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youtu.be/CHkOFnNGVa4
http://youtu.be/2kX_g8R6V9A
http://youtu.be/LDLarJpagTc
Adwa라는 마을에 들렸다. 아침을 먹기위해서서, 그들이 시키는 음식은 Siro라는것이다. 우리는 우리 입맛에 맞는 스파게티와 Egg fry를 시켰다. Siro는 팬케이크 같은 Ingera를 쟁반바닥에 펴놓고 그위에 Siro라 불리는 Bean sauce를 부어서, 얼버무려 한조각씩 오른손으로 떼어서 먹는 그들고유의 음식이다. 나도 한점 시식했는데, 맛은 그런데로 absorb하겠는데, 손으로 집어 먹는게 좀 불편했다.
오늘이 이곳의 전통시장이 서는 날이라서 아침 일찍 Guide와 함께 기대를 갖고 장이 서고 있는곳에 들렸다. 시장에는 예상했던 건물같은 구조물은 아무것도 없고 빈 공간에 파는 사람들이 땅바닥에 물건을 펴놓고, 사는 사람들은 그속을 헤치면서 할일하고, 시장 한쪽 끝편에는 상인들이 교통수단으로 끌고온 낙타와 당나귀들이 한데 어울려 시장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인근 지역과 또 멀리서 새벽부터 준비하여 오는 상인들과 물건사러 오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오늘의 목적지 Debre-Damo에는 10경에 도착했다. 주위경관은 사방이 산봉우리들로 둘려 싸여 있는 한복판의 봉우리에 우리가 보고져 하는 Monastery 2채가 있다고 한다. 한채는 수도승들이 거주하고, 다른 한채는 수도승이 생을 마감할때 그곳에서 거주하면서 어느날 홀연히 하늘로 들려 올가 간다고 한다. 그래서 시체도 없단다. 수도에 정진하는 고승은 평생을 그곳에 거주하면서 하산하는 일이없다고 한다. 의식주는 다른 젊은 수도승들이 오르락 내리락 하면서 거들어 준다고 했다.
이지역에는 산 정상에 있는 2개를 포함한 123의 Monastery가 흩어져 있으며 약 800 여명의 수도승(Orthodox)과 산아래의 여러곳에 흩어져 살고 있는 Nun들이 살고 있다고 했다. Nun이 되기 위한 조건은 먼저 처녀임이 증명되야 하고, 또 신앙심과 기도가 열심인 여자를, Orthodox교회내의 지도자들이 선택한다고 했다. 산봉우리와 그아래 벌판은 나무와 풀들이 자라지 않아 마치 사막에 온기분이다. 일년에 3개월(6월부터 8월까지)만 비가 온다고 하니…황량한 기분만 든다.
Monastery에 오르는 길은 수직으로 서 있다시피하는 바위절벽을 밧줄을 타고 올라가는 길밖에 없다. 한젊은이가 가쁜하게 잘 오르는 것을 보았다. 그는 수도승이라고 귀뜸해준다. 또다른 Local지역의 젊은이들이 올라가는것을 보았다. Monastery를 보고 싶은 마음에서 나도 차례를 기다려 시도해 보았다. 요령은 유격훈련을 받았기에 알고 있었다. 절벽의 총 길이는 약 25미터이다. 그렇치만 발아래로는 우리가 타고온차가 개미처럼 조그맣게 보이는 높은 곳에서 밧줄을 타고올라가는 것이다.
중간쯤까지 올라갔는데, 팔에 힘이 모자란다. 죽기살기로 하면 할수도 있을것 같았다. 높아서 무섭다는 느낌은 전연없었다. 그러나 무리를 하는것은 문제를 일으킬뿐임을 알기에 도중에 Give-up하고 하산하고 말았다. 여자는 지금까지 오르는것을 허용하지 않고 있어, Lunar는 구경만 하고 있었다.
그래서 Nun들이 아래지역에 흩어져 살고 있음을 이해가됐다.
정상밑의 다른 언덕지역에는 전통의상을 입은 수많은 여자들이 쪼그리고 무리를 지어 앉아 있었다.
