 매년 1억 4천9백만 킬로그람의 밀을 운하를 따라 수송할수 있었다고 한다.  무명이나 도자기등을 포함한 다른 필수품들도 운하를 통해 교류가 되면서 중국의 경제적 활성화를 돕는데 일조를 했었다고 한다.  또한 운하는 정부의 모든 지시사항을 포함한 의사전달을 할수 있는 생명줄 처럼 요긴한 존재가 됐다고 한다.
오늘날에는 베이징에서 끝나는 대운하에는 생필품 운송하는 바지선이 아니고 유람선이 그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아래의 기사를 보면 더 재미있게 운하를 느낄수 있다.

A feat of modernity in itself, the canal led to equally extraordinary innovations. In 587, the world’s first lock gates were invented by the Sui Dynasty engineer Liang Rui for one of the canal’s original sections along the Yellow River; in 984, a transport commissioner named Qiao Weiyo invented the Grand Canal’s first pound lock – the lock that we see in modern canals even today, creating a pool with two barriers and allowing a boat to wait safely until the water level changes. (It wouldn’t be picked up in Europe until 1373, in Vreeswijk, Netherlands). 
Yet after railroads took over China in the late 19th Century, the canal was largely forgotten. Vast sections fell into disrepair. In 1958, the canal was restored. Today, some sections – particularly in the south – are plied by barges, mostly transporting construction material, while others remain unused. Here in Tongzhou, the section hadn’t been used for trade in years.
But the city seems to be rediscovering the canal’s merit. For the 2008 Games, an Olympic park was built along its shores; I could see the park’s white canopy rising from the fog like a Japanese crane.
And last year, the city built a new park: the Grand Canal Forest Park, which runs 8.6km on the north side of the canal in Tongzhou. On a Sunday morning, families pushed strollers and carried picnics beneath the park’s tree-lined walkways. Immaculate clusters of flowers and foliage grew, many with descriptive signs in both Mandarin and English. From a small amusement park, a carousel tinkled a tune. 
Grand Canal Forest Park, Beijing, China, Grand Canal
On a recent Sunday at the Grand Canal Forest Park, the carousel tinkled a tune. (Amanda Ruggeri)
Smelling the brine on the air, I wandered past the families, past the rides. And there it was.
The Grand Canal was wider than I’d expected, and stiller too.  Lotus flowers blossomed at the edges of the grey-green water. I couldn’t see a single skyscraper on the horizon. The only movement was a tiny boat, no more than a creaky platform with a sputtering outboard engine; its crew of three old men looked like they were trawling for fish. Floating in and out of the mist that hung thick in the air, they seemed like apparitions.
Grand Canal, Beijing, China
A tiny boat of fishermen sputtered along the canal. (Amanda Ruggeri)
At the dock, wooden boats lined up to take curious customers across. As mine puttered down the canal, another boat passed, this one without so much as an engine, just an operator rowing wooden oars. A handful of locals were on board for a Sunday outing. We waved at each other, and they smiled curiously: what was a tourist doing all the way out here?
Once, the canal had been proof that China was on the fast track. And I’d been drawn by its monumentality, its grandeur, its importance. Yet today, as Beijing builds bullet trains and underground metros, expands its airports and thrusts skyscrapers into the sky, the Grand Canal is anything but. It seems, instead, a symbol of a slower-moving past. And, if I could have, that’s what I would have explained to the perplexed passersby on the canal: in the end, my choice to come here was worth it not because the canal was as monumental as I’d expected – but because, on the scale of modern-day Beijing, it was less so. And that made it a refreshing stop.
The Beijingers I’d spoken to may have been right; today’s vast, almost empty waterway makes it hard to get a sense of just how extraordinary the Grand Canal once was, and how integral it was to China’s flourishing trade. But as Beijing races ahead, building modern monuments to commerce, industry and traffic, experiencing the canal – stepping outside of the rush, experiencing a place of lotus flowers and fishermen, faded pride and stillness – seems all the more poignant.

No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