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October 20, 2008

But I love my motherland,Korea.(그래도 나는 내조국, 대한민국을 사랑할수밖에 없다.)






















































오늘 갑자기 거의 16년전에 기고했던 글을 다시 여기에 옮겨논 이유는 간단하다. 어제 일요일 아침에 삼성의 이건희 회장님께서 긴기간동안 와병중에 계시다가, 하늘 나라, 영원의 나라로 여행을 떠나셨는데, 고국의 언론을 비롯한 많은 국민들이 애도의 조의를 표하는것을 언론을 통해 봤었다.

오늘 아침뉴스에는 이회장님이 떠나시면서, 후손인 이재용 삼성 부회장을 비롯한 자손들에게 많은 재산을 상속해 주셨는데,  당장에 내야할 상속세가 적게는 10조원, 많게는 이보다 훨씬 더 많을 것이라는 걱정섞인 보도였던것이다.  전문가들의 분석에 따르면, 당장에 그렇게 많은 상속세를 내기위해 소유하고 있는 주식을 팔아야 하는데, 그럴경우, 팔게되는 주식을 구입하는 사람이 외국인, 특히 중국기업이 구입하게 될 확율이 높아, 이경우, 앞으로 삼성의 운영권에도 많은 영향을 미칠것이라는 염려 기사를 봤었다.

내가 알기로는 미국이나 캐나다를 비롯한 많은 서구나라에서는 상속세가 거의 없는것으로 알고있다. 그만큼 기업의 역활이 나라의 경제활동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는데 대한 답례가 아닐까?라는 이해를 하게 됐다.  왜 우리 한국의 세법은 기업에 대한 배격을 분명히 하는 내용의 악법을 계속 고집하고 있는지?가 너무도 궁금해서다.  전문가들의 설명에 의하면 중소기업도 똑같은 처지에 고민이 많아, 어떤 기업인들은 다 팔아서 처분하고 이민을 떠난다는 슬픈 얘기도 전해줬었다.

이렇게 비합리적인 상속세는 제발 하루속히 바꾸어, 기업들이 조국에서 맘놓고 맘껏 기업활동을 할수 있도록 좋은 나라를 만들도록 도와 주기를 바란다. 기업이 잘돼야 Job creation이 많이 발생하는 간단한 원리를 생활화 할수있었으면 하는 바램이 간절해서다.



몇년전 고국을 방문 했을때, 느꼈던 점을, 고국을 세계 만방에 알리는 웹싸인트 VANK에 기고했던 글입니다. 보도에 의하면 VANK웹이 국가에서 삭감한 예산 문제로 곤란에 처하고 있다기에, 여기에 옮겨 보관 하고져 함입니다.


2005-01-05

But I love my motherland, Korea
Happy New Year! My name is Paul Hankyun Lee, though my original is Hankyun Lee, but living here in Canada adapting an English name is easier for being remembered by people and another reason I took Paul is that through my life I have wished to live like the Paul, one of desciples of Jesus in the bible. As you guess, I am a Korean-Canadian who's been living here in Toronto almost 30 years as of Jan. 2005, holding Canadian citizenship. And I have retired since 2 years ago from my own business in retail industry. Currently I have 2 regular e-mail friends. And I got home just 3 weeks ago from motherland Korea staying 45 days. Of course during that staying I also traveled Hong Kong, Vietnam, Cambodia and China on top of every corner of Korean peninsula travelled with 3 couples of my friends.

The paying system at tour areas should be changed not to give a bad impression.

Here are some points I experienced with good feeling and bad feelings too. The good points were so many High ways have been constructed in the short period of time which can be cheered by tourists and Koreans abreast. The bad point was that too many times of entrance fees being collected at any tour areas. For example, I was Seorak mountain (Seoraksan) with my friends mentioned above. We paid 4 times of it to tour, first at the parking lot, then National Park entrance fee, then temple entrance fee, then again lifting fee of cable car to a peak. Also each of fees was so expensive that could give the tourists a bad impression on visiting Korea.

Nobody can understand that 4 times of fees to see a resort of a mountain. I paid only one time entrance fee at the Ocean park in Hong Kong which has two parks in it with huge facilities to see and free ridings including cable cars that runs over 15 minutes that was so long compared with two minutes ride on Seorak mountain (Seoraksan). The most of resorts I have been in Korea were same on collecting fees. This should be changed to one time collecting right away, otherwise foreign travelers won't suggest any Korean tours to their friends after tour in Korea. I am sorry I couldn't say good feeling a lot. But I love my home country. Since I saw those as a outsider without any prejudice on it, it would be helpful for you to judge it.