그들은 인근의 마을에서 때로는 멀리서 여기까지와서, Monastery가 있는 산정상의 바위속에서 나오는 생수를 받아가기위해서라고 한다. 생수는 500미리 물병에 담아서 내려 보내는데, 돈을 주고 산다고 하지는 않고, 헌금을 한다고 했다. Guide의 설명에 의하면 생수는 만병통치약이라고 했다. 이곳의 환경이 열악한 주민들에게는 만병통치약으로 충분히 통하고도 남을것 같다.
군데 군데 흩어져 있는 토막사같은 집들의 문에는 어김없이 자물통이 잠겨져 있다. 그것은 안에는 사람이 없다는 뜻일것이고, 또다른 의미로는 도둑이 들어올수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내눈으로 볼때는 그냥 통채로 준다해도 No Thanks할것만 같은데, 그들의 기준으로는 이방법이 최상일것이다.
Nun들이 거주하는 별도의 큰 Shelter가 민가옆에 우뚝 서있다. 이곳에서 nun 들이 수련하고 또한 생활터전이라고 한다. 건물 뒷쪽에는 나무에 여러개의 길죽한 돌을 매달아 놓은게 있다. Guide가 두드려 본다. Tone 높고 낯은 여러색갈의 음을 낸다. 이곳 nun들에게 필요시 이 Stone-Bell을 울려서 메세지를 전달한다고 설명한다.
밑에 흩어져 있는 Monastery하나만이라도 보았으면 했는데, 차가 접할수 있는 길이 없어 우리같은 외지인들이 걸어서 가는것은 어렵다고 한다. Axum에서는 많은 관광객들을 만났지만, 이곳 Debre-Damo에서는 한사람도 보질 못했다. 그만큼 외지에 있고, 또 알려지지 않았다는 뜻일것이다.
Axum으로 돌아오는길에 yeha라는 Old Village에 들렸다. Main Road에서 벗어나 샛길로 달리는 길은 먼지를 뿌리고 다니는 길이다. 간혹 놓아 먹이는 당나귀떼와 염소떼들을 만났지만, 그들은 지나는 차량에 익숙해서 인지? 아니면 인간과 함께 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유유자적이다. 운전수도 Honk를 하지 않고 조용히 천천히 비껴간다.
이곳은 Damat왕조가 BC 8세기에서 10세기경에 있었는데, 그때의 건축물중의 하나가 궁전이고 그옆에 Temple이 있었단다. 왕궁이 있었던곳은 흔적도없이 페허가되여 지하에 묻혀 있었는데, 2000년도에 밭을 가는 농부에 의해 발견되여, 지금 독일에서 온 고고학자들이 연구하고 있었다.
Temple은 BC 2세기경에 파괴되여 일부 사암으로 쌓아놓은 벽만 있었는데, 현재 독일고고학자들에 의해 고증을 거쳐 재건축하고 있었다. 필요한 돌과 재료들을 인부들은 조그만 당나귀등을 이용하여 옮기는 광경이 꼭 옛날 선조들의 삶을 보는것 같게 한다. 그때는 어느 특정종교를 섬겼다기보다는 태양신과 달신을 섬기는게 전부였다고 한다. 남아있는 벽의 돌을 마추어 쌓아올린 틈새로는 종이장도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정밀하게 가공되여 쌓아올린 당시의 기술을 Guide는 강조한다.
옆에 있는 조그만 거처에는 이곳 Temple의 제사장이 상주하고 있었다. 이층에 오르니 그의 낡아 빠진 침대가 보이고, 그옆에는 박물관에 비치되여 있어야 옳을 물건들이 있었고, 진열장에는 수많은 성경들이 있었다. 제사장이 그중의 3권을 꺼내서 우리에게 보여준다. 사용된 종이는 양의 가죽을 이용한것이고, 글씨는 Geez문자였다. 삽입된 그림도 선명했다. 사용된 잉크와 색갈은 자연에서 채취한 것이라고 한다. 이성경은 Axum을 중심으로 기독교 특히 orthodox가 전파되면서, 이곳에도 태양신을 섬기는 성전이 교회로 바뀌면서 성경이 만들어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Ad 3세기경에 만들어진것들이라고하는데, 양의 가죽이 이렇게 좋은 종이로 둔갑하다니, 그것도 그옛날에. 제사장이 그가 사용하는 양초를 보여 준다. 무명심지에 벌들이 집(Hive)을 지을때 사용하는 Wax를 채취하여 만든것이라고 설명했다.
