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tawa 6/25 참전용사 추모식에 금년에도 참석 했다. 해마다 6/25가 끼어있는 주간의 일요일에 전쟁기념식을 해 왔으나, 추모식을 주관하는 캐나다측의 사정으로 앞당겨 일요일인 15일에 치러지게 된것이다. 이번 행사에서 가슴을 더 아리게 한것은 참전용사 전우들의 참석숫자가,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타계하고, 또 거동이 불편하여, 마음뿐 참석할수없는 형편에 의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는 안타까움이었다. 58주년 6/25참전 전몰장병 추모식은, 다른 행사와는 달리 참전용사들이 주동이 되여, 한국전 참전 16개국을 대표한 대사및 공관원들과 무관들 그리고 캐나다측에서 국방부 직원과 일부 현역 군이들이 참석하여 행사를 더 빛나게 해주는, 뜻깊은 행사여서, 한때는 멀리 호주에서, 미국에서도 아직 젊었던 한국전 참전 용사들이 많이 참석하곤 했었다.
캐나다 국회의사당 뒤편에 있는 세계 1차, 2차 대전에서 꽃다운 목숨을 조국을 위해 바친 캐나다의 전몰장병 위령비가 세워져 있는 전쟁광장에서 진행되는 기념식에서, 군악대의 팡파르와 군가에 맞추어, 멀리서 도열해 있다가, 구령에 맞추어 행군하여 광장앞의 귀빈석에 앉아있는 인사들의 앞을 열병할때는 옛날 군생활을 다시 생각케 해주는, 그때의 젊은 혈기가 몸안에 돌고있는 힘찬 기분이 행군발길도 가볍게 해주었다.
우리 한국쪽 재향군인회의 노병들은 본 행사에 참석하기전, 전쟁광장으로 부터 두불럭 떨어져 있는곳에, 고국의 부산 유엔군 묘지에 세워져 있는 6/25 참전 캐나다군 전몰 장병들의 위령비를 그대로 옮겨만든 기념비에서 캐나다군 참전 노병들과 함께 별도의 추모식을 간단히 치르고, 본 기념 행사가 열리는 곳으로 이동하여 전쟁추모식에 합류 하곤 했다. 금년에도 예외없이 진행 됐고, 그곳에는 김수동 주캐나다 한국대사와 공군무관도 특별히 참석해 주셨다.
그위령비에는 이렇게 간단한 문장이 새겨져 있다. "We will never forget you brave sons of Canada" 정말로 조국이 존속되는한, 절대로 이들의, 아니 참전국 용사들의, 목숨바쳐 오늘의 발전된 조국이 있게한 그들의 희생정신을 잊어서는 안될것이다. 후세들에게 두고두고 교훈으로, 역사로 이어져야 할것이다.
나는 이번 추모식에서는 의장병(?)역활을 하는 행운(?)을 얻어 육군기를 들고, 옆의 해군기, 공군기 그리고 해병대기를 든 기수들과 나란히 행열 앞에서 행군을 하기도 했읍니다. 현역시절에는 상상도 못해본 그런 기수를 내가 해 냈읍니다. 비록 발걸음이나 몸매는 기대에는 못미쳤었다는것을 잘 알고 있지만...... 정신만은 현역병들이 하는 기수단보다 훨씬 잘 무장된 상태였다고 자부 하고 싶다. 옆에서 같이 해냈던 옛전우들도 똑 같은 생각이었을 것이다. 행군을 할때 길가에 도열하여 구경하던 일반인들로 부터 우뢰같은 감사의 박수가 터질때는, 재향군인회원의 긍지가 자랑스럽게만 느껴지기도 했었다.
이번 추모식에서 느낀 또 다른 안타까움은 참전 16개국을 대표하여 참석하는 해당국가의 노병이 아닌 젊은 외교관이나 무관들의 참석수가 눈에 띄게 줄어든 것이었다. 자유를 지키기위해 그들의 부모, 선배들이 하나뿐인 목숨을 바쳐 조국 한국을 지켜, 오늘이 있게한 그값진 행사에 얼굴을 내밀지 않아, 그 추모행사의 뜻이 옅어져 가는것이 아닌가?하는, 염려(?)가 가슴을 답답하게 했다. 참전국가의 대표가 사회자의 호출로 앞에 나와 꽃다발(wreath)을 위령비앞에 놓아야 하는데, 참석을 안했으니 대신 앞에서 안내하는 의장병들이 꽃다발을 바치는 광경은 우리 노병들의 서운함을 더하게 했다.
추모식에 참석하는 노병들의 참석숫자가 매년 줄어드는것은 정한 이치이기에, 막을수 없는 불가 항력이기에 그렇다 치더라도, 해당국 외교관, 무관들의 불참은, 6/25 전쟁의 참된 뜻이 희석되여, 후손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을것 같은 안타까움 바로 그것이다.
몇년전만 해도 캐나다에서는 국방장관도 참석했었지만, 보훈장관 Greg Thompson이 대신 했다.