Many thanks.


Paul Hankyun Lee
Canada (Retired businessman)

Wednesday, October 15, 2008

눈에 선한 단풍절경속에 Trail Walk-추수감사절 휴일에.



































눈에 선한 단풍절경에서 Trail Walk.

야….감탄이 절로 나온다. 이렇게 색의 조화가 잘 이루어질수 있는 또 다른 경치를 어디서 보고, 맛을 느낄수 있단 말인가? 어려운 계획과 실행이었지만, 만추의 단풍절경을 보면서, 오랫만의 Trail Walk을, 항상 친지요, 동생 또는 형님 그리고 조카, 손자 손녀처럼 생각해 왔던 회원들과 어루려, 1 박 2일간을 한창 무르익은 가을 단풍의 절경속에서, 잠시 세상살이의 시름과 기쁨, 그리고 모든 짐들을 벗어 던지고, 곱디곱고, 아직 때묻지 않은 동심의 세계로 돌아가, 노랗고 빨갛게 색칠된 숲속을, 그것도 가장 채색(?)이 잘된 Trail Course를 골라, 쏜살같이 흘러가는 시간의 흐름을 잠시 붙잡아 둔것같은 세계속에서 보낸 아주 보람된, 기억에 남을 순간들을,그것도 추수감사절 휴일에, 잊을수 없을것 같다. 중국 장가계의 여행때 감탄했던 절경이 기억에 오래 남아 있어 지금도 가끔씩 떠 올리곤 했지만, 오늘 산행중에 Mazinaw Lake건너편에 있는 기암 절벽의 풍경은 절경이었지만, 색갈의 조화는 장가계의 그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게, 표현의 다른 방법을 찾지 못할 정도로 감탄 연발의 절경중의 절경이었다.
매년 이맘때면, 이곳 저곳을 찾아 트레일 웍도 해 보고, 이곳 캐나다의 상징인 단풍나무숲을 수없이 걸어 보았지만, 오늘 걸은 Bon Echo Provincial Park속의 불타는듯한 단풍절경은, 그많은 시간과 계절을 보내면서, 왜 일찍이 이곳을 찾지 않았었던가 하는 후회같은 아쉬음을 느끼지 않을수 없게한 곳이었다. 남부 온타리오의 고속도로를, 10월달 단풍계절에, 달려 보면 운전자 모두가 느끼는것처럼, 단풍의 절경이 아름답지 않은 곳이 없음은 모두가 알고, 그것에 대한 일가견들이 즐비한것으로 인식되여 있지만, 이곳의 절경이 유난히도 돋보이는것은, 호수건너편에 떠 있는 병풍처럼 펼쳐지는 섬의 앞부분을 이루고 있는 기암절벽과 구색을 맞추어 어우러진 색채가 특이함 때문인것이다. 한창 더울때 무더위를 피해 이곳에 몇년전에 들렸던 기억이 아직도 새로운데, 그때는 푸르다 못해 검은 색을 띨 정도로 우거진 숲의 웅장함을 느꼈었다. 회원들 모두가 감탄의 연발이다. 더 늦기전에 불타는듯한 가을의 마지막 단풍을 보기위해, 우리 회원뿐만이 아니고, 여러곳에서 우리처럼 달려온 수많은 구경꾼, 산책객들이 같이 어울려 카메라에 아름다움을 옮기느라 여기저기서 셔터 누르는 소리가 끝이지 않는것 같다. 나도 계속 눌러 댓지만, 그래도 다 못담는것 같아 아쉬움이 끝이지 않는다.
어떤 회원은 내년에 다시 와서 camping 을 해야 겠다면서, 되돌아 가는길에 Park Office에 들려 아예 Reservation을 하겠다고 벼르기도 한다. 바다처럼 넓고 멀리 펼쳐져 있는 호수의 그끝을 봐도, 그리고 반대편 북쪽의 호수 건너편의 숲을 봐도 온통 빨갛게, 불타는듯한 절경이다. Timing이 아주 잘 맞은 점도, 한몫 거둘지 않았겠나 하는 생각도 해본다. 하늘은 티하나 없이 순수 그대로의 코발트 색이다.
우리 모두를 아쉽게 한것은 호수를 건너 절경의 섬까지 운항하던 Ferry Service가 중단되여 우뚝 솟은 섬위의 Trail을 걸으면서 더 가깝게, 그리고 더 멀리 볼수 있는 비경을 놓친점이다. Ferry Service Season이 끝났다는 Park Ranger의 설명이 야속하기만 했다.
이곳에 오기전에는 Presqui’le Provincial Park에서 생태계를 자세히 관찰 할수 있는 Jobes Wood Trail을 아침 일찍 걸었었다. 태초 이래로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았을것 같은 착각이 일 정도로 우거진 숲속에 쓰러져 딩굴다 썩은 나무위에는 무수한 종류의 버섯들이 때를 만난듯 버섯특유의 냄새를 내품으면서 촉촉함을 한껏 자랑하는것 같은 모습들이 신기했다. Trail 시작점에 세워진 설명판에 의하면, 지금부터 약 200년전쯤에 초기 Settler가 이곳에 정착하여 농사를 지었던 곳이라고 밝히고 있었다. 그래서 Trail 이름도 초기 정착민의 이름을 따서 지은 것이라고 자세히 설명하고 있었다. 이러한 숲속에서 농사를 짖고, 가축을 기르면서 살았다니… 쉽게 믿어 지지가 않았다. 피부에 그감각이 와 닿지는 않지만, 다만 역사 공부를 한다 셈치면 편할것 같은 기분이다.