Temple에는 복원작업에 동원된 인부들이 열심히 정성들여 일을 하고 있었다. Temple 복원재료들을 보니 전부 현재의 건물을 짖는데 사용되는 것들인것을 보면서, 독일사람들의 옛유적을 보존하려는 모습을 느낄수있었다.
관람을 마치고 정문의 계단을 내려 오면서 앞산봉우리를 보고 깜짝 놀랐다. 봉우리의 형세가 마치 사자가 먹이를 앞에 놓고 노려보고 있는 기상이 서려 있는 모습이다. Damat왕이 아마도 이봉우리의 형상을 보고 이곳에 신을 섬기는 Temple과 궁전을 짖지 않았을까?라는 생각도 해보았다.
Axum과 이곳 Debre-Damo에서는 영업용 택시가 전부 3륜구동의 미니다. 기본 요금은 10 Birr이고 그이상도 이하도 받지 않는다고 한다. 시내에서의 교통수단으로 쓰이기 때문에 마치 버스 요금처럼 고정되여 있다는 것이다. Tuk Tuk이라 불리는 조그만, 인도에서 수입해온 3륜차이다.
갈때도 그랬지만, 올때도 계속 차속에서 토막잠을 청했다. 이렇게라도 해서 피로를 풀어야했다.
오늘밤도 어제와 같은 상황이면 … front desk에 부탁하고 설명 했지만, 이들의 행동은 그렇게 믿음이 가지 않았다. 모기와 싸우면서 참는수 밖에….
http://youtu.be/2kX_g8R6V9A
http://youtu.be/LDLarJpagTc
Adwa라는 마을에 들렸다. 아침을 먹기위해서서, 그들이 시키는 음식은 Siro라는것이다. 우리는 우리 입맛에 맞는 스파게티와 Egg fry를 시켰다. Siro는 팬케이크 같은 Ingera를 쟁반바닥에 펴놓고 그위에 Siro라 불리는 Bean sauce를 부어서, 얼버무려 한조각씩 오른손으로 떼어서 먹는 그들고유의 음식이다. 나도 한점 시식했는데, 맛은 그런데로 absorb하겠는데, 손으로 집어 먹는게 좀 불편했다.
오늘이 이곳의 전통시장이 서는 날이라서 아침 일찍 Guide와 함께 기대를 갖고 장이 서고 있는곳에 들렸다. 시장에는 예상했던 건물같은 구조물은 아무것도 없고 빈 공간에 파는 사람들이 땅바닥에 물건을 펴놓고, 사는 사람들은 그속을 헤치면서 할일하고, 시장 한쪽 끝편에는 상인들이 교통수단으로 끌고온 낙타와 당나귀들이 한데 어울려 시장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인근 지역과 또 멀리서 새벽부터 준비하여 오는 상인들과 물건사러 오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오늘의 목적지 Debre-Damo에는 10경에 도착했다. 주위경관은 사방이 산봉우리들로 둘려 싸여 있는 한복판의 봉우리에 우리가 보고져 하는 Monastery 2채가 있다고 한다. 한채는 수도승들이 거주하고, 다른 한채는 수도승이 생을 마감할때 그곳에서 거주하면서 어느날 홀연히 하늘로 들려 올가 간다고 한다. 그래서 시체도 없단다. 수도에 정진하는 고승은 평생을 그곳에 거주하면서 하산하는 일이없다고 한다. 의식주는 다른 젊은 수도승들이 오르락 내리락 하면서 거들어 준다고 했다.
