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나라국민이고 간에 자기민족과 조국자랑을 하는것은 부모와 자식간, 또는 형제자매지간의 피로맺은 인연과 같은 이치로, 추겨주는것은 마음 흐믓하나, 비난하는 소리를 들을 때는 기분이 언짢아지고, 사실은 그렇치 않다는 설명을 하려고 하는 본능이 있다.
캐나다인들이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는 많은 사항중에는 제 3자의 입장에서 보았을때는 극히 편협적이고, 논리적이지 못한 내용들이 여러개 있는데, 그중에서 7곱가지를 꼽아 보았다.
이러한 내용은 캐나다인들과 대화 할때 가능하면 삼가는게 서로에게 좋을것 같아서 이다.
첫째: 문학작가 Margaret Atwood의 작품에 대해서는 평을 금하는게 좋다. 캐나다에서는 그녀가 문학에서는 여왕같은 존재로 존경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그녀만큼 각종문학상을 많이 수상한 작가가 캐나다에는 존재치 않을 정도이고, 어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또한 그녀에 대한 행적을 물어보는것도 기분을 거스리게 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녀의 작품들은 대개가 내용이 감동적이지 못해 읽기가 지루하고, 마음을 무겁게 하는 내용들이다. 그러나 어느누구도 이러한 진실을 말하려 하지 않는다. 왜냐면은 그녀 때문에 세계지도상에 자랑스럽게 "캐나다"라는 나라를 알려 주었기 때문이다.
둘째: 재활용은 시간과 돈의 낭비임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전에는 쓰레기 버리는게 쉬웠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반대이다. 쓰레기수거법이 무척이나 까다롭기 때문이다. 온집안식구들이 쓰레기 버릴때 마치 쓰레기 수거인이 된것처럼, 신경써서, 병, 종이 등을 포함하여 조심스럽게 분리하여 쓰레기통에 넣어야하는 어려움이 있다. 심지어는 Dryer에서 나오는 Lint까지도 어느통에 버려야 적법인지를 고민할 정도이다.
포도주병을 적당히 쓰레기담은 백에 넣어 버릴려는 생각은 아예 접는게 났다. 분리수거나 재활용은 막대한 시간과 경비를 낭비하는것일뿐 환경보존에는 하등의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린 아이들에게 이러한 사실을 얘기해서는 안된다. 왜냐면은 실상을 설명해줘도 믿지 않을 정도로 쓰레기수거에 대해 쇄뇌되여있기 때문이다.
셋째: 개인진료소에서만이 진정한 국민건강 치료가 가능한 실정이다.
CBC의 유명한 앵커 Tommy Douglas가 국가가 국민건강을 책임지고 진료해 준다고 자랑스럽게 얘기하면서, 엄지발가락이 안으로 파고 드는것까지도 전부 국가에서 보살펴 준다고 자랑이지만, 그진정한 의미는 건강과 치료비 때문에 진료받지 못하는 사람이 없다는것을 설명하기위함이다. 요즘은 실제로 환자 치료보다는 소요되는 비용절감에 더 초점을 마추고 있는터라, 진료사정이 더 악화되고 정체되고 있을 뿐이다.
토론토같은 대도시에서는, 일례로, 백내장수술을 받기위해서는 기약없는 대기를 하고 있어야할 정도이다. 정부는 국민건강진료를 책임지고 있다는것을 실제로 보여주기위해, 환자들을 병원으로 보내기 보다는 개인 진료소로 보내고 있다. 정부에서 지불하는 진료비용은 똑같다.
그러나 캐나다에서는 "개인 진료소"라는 의미는 정부의료정책을 비하하는 불쾌한 표현으로 인식된다. 따라서 정부는 개인진료소에 가는 사람들에게 확실한 정보를 주지않고 마치 국가진료시설을 이용하는것 처럼, 국민들을 오도하고 있다.
넷째: David Suzuki는 환경보호론자가 아니고 오히려 망치고 있다.