긴 섬처럼 온타리오 호수를 따라 펼쳐진 Presqui’le Park은 대략 서쪽에서 동쪽으로 길게 늘어져 있는 반도(Peninsula)인데, 남쪽은 호수에 접해 있고, 반대편인 북쪽으로는 Marsh벌판이 끝도 보이지 않게 펼쳐저 Main Land와 접하고 있다. 공원 Ranger의 말에 의하면, 이렇게 자라고 있는 갈대들이 물을 정화 시키는 일등 공신이라고 한다. 온타리오 호수를 거쳐 St. Lawrence강을 따라 대서양으로 흘러 가는 물이 맑은 이유는 바로 이 갈대들의 숨은 정화 노력이라고 보면 지나친 과장이 될까? 이넓은 갈대밭에는 각종 생명체들의 서식처가 되고 있었다. 봄에는 종족 보존을 위한 각종 동물들의 생산지가 되고, 가을철과 겨울철에는 이곳을 지나가는 철새들의 쉼터가 되고, 학생들의 방학철에는 야간 실습장이 되여, 고사리같은 손에 Flash light를 쥐고, 조심 조심 발길을 옮기면서, 곤충들의 삶을 살펴 보기도 하는 현장 경험을 겪게하는 곳이기도 하다. 이렇게 현장 체험을 돕기위한 차원에서 갈대들이 자라고 있는 Swamp속을 가로 질러 건설된 Board Walk이 약 1.5 킬로 정도 된다. 운이 좋을때는 Board Walk을 걸으면서, 사슴들이 그속을 헤메는 장면도 볼수 있고, 요즘은 휘귀종인 Crane과 Heron들도 여름철에는 가끔씩 보기도 한다. 긴다리로 엉금엉금 한발짝씩 떼어 놓을때마다, 긴목도 같이 춤을 추는것 처럼 움직이는 모습도 볼수 있곤 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러한 Board Walk Trail 을 할수 없었다. 오랫동안 사용되왔던 Board Walk이 낡아 전부 뜯어내고, 다시 건설하고 있는데, 입구에는 있는 2충높이의 전망대는 완성되여 그곳은 개방 되고 있어, 그나마 위에서 멀리 펼쳐져 바람에 출렁이는 갈대숲을 볼수 있어 다행이었다.
갈대들은, 마치 수확기를 앞두고 황금물결이 출렁이는 벼벌판처럼 황금빛을 발하고 있었다. 내년쯤에는 다 완성되여 Swamp속에서 자라고 있는 갈대밭속을 걸어 볼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만족해야 했다.
그옆의 해수욕장으로 이용되는 모래밭에는 이동중에 잠깐 쉬고 있는 수백마리의 기러기떼들이 아름다운 전경을 만들고 있었다. 이곳의 기러기들은 우리 인간들과 친숙해서 일까? 웬만큼 가까이 접해도 도망갈 생각을 안한다. 한가로이 쉬고있던 기러기떼들이 갑자기 퍼득거리면서 공중으로 치솟는다. 저멀리 모래사장에서 한테의 산책객들이 걷고 있었는데, 그속에 개가 있어, 이를 본 기러기들이 놀라 그렇게 퍼득 거림을 알았다. 사람을 더 무서워 해야할 그들이 사람은 무시(?)해 버리고, 개한테 신경을 쏟고 있음은, 동물들만이 느낄수 있는 먹이 사슬이 엄연히 작용하고 있음을 보는것 같다. 운좋게 우리 일행이, 사람키보다 훨씬 큰 억새풀숲 사이로 이어진 Owen Point Trail을 걸으면서, 모래 사장에 인접해 있는 Look Out에 도착하여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을때 여서 이러한 광경도 목격했었다.
우리 일행의 마스코트 였던 손녀딸 같은 영아가 신기한듯 응시하는 모습이 귀엽다. 걷기를 마치고 카테지에 되돌아 왔을때, 첫눈에 띄는것은 허기진 일행들의 배를 채워줄 먹거리가 넓직한 테이블위에 질서 정연하게 진열되여 있는 광경이었다. 경험많은 여성회원 몇분이 산행에 참석치 않고, 대신 이렇게 미리 준비를 해 놓은 것이다. 이것이 바로 Team Work의 표시 아닐런지? 고마웠다.
어제밤 늦게까지 카테지 뒷뜰에서 Camp Fire을 하면서, 깊어지는 가을밤의 이슬을 맞으면서, 세상살아온 이야기들로 꽃을 피우면서, 밤공기의 차거움도 잊은채, 밤잠을 설치면서, 그렇게 추억을 만들었었는데, 한명의 낙오도 없이 새벽같이 일어나, Trail Walk을 하면서 피곤한 기색없이 기분좋은 표정들이다. 오랫동안 기억속에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겨져 있기를 기대해 본다. 연장자되시는 회원께서 무사히 일정을 마치게 인도해 주신 deity 에 대한 감사의 말씀과 기도로 끝을 맺었다. 이번 1박 2일의 Trail Walk을 뒤에서 소리 없이 계획하고 이끌어준 회원들에게 고맙다고 인사 한마디는 꼭 하고, Trail Walk소감을 마치고져 한다. 감사.