이지역에는 산 정상에 있는 2개를 포함한 123의 Monastery가 흩어져 있으며 약 800 여명의 수도승(Orthodox)과 산아래의 여러곳에 흩어져 살고 있는 Nun들이 살고 있다고 했다. Nun이 되기 위한 조건은 먼저 처녀임이 증명되야 하고, 또 신앙심과 기도가 열심인 여자를, Orthodox교회내의 지도자들이 선택한다고 했다. 산봉우리와 그아래 벌판은 나무와 풀들이 자라지 않아 마치 사막에 온기분이다. 일년에 3개월(6월부터 8월까지)만 비가 온다고 하니…황량한 기분만 든다.
Monastery에 오르는 길은 수직으로 서 있다시피하는 바위절벽을 밧줄을 타고 올라가는 길밖에 없다. 한젊은이가 가쁜하게 잘 오르는 것을 보았다. 그는 수도승이라고 귀뜸해준다. 또다른 Local지역의 젊은이들이 올라가는것을 보았다. Monastery를 보고 싶은 마음에서 나도 차례를 기다려 시도해 보았다. 요령은 유격훈련을 받았기에 알고 있었다. 절벽의 총 길이는 약 25미터이다. 그렇치만 발아래로는 우리가 타고온차가 개미처럼 조그맣게 보이는 높은 곳에서 밧줄을 타고올라가는 것이다.
중간쯤까지 올라갔는데, 팔에 힘이 모자란다. 죽기살기로 하면 할수도 있을것 같았다. 높아서 무섭다는 느낌은 전연없었다. 그러나 무리를 하는것은 문제를 일으킬뿐임을 알기에 도중에 Give-up하고 하산하고 말았다. 여자는 지금까지 오르는것을 허용하지 않고 있어, Lunar는 구경만 하고 있었다.
그래서 Nun들이 아래지역에 흩어져 살고 있음을 이해가됐다.
정상밑의 다른 언덕지역에는 전통의상을 입은 수많은 여자들이 쪼그리고 무리를 지어 앉아 있었다.
그들은 인근의 마을에서 때로는 멀리서 여기까지와서, Monastery가 있는 산정상의 바위속에서 나오는 생수를 받아가기위해서라고 한다. 생수는 500미리 물병에 담아서 내려 보내는데, 돈을 주고 산다고 하지는 않고, 헌금을 한다고 했다. Guide의 설명에 의하면 생수는 만병통치약이라고 했다. 이곳의 환경이 열악한 주민들에게는 만병통치약으로 충분히 통하고도 남을것 같다.
군데 군데 흩어져 있는 토막사같은 집들의 문에는 어김없이 자물통이 잠겨져 있다. 그것은 안에는 사람이 없다는 뜻일것이고, 또다른 의미로는 도둑이 들어올수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내눈으로 볼때는 그냥 통채로 준다해도 No Thanks할것만 같은데, 그들의 기준으로는 이방법이 최상일것이다.
Nun들이 거주하는 별도의 큰 Shelter가 민가옆에 우뚝 서있다. 이곳에서 nun 들이 수련하고 또한 생활터전이라고 한다. 건물 뒷쪽에는 나무에 여러개의 길죽한 돌을 매달아 놓은게 있다. Guide가 두드려 본다. Tone 높고 낯은 여러색갈의 음을 낸다. 이곳 nun들에게 필요시 이 Stone-Bell을 울려서 메세지를 전달한다고 설명한다.
밑에 흩어져 있는 Monastery하나만이라도 보았으면 했는데, 차가 접할수 있는 길이 없어 우리같은 외지인들이 걸어서 가는것은 어렵다고 한다. Axum에서는 많은 관광객들을 만났지만, 이곳 Debre-Damo에서는 한사람도 보질 못했다. 그만큼 외지에 있고, 또 알려지지 않았다는 뜻일것이다.