지구온난화로 부터 시작하여 양식된 연어와 변종시킨 농작물들에 대해서 David Suzuki는"환경 보존의 종말"이라고 악평하는 사람이다. 그는 인간들의 가장 기본적 사악함을 강연하면서 종말을 부르짖은 캐나다산 예언자이다. 현대판 Savonarola가 되여, 우리 현대인들이 소유하고 있는 물질들을 불태워 없애지 않으면 우리모두는 지옥으로 떨어질 것이라고 예언을 하고 있다. 지구파멸을 예언하는 그의 발언은 사람들을 그렇게 생각하도록 유도하고 있다는데 문제가 있다.
천문학적인 예산이 소요되여 도저히 그성취가 불가능한 Kyoto협약을, Suzuki는 실제로는 그렇게 많은 투자가 아니다라고 주장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합심하여 매연방출을 줄리고 환경오염지역을 청소하면 된다라고 주장하는 사람이다.
참고: Savonarola는 15세기초기의 이태리의 유명한 예언자임.
다섯째: 국가 정책인 day care 운영 프로그람은 실질적으로 가난한 아이들을 돕지 못한다.
국가에서 운영하는 비현실적인 Daycare Centre에 대해 누가 감히 반대 하겠는가?
이프로그람은 앞으로 살아갈 날들이 구만리 같은 어린 아이들에게 더 좋은 삶을 살아가게하는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아무도 이목적에 반대할자는 없다. 그러나 이런 프로그람이 맨처음 시행된 Quebec주에서는 이러한 프로그람이 실제로는 생활이 넉넉한 중산층 이상의 부모들에게 보조비를 지불해 주는것 외에는 아무런 효과가 없다는 것이다. 형편이 가난한 부모들은 이를 이용할 엄두도 못낸다. 편리한 Daycare Centre프로그람은 돈벌이를 위해서 꼭 유용한 시설임을 부인하는자는 아무도 없다. 그러나 지금까지 Daycare Centre를 거쳐온 아이들이 상급학교에서 또는 인생살이 하는데 더 잘하고 있다는 증거는 하나도 없다. 고로 아이들 성장과 교육을 돕기위해 수십억 달러를 투자하고져 한다면, 차라리 그돈을 경제적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에게 사용하는편이 훨씬 효과적이라고 생각되지 않을까?
여섯째: Group 7의 화가에 대한 평가는 많이 과장된것이다.
A.Y. Jackson의 작품은 나도 굉장히 좋아한다. 특히 그의 작품은 내가 어렷을적에 Summer Camp에 가서 즐겼던 때를 많이 생각케 해준다. 우리집 거실에는 내가 어려서 부터 Group 7에 속하지않은 Tom Thomson의 작품 "The West Wine"의 복사본이 걸려 있다.
Group 7화가들은 첫째로 캐나다의 자연을 소재로 그림을 그렸고, 당시로서는 가히 혁명적이라할수 있는 장르화가로 평가 됐었다. 그러나 그때는 80여년전이었고, 오늘날에는 오래살아오신 어머니들이 보시기에 알맞는, 겨우 포스트카드에나 사용되는 정도이다. 더이상 추겨 세우는것은 식상이다. 대신에 다른 신선한것을 찾아 전진해야 할때이다.
일곱째: 미국은 영원히 세계 최강국이다. 특히 저녁밥을 식구들이 모여 먹으면서 미국에 대해 논하는것은 충격일수 있다. 좋은 뜻에서 미국에 대한 험담을 하는것은 어쩌면 나는 캐나다인임을 나타내는뜻이기도 하다. 우리는 미국인들은 건방지고, 육중한 몸을 던져 돌진하는 황소와 같이 본다. 나쁜뜻에서는 미국인들은 지구상에서 가장 사악한 민족이자 국가이다. 그러나 지금은 서서히 수억명의 인도 또는 중국인들은 수천년동안 받아온 고통과 하류계급의 신분에서 풀려나고 있다. 왜냐면 미국은 그러한 나라들뿐만 아니고 전세계에 경제적 자유를 전파하고 또 구매해 주기 때문이다.
이내용을 보면서, 잘못 알려진 사실이 진실인양, 당연한것 처럼 사람들에게 인식되여져 있는
Preoccupation화된 관념속에서 벗어나지 않을려고도 하고, 알면서도 바꾸려 하지 않는 경향이 각자의 저변에 깔려 있음을 다시 발견한 것이다. 시대의 변화를 긍정적으로 받아 들여야 하는 이유가 그래서 필요한것 같다.