Sunday, October 05, 2008

평화 마라톤,걷기 그리고 그의미.













이번이 4회째 평화 마라톤,걷기 운동의 날이라고 한다. 조국 한반도만이 이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같은 민족이 두쪽으로 갈려 각기 다른길을, 그것도 북쪽은, 지금까지 지구상의 어느 정체나 정부도 일찌기 그잔혹함을 국민들에게 행한적이 없는, 살인마 깡패집단이, 한반도의 행방이후로, 집권하여 주민들을 굶어 죽게하고, 노력동원에 혹사 시키는 악당들의 정부요, 그 남쪽은 세계 여느 민주 정부와 같은 수준의 민주정부가 세워져, 국민의 자유를 보장하고 경제적 부를 누리고 있으면서, 서로 수백만명의 군사력을 대치 시키고 오늘에 이르는 지구상의 유일한 곳이다.
이곳 캐나다에 이민와서 살고 있는 많은 교민들이 조국 한반도의 통일을 염원하는 뜻으로, 매년 Peace Run for Reunification of Korean Peninsula 라는 캐치 프레이스를 걸고, 5킬로의 걷기와 10킬로의 마라톤 행사를 금년으로 4회째 해 오고 있는 이번 행사에 우리부부는 아는 친지 몇분과 함께 처음으로 참석했었다. 웬지 한인 사회에서 행해지는 크고 작은 행사에 거의 참석을 자제해 오고 있었는데, 이민 초기부터 가깝게 알고 지내던 친지분이 은퇴후 한인회에 Volunteer로 봉사하면서, 이번 행사를 깊이 관여하고 있는분이 이번 행사에 참석해 보도록 권장하여, 생각을 바꾸어 참석했었다. 며칠전에는 Queen's Park과 Parliament Hill에서는, 캐나다 정부에서,매년10월3일 즉 개천절을 한인의 날로 정해줘, 국기계양대에 태극기가 휘날리게 하는 기념식도 정부관계자와 대사및 총영사 등의 인사들의 참석하에, 있었던 것을 알고 있었다.
오랫만에 한인회관에 약속시간에 맞추어 도착했다. 벌써 많은 참가자들이, 어떤이는 마라톤을 하기위한 아주 간단한 복장으로, 어떤이는 색상에 맞추어 패션쇼하는것 같은 복장으로, 또 어떤이는 머리에 띠를 두르기도 했고..... 특히나 많은 젊은이들이 참석한 모습은 희망이 더 많이 있어 보여 든든한 마음이 깊었다. 조직운영 위원회의 활동도 눈에 띠게 조직적으로, 특히나 젊은 Volunteers들이 앞장서서, 움직이는 모습 또한 우리 한인사회의 이민연륜이 성장하고 있음을 느끼게 하고도 남았다. 그동안 매년 한인회비는 납부했어도, 실제로 한인회에 들른적은, 굳이 기억에 떠 올린다면, 약2년전 한인회 주선으로 컴퓨터를 배우러 며칠간 들렸던 것이 전부 였었던것이다.