Axum으로 돌아오는길에 yeha라는 Old Village에 들렸다. Main Road에서 벗어나 샛길로 달리는 길은 먼지를 뿌리고 다니는 길이다. 간혹 놓아 먹이는 당나귀떼와 염소떼들을 만났지만, 그들은 지나는 차량에 익숙해서 인지? 아니면 인간과 함께 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유유자적이다. 운전수도 Honk를 하지 않고 조용히 천천히 비껴간다.
이곳은 Damat왕조가 BC 8세기에서 10세기경에 있었는데, 그때의 건축물중의 하나가 궁전이고 그옆에 Temple이 있었단다. 왕궁이 있었던곳은 흔적도없이 페허가되여 지하에 묻혀 있었는데, 2000년도에 밭을 가는 농부에 의해 발견되여, 지금 독일에서 온 고고학자들이 연구하고 있었다.
Temple은 BC 2세기경에 파괴되여 일부 사암으로 쌓아놓은 벽만 있었는데, 현재 독일고고학자들에 의해 고증을 거쳐 재건축하고 있었다. 필요한 돌과 재료들을 인부들은 조그만 당나귀등을 이용하여 옮기는 광경이 꼭 옛날 선조들의 삶을 보는것 같게 한다. 그때는 어느 특정종교를 섬겼다기보다는 태양신과 달신을 섬기는게 전부였다고 한다. 남아있는 벽의 돌을 마추어 쌓아올린 틈새로는 종이장도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정밀하게 가공되여 쌓아올린 당시의 기술을 Guide는 강조한다.
옆에 있는 조그만 거처에는 이곳 Temple의 제사장이 상주하고 있었다. 이층에 오르니 그의 낡아 빠진 침대가 보이고, 그옆에는 박물관에 비치되여 있어야 옳을 물건들이 있었고, 진열장에는 수많은 성경들이 있었다. 제사장이 그중의 3권을 꺼내서 우리에게 보여준다. 사용된 종이는 양의 가죽을 이용한것이고, 글씨는 Geez문자였다. 삽입된 그림도 선명했다. 사용된 잉크와 색갈은 자연에서 채취한 것이라고 한다. 이성경은 Axum을 중심으로 기독교 특히 orthodox가 전파되면서, 이곳에도 태양신을 섬기는 성전이 교회로 바뀌면서 성경이 만들어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Ad 3세기경에 만들어진것들이라고하는데, 양의 가죽이 이렇게 좋은 종이로 둔갑하다니, 그것도 그옛날에. 제사장이 그가 사용하는 양초를 보여 준다. 무명심지에 벌들이 집(Hive)을 지을때 사용하는 Wax를 채취하여 만든것이라고 설명했다.
Temple에는 복원작업에 동원된 인부들이 열심히 정성들여 일을 하고 있었다. Temple 복원재료들을 보니 전부 현재의 건물을 짖는데 사용되는 것들인것을 보면서, 독일사람들의 옛유적을 보존하려는 모습을 느낄수있었다.
관람을 마치고 정문의 계단을 내려 오면서 앞산봉우리를 보고 깜짝 놀랐다. 봉우리의 형세가 마치 사자가 먹이를 앞에 놓고 노려보고 있는 기상이 서려 있는 모습이다. Damat왕이 아마도 이봉우리의 형상을 보고 이곳에 신을 섬기는 Temple과 궁전을 짖지 않았을까?라는 생각도 해보았다.
Axum과 이곳 Debre-Damo에서는 영업용 택시가 전부 3륜구동의 미니다. 기본 요금은 10 Birr이고 그이상도 이하도 받지 않는다고 한다. 시내에서의 교통수단으로 쓰이기 때문에 마치 버스 요금처럼 고정되여 있다는 것이다. Tuk Tuk이라 불리는 조그만, 인도에서 수입해온 3륜차이다.
갈때도 그랬지만, 올때도 계속 차속에서 토막잠을 청했다. 이렇게라도 해서 피로를 풀어야했다.
오늘밤도 어제와 같은 상황이면 … front desk에 부탁하고 설명 했지만, 이들의 행동은 그렇게 믿음이 가지 않았다. 모기와 싸우면서 참는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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