캐나다인들이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는 많은 사항중에는 제 3자의 입장에서 보았을때는 극히 편협적이고, 논리적이지 못한 내용들이 여러개 있는데, 그중에서 7곱가지를 꼽아 보았다.
이러한 내용은 캐나다인들과 대화 할때 가능하면 삼가는게 서로에게 좋을것 같아서 이다.
첫째: 문학작가 Margaret Atwood의 작품에 대해서는 평을 금하는게 좋다. 캐나다에서는 그녀가 문학에서는 여왕같은 존재로 존경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그녀만큼 각종문학상을 많이 수상한 작가가 캐나다에는 존재치 않을 정도이고, 어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또한 그녀에 대한 행적을 물어보는것도 기분을 거스리게 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녀의 작품들은 대개가 내용이 감동적이지 못해 읽기가 지루하고, 마음을 무겁게 하는 내용들이다. 그러나 어느누구도 이러한 진실을 말하려 하지 않는다. 왜냐면은 그녀 때문에 세계지도상에 자랑스럽게 "캐나다"라는 나라를 알려 주었기 때문이다.
둘째: 재활용은 시간과 돈의 낭비임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전에는 쓰레기 버리는게 쉬웠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반대이다. 쓰레기수거법이 무척이나 까다롭기 때문이다. 온집안식구들이 쓰레기 버릴때 마치 쓰레기 수거인이 된것처럼, 신경써서, 병, 종이 등을 포함하여 조심스럽게 분리하여 쓰레기통에 넣어야하는 어려움이 있다. 심지어는 Dryer에서 나오는 Lint까지도 어느통에 버려야 적법인지를 고민할 정도이다.
포도주병을 적당히 쓰레기담은 백에 넣어 버릴려는 생각은 아예 접는게 났다. 분리수거나 재활용은 막대한 시간과 경비를 낭비하는것일뿐 환경보존에는 하등의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린 아이들에게 이러한 사실을 얘기해서는 안된다. 왜냐면은 실상을 설명해줘도 믿지 않을 정도로 쓰레기수거에 대해 쇄뇌되여있기 때문이다.
셋째: 개인진료소에서만이 진정한 국민건강 치료가 가능한 실정이다.
CBC의 유명한 앵커 Tommy Douglas가 국가가 국민건강을 책임지고 진료해 준다고 자랑스럽게 얘기하면서, 엄지발가락이 안으로 파고 드는것까지도 전부 국가에서 보살펴 준다고 자랑이지만, 그진정한 의미는 건강과 치료비 때문에 진료받지 못하는 사람이 없다는것을 설명하기위함이다. 요즘은 실제로 환자 치료보다는 소요되는 비용절감에 더 초점을 마추고 있는터라, 진료사정이 더 악화되고 정체되고 있을 뿐이다.
토론토같은 대도시에서는, 일례로, 백내장수술을 받기위해서는 기약없는 대기를 하고 있어야할 정도이다. 정부는 국민건강진료를 책임지고 있다는것을 실제로 보여주기위해, 환자들을 병원으로 보내기 보다는 개인 진료소로 보내고 있다. 정부에서 지불하는 진료비용은 똑같다.
그러나 캐나다에서는 "개인 진료소"라는 의미는 정부의료정책을 비하하는 불쾌한 표현으로 인식된다. 따라서 정부는 개인진료소에 가는 사람들에게 확실한 정보를 주지않고 마치 국가진료시설을 이용하는것 처럼, 국민들을 오도하고 있다.
넷째: David Suzuki는 환경보호론자가 아니고 오히려 망치고 있다.
지구온난화로 부터 시작하여 양식된 연어와 변종시킨 농작물들에 대해서 David Suzuki는"환경 보존의 종말"이라고 악평하는 사람이다. 그는 인간들의 가장 기본적 사악함을 강연하면서 종말을 부르짖은 캐나다산 예언자이다. 현대판 Savonarola가 되여, 우리 현대인들이 소유하고 있는 물질들을 불태워 없애지 않으면 우리모두는 지옥으로 떨어질 것이라고 예언을 하고 있다. 지구파멸을 예언하는 그의 발언은 사람들을 그렇게 생각하도록 유도하고 있다는데 문제가 있다.