9시 정각이 되여, 먼저10킬로를 달릴 마라톤선수들이 출발선에 모였다. 임시로 설치된 전광판에 9시 정각이 되자, 신호와 함께 젊은 건각들이 쏜살같이 앞으로 달려 나가고, 간혹 나이드신 선수들도 그사이에 끼어 뛰는 모습이 자랑스럽게 보였다. 그들이 사라진다음 5킬로 걷기 선수들이 다시 출발선에 모였다. 가슴과 등에는 참가 번호표들을 큼지막하게 달고, 나도 아내와 같이 그대열에 서서, 출발 신호와 함께 힘찬 첫발을 내디뎠다. 우리 걷는이와 뛰는이들의 통일염원이 담긴 한걸음,한걸음을 옮길때마다, 한반도의 정치 지도자들 특히 북한의 Wooden Heart들에게 시원하게 전해 졌으면 하는 간절함을 빌면서 시작햇다. 한인회관을 출발하여 Leslie가를 북으로 달려, 마라톤 선수들은 York Mills까지, 다시 그곳에서 오른쪽으로 꺽어 Don Mills까지, 다시 그곳에서 남쪽으로 달려 Eglinton에 도착하면 다시 오른쪽으로 꺽어 처음 출발했던 Leslie까지 달려 회관에 이르는 코스이고, 걷기는 그절반인 Lawrence 까지만 걷고, 그곳에서 오른쪽으로 걸어 Don Mills에 이르게 되면 마라톤 코스와 같은 길을 걸어 회관에 도착하는, 정사각형 코스인것이었다. 경찰에서는 뛰고 걷는 큰길의 Lane 하나를 우리의 마라톤 행사를 위해 활해하고, 경비까지 서 주어 아주 불편없이 걷기에, 뛰기에 최선을 다할수 있었다. 걸으면서 경찰관들과는 인사를 나누었고, 지나는 행인들에게는 손도 흔들고.... 어떤이의 BackPack에 꽂인 조국의 얼굴인 태극기가 미풍에 휘날리는 광경은 흐믓하기도 했다. 캐나다의 제일큰 도시 토론토의 바쁜 거리를 차지하고 당당히 걷는, 뛰는 우리자신들의 위상이, 비중이 이곳 사회의 한곳을 차지하고 있다는 증표를 뚜렷히 보여주는 그모임속의 내자신을 다시한번 되돌려 보았다. 정확하게 32년전 여름에 이곳에 빈손으로 트랩을 내려 첫발을 땅에 부렸을때의 불안하고, 두렵기만 했던 순간들이 교차 하기도 했다. 그사이 세상은 얼마나 많이 변해왔던가? 그사이 우리 부부는 어덯게 살아 왔던가? 얼른 머리에 떠오르는 것은, 선물로 받은 두 자식들이 떠오른다. 지금은 사회의 한일원으로 제각기 맡은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음에 감사 하기도 한다.
걷는 중간에는 젊은 봉사자들이 갈증을 해소시키는 물병을 건네주고, 또 전 코스위를 달리고 걷고 있다는 증표도 팔목에 달아주는 수고를 하고 있는 그들을 보면서, 역사의 흐름이 힘차게 출렁이고 있음을 뚜렷히 보는것 같았다.
처음에 같이 출발했던 친지들과는 중간에 떨어져, 처음 페이스를 그대로 지켜 출발지인 회관에 도착했을때는 정확히 한시간이 흐른뒤였다.
젊은 Volunteers들이 기다리고 있다가, 도착한 모든 선수들에게 스낵백을 하나씩 건넸다. 물한병 바나나 두개, 그리고 미니 chips백이었다.
준비위의 세심한 배려에, 많이 성숙했음을 보며, 고맙게 생각하지 않을수 없었고, 참석의 의미를 더 느끼게 하는 순간이었다. 모두가 물병을 열고 풀밭에 앉아 갈증을 해소, 스낵을 뜯고....