이러한 현상은 해마다 더 늘어 나는것을 느낀다.
우리 한국군 캐나다 동부지회 재향군인회원들은 토론토에서 새벽 4시 반까지 지정장소에 모여, 5시에 오타와를 향해 전세 버스에 몸을 실었었다. 회장단의 수고로 준비된 김밥과 음료수로 아침을 때웠다. 오랫만에 만난 노병들은 그간의 살아온 얘기와 그옛날 겪었던 전쟁무용담등을 서로 나누면서 왕복 10시간이 넘게 걸리는 장거리 여행을 순간처럼 보내면서 오타와 행사장에 참석했었다.
몬트리얼에서 참석한 회원들도 오랫만에 만나게 되여 더 반가웠다. 그분들도 참석숫자가 적어졌다고 세월의 흐름을 안타까워 함을 볼수 있었다. 현역 군생활을 하면서 고생하고 제대한지가 바로 엊그제 같은데, 나의 경우만 봐도 벌써 41년이 지나갔으니, 하물며 참전 용사들이야, 시간의 흐름에 대해 말할 필요가 있겠는가? 조국에서 이곳 캐나다에 이민오는 남자분들의 대부분이 군대생활을 자의든, 타의든 했던 재향군인회원들이다. 그러나 현재 재향군인회의 모임에 참석하고 있는 회원들의 대부분은 6/25전쟁참전 용사이거나, 월남전 참전 용사들이 태반이다.
젊은 회원들 참석이 계속이어져야 하는데, 그래서 6/25전쟁의 참상과 그역사적 진실이 후세들에게 생생하세 전달되어져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함을 매년 행사때 마다 느낀다. 이러다가 전쟁세대가 세월이 흐른후 다 사라지게 된다면...... 고국에서 좌파정권이 지난 10년간 집권하면서, 6/25 전쟁이 남측의 북침으로 발생했다는 억지 논리와 북의 공산정권도 같은 동포이니 잘사는 우리 남한동포들이 도와 주어야 한다는 사상을 젊은이들의 뇌리에 꽉 심어 놓았다고 하는데....... 그래서 답답함이 이번 행사참석후 더 깊어졌다. 살아서 몸을 움직일수 있는한, 나는 매년 이 전쟁추모 행사에 참석할것을 재삼 마음에 다짐해 본다. 이 다짐이 어찌 나만의 바램이겠는가? 노병들 모두의 생각일것이라고,한점 의심없이 믿어진다.
오타와의 한국대사관에서 정성스레 준비해준 부페식 점심이 조금은 위안이 됐다. 한국측 재향군인들만이 아니고, 행사에 참석한 16개국 모든 노병들에게 잊지않고 그들의 노고에 감사하는 표시의 점심대접이, 그나마 매년 이어져 다행이다. 접시에 먹을만큼 담아, 삼삼오오 구룹을 이루어, 혹은 의자에, 혹은 정원 잔디밭에 어울려 앉아 먹으면서 서로의 군생활 얘기들을 나누는 귀중한 이시간의 기억을 오래오래 간직할것이다. 특히 캐나다측 참전 노병들은 그들의가족들과 같이 참석하곤 하는데, 같이 음식 나누면서 나누는 얘기들중에는, 아들 딸은 물론이려니와, 손자 손녀들에게도 전쟁의 참상과 한국전 참전 얘기들을 해주곤 한다는 얘기를 나눌때는, 마치 당사국에서 온 너희들은 젊은 회원들 확보도 못하면서, 6/25의 역사적 순간들을 어떻게 후대에 전할것이냐?라는 채찍처럼 들리기도 했다.
그나마 위안이 된 한가지 기억할 일은, 젊은 현역 해군 중령이(Family name이 최) 이 행사에 참석하여 같이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있었는데, 그의 조국관, 군인관이 뚜렷해, 우리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놓이게 해줬다. 그는 조국에서 이곳 캐나다 토론토에 있는 군사 학교에 파견되여 전술을 연구중에 있는데, 이번에 기회가 되여 참석하게 됐었다고 했다. 그의 군인으로서의 정신무장이 빈틈 없는 모습을,대화중에 볼수 있어 마음이 놓여 좋았다. 헤여질때는 '이다음 다시 만나게 될때는 빛나는 별을 달고 조국방위를 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라고 인사를 해 주기도 했다.
연로한 노병회원 한분이 타계 하셨다는 소식을, 모든 일정을 마치고 헤여져 집으로 향하기 직전,
회장이 모두에게 전해 줬다. 그만큼 많은 시간이 흘렀다는 얘기 같이도 들렸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마음이 급해져 옴을 이소식과 더불어 깊이 가슴속에 박힌다.
훈련이 잘된 후배 군인들의 철통같은 조국방어속에서 발전된 조국과 통일된 조국 그리고 영원히 한민족의 혼이 이어지는 그런 조국이 계속 이어지기를 바래는 염원을 마음속에 담고, 잠자리를 같이 하는 아내가 기다리고 있는 집을 향해 차에 몸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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