천문학적인 예산이 소요되여 도저히 그성취가 불가능한 Kyoto협약을, Suzuki는 실제로는 그렇게 많은 투자가 아니다라고 주장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합심하여 매연방출을 줄리고 환경오염지역을 청소하면 된다라고 주장하는 사람이다.
참고: Savonarola는 15세기초기의 이태리의 유명한 예언자임.
다섯째: 국가 정책인 day care 운영 프로그람은 실질적으로 가난한 아이들을 돕지 못한다.
국가에서 운영하는 비현실적인 Daycare Centre에 대해 누가 감히 반대 하겠는가?
이프로그람은 앞으로 살아갈 날들이 구만리 같은 어린 아이들에게 더 좋은 삶을 살아가게하는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아무도 이목적에 반대할자는 없다. 그러나 이런 프로그람이 맨처음 시행된 Quebec주에서는 이러한 프로그람이 실제로는 생활이 넉넉한 중산층 이상의 부모들에게 보조비를 지불해 주는것 외에는 아무런 효과가 없다는 것이다. 형편이 가난한 부모들은 이를 이용할 엄두도 못낸다. 편리한 Daycare Centre프로그람은 돈벌이를 위해서 꼭 유용한 시설임을 부인하는자는 아무도 없다. 그러나 지금까지 Daycare Centre를 거쳐온 아이들이 상급학교에서 또는 인생살이 하는데 더 잘하고 있다는 증거는 하나도 없다. 고로 아이들 성장과 교육을 돕기위해 수십억 달러를 투자하고져 한다면, 차라리 그돈을 경제적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에게 사용하는편이 훨씬 효과적이라고 생각되지 않을까?
여섯째: Group 7의 화가에 대한 평가는 많이 과장된것이다.
A.Y. Jackson의 작품은 나도 굉장히 좋아한다. 특히 그의 작품은 내가 어렷을적에 Summer Camp에 가서 즐겼던 때를 많이 생각케 해준다. 우리집 거실에는 내가 어려서 부터 Group 7에 속하지않은 Tom Thomson의 작품 "The West Wine"의 복사본이 걸려 있다.
Group 7화가들은 첫째로 캐나다의 자연을 소재로 그림을 그렸고, 당시로서는 가히 혁명적이라할수 있는 장르화가로 평가 됐었다. 그러나 그때는 80여년전이었고, 오늘날에는 오래살아오신 어머니들이 보시기에 알맞는, 겨우 포스트카드에나 사용되는 정도이다. 더이상 추겨 세우는것은 식상이다. 대신에 다른 신선한것을 찾아 전진해야 할때이다.
일곱째: 미국은 영원히 세계 최강국이다. 특히 저녁밥을 식구들이 모여 먹으면서 미국에 대해 논하는것은 충격일수 있다. 좋은 뜻에서 미국에 대한 험담을 하는것은 어쩌면 나는 캐나다인임을 나타내는뜻이기도 하다. 우리는 미국인들은 건방지고, 육중한 몸을 던져 돌진하는 황소와 같이 본다. 나쁜뜻에서는 미국인들은 지구상에서 가장 사악한 민족이자 국가이다. 그러나 지금은 서서히 수억명의 인도 또는 중국인들은 수천년동안 받아온 고통과 하류계급의 신분에서 풀려나고 있다. 왜냐면 미국은 그러한 나라들뿐만 아니고 전세계에 경제적 자유를 전파하고 또 구매해 주기 때문이다.
이내용을 보면서, 잘못 알려진 사실이 진실인양, 당연한것 처럼 사람들에게 인식되여져 있는
Preoccupation화된 관념속에서 벗어나지 않을려고도 하고, 알면서도 바꾸려 하지 않는 경향이 각자의 저변에 깔려 있음을 다시 발견한 것이다. 시대의 변화를 긍정적으로 받아 들여야 하는 이유가 그래서 필요한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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