시상식에서 보여준 참가자들의 질서 정연한 모습과, 특히 고운 한복에 고깔까지 머리에 쓰고 사회를 보는 귀여운 아가씨의 모습은 특히 눈에 띄었다. 목소리도 카랑카랑하게, 그것도 영어와 한국어를 거침없이 자유 자재로 상황에 따라 토해해는 아가씨의 모습이 입고 있는 고운 한복과 잘 어울렸다. 이번 행사에는 이지역의 연방 보수당의원과 총영사분들이 참석하여 축사도 해주고, 한인사회의 성숙함과 이사회에 기여하는 감사함을 표시 하기도 했다. 이러한 모임과 행사가 바로 Multiculturalism을 제창하고 있는 캐나다라는 나라의 참모습이구나 실감하게 하는 장면이기도 했다. 격식없이 시작된 시상식의 모든 순서를 보면서, 이사회에서 오래 살아온 나의 생각과 바램이 꽃으로 피어남을 보고 있는것 같았다. 보기가 너무나 좋다. 아내도 그렇게 느끼는것 같았다. 모든 행사가 끝난후, 단상에 올라, 귀여운 사회자 아가씨에게 사진한장 찍고 싶은데 허락 하겠느냐고 물었더니, 아저씨 그럼요 라고 오히려 반가워 하는것 같아, 몇장을 스냅했다. 우리 한인사회의 앞날이 그들손에 앞으론 매달려 있다해도 과언이 아닌데, 이번 행사를 보면서, 앞날을 생각하는 나의 마음은 밝고 가볍기만 했다.
고국왕복 비행기표 여러장을 포함한 많은 상품 수여가 있었지만, 어쩐일인지 우리 부부에게는 그런 행운이 닿지 않아 빈손이었다. 특히 나의 경우는 거의 항상 그래 왔으니까 이상한 일도 아니었지만, 아마도 우리보다 더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많았기에 그렇게 된것 아니였겠나 라고 생각했다. 오늘이 또 나의 62번째 생일날이어서 였을까? 모든게 좋게만 보였다. 아니면 아침에 아내가 준비해준 미역국을 맛있게 잘먹어서 였을까? 우리 한인회의 무궁한 발전을 위한 염원을 가슴에 담고 새기면서, 집으로 돌리는 발길은 가벼웠다. 기대도 더 커졌다.

Saturday, October 04, 2008

통과할수 없는 천상의 투명천장-겉만 포장된.



내용이 가슴에 꽉 와 닿는, 오랫만에 읽어본 좋은 글이어서 블로그 세상이야기에 옮겨 보았다.
어설픈 영어로 이 내용을 우리말로 옮겨 놓기에는 행여나 필자의 참뜻이 전해 지지 못할까 두려워서 많이 망서렸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세상에서 남녀간의 평등을 부르짖고, 똑 같은 창조주의
자식들이라고 외쳐대는 그가면속을 들여다 보는 내용의 글이어서, 오늘 하루 기분이 참으로
좋을것 같다. 또한 오늘이 내 생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런내용의 글이 가슴을 더 아프게 했고, 마음깊이 들어왔나 보다.
그래서 이다음세상에 갔을때 만나뵙게 될 어머니를 더 그리게 된 하루였을까?....어머니가 보시기에 죄만 수없이 짖고, 지상의 삶을 살아가는 자식을 그래도 어머니는 보듬어 안아 주시면서, 여기서 착하게 살면 모든게 덮어진다 라고 말씀 하실것 같은 어머니의 모습 눈에 선하다.


통과할수 없는 천상의 투명천장. - George Davis의 기고문.

민주당대통령후보 지명전을 획득하기위해 긴싸움을 벌였던 힐러리 클링턴과, 공화당 부통령 후보로 지명된 알라스카주 지사 Sara Palin을 보면서 많은 미국인들은 성차별과 유리천장을 깨뜨릴수는 없을까?라는 생각으로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개인적으로, 나는, 보편적 차원에서,천국을 비유할 필요없이, 지구상에서 정말로 남녀평등을 이룰수는 없일까?하고, 상념에 잠겨본다.
우리가 최상의 통치자로 온 우주를 창조하는 힘이 남성만이어야 한다는 의인화가 지속되는한, 진정으로 여성도 남녀평등이 가능한 존재라고
느낄수 있을까? 나는 어렸을때 하늘에 있는 우리의 어머니들에게는 어떤일들이 벌어지고 있을까?라는 생각을 해보곤 했었다.
우리가 하나뿐인 독생자 아들을 믿는다면, 같은 생각으로 독생녀 딸은 왜 생각해보지 못하는가?
이생각을 여기까지 굳이 들추어 내려고 하는것은 단지 지구상에서 여성들에게 관련된 상황들을 개선 시켜볼려고 하는것은 절대 아니다.
나는 우리가 천국에는 우리를 기쁘게 하는 아버지만이 존재한다는 생각을 버린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더 좋아지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기쁘게 하는일은, 지구상에서는 매우 다른 성질의 것이다. 왜 우리 인간들은, 만약에 조용히 잠재울수 없고, 복수와, 화냄과, 전투사 처럼 보여지는 아버지상을 기쁘게 하기위한, 아브라함때의 전통을 중지 시키고, 다른 통로(course)위에서 정의하지 못할까? 나는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나 자랐다. 따라서 반기독교적인 생각은 추호도 없이 지내왔다. 내생각으로는 미국가정에서 우리 집안처럼
많은 기독교 목회자를 배출한 집안은 없을 것으로 확신한다. 아프리카에서 노예제도로 붙들려온 나의 증조 할아버지는 노예에서 탈출하여 후에 목회자가 된 분이다. 내할아버지,아버지,그리고 당숙들이 목회자였다. 또 나의 장인, 장모, 처남들도 목회자였었다. 내형이 지금 목회하고 있고, 또 내 조카들이 목회의 길을 걷고 있다. 어렸을때 기억으로, 나는 남성인 하나님께 기도했던 기억을 갖고 있다. 그러나 매릴랜드, 버지니아, 그리고 웨스트 버지니아주의 작은 시골교회들에서는 여성적인 여성적인 하나님을 느꼈었다. 내 어렸을때의 기억으로는 신앙적 존경의 형상은 여성들이 더 많았었다 - 우선 어머니, 아버지가 목회하시던 교회에서 식사를 준비하고, 제공했던 여성들, 아마도 그러한 봉사는 계속적으로 더 많아질것이다. 우리들의 아버지들은, 백인들이 누렸던 권세를 이지구상에서는 누릴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힘은 보호라는 명목으로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것으로 보이는 어머니들의 기도와 간구로된 천상의 힘인 것이다.
전능자인 하나님에 대한 가장강한 우리의 경험은, 자연속의 여성쪽 전능자로 부터 오는 것이다. 아버지보다는 어머니의 정신이 우리들 마음속에 더 깊이 자리잡고 있다. 우리가 배신을 원치않는 어머니의 사랑과 생각이 바로 그것인 것이다. 우리의 마음속에서 생각이 다투며 헤멜때, 어머니의 음성이 곁에 있었고, 우리가 도움이 필요할때 우린 여성인 어머니의 형상을 떠 올리곤 한다. 우리가 외롭고 무서움이 들때 또 울때도 그렇다. 우리가 가장 자랑할만한 성공의 순간에도, 축구장에서도, TV앞에서 손을 흔들때도 " 엄마 - 나 여기있어"라고 우리는 외쳐 대면서 "엄마... 보여? 내가 한골 넣었어"라고 외친다. 우리는 어머니를 불러봄으로써 그녀를 기쁘게 할려고 한다.
나의 어머니가 "싸우지 말고,다른친구들과 같이 어울려 노는 지혜를 갖어라. 너혼자서 장난감을 독차지 해서는 안된다. 이모자란놈아" 라고 말하곤 했던것 처럼, 항상 바른길을 밝혀주는이는 어머니 형상이었다.
양로원에 기거하고 있는 아버지를 수십년째 돌보고 있는 한 여인은 말하기를, 그녀의 아버지가 그곳에서 수십년간 살아가면서, 죽어가는 사람들이 마지막 순간에 '아버지'하고 부르는것은 한번도 들어 보지 못했다는 얘기를 하더라고 나에게 얘기해준일이 있다. 영원속으로 옮겨가는 순간에 '어머니'라고 부르짖는 소리는 더 자연적인것 같다. 그리고 이러한 경우는 더 많아지는것 같아 보인다. 결과적으로 나는 내가 살던 동네가 그러한 풍습에 젖어 헤어나지 못하는것 같기에, 내가 태어나고, 어머님들이 이끌어주고 따뜻하게 포용해 주었던 동네에서 빠져 나오고 말았다. 나는 월남전동안 미공군장교로 근무했었고, 그곳에서 다시 와싱턴 포스트로, 뉴욕타임스로 그리고 다시 미동부의 앨리트 양성 대학교에서 학생으로, 교수로 옮기면서 살아왔다. 이러한 생활터에서 하나님을 향한 기도는 철저히 '천상에 계신 남성 하나님'을 향한 것임을 깊이 느꼈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하나님은 의인화된 존재이기 때문에, 우리의 기도에 편견이 있지 않는가?하는점을 의아하게 생각한다.
"즉 하늘에 계신 우리 어머니, 당신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옵시며,나라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고
우리 모두가 만약에 기도중 절반만이라도 그렇게 한다면, 이세상은 얼마나 많이 달라질수 있을까 라고 상상해 볼수 있지 않을까.


George Davis
Heaven's Glass Ceiling
After the long struggle of Senator Hillary Clinton to become the Democratic nominee for President, and the selection of Governor Sarah Palin as the Republican nominee for Vice President, most Americans are spending a lot of time thinking about ending gender discrimination and breaking glass ceilings.

Personally, I wonder if women, generally, can have gender equality on earth without having it in heaven. As long as we anthropomorphize the creative force of the universe, the Supreme Being, as male, is it possible for a woman to really feel equal?

When I was a kid I used to wonder what happened to our Mother in Heaven; and if we have an only begotten son, why not an only begotten daughter? To bring this up now is not simply a matter of trying to improve the relative status of women on earth. I think that the world in general would be better off if we stopped thinking that there is only a Father in Heaven to please.

Pleasing mother and pleasing father are two very different earthly tasks. Why wouldn't humankind be set off on a different course if we in the Abrahamic tradition stopped trying to please only this implacable, vindictive, angry, warlike father figure?

I was born and raised Christian. I've never felt anti-Christian. There are likely few families in America with more Christian ministers than mine. Back into African-American slavery my great grandfather was an escaped slave/preacher. My grandfather, father, and uncle were preachers. So also were my father-in-law, mother-in-law, and a brother-in-law. My brother is one now, and so are a couple of cousins.

As a child I remember praying to a male God; but in those small churches in rural Maryland, Virginia and West Virginia, divinity had a decidedly feminine feel. In my memories of childhood the more reverential figures were women - my mother and the women in my father's churches who provided the bounty of board dinners thenceforth, it seemed, and forever more.

Our fathers did not have the earthly power that white men had; and so it was the heavenly power invoked by our mothers that seemed to surround the community with protection. Our strongest experience of divine power came from the feminine side of divine nature.

It was not our father's but our mother's spirit that dwelled inside us. It was her love and concern that we did not want to betray. It was her voice that we argued with internally. To the image of her we called when we needed help. To it we cried when we were afraid or alone.

And at our greatest moments of success, say on the football field, we wave at the TV camera, "Hi, Mom!" We are saying, in essence, "See what I did? Touchdown!" It is her we want to please. It is the mother-figure who says, as my mother used to say: "Stop fighting, learn to play with other children. You can't have all the toys yourself, you selfish little buzzard."

A woman whose father has been in a nursing home for decades told me her father said he has never heard a dying person call out for his or her father. Calling out to mother from time into eternity seems be more natural, and seems to be more needed in this era.

Eventually I moved out of the enclosed, warm, nurturing matrifocal community of my birth because that community seemed so besieged. I moved into the Officers Corp of the United States Air Force, during the Vietnam War, from there to the Washington Post, the New York Times and several elite Eastern universities as student and professor. In these places I did sense that the God prayed to was definitely "the man upstairs."

But still I wonder, since God is an anthropomorphism, aren't there some advantages to our praying: "Our Mother in heaven, hallowed be Your name, Your kingdom come, Your will be done . . ." We can all imagine how different the world would be if most of us prayed that way half the time.

George Davis is professor emeritus at the Newark Campus of Rutgers University. His new novel, The Melting Points, will be published in 2009.

POSTED BY GEORGE DAVIS ON OCTOBER 3, 2008 2:32 P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